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매일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현실이라는 마음의 병 (2)

벌써 두 시가 다 됐는데 식은 시작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발 아래만 멀뚱히 내려다보며 걷는데 눈앞에 웬 네모난 것이 쑥 들어왔다. 지하철 선릉 역 출구를 막 나서는 중이었다. 네모의 한 귀퉁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샅에 끼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흰 등산 모자 밖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잔뜩 비어져 나온 할머니 한 분이 옆구리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낀 채 한 손으로는 울긋불긋한 전단지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할머니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리기도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켰다. 이 할머니는 전단지 한 장에 얼마씩 받으실까? 그 돈으로 누구를 먹여 살리실까? 내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드실까? 어차피 전단지가 자기 손을 떠나는 족족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엉겁결에 한 장을 받아 쥐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니 내 뒷사람들은 할머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재우쳐 갔고, 할머니께서는 들이민 손을 그때마다 군인 같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윗몸을 벌겋게 드러낸 남자가 갑각류의 우둘투둘한 외골격 같이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질을 과시하며, 무겁게 보이는 역기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여는 헬스 클럽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신다는 내용이 미끈한 글씨체로 전단지 구석구석에 쓰여 있었다. 성형외과와 헬스 클럽이 유난히 득시글거리는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 몸 가꿈과 이젠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누구나 자기 돈 들여 자기 몸 가꿀 수 있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은 두 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뛰어간다 해도 빠듯했다. 더구나 식장은 4층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구겨 외투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찾았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신부 쪽 친구들이거나 후배 놈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이겠거니 싶었다. 승강기가 4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여자 둘은 서로 아는 사인지 모르는 사인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둘은 확고한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내 앞에 훤히 펼쳐진 떠들썩한 분위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찾기 위해 시골뜨기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축의금을 넣는 하얀 상자가 보였고 신랑 쪽 사람과 신부 쪽 사람이 제각기 책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후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식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식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장 밖에서 끼리끼리 뭉쳐 재깔거리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식장 안을 넘겨다보았다. 후배 놈은 신부와 팔짱을 낀 채 주례 선생님 앞에 서 있느라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례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식장 안 이곳 저곳에 매달려 있는 화면으로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비쳤다. 녀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담뿍 먹은 신부의 얼굴은 후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TV와 길거리에서 낯을 익힌 화장기 진한 여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화장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입고 있는 턱시도며 신부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혼례복이며 전부 다 진부하게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누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아는 얼굴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자 후배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늘 소문으로만 접하는 얼굴들과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해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얼떨결에 튀어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후배들은 나를 지나쳐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축의금 받는 곳을 바라보니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다 후배들이었다. 흰 봉투를 품 속에서 꺼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 후배들의 손은 하나같이 고와 보였다.

차비 대는 것도 빠듯한 내 형편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이랍시고 봉투에 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전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삼아 사람들과 늦은 저녁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후배 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후배였다. 손전화에 찍혀 나온 이름 석 자를 보며 후배 녀석과 함께 망나니짓하며 놀았던 대학 시절을 샘물 움키듯 떠올려 보았다. 전화를 받자 녀석은 다짜고짜 다음 주 일요일에 강남에서 결혼한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형, 미안해요. 내가 먼저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잘 살라는 말은 안 한다. 잘 살라고 하는 놈들 다 그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거 너도 알지? 광현이 네가 잘 살든 말든 하나도 상관 안 할 놈들이 꼭 입으로는 언죽번죽 잘 살라고 쉽게 말하잖아. 난 그런 말 못한다. 잘 살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저 네 선택을 존중할 뿐이야. 누가 알겠어? 얼마 못 가서 너 갈라설지도 모르잖아.”

“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광현이는 웃으며 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청첩장을 보내 줄 모양이었다. 일요일 오후 두 시. 글쓰기 모임 일정 때문에 못 갈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결혼식 날에 보자고 광현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게 간 군대를 마치고 나와 보니 후배 녀석들은 죄다 자기 갈 길 가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었고, 한번 만나자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닌 나는 하나 둘 후배들과 멀어져 갔다. 군복을 입고 정기 휴가를 나왔을 때도 누구에게든 먼저 전화를 걸어 제발 좀 만나달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선배와 동기들은 먹고사느라 바쁠 테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만만한 게 후배들이었지만 후배들 역시 뭔지 모를 이유들로 하루하루가 빡빡할 것이어서 아마 나는 구차하게시리 시간 좀 거저 달라고 매달리는 거지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입대 전까지 살붙이처럼 가까이 지낸 광현이에게도 휴가 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광현이와는 두 학번 차이가 났지만 내가 2월 생이라 일 년 빨리 입학했고 광현이는 재수생이라 일 년 늦게 입학한 탓에 나이가 같아 술자리에서는 늘 나이 얘기가 우스개 삼아 안줏거리로 올라왔다. 비록 도중에 집어치우긴 했지만 녀석과는 <자본>을 함께 읽은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별의별 못난 꼴들을 속속들이 보여주느라 숫제 할말 못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녀석은 나보다 군대를 일찍 다녀왔지만 군생활 중에 휴가 나왔다는 연락 한 번 없이 고향인 청주에서 휴가를 다 보내고 슬그머니 복귀해 버리고는 했다. 다른 후배들은 녀석과 나를 하나로 묶어 ‘암울 형제’라고 불렀다. 술만 퍼마시면 어두운 표정으로 김광석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작 수컷처럼 자기 매무새를 멋지게 꾸밀 줄 알아야 정신 똑바로 박힌 대학생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딱 한번 광현이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리던 때였다. 차마 통화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하기엔 낯뜨거웠는지 나는 몇몇 이들에게 손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광현이였다. 광현이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임용고사에 연거푸 떨어지고 난 뒤 서울대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기간제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돈 얘기가 사달이었는지 그 뒤로도 광현이에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러구러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느닷없이 연락하고선 결혼을 한다니. 분명 당사자에게 들었는데도 꼭 거짓말 같았다.

집에 들어 와서도 나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녀석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헤집어 보며 옛 생각에 젖었다. 녀석과 자취방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술 퍼먹으며 누구를 향해 어떤 불만을 쏟아 냈는지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인데 축의금을 못 줄 망정 뭐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다가 책이나 한 권 안겨 주기로 했다. 편지도 한 통 쓰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만 같구나. 변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홀몸이던 네가 결혼을 하고, 일자리 없이 헤매던 승기가 기간제 자리를 구하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오래 갈 것 같던 연인들이 어느새 각자의 길을 가고....... 하지만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차피 사람의 기준이겠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라면, 새로 만나든 새로 헤어지든 막상 변했다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저 일상이고 시간일 테니. 결혼이 일주일 남았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겠구나.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너한테 가끔씩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하면 너는 여자 친구 생겼다는 거짓부렁을 항상 지어내고는 했었지. 김광석 노래는 좀 부르니? 옛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했구나. 다른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떠올리면 이제 더 이상 팔 벌려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드는데,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결혼 축하한다는 진부한 말보다는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잘 살라는 말보다는 앞으로도 한결같이 너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공책에 괴발개발 쓰던 편지를 좍 찢어 구겨 버렸다.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책은 나중에 결혼식 끝나고 광현이 녀석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따로 한번 만나서 건네주기로 했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주례사는 금방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염없이 지루한 웅얼거림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식장 밖을 어슬렁거리며 낯익은 얼굴들과 시간을 때웠다.

“어, 형!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하세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낯익은 얼굴들이 거듭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흔들었지만 대화는 이처럼 되풀이되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 모임을 꾸려 가던 녀석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녀석도, 소주 한 병을 누가 빨리 비워 내나 같이 내기하던 녀석도, 한 여자 후배를 두고 다투어야 했던 녀석도, 반년 정도 속으로만 좋아하고 고백 한번 못해 본 새침한 녀석도, 그 어떤 후배 녀석도 전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마 편한 내 동기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좀 이상했다. 광현이와 꽤나 허물없이 지낸 동기 녀석들이 식에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식은 안 보고 벌써부터 피로연 장에서 처먹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식권을 받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축의금 없이 식권을 받으려면 배짱이 필요하다. 나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축의금 상자가 놓인 책상에 다가가 식권 두 장만 달라고 했다.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식권을 주고 들어가는 피로연 장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혹시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일부러 두 장을 달라 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식권 두 장을 주었다.

주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들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모님들은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삼십 년 가까이 키운 자식이 마침내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게 되는 순간을 부모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슴앓이 탓에 잠을 못 이루시던 어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서랍장 하나를 손가방으로 두들겨 부수려 하셨다.

나이 스물 아홉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글 쓰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서서히 지쳐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보험 회사 상담원처럼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 계획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들려드릴 수가 없었다. 딱히 문예지에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쓸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시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길만큼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시험을 쳐서 지긋지긋한 공무원이 되는 길을 가느니 차라리 개똥이 널린 길을 낮은 포복으로 기는 게 나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교육학 교재들을 몽땅 외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임용고사부터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이 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집안 한구석에 음흉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생활비를 옛 소련에서 식량 배급하는 만큼이나 어렵사리 대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몇 달마다 한번씩 생활비를 얼마간 가져오셨고 나는 조그만 보습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버는 푼돈을 쪼개 달마다 생활비랍시고 보탰다. 우리집에선 노량진에 있는 한 입시 학원에서 수업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 동생이 가장 많이 벌었다. 온 가족 의료보험비는 일 년이 넘도록 밀려 있었고 다른 공과금들도 몇 달에 한 번씩 전기나 수도가 끊기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겨우 냈다. 구질구질하다면 구질구질한 살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살림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모아둔 돈도 없었고, 어느 눈매 고운 여자 만나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숫제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내 형편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천하태평인가 싶었다. 물론 어머니는 나와 달랐다.

현실이라는 것은 어느새 어머니 마음에 들어앉은 무거운 병이 되어 암세포처럼 어머니의 몸뚱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에 가기를 바라셨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 교수 자리를 꿰찼으면 하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회 현장이나 노조 천막을 돌아다니며 글 쓰는 짓거리를 그만 두고 어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 결혼도 해서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돈 안 되는 글쓰기 같은 건 집어 치우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보겠다고 헌걸차게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 쓰는 일로 벌어 먹고 살겠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무언가 일거리를 하나 잡고 생활비를 벌면서 글을 써야 하긴 할 텐데, 어머니는 최소한 학교 선생님 이상 가는 자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내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가장 많이 밥줄로 삼고 있는 직업을 고작 불합리한 공교육 제도의 노예 신세일 뿐이라 우습게 보게 되었다.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서른을 코앞에 두게 되자 어머니의 한숨에는 더 축축한 습기가 맺혀 나왔다. 에휴 어이고 하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 줄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조금씩 어머니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예전처럼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듣지 못했다. 구정 연휴 동안 큰집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사촌 동생, 고등학교에서 얌전히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고 가슴에 뭐라도 얹히셨는지 명절이 끝나고 나서부터 내내 한숨 바람이셨다.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서 서점이나 시립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밤늦게야 슬그머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있으면 거실 마루에 누워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잠을 못 이루시더니 느닷없이 이불을 차 버리고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을 들어 마루에 있는 서랍장에 마구 두들겨 대셨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뛰어 나가 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를 말리고 계셨다. 동생은 친구들과 먼 곳으로 놀러 가 집에 없었다. 내 한 팔로도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집으로 손가방을 서랍장 모서리에 쾅쾅 마구 짓찧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아 끌자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아 끄윽 끅 울음을 쏟아내셨다. 방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연신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는 쇳소리 섞인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끊은 지 한 달째가 되어 가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정말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좀 벌어서 어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모르긴 해도 광현이와 신부 부모님들은 아마 행복할 것 같았다. 아들이며 딸이며 전부 학교 선생님으로 남 부러울 데 없이 키워 놓았고, 이젠 혼례까지 치렀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젠 손자를 바라게 될까? 광현이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할까? 차 사고, 집 사고, 우유 값 벌고, 좋은 선생님에 착한 남편 노릇하며 수더분하게 늙어가게 될까? 정말 그렇다면 광현이도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었다.

신랑 신부 행진을 하기에 앞서 광현이의 동기이자 내 후배이기도 한 사회자가 신랑에게 짓궂은 장난질을 시켰다. 광현이는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린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식장 안은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거푸 팔굽혀펴기를 하고 “심봤다”를 몇 번이나 외친 끝에 광현이는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나도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광현이 눈에 잘 뜨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광현이가 깜짝 놀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괜히 열없어져서 “너 머리가 그게 뭐냐? 양아치야?”라고 해 버렸다.

행진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 신부의 친척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갔다.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먹고 나온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사진은 됐으니 바로 피로연 장으로 들어가 배나 채울까 궁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승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뭐야. 지금 오는 거야?”

“아니, 안에서 먹고 지금 나오는 거다.”

“우리 동기들은 안 왔어? 안에서 처먹고 있는 거 아냐?”

“없어. 안 왔다.”


나이 서른에 이마가 훤히 벗겨진 승기의 뒤로 후배들 한 떼거리가 걸어 나왔다. 다들 먼저 피로연 장에서 배를 채우고 사진 찍을 때쯤 해서 나온 모양이었다.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까지 찍고 밥 먹기로 하고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후배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새 뭐 해요? 돈 되는 일 빼고 다 한다. 그럼 연애도 하겠네요? 연애가 돈 안 되는 일이었나? 그럼요, 연애하면 돈이 얼마나 나가는데. 야, 그러려면 우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신랑 신부의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몰려 나온 빈 공간을 젊은이들이 거침없는 걸음새로 채우기 시작했다. 다들 예쁘고 새뜻하게 보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결혼식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으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말끔한 정장 몇 벌쯤은 옷장 속에 쟁여져 있는, 굳은살 없는 손과 그을림 없는 얼굴을 가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들이 신랑과 신부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장을 몹시 싫어하는 나는 눈앞에 활짝 펼쳐진 정장들의 물결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젊은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어디론가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식장 바깥으로 나가며 승기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간제 구했다며?”

“그렇게 됐다.”

“야, 나도 어디 기간제 하나 구할 수 없냐? 돈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아야지 숨막혀 죽겠어.”

“집에 엄마랑 둘이 있으면 분위기가 폭발할 것 같지? 나도 알지 그 기분.”


내가 출근하는 학원은 승기가 꽤 오랫동안 맡아 하던 걸 내게 슬쩍 이어준 곳이었고, 승기는 그 뒤로 다른 학원들을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결국 임용고사 공부를 시작하며 강사 일을 정리해 버렸다. 어디서 공부를 하는지 승기는 그 뒤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임용고사가 있던 날 저녁에 승기는 내게 전화를 걸어 시험을 망쳤으니 일단은 기간제나 알아봐야겠다며 쓰게 웃었고, 그게 지난 세밑이었는데,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결국 기간제 선생님 자리를 하나 구한 모양이었다.

“원래 학기 중에는 잘 안 구해지지 않아? 방학이나 돼야 자리가 날 텐데.”

“학교마다 다르지. 여자 선생님 출산 휴가 때문에 기간제 쓰는 학교도 있고. 지난 한 달 동안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백 통도 넘게 출력했어. 원서를 좆 빠지게 내밀고 다녀도 잘 안 구해지더라. 요새 사립 학교들이 눈이 너무 높아져서 토익 점수니 학점이니 뭐니 장난 아니게 따지거든.”

“너는 어떻게 구했는데?”

“쑤시고 다니다 보니 운 좋게 된 거지 뭐.”

“자기가 원서 들고 학교마다 찾아 댕겨야 하는 거야? 원서는 어떻게 넣어?”

“경기도 교육청이랑 서울, 인천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구인구직란이 있어. 거기 보면 어디 어디 학교에서 기간제 구한다는 공고가 뜨거든. 그거 보고 내는 거야.”

“그래......”


막상 기간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했다. 기간제 자리를 덜컥 구해서 아침마다 출근하게 된다고 해도 꽉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을지, 어딘가를 취재해서 글을 쓸 수는 있을지, 책 읽을 시간은 날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필요한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 전부라 생각하며 부여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버려야 할 것이다. 피로연 장에 있을 술 생각이 났다.

“너 밥 먹었다구 그랬지? 집에 갈 거냐?”

“글쎄. 밖에 나가서 한 잔 할래?”

“나 밥도 안 먹었어. 그러지 말고 너도 들어와서 2차로 밥 먹어라. 응? 안에 공짜 술도 있구.”

“밥이 술이냐? 무슨 2차야? 나 식권도 없어.”

“걱정 마라. 나한테 두 장 있다.”


우격다짐으로 승기를 끌고 피로연 장으로 들어 갔다. 느끼한 음식 냄새가 금세 콧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는 과일을 몇 개 집은 승기와 함께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한산한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이컵에 맥주를 붓고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에 쓴 물이 가득 괴어 올랐다.

“아우, 써.”

“웬일이냐? 결혼식에 와서 네가 소주를 안 처먹고?”

“나 지난 연말에 술 때문에 쓰러졌잖냐. 1월 중순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았어. 오늘이 2월 8일이니까 술 안 마신지 한 달 조금 넘었네.”

“너 술 마신 게 하루 이틀이냐? 얼마나 마셔댔길래 그래?”

“글쎄. 한 반년 넘게 물처럼 마셨나? 작년 봄에 촛불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 이런저런 현장에 돌아다닌답시고 술만 처먹고 다녔지 뭐. 노조 천막에서 조합원들이랑 술 마시면 나 땜에 밤 새느라 다음날 노조 회의 하나가 작살이 났으니까.”

“오늘은 마셔도 되는 거야?”

“맥주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근데 오랜만에 마시니 술 맛을 모르겠다.”


승기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 술을 마셨다. 수배를 피해 학교 학생회실에서 먹고 자던 추레한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수배가 풀린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때운 승기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다시 학교로 복학해서, 승기가 한창 때 대학 안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는 어린 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학내 조직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고, 나도 얼굴을 어릿어릿하게 기억할 뿐인 후배들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쉽사리 마음이 꺾였다. 팔십 년대 투사들이 구십 년대에 들어 방황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이른바 ‘후일담’ 소설들을 한때 염소가 종이 먹듯 마구 읽어 치운 적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 것들을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보며 조금씩 되짚어 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한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이던 녀석과 으리으리한 피로연 장에서 고깃점을 잔뜩 쌓아 놓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나는 이미 소설 속에서 숱하게 읽었다. 술에 얼근하도록 취하면 피로연 장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후배들 멱살을 잡아야 하는지, 어디에 털썩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쳐다보아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나는 죄다 알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서 몇 번 나가 보았던 동기들 모임에서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혼과 집장만과 자가용과 대학원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동기들 틈에 끼어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어휘들을 속으로 주물럭거리며 줄담배를 피워 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 싫었다기보다는 내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들 자체가 너무나 진부하다는 것이 못 견디도록 싫었고, 이미 팔십 년대 작가들이 오래 전에 소설로 썼던 이야기들을 이제 와서 내가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사실 또한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돈 벌고 애인 만들며 안락한 삶을 향해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 또한 점점 진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어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도 아니고 후일담이든 뭐든 소설에 쓰여진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었지만, 나 자신을 보고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거기서 거기인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아직 삼십 년도 채 살지 않은 녀석이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다른 어떤 생각 못지않게 진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러다간 진부함이라는 터널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귤을 우물거리고 있는 승기의 하얀 양복 와이셔츠 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훤히 벗겨진 이마에는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머무르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고깃점들을 아구아구 입속에 처넣었다.

“요새 뭐 하냐?”

승기가 짐짓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오늘 하루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돈 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내 대답에 그처럼 되물어 준 사람은 승기가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말을 잇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물거렸다.

“글은 계속 쓰고 있냐? 글쓰기 모임 한다면서 거기엔 아직도 나가?”

승기한테는 굳이 숨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 시간도 때울 겸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 보기로 했다.

“글이라. 글쎄. 모르겠다. 써도 써도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나 하는 생각밖엔 안 들어. 별로 많이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야. 모임에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구. 글을 쓰면 뭐 하냐. 읽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한 편 쓰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아니, 돈을 바라고 써야 하는 거 맞지. 내게도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근데 돈 나오는 글을 쓰려면 등단을 하든 뭘 하든 해서 글에 돈을 쳐주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생각은 있긴 있는데 들어갈 능력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능력은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정말 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다른 밥벌이를 해야 하나.....”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애들 알아?”

“알지. ‘싸구려 커피’ 부른 인디 밴드 말하는 거지? TV에도 가끔 나오는 걸 보니 인디 밴드 치고는 꽤 알려진 모양이던데.”

“장기하가 인터뷰하는 걸 보면서 너 생각을 했거든.”

“뭐라고 그랬길래?”

“기자가 좀 짓궂게 장기하한테 인디 음악 하면서 배고플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어. 장기하는 배가 고파도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지 웬만하면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 ‘웬만하면’이라는 말이 걸리더라고.”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말이네. 견딜 만하니까 그러지.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아직까지는 ‘웬만하면’이야. 나 참. 아직은 누워 잘 곳은 있고, 밥은 안 굶고 다니니......”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고민 많고 글재주 있는 놈들 여럿 있었잖아? 학교 선생님으로 나갈 생각 전혀 안 하던 녀석들 지금은 전부 다 학교나 학원에 가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사범대 나왔겠다 학력 되겠다 한 자리씩 잡으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살면서 보험 하나씩 들어두는 건 필요하긴 한가봐.”

“어떤 놈들은 돈 많은 여자 친구를 보험으로 삼고 사귀기도 하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세컨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수연이는 잘 있냐?”

“잘 있기야 하지. 돈 버느라 바빠.”

“너희도 젊은 연인들 치고는 오래 가는 거야. 요새 누가 오래 연애하냐? 제깍 결혼하든가, 아니면 가망 없는 사람 등지고 딴 사람 찾든가 하지. 얼굴은 자주 봐?”

“못 봐. 가끔씩 만나도 회사원과 백수라는 신분이 정말 다르긴 다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 걔야 지금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지. 경력도 좀 되고. 나야 작년 내내 임용고사 준비만 했지 돈을 벌었냐 일을 했냐. 학원 하면서 벌어놓은 것도 거의 다 헐어 쓰고 보니 수연이한테 기념일마다 선물 챙겨 주는 것도, 날씨 좋은 날에 같이 놀러 다니는 것도,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 내 담뱃값 대는 것도 힘드니 말 다 했지. 학교 다닐 때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서 떡볶이 같은 것도 같이 맛나게 잘 먹었는데, 이제는 그런 데는 구질구질해서 싫대. 길거리를 가면서도 비싼 옷이나 액세서리 파는 데에서는 한참씩 있다가 가고......”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안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임마. 마음만으로 되는 게 이 세상에 어딨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수연이와 내가 자꾸 조건이 안 맞아가고 있다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뭐가 사랑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에 조건이라고 해 봤자, 결국 돈밖에 없잖아.”

“돈이 아니라 현실이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돈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뜻해. 연애도 못하는 너는 모를 거다.”


나는 수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하얀 얼굴에 똘방똘방한 눈으로 항상 웃고 다니던 수연이는 승기가 공익근무요원 노릇을 할 때 과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승기와 사귀게 된 후에 수연이는 어느 날인가 승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하던 시간들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요. 그 시간에 공부를 더 못 한 게 두고두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암, 그럴 수 있지. 조직이란 건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까딱 잘못하다간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할 일은 태산 같이 쌓여 있는데, 바꾸고 고쳐 나가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주변 사람들은 좀처럼 거기엔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항상 몇몇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술꾼이 되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힌 우등생이 되기 일쑤였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다운 ‘낭만’이라는 것을 넉넉히 누린 것도 아닌 어느 졸업생이 금테 둘러진 대학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집안 사정도 몹시 어렵다면?

꿈 꿀 수 있는 여지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현실과는 어떻게든 화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놈의 현실이란!

“예쁘지만 가난한 여자는 자기의 몸값을 제대로 알지. 그래서 잘생겼지만 돈 없는 남자 아니면 못생겼지만 돈 많은 남자를 골라. 못생겼지만 돈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야. 어딘가 흠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게 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결혼도 어차피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손해를 보려구 하겠냐? 내가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니 돈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나이 서른에 아직도 시험 준비하랴 기간제 구하랴 빌빌대니까 당연히 성에 안 찰 수밖에.”

승기는 맥주를 샘물 먹는 소처럼 벌컥거리며 쭉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동화책이나 소설이나 드라마 보면 조건 같은 거 안 따지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많이 나오잖아? 그거 다 개소리야. 책이나 TV에 나오는 남녀는 죄다 미남 미녀들이니 일단 외모라는 조건에서는 서로 들어맞는 거지. 나머지는 작가들이 다 알아서 쓰는 거고. 항상 결혼에 골인하거나 부자가 되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나오는 거 봐. 현실에서도 똑같아.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결국 조건 아니면 돈이야. 자기 조건 제대로 아는 눈치 빠른 사람은 자기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돼 있어.”

나는 승기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시절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더라. 민중 생존권 쟁취와 학원 자주화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라크 전쟁 반대와 노동자 농민의 정치세력화와...... 하긴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보다는 차라리 승기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차라리 더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도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승기의 말을 받았다.

“사실 조건이라는 것을 따지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오히려 피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일단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고를 거잖아. 그거부터가 이미 조건을 따지자는 건데. 안 그래? 그러면서 조건은 하나씩 늘어가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얼굴이 흉측하게 생기지 않아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비슷한 취미가 있어야 하고...... 외모나 학벌이나 집안, 재산 같은 걸 속속들이 따지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 자기네 혈통을 관리해야 하는 엄청난 부자들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쓰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 조건을 내건다고. 그리고 그렇게 내건 조건이 또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새로운 조건이 되고. 무엇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할 때는 그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는 소리잖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쨌든 문제는 말이야. 그 조건이라고 하는 게 우리들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얼마나 잠식해 가고 있느냐 하는 건데. 막말로 승기 네가 돈이 없어서 수연이 걔가 멀어져 간 거라고 쳐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거지로 나눠지는 건 아니니까, 아마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경제적 능력도 부자와 거지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 정도의 능력이겠지. 너는 그런 애매한 위치의 능력조차 걔를 위해 발휘할 수 없었다는 건데, 그것도 너의 잘못은 아닐 테구. 빌어 처먹을 놈의 학교들이 기간제만 자꾸 쓰려고 하니까 임용고사 정교사 정원이 확 줄어서 그런 걸 테지? 너와 수연이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달라서 이렇게까지 된 거 아냐? 정말로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것이 네가 가진 것 이상 가는 경제적 능력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못 미치는 네가 실망스러워서 등을 돌려 버린 것이라면, 너의 인간적 가치는 끝내 돈이라는 것에 납작하게 짓눌려 버린 것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수연이를 두고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어. 걔가 풍족한 삶을 원하는 인간이라면, 사실 풍족한 삶은 누구나 속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거니와, 걔가 그런 삶을 원하도록 자꾸만 부추겨 온 보이지 않는 힘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야지. 바로 그 힘이 너라는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갉아먹어 버린 몹쓸 것 아니겠어?”

내가 한바탕 쏟아 낸 연설을 듣고 승기는 손을 홰홰 젓더니 귤을 집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관 둬 임마. 괜한 얘기를 꺼내가지구. 어디 돈 때문에 그런 거겠냐? 남녀 사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넌 연애도 못하는 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논문을 쓰냐? 그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만큼 케케묵은 개소리가 또 어딨어?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거야? 베네수엘라처럼 대안 체제를 향해 가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수연이가 나한테 다시 매달릴까? 아냐. 여자들 대부분이 다 비슷해. 이십대에 꿈을 꾸든 지랄을 하든 뭘 하든, 서른 넘어가면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게 되어 있다고.”

