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날들은 다시 돌아와요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홈플러스지부 마지막 금요문화제, 그리고 그날 새벽까지

가만히 있으면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홈플러스 상암점 천막농성장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홈플러스 상암점 조합원들이 기타와 마이크를 들고 나왔다. 상암점 공식 노래패 ‘비상’이었다. 노래 한 곡을 부른 뒤 한 조합원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저희가 510일 동안 투쟁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동지들, 사랑합니다!”

  홈플러스 상암점 공식 노래패 ‘비상’

노래는 계속되었다. 잔뜩 몰려온 취재진이 저마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 연방 불빛을 터뜨렸다. 무언가를 깨알 같이 적는 기자들도 있었다. 나는 방금 조합원이 했던 말을 곱새기며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결국 들고 있던 수첩과 사진기를 가방 속에 처넣어 버렸다.

500일이 넘도록 계속된 국내 최장기 파업이 마침내 끝나게 되어 조합원들은 곧 일터로 돌아간다. 홈플러스 상암점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열렸던 금요문화제도, 100일을 훌쩍 넘긴 천막농성도 11월 14일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전에 없이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아예 삼각대까지 세워 두고 무대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회 현장에 가면 웬만한 발언들은 다 받아 적곤 하는 나는 오늘 만큼은 도저히 조합원들의 말을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말 몇 마디 받아 적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몇 월 몇 일 몇 시 어디에서 홈플러스 지부의 마지막 투쟁 문화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몇 명이 왔고 분위기는 어떠했으며 누구는 어떤 발언을 했다, 글을 이런 식으로 쓰려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 글은 내가 쓰지 않아도 다른 똘똘한 취재진들이 주말이 가기 전에 어차피 다 써 줄 것이었다. 양 옆에 있는 동료 조합원들의 손을 꼬옥 붙잡고 앉아 있는 이랜드 조합원들을 보면 그런 글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홈플러스 상암점 앞에 가득 모여 앉은 사람들.

문화제는 저녁 일곱 시쯤에 시작되었다. 그간 이랜드 금요문화제 때마다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던 몸짓패들과 노래꾼들이 모두 모였다. 몸짓 하나가,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조합원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지만 왠지 그 함성 속에는 아련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배어있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을까? 쓸데 없이 감상적으로 되어선 안 된다고, 글을 쓰려면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현장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어느새 지나간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 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랜드 일반노조의 싸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작년 연말, 홈에버 월드컵분회 지원대책위원회에서 기획한 작은 책자에 필자로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제대 후 휑뎅그렁한 마음을 잘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기만 하던 나는 이랜드 투쟁도, 매장 점거도, 계산대에 누워 버린 아줌마들도, 구속된 노조 지도부들도 오로지 뉴스를 통해서만 보고 들었다. 가을이 되고 삶이보이는창 르포문학모임에 무작정 들어가 활동을 시작하려는 와중에, 모임에 제의가 들어왔다. 이랜드 문제를 다루는 책자를 하나 만들려는데 삶창 르포팀에서 지원을 좀 해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들을 한 명씩 맡아 인터뷰를 해서 글을 써야 했다. 나는 그제서야 이랜드 투쟁과 관련된 기사들을 모조리 찾아 다시금 꼼꼼히 읽었고, 몇몇 사람들이 주선해 줘서 조합원들과 민주노동당 활동가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인터뷰라고는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작업 첫 고비 때부터 많이 헤맸다.

어쩌다 보니 후마니타스에서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책 이름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책이 나오던 무렵에 나는 서울 서부 비정규직 센터(준)와 또 인연이 닿게 되었고 서대문, 마포, 은평 쪽에서는 가장 큰 투쟁 사업장인 홈에버 상암점에 그때부터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연대 단위들이 하룻밤씩 돌아가면서 책임지는 철야 천막농성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다. 무뚝뚝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경옥 부위원장과 김경욱 위원장과도 한두 마디씩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참 많이 기뻤다.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틀 속에 조합원들과 나와의 관계를 가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편한 아들처럼, 동생처럼 조합원들과 우스개소리하며 재미나게 놀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 싸우고 싶었다.

