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조각난 틈새

[배고프다! 영화] 레오 까락스 감독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984>


<<글쓴이 고프 (Ghope)는 2006년 경향신문,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했다. 최근 2년간 관악 공동체 라디오에 영화평을 연재했다. 앞으로 본지를 통해 영화에 대한 글을 써 나갈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사랑은 본질적으로 위태롭다. 그것은 하나의 찻잔에 새겨진 갈라진 금과 같다. 찻잔은 이 금을 통해 이제 막 깨지려 하는 것인가, 혹은 이 금에 의해 깨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붙어 있는 것인가? 이 갈라진 자국은 찻잔이라는 형상이 유지될 수 있는 통합의 마지막 증거이면서 동시에 찻잔이라는 형상이 두 동강 날 수 있는 분열의 징후이다. 그러므로 이 금은 과거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미래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눈앞에 과거나 미래가 나타나지 않기에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는 현재로 받아들인다. 찻잔은 갈라진 자국을 내포한 채 지속된다. 함에도 사랑은 달콤하다. 사랑의 찻잔이 조각난 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우유가 변질되진 않는다. 조각난 틈새로 마시는 우유도, 제법 맛이 좋다. 연인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하나의 찻잔을 서로의 마음속에 버리지 않고 간직한다. 레오 까락스 감독은 1984년에 흑백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그 어떤 영화보다 본질적이다.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성서에 따르면 인류가 인류로서 겪게 된 최초의 사건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사랑은 지속이며 동시에 도달 불가능성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사랑은 비교가 필요하다.




아주 오랜 옛날, 구름이 불을 뿜고 / 하늘 넘어 높이 솟은 산- 오랜 옛날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를 가진 사람 / 하나로 된 머리 안에 두 개의 얼굴 가진 사람
한 번에 세상 보고 한 번에 읽고 말하고 / 한없이 큰 이 세상 굴러다니며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사랑 그 이전

그 옛날 세 종류 사람 중 등이 붙어 하나된 그 소년 / 그래서 해님의 아이
같은 듯 다른 모습 중 돌돌말려 하나된 두 소녀 / 그들은 땅님의 아이
마지막 달님의 아이들 / 소년과 소녀 하나된 / 그들은 해님 달님 땅님의 아이

이제 불안해진 신들은 / 아이들의 저항이 두려워 말하길
"너희들을 망치로 쳐 죽이리라 / 거인족처럼"
그 때 제우스는
"됐어, 내게 맡겨 그들을 번개가위로 자르리라 / 저항하다 다리 잘린 고래들처럼"
그리곤 벼락 꽉 잡고 크게 웃어대며 말하길
"너희 모두 반쪽으로 갈려 못 만나리 영원토록"

검은 먹-구름 몰려들어 거대한 불-꽃 되고 / 타오른 불꽃 벼락되어 내리치며
번뜩이는 칼날되어 / 함께 붙은 몸 가운데를 잘라내 버렸지

해님 달님 땅님 아이들 / 어떤 인디안 신 / 토막난 몸을 꿰메고 매듭을 배꼽 만들어
우리 죄 다시 생각-케 해

(중략)

나는 기억해 두 개로 갈라진 후 /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봤어 널
알 것 같은 그 모습 왜 기억할 수 없을까 / 피묻은 얼굴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율까
하지만 난 다 알아 네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그건 고통
심장이 저려오는 애절한 고통

그건 사랑

그래 우린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서롤 사랑해



영화 <헤드윅>에 나오는 The Origin of Love의 가사이다. 이 노래는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신화이기도 하다. 사랑은 본래 하나였던 둘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본질로의 회귀이며 통일성의 회복이다. 너를 보고 발생하는 고통과 슬픔은 나의 한 몸이 나의 다른 한 몸을 그리워하는 앓음이다. 그러나 ‘기억’은 불가능하다. 자기에 대해 기억할 수 없을 때, 기억이 정지된 순간에서 기억을 뛰어넘는 고통과 슬픔이 전면화 된다. 사랑은 고통에 의해 증명된다. 그러함에도 사랑해야 한다. 최초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사랑한다. 신의 질투로 사라져버린 기억을 되찾고 나의 본래를 복원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한다. 사랑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랑보다 완벽했던, 아무것도 몰랐으나 그 자체로 완전성이었던 존재로 되돌아가기 위해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신화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랑을 통해 완전성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잃어버린 기억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신의 저주를 극복하고, 신에 의해 토막난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고 사랑한다.


