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책5] 모래위에 쓰는 글

"유신은 가장 효과적 체제"

모래위에 쓰는 글 - 한 낙관적 정치평론가의 기록(남재희, 경미문화사, 1978, 306쪽)

바로 앞 <낡은책>에서 남재희의 <나의 문주(文酒) 40년>을 소개했다. 자칭 타칭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정치평론가로 자리잡은 낡은 인물의 얘기 속에 함께 얽힌 무수한 진보연 하는 이들의 속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남재희는 지난 20일 프레시안에 실은 <한국사회가 나갈 방향>이란 자신의 칼럼에서 '뉴라이트의 문제제기와 개혁적·진보적인 응답'이란 작은 제목을 붙였다. 남재희는 안병직과 박세일 등이 내놓은 화두에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이 답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남의 지난 12월 칼럼도 한국 진보진영을 향한 주문이다.

이번엔 그런 남재희의 78년 5월작 <모래 위에 쓰는 글>을 소개한다. 이 책 역시 '한 낙관적 정치평론가의 기록'이란 이름의 부제가 붙어있다. 시인 고은의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는 남재희 평가가 얼마나 허구인지 또렷이 드러나는 책이다.

남재희가 이 책을 쓴 78년 5월은 20년 기자생활을 마감할 무렵이었다. 78년 남재희는 서울신문 편집국장, 이사를 거친 주필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부터 이승만 기관지, 유신정권 기관지까지 오롯이 집권여당 기관지로 전 민중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그 신문의 주필을 마지막으로 남재희는 79년 유신정권 막바지에 공화당 공천의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내리 4선을 하면서 여당에만 몸 담았다.

이 책 <모래 위에 쓰는 글>은 구역질 나는 유신 찬양 글 모음집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최상룡 당시 중앙대 교수는 "남재희는 유신정치가 현실적으로 유효하고 경험적으로 타당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군사혁명은 기존의 전통사회에 대한 변혁적 기능이 있기 때문에 진보적 성격을 띤다"는 남재희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뒤 남재희를 두고 ‘체제내 개혁파의 기수’라고 평했다.

남재희는 3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67-68년 하버드대 니만 언론연구원을 수학했다. 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시작해, 62-72년 조선일보 기자, 문화부장,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을, 72-78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이사, 주필을, 74년 관훈클럽 총무를 역임했다. 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로 들어가 13대까지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93-94년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지배해온 지식인 100여 명의 생각이 담긴 <낡은책> 1천여 권을 통해 그들의 낡은 생각을 확인하고 내일의 한국을 열어갈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이 나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서구 지식인들의 생각도 추렴해본다.

1장 정치발전을 생각한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
- <세대> 77년 1월호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방식은 가급적 모든 기존 정치조직과 세력들을 포괄하는 국민적 합의로 변혁을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농업이 먼저냐 공업이 먼저냐는 논란에서도 공업 발전으로 축적된 힘을 돌려 추진해온 농촌 새마을운동은 마땅히 진보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진보적 정책은 요즘 와서 저임금 일소의 강조와 모든 국민에게 의료 혜택의 균점, 복지국가를 향한 포석은 어지간히 되는 셈이다.


박정희가 모든 정치조직과 세력들을 포괄하는 국민적 합의로 변혁을 추진했다는 남재희는 지금도 여전히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남재희는 박정희를 '진보'라고 평가했다.

참여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 <세대> 77년 7월호

요즘 자주 쓰는 단어가 ‘참여’와 ‘분배’다. 성장과정에서 자동으로 분배 문제의 점진적 해결이 수반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설정 노력이 있음으로써 성장 후 분배문제 취급이 가져오는 새로운 개혁작업의 번거로운 노력과 사회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유신은 민주주의의 한국적 변형이다. 참여 문제도 한국적 변형을 생각할 수 있다. 참여문제는 밑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해결되어 온 것이 정치사가 보여준 예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칫 혼란과 차질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전 박정희 대통령이 이철승 신민당수를 면담(77년 6월27일)한 뒤 상호 노력할 것을 합의했다. 이것은 참여의 한국적 방식이다.

지금의 새마을운동에서도 참여의 한국적 방식을 찾을 수 있다. 근면 자조 협동의 ‘협동’이 바로 참여다. '공장 새마을운동'은 한국적 노사 관계형성을 위한 운동이다.


아무리 양보해,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평가하더라도, 국민 '참여' 문제를 상층 권력간 야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점은 정치평론가의 안목을 의심케 한다. 박정희-이철승 면담의 결과는 역사적으로 어떤 정치적 함의도 결과물도 내놓지 못했다.

정치발전을 생각한다 - <정경연구> 77년 9월호

K 선생님. 그동안 병환은 쾌차해지셨는지요. 지난번 일본을 방문했을때 뵈었지요. K 선생님은 박 대통령의 영도력을 우리나라가 가진 귀중한 자산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영도력을 가진 분을 만나기가, 또 그와 같은 영도력을 구축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그러므로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게 뭉쳐 우리의역사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금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은 참다운 민주를 위해 사회적 경제적 기초를 다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견해에 저도 원칙적으로 공감합니다. 요즘 각광 받고 있는 이철승 신민당수의 중도통합론은 점진주의적 정치 발전론입니다.


여기서 K는 해방전 여운형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58년 진보당 사건때 일본으로 망명해 통일일보를 만들어 통일운동을 벌였던 이영근이다. 이영근은 지난 2003년 일본서 숨졌다. 사람들은 이영근을 60년대 후반부터 박정희 정권의 통일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조종을 받는 조총련과도 맞서 구체적인 통일운동을 펴나갔던 통일운동가로 그린다.

2장 어느 재일 우국인사와의 대화

10월 유신을 생각한다.
- <국제문제> 73년 2월호

10월 유신의 제도적 측면을 정리하면 1)평화적 통일을 국시로 명시하고 통일문제의 결정권을 정당정치에서 때어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맡긴다. 2)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 대통령의 선출방법을 달리하여 대통령직에 안정을 준다. 3)정당이나 국회의 영향력이나 권한을 감축하는 게 골자다.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 남북간에 긴장완화와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어와 냉전구조가 화해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어 흐뭇한 일이다. 통일문제의 결정권을 정당정치에서 떼어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맡긴 10월 유신의 제도적 개혁은 현명했다.

국민총화의 길 - 1977년 12월14일 충청일보 주최 <유신이념과 국가안보> 토론회 발표문

유신체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볼때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체제라고 생각한다. 사회 제세력에게 자유경쟁을 시키면 약육강식이나 부익부 빈익빈 밖에 결과될 것이 없다. 권력이 위로부터 배분적 정의를 실현해 주도록 된 유신체제가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해서는 더 효과적이다. 권력의 강력한 통제가 있어야만 한다.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 세력들이 우글거리는 국내 형편에서 규율을 갖추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미리 알아차려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총화가 이뤄질 수 있다.


통일논의를 전 국민으로 확장하지 않고, 유신정권의 거수기였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넘긴 걸 개혁이라고 말하고, 또 현명했다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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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유신 , 남재희 , 칼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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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사랑운동공동체

    정확하게 일본강점기의 시스템의 재팬의 재판이였다
    박정희의 근대화는 토지개혁이 단초이며 싱가폴르.홍콩, 대만은 지대의 사회적 공유를 통한 선진화에 주체적인 역량으로도달했으나 미일에 종속되었고 세계화의 짐승화된 시스템을 지향하여 기계화 되었으며 패쇄화 되었다
    이젠 토지지대공유(국토보유세,토지공공임대) 노동임금사유,자본이자사유의 경제3권론인 다이나밐 코리아 체제의 도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