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냐고요?

이정환의 '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은가'를 읽고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 한 편을 꼽으라면, ‘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은가’를 들고 싶다.

10월 말쯤 이정환 미디어오늘 경제팀장이 ‘인권오름’에 보낸 글이다. ‘인권오름’이 ‘경제위기와 인권’ 기획 꼭지의 하나로 편집한 글인데,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거나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쉬이 지나치기 어려울 듯하다.

제목부터가 자극적이다. 주식계좌 하나쯤 갖고 있는 ‘좌파’라면 뜨끔하겠다.

글은 오늘날 좌파가 견지해야 할 도덕률과 함께 공부하는 좌파인지를 묻는데, 다만 개별 주체로서의 좌파의 삶의 소양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 발 경제위기가 강타한 시점, 주식의 속성과 주식하는 좌파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좀 더 엄격한 도덕률을 지키며 살아야 할 개별 주체로서의 좌파가 무언지를 제기했다.

무릇 ‘좌파’란 이념적, 역사적 추상 수준을 갖는 개념이고, 대개 집단의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처럼 개별 좌파의 도덕률의 강조는 색다른 긴장을 부른다. 실례로 B급좌파를 들 수 있겠는데, B급좌파는 좌파집단이 아니라 삶의 소양을 고민한 개별 주체의 고민의 산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B급좌파와 좌파 조직운동을 연결해 인구에 오르내리지는 않는다.

좌파 운동의 맥락으로 볼 때 일찍이 좌파로서의 개별 삶의 소양을 둔 규정이나 컨센서스 같은 건 없었다. 우파는 품성론 같은 걸 체득하고 실천해오긴 했지만, 비교하자면 좌파는 그런 걸 필요충분조건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 그 대신 좌파운동은 실천 과정, 즉 사회운동적 환경으로부터 유사한 규정을 받아왔다 하겠는데, 우파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문화적 실천 규범을 재생산해왔다.

양평동에 사는 빈곤사회연대의 한 활동가는 집을 소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을 부동산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주거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의 남동생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은 기이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아마 그가 집을 사는 일은 없을 거다.

정보통신운동을 해온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한 활동가는 지금도 후불제 교통카드를 쓰지 않는다. 신용카드인 후불제 교통카드는 요금 정산을 위해 모든 이용 내역, 즉 언제 어디서 버스를 타서, 어디서 지하철로 갈아탔는지 등과 같은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한 활동가는 몇 달 전 암 치료로 고생을 했는데, 그는 그 흔한 암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아 고스란히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다. 사보험을 든다는 건 감히 생각도 못한 일이다.

이런 식의 ‘좌파’적인 규범 사례는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개과천선 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주식투자를 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런데 좌파에 대해 이처럼 개별 주체로서의 소양을 따지며 접근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우선 이같은 문화적 규범, 또는 삶의 소양을 두고 ‘좌파’라고 정의하는 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의 삶을 규정하는 오늘날, 보편과 상식의 최소한의 소양이나 자존심을 견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품위는 얼마든지 지킬 수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좌파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면 자유주의자나, 또는 무슨무슨 주의자를 떠나 반자본, 비자본의 건강한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시민이라도 얼마든지 공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같은 규범이 얼마나 절대적인 지도 모르겠다. 한미FTA 체결 내용의 기조가 잘 반영된 MB개혁입법들이 통과되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스러워질 텐데,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면 거래 은행에서 거의 자동으로 적립형 펀드를 만들어주는 세상에서, 주식을 하면 안 된다는 이같은 규범이 얼마나 절대성을 유지할 수 있을 런지도.

한석호 활동가는 일전에 ‘레디앙’에 쓴 글 ‘주식 투자하는 운동가들’에서 초딩 딸아이를 월 10만 원이나 하는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부끄러워 한 바 있는데, 좌파라고 한다면 감히 사교육 같은 것도 하면 안 되는 거다. 바둑, 영어, 논술을 하는 내 딸아이 이야기도 꺼내면 안 될 일이고. 아닌 말로 도덕률로 따지자면 주식하는 거나 사교육 시키는 거나.

초창기 지문날인 거부 운동을 했던 한 활동가는 미국을 경유해 남미로 가는 국제회의 참여문제를 놓고 전전긍긍한 바 있다. 지문날인을 목숨 바꾸는 것 이상으로 거부했지만, 그는 그보다 더 의미있는 활동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타협한 거다.

