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가 만나면...

국회 공청회, 이의영 교수 “재벌 문어발 확장 가속기”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어 운용되지 않았던 시기인 1998년부터 2002년 재운용되기 전까지를 비교해 보면 30대 재벌 출자총액은 1997년 16.8조원에서 2001년 50.8조원으로 4년간 200%이상 3배나 증가했다. 이 기간은 IMF 구제 금융을 가져온 경제위기로 온 나라가 큰 혼란을 겪고 있었으며 재벌기업들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재벌체제를 유지하고 계열기업을 지배하기 위한 계열사 출자는 200%나 증가시켰던 것이다”

이의영 군산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0일 재벌의 기업소유를 강화시킬 법안으로 쟁점이 되어 왔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개정안’ 중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놓고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를 폐지했을 때 몰려올 위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다.

재벌들 쌓인 돈 “일자리 창출보다는 알짜 공기업과 은행으로”

재계와 정부여당은 출자총액제한제가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해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가 유지되고 있는 현재도 기업들의 현금성자산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의영 교수에 따르면 10대 그룹의 현금성자산은 지난 해 말보다 13.85% 증가한 38조 1834억 원에 달하며 유보율의 경우 작년 말 762.01%에서 10.56% 늘어난 772.58%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의영 교수는 “출총제 때문에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정부와 재계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출총제가 폐지될 경우 향후 대기업 집단들의 출자 여력은 실물투자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신규 순 투자보다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과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은행 등 금융기관과 실속 있는 공기업 인수에 나설 자금으로 활용되어 문어발식 확장을 더욱 가속화 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지금 경제위기에 필요한 것은 1997년 이전 수준으로 재벌을 규제하는 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영 교수는 “(출총제는) 단지 재벌체제를 유지 내지 강화하기 위해 가공자본을 이용한 지배목적의 계열사 출자를 제한하고자 운용되는 제도일 뿐”이라고 적시하고 “가공자본에 의한 일인 지배하의 선단식 경영체제가 개혁되어 기업지배구조가 건실해지고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된 이후에나 출총제의 완화 또는 폐지가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총제 폐지는 더 큰 삼성 만들기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도 “재벌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평균 투자율을 더 높이거나 또는 재벌로의 투자집중도를 심화시키는 정책보다는 현재 30% 수준의 국민투자율 하에서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투자의 구성과 내용을 개선하는 정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김상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범삼성그룹은 2007년에 총 14.9조원을 투자해 삼성, 현대, LG, SK등 범 8대 재벌 전체 투자의 41.2%, 국민경제 전체 투자의 15.5%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세계 등의 친족그룹을 제외한 삼성그룹 단독으로도 국민경제 전체 투자의 13.6%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복과잉투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외환위기 이전의 수준에 접근한 것이다.

김상조 교수는 “한국의 투자 문제의 핵심은 평균 투자율의 하락이라기보다는 기업규모별, 업종별 투자율의 양극화에 있으며, ‘재벌의 선도적 투자 확대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그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으로까지 확산되도록 한다’는 전략은 지금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는 대기업은 4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4월에 밝힌 ‘2008년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의 출자총액 및 출자영역’에서 출자총액제한기업 집단 10개 소속 31개 기업 중 추가 출자가 불가능한 회사는 금호석유화학, 금호타이어, 한진에너지, 에스티엑스조선 등 4개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작년 4월 기준으로 더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이 17조를 넘기고 있고, 현대차는 5조원이 넘어 출총제가 대기업의 투자를 막는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정희 의원은 “대기업들의 투자가 부족한 면이 있다면 이는 대기업들의 의지가 없는 것이지 출총제 때문이 아님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날 공청회에 진술인로 참여한 신광식 김&장법률사무소 고문은 “출자총액제한은 기업집단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핵심 규제로서 그 철폐는 정부에 의한 기업집단 규율 기능을 축소시킬 것인바 출자규제를 폐지한다면 정부에 의한 규율이 이해 관계자들에 의한 규율로 대체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 보완을 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날 공청회 진술인으로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신광식 김&장법률사무소 고문,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의영 군산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