“네가 여자를 몇이나 만나 봤다고 그래? 그리고 어디 여자만 그러냐?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자꾸 현실 현실 하는데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나는 얼마 전 한 친구와 감자탕을 먹으며 눈을 치뜬 채 똑같은 물음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구정 연휴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이었다. 글쓰기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물 한 잔을 앞에 둔 채 살이 발라진 닭 뼈다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터뷰를 어떻게 짤 것이며 누가 어디를 맡아 글을 쓸지, 다음 모임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열띤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잦은 술자리와 줄담배 탓에 지난 세밑에 결국 거꾸러진 후 나는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학원에만 겨우겨우 출근했고, 다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워 있으면서도 깨죽깨죽 뭔가를 읽었고, 귀가 아프도록 음악을 들었다. 뉴스 같은 건 하나도 보지 않았다. 배고프면 밥을 먹었으며, 잠이 오면 이불을 덮어쓰고 잤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썼던 적지 않은 글들을 떠올려 보면 나 혼자서만 아무 의미 없는 헛지랄을 한 것 같아서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내 글쓰기를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도 나는 정물화 속 꽃병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내게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재능이란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빚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넘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게을러 빠진 소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귓등으로 흘리며 튀김 닭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손전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전화 화면에 찍힌 이름 석 자를 보고 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피돌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 미친 놈아. 난 너 죽은 줄 알았다.”

“잘 있었냐. 지금 밖인가 보네?”

“서울 올라온 거야? 얌마, 네가 무슨 싼타 클로스냐? 일 년에 한 번 보는 게 왜 이리 힘들어?”

“지금 서울이다. 아는 사람들이랑 한 잔 하구 학교 근처로 가는 길야. 너 혹시 지금 나올 수 있어?”

“지금 몇 시나 됐냐? 어.... 그러니까...... 열 시네. 여기 대학로야. 학교까지는 삼십 분이면 간다. 근데 꼭 오늘 봐야 돼? 날 잡아서 승기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미안. 오늘 말고는 시간이 안 날 것 같네.”

“그럼 여기 끝나면 갈 테니까 제기 시장 쪽에서 자리 잡고 기다리구 있어. 나 감자탕 먹고 싶다.”

“어서 와라.”


뒤풀이가 끝나고 나는 대학로에서 버스를 탔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성에가 뿌옇게 낀 감자탕 집 문을 드르륵 밀어젖히며 눈으로 성훈이를 찾았다. 성훈이가 팔을 번쩍 쳐들었다. 나는 성훈이에게 다가가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껴안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올라왔어? 연락도 안 되더니.”

“자꾸 내 사망설이 퍼지고 있길래 나 살아 있소 하려구 올라왔지.”


대학 시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감자탕 집이었다. 주인 형님에게 인사를 하니 오랜만에 왔다고 함빡 웃어 주었다. 저녁을 튀김 닭 몇 조각으로 때워서 배가 몹시 고팠다. 기본 안주인 비빔국수 한 사발을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나를 성훈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이구, 잘 먹네.”

“남 먹는 거 쳐다보면 좋냐? 너는 먹었어?”

“먹었다. 마이 묵어라.”


오글보글 감자탕이 끓자 성훈이는 내 잔에 소주를 붓고는 소주병을 내게 넘겼다. 성훈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이 녀석 잔에 술을 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요새 술 못 마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하의 술꾼인 네가 술을 못 마신다니. 죽을 때가 된 거 아냐?”

“죽을 때는 아직 안 됐는데, 죽을 뻔하긴 했지. 하도 마셔 대다가 지난 연말에 쓰러졌었어.”

“그러게 작작 좀 먹지. 우리도 늙었어.”

“난 아직 이십대야.”

“자랑이다. 그래 봤자 스물 아홉이면서. ”


남들 보다 일 년 일찍 입학한 나와 달리 성훈이는 재수를 해서 남들 보다 일 년을 늦게 들어오느라 나와는 두 살 차이가 났다. 성훈이 여동생이 나랑 동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이 잘 맞았고,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술을 퍼마시며 우리를 거부한 여자들과 그 여자들을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한 이 세상을 향해 군소리를 퍼부어 댔다. 성훈이는 내가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마시든, 돈이 없어 자판기 커피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맥주와 소주를 사 놓고 소주 안주로 맥주를 마시든,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수업 도중에 홀짝거리든, 학교 식당에서 김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한번도 놀라지 않았고 나를 알코올 중독자라 닦아세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가끔은 서로 싸움질도 했으며, 서로가 자신의 가장 못나고 부끄러운 사연들마저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친구라 생각했다.

“너랑 마지막으로 본 게 지지난해 연말이었지?”

“벌써 그렇게 됐네.”

“자주 좀 올라오지 그랬냐. 그렇게 바빠?”

“알다시피 내가 있는 곳이 학교 기숙사잖아. 당직도 자주 서고 하니까 평일엔 시간 내기가 좀 힘들어. 이번에도 휴가라서 겨우 올라온 거야.”

“아직도 그 새터민 학교에 있는 거 맞지?”

“응.”


성훈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는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새터민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을 빠져 나온 북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술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성훈이는 잔을 비웠고 나는 입술만 축이고는 내려놓았다. 다시 소주병을 들어 성훈이 잔을 채워 주었다.

“지방에만 있다 보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더라.”

“그 학교에는 너랑 마음 맞는 사람 없구?”

“한 명 있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인데, 인제 삼십대 중반 정도 됐어. 가끔 내 방이나 그 선생님 방에서 밤새 술 먹기도 하고...... 그냥 그 선생님과는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다른 선생님들은? 교무실 분위기가 좀 그래?”

“남자 선생님들이 여럿 있긴 한데. 꼭 해병대 분위기야. 우르르 몰려다니며 와아 하고 떠드는 분위기 너도 알지?.”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응. 그래서 같이 안 다녀. 하나도 안 친하지.”

“아이들은 좀 어때?”


돼지 등뼈를 뒤적이던 성훈이가 큼지막한 것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내 앞 접시에 얹어 주었다. 나는 국자로 국물을 퍼서 등뼈 위에 끼얹었다. 성훈이는 자기 앞 접시에도 등뼈 한 덩이를 얹고선 국물을 떠 먹으며 말을 이었다.

“착해. 너무 착해서 탈이지. 말하는 대로 다 믿어. 학교 마치구 남한 사회로 나가면 많이 다칠 것 같아.”

“나이는? 고등학생들인가?”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양해.”

“예전에 학교에서 토론회 했던 거 기억 나? 탈북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뭐 그런 주제로 토론회 열렸었는데.”

“그래? 기억 안 나는데.”

“그때 한쪽은 다함께에서 나온 사람이었고, 다른 한쪽은 반미 청년회에서 나온 사람이었지.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은 한총련 중앙 간부 출신이었고. 반미 청년회 사람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탈북은 남한 기독교 세력과 연계돼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획 탈북이니 남한 정부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고, 다함께 쪽은 정치적인 이유든 아니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인권을 지켜 주는 거라면서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서로 팽팽히 맞서던 중에 갑자기 객석에 있던 남학생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지.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북한 출신 학생이었어.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지. ‘탈북자인 제가 보기에 북한은 일당 독재 국가에 불과합니다.’ 북한에 살다가 온 학생이 직접 말을 하니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계속해서 북한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줄줄이 나열하니 거기서 그만 토론회는 끝나 버렸지. 물론 그 학생의 시선도 북한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북한에 살던 시절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 힘들었던 기억이라 그런지.”

“근데 북한에서 남한까지 오는데도 굉장히 다양한 경로가 있지 않아? 중국을 거쳐서 올 수도 있고, 러시아나 몽골 쪽까지 지나서 올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 가서 돈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팔려 오기도 한다던데.”

“그런 경우도 있긴 있는데 그건 아이들의 경우가 아니라 아이들 부모님의 경우가 많지. 조선족 여성이나 북한 출신 여성이 남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북한을 일단 빠져나와 중국에 가더라도 신분이 애매하니까 드러내 놓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지. 온갖 힘든 일 다 하다가 고생 끝에 남한에 오더라도 그놈의 편견이라는 벽에 또 부딪히게 돼. 자식이 딸린 여성들은 더욱 힘들지.”

“새터민 아이들도 요새 아이들이랑 비슷한가? 주로 뭐 하고 놀아?”

“비슷하지 뭐.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좋아하고...... 길거리에 널린 게 화려한 옷과 비싼 물건들이잖아. TV에는 잘 사는 사람들 얘기만 나오구.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나중에 남한 사회로 나가게 되더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왕창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렇게라도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어.”

“현실이라...... 너는 아이들과 상담 같은 거 안 해?”

“하지. 근데 내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뭘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은 쉬운 게 아니라고? 걔들은 지금 새터민 출신으로서 처해 있는 자신들의 현실 자체가 결코 견디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아이들이야. 선생 노릇이나 하는 내가 현실을 말해 봤자, 그런 말을 하는 나부터가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걔들은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들이 아니야. 자기가 남한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건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탈북자라는 자신의 조건은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돈을 악바리처럼 벌어서 일찌감치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 말이나 다 믿는 착한 아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며 사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섭도록 변할 수 있지.”

“너도 참 쉽지가 않겠구나.”

“난 그냥 아이들이 몸 건강히 학교 마치고 나가서 별 탈 없이 남한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어.”


성훈이는 잔을 들어 쭉 들이켰고, 나도 입술만 축이던 아까와 달리 아주 조금만 목으로 넘겨 보았다. 꼭 화학 약품을 마시는 것 같이 입안이 썼다. 성훈이가 자기 손으로 빈 잔을 채웠다.

“현실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나 작년 성탄절쯤에 아는 사람들이랑 지방에 취재하러 내려갔었어. 경상북도의 한 도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랑 만나서 인터뷰를 했지.”

“근데?”

“고등학생들은 인문계가 아니라 실업계, 그러니까 공고 학생들이었어. 힘들게 살더라.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장들에게 월급 다 뜯기고, 점장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불법인 거 아느냐고 협박해서 돈 안 주고, 근데 학생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고용주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가르쳐 주는 데가 없으니까.”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주고?”

“학교에서는 졸업 후 취업에만 신경 쓰지 재학 중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 쓴대. 그 학교만 그러는지 공고들은 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공고 졸업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빠지지 않아?”

“학교와 인근 중소기업들을 연결해서 맞춤형 취업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 있대. 고3 끝날 때쯤 되면 일터에 나가서 일을 조금씩 배우고, 졸업한 다음에는 바로 그 일터로 채용이 된다고 하더라고.”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난 얘기만 듣고는 잘 모르겠네.”

“공장에서 확실히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나쁠 거야 없겠지.”

“근데 걔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가 다른지는 알아?”

“그게 문제야. 비정규직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양산되고 있고, 정규직에 비해 어떤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정규직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돈도 덜 받고,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 정도는 주위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걔들이 자신들의 꿈에 대해선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들은 꿈 같은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안 꾼대. 빨리 돈 벌어서 성공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게 꿈이라는 거야.”

“...........”

“그러니까 나 같이 글 쓰며 사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걔들 눈에는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 걔네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정글이야. 아니, 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경쟁이라는 걸 일찌감치 배우지. 기업에 입사 원서를 쓸 때도 성적 순으로 끊는다니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로 안 보이고 적수로만 보이는 거야. 돈벌이와 관련이 없는 꿈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다른 인문계 학생들보다 현실을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걔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라.”

“그게 바로 그 아이들의 현실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집이 어려우면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 가야 할 테니까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된 애들이었는데 낭만적인 꿈 하나쯤은 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걔들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 같은 건 쓸데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선 꿈을 버린 거야. 꿈을 버리는 게 꿈이라는 거야.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을, 돈 안 되는 허황된 꿈보다는 돈 되는 현실적인 직업을 걔들은 원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걔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걔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걔들은 사회로 나가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 어떤 학생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언론에서 너무 안 좋게만 보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까지 말했고. 다들 비정규직 따위는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근데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착각이잖아! 비정규직은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신분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신분이고,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머릿수를 늘리고 있는 신분이라고. 노동 유연화다 뭐다 앞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계속될 텐데, 아무리 정규직 되겠다고 발버둥쳐 봤자 비정규직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는 작동 방식을 박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더구나 요즘 이명박 정부가 뭐라고 떠들고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고? 나 참. 고용주들의 목적은 오직 이윤일 뿐이지 노동자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야. 정부는 항상 고용주들의 편이고. 돈만 벌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이 걔들이 돈 많이 벌게 그냥 놔둘 것 같아? 걔들이 말한 현실이라는 건, 걔들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죄다 환상이야. 환상이라고. 안 그래?”


나는 앞에 놓인 돼지 등뼈를 두 손으로 홱 꺾어 비어져 나온 고깃점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성훈이는 말없이 잔을 비우고는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가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네가 한번 말해 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어떤 게 현실이야?”

“........”

“그래, 꿈은 꿈으로 남을 때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경우도 있어. 꿈은 현실이 아니게 되고, 현실은 꿈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하지만 꿈은 꿈대로 버리게 만들고, 현실은 현실대로 환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무엇을 마음 속에 품든 죄다 거짓말 아니면 환상이 되어 버리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나에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인데, 내게 현실이라 함은 그거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고 환상이라 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생각하자니 그 현실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말짱 환상이 되어 버리고...... 정답은 결국 취직인가? 정규직인가? 하지만 취직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되나? 취직과 안정을 현실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마취된 것처럼 하루하루 아무것도 못 느끼고 살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열을 내며 말을 쏟아 내다가 성훈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성훈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뒷벽에 기댄 채 건너편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 속 아리따운 여배우를 멀거니 쳐다보았고 성훈이도 말없이 담배만 뻐끔거렸다.

“내가 요새 이렇다. 말만 많아졌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갈까?”


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성훈이는 입구 앞에서 새로 붙여 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게도 한 대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학아.”

“응?”

“요새도 글 써?”

“아니.”

“왜?”

“쓰기 싫어졌어.”

“아까는 글쓰기가 네 현실이라며.”

“현실? 현실이라....... 현실이 병이 되겠다 젠장.”

“사랑하는 누군가는 있어?”

“없어.”

“어머니는 잘 계시구?”

“나 때문에 잘 못 계시지.”

“너 걱정 많이 하시는구나.”

“걱정되시겠지. 서른이 내일 모레인 녀석이 글 쓴답시고 빈둥대고만 있으니. 이젠 친척들에게 나 보이는 것도 창피하신가 봐.”

“집 형편은?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 뭐.”

“.......”

“그래 맞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밥벌이를 하긴 해야겠지. 근데 뭘 해야 할까? 난 글 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다 병학아. 그런 말하지 마. 너도 아닌 거 알 거야.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봐. 우선 생활을 하는 거야. 난 너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어떻게든 생활을 해 나가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옛날 일만 쓰게 될 거야.”

“옛날 일......”

“네가 글 쓰는 걸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고 끝까지 그걸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한, 너는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쓰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니?”

“.......”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다른 부잣집 자식들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꼭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은 다들 가지고 있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네가 만났다는 그 고등학생들도 떼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불편한 거니까.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에게 피해 안 주면서 남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삶에 지치더라도 그걸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꿈이겠지. 그런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 물론 그러기는 힘들어. 하지만 그게 밥벌이를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들과 밥벌이 사이에 너무 선을 긋지만 말고, 음, 그러니까, 바늘에 꿴 실이 있다고 생각을 해 봐. 바늘이 먼저 길을 뚫지만 실은 바늘과 한 몸처럼 되어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같이 가잖아. 그건 바늘에 실이 얼마나 단단히 매어졌느냐에 달렸지. 생활이라는 것도, 네가 말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몰라.”


앞만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성훈이를 쳐다보았다.

“......애들이랑 상담도 한다더니 말재주만 늘었구나.”

“그게 다 너한테 배운 거 아니냐.”

“춥다. 들어가자.”


성훈이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어느새 식어 버린 감자탕을 다시 데우기 위해 밸브를 열었다. 나는 성훈이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이라면 환장을 하던 놈이...... 술 안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죽을 것 같아서 못 마시는 거야.”


성훈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바닥에 술이 찰랑거리는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우리 이거 다 마시고 악기 치러 갈래?”

“악기?”

“술 좀 사 갖구 사위방으로 가자.”


성훈이는 대학 시절 풍물패에서 쇠(꽹과리)를 쳤다. 나도 성훈이를 따라 놀러 다니다 보니 어깨 너머로 악기를 배워 간단한 장단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사범대 풍물패 이름이 ‘소리사위’였고, 사범대 학생회실에 있는 건물에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소리사위방’이 있었다. 풍물패 사람들은 시간 날 때마다 사위방에 모여 악기 연습을 했고, 술을 마시면 꼭 사위방에 모여 밤새도록 악기를 쳤다. 나도 머리끝까지 취해 풍물패 사람들과 함께 사위방에 와서 괭괭거리는 악기 소리에 묻혀 가며 얼씨구 잘한다 좋고 지화자 개잡아묵었나 하는 추임새 소리와 함께 가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북을 두들긴 적이 많았다. 문득 아무거나 손목이 빠지도록 두들겨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훈이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는 일어나 계산을 했고, 나는 바깥에 나가서 성훈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 형님이 따라 나와 몸 건강히 지내라며 손을 흔들었다.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든 성훈이는 내 팔짱을 끼고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외로울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니?”

“외로울 때? 글쎄. 나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가 혹시 ‘외롭다’라는 단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저 심심한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외롭다고 자기도 모르게 표현해 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막연히 외롭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것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기준을 세웠지.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혼자서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심심한 거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혼자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외로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돼. 외로운 상태가 내게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외로운 상태를 외롭지 않은 상태로 만들거나 아예 해체해 버릴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눌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는 반에서 물건 하나가 없어지면 그 즉시 반 전체 아이들의 소지품 검사를 하거든. 나는 그게 뭔가 아닌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먹히더라. 무언가를 바꾸고는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너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랍시고 늘어 놓은 내 말을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성훈이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나라면, 글쎄, 나라면 말이지...... 예전에 학생회 간부 하던 시절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사람들 만나 가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딴 식으로 말하기는 싫고...... 아, 모르겠다. 역시 네 편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성훈이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만 옆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성훈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너무 내 얘기만 많이 하느라 정작 성훈이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방에 앉아 성훈이는 쇠를 들었고 나는 북을 세워 내 앞에 놓았다. 성훈이는 소주를 병째 꼴깍거리며 들이키더니 과자를 한 줌 집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성훈아, 우리 예전에 힙합 국악 하다가 선배들한테 혼난 거 기억 나?”

“악기 가지고 장난 친다고 쿠사리 엄청 먹었지. 자, 간다.”


성훈이가 쇠를 치며 장단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북을 잡았다가 장구를 잡았다가 하며 아는 장단이든 모르는 장단이든 흥이 나는 대로 두들겨 댔다. 그렇게 첫차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 모르고 악기를 쳤다. 성훈이가 벌떡 일어나 쇠를 치면 나도 북을 어깨에 매고 일어나 빙글빙글 돌면서 북을 쳤다. 장단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했다.

어느덧 첫차 시간이 되자 우리는 악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는 사위방을 나왔다. 속옷이 땀에 추근히 젖어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한밤중처럼 어둑어둑했다. 잠 한 숨 자지 못했지만 실컷 악기를 치고 나서 찬바람을 쐬니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져 왔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성훈이는 버스를 타고 친척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냐.”

“무슨 초상 났어? 그건 죽은 사람한테나 하는 말이고.”

“또 싼타 클로스처럼 연말에나 나타나는 거 아냐?”

“모르겠다. 시간이 언제 날지. 다시 올라오게 되면 연락할게.”

“요즘 말이라는 걸 잘 안 하고 살았는데, 너 덕분에 오늘 실컷 떠든 것 같아서 좋네.”

“나도 그래.”


버스가 왔다. 성훈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놓더니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성훈이는 휘뚝거리며 빈 자리에 앉았다.

“현실? 가지고 온 건 다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뭐해? 빨리 다 먹어.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내 앞에 놓인 먹다 남은 고깃점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승기가 투덜거렸다. 욕심 부리며 고기만 집어 와서 그런지 속이 느글거렸다. 그런데 정말 고기 탓일까?

“느끼해서 더는 못 먹겠다. 근데 어쨌든 너 말대로 조건이 중요한 거라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 참에 수연이랑 갈라설 거야?”

“몰라. 시간이 지나면 결말이 나겠지.”

“우리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현실이라는 것에 도장을 꽝꽝 박아야 하냐? 나이 서른 먹으면 정해질 건 다 정해지는 건가? 우린 옴짝달싹 못하는 거야? 뭔가 이상해. 이것저것 조건이 빠질 수 없는 게 연애라 하더라도, 연애 자체가 몽땅 조건이라는 것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잖아?”

“네 얘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 얘기지? 근데 닭도 아니고 달걀도 아니고, 사람한테는 무조건 밥이 먼저야. 이 세상에 연애를 자선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을 양팔 저울에 올려 놓고 재는 거지. 누구나 그래. 안 그럴 수가 없지.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도 다 사업이야.”

“사업?”

“사업.”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포크로 돼지고기를 결 따라 찢어 보았다. 살이 갈라지며 분홍빛으로 선명한 육질이 드러났다. 자꾸자꾸 가르고 찢었다. 고깃점들은 곧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네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현실이라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그곳엔 영화 포스터처럼 진부하게 보이는 것들만 잔뜩 쌓여 있어. 왜 그럴까? 현실은 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학 문제가 아니잖아?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도록 다양하고 변화무쌍해야 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부터 매끈하게 잘 뽑힌 사진 한 장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 안 들어? 뭔가 이상해. 잘 빠진 이미지 하나를 갖다 놓고 모두들 저게 현실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는 거야. 다들 거짓말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 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빵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둘의 중간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승기가 말을 받았다.

“야, 네가 하는 말은 정말 말이니까 쉽지. 세상 혼자 살 수 있다면 차라리 너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면 땡이야. 얼마나 편해? 근데 그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기대하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어. 너도 집에서 그렇겠지만 당장 내 어머니만 봐도 그래.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지는 않더라도 어머니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연이는 수연이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대로 해 주기를 기대하고. 일터에서는 일터대로 또 나한테 주어지는 역할들이 있으니 나는 또 그걸 연극배우처럼 연기해야 하고. 그게 현실이라는 거야.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사는 게 왜 이리 좆 같은지.”

승기는 남은 맥주를 한입에 들이키고 내 앞에 있는 찢어진 고깃점 하나를 손으로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미적지근해져 쓴 맛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허위허위 모임 꾸려 가며 활동하는 선배들 많아. 작년에 제대한 철호 형도 지방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고, 서울 지역만 해도 곳곳에 이른바 진보 일꾼들이 숨어 있다고. 억압이 있는 현장이 많은 만큼 그 억압과 싸우려 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러면 뭐 해. 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게 살고 있을 텐데. 철호 형 봐라. 총학생회장 선거 떨어지고 나서 여자랑도 헤어지고, 아직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 다닐 때 학점을 따 놓은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인제 뭐 하겠다는 거야? 운동도 좋지만 꼭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야 해?”

“야,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직장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어. 일하는 시간에는 일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거야. 사회 단체나 진보 정당에서 일하면서 쥐꼬리 만한 활동비 받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고. 철호 형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지금 글 쓰겠다고 빌빌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젠장, 어떡하겠어?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밥만 벌어먹고 사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운동하는 거 아냐? 노동자들에겐 노동 운동이 자기 삶이 걸린 문제라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노동 운동이 일단 자기 삶을 책임진 다음에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고. 나도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삶과 내 시간과 내 마음들을 무작정 희생해 가면서 꼴아박는 활동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지 충분히 경험했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에 가입하게 될지, 학교 안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해.”


나는 승기가 옷도 못 갈아입고 학생회실에서 먹고자며 밤이고 낮이고 회의만 하느라 새벽녘이면 머리가 부스스해져 노숙자처럼 되던 모습을 떠올렸다. 주위에서 승기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당당한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한총련 대의원은 힘들어 할 자격도 없다는 따가운 충고만이 전부였던 시절. 승기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난 후배들에게 항상 팔십 년대를 이야기했어.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고 팔십칠 년 노동자 대투쟁을 이야기했지. 막상 후배들한테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팔십 년대라는 시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후배들에게 팔십 년대를 기억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게 되게 우스워지더라. 넌 팔십 년대가 기억 나? 팔십 년 오월에 광주에 있었어? 팔십칠 년에 거리에 있었니? 난 팔십 년대에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던 꼬맹이였어. 광주든 뭐든 전부 다 나중에 책과 영상으로만 접한 것들 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나는 내가 마치 팔십 년대 정신을 몸소 겪어 본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난 항상 너무 쉽게 말하고 다녔어. 그리고 내가 겪어 보지도 못한 팔십 년대라는 시간에 항상 짓눌려 살았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열사 정신 계승? 4.19 정신 계승? 그런 것들 속에서 천년 만년 활동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대학 졸업하고 서른 넘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학생 운동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뭐 그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선배는 한 명도 없었어. 평생 대학생처럼 활동할 수 있겠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강철이 되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막상 강철이 되지 못하니 답답했겠지.”


승기에겐 승기의 삶이 있었다.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처럼 남아 있는 승기의 삶이. 나는 뭐라고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던 승기가 손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번호판을 주물럭거렸다. 앞에 놓인 접시와 포크를 정리하면서 휴지로 입을 닦고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가 봐야겠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오래 보면서 한 잔 해.”

“그럼 나도 일어나야겠네.”


나는 승기와 탁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아직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참 잘들 차려입고 왔구나 싶어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이 갔다.

샐러드를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주영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반갑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승기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주영이 있다.”

“언제 왔지? 아깐 못 봤는데.”

“가 보자.”


주영이는 포크를 들고 웬 희한하게 생긴 작고 동그란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영이 앞에는 경애가 앉아 있었다. 둘은 나와 승기를 보고는 오랜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승기 오빠는 점점 대머리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병학 오빠는 가뜩이나 암울한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해요?”

“넌 임마 기성 세대가 다 됐구나.”

“피부 관리 좀 해라. 그게 뭐니?”


승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고 경애도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가겠다며 가방을 들고 일어서 버렸다. 주영이는 접시에 잔뜩 쌓아 놓은 동그란 것들과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건 뭐냐?”

주영이는 내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다섯 글자 정도의 알 수 없는 이름을 말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는 그냥 넘어갔다. 다른 곳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여기 것은 맛이 좀 별로라고 했다. 얄따란 껍질을 포크로 살살 벗겨내면 새하얀 알맹이가 나오는데 그걸 한입에 쏙 넣어 씨앗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먹고 씨는 뱉는 거라고 했다. 나도 하나 먹어 보았지만 찝지레한 맛이 싫어 금방 뱉어 버렸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근데 언제 왔어요?”

“두 시 조금 넘어서 왔지. 너는? 사진 찍을 때 보니 없던데?”

“늦게 왔어요. 식은 못 보고, 아까 광현이랑 신부가 피로연 장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할 때 처음 봤어요. 광현이가 오빠보다 일찍 결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피로연 장 벌써 돌았어? 왜 난 못 봤지?”

