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 속옷 탈의 인정? 인권위 결정 논란

"여성 유치인 브래지어 탈의 시 인권침해 없도록 하라" 권고에 그쳐

유치장에 입감된 여성 유치인에게 경찰이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인권침해라는 주장과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11일 경찰청장에게 "여성 유치인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완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8월 15일, 색소가 든 물대포를 살수하며 시위 해산에 나선 경찰은 이날 160여 명의 시민을 연행했으며, 이중 마포경찰서로 연행된 여성들에게 '자해위험'을 이유로 브래지어를 탈의하도록 했다.

속옷 탈의한 채 경찰 조사... 48시간 전전긍긍

국가인권위원회에 이같은 사실을 들어 진정을 낸 피해자들은 "유치되어 있던 48시간 동안 가슴이 비치거나 노출될까봐 신경을 써야 했고, 남자 경찰관에게 조사받을 때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등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면서 '부당한 인권침해'임을 주장했다.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도 지난 8월 18일 연 기자회견에서 마포경찰서의 브래지어 탈의 요구를 비판하며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피진정인인 경찰청장은 "여성 유치인 입감 시 브래지어를 탈의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규정은 없으나 브래지어는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줄 수 있는 위험물에 해당한다"며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이라는 개념에서 제출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경찰 측이 제출한 자료만 보아도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유치장 내 브래지어를 이용한 자해.자살 통계가 없으며, 근거로 제시한 경찰청 훈령 제479호 '피의자유치 및 호송규칙' 제9조에는 '위험물'을 혁대, 넥타이, 금속물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브래지어 탈의'가 생명권 보호?

당시 인권단체들은 "브래지어는 경찰이 '위험물'로 분류한 물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을 뿐더러 자해위험이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서 "경찰의 과잉 대응이자 모욕적이고 위법적인 처우"라고 크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브래지어 탈의 강요'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규정 보완'을 권고한 것이라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여름철에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브래지어를 탈의할 경우 신체의 일부가 비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여성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며 "브래지어 탈의 후 약 48시간을 유치장 내에서 생활하게 하고 경찰 조사를 받도록 한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브래지어 탈의' 조치는 "유치인의 생명권에 대한 보호가 목적"이라며 인정했다.

이에 따라 "여성 유치인이 브래지어를 탈의한 후 성적수치심 및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보완조치를 강구하고 여성 유치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절차와 방법에 대한 규정 보완이 필요하다"는 다소 모호한 권고가 나온 것.

"인권위가 경찰 눈치 보나" 인권단체 반발

인권단체들은 이번 인권위의 결정에 대해 "경찰에 의한 유치인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 "국가인권위는 여성 유치인의 속옷을 탈의한 후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보완만을 권고함으로써 여성 유치인의 속옷 탈의 자체가 가지는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속옷을 탈의하도록 하는 경우가 없고, 심지어 구치소에서도 2003년 이후에 브래지어 탈의가 없어 '생명권 보호'란 경찰의 변명임에 불과하다"며 "그런데도 인권위가 이를 인정한 것은 경찰의 눈치를 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명숙 활동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번 사례를 인권적 감수성으로 접근했어야 한다"며 "경찰의 자의적 해석을 금지하고 유치장에서 속옷을 탈의하도록 하는 부당한 관행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시정 권고가 나오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같은날 입감된 여성들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치장 샤워실 환경, 색소 물대포를 맞아 샤워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한 사례 등을 이유로 중부경찰서와 강남경찰서를 상대로 각각 진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후속 조치(샤워실 불투명 필름 부착)를 취한 점, 즉시 샤워가 불가피하지는 않다는 점을 들어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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