지난 여름에 철야 농성을 하면서는 모기에 정말 많이 뜯겼다. 월드컵경기장 앞에 강이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천막농성장 주변에는 마치 성경에 나오는 메뚜기 떼 재앙을 떠올릴 만큼 모기가 많았다. 거짓말 안 보태고 하룻밤 만에 백여 군데나 물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촛불집회가 서울에서 매일 열리던 시절이어서 어딜 가나 양초가 흔했다. 모기를 쫓으려면 불빛을 꺼야 했지만 우리는 늘 양초 도막들을 모아 하나하나 촛불을 켰다. 술 한 잔씩 기울이며 달빛도 이울 무렵이면 타다 남은 초들과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피웠다. 조합원들은 천막에 기대 잠들어 있고, 같이 술 마시던 형님은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어느 철야 농성 날 밤, 너울거리는 주홍빛 촛불을 바라보며 까닭도 없이 나 혼자 흠뻑 취했던 그런 밤도 있었다.

  달빛도 이울 무렵이면 타다 남은 초들과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피웠다

참세상에 글을 올리게 된 것도 이랜드 투쟁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을 무턱대고 쫓아다니며 혼자서만 글을 쓰던 나는 홍윤경 사무국장이 소개해 준 현장 글쓰기 작가와 만나게 되어 그때부터 참세상 편집부로 글을 보내기 시작했다. 글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면서부터 다른 현장들도 기웃거리게 되었고,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혼자서만 온통 끌어안으려 한 탓인지 마음 가닥이 어지럽게 헤쳐지기도 했다. “왜 병학 씨 글에는 술 먹는 얘기가 빠지질 않아요?” 누구나 나를 보면 그 말부터 했다. 현장에 가지 않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멍하니 벽만 쳐다보는 날들이 늘어갔고 상암점 천막농성장에도 예전 만큼 많이 가지 못했다.

지난 11월 1일 영등포 홈플러스 앞에서 500일 문화제가 열렸을 때만 해도 나는 이렇게까지 빨리 결말이 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삼성 테스코가 노조 간부들의 퇴사를 협상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말을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에게 들었을 때 나는 김경욱 위원장이나 이경옥 부위원장이 혹시 복직을 포기하려 하느냐고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아무리 조합원들이 노조 간부들도 무사히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말한들 지도부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조합원들의 생활은 이미 오래 전에 엉망이 되었고 또 다시 추운 겨울은 닥쳐 오고 있었다. 협상에 나선 삼성 테스코는 손해배상 건을 틀어쥐고 여유를 부리며 외국 자본의 품 안에서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김경욱 위원장도 이경옥 부위원장도 나를 보면 자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짤리면 뭐 하고 살까? 어디 좋은 자리 있어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먹고 살 수 있을까?” 500일을 넘어 더 힘차게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홍윤경 사무국장의 발언을 들었을 때 나는 조만간 김경욱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지도부들이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조 간부들의 퇴사와 조합원들의 복직을 맞바꾸려 하는 삼성 테스코 자본이 더할 나위 없이 밉살스러웠다.

며칠 전 벼락처럼 들려온 타결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어떻게 협상했는지 그 내용을 들었을 때,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고용을 보장 받았고 임금도 더 받을 수 있게 되었다지만 지금껏 조합원들과 한 몸 같이 싸운 간부들은 끝내 매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긴 시간동안 온갖 고생과 시련을 함께 겪어 낸 사람들이 매장 밖으로 내몰리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일하러, 밥 벌러 매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합원들의 마음은 어떨까? 조합원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던 노조 지도부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삼성 테스코는 노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 생기는 손실을 돈으로 얼마든지 때울 수 있겠지만, 사랑하는 동료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랜드 조합원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가방 속에서 수첩과 사진기를 꺼냈다. 어찌 되었든 뭔가 기록을 남기긴 해야 했다. 담배를 피우며 지난 날들을 되짚어 보고 있는데 몸짓 공연이 끝나고 월드컵점 지원대책위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사회단체나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대학생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가며 이런 말을 했다.