“혹시 승기 오빠랑 저 구석에 앉아 있지 않았어요? 그쪽은 안 돌았어요. 지금 폐백실에서 폐백하고 있으니 나갈 때 한번 봐요.”

“그런 걸 뭐 하러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다 허례허식 아냐? 결혼이라는 게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렇게 돈 처들여서 쇼를 할 필요가 어딨어?”

“오빠가 연애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우리 예전에 지은이 언니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지은이 누나?”

“지은이 언니 결혼할 때 예식장에서 식 올린다구 하니까 같이 여성 운동하던 주변 언니들이 그렇게 반대를 했대요. 결혼 제도라는 게 뭔지 알고도 그러냐, 너마저 돈 써 가며 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막 그랬다나?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혼례라는 형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죠. 근데 어디 결혼이 두 사람 마음만으로 되는 거예요? 양가 부모님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주변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친족과 다른 친족의 결합이기도 하니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지요.”


주영이는 나에게 대거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배였다.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몸피에 안경을 쓰고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다니던 주영이는 언제나 나를 똑바로 보며 내 말을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따져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한 학번 후배인 주영이와 마주 앉아 내가 심심할 때마다 생각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놓기 좋아했고, 주영이는 내 말에 어딘가 헐겁거나 빠듯한 곳이 있으면 꼼꼼히 고쳐 주고 바로잡아 주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다른 후배들이 코대답도 하지 않고 넘겨 버리던 내 말은 주영이와 함께 있을 때면 활력을 얻고 제 뜻을 찾았다. 논쟁을 하다가 주영이에게 욕도 숱하게 얻어 먹었지만 주영이의 분석과 비판이 핵심을 비껴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건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결혼식 따위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쇼를 해야 할까? 성대한 결혼식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게 정말 이 세상 여자들의 꿈인 거야?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갖다 붙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일생에 단 한번이 아닌 게 어딨어? 지금 이 순간 흐르고 있는 일분 일초도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들인데.”

“오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어쩌겠어요? 결혼은 제도로 굳어지기 이전에 풍습이었고, 풍습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막상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글쎄요, 어떻게 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

“결국 또 현실이라는 건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놈의 현실.”

“왜요? 요새 좀 안 좋아요? 뭐 하고 지내요 요즘?”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영이와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집에서 한숨만 쉬고 계실 어머니와 다시 마주하게 될 시간을 되도록이면 늦추고 싶었다.

“일어날래?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

“오빠가 웬일로 낮술 먹자구 안 해요? 차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주영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지난 연말에 한번 쓰러지구 나서 술 확 줄였다. 여기 와서도 맥주 한잔 밖에 안 마셨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나 저녁 때쯤에 약속 있어요. 오래 못 있는데.”

“괜찮아. 아직 저녁 아니니까. 가자.”


주영이와 나는 일어나서 폐백실 쪽으로 갔다. 고개를 살며시 뽑아 안을 들여다보니 쪽빛 한복을 갖춰 입은 광현이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무언가를 든 채 쩔쩔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광현이 쪽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나는 폐백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광현아! 형 간다! 봄 오기 전에 한번 보자!”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고 주영이는 팔꿈치로 내 허리를 찔렀지만 광현이는 고개를 돌려 밝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형, 잘 가요!”

주영이가 황급히 나를 잡아 끌며 속삭였다.

“오빠, 지금 폐백 하는데 뭐 하는 거예요?”

“이런 게 다 추억에 남는 거야.”


나는 주영이를 데리고 나와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2월답지 않게 아직 따스한 오후였다. 주영이가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횡단보도를 건너 어느 도너츠 집으로 들어갔다. 설탕과 초콜릿으로 뒤발을 해 놓은 알록달록한 도너츠들이 진열장마다 가득 쌓여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이 피둥피둥 찔 것 같았다. 곧 찾아올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느라 매장 안 이곳 저곳에는 신통방통한 모양을 하고 있는 초콜릿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주영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있는 의자에 외투를 벗어 놓았다. 가게 안은 손님이 별로 없어 음악 소리만 흐를 뿐 조용했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초콜릿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저런 초콜릿들은 진짜 비싸요. 전부 다 포장지 값이긴 하지만.”

“내가 얘기한 적 있지? 발렌타인데이든 화이트 데이든 정욕과 상술의 은밀한 야합이라고.”

“그건 오빠가 너무 오버하는 거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반드시 자본이나 상품이 필요한 건 아니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얘기가 다를 거예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안 줬다고 헤어지는 커플도 있으니까.”

“그걸 문화적인 차이니 다양성이니 하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뭔가 좀 이상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거잖아? 돈이 있는 사람들만 뭐든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특권이지. 안 그래? 게다가 발렌타인데이가 강요하는 건 전형적인 이성애자들의 사랑이잖아?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낄 자리가 없어. 자본의 문제는 둘째 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도......”

“됐어요. 뭐 먹을 거예요? 일단 먹으면서 얘기 해요.”


주영이가 지갑을 챙겨 들며 일어섰다. 이런 도너츠 집에 평소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손님이 직접 판매대로 가서 주문한 다음 돈을 치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문한 것이 나오면 판매대 쪽에서 손님에게 알려 주는 모양이었다. 주영이와 나는 판매대 앞으로 가서 높은 곳에 붙어 있는 차림표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돈 없죠? 난 녹차라떼. 오빠는요?”

“돈 없으니 너를 잡았지. 근데 뭔 놈의 메뉴가 전부 다 영어 투성이야? 커피 종류는 싫으니 그냥 국화차 먹을란다.”

“오빠답네요.”


주영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치르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주영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자기 돈으로 초콜릿 사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건 완전히 온 나라의 명절처럼 여겨지고 있잖아.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초콜릿을 사려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는 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야. 내가 내 돈으로 초콜릿을 사는 건 소비 행위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초콜릿을 산다는 건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요? 자본주의? 물신주의? 그리고 그런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만 원 이만 원 하는 비싼 초콜릿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빼빼로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겠죠. 재미로 말예요. 초콜릿 사는 사람들이 무분별한 소비 문화에 길들여졌다고 하는 건 결국 이 모든 상황이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소린데, 그러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초콜릿을 떼지어 사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이며 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돈지랄 하면서 비싼 초콜릿 사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초콜릿의 가격을 문제 삼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가격이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에 초콜릿을 산다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초콜릿 만드는 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겨. 초콜릿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발렌타인데이 한참 전부터 요란뻑적지근하게 광고를 때리고. 초콜릿을 사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야.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궁금한 거야. 도대체 뭐가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까? 농담으로 정욕과 상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정말 그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이성애자들끼리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밑그림이 발렌타인데이에서 빠지게 된다면 초콜릿은 훨씬 덜 팔리지 않을까?”

“흠.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오빠처럼 하는 말 들으면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하겠죠. 그냥 초콜릿 하나 사서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젠장, 그럼 내가 이상한 거야?”


가게 문이 열리고 왁자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 한 떼거리가 들어왔다. 다들 내 나이 또래 같았지만 양장을 날렵하게 차려 입은 매무새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한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 보니 아까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여자였다. 신부 쪽 친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신부 쪽 사람들인가 봐. 저 빨간 가방 메고 있는 여자 보이지? 아까 부케 받았어.”


그들은 우리를 지나 가게 깊숙한 곳으로 가서 탁자 다섯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고즈넉하던 가게 안이 갑자기 우꾼해졌다.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는 종소리가 들렸다. 각자 시킨 것을 앞에다 두고 주영이와 나는 다시 마주 앉았다.

“저 사람들 좀 봐.”

“왜요?”

“하나같이 말끔하고 고상하고 모범생처럼 보여. 옷도 반들반들 좋은 걸로 차려입었고. 신부가 학교 선생님이었으니 저 사람들도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정도 되는 일을 하고 있겠지?”

“그래서요?”

“글쎄. 그냥 저런 사람들 보면 진부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진부한 삶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 시달리는 사람들. 대학 나와서 졸업하고 취직한 다음에 돈 벌어 결혼하고 집 사고 자식 낳아 가정 꾸리고 계속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만 벌면서 살겠지?”

“그게 나쁘다는 거예요?”

“글쎄. 좋고 나쁘다는 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난 그냥 사람들이 너무 비슷비슷한 삶을 살려고 기를 쓰는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진부해. 광현이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만나던 광현이와 많이 달라져 있겠지? 아직은 기간제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정교사 되면 월급 차곡차곡 모아 가며 다른 것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겠지. 동기들이랑 만나면 더 이상 옛날처럼 민중 생존권이나 반전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그을림 하나 없이 말끔한 저 얼굴들을 봐. 손도 펜이나 잡아버릇했을 테니 보들보들하겠지.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어떤 계급적인 위치에 있는지 저 사람들은 가끔 생각이라도 할까?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더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가질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뜨적뜨적 말을 늘어놓다가 문득 고개를 제자리에 두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주영이가 있었다.

“오빠, 저 사람들 잘 알아요?”

“아니.”

“저 사람들 삶이 어떤지 모르면서 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 뭐예요?”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주영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예전과 하나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저 사람들의 삶을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 그게 전분가? 그래.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때가 있어. 저 사람들은 또 어디서 어떤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구 말야. 하지만 그것도 내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드는 생각이겠지? 그건 나두 알아.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계급이라는 게 있어.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산다는 말로 간단히 뭉뚱그릴 수 없는 계급성.”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오빠가 말하는 대로라면 이 세상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라는 건 사회 속 갈등의 모양을 분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삶을 사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옷차림과 생김새만으로 멋대로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놀고먹는 한량들이 아닌 이상에야 다 노동자일 테고, 그럼 생산직 노동자냐 사무직 노동자냐 하는 것으로 구분해야 하나요? 나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그럼 화이트 칼라 노동잔가? 오빠는...... 오빠 아직도 그 학원 나가요?”

“응.”

“그럼 오빠도 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화이트 칼라네. 근데 그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제 말은, 계급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구분을 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구분이어야 하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저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엔 쫙 빼입고 왔지만 알고 보면 오빠랑 나처럼 쪼들리는 형편일지도 몰라요. 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생산직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밥 굶고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계급을 이야기하자는 게 착취 당하고 있는 계급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착취하고 있는 계급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점쟁이처럼 저 사람들의 삶은 어떨 것이다 뭐 이런 짐작이나 하자고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거 오빠도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나는 뜨거운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이 속을 덥혔다. 시큼털털한 차 맛이 입안 깊숙한 곳까지 남았다.

“알지. 알아. 근데 말이야. 그럼 어차피 같이 살아 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테니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알지도 못하는 저 사람들을 겨냥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계급이란 분명 존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겠지만 어쨌든 억압 받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단 말야. 무엇을 위해서 계급을 구분하냐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붙이면 이상한가? 우선 나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데.”

“오빠. 왜 슬쩍 피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겉모습만 보고 재단하려는 오빠의 시선을 말하고 있었어요. 광현이 얘기두 그래요. 저도 광현이랑 정말 가끔씩 연락 주고받고 사느라 요새 광현이가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광현이가 재수했으니 오빠랑 동갑이죠? 이제 스물 아홉인데. 집도 어려운 녀석이 서울에서 기간제 하면서 낑낑대며 살고 있어요. 오빠는 예전부터 말한 것처럼 임용고사라는 교사 양성 과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광현이에게는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자기 몫을 하며 사는 게 생활이라는 것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라요. 오빠가 전에 저한테도 그랬잖아요?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우선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기억 안 나요?”


주영이는 논설문 쓰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듯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옷 입고 잠 자고 술 먹고 책 보던 털털한 녀석이었지만 의외로 수줍음이 많았다. 동기들이 전부 다 과 학생회장 자리를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지만 않았어도 주영이가 학생회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단독 후보로 선거에 나간 주영이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일 년 동안 고생했고, 그 이듬해엔 경애와 함께 짝을 이루어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시 휴학생이었지만 주영이 선거운동본부에서 으밀아밀 참모 비슷한 노릇을 했고, 사범대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던 승기와 함께 선거 기간 내내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가 누굴 왜 뽑는 선거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투표율은 매년마다 오십 퍼센트를 간신히 넘기는 편이었다. 오십 퍼센트를 넘지 못하면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했다. 주영이와 경애가 사범대 신관과 구관 강의실들을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도 투표율은 선거 마지막 날 해거름까지 사십구 퍼센트 후반에서 머뭇거렸다. 승기와 나는 애가 끓었다. 선거를 다시 치르자니 그 많은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했다. 십여 명만 더 투표를 하면 되는데 투표소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했고, 결국 선거를 밤 아홉 시까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들고 중앙 도서관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사범대 학생들에게 다가가 표를 받았다. 간신히 오십 퍼센트를 채우고 나서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투표소 앞에 가져다 놓고 한동안 얼싸안았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주영이는 경애와 함께 사범대 학생회를 책임지며 일 년 동안 각다분하게 살았다. 집에다는 사범대 학생회장이 고등학교 학생회장과 비슷한 자리라고 둘러대었다고 했다. 일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학생회장 임기도 다 끝나자 주변에서는 주영이에게 중앙 조직으로 가서 더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을 비쳤고 후배들은 아예 주영이가 임용고사를 포기하고 중앙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곧 4학년이 되는 주영이는한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오래 고민했다. 내게도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군말 없이 답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학생 운동이고 뭐고 그 전에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대학생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결국 주영이는 총학생회실에 가서 가끔씩 대자보나 현수막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것 말고는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마음 넉넉한 선배들은 주영이만 보면 힘내라고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지만 이제 막 2학년으로 올라가는 후배들은 대놓고 섭섭하다는 말을 하며 주영이에게 세모눈을 떴다. 어떤 녀석은 변절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처먹으며 방황을 하던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찾아가 주영이를 불러내 밥을 얻어먹으며 아직도 뭘 모르는 후배들을 싸잡아 욕했다. “걔들은 자기네도 죽을 때까지 대학생으로 사는 줄 아는 모양이지?” “괜찮아요. 솔직히 나도 좀 미안한데 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할 수 있겠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는 딴청을 피웠다.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휘저으며 픽 웃었다.

“그때 오빠가 해 준 말이 난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걸 까먹었단 말예요? 어쨌든 그 말을 곱새기면서 결국 나 재수에 삼수까지 해서 붙었어요. 다른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어요. 직업적 혁명가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겁이 많았고, 승기 오빠나 철호 오빠처럼 살 자신도 없었어요. 일단은 졸업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다 변명 같긴 하지만.”

“.........”

“광현이도 분명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겠죠. 꼭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기간제 선생님이니 아직은 전교조에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오빠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노동 운동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운동만이 중심 운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니죠? 내가 아는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많이 가게 됐고, 거기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 글을 써도 노동자들 이야기만 쓰다시피 했지. 이 세상엔 비정규직 노동자들 말고도 아프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몸뚱이는 하나였어. 변명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낸다고 해도 동시에 두 집회를 나갈 수는 없었거든. 그동안 많이 만나 온 사람들이 노동자들이고, 보고 들어 온 것들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어떻게 탄압을 받고 있나 하는 것이었으니, 글쎄, 나도 어느새 시야가 좁아져 버린 건가? 매끈하게 잘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꼭 그런 사람들일 것만 같아. 광현이도 그렇게 변해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

“오빠도 광현이도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뭐.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야금야금 홀짝이느라 어느새 다 비운 잔을 들고 판매대 앞으로 가서 물을 더 받아 왔다. 뜨끈한 물 위에서 국화 꽃심들이 물방개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주영이는 그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오빠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는 전부터 듣긴 들었어요. 무슨 글을 써요? 집회 기사 같은 거예요?”

“기사도 아닌 것이 르포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나도 내가 뭘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지난 한 달 동안 몸 아프다는 핑계로 거의 안 썼어. 뭘 써도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짜증나기도 하고.”

“집에서는요? 뭐라고 안 그래요?”

“집? 뻔하지 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럴 수밖에요. 오빠도 이제 곧 서른인데. 학원에선 얼마 못 받는다구 했었죠? 슬슬 결혼하라는 압박도 있을 테고. 집에서 걱정 많이 하시겠네요.”


지금도 거실에 누워 한숨만 끙끙 앓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혀를 쯧 차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다.

“걱정만 하시면 좋게?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내 삶이 하나도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셔. 이십대에 내가 뭐 하나 해 놓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늘 말씀하시거든. 나도 내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지난 십 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나날들은 아니었을 거 아냐? 어머니가 원하는 건 결과물이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 물질적인 성과물.”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오빠 뿐예요?”

“아니. 내 동생도 알바 하면서 벌고. 아버지도 가끔씩 찔끔찔끔 가져다 주시는 것 같긴 해. 내가 버는 건 푼돈이고.”

“집에서는 오빠가 글 쓰며 다니는 거 아세요?”

“그럼. 나 놀고만 있지는 않수 하면서 인터넷 매체에 글이 올라가는 족족 보여드렸거든. 처음에는 신기해 하시더니 이제는 그런 위험한 글들 그만 쓰라고 난리셔. 언제까지 비정규직이 데모하는 데만 쫓아다닐 거냐고.”

“저는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겉으론 학교 잘 나가고 있으니까 집에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만, 사실 학교에서 제가 나름대로 뭔가 활동을 해 보려고 해도 저도 이제 겨우 3년차 되는 선생이라 그런지 자꾸만 몸을 사리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촛불 집회 할 때도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래 나가서 밤도 새우고 아침에 학교 오는 것 같았는데 교무실에서는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 집회 못 나가게 엄중히 단속하라고 하고. 선생님들끼리도 눈치 보이니까 같이 나가자는 말도 못하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왜 지금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 왜 십대 청소년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이랑 이야기 한 번 못하고 여름이 다 가 버렸어요. 어떤 선생님은 교실 뒤에 촛불 집회에서 받아 온 유인물을 붙여 놨다가 교감한테 호되게 야단 맞았어요. 저는 작년만 해도 2년차 교사였고, 솔직히 징계가 무서웠어요.”

“근데 너는 촛불 집회 많이 나갔잖아. 시청 앞에서 나랑도 우연히 많이 만났고.”

“저 혼자 그런 거죠. 제 성격이 원래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거 오빠도 알잖아요. 근데 집회에 나가면 혹시 아는 선생님들과 만나면 어떡하나 하는 것부터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우리 엄마 아빠랑 언니는 촛불 집회고 뭐고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한우 값 안 떨어지게 하려고 이익 단체들이 집회 하는 거라며 늘 구시렁대기만 하고..... 근데 어느 날인가 한우 값 얘기를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아빠는 딸이 촛불 집회 나가는데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냐고 말해 버렸죠. 그때가 한창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촛불 시민들이랑 전경들이랑 싸우던 시기였는데, 그 말로 들통이 나서 한동안 주말에는 집 밖에 못 나갔어요. 저도 개학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고.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다가 가을도 다 가 버렸고. 금방 방학이 왔어요. 얼마 전에 용산에서 철거민들 돌아가셨잖아요. 거기도 아직 못 가봤어요. 뉴스에 집회 장면 같은 게 나오기라도 하면 집에서는 그런 데 가지 말라고 선수를 쳐요. 새 학기 준비해야 하니 요새도 정신이 없고..... 제가 오늘 저녁에 누구 만나는 줄 알아요?”

“남자 친구라도 생겼어?”

“그러면 좋게? 형렬 오빠 만나요. 얼마 전부터 저를 계속 꼬시려고 했는데 오늘 담판을 지으려는 모양이에요.”

“형렬이 형이 꼬신다면 딱 하나밖에 없는데?”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생긋 웃었다.

“맞아요.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부 같이 하자는 거. 저 아직 조합원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선생님 되고 나서 탈당했어요. 우리 학교엔 전교조 선생님 한 명도 없는데 제가 덜컥 조합원이 돼 버리면, 글쎄,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나서 학교 쪽 분위기 안 좋은 거 오빠도 알잖아요. 처음에 형렬 오빠한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학교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 다음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사리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싫었어요. 대학 다닐 땐 안 그랬는데. 아이들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도 하나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젊은 시절 다 보내 버리면, 나중엔 수업만 대충 끝내고 노는 늙은 선생님들 꼴이 될 거잖아요. 교장이랑 재단이 하라는 대로 설설 기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게 되는 그런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어요. 근데 막상 조합원이 되고 나면 학교에서 날 어떻게 볼지 무섭기도 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니 이중적이 돼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속하는 사람은 사실 없어. 학원이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고. 집에서 날 닦달하는 사람은 어머니 하나 뿐인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그냥 내가 뭘 하든 지켜보실 수밖에 없지. 근데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날 봐도 전혀 웃지를 않아. 벌써 오래됐지. 그러고는 가끔씩 한밤중에 날 불러서 너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냐, 너 때문에 내가 세상 살기가 싫다, 그런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 놓으셔. 글 쓰는 일은 거지 되기 딱 알맞은 일이라 생각하시는데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우리 어머니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은데, 문제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방식을 내게 자꾸만 강요하고 있다는 거야. 나에겐 내 삶이 있는데 말야.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엄마랑 같이 죽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그렇게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릴 거면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기술이에요? 기술 배우면 다 성공해요?”

“그럼 어떡할 거니. 다른 자식들은 네 나이쯤 되면 안정된 직업에 결혼까지 하는데 너는 어쩌려구 이래.”

“그건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잖아요. 제가 왜 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해요? 그리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십 년 늦게 출발하면 십 년 더 오래 살면 되는 거 아녜요?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결혼하면 뭐 해요? 하나같이 다 불행해지던데.”

“그럼 글 쓰면서 먹고살겠다고? 그게 말이 되니? 글 쓰면서 먹고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되겠니? 넌 어쩜 그렇게 비현실적인 생각만 하니? 네 나이쯤 되면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니?”

“비현실적이요? 지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현실이란 게 뭔데요? 대학원 가서 학위 받아 교수나 되는 거? 임용고사 쳐서 공립학교 선생님 되는 거? 아무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그놈의 안정된 일자리에 주저앉는 거?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마다 최선을 다해 겪는 시간들이 저마다의 현실이라구요. 현실이고 비현실이고 하는 건 없어요 어머니.”

“그럼 넌 뭐 먹고 살 거야? 평생 나한테만 의지하고 살 거니? 내가 이때껏 부모 된 도리로 널 키워 줬으면 너도 이제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잖니. 의료보험비 못 낸지 일 년이 넘어서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에미가 보이지도 않니? 네 사촌 동생을 봐라. 한 번에 임용고사 턱 붙어서 그 나이에 벌써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너처럼 그렇게 살려면 사범대는 애초에 왜 들어갔니?”

“알았어요. 돈 벌면 되죠? 이 모든 원인이 제가 다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거죠? 뭘 하든 돈만 벌면 되는 거죠?”

“그런 소리가 아니잖니. 내가 언제 너한테 글을 쓰지 말라고 하든? 글을 쓰는 건 좋은데 너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니니. 학교 선생님 하면 틈틈이 시간도 많을 거구. 그 시간에 글 쓰면 되구. 임용고사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그래서 피하는 거야?”

“임용고사 같은 걸로 좋은 선생님을 가려 낼 수는 없어요. 그건 그냥 시험지 받아 문제 푸는 거라구요. 그런 쓰레기 같은 지식들로 머리를 채워 가며 일 년 이 년 낭비하는 거 전 절대로 못해요. 어머니가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저도 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죠. 저도 글만 쓰고 다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살 생각 없어요. 저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밀린 의료보험비는 올해 안으로 내가 다 청산할 테니까.”

“그 말을 내가 처음 듣니? 작년부터, 아니 제대하고 나서부터 넌 계속 그랬어. 근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뭐니?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글이나 쓰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비난하고, 이상한 모임이나 나가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니?”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삶과 제가 생각하는 삶은 달라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겐 저만의 방식이 있어요. 저도 글만 쓰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좀 지켜보세요. 같이 죽자는 말이 뭐예요? 나이 스물 아홉에 죽긴 뭘 죽어요? 저는 제 인생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가 너만 생각하면 이 세상 살기가 싫어져.”

“그리고 그날 밤에 어머니가 기어이 무너지고 마셨지.”

“무슨 일 있었어요?”

“밤중에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으로 세간을 막 때려 부수시더라고. 그러고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시는 거야.”

“그래서요?”

“아버지가 뛰어나와 말리셨지. 나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고.”

“........”

“그래서 올해는 정말 기간제라도 뛰면서 돈을 좀 벌까 해. 집안에 보태기도 해야겠지만 우선 나부터 좀 독립해야겠어.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자취라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지.”


주영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탁자를 두들겨 가며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밝은 표정으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왈칵 멱살을 틀어쥐고 사는 게 그렇게 재밌느냐고 을러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서 나와 똑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뒤로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주영이가 조심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꺼냈다.

“......오빤 어머니랑 얼마나 자주 얘기해요?”

“글쎄.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호출이 있어.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선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나지.”

“여태까지 계속 그랬어요?”

“제대하고 나서 일 년 정도는 잠잠했어. 작년 봄부터는 집회 쫓아다니느라 집에 붙어있질 못했고. 뭐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어머니가 시름시름 속앓이를 하셨지.”

“.........오빠, 혹시 오빠 어머니의 꿈이 뭔지 알아요?”

“꿈? 우리 어머니는 간호 대학을 나오셨어. 나랑 내 여동생이 자기 앞가림 할 나이가 되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보고 싶으시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지.”

“오빠처럼 집안 문제 겪는 사람들 난 학교 다닐 때 많이 봤어요. 오빠도 많이 봤을 거잖아요? 승기 오빠도 그랬고. 스무 살 넘기 전까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었는데 얘가 대학 들어가자 노조니 민중이니 학생회니 하는 걸 대다수 부모님들은 견디지 못하셨죠.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면 어떻게든 서울에서 눈속임하며 활동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집안 문제가 어느 때고는 터졌어요. 저도 그래서 학생회장 할 때 집에서 뻔질나게 싸웠죠. 근데 저도 그랬지만, 집안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부모님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과 자신이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도 너무나 다르다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저도 아직까지 전교조 활동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부모님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어요. 물론 정말 내겐 소중한 분들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자꾸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안 할 수 없었어요. 근데 말예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나처럼 젊은 시절에 무슨 꿈을 가지고 살았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했을까. 세월이 흐르며 엄마와 아빠의 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진첩에서나 보는 젊은 시절 사진 말고는 엄마 아빠의 청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

“난 항상 엄마와 아빠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반대 쪽 진영에다 놓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꿈 꾸는 것들과 절대로 화해할 수 없을 줄 알았죠. 근데 마치 장기 말이 서로 상대편을 향해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의 삶과 내 삶이 정말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일까, 엄마 아빠와 함께 삼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나는 엄마랑 아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는 항상 겉돌았어요. 나는 언젠가부터 내 생각을 엄마 아빠한테 들려드리지 않기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와서 엄마가 차려 주시는 밥 먹고 그냥 내 방에 들어가 나 혼자 놀았어요. 아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생각들이 아마 조금씩 자라 온 거겠죠. 난 그걸 알고 싶었어요. 엄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시는지. 아빠는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지. 내가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엄마와 아빠는 이제 철 좀 들라고 정말 나를 몰아세우기만 하실지. 서로 말도 해 보지 않고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 못박아 두기는 싫었어요. 엄마 아빠랑 대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아직도 깜깜하기만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엄마 아빠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주영이는 남은 녹차라떼를 빨대로 포로록 들이마시고는 휴지로 입 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아직도 뜨겁기만 한 국화차를 아무 맛도 모르면서 홀짝거렸다.