1-20년 전 코카콜라를 ‘제국주의의 똥물’이라며 적대감을 표출했던 ‘좌파’들이 오늘 맥도널드 햄버거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탄핵받을 만큼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좌파에 대한 개별 주체의 도덕률을 강조해 어떤 효과를 기대한 거라면 그다지 좋은 시도가 아니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열거한 활동가들의 사례는 개별 주체로서의 삶의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조금 들여다보면 각 주체가 포진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긴장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데 그 진실이 있다.

그러니까 요지는 개별 주체의 도덕률을 강조하는 것보다 사회운동적 긴장을 확장하기 위한 좌파적 구상과 실천을 모색하는 게 열배 백배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건데.

다행히도 이정환 팀장의 이 글은 개별 주체의 도덕률을 강제하는 것으로 결론맺지는 않았다.

“당신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좌파라면 주식투자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주식시장을 통한 부의 이전 또는 약탈에 저항해야 하고 불로소득의 유혹에 넘어가기보다는 노동자로서 당당히 노동의 가치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 자본의 연대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폭넓은 연대를 모색해야 하고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경제위기... 당대 ‘좌파’라고 한다면, 주식투자는 단절해야 마땅하겠다. 연대하고 공부하는 ‘좌파들’의 크고작은 움직임에도 관심을 경주할 것이며.

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은가

좌파에게는 좀 더 엄격한 도덕률이 요구된다. 김규항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B급이든 C급이든 감히 스스로 좌파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매 순간 순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좌파라면 아마도 화석연료를 길거리에 쏟아가며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고 반 생태적인 육식이나 평균 이상의 비싼 식사를 부담스러워 해야 하고 사회적 약자의 슬픔에 동조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어야 하고 어쩌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 이렇게 행복해도 좋은 것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좌파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만 그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해서 얻은 것은 아닌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좌파는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좌파가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주식투자는 언뜻 아무도 괴롭히지 않으며 아무런 갈등도 유발하지 않고 투자 실패의 책임도 어디까지나 투자자 본인의 몫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주식과 부동산 투자만큼 확실한 자산증식의 수단도 없지 않은가. 주식투자를 하지 않으면 게으르고 시대에 뒤떨어진데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미국 금융 불안의 여파로 주식시장이 반 토막이 났다. 최근 주식시장 상황과 관련해 이해를 돕기 위해 네 가지를 나눠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주식투자는 왜 다른 금융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는가. 둘째, 기업은 어떻게 이익을 늘리는가. 셋째, 왜 주식투자로 돈을 벌기가 어려운가. 넷째, 주식투자를 어떻게 봐야 하나. 짧은 글이지만 최대한 쉽게 풀어서 상식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주가는 어떻게 오르는가.

이론적으로 주가는 그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 기업의 가치란 이 기업이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내느냐,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고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따라 요동을 친다.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로 꼽히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일찌감치 이런 명언을 남겼다. 주식보다 바보가 많으면 주가가 오른다. 바보보다 주식이 많으면 주가는 떨어진다.

주가가 실제 가치에 비교해서 얼마나 비싼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주가수익비율이라는 게 있다. 전체 주식의 총액을 그 기업이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이익으로 나눈 값인데 많을 때는 15배가 넘기도 했지만 주가가 반 토막이 난 요즘 같으면 7배를 밑돌 때도 있다. 이 비율이 높으면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 됐다고 하고 이 비율이 낮으면 저평가 됐다고 한다.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적립식 펀드니 뭐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몰려들면 주가가 실제 가치보다 더 뛰어오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면 주가가 계속 뛰어오를 수도 있다. 영원히 뛰어오르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생각되면 누군가가 주식을 내다 팔기 시작할 것이고 주가는 결국 적정 수준을 찾아 떨어지게 된다. 주가는 희망하는 것만으로 오르지 않는다. 거품은 결국 붕괴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이익은 어떻게 늘어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라도 올해보다 내년에 이익을 좀 더 많이 내지 않는다면 주가는 이미 오른 상태에서 머물거나 떨어지게 된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올해보다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주식을 사야할 이유가 없다.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해마다 이익을 늘려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업이 이익을 늘리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우선은 경영 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다. 품질을 높여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더 손쉬운 방법이라면 구조조정으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법도 있다. 직원의 일부를 자르고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거나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외주용역을 주는 것도 많은 기업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기업의 자산과 설비를 뜯어내 팔아치우면서 이익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돈 안 되는 사업 부문을 과감하게 철수하고 꼭 필요한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를 미루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당장 올해 이익을 조금 늘리려고 10년 뒤를 내다보지 못하는 무리수를 두는 셈이다. 중소기업에 무리한 납품단가를 요구하는 대기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철저하게 이익의 관점에서 경영을 해야 한다.

