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소유 집중으로 치달을 뿐이고

[미디어 관련법 진단](1) - 신문법

언론사유화저지및미디어공공성쟁취사회행동(미디어행동)은 지난 9일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중인 미디어 관련법 7개에 대해 '언론장악 7대 악법'으로 규정했다.

미디어행동은 지난 3일 한나라당이 밝힌 신문법, 방송법,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전파법, 디지털전환특별법 등 7개 미디어 법안을 종합 검토한 결과 '재벌방송, 조중동방송 허용'을 본질로 한다고 정리했다. 대국민 호소를 위해 압축한 표현이다.

미디어운동 진영은 공영방송 장악 저지 싸움으로 한 해를 보냈다. MBC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의 심의, KBS 사장 교체와 사원행동에 대한 징계, YTN 구본홍 사장 낙하산 논란.... 연말은 신문의 방송.뉴스통신 겸영 허용과 자본의 방송 진출 여건 완화, 인터넷 통제법안들을 막는 데 올인할 태세다.

언제든지 통과시킬 수 있다.

18대 의회 구조상 한나라당은 언제든 미디어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악법'이라면 막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막기 어렵다면, 막기 어려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명분과 논리적 대안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방송장악 저지 행동의 교훈이 그렇다. 2008년 한해 새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인적 점령은 거의 끝났다. 다음은 제도적 점령이 남았다. 물론 YTN처럼 당사자가 끝까지 버티면 버티는만큼 성과를 축적하기 마련이지만.

미디어 법제도가 뜯어고쳐지기 직전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2004년 신문법 발의 때로 거슬러보면 4년이나 걸렸다. 7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하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인수위 시점에 간간히 흘러나오던 음모스러운 이야기들이 지금은 종합 버전으로 버젓이 공개됐다. 하나씩 살펴보겠지만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 자본의 방송 진출 여건 완화, 인터넷 통제가 요점이다.

밀리면서도 설득력 있는 대안 필요

한번 고쳐진 법제도를 다시 고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사회구성원의 교감을 얻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방송장악 저지 다음, 미디어 관련 법제도 개정 저지 다음,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저지'는 도덕적 명분에 그치고 만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행동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틈틈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밝힌 7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가능한 수준에서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이해에 알맞은 미디어법제도 제개정 방향에 대해서도 다뤄볼 생각이다.

신문법 전부개정안, 강승규 의원 대표 발의

신문법 전부개정안은 지난 12월 3일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 등 17명의 의원이 발의했다.

전부개정안은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관련 규정 정비 △인터넷포털 등을 언론관계 법률의 규율 대상으로 포함 △신문지원기관의 효율화를 위한 통합 △신문·방송·뉴스통신 간의 겸영(교차 소유) 원천 금지 규정 완화 등을 담고 있다.

한편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준수사항으로 △기사배열의 기본방침과 기사배열책임자 공개 △독자적으로 생산하지 않은 기사를 수정할 경우 기사 공급자의 동의 확보 △제공받은 기사와 독자가 생산한 의견을 혼동하지 않도록 구분하여 표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밖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디지털 뉴스컨텐츠에 관한 표준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허가로 되어 있는 외국신문의 국내 지사·지국 설치를 등록으로 변경했다.

신문지원기관의 효율화 내용으로는 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언론재단을 통합하여 한국언론진흥재단을 신설하고, 신문유통원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두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신문발전기금은 폐지하되 언론진흥기금을 설치하도록 했다.

한나라당의 신문법 발의는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은 정병국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언론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2004년 11월17일 '신문등의자유와기능보장에관한법률'(신문법), '언론분쟁의중재에관한법률'(언론중재법), '국가기간방송에관한법률'(국방법) 등과 관련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과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면서, 4년 전에 폐기된 미디어 관계법들의 내용이 '7대 악법'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신문법 개정, 신문의 방송.뉴스통신 겸영 금지 폐지가 핵심

한나라당의 신문법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신문의 방송.뉴스통신 겸영 금지 폐지에 있다. 구체적으로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의 상호 겸영금지 폐지 △일간신문·뉴스통신 또는 방송사업을 경영하는 법인이 동일 업종의 주식 및 지분 취득 금지 폐지 △대기업은 일반일간신문에 한하여 지분의 2분의 1을 초과하여 취득 또는 소유할 수 없도록 종전과 같이 유지 등이다.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은 상호 겸영할 수 없으며, 종합편성 또는 보도 전문편성 방송사업을 겸영할 수 없다'는 현행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다.

이는 나경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방송법 일부개정안과 맞물린다. 나경원 의원은 방송법의 '지상파방송사업 및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을 겸영하거나 그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현행 조항에 대해 '대기업 또는 신문이나 뉴스통신을 경영하는 자는 지상파방송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100분의 20을 초과하여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100분의 49를 초과하여 소유할 수 없도록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문법은 2005년 1월 1일 여야 합의로 제정되었는데, 참여정부 당시 이른바 4대개혁입법 의 하나로 여야의 줄다리기 속에 어렵게 탄생했다.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신문산업이 공적 부문인가 사적 부문인가. 여론 다양성 보장을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타당한가. 신문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신문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신문법 개정 방향은 어때야 하는가.