“집안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던 후배들 생각을 요새 가끔 해요. 집에다는 대학생 국토 대장정 간다고 속이고는 한 달 동안 공장 가서 생활하던 후배 생각도 나고....... 연희는 사범대 학생회 활동하다가 들켜서 아버지한테 머리도 잘리고 뺨까지 맞았잖아요. 근철이도 감옥 갔다 나와선 아버지와 허구한 날 싸우면서 힘들어 했고. 다 그랬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속 썩이고 있거나 아니면 마음 고쳐 먹고 효자 노릇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날까요? 근데 정말 꼭 그렇게 둘 중 하나로밖에는 될 수 없는 걸까요? 불효자 아니면 효자? 그런 극과 극이 아니라 뭔가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도 나도 쉽지 않은 현실을 함께 살아가면서 비슷한 병에 걸린 건데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조금 다를 뿐인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어차피 내가 아프면 가장 많이 걱정해 줄 분들이 우리 엄마 아빤데.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집에 들어가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에이, 참.”


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누른 채 팔꿈치로 탁자를 짚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아버지는? 늘 밤 늦게 들어오셔서 방에서 혼자 TV를 보시다가 라면을 끓여 드시는,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어딘가로 나가시는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면 나는 또 다시 무거운 한숨과 침묵 앞에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겠지.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나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에게조차 당당히 내세우기 힘든 삶이다. 어째서 그럴까? 어머니와 내가 달라서일까?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단지 내가 내 생활을 제대로 꾸려 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고, 안 그러면 계속 옛날 일만 쓰게 된다고, 성훈이 그 자식이 그랬지. 젠장. 그 자식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니, 걔만큼 날 잘 아는 놈도 없었지. 비슷한 병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어머니, 엄마.......

나는 안경을 쓰고 남은 국화차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미지근해진 찻물을 담뿍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목으로 넘기니 알싸한 국화 향기가 입안에 남았다. 주영이가 앉은 뒤로 이름 모를 단발머리 아가씨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아가씨와 아이들은 그대로 멈추어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치어다보기 좋았다. 나는 나오는 대로 지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예식장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지하철 역 출구에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를 만났지. 아무 말도 없이 불쑥 전단지를 내미는 통에 나는 무슨 전단진지도 모르고 그걸 받았어.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그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불쑥불쑥 전단지를 내밀고 있는 거야. 어차피 신장개업이니 뭐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전단지였고, 엉겁결에 받아 쥔 사람들도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냥 버리거나 쓰레기통에 처넣었어. 하지만 할머니는 일단 자기 손을 떠난 전단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듯 꿋꿋이 서서 줄기차게 사람들을 향해 전단지를 불쑥불쑥 내밀었지. 그 전단지 한 장에는 어쩌면 집에서 혼자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주한테 주는 밥 한 숟갈이 걸려 있었을지도 몰라. 한 장에 한 숟갈, 두 장에 두 숟갈.......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할머니는 겨울 한낮에 바깥으로 나와 품을 팔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주영아. 내가 쓰는 글이 그 할머니가 불쑥 내밀던 전단지보다, 아니, 그 전단지만큼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쓰는 글은 아무에게도 따뜻한 밥 한 술 되지 못해. 따뜻한 밥이 뭐야? 찬밥 한 덩이라도 되면 다행이겠지. 내가 끙끙거리며 기껏 글 하나를 싸질러 놓으면 그 즉시 냄새가 풍겨. 지당한 말씀 늘어놓는 걸 누가 못하냐, 결국 너 잘났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냐, 너 혼자 읽으려고 이런 걸 썼냐, 뭐 그런 구린내가 풍긴단 말야. 난 남들한테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창피해. 어머니한테도.”

“......”

“우리 어머니는 몸이 약하신 분야. 명절마다 내키지 않는 큰집 뒤치다꺼리를 하고 돌아오시면 며칠은 앓아 누우시지. 몸이 약하셔서 어디 일하러 나가시지도 못해. 몸만큼 마음도 약하셔서 친척들한테 내 험담이라도 들은 날에는 몇 날 며칠을 그 얘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셔. 작은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심란해 하시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 뭔지 잘 알아.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꿈을 늦게라도 이루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언제나 생각에서 끝나지. 어머니의 꿈은 내 어린 날들에 저당 잡혔어. 지금도 어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꿈은 고스란히 내가 저당 잡고 있어. 한평생을 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이란 말야.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내 꿈을 이루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꼴이야. 몸도 마음도 앓고 계신 어머니한테. 돈 좀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게 되면 잔소리도 한숨도 듣지 않게 될 테니 속은 편해지겠지. 그래. 하지만.......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 자신과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들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도 생활일 거야. 집에서 살든 나가서 살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글쓰기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난 결국 모든 것에서 도망치게 될까? 아니면 뭔가 하나라도 붙잡게 될까?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 하지만 도망치는 삶은 죽는 것보다 싫어.”


말을 맺고 고자누룩해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영이는 갑자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뒤틀었다. 하품을 하면서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는 널려 있는 휴지들을 그러모아 탁자 밑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고서 나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요. 내가 뭘 알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하든 알아서 잘 살아 봐요. 오빠가 언젠 뭐 안 그랬나? 그리고 이젠 나이도 있으니 술 좀 줄이구요.”

“네가 시작한 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딴청야.”

“그나저나 어쩌죠? 형렬 오빠가 같이 집행부 하자고 할 텐데.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그냥은 못 빠져나갈 것 같아요.”

“어쩌긴 뭘 어째.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내가 그랬다며.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풋. 오빠가 폼 잡으면서 그때 또 무슨 말을 한 줄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나 아직도 기억하구 있어요.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생활은....... 뭐?”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정말 까먹었어요? 누가 한 말이라고 했더라? 그땐 되게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레닌의 말이었다. 다이 호우잉의 소설책에서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주영이에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그게 벌써 언제적 일인데 그래.”

“얼마를 살았다구 그렇게 늙은이처럼 말해요?”


탁자 위에서 주영이의 손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손전화를 열고 뭔가를 조몰락거리더니 손전화를 다시 닫으며 주머니에 넣고 주영이는 외투를 꿰어 입었다.

“형렬 오빠가 한 시간 뒤에 대학로에서 보자네요. 지금 일어나야겠어요. 오빠, 미안해요.”

“미안할 거 없다. 차도 얻어먹었는데 뭐.”

“서른 넘어서도 후배들 뜯어먹구 다니면 대머리 될 걸요?”

“가발 사 달라고 하면 되지.”


주영이와 나는 도너츠 가게를 나왔다. 따뜻한 곳에 오래 있다가 나와 보니 으슬으슬 추웠다. 참을성 없는 겨울 해는 벌써 가라앉으려는지 서쪽 하늘 부근에서 얼쩡거렸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강남의 고층 건물들은 눈치도 없이 주홍빛을 잘라 먹었다. 어딘가로 정한 곳 없이 가고 싶었다.

“가라.”

“오빠두 잘 가요.”


주영이와 나는 별 말 없이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무슨 계기로 또 만나게 된다고 해도 주영이와 나는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이였으니.

나는 코엑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리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지하철 삼성 역 가까이 다다르니 우람한 몸집으로 버티고 앉은 현대 백화점이 보였다. 일요일 해거름이라 그런지 길거리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나는 연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듯 최선을 다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월요일을 앞둔 자동차들은 험상궂어 보였다.

코엑스몰은 재래시장 못지않은 뜨거운 기운이 넘쳐 났다. 노동에서 나오는 열기라고 하기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상품들과 상품들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어느 서점으로 들어갔다. 책꽂이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의 이름을 건듯건듯 훑었다. 무슨 놈의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평생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책만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것 같았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 읽으면 백 살이 넘을 텐데 백 살 넘어서 좋은 사람이 되면 무엇 할까를 생각했다. 역시 내 나이엔 책 말고 다른 더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집이 꽂혀 있는 서가 앞에 주저 앉아 이것 저것 꺼내 읽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저리면 일어났고 다리가 아프면 다시 앉았다. 배가 고파져 손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표지 색도 예쁘고 시인 이름도 예쁜 시집을 한 권 들고 값을 치렀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어둑어둑해진 사위엔 사람이 만든 불빛들만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 불빛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작정 발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얼음판처럼 맨송맨송한 보도블록 위에 가로등이 늘어뜨린 내 그림자가 얹혀 따라왔다. 얼마쯤 걷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니, 내 생활과 다시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아파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달덩이 같은 전등 하나가 달린 어느 건물 입구에 기대어 섰다. 길거리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산 시집을 꺼내 펴 들었다. 대강대강 넘기며 눈어림으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 편을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시를 썼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토마토 하나를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물이 뚝뚝 묻어 떨어졌다. 버찌처럼 둥글고 조그만 것들이 포탄처럼 허공에서 붉게 터졌다. 무언가가 엎어지고 쓰러지며 우당탕 소리를 냈고, 우우 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둥글고 조그만 것들은 점점 많아지며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하늘 위에서 자꾸만 붉게 터졌다. 광현이, 성훈이, 승기, 주영이의 얼굴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녔다. 터널 같은 것이 보였다. 아, 이제 그만 좀 던져! 나를 못 맞히고 빗나간 토마토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혀 퍽퍽거리며 터졌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다시 넘어지는 것들은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덩실덩실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녔다. 터널 안쪽은 하나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라보는 그쪽에 출구가 뚫려 있었다. 눈앞에 거울 하나가 둥실 나타났고 그 안에는 내 얼굴처럼 생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토마토를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어머니처럼 생긴 내 얼굴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어서 저기 보이는 출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따라와. 우리가 매일 뭘 했는지 가르쳐 줄 테니. 살아있는 한 말이야. 우리는 뭔가를 하게 돼 있어.

고개를 들었다. 오렌지를 한입 베어 먹은 듯 입안에 시큼한 침이 흠뻑 고여 있었다. 나는 목울대를 크게 휘저어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한껏 벌리고 차가운 밤 공기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 진은영 시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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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학 , 결혼식 ,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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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식

    어제 새벽에 잠이 안와서 컴터 앞에 앉아 이글을 읽다 보니 두시간이나 지났더군요. 덕분에 오늘은 많이 피곤했고 잠이 왔지만 그래도 병학님의 솔직한 마음과 젊은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들을 느낄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감히 병학님의 인생에 끼어들어 한마디 하자면 기간제 교사로 살아보시길 권하고 싶네요. 비정규직의 고통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는 계기가 되실겁니다. 꼭 서울이 아니어도 울산,미신,창원등 공단에서 기간제 교사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듯 하네요. 주제 넘은 간섭 성가셨다면 미안하고요.

  • J

    잘 읽었습니다...

  • 하하하

    벌써 두 시가 다 됐는데 식은 시작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발 아래만 멀뚱히 내려다보며 걷는데 눈앞에 웬 네모난 것이 쑥 들어왔다. 지하철 선릉 역 출구를 막 나서는 중이었다. 네모의 한 귀퉁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샅에 끼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흰 등산 모자 밖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잔뜩 비어져 나온 할머니 한 분이 옆구리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낀 채 한 손으로는 울긋불긋한 전단지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할머니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리기도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켰다. 이 할머니는 전단지 한 장에 얼마씩 받으실까? 그 돈으로 누구를 먹여 살리실까? 내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드실까? 어차피 전단지가 자기 손을 떠나는 족족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엉겁결에 한 장을 받아 쥐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니 내 뒷사람들은 할머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재우쳐 갔고, 할머니께서는 들이민 손을 그때마다 군인 같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윗몸을 벌겋게 드러낸 남자가 갑각류의 우둘투둘한 외골격 같이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질을 과시하며, 무겁게 보이는 역기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여는 헬스 클럽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신다는 내용이 미끈한 글씨체로 전단지 구석구석에 쓰여 있었다. 성형외과와 헬스 클럽이 유난히 득시글거리는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 몸 가꿈과 이젠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누구나 자기 돈 들여 자기 몸 가꿀 수 있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은 두 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뛰어간다 해도 빠듯했다. 더구나 식장은 4층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구겨 외투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찾았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신부 쪽 친구들이거나 후배 놈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이겠거니 싶었다. 승강기가 4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여자 둘은 서로 아는 사인지 모르는 사인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둘은 확고한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내 앞에 훤히 펼쳐진 떠들썩한 분위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찾기 위해 시골뜨기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축의금을 넣는 하얀 상자가 보였고 신랑 쪽 사람과 신부 쪽 사람이 제각기 책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후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식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식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장 밖에서 끼리끼리 뭉쳐 재깔거리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식장 안을 넘겨다보았다. 후배 놈은 신부와 팔짱을 낀 채 주례 선생님 앞에 서 있느라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례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식장 안 이곳 저곳에 매달려 있는 화면으로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비쳤다. 녀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담뿍 먹은 신부의 얼굴은 후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TV와 길거리에서 낯을 익힌 화장기 진한 여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화장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입고 있는 턱시도며 신부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혼례복이며 전부 다 진부하게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누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아는 얼굴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자 후배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늘 소문으로만 접하는 얼굴들과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해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얼떨결에 튀어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후배들은 나를 지나쳐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축의금 받는 곳을 바라보니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다 후배들이었다. 흰 봉투를 품 속에서 꺼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 후배들의 손은 하나같이 고와 보였다.


    차비 대는 것도 빠듯한 내 형편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이랍시고 봉투에 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전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삼아 사람들과 늦은 저녁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후배 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후배였다. 손전화에 찍혀 나온 이름 석 자를 보며 후배 녀석과 함께 망나니짓하며 놀았던 대학 시절을 샘물 움키듯 떠올려 보았다. 전화를 받자 녀석은 다짜고짜 다음 주 일요일에 강남에서 결혼한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형, 미안해요. 내가 먼저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잘 살라는 말은 안 한다. 잘 살라고 하는 놈들 다 그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거 너도 알지? 광현이 네가 잘 살든 말든 하나도 상관 안 할 놈들이 꼭 입으로는 언죽번죽 잘 살라고 쉽게 말하잖아. 난 그런 말 못한다. 잘 살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저 네 선택을 존중할 뿐이야. 누가 알겠어? 얼마 못 가서 너 갈라설지도 모르잖아.”


    “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광현이는 웃으며 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청첩장을 보내 줄 모양이었다. 일요일 오후 두 시. 글쓰기 모임 일정 때문에 못 갈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결혼식 날에 보자고 광현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게 간 군대를 마치고 나와 보니 후배 녀석들은 죄다 자기 갈 길 가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었고, 한번 만나자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닌 나는 하나 둘 후배들과 멀어져 갔다. 군복을 입고 정기 휴가를 나왔을 때도 누구에게든 먼저 전화를 걸어 제발 좀 만나달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선배와 동기들은 먹고사느라 바쁠 테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만만한 게 후배들이었지만 후배들 역시 뭔지 모를 이유들로 하루하루가 빡빡할 것이어서 아마 나는 구차하게시리 시간 좀 거저 달라고 매달리는 거지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입대 전까지 살붙이처럼 가까이 지낸 광현이에게도 휴가 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광현이와는 두 학번 차이가 났지만 내가 2월 생이라 일 년 빨리 입학했고 광현이는 재수생이라 일 년 늦게 입학한 탓에 나이가 같아 술자리에서는 늘 나이 얘기가 우스개 삼아 안줏거리로 올라왔다. 비록 도중에 집어치우긴 했지만 녀석과는 <자본>을 함께 읽은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별의별 못난 꼴들을 속속들이 보여주느라 숫제 할말 못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녀석은 나보다 군대를 일찍 다녀왔지만 군생활 중에 휴가 나왔다는 연락 한 번 없이 고향인 청주에서 휴가를 다 보내고 슬그머니 복귀해 버리고는 했다. 다른 후배들은 녀석과 나를 하나로 묶어 ‘암울 형제’라고 불렀다. 술만 퍼마시면 어두운 표정으로 김광석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작 수컷처럼 자기 매무새를 멋지게 꾸밀 줄 알아야 정신 똑바로 박힌 대학생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딱 한번 광현이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리던 때였다. 차마 통화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하기엔 낯뜨거웠는지 나는 몇몇 이들에게 손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광현이였다. 광현이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임용고사에 연거푸 떨어지고 난 뒤 서울대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기간제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돈 얘기가 사달이었는지 그 뒤로도 광현이에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러구러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느닷없이 연락하고선 결혼을 한다니. 분명 당사자에게 들었는데도 꼭 거짓말 같았다.


    집에 들어 와서도 나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녀석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헤집어 보며 옛 생각에 젖었다. 녀석과 자취방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술 퍼먹으며 누구를 향해 어떤 불만을 쏟아 냈는지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인데 축의금을 못 줄 망정 뭐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다가 책이나 한 권 안겨 주기로 했다. 편지도 한 통 쓰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만 같구나. 변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홀몸이던 네가 결혼을 하고, 일자리 없이 헤매던 승기가 기간제 자리를 구하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오래 갈 것 같던 연인들이 어느새 각자의 길을 가고....... 하지만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차피 사람의 기준이겠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라면, 새로 만나든 새로 헤어지든 막상 변했다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저 일상이고 시간일 테니. 결혼이 일주일 남았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겠구나.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너한테 가끔씩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하면 너는 여자 친구 생겼다는 거짓부렁을 항상 지어내고는 했었지. 김광석 노래는 좀 부르니? 옛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했구나. 다른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떠올리면 이제 더 이상 팔 벌려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드는데,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결혼 축하한다는 진부한 말보다는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잘 살라는 말보다는 앞으로도 한결같이 너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공책에 괴발개발 쓰던 편지를 좍 찢어 구겨 버렸다.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책은 나중에 결혼식 끝나고 광현이 녀석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따로 한번 만나서 건네주기로 했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주례사는 금방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염없이 지루한 웅얼거림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식장 밖을 어슬렁거리며 낯익은 얼굴들과 시간을 때웠다.


    “어, 형!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하세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낯익은 얼굴들이 거듭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흔들었지만 대화는 이처럼 되풀이되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 모임을 꾸려 가던 녀석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녀석도, 소주 한 병을 누가 빨리 비워 내나 같이 내기하던 녀석도, 한 여자 후배를 두고 다투어야 했던 녀석도, 반년 정도 속으로만 좋아하고 고백 한번 못해 본 새침한 녀석도, 그 어떤 후배 녀석도 전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마 편한 내 동기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좀 이상했다. 광현이와 꽤나 허물없이 지낸 동기 녀석들이 식에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식은 안 보고 벌써부터 피로연 장에서 처먹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식권을 받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축의금 없이 식권을 받으려면 배짱이 필요하다. 나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축의금 상자가 놓인 책상에 다가가 식권 두 장만 달라고 했다.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식권을 주고 들어가는 피로연 장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혹시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일부러 두 장을 달라 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식권 두 장을 주었다.


    주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들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모님들은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삼십 년 가까이 키운 자식이 마침내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게 되는 순간을 부모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슴앓이 탓에 잠을 못 이루시던 어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서랍장 하나를 손가방으로 두들겨 부수려 하셨다.


    나이 스물 아홉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글 쓰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서서히 지쳐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보험 회사 상담원처럼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 계획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들려드릴 수가 없었다. 딱히 문예지에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쓸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시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길만큼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시험을 쳐서 지긋지긋한 공무원이 되는 길을 가느니 차라리 개똥이 널린 길을 낮은 포복으로 기는 게 나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교육학 교재들을 몽땅 외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임용고사부터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이 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집안 한구석에 음흉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생활비를 옛 소련에서 식량 배급하는 만큼이나 어렵사리 대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몇 달마다 한번씩 생활비를 얼마간 가져오셨고 나는 조그만 보습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버는 푼돈을 쪼개 달마다 생활비랍시고 보탰다. 우리집에선 노량진에 있는 한 입시 학원에서 수업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 동생이 가장 많이 벌었다. 온 가족 의료보험비는 일 년이 넘도록 밀려 있었고 다른 공과금들도 몇 달에 한 번씩 전기나 수도가 끊기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겨우 냈다. 구질구질하다면 구질구질한 살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살림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모아둔 돈도 없었고, 어느 눈매 고운 여자 만나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숫제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내 형편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천하태평인가 싶었다. 물론 어머니는 나와 달랐다.


    현실이라는 것은 어느새 어머니 마음에 들어앉은 무거운 병이 되어 암세포처럼 어머니의 몸뚱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에 가기를 바라셨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 교수 자리를 꿰찼으면 하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회 현장이나 노조 천막을 돌아다니며 글 쓰는 짓거리를 그만 두고 어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 결혼도 해서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돈 안 되는 글쓰기 같은 건 집어 치우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보겠다고 헌걸차게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 쓰는 일로 벌어 먹고 살겠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무언가 일거리를 하나 잡고 생활비를 벌면서 글을 써야 하긴 할 텐데, 어머니는 최소한 학교 선생님 이상 가는 자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내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가장 많이 밥줄로 삼고 있는 직업을 고작 불합리한 공교육 제도의 노예 신세일 뿐이라 우습게 보게 되었다.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서른을 코앞에 두게 되자 어머니의 한숨에는 더 축축한 습기가 맺혀 나왔다. 에휴 어이고 하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 줄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조금씩 어머니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예전처럼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듣지 못했다. 구정 연휴 동안 큰집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사촌 동생, 고등학교에서 얌전히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고 가슴에 뭐라도 얹히셨는지 명절이 끝나고 나서부터 내내 한숨 바람이셨다.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서 서점이나 시립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밤늦게야 슬그머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있으면 거실 마루에 누워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잠을 못 이루시더니 느닷없이 이불을 차 버리고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을 들어 마루에 있는 서랍장에 마구 두들겨 대셨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뛰어 나가 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를 말리고 계셨다. 동생은 친구들과 먼 곳으로 놀러 가 집에 없었다. 내 한 팔로도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집으로 손가방을 서랍장 모서리에 쾅쾅 마구 짓찧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아 끌자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아 끄윽 끅 울음을 쏟아내셨다. 방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연신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는 쇳소리 섞인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끊은 지 한 달째가 되어 가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정말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좀 벌어서 어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모르긴 해도 광현이와 신부 부모님들은 아마 행복할 것 같았다. 아들이며 딸이며 전부 학교 선생님으로 남 부러울 데 없이 키워 놓았고, 이젠 혼례까지 치렀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젠 손자를 바라게 될까? 광현이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할까? 차 사고, 집 사고, 우유 값 벌고, 좋은 선생님에 착한 남편 노릇하며 수더분하게 늙어가게 될까? 정말 그렇다면 광현이도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었다.


    신랑 신부 행진을 하기에 앞서 광현이의 동기이자 내 후배이기도 한 사회자가 신랑에게 짓궂은 장난질을 시켰다. 광현이는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린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식장 안은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거푸 팔굽혀펴기를 하고 “심봤다”를 몇 번이나 외친 끝에 광현이는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나도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광현이 눈에 잘 뜨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광현이가 깜짝 놀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괜히 열없어져서 “너 머리가 그게 뭐냐? 양아치야?”라고 해 버렸다.


    행진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 신부의 친척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갔다.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먹고 나온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사진은 됐으니 바로 피로연 장으로 들어가 배나 채울까 궁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승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뭐야. 지금 오는 거야?”


    “아니, 안에서 먹고 지금 나오는 거다.”


    “우리 동기들은 안 왔어? 안에서 처먹고 있는 거 아냐?”


    “없어. 안 왔다.”


    나이 서른에 이마가 훤히 벗겨진 승기의 뒤로 후배들 한 떼거리가 걸어 나왔다. 다들 먼저 피로연 장에서 배를 채우고 사진 찍을 때쯤 해서 나온 모양이었다.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까지 찍고 밥 먹기로 하고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후배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새 뭐 해요? 돈 되는 일 빼고 다 한다. 그럼 연애도 하겠네요? 연애가 돈 안 되는 일이었나? 그럼요, 연애하면 돈이 얼마나 나가는데. 야, 그러려면 우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신랑 신부의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몰려 나온 빈 공간을 젊은이들이 거침없는 걸음새로 채우기 시작했다. 다들 예쁘고 새뜻하게 보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결혼식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으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말끔한 정장 몇 벌쯤은 옷장 속에 쟁여져 있는, 굳은살 없는 손과 그을림 없는 얼굴을 가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들이 신랑과 신부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장을 몹시 싫어하는 나는 눈앞에 활짝 펼쳐진 정장들의 물결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젊은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어디론가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식장 바깥으로 나가며 승기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간제 구했다며?”


    “그렇게 됐다.”


    “야, 나도 어디 기간제 하나 구할 수 없냐? 돈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아야지 숨막혀 죽겠어.”


    “집에 엄마랑 둘이 있으면 분위기가 폭발할 것 같지? 나도 알지 그 기분.”


    내가 출근하는 학원은 승기가 꽤 오랫동안 맡아 하던 걸 내게 슬쩍 이어준 곳이었고, 승기는 그 뒤로 다른 학원들을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결국 임용고사 공부를 시작하며 강사 일을 정리해 버렸다. 어디서 공부를 하는지 승기는 그 뒤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임용고사가 있던 날 저녁에 승기는 내게 전화를 걸어 시험을 망쳤으니 일단은 기간제나 알아봐야겠다며 쓰게 웃었고, 그게 지난 세밑이었는데,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결국 기간제 선생님 자리를 하나 구한 모양이었다.


    “원래 학기 중에는 잘 안 구해지지 않아? 방학이나 돼야 자리가 날 텐데.”


    “학교마다 다르지. 여자 선생님 출산 휴가 때문에 기간제 쓰는 학교도 있고. 지난 한 달 동안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백 통도 넘게 출력했어. 원서를 좆 빠지게 내밀고 다녀도 잘 안 구해지더라. 요새 사립 학교들이 눈이 너무 높아져서 토익 점수니 학점이니 뭐니 장난 아니게 따지거든.”


    “너는 어떻게 구했는데?”


    “쑤시고 다니다 보니 운 좋게 된 거지 뭐.”


    “자기가 원서 들고 학교마다 찾아 댕겨야 하는 거야? 원서는 어떻게 넣어?”


    “경기도 교육청이랑 서울, 인천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구인구직란이 있어. 거기 보면 어디 어디 학교에서 기간제 구한다는 공고가 뜨거든. 그거 보고 내는 거야.”


    “그래......”


    막상 기간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했다. 기간제 자리를 덜컥 구해서 아침마다 출근하게 된다고 해도 꽉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을지, 어딘가를 취재해서 글을 쓸 수는 있을지, 책 읽을 시간은 날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필요한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 전부라 생각하며 부여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버려야 할 것이다. 피로연 장에 있을 술 생각이 났다.


    “너 밥 먹었다구 그랬지? 집에 갈 거냐?”


    “글쎄. 밖에 나가서 한 잔 할래?”


    “나 밥도 안 먹었어. 그러지 말고 너도 들어와서 2차로 밥 먹어라. 응? 안에 공짜 술도 있구.”


    “밥이 술이냐? 무슨 2차야? 나 식권도 없어.”


    “걱정 마라. 나한테 두 장 있다.”


    우격다짐으로 승기를 끌고 피로연 장으로 들어 갔다. 느끼한 음식 냄새가 금세 콧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는 과일을 몇 개 집은 승기와 함께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한산한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이컵에 맥주를 붓고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에 쓴 물이 가득 괴어 올랐다.


    “아우, 써.”


    “웬일이냐? 결혼식에 와서 네가 소주를 안 처먹고?”


