사이버 모욕죄 체제유지에 사용될 가능성 커

모욕이라고 걸면 고소 없이도 모두 수사 가능

A라는 교수와 B라는 학생이 있다. A 교수가 B 학생이 한 얘기를 두고 "초등학생 같은 소리"라고 하는 것과, B 학생이 A 교수에게 "초등학생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하면 누가 모욕죄로 처벌될까? 두 사람 다일까? 아니면 B 학생만 모욕죄가 될까?

이에 대해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는 “대법 판례 분석에 의하면 사전에 욕으로 나와 있지 않아도 모욕죄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면서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고 모욕죄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즉 B학생만 모욕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B 학생이 모욕죄로 처벌을 받기 위해서는 A 교수의 고소가 있어야 가능했다. 또한 현실에서 A 교수는 B 학생을 고소하게 되면 더 모욕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 있어 고소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비친고죄인 사이버 모욕죄가 도입되면 A 교수의 고소 없이도 그냥 경찰이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박경신 교수는 “그런 이유로 대부분 나라에서 모욕죄가 없고 우리나라 외에 독일 일본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매우 경미하게 취급되고 독일에서는 60년대 이후 처벌이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의 사이버 모욕죄 입법시도에 대해 228명의 법률가와 학자들이 강하게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독선적인 사이버 모욕죄 법안 발의 과정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특히 비친고죄로 입안된 사이버 모욕죄가 체제 유지를 위해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는 “인간정신의 가장 본질적 부분에서 사이버 모욕죄는 인간정신의 발현 자체를 금지, 차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하겠다는 잘못된 권력의지의 발현”이라고 규정했다. 한상희 교수는 “기본적으로 그 공간이 오프든 사이버든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기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면서 “이 자유를 밑바닥부터 부정하고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 사이버 모욕죄의 기본적인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번 입법시도자체가 지성에 대한 도전이며 문명에 대한 거부고, 지성에 대한 가장 야만적인 탄압”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소장은 “사회적으로 어떤 특정한 이슈가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정부나 정치인은 근원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손쉽게 법을 만들고 내용을 규제하는 것으로 결론을 봤다”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이나 정부관계자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대안마련과 면피할 수 있는 것이 법 개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내용 때문에 문제가 되어 청소년 보호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청소년과 관련된 인권신장이나 청소년이 보호받을 권리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이버 모욕죄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이동연 소장은 “중요한 것은 법적인 개정보다는 이런 악플이 달리게 된 사회적 맥락과 악플이 달린 그 당사자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보호문제가 먼저 선행되지 않고 사이버 모욕죄가 생긴다 한들 제2, 제3의 최진실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동연 소장은 “정부나 정치인들은 법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가장 무책임하고 사태를 손쉽게 외면하려는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한본 변호사는 사이버 모욕죄가 비친고죄로 입안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기존의 모욕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이유는 모욕죄가 이리 걸고 저리 걸기 쉬운 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친구들끼리 서로 욕을 할 수 있지만 굳이 모욕죄로 문제 삼지 않는 것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법의 취지라는 설명이다. 개인의 명예감정이 심하게 침해 받아 처벌표시를 해야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한본 변호사는 또 사이버 모욕죄의 입법 목적도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변호사는 “2001년 망법을 개정하면서 당시 처벌의 공백으로 인해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이미 도입되었다”면서 “지금 논의되는 개정안들은 그냥 겁주는 의미밖에 없으며 처벌의 공백이 없는데도 처벌을 확장하고 국민 협박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또 “비친고죄가 되면 사이버 모욕이라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재량을 가지고 또 다른 권리침해나 정치사찰의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상희 교수는 ”인터넷 카페 같은데서 토론이 벌어지면 수사기관은 그 토론의 표현 하나를 꼬투리 잡아 그 카페에 대한 수색영장을 받아 모든 걸 다 조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는 조그만 표현 하나에 대해 영장을 받아 모욕죄로 수사한다면서 그 카페에서 발생하는 다른 일들의 증거를 수집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상희 교수는 이런 이유로 ”사이버모욕죄가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국가보안법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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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 사이버모욕죄 , 사이버모욕죄 , 비친고죄 , 입법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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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의 수준이

    과연 객관적 '모욕'여부를 가릴 수 있을까?

    경찰처럼 날이면 날마다 욕먹길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은 모욕의 감정을 느낄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댔다. 하도 욕을 먹어놔서 "원래 우린 이렇게 사는건가부다", 자존심을 커녕, 모욕의 감정을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경찰들이 무슨 모욕여부를 가늠한다는 것인지....!

    게다가 경찰은 그렇게나 욕을 먹으면서도 왜 욕을 먹는지, 욕 먹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경찰들이 무슨 수로 기개넘치고 재치넘치며 너무너무 기발한 국민들 수준을 따를 수 있겠냐 그거다. 뭔가를 가늠하려면 훨씬 잘 알고 적어도 '능가'는 해야되잖겠나 그 말이다.

    살다보니 별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