“삼성 테스코 자본이 홈플러스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대우를 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물건만 사가던 얌전한 소비자들이 홈플러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등판에 선전물을 붙인 채 매장을 돌 수도 있고, 계산대에 누워 매장을 점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500여 일 동안 함께 싸워 오면서 연대 투쟁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충분히 몸으로 겪어 왔습니다. 조합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만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삼성 테스코 자본이 이랜드처럼 악랄하게 나온다면 홈플러스를 다시 홈에버처럼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

조합원들이 현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노조 활동을 보장해 주겠다고 한 삼성 테스코 자본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노조를 없애 버리고 말겠다는 속셈을 이미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삼성 테스코가 노조 간부들을 복직시킬 수 없다고 한 이유는 너무나 뻔하다. 복직한 간부들이 홈플러스 현장에서 새 지도부를 꾸리고 더 단단한 노조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500여 일이라는 어마어마한 기간 동안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이 바로 이랜드 홈에버 출신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은 아마 삼성 테스코 측에게도 굉장히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삼성이든 테스코든 노조를 탄압한다는 점에는 다를 것이 없는 자본이기에, 조인식을 하며 활짝 웃던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이사의 사탕발림을 온전히 믿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 투쟁’이라는 사실은 조합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매장 앞에서 마지막 금요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와중에서도 용역 직원들은 저쪽 한 구석에 서서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어 대고 있었다. 손을 뗀 이랜드 자본이 보냈을 리가 없었다. 홈플러스 측은 이미 대놓고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나와서 어떤 발언을 하는지 죄다 적고 있는 듯했다.

상암점 재정팀이 나와서 한 마디씩 발언을 했다. 조합원들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앞에 앉아 있는 다른 조합원들도 하나 둘 눈물을 짓기 시작했다. 재정팀 조합원들이 울먹이며 겨우겨우 발언을 이어가자 사진기 불빛이 일제히 터졌다. 나는 차마 찍을 수도 없고 뭔가를 적을 수도 없어서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야 돌아다니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한 조합원은 복받치는 울음을 참아 가며 이렇게 말했다.

“(노조 지도부들과) 매장에 같이 못 들어가게 돼서 너무 아쉬워요. (조인식에서) 도장을 찍었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요. 그분들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조합원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만 그 조합원을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여 주며 다시 자리로 들어갔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이경옥 부위원장을 보았다. 울지 않았다. 사회를 보는 홍윤경 사무국장을 보았다. 얼굴에 눈물 자국이 없었다. 저분들 마음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황선영 월드컵분회 직무대행이 나와서 연대 단위들과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편지 내용을 받아 적으려고 볼펜을 고쳐 쥐었지만 두어 줄 쓰다가 집어치우고 말았다. “어제 노사 조인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어느 조합원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보도를 하겠답시고 볼펜질이나 하기 보다 차라리 황선영 직대의 편지를 듣고 싶었다. 다른 조합원들은 다들 고개를 숙인 채였다. 울고 있는 걸까? 편지를 읽는 황선영 직대도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편지를 다 읽고 들어가자마자 황선영 직대는 다른 조합원들을 끌어 안고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조합원들이 황선영 직대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울음이 터지고 만 걸까? 다시 사진기 불빛이 번쩍였다. 나는 등을 돌리고 말았다.

  다른 조합원들은 다들 고개를 숙인 채였다. 울고 있는 걸까?

이경옥 부위원장이 나왔다. 지난 500일 문화제 때 엄청난 노래 솜씨를 선보인 이후 이경옥 부위원장만 나오면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번에도 역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하는 이경옥 부위원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제가 울면 오늘 여기가 난장판이 될 거예요. 저는 오늘 울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이경옥 부위원장은 노래를 시작했다.