    “나 지난 연말에 술 때문에 쓰러졌잖냐. 1월 중순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았어. 오늘이 2월 8일이니까 술 안 마신지 한 달 조금 넘었네.”


    “너 술 마신 게 하루 이틀이냐? 얼마나 마셔댔길래 그래?”


    “글쎄. 한 반년 넘게 물처럼 마셨나? 작년 봄에 촛불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 이런저런 현장에 돌아다닌답시고 술만 처먹고 다녔지 뭐. 노조 천막에서 조합원들이랑 술 마시면 나 땜에 밤 새느라 다음날 노조 회의 하나가 작살이 났으니까.”


    “오늘은 마셔도 되는 거야?”


    “맥주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근데 오랜만에 마시니 술 맛을 모르겠다.”


    승기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 술을 마셨다. 수배를 피해 학교 학생회실에서 먹고 자던 추레한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수배가 풀린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때운 승기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다시 학교로 복학해서, 승기가 한창 때 대학 안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는 어린 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학내 조직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고, 나도 얼굴을 어릿어릿하게 기억할 뿐인 후배들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쉽사리 마음이 꺾였다. 팔십 년대 투사들이 구십 년대에 들어 방황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이른바 ‘후일담’ 소설들을 한때 염소가 종이 먹듯 마구 읽어 치운 적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 것들을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보며 조금씩 되짚어 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한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이던 녀석과 으리으리한 피로연 장에서 고깃점을 잔뜩 쌓아 놓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나는 이미 소설 속에서 숱하게 읽었다. 술에 얼근하도록 취하면 피로연 장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후배들 멱살을 잡아야 하는지, 어디에 털썩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쳐다보아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나는 죄다 알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서 몇 번 나가 보았던 동기들 모임에서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혼과 집장만과 자가용과 대학원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동기들 틈에 끼어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어휘들을 속으로 주물럭거리며 줄담배를 피워 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 싫었다기보다는 내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들 자체가 너무나 진부하다는 것이 못 견디도록 싫었고, 이미 팔십 년대 작가들이 오래 전에 소설로 썼던 이야기들을 이제 와서 내가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사실 또한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돈 벌고 애인 만들며 안락한 삶을 향해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 또한 점점 진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어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도 아니고 후일담이든 뭐든 소설에 쓰여진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었지만, 나 자신을 보고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거기서 거기인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아직 삼십 년도 채 살지 않은 녀석이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다른 어떤 생각 못지않게 진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러다간 진부함이라는 터널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귤을 우물거리고 있는 승기의 하얀 양복 와이셔츠 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훤히 벗겨진 이마에는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머무르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고깃점들을 아구아구 입속에 처넣었다.


    “요새 뭐 하냐?”


    승기가 짐짓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오늘 하루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돈 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내 대답에 그처럼 되물어 준 사람은 승기가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말을 잇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물거렸다.


    “글은 계속 쓰고 있냐? 글쓰기 모임 한다면서 거기엔 아직도 나가?”


    승기한테는 굳이 숨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 시간도 때울 겸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 보기로 했다.


    “글이라. 글쎄. 모르겠다. 써도 써도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나 하는 생각밖엔 안 들어. 별로 많이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야. 모임에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구. 글을 쓰면 뭐 하냐. 읽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한 편 쓰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아니, 돈을 바라고 써야 하는 거 맞지. 내게도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근데 돈 나오는 글을 쓰려면 등단을 하든 뭘 하든 해서 글에 돈을 쳐주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생각은 있긴 있는데 들어갈 능력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능력은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정말 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다른 밥벌이를 해야 하나.....”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애들 알아?”


    “알지. ‘싸구려 커피’ 부른 인디 밴드 말하는 거지? TV에도 가끔 나오는 걸 보니 인디 밴드 치고는 꽤 알려진 모양이던데.”


    “장기하가 인터뷰하는 걸 보면서 너 생각을 했거든.”


    “뭐라고 그랬길래?”


    “기자가 좀 짓궂게 장기하한테 인디 음악 하면서 배고플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어. 장기하는 배가 고파도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지 웬만하면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 ‘웬만하면’이라는 말이 걸리더라고.”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말이네. 견딜 만하니까 그러지.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아직까지는 ‘웬만하면’이야. 나 참. 아직은 누워 잘 곳은 있고, 밥은 안 굶고 다니니......”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고민 많고 글재주 있는 놈들 여럿 있었잖아? 학교 선생님으로 나갈 생각 전혀 안 하던 녀석들 지금은 전부 다 학교나 학원에 가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사범대 나왔겠다 학력 되겠다 한 자리씩 잡으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살면서 보험 하나씩 들어두는 건 필요하긴 한가봐.”


    “어떤 놈들은 돈 많은 여자 친구를 보험으로 삼고 사귀기도 하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세컨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수연이는 잘 있냐?”


    “잘 있기야 하지. 돈 버느라 바빠.”


    “너희도 젊은 연인들 치고는 오래 가는 거야. 요새 누가 오래 연애하냐? 제깍 결혼하든가, 아니면 가망 없는 사람 등지고 딴 사람 찾든가 하지. 얼굴은 자주 봐?”


    “못 봐. 가끔씩 만나도 회사원과 백수라는 신분이 정말 다르긴 다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 걔야 지금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지. 경력도 좀 되고. 나야 작년 내내 임용고사 준비만 했지 돈을 벌었냐 일을 했냐. 학원 하면서 벌어놓은 것도 거의 다 헐어 쓰고 보니 수연이한테 기념일마다 선물 챙겨 주는 것도, 날씨 좋은 날에 같이 놀러 다니는 것도,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 내 담뱃값 대는 것도 힘드니 말 다 했지. 학교 다닐 때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서 떡볶이 같은 것도 같이 맛나게 잘 먹었는데, 이제는 그런 데는 구질구질해서 싫대. 길거리를 가면서도 비싼 옷이나 액세서리 파는 데에서는 한참씩 있다가 가고......”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안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임마. 마음만으로 되는 게 이 세상에 어딨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수연이와 내가 자꾸 조건이 안 맞아가고 있다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뭐가 사랑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에 조건이라고 해 봤자, 결국 돈밖에 없잖아.”


    “돈이 아니라 현실이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돈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뜻해. 연애도 못하는 너는 모를 거다.”


    나는 수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하얀 얼굴에 똘방똘방한 눈으로 항상 웃고 다니던 수연이는 승기가 공익근무요원 노릇을 할 때 과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승기와 사귀게 된 후에 수연이는 어느 날인가 승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하던 시간들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요. 그 시간에 공부를 더 못 한 게 두고두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암, 그럴 수 있지. 조직이란 건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까딱 잘못하다간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할 일은 태산 같이 쌓여 있는데, 바꾸고 고쳐 나가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주변 사람들은 좀처럼 거기엔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항상 몇몇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술꾼이 되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힌 우등생이 되기 일쑤였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다운 ‘낭만’이라는 것을 넉넉히 누린 것도 아닌 어느 졸업생이 금테 둘러진 대학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집안 사정도 몹시 어렵다면?


    꿈 꿀 수 있는 여지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현실과는 어떻게든 화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놈의 현실이란!


    “예쁘지만 가난한 여자는 자기의 몸값을 제대로 알지. 그래서 잘생겼지만 돈 없는 남자 아니면 못생겼지만 돈 많은 남자를 골라. 못생겼지만 돈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야. 어딘가 흠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게 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결혼도 어차피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손해를 보려구 하겠냐? 내가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니 돈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나이 서른에 아직도 시험 준비하랴 기간제 구하랴 빌빌대니까 당연히 성에 안 찰 수밖에.”


    승기는 맥주를 샘물 먹는 소처럼 벌컥거리며 쭉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동화책이나 소설이나 드라마 보면 조건 같은 거 안 따지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많이 나오잖아? 그거 다 개소리야. 책이나 TV에 나오는 남녀는 죄다 미남 미녀들이니 일단 외모라는 조건에서는 서로 들어맞는 거지. 나머지는 작가들이 다 알아서 쓰는 거고. 항상 결혼에 골인하거나 부자가 되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나오는 거 봐. 현실에서도 똑같아.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결국 조건 아니면 돈이야. 자기 조건 제대로 아는 눈치 빠른 사람은 자기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돼 있어.”


    나는 승기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시절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더라. 민중 생존권 쟁취와 학원 자주화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라크 전쟁 반대와 노동자 농민의 정치세력화와...... 하긴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보다는 차라리 승기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차라리 더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도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승기의 말을 받았다.


    “사실 조건이라는 것을 따지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오히려 피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일단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고를 거잖아. 그거부터가 이미 조건을 따지자는 건데. 안 그래? 그러면서 조건은 하나씩 늘어가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얼굴이 흉측하게 생기지 않아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비슷한 취미가 있어야 하고...... 외모나 학벌이나 집안, 재산 같은 걸 속속들이 따지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 자기네 혈통을 관리해야 하는 엄청난 부자들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쓰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 조건을 내건다고. 그리고 그렇게 내건 조건이 또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새로운 조건이 되고. 무엇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할 때는 그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는 소리잖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쨌든 문제는 말이야. 그 조건이라고 하는 게 우리들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얼마나 잠식해 가고 있느냐 하는 건데. 막말로 승기 네가 돈이 없어서 수연이 걔가 멀어져 간 거라고 쳐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거지로 나눠지는 건 아니니까, 아마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경제적 능력도 부자와 거지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 정도의 능력이겠지. 너는 그런 애매한 위치의 능력조차 걔를 위해 발휘할 수 없었다는 건데, 그것도 너의 잘못은 아닐 테구. 빌어 처먹을 놈의 학교들이 기간제만 자꾸 쓰려고 하니까 임용고사 정교사 정원이 확 줄어서 그런 걸 테지? 너와 수연이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달라서 이렇게까지 된 거 아냐? 정말로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것이 네가 가진 것 이상 가는 경제적 능력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못 미치는 네가 실망스러워서 등을 돌려 버린 것이라면, 너의 인간적 가치는 끝내 돈이라는 것에 납작하게 짓눌려 버린 것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수연이를 두고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어. 걔가 풍족한 삶을 원하는 인간이라면, 사실 풍족한 삶은 누구나 속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거니와, 걔가 그런 삶을 원하도록 자꾸만 부추겨 온 보이지 않는 힘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야지. 바로 그 힘이 너라는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갉아먹어 버린 몹쓸 것 아니겠어?”


    내가 한바탕 쏟아 낸 연설을 듣고 승기는 손을 홰홰 젓더니 귤을 집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관 둬 임마. 괜한 얘기를 꺼내가지구. 어디 돈 때문에 그런 거겠냐? 남녀 사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넌 연애도 못하는 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논문을 쓰냐? 그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만큼 케케묵은 개소리가 또 어딨어?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거야? 베네수엘라처럼 대안 체제를 향해 가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수연이가 나한테 다시 매달릴까? 아냐. 여자들 대부분이 다 비슷해. 이십대에 꿈을 꾸든 지랄을 하든 뭘 하든, 서른 넘어가면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게 되어 있다고.”


    “네가 여자를 몇이나 만나 봤다고 그래? 그리고 어디 여자만 그러냐?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자꾸 현실 현실 하는데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나는 얼마 전 한 친구와 감자탕을 먹으며 눈을 치뜬 채 똑같은 물음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구정 연휴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이었다. 글쓰기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물 한 잔을 앞에 둔 채 살이 발라진 닭 뼈다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터뷰를 어떻게 짤 것이며 누가 어디를 맡아 글을 쓸지, 다음 모임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열띤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잦은 술자리와 줄담배 탓에 지난 세밑에 결국 거꾸러진 후 나는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학원에만 겨우겨우 출근했고, 다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워 있으면서도 깨죽깨죽 뭔가를 읽었고, 귀가 아프도록 음악을 들었다. 뉴스 같은 건 하나도 보지 않았다. 배고프면 밥을 먹었으며, 잠이 오면 이불을 덮어쓰고 잤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썼던 적지 않은 글들을 떠올려 보면 나 혼자서만 아무 의미 없는 헛지랄을 한 것 같아서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내 글쓰기를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도 나는 정물화 속 꽃병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내게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재능이란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빚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넘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게을러 빠진 소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귓등으로 흘리며 튀김 닭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손전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전화 화면에 찍힌 이름 석 자를 보고 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피돌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 미친 놈아. 난 너 죽은 줄 알았다.”


    “잘 있었냐. 지금 밖인가 보네?”


    “서울 올라온 거야? 얌마, 네가 무슨 싼타 클로스냐? 일 년에 한 번 보는 게 왜 이리 힘들어?”


    “지금 서울이다. 아는 사람들이랑 한 잔 하구 학교 근처로 가는 길야. 너 혹시 지금 나올 수 있어?”


    “지금 몇 시나 됐냐? 어.... 그러니까...... 열 시네. 여기 대학로야. 학교까지는 삼십 분이면 간다. 근데 꼭 오늘 봐야 돼? 날 잡아서 승기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미안. 오늘 말고는 시간이 안 날 것 같네.”


    “그럼 여기 끝나면 갈 테니까 제기 시장 쪽에서 자리 잡고 기다리구 있어. 나 감자탕 먹고 싶다.”


    “어서 와라.”


    뒤풀이가 끝나고 나는 대학로에서 버스를 탔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성에가 뿌옇게 낀 감자탕 집 문을 드르륵 밀어젖히며 눈으로 성훈이를 찾았다. 성훈이가 팔을 번쩍 쳐들었다. 나는 성훈이에게 다가가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껴안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올라왔어? 연락도 안 되더니.”


    “자꾸 내 사망설이 퍼지고 있길래 나 살아 있소 하려구 올라왔지.”


    대학 시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감자탕 집이었다. 주인 형님에게 인사를 하니 오랜만에 왔다고 함빡 웃어 주었다. 저녁을 튀김 닭 몇 조각으로 때워서 배가 몹시 고팠다. 기본 안주인 비빔국수 한 사발을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나를 성훈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이구, 잘 먹네.”


    “남 먹는 거 쳐다보면 좋냐? 너는 먹었어?”


    “먹었다. 마이 묵어라.”


    오글보글 감자탕이 끓자 성훈이는 내 잔에 소주를 붓고는 소주병을 내게 넘겼다. 성훈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이 녀석 잔에 술을 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요새 술 못 마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하의 술꾼인 네가 술을 못 마신다니. 죽을 때가 된 거 아냐?”


    “죽을 때는 아직 안 됐는데, 죽을 뻔하긴 했지. 하도 마셔 대다가 지난 연말에 쓰러졌었어.”


    “그러게 작작 좀 먹지. 우리도 늙었어.”


    “난 아직 이십대야.”


    “자랑이다. 그래 봤자 스물 아홉이면서. ”


    남들 보다 일 년 일찍 입학한 나와 달리 성훈이는 재수를 해서 남들 보다 일 년을 늦게 들어오느라 나와는 두 살 차이가 났다. 성훈이 여동생이 나랑 동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이 잘 맞았고,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술을 퍼마시며 우리를 거부한 여자들과 그 여자들을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한 이 세상을 향해 군소리를 퍼부어 댔다. 성훈이는 내가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마시든, 돈이 없어 자판기 커피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맥주와 소주를 사 놓고 소주 안주로 맥주를 마시든,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수업 도중에 홀짝거리든, 학교 식당에서 김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한번도 놀라지 않았고 나를 알코올 중독자라 닦아세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가끔은 서로 싸움질도 했으며, 서로가 자신의 가장 못나고 부끄러운 사연들마저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친구라 생각했다.


    “너랑 마지막으로 본 게 지지난해 연말이었지?”


    “벌써 그렇게 됐네.”


    “자주 좀 올라오지 그랬냐. 그렇게 바빠?”


    “알다시피 내가 있는 곳이 학교 기숙사잖아. 당직도 자주 서고 하니까 평일엔 시간 내기가 좀 힘들어. 이번에도 휴가라서 겨우 올라온 거야.”


    “아직도 그 새터민 학교에 있는 거 맞지?”


    “응.”


    성훈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는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새터민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을 빠져 나온 북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술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성훈이는 잔을 비웠고 나는 입술만 축이고는 내려놓았다. 다시 소주병을 들어 성훈이 잔을 채워 주었다.


    “지방에만 있다 보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더라.”


    “그 학교에는 너랑 마음 맞는 사람 없구?”


    “한 명 있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인데, 인제 삼십대 중반 정도 됐어. 가끔 내 방이나 그 선생님 방에서 밤새 술 먹기도 하고...... 그냥 그 선생님과는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다른 선생님들은? 교무실 분위기가 좀 그래?”


    “남자 선생님들이 여럿 있긴 한데. 꼭 해병대 분위기야. 우르르 몰려다니며 와아 하고 떠드는 분위기 너도 알지?.”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응. 그래서 같이 안 다녀. 하나도 안 친하지.”


    “아이들은 좀 어때?”


    돼지 등뼈를 뒤적이던 성훈이가 큼지막한 것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내 앞 접시에 얹어 주었다. 나는 국자로 국물을 퍼서 등뼈 위에 끼얹었다. 성훈이는 자기 앞 접시에도 등뼈 한 덩이를 얹고선 국물을 떠 먹으며 말을 이었다.


    “착해. 너무 착해서 탈이지. 말하는 대로 다 믿어. 학교 마치구 남한 사회로 나가면 많이 다칠 것 같아.”


    “나이는? 고등학생들인가?”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양해.”


    “예전에 학교에서 토론회 했던 거 기억 나? 탈북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뭐 그런 주제로 토론회 열렸었는데.”


    “그래? 기억 안 나는데.”


    “그때 한쪽은 다함께에서 나온 사람이었고, 다른 한쪽은 반미 청년회에서 나온 사람이었지.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은 한총련 중앙 간부 출신이었고. 반미 청년회 사람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탈북은 남한 기독교 세력과 연계돼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획 탈북이니 남한 정부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고, 다함께 쪽은 정치적인 이유든 아니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인권을 지켜 주는 거라면서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서로 팽팽히 맞서던 중에 갑자기 객석에 있던 남학생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지.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북한 출신 학생이었어.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지. ‘탈북자인 제가 보기에 북한은 일당 독재 국가에 불과합니다.’ 북한에 살다가 온 학생이 직접 말을 하니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계속해서 북한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줄줄이 나열하니 거기서 그만 토론회는 끝나 버렸지. 물론 그 학생의 시선도 북한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북한에 살던 시절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 힘들었던 기억이라 그런지.”


    “근데 북한에서 남한까지 오는데도 굉장히 다양한 경로가 있지 않아? 중국을 거쳐서 올 수도 있고, 러시아나 몽골 쪽까지 지나서 올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 가서 돈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팔려 오기도 한다던데.”


    “그런 경우도 있긴 있는데 그건 아이들의 경우가 아니라 아이들 부모님의 경우가 많지. 조선족 여성이나 북한 출신 여성이 남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북한을 일단 빠져나와 중국에 가더라도 신분이 애매하니까 드러내 놓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지. 온갖 힘든 일 다 하다가 고생 끝에 남한에 오더라도 그놈의 편견이라는 벽에 또 부딪히게 돼. 자식이 딸린 여성들은 더욱 힘들지.”


    “새터민 아이들도 요새 아이들이랑 비슷한가? 주로 뭐 하고 놀아?”


    “비슷하지 뭐.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좋아하고...... 길거리에 널린 게 화려한 옷과 비싼 물건들이잖아. TV에는 잘 사는 사람들 얘기만 나오구.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나중에 남한 사회로 나가게 되더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왕창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렇게라도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어.”


    “현실이라...... 너는 아이들과 상담 같은 거 안 해?”


    “하지. 근데 내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뭘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은 쉬운 게 아니라고? 걔들은 지금 새터민 출신으로서 처해 있는 자신들의 현실 자체가 결코 견디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아이들이야. 선생 노릇이나 하는 내가 현실을 말해 봤자, 그런 말을 하는 나부터가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걔들은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들이 아니야. 자기가 남한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건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탈북자라는 자신의 조건은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돈을 악바리처럼 벌어서 일찌감치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 말이나 다 믿는 착한 아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며 사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섭도록 변할 수 있지.”


    “너도 참 쉽지가 않겠구나.”


    “난 그냥 아이들이 몸 건강히 학교 마치고 나가서 별 탈 없이 남한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어.”



    성훈이는 잔을 들어 쭉 들이켰고, 나도 입술만 축이던 아까와 달리 아주 조금만 목으로 넘겨 보았다. 꼭 화학 약품을 마시는 것 같이 입안이 썼다. 성훈이가 자기 손으로 빈 잔을 채웠다.


    “현실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나 작년 성탄절쯤에 아는 사람들이랑 지방에 취재하러 내려갔었어. 경상북도의 한 도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랑 만나서 인터뷰를 했지.”


    “근데?”


    “고등학생들은 인문계가 아니라 실업계, 그러니까 공고 학생들이었어. 힘들게 살더라.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장들에게 월급 다 뜯기고, 점장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불법인 거 아느냐고 협박해서 돈 안 주고, 근데 학생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고용주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가르쳐 주는 데가 없으니까.”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주고?”


    “학교에서는 졸업 후 취업에만 신경 쓰지 재학 중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 쓴대. 그 학교만 그러는지 공고들은 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공고 졸업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빠지지 않아?”


    “학교와 인근 중소기업들을 연결해서 맞춤형 취업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 있대. 고3 끝날 때쯤 되면 일터에 나가서 일을 조금씩 배우고, 졸업한 다음에는 바로 그 일터로 채용이 된다고 하더라고.”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난 얘기만 듣고는 잘 모르겠네.”


    “공장에서 확실히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나쁠 거야 없겠지.”


    “근데 걔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가 다른지는 알아?”


    “그게 문제야. 비정규직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양산되고 있고, 정규직에 비해 어떤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정규직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돈도 덜 받고,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 정도는 주위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걔들이 자신들의 꿈에 대해선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들은 꿈 같은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안 꾼대. 빨리 돈 벌어서 성공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게 꿈이라는 거야.”


    “...........”


    “그러니까 나 같이 글 쓰며 사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걔들 눈에는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 걔네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정글이야. 아니, 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경쟁이라는 걸 일찌감치 배우지. 기업에 입사 원서를 쓸 때도 성적 순으로 끊는다니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로 안 보이고 적수로만 보이는 거야. 돈벌이와 관련이 없는 꿈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다른 인문계 학생들보다 현실을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걔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라.”


    “그게 바로 그 아이들의 현실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집이 어려우면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 가야 할 테니까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된 애들이었는데 낭만적인 꿈 하나쯤은 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걔들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 같은 건 쓸데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선 꿈을 버린 거야. 꿈을 버리는 게 꿈이라는 거야.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을, 돈 안 되는 허황된 꿈보다는 돈 되는 현실적인 직업을 걔들은 원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걔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걔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걔들은 사회로 나가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 어떤 학생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언론에서 너무 안 좋게만 보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까지 말했고. 다들 비정규직 따위는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근데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착각이잖아! 비정규직은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신분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신분이고,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머릿수를 늘리고 있는 신분이라고. 노동 유연화다 뭐다 앞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계속될 텐데, 아무리 정규직 되겠다고 발버둥쳐 봤자 비정규직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는 작동 방식을 박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더구나 요즘 이명박 정부가 뭐라고 떠들고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고? 나 참. 고용주들의 목적은 오직 이윤일 뿐이지 노동자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야. 정부는 항상 고용주들의 편이고. 돈만 벌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이 걔들이 돈 많이 벌게 그냥 놔둘 것 같아? 걔들이 말한 현실이라는 건, 걔들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죄다 환상이야. 환상이라고. 안 그래?”


    나는 앞에 놓인 돼지 등뼈를 두 손으로 홱 꺾어 비어져 나온 고깃점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성훈이는 말없이 잔을 비우고는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가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네가 한번 말해 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어떤 게 현실이야?”


    “........”


    “그래, 꿈은 꿈으로 남을 때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경우도 있어. 꿈은 현실이 아니게 되고, 현실은 꿈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하지만 꿈은 꿈대로 버리게 만들고, 현실은 현실대로 환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무엇을 마음 속에 품든 죄다 거짓말 아니면 환상이 되어 버리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나에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인데, 내게 현실이라 함은 그거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고 환상이라 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생각하자니 그 현실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말짱 환상이 되어 버리고...... 정답은 결국 취직인가? 정규직인가? 하지만 취직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되나? 취직과 안정을 현실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마취된 것처럼 하루하루 아무것도 못 느끼고 살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열을 내며 말을 쏟아 내다가 성훈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성훈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뒷벽에 기댄 채 건너편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 속 아리따운 여배우를 멀거니 쳐다보았고 성훈이도 말없이 담배만 뻐끔거렸다.


    “내가 요새 이렇다. 말만 많아졌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갈까?”


    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성훈이는 입구 앞에서 새로 붙여 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게도 한 대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학아.”


    “응?”


    “요새도 글 써?”


    “아니.”


    “왜?”


    “쓰기 싫어졌어.”


    “아까는 글쓰기가 네 현실이라며.”


    “현실? 현실이라....... 현실이 병이 되겠다 젠장.”


    “사랑하는 누군가는 있어?”


    “없어.”


    “어머니는 잘 계시구?”


    “나 때문에 잘 못 계시지.”


    “너 걱정 많이 하시는구나.”


    “걱정되시겠지. 서른이 내일 모레인 녀석이 글 쓴답시고 빈둥대고만 있으니. 이젠 친척들에게 나 보이는 것도 창피하신가 봐.”


    “집 형편은?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 뭐.”


    “.......”


    “그래 맞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밥벌이를 하긴 해야겠지. 근데 뭘 해야 할까? 난 글 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다 병학아. 그런 말하지 마. 너도 아닌 거 알 거야.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봐. 우선 생활을 하는 거야. 난 너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어떻게든 생활을 해 나가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옛날 일만 쓰게 될 거야.”


    “옛날 일......”


    “네가 글 쓰는 걸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고 끝까지 그걸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한, 너는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쓰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니?”


    “.......”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다른 부잣집 자식들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꼭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은 다들 가지고 있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네가 만났다는 그 고등학생들도 떼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불편한 거니까.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에게 피해 안 주면서 남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삶에 지치더라도 그걸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꿈이겠지. 그런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 물론 그러기는 힘들어. 하지만 그게 밥벌이를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들과 밥벌이 사이에 너무 선을 긋지만 말고, 음, 그러니까, 바늘에 꿴 실이 있다고 생각을 해 봐. 바늘이 먼저 길을 뚫지만 실은 바늘과 한 몸처럼 되어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같이 가잖아. 그건 바늘에 실이 얼마나 단단히 매어졌느냐에 달렸지. 생활이라는 것도, 네가 말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몰라.”


    앞만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성훈이를 쳐다보았다.


    “......애들이랑 상담도 한다더니 말재주만 늘었구나.”


    “그게 다 너한테 배운 거 아니냐.”


    “춥다. 들어가자.”


    성훈이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어느새 식어 버린 감자탕을 다시 데우기 위해 밸브를 열었다. 나는 성훈이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이라면 환장을 하던 놈이...... 술 안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죽을 것 같아서 못 마시는 거야.”


    성훈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바닥에 술이 찰랑거리는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우리 이거 다 마시고 악기 치러 갈래?”


    “악기?”


    “술 좀 사 갖구 사위방으로 가자.”


