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인터뷰] 현대미포 굴뚝 농성 8일째, 국회 정문에서 발 돌린 김석진 씨

“돌아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울산에서 올라온 김석진 씨가 31일 오전, 국회 정문에서 발길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러 왔었다. “사람 좀 살려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김석진 씨가 국회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현대미포조선 예전만 입구 소각장 100m 굴뚝 위에서 온 전화였다. 24일에 올라갔으니까 8일째다.

“우리는 괜찮습니더. 고생이 많지예?”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린다. 김순진 씨의 목소리다. 김순진 씨는 현대미포조선 현장 노동자들의 모임 ‘현장의 소리’ 의장이다. 김순진 의장의 전화에 김석진 씨는 이영도 씨의 얼굴도 떠올린다. 이영도 씨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이다.

“이영도 부본부장은 몸이 원래 안 좋아요. 자꾸 배고프다고 하네요. 오늘로 8일째 굶고 있어요.”

지난 24일, 이영도 부본부장과 김석진 의장은 생수 두 병과 여름용 침낭 하나를 들고 100m 굴뚝 위로 올라갔다. 이홍우 현대미포조선노조 조합원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원직복직과 현장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투신한 지 열흘 만의 일이었다. 이들은 사측에 사태해결을 요구하며 굴뚝에 올랐지만 사측은 내려오든지 굶어 죽든지 선택하라며 굴뚝 위로 음식이 올라가는 것을 막았다. 경찰과 얘기를 해 음식을 올리려 해도 사측에서 고용한 경비들이 막아섰다.

  이영도 수석부본부장과 김순진 의장이 올라가 있는 현대미포조선 앞 100m굴뚝. [출처: 울산노동뉴스]

“어제 겨우 생수 다섯 병이랑 양말 두 켤레, 휴대전화 배터리 4개, 침낭 1개를 올려줄 수 있었다”라고 김석진 씨는 전했다. 김석진 씨도 현대미포조선노조 조합원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현장조직 3개가 모인 대책위원회에 소집권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내일부터 4일까지 휴가인데, 오늘 음식 올라가지 않으면 굴뚝 위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굶어야 하는 상황이예요.”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이 돌아오면 선전전을 하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측과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사태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노조까지 한편이 된 사측이 꿈쩍할 리 없다. 그래서 서울로 왔다. 현대미포조선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의원을 만나기 위해. 그러나 국회 안에 발끝도 넣어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국회의장이 내렸다는 ‘질서유지권’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 보좌관 한 명이라도 나와서 함께 해주면 정몽준 의원실 문고리라도 잡아 볼 텐데 민주노동당도 MB악법을 막느라 본회의장에서 나오기 어렵다고 했단다.

  김석진 씨

자리를 함께 한 이갑용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따뜻한 죽 한 그릇 올려 보내려고 온 건데. 정몽준 의원이 전화 한 통화만 사측에 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갑용 지도위원은 국회에 대한 한탄도 쏟아냈다.

“우리한테 국회의원 다섯 명이 있으면 뭐하냐. 중요한 건 노동자들이 싸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건데요. 정몽준 의원 전화 한 통이면 뚫릴 경비들의 벽을 지금 현장 노동자들이 뚫을 수 없다는 겁니다. 현장 노동자들이 힘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되어야 하는데. 국회는 60년 동안 단 한 번도 노동자들 편인 적이 없었단 말입니다. 한미FTA며 비정규법, 야간집회 금지 같은 거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명박이 아닙니다. 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겁니다.”

전화기가 연신 울어댄다. 그래도 대책위를 대표해서 사람이 서울로 올라갔는데 뭔가 달라지는 게 있겠지 하는 기대가 무게감으로 몰려온다. 김석진 씨가 전화기를 쳐다 보다 말문을 연다.

“그래도 국회 가면 뭔가 풀리지 않겠냐는 기대를 가지고 왔거든요. 협상을 제안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밥만 일단 굴뚝으로 올려 달라는 거예요. 굴뚝 위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거든요. 막아야 할 것 아닙니까. 정몽준 의원이 경영에서 손 땠다고 해도 최대 주주고 하니 인도적 차원으로라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2009년이 새로 시작된다며,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줬지만 그들은 굴뚝 위에 굶고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 1일부터 상경투쟁을 준비 중이다. 2일에는 집중집회도 연다.

“서울로 다시 올라 오려구요. 울산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집회도 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야죠.”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막고 있는 걸까.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울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후 집회 가서 뭐라고 해야 하나. 굴뚝 위에서는 자꾸 배고프다고 하는데...”

배터리 4개가 다 닳아 없어지면 굴뚝 위의 두 사람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굴뚝 위 두 사람은 생수 다섯 병으로 앞으로 사흘을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국회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김석진 씨는 이 날 국회 정문에서 발을 돌려야 했다.


[편지] 이제 정몽준 최고위원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진보신당울산 노옥희 위원장이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에게 (출처:울산노동뉴스)

진보신당 울산시당 준비위원장 노옥희입니다.

저는 1979년 정몽준 최고위원의 아버님인 정주영 이사장이 운영하는 현대학원 소속의 현대공고(지금의 현대정보과학고)에 교사로 오면서 울산 동구와 함께 정몽준 최고위원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대학 생활을 한 후 직장을 찾아 울산 동구에 온 그야말로 평범한 교사였습니다. 졸업하고는 노동현장에 취업하는 제자들을 보며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어려움에 작은 힘이라도 되겠다고 나선 것이 죄가 되어 교사 생활 8년여 만에 해고되어 공립학교로 특채되기까지 13년간 해고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 해고로 인해 또 구속된 바도 있습니다.