모두가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주주의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는 믿음을 주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주주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업의 이익을 계속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이익을 조금 더 늘리려고 미래를 희생한다. 당장 주가는 뛰어오르겠지만 그럴수록 더 빨리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주식시장은 큰 흐름을 타고 출렁거리는데 누군가는 그 흐름을 잘 타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나 이익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손실을 보는 사람이 있다. 밀물 때는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격언처럼 거품 국면에서는 모두가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거품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큰 욕심을 내지 말고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격언도 있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지금이 천정인지 바닥인지 알 수 없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실적 보다는 자본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투자자들의 탐욕과 공포를 더 많이 반영한다. 탐욕이 수요를 견인할 때 이미 가치평가는 무의미해진다. 잠깐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벌 수는 없고 누군가는 부자가 될 수 있겠지만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정보력이 떨어지는 개인 투자자가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자본가들의 머니게임에 들러리를 설 뿐이다.

노동자면서 동시에 자본가가 될 수 있을까.

주주 자본주의의 핵심 주장은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주들 또는 자본가들의 이익은 결국 노동자들의 이해와 배치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주식을 사고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자가당착적이다. 그 이익이 다른 노동자들과 그들의 노동조건을 희생한 대가이거나 그나마도 한계가 있고 결국 실현되지 못할 거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주가 폭락은 과도한 시장의 불안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거품이 해소되는 과정이고 오히려 종합주가지수 1000 미만의 지금 주가가 적정 주가일 수도 있다. 많이 빠졌으니 이제 오를 것이라거나 폭락 뒤에 폭등이 온다는 등의 막연한 기대는 왜 빠졌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주식 투자를 단순한 머니 게임으로 보는 발상에서 비롯한다.

당신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좌파라면 주식투자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주식시장을 통한 부의 이전 또는 약탈에 저항해야 하고 불로소득의 유혹에 넘어가기보다는 노동자로서 당당히 노동의 가치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 자본의 연대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폭넓은 연대를 모색해야 하고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인권오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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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경제위기 , 주식 , 좌파 , 주식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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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오

    음 용두사미의 느낌...결말이 싱겁네요.

  • 석초

    좌파도 주식투자 할 수 있다, 그대들이 말하는 좌파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파라고 하는 사람들, 진정한 우파인가? 좌파에 대하여 이념으로 맞섯던 과거시대에(물론 지금도 소수-어쩌면 사회주의자의 반대편에 있는 자)우파라는 이념적인 우파가 지금 얼마나 있는가? 그저 개별적인 상황에서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나뉘어 서로 삿대질만 하면서 서로 우파다 좌파다 하고 성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거의 든 사람들은 스스로 우파이거나 좌파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나이먹은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혁적인 사람이면 무조건 좌파라고 하고 있다, 개별적인 상황에 대해 좌파가 되곤 하는 요즘 사람들이다, 위 기사에 쓰인 좌파-커피로 먹지 않겠다는 정도의 사람들과는 부분적으로만 비슷할 뿐인데도 좌파라고 이해한다. 야당만 찍어도 좌파라는 판이다,그런 개념으로 좌파도 주식을 할 수 있다,
    이 기사의 제목만으로 보면 약간의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잠시 무안을 주었거나 부끄러움을 준듯하다.

  • ???

    로그 남는다고 교통카드를 쓸 수 없다면, 세무조사도 거부해야 하나? 세무조사야 말로 가장 심한 프라이버시 침해인데. 좌파들이 세무조사 거부를 시작하면 우파들이 가장 열심히 실천에 나설 듯. 비슷한 논리라면 인터넷도 쓰면 안 되겠네. 인터넷은 미국방부가 핵전쟁하에서 끊기지 않는 통신망 구축을 위해 개발한 것이니. 뭐 이쯤 되면 저질 허무개그에 불과한 듯.

    프라이버시가 원래 좌파의 유산이었던가? 개인의 부동산 -- 현대적 의미에서는 개인의 소유/점유물 일반 -- 에 대한 불침범을 규정한 것이었을 텐데. 프라이버시 최우선이라면 토빈세도 하면 안 되겠지. 좌파적 관념을 자처하며 우파적 귀결로 끝나는, 자가당착.

    솔직히 지금 이 사회의 좌파는 생존 그 자체가 당면한 최대 과제가 아닌지. 이미 사멸한 학생운동처럼, 좌파도 사멸의 길을 걷고 있는 듯 한데... 글쎄.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욕하면서 외국인노동자 추방에 핏대 세우는 동시에 자녀 사교육에 열광하는 노동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 거시기

    쌀을 왜 그리 싸게 사는지요?
    한가마에 50만원에 사면 농촌문제 해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