논란의 과정에 헌법재판소가 2006년 6월 29일 '신문법 위헌심판청구' 결정에서 신문법 제정 취지를 합헌으로 인정했다. 헌재는 헌법제21조 3항(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을 들어 여론 다양성 보장을 국가 기율의 근거로 삼았다. 이처럼 헌재의 '여론다양성을 위한 국가의 개입'과 '신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포괄적인 인정은 신문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신문법을 개정할 경우 2006년 6월 29일 헌재의 결정을 합리적으로 수용하고, 한국 사회에서 신문산업이 지닌 고유한 특징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준상 부소장은 신문을 "개인의 전유물이 아닌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적 조직체"로 정의하고 "1인 소유 지분 상한성 30%(특수관계자 포함) 규정과 이를 초과하는 주식이나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한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문이 산업으로서의 성격을 갖지만, 여론을 다루는 공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직체'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문산업의 진흥에 국가가 개입해 지원하는 만큼 공적 의무와 관련한 규제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 점에서 신문의 자유방임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송.뉴스통신 겸영 금지 완화는 위험을 수반한다. 미디어단체들은 신문의 방송.뉴스통신 겸영 금지 완화가 미디어 공공성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가 미디어정책 방향으로 거론한 시점부터 예의주시해왔다.

비판의 요지는 자본과 조중동의 방송 소유는 상업방송의 성격을 촉진, 방송의 공공적 성격을 축소하고, 방송간 경쟁체제를 강화해 방송의 시장화를 확대함으로서 방송을 이윤의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것. 민영 방송 소유 재원은 현실적으로 거대 자본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조중동이 7-80%를 장악하고 있는 신문시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자본과 조중동이 방송까지 소유할 경우 공기로서의 미디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신문위원회 설치를 통한 공적 지원과 규제의 강화

신문에 대한 국가의 지원, 이는 일종의 공적 기금인데, 조준상 부소장은 이를 "공적 성격이 강한 특수한 사적 부문으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한나라당의 신문.방송.뉴스통신 겸영 허용은 신문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규제의 요소를 완화하고, 시장의 사적 기능과 이윤의 측면을 강화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겸영이 허용된 시점에서 국가의 지원은 '사적 성격이 강한 사적 부문의 지원'의 양상을 띠게 된다. 공적 기금의 사적 지원이라는 성격이 강화될수록 '공적인 것'에 대한 물음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신문산업에 대한 국가의 간접지원은 폭넓게 이루어졌다.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 면제 등 세제 지원과 준조세로서 채권 매입 면제, 우편과 철도 운송 요금 할인, 언론인 세재 지원과 교육, 임대료와 사업비 보조금 등이다.

신문발전기금은 신문법 제정 이후 신문산업의 진흥을 통한 여론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설치됐다. 사업 분야는 독자권익 보장사업, 경영합리화 지원, 언론공익 사업, 융자사업 등이며, 우선지원대상자를 선정해 선별지원하는 방식이다. 인터넷언론에 대한 지원은 신문발전기금이 설치된 후 처음 이루어졌는데, 전체 기금 대비 지원 규모는 매우 미비한 수준으로 지적된다.

그러니까 한번 쯤은 지금까지 신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미디어 공공성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아온 신문이 사회구성원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신장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신문산업의 진흥이 곧 사회구성원의 미디어 참여의 권리를 얼마나 보장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조준상 부소장은 '신문위원회'의 설치를 주장했다. 독립합의제 행정기구로서 신문법 개정을 통해 관련 장을 만들고, '신문위원회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을 별도로 제정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조준상 부소장은 "신문 산업 전반의 쇠퇴 속에서도 고질적인 신문산업의 투명성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며 신문산업의 불투명성을 해소하고 지원하는 방안으로 전국 종합일간지의 신문 제조원가와 구독료의 차액 직접지원, 신문 구독자의 구독료 세액 공제 등의 간접지원 제도를 제시하기도 했다. 신문위원회를 통해 신문산업의 위기의 실체를 투명하게 확인하고, 모두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종의 대타협을 거쳐야 비로소 신문산업의 진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조준상 부소장은 "신문위원회의 설립 여부는 신문산업의 쇠락을 해결하는 해법을 신문산업 내부에서 찾는 것이어야 하고 정치적 타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신문위원회 설치를 통해 신문산업의 투명성을 확인하고, 여론다양성 보장을 위한 선별보장과는 다른 차원에서 신문산업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취지이다.

물음은 좀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일 필요가 있는데, 변화하는 미디어 융합 환경, 신문.방송,뉴스통신 등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규제가 어떤 철학적 원칙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다.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디어의 발전이어야 하고, 미디어의 발전은 미디어 산업의 발전에 앞서 사회구성원의 미디어 권리를 신장하는 것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지원법으로서의 신문법, 4년의 공과를 명확히 하는 한편 사회구성원의 커뮤니케이션권리의 관점에서 진화를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신문산업 주체가 전유해온 '공적 기금'의 운영 원리와 수혜를 미디어 참여 주체에게 돌리는 일이기도 하다.

현실은 자본의 소유 집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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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 한나라당 , 신문법 , 신문발전위원회 , 신문위원회 , 공적기금 , 커뮤니케이션권리 ,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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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웅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다 정치권에서 끌어내려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