<헤드윅>의 노래가 사랑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면,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사랑은 이별의 진행을 다룬다. 친구에 의해 연인을 빼앗긴 알렉스가 이별의 징후를 느끼며 불안해하는 미레이유를 만나 자신의 이별을 정착시킨다. 이를 통해 살인미수로 시작했던 한 밤이 살인으로 마무리된다. 알렉스의 방황은 이별의 완성이며 그것은 곧 살인이다. 잘못된 공식. 사랑은 대상이 필요하고 이별은 대상의 부재를 필요로 한다. 플로랑스의 대체물로 등장하는 미레이유의 죽음을 통해 이별의 의식은 끝난다. 그러나 사랑의 반대말은 이별이 아니다. 이별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사랑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알렉스는 여전히 사랑의 반대말을 찾지 못했다. 사랑의 반대말을 찾지 못한 알렉스는 결국 실신에 이르고 만다. 그는 그가 찾아낸 스카프가 플로랑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그는 그가 믿었던 사랑이 배반당한 여인의 흔적이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사랑을 빼앗긴 알렉스는 없는 존재가 된다. 그의 존재는 오직 사랑을 하고 있던 과거 속에 머무르고 그의 현재가 운반하는 것은 알렉스가 아니라 사랑의 빈 공간만을 지닌 알렉스의 질료이다. 공중전화에 메모로 휘갈겨지던 알렉스의 질료가 다시 알렉스가 되는 것은 복화술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는 복화술을 통해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대상을 얻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언어가 아닌 타인의 언어로 시작하는 사랑은 신화적 의미의 사랑이 될 수 없다. 사랑의 대체, 혹은 대체하는 사랑, 그것은 사랑의 복화술에 머무르고 만다. 한 밤의 파티에서 쏟아내는 사변의 덩어리들, 자동기술된 고백은 알렉스의 기억이 정지된 사이 그의 육체적 고통이 쏟아낸 신음이며 무의식이다.


알렉스에게 사랑은 하나의 찻잔을 찻잔이게 하는 갈라짐이다. 그의 찻잔은 찬장 속에 고립되어 있으며 그것의 다른 이름은 추억이다. 그가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는 파티에서 그의 이름은 여주인에 의해 분열된다. 알렉스, 앨리스, 알렉산드로... 파티의 주재자도 자신의 파티를 주재하지 못한다. 주재자의 상실, 누구도 온전히 복원할 수 없는 기억, 깨진 기억의 파편들만을 지닌 존재들이 목적도 방향도 없이 흩날리며 충돌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사랑의 반대말을 찾지 못했던 알렉스는 결국 자기 해체에 이르고 마는데, 이것은 어쩌면 사랑의 진정한 이름일 수 있다. 고독한 자기 분열이야 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함께 시작했으나 다른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 원래 둘이었던 하나가 다시 둘이 되는 과정. 우리는 그 틈새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달콤한 맛에 취해 원래 하나였던 순간을 음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지 갈라짐의 지속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언제부터 하나였는지 언제부터 둘이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균열의 틈새. 세상의 모든 그와 그녀가 만나 사변하고 부대끼고 결국 고독한 분열에 이르고 마는, 벽면을 가득 채운 투명한 창에서 오히려 느끼는 고립. 볼 수만 있을 뿐 만질 수는 없는 욕망의 역설. 그녀가 탄 기차와 내가 놓친 기차 사이의 시간들. 그렇다면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헤드윅>의 노래가 꿈꾸는 통합,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도달한 분열은 사랑의 양 속성을 보여준다. 통합은 꿈이며 분열은 도달하지 못하는 자기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와 너의 시간들.

내가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마셨던 우유가, 내가 남긴 메모가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마시던 약이 내가 부서져라 내리치던 주먹이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의 무의식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져 나오던 방향 없고 좌표 없는 말들이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녀의 담배 연기가, 그녀의 화장과 그녀의 손목을 겨누던 가위가 그녀의 일부가 아니라고, 신체 혹은 정신의 연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녀가 두른 다른 여인의 스카프가 그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터폰을 통해 흐느끼던 목소리가 그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세상의 알렉스들과 미레이유들이 모두 그들이고 그녀들이길.

by(e) G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