이경옥 부위원장은 노래를 부를 때 손짓 발짓을 쓰거나 몸짓을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크지 않은 몸집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는 무대를 단번에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희망은 있다’를 부를 때는 조합원들이 앞으로 나와 입을 모아 함께 불렀다. 일을 하고 싶어도 매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경옥 부위원장이 ‘그래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그대 진실 살아있는 한’이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고 뒤쪽에 있는 연대 단위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 했다. 땅 밑을 흐르는 지하수처럼 지금의 이 웃음과 환호성 밑에는 내가 헤아릴 수조차 없는 눈물이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희망은 있다’를 부를 때는 다른 조합원들이 앞으로 나와 입을 모아 함께 불렀다.

이어 이랜드 조합원들이 만든 몸짓패 ‘새벽’과 ‘신화’가 공연을 했다. 나중에는 홍윤경 사무국장과 이경옥 부위원장까지 나와서 함께 몸짓을 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이랜드 일반노조 지도부 몸짓패 ‘우끼시네’의 부활이었다! 울산 분회 문화제에 가 있다는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가 나와서 발언을 했고, 마지막으로 김경욱 위원장이 나왔다. 취재진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나도 사진을 좀 찍고 싶어서, 대숲에 있는 대나무들처럼 촘촘히 서 있는 기자들 틈으로 쏙 끼어들었다.

“울산 분회 김학근 분회장이 법정구속을 당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교섭 자리서 김학근 분회장의 복직을 포기하겠다고, 그 대신 다른 분회장들은 복직시켜 달라고 삼성 테스코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협상하러 나온 사람들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럼 그렇게 하자고 나왔습니다. 협상을 하겠다고 나선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 뭔지 저는 그때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발언하고 있는 김경욱 위원장

김경욱 위원장은 앞으로 김학근 분회장의 출소와 민주노총 소속 다른 구속자들의 출소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끝내 복귀하지 못하게 된 탓에 지금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조합원들 말고도, 지금껏 투쟁해 온 시간들 사이사이에 해고된 조합원들 여섯 명, 홍윤경 사무국장과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여섯 명을 반드시 기억하자고 했다.

이어 노조 지도부들과 함께 복직 포기를 결의하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김경욱 위원장의 얼굴은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좀 쉬셔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랜 투쟁에 축진 몸도 몸이지만 타결을 앞두고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다 답답했다. 가까운 날에 서부 비정규직 센터 사람들과 낚시를 가자고 했던 기억이 났다. 나도 따라가기로 했는데. 우리는 언제쯤이나 한가로이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매운탕 국물에 소주 한 잔 걸칠 수 있을까?

김경욱 위원장은 이제 이랜드 일반노조에서 홈플러스지부가 분리돼 삼성 테스코 노조로 들어간다고 이야기하고선(나중에 들어보니 이랜드 일반노조와 홈플러스지부를 분리하는 것이 삼성 테스코 측이 내놓은 교섭 조건이라고 했다)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노동조합 지키실 건가요?”

조합원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다시 김경욱 위원장이 물었다.

“회사가 나가라고 해도 절대 안 나가고 버티실 자신 있지요?”

조합원들이 먼젓번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김경욱 위원장이 들어가고, 좌우로 기다란 노란색 현수막이 무대 앞으로 들려 나왔다. 현수막에는 빨간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잡은 손 놓지 맙시다’

먼저 연대 단위들이 나와서 빨간 글씨 위에다가 장미꽃을 꽂았다. 어느 정도 꽃들이 글씨를 뒤덮자 이번에는 조합원들이 나와서 장미꽃을 꽂았다. 한동안 조합원들은 꽃 무더기 속에서 이리저리 손을 놀리느라 바빴다.

현수막에 꽃을 다 꽂고 나서 조합원들이 현수막 뒤에 가서 섰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조합원들이 사진기 불빛이 펑펑 터뜨려지는 한가운데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부둥켜 안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까지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려는 듯 조합원들은 다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없이 흐르던 눈물이 이윽고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울음으로 번져갔다. 조합원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옆 사람을 끌어 안아 가며, 펑펑 울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앞으로는 우리 어떻게 될까. 지나간 시간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가슴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가올 시간들은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떠나간 동지들은 어떻게 될까..... 조합원들의 뜨거운 울음 속에 이런 말들이 꼭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소리없이 흐르던 눈물이 이윽고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울음으로 번져갔다.