    성훈이는 대학 시절 풍물패에서 쇠(꽹과리)를 쳤다. 나도 성훈이를 따라 놀러 다니다 보니 어깨 너머로 악기를 배워 간단한 장단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사범대 풍물패 이름이 ‘소리사위’였고, 사범대 학생회실에 있는 건물에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소리사위방’이 있었다. 풍물패 사람들은 시간 날 때마다 사위방에 모여 악기 연습을 했고, 술을 마시면 꼭 사위방에 모여 밤새도록 악기를 쳤다. 나도 머리끝까지 취해 풍물패 사람들과 함께 사위방에 와서 괭괭거리는 악기 소리에 묻혀 가며 얼씨구 잘한다 좋고 지화자 개잡아묵었나 하는 추임새 소리와 함께 가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북을 두들긴 적이 많았다. 문득 아무거나 손목이 빠지도록 두들겨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훈이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는 일어나 계산을 했고, 나는 바깥에 나가서 성훈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 형님이 따라 나와 몸 건강히 지내라며 손을 흔들었다.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든 성훈이는 내 팔짱을 끼고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외로울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니?”


    “외로울 때? 글쎄. 나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가 혹시 ‘외롭다’라는 단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저 심심한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외롭다고 자기도 모르게 표현해 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막연히 외롭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것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기준을 세웠지.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혼자서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심심한 거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혼자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외로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돼. 외로운 상태가 내게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외로운 상태를 외롭지 않은 상태로 만들거나 아예 해체해 버릴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눌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는 반에서 물건 하나가 없어지면 그 즉시 반 전체 아이들의 소지품 검사를 하거든. 나는 그게 뭔가 아닌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먹히더라. 무언가를 바꾸고는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너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랍시고 늘어 놓은 내 말을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성훈이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나라면, 글쎄, 나라면 말이지...... 예전에 학생회 간부 하던 시절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사람들 만나 가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딴 식으로 말하기는 싫고...... 아, 모르겠다. 역시 네 편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성훈이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만 옆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성훈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너무 내 얘기만 많이 하느라 정작 성훈이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방에 앉아 성훈이는 쇠를 들었고 나는 북을 세워 내 앞에 놓았다. 성훈이는 소주를 병째 꼴깍거리며 들이키더니 과자를 한 줌 집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성훈아, 우리 예전에 힙합 국악 하다가 선배들한테 혼난 거 기억 나?”


    “악기 가지고 장난 친다고 쿠사리 엄청 먹었지. 자, 간다.”


    성훈이가 쇠를 치며 장단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북을 잡았다가 장구를 잡았다가 하며 아는 장단이든 모르는 장단이든 흥이 나는 대로 두들겨 댔다. 그렇게 첫차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 모르고 악기를 쳤다. 성훈이가 벌떡 일어나 쇠를 치면 나도 북을 어깨에 매고 일어나 빙글빙글 돌면서 북을 쳤다. 장단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했다.


    어느덧 첫차 시간이 되자 우리는 악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는 사위방을 나왔다. 속옷이 땀에 추근히 젖어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한밤중처럼 어둑어둑했다. 잠 한 숨 자지 못했지만 실컷 악기를 치고 나서 찬바람을 쐬니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져 왔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성훈이는 버스를 타고 친척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냐.”


    “무슨 초상 났어? 그건 죽은 사람한테나 하는 말이고.”


    “또 싼타 클로스처럼 연말에나 나타나는 거 아냐?”


    “모르겠다. 시간이 언제 날지. 다시 올라오게 되면 연락할게.”


    “요즘 말이라는 걸 잘 안 하고 살았는데, 너 덕분에 오늘 실컷 떠든 것 같아서 좋네.”


    “나도 그래.”


    버스가 왔다. 성훈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놓더니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성훈이는 휘뚝거리며 빈 자리에 앉았다.


    “현실? 가지고 온 건 다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뭐해? 빨리 다 먹어.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내 앞에 놓인 먹다 남은 고깃점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승기가 투덜거렸다. 욕심 부리며 고기만 집어 와서 그런지 속이 느글거렸다. 그런데 정말 고기 탓일까?


    “느끼해서 더는 못 먹겠다. 근데 어쨌든 너 말대로 조건이 중요한 거라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 참에 수연이랑 갈라설 거야?”


    “몰라. 시간이 지나면 결말이 나겠지.”


    “우리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현실이라는 것에 도장을 꽝꽝 박아야 하냐? 나이 서른 먹으면 정해질 건 다 정해지는 건가? 우린 옴짝달싹 못하는 거야? 뭔가 이상해. 이것저것 조건이 빠질 수 없는 게 연애라 하더라도, 연애 자체가 몽땅 조건이라는 것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잖아?”


    “네 얘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 얘기지? 근데 닭도 아니고 달걀도 아니고, 사람한테는 무조건 밥이 먼저야. 이 세상에 연애를 자선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을 양팔 저울에 올려 놓고 재는 거지. 누구나 그래. 안 그럴 수가 없지.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도 다 사업이야.”


    “사업?”


    “사업.”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포크로 돼지고기를 결 따라 찢어 보았다. 살이 갈라지며 분홍빛으로 선명한 육질이 드러났다. 자꾸자꾸 가르고 찢었다. 고깃점들은 곧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네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현실이라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그곳엔 영화 포스터처럼 진부하게 보이는 것들만 잔뜩 쌓여 있어. 왜 그럴까? 현실은 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학 문제가 아니잖아?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도록 다양하고 변화무쌍해야 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부터 매끈하게 잘 뽑힌 사진 한 장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 안 들어? 뭔가 이상해. 잘 빠진 이미지 하나를 갖다 놓고 모두들 저게 현실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는 거야. 다들 거짓말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 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빵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둘의 중간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승기가 말을 받았다.


    “야, 네가 하는 말은 정말 말이니까 쉽지. 세상 혼자 살 수 있다면 차라리 너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면 땡이야. 얼마나 편해? 근데 그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기대하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어. 너도 집에서 그렇겠지만 당장 내 어머니만 봐도 그래.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지는 않더라도 어머니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연이는 수연이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대로 해 주기를 기대하고. 일터에서는 일터대로 또 나한테 주어지는 역할들이 있으니 나는 또 그걸 연극배우처럼 연기해야 하고. 그게 현실이라는 거야.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사는 게 왜 이리 좆 같은지.”


    승기는 남은 맥주를 한입에 들이키고 내 앞에 있는 찢어진 고깃점 하나를 손으로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미적지근해져 쓴 맛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허위허위 모임 꾸려 가며 활동하는 선배들 많아. 작년에 제대한 철호 형도 지방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고, 서울 지역만 해도 곳곳에 이른바 진보 일꾼들이 숨어 있다고. 억압이 있는 현장이 많은 만큼 그 억압과 싸우려 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러면 뭐 해. 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게 살고 있을 텐데. 철호 형 봐라. 총학생회장 선거 떨어지고 나서 여자랑도 헤어지고, 아직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 다닐 때 학점을 따 놓은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인제 뭐 하겠다는 거야? 운동도 좋지만 꼭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야 해?”


    “야,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직장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어. 일하는 시간에는 일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거야. 사회 단체나 진보 정당에서 일하면서 쥐꼬리 만한 활동비 받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고. 철호 형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지금 글 쓰겠다고 빌빌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젠장, 어떡하겠어?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밥만 벌어먹고 사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운동하는 거 아냐? 노동자들에겐 노동 운동이 자기 삶이 걸린 문제라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노동 운동이 일단 자기 삶을 책임진 다음에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고. 나도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삶과 내 시간과 내 마음들을 무작정 희생해 가면서 꼴아박는 활동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지 충분히 경험했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에 가입하게 될지, 학교 안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해.”


    나는 승기가 옷도 못 갈아입고 학생회실에서 먹고자며 밤이고 낮이고 회의만 하느라 새벽녘이면 머리가 부스스해져 노숙자처럼 되던 모습을 떠올렸다. 주위에서 승기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당당한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한총련 대의원은 힘들어 할 자격도 없다는 따가운 충고만이 전부였던 시절. 승기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난 후배들에게 항상 팔십 년대를 이야기했어.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고 팔십칠 년 노동자 대투쟁을 이야기했지. 막상 후배들한테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팔십 년대라는 시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후배들에게 팔십 년대를 기억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게 되게 우스워지더라. 넌 팔십 년대가 기억 나? 팔십 년 오월에 광주에 있었어? 팔십칠 년에 거리에 있었니? 난 팔십 년대에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던 꼬맹이였어. 광주든 뭐든 전부 다 나중에 책과 영상으로만 접한 것들 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나는 내가 마치 팔십 년대 정신을 몸소 겪어 본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난 항상 너무 쉽게 말하고 다녔어. 그리고 내가 겪어 보지도 못한 팔십 년대라는 시간에 항상 짓눌려 살았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열사 정신 계승? 4.19 정신 계승? 그런 것들 속에서 천년 만년 활동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대학 졸업하고 서른 넘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학생 운동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뭐 그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선배는 한 명도 없었어. 평생 대학생처럼 활동할 수 있겠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강철이 되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막상 강철이 되지 못하니 답답했겠지.”


    승기에겐 승기의 삶이 있었다.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처럼 남아 있는 승기의 삶이. 나는 뭐라고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던 승기가 손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번호판을 주물럭거렸다. 앞에 놓인 접시와 포크를 정리하면서 휴지로 입을 닦고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가 봐야겠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오래 보면서 한 잔 해.”


    “그럼 나도 일어나야겠네.”


    나는 승기와 탁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아직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참 잘들 차려입고 왔구나 싶어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이 갔다.


    샐러드를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주영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반갑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승기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주영이 있다.”


    “언제 왔지? 아깐 못 봤는데.”


    “가 보자.”


    주영이는 포크를 들고 웬 희한하게 생긴 작고 동그란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영이 앞에는 경애가 앉아 있었다. 둘은 나와 승기를 보고는 오랜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승기 오빠는 점점 대머리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병학 오빠는 가뜩이나 암울한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해요?”


    “넌 임마 기성 세대가 다 됐구나.”


    “피부 관리 좀 해라. 그게 뭐니?”


    승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고 경애도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가겠다며 가방을 들고 일어서 버렸다. 주영이는 접시에 잔뜩 쌓아 놓은 동그란 것들과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건 뭐냐?”


    주영이는 내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다섯 글자 정도의 알 수 없는 이름을 말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는 그냥 넘어갔다. 다른 곳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여기 것은 맛이 좀 별로라고 했다. 얄따란 껍질을 포크로 살살 벗겨내면 새하얀 알맹이가 나오는데 그걸 한입에 쏙 넣어 씨앗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먹고 씨는 뱉는 거라고 했다. 나도 하나 먹어 보았지만 찝지레한 맛이 싫어 금방 뱉어 버렸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근데 언제 왔어요?”


    “두 시 조금 넘어서 왔지. 너는? 사진 찍을 때 보니 없던데?”


    “늦게 왔어요. 식은 못 보고, 아까 광현이랑 신부가 피로연 장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할 때 처음 봤어요. 광현이가 오빠보다 일찍 결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피로연 장 벌써 돌았어? 왜 난 못 봤지?”


    “혹시 승기 오빠랑 저 구석에 앉아 있지 않았어요? 그쪽은 안 돌았어요. 지금 폐백실에서 폐백하고 있으니 나갈 때 한번 봐요.”


    “그런 걸 뭐 하러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다 허례허식 아냐? 결혼이라는 게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렇게 돈 처들여서 쇼를 할 필요가 어딨어?”


    “오빠가 연애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우리 예전에 지은이 언니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지은이 누나?”


    “지은이 언니 결혼할 때 예식장에서 식 올린다구 하니까 같이 여성 운동하던 주변 언니들이 그렇게 반대를 했대요. 결혼 제도라는 게 뭔지 알고도 그러냐, 너마저 돈 써 가며 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막 그랬다나?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혼례라는 형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죠. 근데 어디 결혼이 두 사람 마음만으로 되는 거예요? 양가 부모님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주변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친족과 다른 친족의 결합이기도 하니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지요.”


    주영이는 나에게 대거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배였다.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몸피에 안경을 쓰고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다니던 주영이는 언제나 나를 똑바로 보며 내 말을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따져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한 학번 후배인 주영이와 마주 앉아 내가 심심할 때마다 생각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놓기 좋아했고, 주영이는 내 말에 어딘가 헐겁거나 빠듯한 곳이 있으면 꼼꼼히 고쳐 주고 바로잡아 주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다른 후배들이 코대답도 하지 않고 넘겨 버리던 내 말은 주영이와 함께 있을 때면 활력을 얻고 제 뜻을 찾았다. 논쟁을 하다가 주영이에게 욕도 숱하게 얻어 먹었지만 주영이의 분석과 비판이 핵심을 비껴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건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결혼식 따위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쇼를 해야 할까? 성대한 결혼식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게 정말 이 세상 여자들의 꿈인 거야?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갖다 붙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일생에 단 한번이 아닌 게 어딨어? 지금 이 순간 흐르고 있는 일분 일초도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들인데.”


    “오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어쩌겠어요? 결혼은 제도로 굳어지기 이전에 풍습이었고, 풍습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막상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글쎄요, 어떻게 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


    “결국 또 현실이라는 건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놈의 현실.”


    “왜요? 요새 좀 안 좋아요? 뭐 하고 지내요 요즘?”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영이와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집에서 한숨만 쉬고 계실 어머니와 다시 마주하게 될 시간을 되도록이면 늦추고 싶었다.


    “일어날래?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


    “오빠가 웬일로 낮술 먹자구 안 해요? 차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주영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지난 연말에 한번 쓰러지구 나서 술 확 줄였다. 여기 와서도 맥주 한잔 밖에 안 마셨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나 저녁 때쯤에 약속 있어요. 오래 못 있는데.”


    “괜찮아. 아직 저녁 아니니까. 가자.”


    주영이와 나는 일어나서 폐백실 쪽으로 갔다. 고개를 살며시 뽑아 안을 들여다보니 쪽빛 한복을 갖춰 입은 광현이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무언가를 든 채 쩔쩔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광현이 쪽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나는 폐백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광현아! 형 간다! 봄 오기 전에 한번 보자!”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고 주영이는 팔꿈치로 내 허리를 찔렀지만 광현이는 고개를 돌려 밝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형, 잘 가요!”


    주영이가 황급히 나를 잡아 끌며 속삭였다.


    “오빠, 지금 폐백 하는데 뭐 하는 거예요?”


    “이런 게 다 추억에 남는 거야.”


    나는 주영이를 데리고 나와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2월답지 않게 아직 따스한 오후였다. 주영이가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횡단보도를 건너 어느 도너츠 집으로 들어갔다. 설탕과 초콜릿으로 뒤발을 해 놓은 알록달록한 도너츠들이 진열장마다 가득 쌓여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이 피둥피둥 찔 것 같았다. 곧 찾아올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느라 매장 안 이곳 저곳에는 신통방통한 모양을 하고 있는 초콜릿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주영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있는 의자에 외투를 벗어 놓았다. 가게 안은 손님이 별로 없어 음악 소리만 흐를 뿐 조용했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초콜릿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저런 초콜릿들은 진짜 비싸요. 전부 다 포장지 값이긴 하지만.”


    “내가 얘기한 적 있지? 발렌타인데이든 화이트 데이든 정욕과 상술의 은밀한 야합이라고.”


    “그건 오빠가 너무 오버하는 거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반드시 자본이나 상품이 필요한 건 아니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얘기가 다를 거예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안 줬다고 헤어지는 커플도 있으니까.”


    “그걸 문화적인 차이니 다양성이니 하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뭔가 좀 이상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거잖아? 돈이 있는 사람들만 뭐든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특권이지. 안 그래? 게다가 발렌타인데이가 강요하는 건 전형적인 이성애자들의 사랑이잖아?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낄 자리가 없어. 자본의 문제는 둘째 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도......”


    “됐어요. 뭐 먹을 거예요? 일단 먹으면서 얘기 해요.”


    주영이가 지갑을 챙겨 들며 일어섰다. 이런 도너츠 집에 평소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손님이 직접 판매대로 가서 주문한 다음 돈을 치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문한 것이 나오면 판매대 쪽에서 손님에게 알려 주는 모양이었다. 주영이와 나는 판매대 앞으로 가서 높은 곳에 붙어 있는 차림표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돈 없죠? 난 녹차라떼. 오빠는요?”


    “돈 없으니 너를 잡았지. 근데 뭔 놈의 메뉴가 전부 다 영어 투성이야? 커피 종류는 싫으니 그냥 국화차 먹을란다.”


    “오빠답네요.”


    주영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치르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주영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자기 돈으로 초콜릿 사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건 완전히 온 나라의 명절처럼 여겨지고 있잖아.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초콜릿을 사려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는 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야. 내가 내 돈으로 초콜릿을 사는 건 소비 행위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초콜릿을 산다는 건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요? 자본주의? 물신주의? 그리고 그런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만 원 이만 원 하는 비싼 초콜릿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빼빼로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겠죠. 재미로 말예요. 초콜릿 사는 사람들이 무분별한 소비 문화에 길들여졌다고 하는 건 결국 이 모든 상황이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소린데, 그러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초콜릿을 떼지어 사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이며 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돈지랄 하면서 비싼 초콜릿 사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초콜릿의 가격을 문제 삼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가격이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에 초콜릿을 산다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초콜릿 만드는 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겨. 초콜릿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발렌타인데이 한참 전부터 요란뻑적지근하게 광고를 때리고. 초콜릿을 사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야.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궁금한 거야. 도대체 뭐가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까? 농담으로 정욕과 상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정말 그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이성애자들끼리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밑그림이 발렌타인데이에서 빠지게 된다면 초콜릿은 훨씬 덜 팔리지 않을까?”


    “흠.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오빠처럼 하는 말 들으면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하겠죠. 그냥 초콜릿 하나 사서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젠장, 그럼 내가 이상한 거야?”


    가게 문이 열리고 왁자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 한 떼거리가 들어왔다. 다들 내 나이 또래 같았지만 양장을 날렵하게 차려 입은 매무새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한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 보니 아까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여자였다. 신부 쪽 친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신부 쪽 사람들인가 봐. 저 빨간 가방 메고 있는 여자 보이지? 아까 부케 받았어.”


    그들은 우리를 지나 가게 깊숙한 곳으로 가서 탁자 다섯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고즈넉하던 가게 안이 갑자기 우꾼해졌다.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는 종소리가 들렸다. 각자 시킨 것을 앞에다 두고 주영이와 나는 다시 마주 앉았다.


    “저 사람들 좀 봐.”


    “왜요?”


    “하나같이 말끔하고 고상하고 모범생처럼 보여. 옷도 반들반들 좋은 걸로 차려입었고. 신부가 학교 선생님이었으니 저 사람들도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정도 되는 일을 하고 있겠지?”


    “그래서요?”


    “글쎄. 그냥 저런 사람들 보면 진부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진부한 삶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 시달리는 사람들. 대학 나와서 졸업하고 취직한 다음에 돈 벌어 결혼하고 집 사고 자식 낳아 가정 꾸리고 계속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만 벌면서 살겠지?”


    “그게 나쁘다는 거예요?”


    “글쎄. 좋고 나쁘다는 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난 그냥 사람들이 너무 비슷비슷한 삶을 살려고 기를 쓰는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진부해. 광현이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만나던 광현이와 많이 달라져 있겠지? 아직은 기간제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정교사 되면 월급 차곡차곡 모아 가며 다른 것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겠지. 동기들이랑 만나면 더 이상 옛날처럼 민중 생존권이나 반전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그을림 하나 없이 말끔한 저 얼굴들을 봐. 손도 펜이나 잡아버릇했을 테니 보들보들하겠지.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어떤 계급적인 위치에 있는지 저 사람들은 가끔 생각이라도 할까?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더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가질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뜨적뜨적 말을 늘어놓다가 문득 고개를 제자리에 두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주영이가 있었다.


    “오빠, 저 사람들 잘 알아요?”


    “아니.”


    “저 사람들 삶이 어떤지 모르면서 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 뭐예요?”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주영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예전과 하나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저 사람들의 삶을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 그게 전분가? 그래.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때가 있어. 저 사람들은 또 어디서 어떤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구 말야. 하지만 그것도 내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드는 생각이겠지? 그건 나두 알아.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계급이라는 게 있어.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산다는 말로 간단히 뭉뚱그릴 수 없는 계급성.”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오빠가 말하는 대로라면 이 세상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라는 건 사회 속 갈등의 모양을 분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삶을 사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옷차림과 생김새만으로 멋대로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놀고먹는 한량들이 아닌 이상에야 다 노동자일 테고, 그럼 생산직 노동자냐 사무직 노동자냐 하는 것으로 구분해야 하나요? 나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그럼 화이트 칼라 노동잔가? 오빠는...... 오빠 아직도 그 학원 나가요?”


    “응.”


    “그럼 오빠도 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화이트 칼라네. 근데 그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제 말은, 계급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구분을 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구분이어야 하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저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엔 쫙 빼입고 왔지만 알고 보면 오빠랑 나처럼 쪼들리는 형편일지도 몰라요. 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생산직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밥 굶고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계급을 이야기하자는 게 착취 당하고 있는 계급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착취하고 있는 계급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점쟁이처럼 저 사람들의 삶은 어떨 것이다 뭐 이런 짐작이나 하자고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거 오빠도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나는 뜨거운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이 속을 덥혔다. 시큼털털한 차 맛이 입안 깊숙한 곳까지 남았다.


    “알지. 알아. 근데 말이야. 그럼 어차피 같이 살아 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테니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알지도 못하는 저 사람들을 겨냥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계급이란 분명 존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겠지만 어쨌든 억압 받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단 말야. 무엇을 위해서 계급을 구분하냐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붙이면 이상한가? 우선 나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데.”


    “오빠. 왜 슬쩍 피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겉모습만 보고 재단하려는 오빠의 시선을 말하고 있었어요. 광현이 얘기두 그래요. 저도 광현이랑 정말 가끔씩 연락 주고받고 사느라 요새 광현이가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광현이가 재수했으니 오빠랑 동갑이죠? 이제 스물 아홉인데. 집도 어려운 녀석이 서울에서 기간제 하면서 낑낑대며 살고 있어요. 오빠는 예전부터 말한 것처럼 임용고사라는 교사 양성 과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광현이에게는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자기 몫을 하며 사는 게 생활이라는 것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라요. 오빠가 전에 저한테도 그랬잖아요?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우선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기억 안 나요?”


    주영이는 논설문 쓰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듯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옷 입고 잠 자고 술 먹고 책 보던 털털한 녀석이었지만 의외로 수줍음이 많았다. 동기들이 전부 다 과 학생회장 자리를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지만 않았어도 주영이가 학생회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단독 후보로 선거에 나간 주영이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일 년 동안 고생했고, 그 이듬해엔 경애와 함께 짝을 이루어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시 휴학생이었지만 주영이 선거운동본부에서 으밀아밀 참모 비슷한 노릇을 했고, 사범대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던 승기와 함께 선거 기간 내내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가 누굴 왜 뽑는 선거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투표율은 매년마다 오십 퍼센트를 간신히 넘기는 편이었다. 오십 퍼센트를 넘지 못하면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했다. 주영이와 경애가 사범대 신관과 구관 강의실들을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도 투표율은 선거 마지막 날 해거름까지 사십구 퍼센트 후반에서 머뭇거렸다. 승기와 나는 애가 끓었다. 선거를 다시 치르자니 그 많은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했다. 십여 명만 더 투표를 하면 되는데 투표소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했고, 결국 선거를 밤 아홉 시까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들고 중앙 도서관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사범대 학생들에게 다가가 표를 받았다. 간신히 오십 퍼센트를 채우고 나서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투표소 앞에 가져다 놓고 한동안 얼싸안았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주영이는 경애와 함께 사범대 학생회를 책임지며 일 년 동안 각다분하게 살았다. 집에다는 사범대 학생회장이 고등학교 학생회장과 비슷한 자리라고 둘러대었다고 했다. 일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학생회장 임기도 다 끝나자 주변에서는 주영이에게 중앙 조직으로 가서 더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을 비쳤고 후배들은 아예 주영이가 임용고사를 포기하고 중앙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곧 4학년이 되는 주영이는한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오래 고민했다. 내게도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군말 없이 답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학생 운동이고 뭐고 그 전에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대학생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결국 주영이는 총학생회실에 가서 가끔씩 대자보나 현수막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것 말고는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마음 넉넉한 선배들은 주영이만 보면 힘내라고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지만 이제 막 2학년으로 올라가는 후배들은 대놓고 섭섭하다는 말을 하며 주영이에게 세모눈을 떴다. 어떤 녀석은 변절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처먹으며 방황을 하던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찾아가 주영이를 불러내 밥을 얻어먹으며 아직도 뭘 모르는 후배들을 싸잡아 욕했다. “걔들은 자기네도 죽을 때까지 대학생으로 사는 줄 아는 모양이지?” “괜찮아요. 솔직히 나도 좀 미안한데 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할 수 있겠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는 딴청을 피웠다.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휘저으며 픽 웃었다.


    “그때 오빠가 해 준 말이 난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걸 까먹었단 말예요? 어쨌든 그 말을 곱새기면서 결국 나 재수에 삼수까지 해서 붙었어요. 다른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어요. 직업적 혁명가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겁이 많았고, 승기 오빠나 철호 오빠처럼 살 자신도 없었어요. 일단은 졸업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다 변명 같긴 하지만.”


    “.........”


    “광현이도 분명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겠죠. 꼭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기간제 선생님이니 아직은 전교조에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오빠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노동 운동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운동만이 중심 운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니죠? 내가 아는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많이 가게 됐고, 거기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 글을 써도 노동자들 이야기만 쓰다시피 했지. 이 세상엔 비정규직 노동자들 말고도 아프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몸뚱이는 하나였어. 변명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낸다고 해도 동시에 두 집회를 나갈 수는 없었거든. 그동안 많이 만나 온 사람들이 노동자들이고, 보고 들어 온 것들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어떻게 탄압을 받고 있나 하는 것이었으니, 글쎄, 나도 어느새 시야가 좁아져 버린 건가? 매끈하게 잘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꼭 그런 사람들일 것만 같아. 광현이도 그렇게 변해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


    “오빠도 광현이도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뭐.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야금야금 홀짝이느라 어느새 다 비운 잔을 들고 판매대 앞으로 가서 물을 더 받아 왔다. 뜨끈한 물 위에서 국화 꽃심들이 물방개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주영이는 그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오빠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는 전부터 듣긴 들었어요. 무슨 글을 써요? 집회 기사 같은 거예요?”


    “기사도 아닌 것이 르포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나도 내가 뭘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지난 한 달 동안 몸 아프다는 핑계로 거의 안 썼어. 뭘 써도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짜증나기도 하고.”


    “집에서는요? 뭐라고 안 그래요?”


    “집? 뻔하지 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럴 수밖에요. 오빠도 이제 곧 서른인데. 학원에선 얼마 못 받는다구 했었죠? 슬슬 결혼하라는 압박도 있을 테고. 집에서 걱정 많이 하시겠네요.”


    지금도 거실에 누워 한숨만 끙끙 앓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혀를 쯧 차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다.


    “걱정만 하시면 좋게?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내 삶이 하나도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셔. 이십대에 내가 뭐 하나 해 놓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늘 말씀하시거든. 나도 내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지난 십 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나날들은 아니었을 거 아냐? 어머니가 원하는 건 결과물이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 물질적인 성과물.”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오빠 뿐예요?”


