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국립, 월급 100만원 1년 계약직

국립오페라합창단 무더기 해고..."상임단원 기대 6년을 버텼는데"

‘국립’하면 먼저 최고라는 느낌이 든다. 학교라면 누구나 국립대학교를 가길 원하고 병을 제일 잘 고치는 곳도 국립대학교 병원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 단체에 ‘국립’이라 하면 그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고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간다. 들어가기 까지 각고의 노력도 필요하고 당연히 경쟁률도 높다.

우리나라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으니 밥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것으로 여긴다. 대우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에 많게는 기 십만 원 씩 하는 고급 클래식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니.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단원들은 그렇지 않다.

[출처: 공공노조]

“실력은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자와 지휘자가 우리를 배우라고 할 정도이지요. 2007년에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페라 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어요.”

지난 2002년 창단 이래 6년간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한 송대섭 씨의 말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에서 연기와 합창을 전문적으로 소화한다는 목표로 지난 2002년 창단됐다. 2002년 창단 후 이들은 일반 예술단의 연습시간의 몇 배를 노력해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이들의 실력이 최고라는 건 국내 외 지휘자와 연출자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기본급과 리허설 및 공연 출연료 등을 합쳐서 월 1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 그나마 공연이 없는 달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70만원의 기본급만 받는다. 이 돈으로는 자기가 만든 공연 표도 몇 장 사지 못한다. 게다가 신분은 1년 계약직이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합창단의 임금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립오페라합창단원 송대섭씨. [출처: 공공노조]
송 씨가 말을 잇는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우린 4대 보험도 없어요. 얼마 전에는 리허설 하는 도중에 단원 1명이 무대 밑으로 떨어졌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어요.”

‘국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상식 밖의 대우를 받고서도 국립오페라합창단원 생활을 계속 해 왔을까?

“처음 채용할 때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죠. 상임화(정규직화)해주겠다고 해서 우린 그 약속만 믿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보수를 받으면서도 견뎌는데요. 아마 ‘국립예술단원’이라는 자부심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겁니다.”

‘국립’이라는 이름. 예술을 한다는 자존심이 70만원의 박봉을, 1년 계약이라는 불안감을, 4대 보험도 없는 불합리함을 당하고도 그저 묵묵히 견디게 했다는 얘기다.

이젠 그런 자부심마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 8일 국립오페라단이 단원들에게 합창단 ‘해체’를 통보한 것이다. 이전까지 오페라단은 해체에 대해 일언반구조차도 없었다. 송씨를 비롯한 단원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작년부터 합창단을 둘러싸고 불안한 소문이 돌기 시작해 오페라단 측에 수차례 면담을 요구했는데도 단 한번도 응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올해 들어와 갑자기 면담을 해준다기에 조금 어리둥절했죠. 단원들은 그게 ‘해체’ 통보를 하기 위한 것인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지난 8월 부임한 단장과 첫 번째 가진 면담이 해고 면담이 됐다.

오페라단측은 상근 합창단을 해체하고 공연이 있을 때만 합창단을 모집해 쓰겠다는 방침이다. 소모품처럼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데려다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오페라 전문 합창단이 아닌 일반 합창단으로 공연을 만들겠다는 것은 공연 예술의 질적인 부분은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는 것이 합창단의 얘기다.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총 횟수는 2002년 20회,2003년 28회, 2004년 35회, 2005년 31회, 2006년 50회, 2007년 56회, 2008년 54회에 달한다.

그동안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했던 도시는 60곳이 넘는다. 동해,통영,연기,부안,하동,영광,거창,울진,기장,고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지역 들을 순회하며 "찾아가는 음악회" 로 국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출처: 공공노조]
“규모가 큰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100시간이 넘게 연습을 합니다. 우리는 35타임이라고 표현하는데 1타임당 3시간정도예요. 이렇게 큰 작품 2-3개를 포함해 1년에 평균 50개의 작품을 함께 준비하면서 호흡을 맞추는데, 작품마다 사람을 모집하겠다는 건 이렇게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완전히 무시하겠단 얘기예요.”

합창단이 해체되면 양질의 오페라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송씨는 합창단이 해체되면 관객들 입장에서는 ‘양질의 공연’을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연을 하게 되면 소리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 그냥 저절로 맞춰지는게 없다는 말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이유는 오랜시간 함께 연습하며 다져진 최고의 호흡과 파트너쉽 때문이라고 한다. 단원의 절반이상이 6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창단 멤버라는 사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앞으론 또 누군가가 이들 만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새로 시작해야한다. 이들보다 훨씬 더 척박한 조건에서 말이다.

송씨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이면서 자체극장, 연습장, 소속상근단원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해요. 국가에서 당연히 지원해야할 국공립예술단체 마저도 경제논리를 갖다대고 있는 거죠. 그나마 비정규단원으로 이뤄진 합창단 마져도 없애는 상황이니...”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노조에 가입해 대응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이 최근 노조원으로 가입한 공공노조는 다음 아고라에서 '청원' 운동 서명을 받고 있다.
덧붙이는 말

국립오페라단은 62년 창단된 후 국립극장에 전속단체로 소속돼 있었다. 그러다 2000년에 독립체제로 움직이면서 예술의 전당에 상주단체로 들어가게 됐다. 이 때부터 국립오페라단은 자체 공연장과 연습장이 없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 시작됐다. 이와 함께 상근단원도 없어 공연도 1년에 두 편 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 외부단체인 국립합창단과 공연을 하다 보니 공연일정을 맞추기도 쉽지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02년 국립오페라단 전속 합창단이 창단됐다.(앞서 언급했듯 이 마저도 비상임(비정규)단원이다) 오페라의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성악가, 합창단, 오케스트라인데 이 중 합창단 하나만이라도 만들자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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