노래를 다 부르고 조합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이 사람과 얼싸안고 저 사람과 얼싸안았다. 자기 몸같이 여기던 동료들을 조합원들은 끊임없이 얼싸안았다. 오늘이 아니면 이렇게 얼싸안을 수도 없다는 듯이 그들은 서로서로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기를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하늘 위로 폭죽을 쏘아올리는 것으로 홈플러스지부 마지막 금요문화제는 모두 끝났다. 조합원들은 다시 현수막 뒤에 서서 이번에는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조합원들 모두가 모여 찍기도 하고 분회 별로 모여 찍기도 했다. 연대 단위들도 슬쩍 어깨동무를 하며 끼어들어 조합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문화제 때 눈물을 펑펑 쏟은 재정팀 조합원들도 언제 울었냐는 듯 밝은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당장 다음 주부터 금요문화제가 없다니. 요즈음엔 술 마시랴 다른 현장 다니랴 잘 가보지도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510일만에 타결했다는 사실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아직도 멀쩡히 자기 배만 불리며 살고 있는데. 삼성 테스코 자본이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는데. 정말 뭔가가 해결되긴 한 걸까? 추가 외주화 철회, 임금 인상, 무기계약 전환기간 단축과 같은 것들은 어쩌면 노조를 어르고 달래기 위해 삼성 테스코가 들이댄 미끼가 아닐까? 언젠가는 홈플러스 노조를 파괴해 버리기 위해 이랜드 자본보다 훨씬 더 추악한 짓을 하지 않을까? 아직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랜드 일반노조와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지부는 산별노조에서 결국엔 만나게 될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싶었다. 서부 비정규직 센터 사람들과 뒤풀이를 갔다. 거기서 홈플러스 시흥 분회는 수요문화제를 올해 말까지 계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흥점 조합원이 또 구속되기라도 한 거예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얼마 후에 자리를 옮겨 조합원들과 다른 연대 단위들이 모여 있는 감자탕집으로 갔다. 이경옥 부위원장 옆에 앉아 어리광부리는 기분으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경옥 부위원장 아드님이 내 또래라고 했다.) “시흥점에 뭔가 일이 터진 건가요?” “아니에요. 거기는 원래 애초부터 올해까지 문화제를 계속하겠다고 했어요. 울산 김학근 분회장이 법정구속되고 복직이 무산된 것도 있고 해서 항의 차원에서 진행하는 거죠.”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시간이 늦어 집에 가는 사람들은 못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경옥 부위원장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부위원장님, 우리 또 언제 봐요?” “우리 노조 사무실 이제 부천으로 옮길 거니까 나 보고 싶으면 부천으로 놀러 와요.”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내가 사는 곳이 바로 부천인데! “정말 부천으로 가세요? 저 부천 사는데?” “송내동 쪽이니까 거기로 놀러 오면 되겠네요.” 이경옥 부위원장은 명함을 꺼내 웃으며 사람들에게 돌렸다. “이것도 빨리 돌려 다 없애야지 원.”