    “아니. 내 동생도 알바 하면서 벌고. 아버지도 가끔씩 찔끔찔끔 가져다 주시는 것 같긴 해. 내가 버는 건 푼돈이고.”


    “집에서는 오빠가 글 쓰며 다니는 거 아세요?”


    “그럼. 나 놀고만 있지는 않수 하면서 인터넷 매체에 글이 올라가는 족족 보여드렸거든. 처음에는 신기해 하시더니 이제는 그런 위험한 글들 그만 쓰라고 난리셔. 언제까지 비정규직이 데모하는 데만 쫓아다닐 거냐고.”


    “저는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겉으론 학교 잘 나가고 있으니까 집에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만, 사실 학교에서 제가 나름대로 뭔가 활동을 해 보려고 해도 저도 이제 겨우 3년차 되는 선생이라 그런지 자꾸만 몸을 사리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촛불 집회 할 때도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래 나가서 밤도 새우고 아침에 학교 오는 것 같았는데 교무실에서는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 집회 못 나가게 엄중히 단속하라고 하고. 선생님들끼리도 눈치 보이니까 같이 나가자는 말도 못하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왜 지금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 왜 십대 청소년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이랑 이야기 한 번 못하고 여름이 다 가 버렸어요. 어떤 선생님은 교실 뒤에 촛불 집회에서 받아 온 유인물을 붙여 놨다가 교감한테 호되게 야단 맞았어요. 저는 작년만 해도 2년차 교사였고, 솔직히 징계가 무서웠어요.”


    “근데 너는 촛불 집회 많이 나갔잖아. 시청 앞에서 나랑도 우연히 많이 만났고.”


    “저 혼자 그런 거죠. 제 성격이 원래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거 오빠도 알잖아요. 근데 집회에 나가면 혹시 아는 선생님들과 만나면 어떡하나 하는 것부터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우리 엄마 아빠랑 언니는 촛불 집회고 뭐고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한우 값 안 떨어지게 하려고 이익 단체들이 집회 하는 거라며 늘 구시렁대기만 하고..... 근데 어느 날인가 한우 값 얘기를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아빠는 딸이 촛불 집회 나가는데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냐고 말해 버렸죠. 그때가 한창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촛불 시민들이랑 전경들이랑 싸우던 시기였는데, 그 말로 들통이 나서 한동안 주말에는 집 밖에 못 나갔어요. 저도 개학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고.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다가 가을도 다 가 버렸고. 금방 방학이 왔어요. 얼마 전에 용산에서 철거민들 돌아가셨잖아요. 거기도 아직 못 가봤어요. 뉴스에 집회 장면 같은 게 나오기라도 하면 집에서는 그런 데 가지 말라고 선수를 쳐요. 새 학기 준비해야 하니 요새도 정신이 없고..... 제가 오늘 저녁에 누구 만나는 줄 알아요?”


    “남자 친구라도 생겼어?”


    “그러면 좋게? 형렬 오빠 만나요. 얼마 전부터 저를 계속 꼬시려고 했는데 오늘 담판을 지으려는 모양이에요.”


    “형렬이 형이 꼬신다면 딱 하나밖에 없는데?”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생긋 웃었다.


    “맞아요.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부 같이 하자는 거. 저 아직 조합원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선생님 되고 나서 탈당했어요. 우리 학교엔 전교조 선생님 한 명도 없는데 제가 덜컥 조합원이 돼 버리면, 글쎄,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나서 학교 쪽 분위기 안 좋은 거 오빠도 알잖아요. 처음에 형렬 오빠한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학교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 다음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사리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싫었어요. 대학 다닐 땐 안 그랬는데. 아이들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도 하나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젊은 시절 다 보내 버리면, 나중엔 수업만 대충 끝내고 노는 늙은 선생님들 꼴이 될 거잖아요. 교장이랑 재단이 하라는 대로 설설 기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게 되는 그런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어요. 근데 막상 조합원이 되고 나면 학교에서 날 어떻게 볼지 무섭기도 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니 이중적이 돼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속하는 사람은 사실 없어. 학원이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고. 집에서 날 닦달하는 사람은 어머니 하나 뿐인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그냥 내가 뭘 하든 지켜보실 수밖에 없지. 근데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날 봐도 전혀 웃지를 않아. 벌써 오래됐지. 그러고는 가끔씩 한밤중에 날 불러서 너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냐, 너 때문에 내가 세상 살기가 싫다, 그런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 놓으셔. 글 쓰는 일은 거지 되기 딱 알맞은 일이라 생각하시는데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우리 어머니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은데, 문제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방식을 내게 자꾸만 강요하고 있다는 거야. 나에겐 내 삶이 있는데 말야.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엄마랑 같이 죽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그렇게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릴 거면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기술이에요? 기술 배우면 다 성공해요?”


    “그럼 어떡할 거니. 다른 자식들은 네 나이쯤 되면 안정된 직업에 결혼까지 하는데 너는 어쩌려구 이래.”


    “그건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잖아요. 제가 왜 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해요? 그리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십 년 늦게 출발하면 십 년 더 오래 살면 되는 거 아녜요?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결혼하면 뭐 해요? 하나같이 다 불행해지던데.”


    “그럼 글 쓰면서 먹고살겠다고? 그게 말이 되니? 글 쓰면서 먹고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되겠니? 넌 어쩜 그렇게 비현실적인 생각만 하니? 네 나이쯤 되면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니?”


    “비현실적이요? 지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현실이란 게 뭔데요? 대학원 가서 학위 받아 교수나 되는 거? 임용고사 쳐서 공립학교 선생님 되는 거? 아무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그놈의 안정된 일자리에 주저앉는 거?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마다 최선을 다해 겪는 시간들이 저마다의 현실이라구요. 현실이고 비현실이고 하는 건 없어요 어머니.”


    “그럼 넌 뭐 먹고 살 거야? 평생 나한테만 의지하고 살 거니? 내가 이때껏 부모 된 도리로 널 키워 줬으면 너도 이제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잖니. 의료보험비 못 낸지 일 년이 넘어서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에미가 보이지도 않니? 네 사촌 동생을 봐라. 한 번에 임용고사 턱 붙어서 그 나이에 벌써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너처럼 그렇게 살려면 사범대는 애초에 왜 들어갔니?”


    “알았어요. 돈 벌면 되죠? 이 모든 원인이 제가 다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거죠? 뭘 하든 돈만 벌면 되는 거죠?”


    “그런 소리가 아니잖니. 내가 언제 너한테 글을 쓰지 말라고 하든? 글을 쓰는 건 좋은데 너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니니. 학교 선생님 하면 틈틈이 시간도 많을 거구. 그 시간에 글 쓰면 되구. 임용고사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그래서 피하는 거야?”


    “임용고사 같은 걸로 좋은 선생님을 가려 낼 수는 없어요. 그건 그냥 시험지 받아 문제 푸는 거라구요. 그런 쓰레기 같은 지식들로 머리를 채워 가며 일 년 이 년 낭비하는 거 전 절대로 못해요. 어머니가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저도 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죠. 저도 글만 쓰고 다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살 생각 없어요. 저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밀린 의료보험비는 올해 안으로 내가 다 청산할 테니까.”


    “그 말을 내가 처음 듣니? 작년부터, 아니 제대하고 나서부터 넌 계속 그랬어. 근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뭐니?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글이나 쓰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비난하고, 이상한 모임이나 나가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니?”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삶과 제가 생각하는 삶은 달라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겐 저만의 방식이 있어요. 저도 글만 쓰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좀 지켜보세요. 같이 죽자는 말이 뭐예요? 나이 스물 아홉에 죽긴 뭘 죽어요? 저는 제 인생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가 너만 생각하면 이 세상 살기가 싫어져.”


    “그리고 그날 밤에 어머니가 기어이 무너지고 마셨지.”


    “무슨 일 있었어요?”


    “밤중에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으로 세간을 막 때려 부수시더라고. 그러고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시는 거야.”


    “그래서요?”


    “아버지가 뛰어나와 말리셨지. 나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고.”


    “........”


    “그래서 올해는 정말 기간제라도 뛰면서 돈을 좀 벌까 해. 집안에 보태기도 해야겠지만 우선 나부터 좀 독립해야겠어.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자취라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지.”


    주영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탁자를 두들겨 가며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밝은 표정으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왈칵 멱살을 틀어쥐고 사는 게 그렇게 재밌느냐고 을러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서 나와 똑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뒤로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주영이가 조심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꺼냈다.


    “......오빤 어머니랑 얼마나 자주 얘기해요?”


    “글쎄.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호출이 있어.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선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나지.”


    “여태까지 계속 그랬어요?”


    “제대하고 나서 일 년 정도는 잠잠했어. 작년 봄부터는 집회 쫓아다니느라 집에 붙어있질 못했고. 뭐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어머니가 시름시름 속앓이를 하셨지.”


    “.........오빠, 혹시 오빠 어머니의 꿈이 뭔지 알아요?”


    “꿈? 우리 어머니는 간호 대학을 나오셨어. 나랑 내 여동생이 자기 앞가림 할 나이가 되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보고 싶으시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지.”


    “오빠처럼 집안 문제 겪는 사람들 난 학교 다닐 때 많이 봤어요. 오빠도 많이 봤을 거잖아요? 승기 오빠도 그랬고. 스무 살 넘기 전까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었는데 얘가 대학 들어가자 노조니 민중이니 학생회니 하는 걸 대다수 부모님들은 견디지 못하셨죠.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면 어떻게든 서울에서 눈속임하며 활동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집안 문제가 어느 때고는 터졌어요. 저도 그래서 학생회장 할 때 집에서 뻔질나게 싸웠죠. 근데 저도 그랬지만, 집안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부모님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과 자신이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도 너무나 다르다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저도 아직까지 전교조 활동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부모님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어요. 물론 정말 내겐 소중한 분들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자꾸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안 할 수 없었어요. 근데 말예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나처럼 젊은 시절에 무슨 꿈을 가지고 살았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했을까. 세월이 흐르며 엄마와 아빠의 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진첩에서나 보는 젊은 시절 사진 말고는 엄마 아빠의 청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


    “난 항상 엄마와 아빠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반대 쪽 진영에다 놓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꿈 꾸는 것들과 절대로 화해할 수 없을 줄 알았죠. 근데 마치 장기 말이 서로 상대편을 향해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의 삶과 내 삶이 정말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일까, 엄마 아빠와 함께 삼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나는 엄마랑 아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는 항상 겉돌았어요. 나는 언젠가부터 내 생각을 엄마 아빠한테 들려드리지 않기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와서 엄마가 차려 주시는 밥 먹고 그냥 내 방에 들어가 나 혼자 놀았어요. 아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생각들이 아마 조금씩 자라 온 거겠죠. 난 그걸 알고 싶었어요. 엄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시는지. 아빠는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지. 내가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엄마와 아빠는 이제 철 좀 들라고 정말 나를 몰아세우기만 하실지. 서로 말도 해 보지 않고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 못박아 두기는 싫었어요. 엄마 아빠랑 대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아직도 깜깜하기만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엄마 아빠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주영이는 남은 녹차라떼를 빨대로 포로록 들이마시고는 휴지로 입 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아직도 뜨겁기만 한 국화차를 아무 맛도 모르면서 홀짝거렸다.


    “집안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던 후배들 생각을 요새 가끔 해요. 집에다는 대학생 국토 대장정 간다고 속이고는 한 달 동안 공장 가서 생활하던 후배 생각도 나고....... 연희는 사범대 학생회 활동하다가 들켜서 아버지한테 머리도 잘리고 뺨까지 맞았잖아요. 근철이도 감옥 갔다 나와선 아버지와 허구한 날 싸우면서 힘들어 했고. 다 그랬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속 썩이고 있거나 아니면 마음 고쳐 먹고 효자 노릇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날까요? 근데 정말 꼭 그렇게 둘 중 하나로밖에는 될 수 없는 걸까요? 불효자 아니면 효자? 그런 극과 극이 아니라 뭔가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도 나도 쉽지 않은 현실을 함께 살아가면서 비슷한 병에 걸린 건데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조금 다를 뿐인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어차피 내가 아프면 가장 많이 걱정해 줄 분들이 우리 엄마 아빤데.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집에 들어가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에이, 참.”


    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누른 채 팔꿈치로 탁자를 짚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아버지는? 늘 밤 늦게 들어오셔서 방에서 혼자 TV를 보시다가 라면을 끓여 드시는,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어딘가로 나가시는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면 나는 또 다시 무거운 한숨과 침묵 앞에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겠지.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나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에게조차 당당히 내세우기 힘든 삶이다. 어째서 그럴까? 어머니와 내가 달라서일까?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단지 내가 내 생활을 제대로 꾸려 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고, 안 그러면 계속 옛날 일만 쓰게 된다고, 성훈이 그 자식이 그랬지. 젠장. 그 자식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니, 걔만큼 날 잘 아는 놈도 없었지. 비슷한 병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어머니, 엄마.......


    나는 안경을 쓰고 남은 국화차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미지근해진 찻물을 담뿍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목으로 넘기니 알싸한 국화 향기가 입안에 남았다. 주영이가 앉은 뒤로 이름 모를 단발머리 아가씨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아가씨와 아이들은 그대로 멈추어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치어다보기 좋았다. 나는 나오는 대로 지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예식장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지하철 역 출구에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를 만났지. 아무 말도 없이 불쑥 전단지를 내미는 통에 나는 무슨 전단진지도 모르고 그걸 받았어.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그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불쑥불쑥 전단지를 내밀고 있는 거야. 어차피 신장개업이니 뭐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전단지였고, 엉겁결에 받아 쥔 사람들도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냥 버리거나 쓰레기통에 처넣었어. 하지만 할머니는 일단 자기 손을 떠난 전단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듯 꿋꿋이 서서 줄기차게 사람들을 향해 전단지를 불쑥불쑥 내밀었지. 그 전단지 한 장에는 어쩌면 집에서 혼자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주한테 주는 밥 한 숟갈이 걸려 있었을지도 몰라. 한 장에 한 숟갈, 두 장에 두 숟갈.......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할머니는 겨울 한낮에 바깥으로 나와 품을 팔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주영아. 내가 쓰는 글이 그 할머니가 불쑥 내밀던 전단지보다, 아니, 그 전단지만큼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쓰는 글은 아무에게도 따뜻한 밥 한 술 되지 못해. 따뜻한 밥이 뭐야? 찬밥 한 덩이라도 되면 다행이겠지. 내가 끙끙거리며 기껏 글 하나를 싸질러 놓으면 그 즉시 냄새가 풍겨. 지당한 말씀 늘어놓는 걸 누가 못하냐, 결국 너 잘났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냐, 너 혼자 읽으려고 이런 걸 썼냐, 뭐 그런 구린내가 풍긴단 말야. 난 남들한테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창피해. 어머니한테도.”


    “......”


    “우리 어머니는 몸이 약하신 분야. 명절마다 내키지 않는 큰집 뒤치다꺼리를 하고 돌아오시면 며칠은 앓아 누우시지. 몸이 약하셔서 어디 일하러 나가시지도 못해. 몸만큼 마음도 약하셔서 친척들한테 내 험담이라도 들은 날에는 몇 날 며칠을 그 얘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셔. 작은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심란해 하시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 뭔지 잘 알아.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꿈을 늦게라도 이루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언제나 생각에서 끝나지. 어머니의 꿈은 내 어린 날들에 저당 잡혔어. 지금도 어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꿈은 고스란히 내가 저당 잡고 있어. 한평생을 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이란 말야.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내 꿈을 이루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꼴이야. 몸도 마음도 앓고 계신 어머니한테. 돈 좀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게 되면 잔소리도 한숨도 듣지 않게 될 테니 속은 편해지겠지. 그래. 하지만.......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 자신과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들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도 생활일 거야. 집에서 살든 나가서 살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글쓰기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난 결국 모든 것에서 도망치게 될까? 아니면 뭔가 하나라도 붙잡게 될까?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 하지만 도망치는 삶은 죽는 것보다 싫어.”


    말을 맺고 고자누룩해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영이는 갑자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뒤틀었다. 하품을 하면서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는 널려 있는 휴지들을 그러모아 탁자 밑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고서 나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요. 내가 뭘 알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하든 알아서 잘 살아 봐요. 오빠가 언젠 뭐 안 그랬나? 그리고 이젠 나이도 있으니 술 좀 줄이구요.”


    “네가 시작한 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딴청야.”


    “그나저나 어쩌죠? 형렬 오빠가 같이 집행부 하자고 할 텐데.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그냥은 못 빠져나갈 것 같아요.”


    “어쩌긴 뭘 어째.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내가 그랬다며.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풋. 오빠가 폼 잡으면서 그때 또 무슨 말을 한 줄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나 아직도 기억하구 있어요.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생활은....... 뭐?”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정말 까먹었어요? 누가 한 말이라고 했더라? 그땐 되게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레닌의 말이었다. 다이 호우잉의 소설책에서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주영이에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그게 벌써 언제적 일인데 그래.”


    “얼마를 살았다구 그렇게 늙은이처럼 말해요?”


    탁자 위에서 주영이의 손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손전화를 열고 뭔가를 조몰락거리더니 손전화를 다시 닫으며 주머니에 넣고 주영이는 외투를 꿰어 입었다.


    “형렬 오빠가 한 시간 뒤에 대학로에서 보자네요. 지금 일어나야겠어요. 오빠, 미안해요.”


    “미안할 거 없다. 차도 얻어먹었는데 뭐.”


    “서른 넘어서도 후배들 뜯어먹구 다니면 대머리 될 걸요?”


    “가발 사 달라고 하면 되지.”


    주영이와 나는 도너츠 가게를 나왔다. 따뜻한 곳에 오래 있다가 나와 보니 으슬으슬 추웠다. 참을성 없는 겨울 해는 벌써 가라앉으려는지 서쪽 하늘 부근에서 얼쩡거렸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강남의 고층 건물들은 눈치도 없이 주홍빛을 잘라 먹었다. 어딘가로 정한 곳 없이 가고 싶었다.


    “가라.”


    “오빠두 잘 가요.”


    주영이와 나는 별 말 없이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무슨 계기로 또 만나게 된다고 해도 주영이와 나는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이였으니.


    나는 코엑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리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지하철 삼성 역 가까이 다다르니 우람한 몸집으로 버티고 앉은 현대 백화점이 보였다. 일요일 해거름이라 그런지 길거리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나는 연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듯 최선을 다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월요일을 앞둔 자동차들은 험상궂어 보였다.


    코엑스몰은 재래시장 못지않은 뜨거운 기운이 넘쳐 났다. 노동에서 나오는 열기라고 하기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상품들과 상품들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어느 서점으로 들어갔다. 책꽂이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의 이름을 건듯건듯 훑었다. 무슨 놈의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평생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책만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것 같았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 읽으면 백 살이 넘을 텐데 백 살 넘어서 좋은 사람이 되면 무엇 할까를 생각했다. 역시 내 나이엔 책 말고 다른 더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집이 꽂혀 있는 서가 앞에 주저 앉아 이것 저것 꺼내 읽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저리면 일어났고 다리가 아프면 다시 앉았다. 배가 고파져 손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표지 색도 예쁘고 시인 이름도 예쁜 시집을 한 권 들고 값을 치렀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어둑어둑해진 사위엔 사람이 만든 불빛들만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 불빛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작정 발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얼음판처럼 맨송맨송한 보도블록 위에 가로등이 늘어뜨린 내 그림자가 얹혀 따라왔다. 얼마쯤 걷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니, 내 생활과 다시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아파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달덩이 같은 전등 하나가 달린 어느 건물 입구에 기대어 섰다. 길거리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산 시집을 꺼내 펴 들었다. 대강대강 넘기며 눈어림으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 편을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시를 썼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토마토 하나를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물이 뚝뚝 묻어 떨어졌다. 버찌처럼 둥글고 조그만 것들이 포탄처럼 허공에서 붉게 터졌다. 무언가가 엎어지고 쓰러지며 우당탕 소리를 냈고, 우우 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둥글고 조그만 것들은 점점 많아지며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하늘 위에서 자꾸만 붉게 터졌다. 광현이, 성훈이, 승기, 주영이의 얼굴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녔다. 터널 같은 것이 보였다. 아, 이제 그만 좀 던져! 나를 못 맞히고 빗나간 토마토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혀 퍽퍽거리며 터졌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다시 넘어지는 것들은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덩실덩실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녔다. 터널 안쪽은 하나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라보는 그쪽에 출구가 뚫려 있었다. 눈앞에 거울 하나가 둥실 나타났고 그 안에는 내 얼굴처럼 생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토마토를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어머니처럼 생긴 내 얼굴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어서 저기 보이는 출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따라와. 우리가 매일 뭘 했는지 가르쳐 줄 테니. 살아있는 한 말이야. 우리는 뭔가를 하게 돼 있어.


    고개를 들었다. 오렌지를 한입 베어 먹은 듯 입안에 시큼한 침이 흠뻑 고여 있었다. 나는 목울대를 크게 휘저어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한껏 벌리고 차가운 밤 공기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 gsh_lsy_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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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h_lsy_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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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지혜

    저, 제가 좋아하는 책이네요 ㅎ

    이 책 제가 추천합니다. ㅎㅎ

    저 에덴의동쪽에 나온 한지혜입니다.ㅎ

    에덴의동쪽 사랑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리구요,

    응원해주세요 !

  •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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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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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현실이라는 마음의 병 (2)
    박병학 / 2009년02월23일 10시12분

    벌써 두 시가 다 됐는데 식은 시작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발 아래만 멀뚱히 내려다보며 걷는데 눈앞에 웬 네모난 것이 쑥 들어왔다. 지하철 선릉 역 출구를 막 나서는 중이었다. 네모의 한 귀퉁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샅에 끼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흰 등산 모자 밖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잔뜩 비어져 나온 할머니 한 분이 옆구리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낀 채 한 손으로는 울긋불긋한 전단지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할머니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리기도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켰다. 이 할머니는 전단지 한 장에 얼마씩 받으실까? 그 돈으로 누구를 먹여 살리실까? 내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드실까? 어차피 전단지가 자기 손을 떠나는 족족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엉겁결에 한 장을 받아 쥐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니 내 뒷사람들은 할머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재우쳐 갔고, 할머니께서는 들이민 손을 그때마다 군인 같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윗몸을 벌겋게 드러낸 남자가 갑각류의 우둘투둘한 외골격 같이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질을 과시하며, 무겁게 보이는 역기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여는 헬스 클럽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신다는 내용이 미끈한 글씨체로 전단지 구석구석에 쓰여 있었다. 성형외과와 헬스 클럽이 유난히 득시글거리는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 몸 가꿈과 이젠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누구나 자기 돈 들여 자기 몸 가꿀 수 있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은 두 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뛰어간다 해도 빠듯했다. 더구나 식장은 4층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구겨 외투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찾았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신부 쪽 친구들이거나 후배 놈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이겠거니 싶었다. 승강기가 4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여자 둘은 서로 아는 사인지 모르는 사인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둘은 확고한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내 앞에 훤히 펼쳐진 떠들썩한 분위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찾기 위해 시골뜨기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축의금을 넣는 하얀 상자가 보였고 신랑 쪽 사람과 신부 쪽 사람이 제각기 책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후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식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식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장 밖에서 끼리끼리 뭉쳐 재깔거리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식장 안을 넘겨다보았다. 후배 놈은 신부와 팔짱을 낀 채 주례 선생님 앞에 서 있느라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례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식장 안 이곳 저곳에 매달려 있는 화면으로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비쳤다. 녀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담뿍 먹은 신부의 얼굴은 후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TV와 길거리에서 낯을 익힌 화장기 진한 여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화장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입고 있는 턱시도며 신부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혼례복이며 전부 다 진부하게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누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아는 얼굴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자 후배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늘 소문으로만 접하는 얼굴들과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해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얼떨결에 튀어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후배들은 나를 지나쳐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축의금 받는 곳을 바라보니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다 후배들이었다. 흰 봉투를 품 속에서 꺼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 후배들의 손은 하나같이 고와 보였다.


    차비 대는 것도 빠듯한 내 형편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이랍시고 봉투에 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전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삼아 사람들과 늦은 저녁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후배 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후배였다. 손전화에 찍혀 나온 이름 석 자를 보며 후배 녀석과 함께 망나니짓하며 놀았던 대학 시절을 샘물 움키듯 떠올려 보았다. 전화를 받자 녀석은 다짜고짜 다음 주 일요일에 강남에서 결혼한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형, 미안해요. 내가 먼저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잘 살라는 말은 안 한다. 잘 살라고 하는 놈들 다 그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거 너도 알지? 광현이 네가 잘 살든 말든 하나도 상관 안 할 놈들이 꼭 입으로는 언죽번죽 잘 살라고 쉽게 말하잖아. 난 그런 말 못한다. 잘 살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저 네 선택을 존중할 뿐이야. 누가 알겠어? 얼마 못 가서 너 갈라설지도 모르잖아.”


    “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광현이는 웃으며 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청첩장을 보내 줄 모양이었다. 일요일 오후 두 시. 글쓰기 모임 일정 때문에 못 갈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결혼식 날에 보자고 광현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게 간 군대를 마치고 나와 보니 후배 녀석들은 죄다 자기 갈 길 가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었고, 한번 만나자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닌 나는 하나 둘 후배들과 멀어져 갔다. 군복을 입고 정기 휴가를 나왔을 때도 누구에게든 먼저 전화를 걸어 제발 좀 만나달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선배와 동기들은 먹고사느라 바쁠 테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만만한 게 후배들이었지만 후배들 역시 뭔지 모를 이유들로 하루하루가 빡빡할 것이어서 아마 나는 구차하게시리 시간 좀 거저 달라고 매달리는 거지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입대 전까지 살붙이처럼 가까이 지낸 광현이에게도 휴가 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광현이와는 두 학번 차이가 났지만 내가 2월 생이라 일 년 빨리 입학했고 광현이는 재수생이라 일 년 늦게 입학한 탓에 나이가 같아 술자리에서는 늘 나이 얘기가 우스개 삼아 안줏거리로 올라왔다. 비록 도중에 집어치우긴 했지만 녀석과는 <자본>을 함께 읽은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별의별 못난 꼴들을 속속들이 보여주느라 숫제 할말 못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녀석은 나보다 군대를 일찍 다녀왔지만 군생활 중에 휴가 나왔다는 연락 한 번 없이 고향인 청주에서 휴가를 다 보내고 슬그머니 복귀해 버리고는 했다. 다른 후배들은 녀석과 나를 하나로 묶어 ‘암울 형제’라고 불렀다. 술만 퍼마시면 어두운 표정으로 김광석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작 수컷처럼 자기 매무새를 멋지게 꾸밀 줄 알아야 정신 똑바로 박힌 대학생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딱 한번 광현이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리던 때였다. 차마 통화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하기엔 낯뜨거웠는지 나는 몇몇 이들에게 손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광현이였다. 광현이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임용고사에 연거푸 떨어지고 난 뒤 서울대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기간제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돈 얘기가 사달이었는지 그 뒤로도 광현이에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러구러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느닷없이 연락하고선 결혼을 한다니. 분명 당사자에게 들었는데도 꼭 거짓말 같았다.