이런 세월을 살면서 현대라는 곳에서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와 주변의 문제로 이렇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힘들지만 제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울산 동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나 참담하여 현대미포조선의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로서 사실상 현대미포조선 사태를 가장 신속하게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정몽준 최고위원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대미포조선 이홍우 노동자를 아십니까?

나이 드신 부모와 두 아이, 그리고 부인을 뒤로 한 채 38세의 이홍우 노동자는 해고된 지 6년째인 용인기업 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현대미포조선 종업원임을 인정하는 판결에 따라 복직투쟁을 전개한 이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로 동료가 징계되고 탄압받게 되자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고 4층에서 뛰어내림으로써 현대미포조선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을 알려내려 했습니다.

“아파도 치료를 제대로 못받는 이 현실, 징계받고 억압과 탄압을 받는 이런 현실 이 모든 걸 다 내가 짊어지고 갈께.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고 이런 일이 절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동지들 정말 사랑합니다”(이홍우 노동자 유언 중 일부)

현대미포조선은 노조 활동가들에게 현장활동을 이유로 사사건건 감시하고 시간 체크하여 불이익을 주고 일하다 다쳐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 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 그런 절망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목숨까지 버리면서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살피고 해결하는 것이 상식임에도 동구청과 동부경찰서는 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 미포조선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의사표현을 위해 버스정류장에 설치한 비 가림을 위한 비닐조차도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시 징계 위협으로 이들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또 다른 두 노동자를 이 엄동설한에 100m나 되는 현대중공업 폐기물 소각장 굴뚝에 올라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홍우 노동자가 투신했을 때 회사와 노동조합이 신속하게 사태 해결에 나서기만 했었더라도,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의사표현인 농성장을 짓밟지만 않았어도 두 노동자는 굴뚝으로 올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굴뚝 농성 중인 노동자는 현대의 착취와 억압의 상징

이곳 동구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노동자와 그 가족이 전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두 회사는 정몽준 최고위원이 최대주주로서 실질적인 사용자이기도 합니다. 최근 주가가 많이 내렸다지만 3조원에 이르는 정몽준 최고위원의 재산 중 대부분이 이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새벽 6시30분도 채 되지 않아 미포만의 칼바람을 맞으며 공장으로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이홍우 노동자의 투신을 알려내기 위해 아침 출근선전전을 하면서 매일 이렇게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닐진데 이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정 최고위원은 대권에 뜻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 최고위원이 대통령이 되어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지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이미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숫자를 넘었습니다. 두 회사는 활동가들을 탄압 감시하기로 유명하여 민주파 대의원의 당선은 고사하고 출마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공장이 되고 있습니다. 87년 당시에도 활동가들에게 일상적으로 미행 감시 테러 등을 일삼더니 2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 문국현 후보처럼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 없이는 정 최고위원 아버님의 실패를 반복할 뿐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정 최고위원과 그 뒤에 보이는 현대자본의 착취와 탄압이 따로 떨어져서 설명이 가능할지 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정몽준 최고위원이 직접 나서야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기억하시는지요? 현대에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숨죽여 지내던 노동자들이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노동자임을 당당하게 선언하였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정주영 회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노동자들과 담판을 지었습니다. 이제 정몽준 최고위원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현대미포 자본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두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결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가 불안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춥고 배가 고픕니다. 밤마다 몰아치는 칼바람은 저들의 탄압 이상으로 무섭습니다. 저들이 소각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굴뚝에서 느껴지던 한 점 온기도 사라졌습니다”(굴뚝 농성중인 이영도씨의 편지글 중에서)

100m 상공의 굴뚝에서 농성중인 두 노동자는 매일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굴뚝에 올라가자 바로 소각장 가동을 중단했고 농성 8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음식과 체온을 유지할 최소한의 물품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노동자들은 이들이 잘못될까 너무나 두렵습니다. 저녁마다 굴뚝 위로 물품을 넣으려는 노동자들과 현대중공업 경비들이 한판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공권력을 이용해 법에 정한대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대의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동구청장도 국회의원도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동구를 주민에게, 현대를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시길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곳 동구와 현대의 울타리를 넘어 서십시오. 동구와 현대가 구성원 스스로 판단하여 꾸려갈 수 있도록 이제 그만 동구를 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온 회사 조직을 다 동원해도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정 최고위원의 아버님을 통해서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이 곳 동구를 동구 주민에게,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그 곳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서장과 구청장, 국회의원이 정몽준이 아니라 동구주민을 바라보도록 해 주십시오.

정몽준 최고위원님!

이제 그만 왕자의 자리를 벗어나십시오. 생로병사의 문제를 깨닫기 위해 왕궁을 떠난 싯다르타와 같이 이제 이 곳 동구와 주변의 가신들로부터 독립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코 “버스요금 70원”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입니다. 당신께서 이 곳 동구에 오실 때면 온 공장과 학교에서 씻고 닦고 난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이렇게 형성된 지도력으로 어떻게 한 나라를 이끌 수 있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기존의 관계를 넘어 소통하는 정치지도자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100m 굴뚝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지내는 두 노동자와 자신의 목숨을 던져 탄압받는 노동현실을 알리고자 한 한 노동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서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지도자가 되겠습니까? 당신께서 부자인 아버지를 두지 않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우리 국민은 그리 어리석지 않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스스로 역경을 이기며 성장해 온 지도자를 알아볼 것이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제 더 낮은 자리로 국민의 가까이로 내려 오십시오. 그 첫 출발이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책임있는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2008년 12월 31일 울산 동구에서 노옥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