자리를 옮긴 술자리에서 나는 이경옥 부위원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차기 지도부는 어떻게 될까요?” 피곤한 탓일까? 이경옥 부위원장은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파업 후유증 때문에 남자 조합원들 같은 경우는 집에서 와이프들이 적극적으로 말려요. 여자 조합원들도 형편이 다들 어렵고. 솔직히 어떻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잠자코 술 한 잔을 털어 넣는데 이경옥 부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지도부도 지도부지만 조합원들이 더 걱정이에요. 500일까지 오면서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어.” “복직되지 못한 조합원들은 출근투쟁 같은 거 혹시 생각하고 계신가요?” “사측이 협상 과정에서 우리한테 출근투쟁도 하지 말랬어요. 그래서 못 해요.”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나는 많이 퍼마셨다. 다른 사람들이 맥주를 비우는 속도보다 나 혼자 소주잔을 홱 꺾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안타까운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이상한 감정이 가슴속에 답답하도록 가득 들어찼다. 도대체가 파업이 끝났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김경욱 위원장과 이남신 수석부위원장과 홍윤경 사무국장은 다들 어디로 갈까? 어떤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까? 이경옥 부위원장이 너무 피곤하다며 천막에서 눈을 붙여야겠다고 일어섰다. 천막도 일요일 오전 10시에 다 걷어 버릴 거라고 했다. 인사까지 하며 소란스레 가고 싶지는 않다고 이경옥 부위원장은 몰래 술집을 나왔다. 나는 배웅하러 나와 이경옥 부위원장의 손을 꼬옥 잡고 물었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글쎄, 노래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그럼요! 정식으로 데뷔하셔도 되겠던데요?” “그러지 않아도 칼라티비에서 내가 노래하는 영상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고.” “앨범 내셔도 될 것 같아요.” “정말? 그럼 나도 진짜로 추진해 봐?” 나와 이경옥 부위원장은 아무도 없는 밤 거리에 서서 깔깔대며 웃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와 까만 하늘 위로 부서져 갔다. 나도 이경옥 부위원장도 농담 반 진담 반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더 슬펐다. 진정한 연대란 무엇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저마다의 삶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게, 500여 일 동안이나 싸웠는데도 결국 현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노동자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게, 농담을 하며 웃을 수밖에 없다는 게 나는 슬펐다. “부천 사무실에 가끔 놀러 갈게요!” 나는 고작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경옥 부위원장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천막농성장 쪽으로 향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혼자 소주를 마셨다.

사람들과 술집을 나왔다. 홍윤경 사무국장도, 서부 비정규직 센터 사람들도 다들 집으로 가 버렸다. 삼십 분만 걸으면 지하철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나는 망원역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찬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었다.

김경욱 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었다. 홈플러스가 홈에버처럼 노동자들을 못 살게 굴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홈플러스와 싸우겠다고. 홈플러스지부가 이랜드 일반노조에서 삼성 테스코 노조로 둥지를 옮겨 간 것은 과연 시작일까 끝일까? 정말 온갖 언론이 떠들어 댄 것처럼 ‘이랜드 파업 사태’는 ‘510여 일만에 종료’된 것일까? 정말 절반의 승리일까? 아니면 절반의 패배? 상처뿐인 영광? 기사 표제는 기사 표제일 뿐 그 어떤 말로도 조합원들과 지도부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직 풀려나지 않은 구속자들이 남아있다. 홈플러스 측은 용역 직원을 동원해 여전히 조합원들을 감시하고 있다. 홈에버가 빠진 이랜드의 다른 계열사들은 악랄한 박성수 회장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장에서 쫓겨난 노조 지도부들은 무언가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기륭전자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투쟁을 일컫는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이랜드 투쟁’은 내가 보기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랜드 투쟁은 내가 보기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벽이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컴컴했다. 이랜드 노조와 삼성 테스코의 조인식이 있던 날 밤에 나는 옛 노래를 듣는 꿈을 꾸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꿈 속에서 듣게 된 노래였다. 가로등 불빛뿐인 밤 거리에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내가 처음으로 이랜드 조합원들과 만난 게 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 눈길 어울리지 않아요
후회라는 말은 정말 싫어
언젠가 따스했던 우리만의 비밀
그 기억 속에 머물러요
낯선 꿈을 쫓던 시간들
그대 역시 나에겐 꿈인가
가까이 있어도 건널 수 없는 그대
나를 불러 손짓하고 또 떠나가네

가버린 날들을 다시 찾는다면
그대 가슴 가득 나의 마음 나의 사랑 전할 텐데
가버린 날들은 다시 돌아와요
함께 하던 시간 그때 그대로 머물러요


정원영 – 가버린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