    집에 들어 와서도 나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녀석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헤집어 보며 옛 생각에 젖었다. 녀석과 자취방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술 퍼먹으며 누구를 향해 어떤 불만을 쏟아 냈는지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인데 축의금을 못 줄 망정 뭐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다가 책이나 한 권 안겨 주기로 했다. 편지도 한 통 쓰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만 같구나. 변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홀몸이던 네가 결혼을 하고, 일자리 없이 헤매던 승기가 기간제 자리를 구하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오래 갈 것 같던 연인들이 어느새 각자의 길을 가고....... 하지만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차피 사람의 기준이겠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라면, 새로 만나든 새로 헤어지든 막상 변했다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저 일상이고 시간일 테니. 결혼이 일주일 남았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겠구나.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너한테 가끔씩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하면 너는 여자 친구 생겼다는 거짓부렁을 항상 지어내고는 했었지. 김광석 노래는 좀 부르니? 옛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했구나. 다른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떠올리면 이제 더 이상 팔 벌려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드는데,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결혼 축하한다는 진부한 말보다는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잘 살라는 말보다는 앞으로도 한결같이 너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공책에 괴발개발 쓰던 편지를 좍 찢어 구겨 버렸다.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책은 나중에 결혼식 끝나고 광현이 녀석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따로 한번 만나서 건네주기로 했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주례사는 금방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염없이 지루한 웅얼거림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식장 밖을 어슬렁거리며 낯익은 얼굴들과 시간을 때웠다.


    “어, 형!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하세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낯익은 얼굴들이 거듭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흔들었지만 대화는 이처럼 되풀이되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 모임을 꾸려 가던 녀석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녀석도, 소주 한 병을 누가 빨리 비워 내나 같이 내기하던 녀석도, 한 여자 후배를 두고 다투어야 했던 녀석도, 반년 정도 속으로만 좋아하고 고백 한번 못해 본 새침한 녀석도, 그 어떤 후배 녀석도 전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마 편한 내 동기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좀 이상했다. 광현이와 꽤나 허물없이 지낸 동기 녀석들이 식에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식은 안 보고 벌써부터 피로연 장에서 처먹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식권을 받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축의금 없이 식권을 받으려면 배짱이 필요하다. 나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축의금 상자가 놓인 책상에 다가가 식권 두 장만 달라고 했다.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식권을 주고 들어가는 피로연 장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혹시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일부러 두 장을 달라 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식권 두 장을 주었다.


    주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들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모님들은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삼십 년 가까이 키운 자식이 마침내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게 되는 순간을 부모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슴앓이 탓에 잠을 못 이루시던 어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서랍장 하나를 손가방으로 두들겨 부수려 하셨다.


    나이 스물 아홉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글 쓰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서서히 지쳐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보험 회사 상담원처럼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 계획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들려드릴 수가 없었다. 딱히 문예지에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쓸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시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길만큼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시험을 쳐서 지긋지긋한 공무원이 되는 길을 가느니 차라리 개똥이 널린 길을 낮은 포복으로 기는 게 나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교육학 교재들을 몽땅 외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임용고사부터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이 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집안 한구석에 음흉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생활비를 옛 소련에서 식량 배급하는 만큼이나 어렵사리 대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몇 달마다 한번씩 생활비를 얼마간 가져오셨고 나는 조그만 보습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버는 푼돈을 쪼개 달마다 생활비랍시고 보탰다. 우리집에선 노량진에 있는 한 입시 학원에서 수업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 동생이 가장 많이 벌었다. 온 가족 의료보험비는 일 년이 넘도록 밀려 있었고 다른 공과금들도 몇 달에 한 번씩 전기나 수도가 끊기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겨우 냈다. 구질구질하다면 구질구질한 살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살림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모아둔 돈도 없었고, 어느 눈매 고운 여자 만나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숫제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내 형편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천하태평인가 싶었다. 물론 어머니는 나와 달랐다.


    현실이라는 것은 어느새 어머니 마음에 들어앉은 무거운 병이 되어 암세포처럼 어머니의 몸뚱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에 가기를 바라셨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 교수 자리를 꿰찼으면 하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회 현장이나 노조 천막을 돌아다니며 글 쓰는 짓거리를 그만 두고 어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 결혼도 해서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돈 안 되는 글쓰기 같은 건 집어 치우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보겠다고 헌걸차게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 쓰는 일로 벌어 먹고 살겠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무언가 일거리를 하나 잡고 생활비를 벌면서 글을 써야 하긴 할 텐데, 어머니는 최소한 학교 선생님 이상 가는 자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내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가장 많이 밥줄로 삼고 있는 직업을 고작 불합리한 공교육 제도의 노예 신세일 뿐이라 우습게 보게 되었다.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서른을 코앞에 두게 되자 어머니의 한숨에는 더 축축한 습기가 맺혀 나왔다. 에휴 어이고 하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 줄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조금씩 어머니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예전처럼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듣지 못했다. 구정 연휴 동안 큰집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사촌 동생, 고등학교에서 얌전히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고 가슴에 뭐라도 얹히셨는지 명절이 끝나고 나서부터 내내 한숨 바람이셨다.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서 서점이나 시립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밤늦게야 슬그머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있으면 거실 마루에 누워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잠을 못 이루시더니 느닷없이 이불을 차 버리고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을 들어 마루에 있는 서랍장에 마구 두들겨 대셨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뛰어 나가 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를 말리고 계셨다. 동생은 친구들과 먼 곳으로 놀러 가 집에 없었다. 내 한 팔로도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집으로 손가방을 서랍장 모서리에 쾅쾅 마구 짓찧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아 끌자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아 끄윽 끅 울음을 쏟아내셨다. 방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연신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는 쇳소리 섞인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끊은 지 한 달째가 되어 가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정말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좀 벌어서 어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모르긴 해도 광현이와 신부 부모님들은 아마 행복할 것 같았다. 아들이며 딸이며 전부 학교 선생님으로 남 부러울 데 없이 키워 놓았고, 이젠 혼례까지 치렀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젠 손자를 바라게 될까? 광현이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할까? 차 사고, 집 사고, 우유 값 벌고, 좋은 선생님에 착한 남편 노릇하며 수더분하게 늙어가게 될까? 정말 그렇다면 광현이도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었다.


    신랑 신부 행진을 하기에 앞서 광현이의 동기이자 내 후배이기도 한 사회자가 신랑에게 짓궂은 장난질을 시켰다. 광현이는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린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식장 안은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거푸 팔굽혀펴기를 하고 “심봤다”를 몇 번이나 외친 끝에 광현이는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나도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광현이 눈에 잘 뜨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광현이가 깜짝 놀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괜히 열없어져서 “너 머리가 그게 뭐냐? 양아치야?”라고 해 버렸다.


    행진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 신부의 친척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갔다.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먹고 나온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사진은 됐으니 바로 피로연 장으로 들어가 배나 채울까 궁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승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뭐야. 지금 오는 거야?”


    “아니, 안에서 먹고 지금 나오는 거다.”


    “우리 동기들은 안 왔어? 안에서 처먹고 있는 거 아냐?”


    “없어. 안 왔다.”


    나이 서른에 이마가 훤히 벗겨진 승기의 뒤로 후배들 한 떼거리가 걸어 나왔다. 다들 먼저 피로연 장에서 배를 채우고 사진 찍을 때쯤 해서 나온 모양이었다.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까지 찍고 밥 먹기로 하고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후배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새 뭐 해요? 돈 되는 일 빼고 다 한다. 그럼 연애도 하겠네요? 연애가 돈 안 되는 일이었나? 그럼요, 연애하면 돈이 얼마나 나가는데. 야, 그러려면 우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신랑 신부의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몰려 나온 빈 공간을 젊은이들이 거침없는 걸음새로 채우기 시작했다. 다들 예쁘고 새뜻하게 보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결혼식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으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말끔한 정장 몇 벌쯤은 옷장 속에 쟁여져 있는, 굳은살 없는 손과 그을림 없는 얼굴을 가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들이 신랑과 신부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장을 몹시 싫어하는 나는 눈앞에 활짝 펼쳐진 정장들의 물결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젊은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어디론가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식장 바깥으로 나가며 승기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간제 구했다며?”


    “그렇게 됐다.”


    “야, 나도 어디 기간제 하나 구할 수 없냐? 돈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아야지 숨막혀 죽겠어.”


    “집에 엄마랑 둘이 있으면 분위기가 폭발할 것 같지? 나도 알지 그 기분.”


    내가 출근하는 학원은 승기가 꽤 오랫동안 맡아 하던 걸 내게 슬쩍 이어준 곳이었고, 승기는 그 뒤로 다른 학원들을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결국 임용고사 공부를 시작하며 강사 일을 정리해 버렸다. 어디서 공부를 하는지 승기는 그 뒤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임용고사가 있던 날 저녁에 승기는 내게 전화를 걸어 시험을 망쳤으니 일단은 기간제나 알아봐야겠다며 쓰게 웃었고, 그게 지난 세밑이었는데,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결국 기간제 선생님 자리를 하나 구한 모양이었다.


    “원래 학기 중에는 잘 안 구해지지 않아? 방학이나 돼야 자리가 날 텐데.”


    “학교마다 다르지. 여자 선생님 출산 휴가 때문에 기간제 쓰는 학교도 있고. 지난 한 달 동안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백 통도 넘게 출력했어. 원서를 좆 빠지게 내밀고 다녀도 잘 안 구해지더라. 요새 사립 학교들이 눈이 너무 높아져서 토익 점수니 학점이니 뭐니 장난 아니게 따지거든.”


    “너는 어떻게 구했는데?”


    “쑤시고 다니다 보니 운 좋게 된 거지 뭐.”


    “자기가 원서 들고 학교마다 찾아 댕겨야 하는 거야? 원서는 어떻게 넣어?”


    “경기도 교육청이랑 서울, 인천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구인구직란이 있어. 거기 보면 어디 어디 학교에서 기간제 구한다는 공고가 뜨거든. 그거 보고 내는 거야.”


    “그래......”


    막상 기간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했다. 기간제 자리를 덜컥 구해서 아침마다 출근하게 된다고 해도 꽉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을지, 어딘가를 취재해서 글을 쓸 수는 있을지, 책 읽을 시간은 날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필요한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 전부라 생각하며 부여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버려야 할 것이다. 피로연 장에 있을 술 생각이 났다.


    “너 밥 먹었다구 그랬지? 집에 갈 거냐?”


    “글쎄. 밖에 나가서 한 잔 할래?”


    “나 밥도 안 먹었어. 그러지 말고 너도 들어와서 2차로 밥 먹어라. 응? 안에 공짜 술도 있구.”


    “밥이 술이냐? 무슨 2차야? 나 식권도 없어.”


    “걱정 마라. 나한테 두 장 있다.”


    우격다짐으로 승기를 끌고 피로연 장으로 들어 갔다. 느끼한 음식 냄새가 금세 콧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는 과일을 몇 개 집은 승기와 함께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한산한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이컵에 맥주를 붓고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에 쓴 물이 가득 괴어 올랐다.


    “아우, 써.”


    “웬일이냐? 결혼식에 와서 네가 소주를 안 처먹고?”


    “나 지난 연말에 술 때문에 쓰러졌잖냐. 1월 중순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았어. 오늘이 2월 8일이니까 술 안 마신지 한 달 조금 넘었네.”


    “너 술 마신 게 하루 이틀이냐? 얼마나 마셔댔길래 그래?”


    “글쎄. 한 반년 넘게 물처럼 마셨나? 작년 봄에 촛불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 이런저런 현장에 돌아다닌답시고 술만 처먹고 다녔지 뭐. 노조 천막에서 조합원들이랑 술 마시면 나 땜에 밤 새느라 다음날 노조 회의 하나가 작살이 났으니까.”


    “오늘은 마셔도 되는 거야?”


    “맥주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근데 오랜만에 마시니 술 맛을 모르겠다.”


    승기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 술을 마셨다. 수배를 피해 학교 학생회실에서 먹고 자던 추레한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수배가 풀린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때운 승기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다시 학교로 복학해서, 승기가 한창 때 대학 안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는 어린 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학내 조직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고, 나도 얼굴을 어릿어릿하게 기억할 뿐인 후배들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쉽사리 마음이 꺾였다. 팔십 년대 투사들이 구십 년대에 들어 방황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이른바 ‘후일담’ 소설들을 한때 염소가 종이 먹듯 마구 읽어 치운 적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 것들을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보며 조금씩 되짚어 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한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이던 녀석과 으리으리한 피로연 장에서 고깃점을 잔뜩 쌓아 놓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나는 이미 소설 속에서 숱하게 읽었다. 술에 얼근하도록 취하면 피로연 장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후배들 멱살을 잡아야 하는지, 어디에 털썩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쳐다보아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나는 죄다 알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서 몇 번 나가 보았던 동기들 모임에서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혼과 집장만과 자가용과 대학원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동기들 틈에 끼어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어휘들을 속으로 주물럭거리며 줄담배를 피워 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 싫었다기보다는 내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들 자체가 너무나 진부하다는 것이 못 견디도록 싫었고, 이미 팔십 년대 작가들이 오래 전에 소설로 썼던 이야기들을 이제 와서 내가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사실 또한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돈 벌고 애인 만들며 안락한 삶을 향해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 또한 점점 진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어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도 아니고 후일담이든 뭐든 소설에 쓰여진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었지만, 나 자신을 보고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거기서 거기인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아직 삼십 년도 채 살지 않은 녀석이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다른 어떤 생각 못지않게 진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러다간 진부함이라는 터널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귤을 우물거리고 있는 승기의 하얀 양복 와이셔츠 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훤히 벗겨진 이마에는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머무르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고깃점들을 아구아구 입속에 처넣었다.


    “요새 뭐 하냐?”


    승기가 짐짓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오늘 하루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돈 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내 대답에 그처럼 되물어 준 사람은 승기가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말을 잇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물거렸다.


    “글은 계속 쓰고 있냐? 글쓰기 모임 한다면서 거기엔 아직도 나가?”


    승기한테는 굳이 숨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 시간도 때울 겸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 보기로 했다.


    “글이라. 글쎄. 모르겠다. 써도 써도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나 하는 생각밖엔 안 들어. 별로 많이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야. 모임에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구. 글을 쓰면 뭐 하냐. 읽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한 편 쓰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아니, 돈을 바라고 써야 하는 거 맞지. 내게도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근데 돈 나오는 글을 쓰려면 등단을 하든 뭘 하든 해서 글에 돈을 쳐주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생각은 있긴 있는데 들어갈 능력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능력은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정말 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다른 밥벌이를 해야 하나.....”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애들 알아?”


    “알지. ‘싸구려 커피’ 부른 인디 밴드 말하는 거지? TV에도 가끔 나오는 걸 보니 인디 밴드 치고는 꽤 알려진 모양이던데.”


    “장기하가 인터뷰하는 걸 보면서 너 생각을 했거든.”


    “뭐라고 그랬길래?”


    “기자가 좀 짓궂게 장기하한테 인디 음악 하면서 배고플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어. 장기하는 배가 고파도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지 웬만하면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 ‘웬만하면’이라는 말이 걸리더라고.”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말이네. 견딜 만하니까 그러지.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아직까지는 ‘웬만하면’이야. 나 참. 아직은 누워 잘 곳은 있고, 밥은 안 굶고 다니니......”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고민 많고 글재주 있는 놈들 여럿 있었잖아? 학교 선생님으로 나갈 생각 전혀 안 하던 녀석들 지금은 전부 다 학교나 학원에 가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사범대 나왔겠다 학력 되겠다 한 자리씩 잡으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살면서 보험 하나씩 들어두는 건 필요하긴 한가봐.”


    “어떤 놈들은 돈 많은 여자 친구를 보험으로 삼고 사귀기도 하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세컨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수연이는 잘 있냐?”


    “잘 있기야 하지. 돈 버느라 바빠.”


    “너희도 젊은 연인들 치고는 오래 가는 거야. 요새 누가 오래 연애하냐? 제깍 결혼하든가, 아니면 가망 없는 사람 등지고 딴 사람 찾든가 하지. 얼굴은 자주 봐?”


    “못 봐. 가끔씩 만나도 회사원과 백수라는 신분이 정말 다르긴 다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 걔야 지금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지. 경력도 좀 되고. 나야 작년 내내 임용고사 준비만 했지 돈을 벌었냐 일을 했냐. 학원 하면서 벌어놓은 것도 거의 다 헐어 쓰고 보니 수연이한테 기념일마다 선물 챙겨 주는 것도, 날씨 좋은 날에 같이 놀러 다니는 것도,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 내 담뱃값 대는 것도 힘드니 말 다 했지. 학교 다닐 때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서 떡볶이 같은 것도 같이 맛나게 잘 먹었는데, 이제는 그런 데는 구질구질해서 싫대. 길거리를 가면서도 비싼 옷이나 액세서리 파는 데에서는 한참씩 있다가 가고......”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안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임마. 마음만으로 되는 게 이 세상에 어딨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수연이와 내가 자꾸 조건이 안 맞아가고 있다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뭐가 사랑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에 조건이라고 해 봤자, 결국 돈밖에 없잖아.”


    “돈이 아니라 현실이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돈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뜻해. 연애도 못하는 너는 모를 거다.”


    나는 수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하얀 얼굴에 똘방똘방한 눈으로 항상 웃고 다니던 수연이는 승기가 공익근무요원 노릇을 할 때 과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승기와 사귀게 된 후에 수연이는 어느 날인가 승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하던 시간들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요. 그 시간에 공부를 더 못 한 게 두고두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암, 그럴 수 있지. 조직이란 건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까딱 잘못하다간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할 일은 태산 같이 쌓여 있는데, 바꾸고 고쳐 나가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주변 사람들은 좀처럼 거기엔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항상 몇몇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술꾼이 되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힌 우등생이 되기 일쑤였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다운 ‘낭만’이라는 것을 넉넉히 누린 것도 아닌 어느 졸업생이 금테 둘러진 대학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집안 사정도 몹시 어렵다면?


    꿈 꿀 수 있는 여지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현실과는 어떻게든 화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놈의 현실이란!


    “예쁘지만 가난한 여자는 자기의 몸값을 제대로 알지. 그래서 잘생겼지만 돈 없는 남자 아니면 못생겼지만 돈 많은 남자를 골라. 못생겼지만 돈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야. 어딘가 흠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게 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결혼도 어차피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손해를 보려구 하겠냐? 내가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니 돈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나이 서른에 아직도 시험 준비하랴 기간제 구하랴 빌빌대니까 당연히 성에 안 찰 수밖에.”


    승기는 맥주를 샘물 먹는 소처럼 벌컥거리며 쭉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동화책이나 소설이나 드라마 보면 조건 같은 거 안 따지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많이 나오잖아? 그거 다 개소리야. 책이나 TV에 나오는 남녀는 죄다 미남 미녀들이니 일단 외모라는 조건에서는 서로 들어맞는 거지. 나머지는 작가들이 다 알아서 쓰는 거고. 항상 결혼에 골인하거나 부자가 되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나오는 거 봐. 현실에서도 똑같아.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결국 조건 아니면 돈이야. 자기 조건 제대로 아는 눈치 빠른 사람은 자기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돼 있어.”


    나는 승기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시절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더라. 민중 생존권 쟁취와 학원 자주화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라크 전쟁 반대와 노동자 농민의 정치세력화와...... 하긴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보다는 차라리 승기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차라리 더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도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승기의 말을 받았다.


    “사실 조건이라는 것을 따지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오히려 피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일단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고를 거잖아. 그거부터가 이미 조건을 따지자는 건데. 안 그래? 그러면서 조건은 하나씩 늘어가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얼굴이 흉측하게 생기지 않아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비슷한 취미가 있어야 하고...... 외모나 학벌이나 집안, 재산 같은 걸 속속들이 따지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 자기네 혈통을 관리해야 하는 엄청난 부자들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쓰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 조건을 내건다고. 그리고 그렇게 내건 조건이 또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새로운 조건이 되고. 무엇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할 때는 그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는 소리잖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쨌든 문제는 말이야. 그 조건이라고 하는 게 우리들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얼마나 잠식해 가고 있느냐 하는 건데. 막말로 승기 네가 돈이 없어서 수연이 걔가 멀어져 간 거라고 쳐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거지로 나눠지는 건 아니니까, 아마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경제적 능력도 부자와 거지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 정도의 능력이겠지. 너는 그런 애매한 위치의 능력조차 걔를 위해 발휘할 수 없었다는 건데, 그것도 너의 잘못은 아닐 테구. 빌어 처먹을 놈의 학교들이 기간제만 자꾸 쓰려고 하니까 임용고사 정교사 정원이 확 줄어서 그런 걸 테지? 너와 수연이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달라서 이렇게까지 된 거 아냐? 정말로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것이 네가 가진 것 이상 가는 경제적 능력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못 미치는 네가 실망스러워서 등을 돌려 버린 것이라면, 너의 인간적 가치는 끝내 돈이라는 것에 납작하게 짓눌려 버린 것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수연이를 두고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어. 걔가 풍족한 삶을 원하는 인간이라면, 사실 풍족한 삶은 누구나 속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거니와, 걔가 그런 삶을 원하도록 자꾸만 부추겨 온 보이지 않는 힘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야지. 바로 그 힘이 너라는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갉아먹어 버린 몹쓸 것 아니겠어?”


    내가 한바탕 쏟아 낸 연설을 듣고 승기는 손을 홰홰 젓더니 귤을 집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관 둬 임마. 괜한 얘기를 꺼내가지구. 어디 돈 때문에 그런 거겠냐? 남녀 사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넌 연애도 못하는 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논문을 쓰냐? 그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만큼 케케묵은 개소리가 또 어딨어?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거야? 베네수엘라처럼 대안 체제를 향해 가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수연이가 나한테 다시 매달릴까? 아냐. 여자들 대부분이 다 비슷해. 이십대에 꿈을 꾸든 지랄을 하든 뭘 하든, 서른 넘어가면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게 되어 있다고.”


    “네가 여자를 몇이나 만나 봤다고 그래? 그리고 어디 여자만 그러냐?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자꾸 현실 현실 하는데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나는 얼마 전 한 친구와 감자탕을 먹으며 눈을 치뜬 채 똑같은 물음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구정 연휴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이었다. 글쓰기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물 한 잔을 앞에 둔 채 살이 발라진 닭 뼈다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터뷰를 어떻게 짤 것이며 누가 어디를 맡아 글을 쓸지, 다음 모임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열띤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잦은 술자리와 줄담배 탓에 지난 세밑에 결국 거꾸러진 후 나는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학원에만 겨우겨우 출근했고, 다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워 있으면서도 깨죽깨죽 뭔가를 읽었고, 귀가 아프도록 음악을 들었다. 뉴스 같은 건 하나도 보지 않았다. 배고프면 밥을 먹었으며, 잠이 오면 이불을 덮어쓰고 잤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썼던 적지 않은 글들을 떠올려 보면 나 혼자서만 아무 의미 없는 헛지랄을 한 것 같아서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내 글쓰기를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도 나는 정물화 속 꽃병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내게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재능이란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빚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넘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게을러 빠진 소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귓등으로 흘리며 튀김 닭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손전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전화 화면에 찍힌 이름 석 자를 보고 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피돌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 미친 놈아. 난 너 죽은 줄 알았다.”


    “잘 있었냐. 지금 밖인가 보네?”


    “서울 올라온 거야? 얌마, 네가 무슨 싼타 클로스냐? 일 년에 한 번 보는 게 왜 이리 힘들어?”


    “지금 서울이다. 아는 사람들이랑 한 잔 하구 학교 근처로 가는 길야. 너 혹시 지금 나올 수 있어?”


    “지금 몇 시나 됐냐? 어.... 그러니까...... 열 시네. 여기 대학로야. 학교까지는 삼십 분이면 간다. 근데 꼭 오늘 봐야 돼? 날 잡아서 승기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미안. 오늘 말고는 시간이 안 날 것 같네.”


    “그럼 여기 끝나면 갈 테니까 제기 시장 쪽에서 자리 잡고 기다리구 있어. 나 감자탕 먹고 싶다.”


    “어서 와라.”


    뒤풀이가 끝나고 나는 대학로에서 버스를 탔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성에가 뿌옇게 낀 감자탕 집 문을 드르륵 밀어젖히며 눈으로 성훈이를 찾았다. 성훈이가 팔을 번쩍 쳐들었다. 나는 성훈이에게 다가가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껴안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올라왔어? 연락도 안 되더니.”


    “자꾸 내 사망설이 퍼지고 있길래 나 살아 있소 하려구 올라왔지.”


    대학 시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감자탕 집이었다. 주인 형님에게 인사를 하니 오랜만에 왔다고 함빡 웃어 주었다. 저녁을 튀김 닭 몇 조각으로 때워서 배가 몹시 고팠다. 기본 안주인 비빔국수 한 사발을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나를 성훈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이구, 잘 먹네.”


    “남 먹는 거 쳐다보면 좋냐? 너는 먹었어?”


    “먹었다. 마이 묵어라.”


    오글보글 감자탕이 끓자 성훈이는 내 잔에 소주를 붓고는 소주병을 내게 넘겼다. 성훈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이 녀석 잔에 술을 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요새 술 못 마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하의 술꾼인 네가 술을 못 마신다니. 죽을 때가 된 거 아냐?”


    “죽을 때는 아직 안 됐는데, 죽을 뻔하긴 했지. 하도 마셔 대다가 지난 연말에 쓰러졌었어.”


    “그러게 작작 좀 먹지. 우리도 늙었어.”


    “난 아직 이십대야.”


    “자랑이다. 그래 봤자 스물 아홉이면서. ”


    남들 보다 일 년 일찍 입학한 나와 달리 성훈이는 재수를 해서 남들 보다 일 년을 늦게 들어오느라 나와는 두 살 차이가 났다. 성훈이 여동생이 나랑 동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이 잘 맞았고,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술을 퍼마시며 우리를 거부한 여자들과 그 여자들을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한 이 세상을 향해 군소리를 퍼부어 댔다. 성훈이는 내가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마시든, 돈이 없어 자판기 커피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맥주와 소주를 사 놓고 소주 안주로 맥주를 마시든,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수업 도중에 홀짝거리든, 학교 식당에서 김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한번도 놀라지 않았고 나를 알코올 중독자라 닦아세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가끔은 서로 싸움질도 했으며, 서로가 자신의 가장 못나고 부끄러운 사연들마저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친구라 생각했다.


    “너랑 마지막으로 본 게 지지난해 연말이었지?”


    “벌써 그렇게 됐네.”


    “자주 좀 올라오지 그랬냐. 그렇게 바빠?”


    “알다시피 내가 있는 곳이 학교 기숙사잖아. 당직도 자주 서고 하니까 평일엔 시간 내기가 좀 힘들어. 이번에도 휴가라서 겨우 올라온 거야.”


    “아직도 그 새터민 학교에 있는 거 맞지?”


    “응.”


    성훈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는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새터민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을 빠져 나온 북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술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성훈이는 잔을 비웠고 나는 입술만 축이고는 내려놓았다. 다시 소주병을 들어 성훈이 잔을 채워 주었다.


    “지방에만 있다 보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더라.”


    “그 학교에는 너랑 마음 맞는 사람 없구?”


    “한 명 있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인데, 인제 삼십대 중반 정도 됐어. 가끔 내 방이나 그 선생님 방에서 밤새 술 먹기도 하고...... 그냥 그 선생님과는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다른 선생님들은? 교무실 분위기가 좀 그래?”


    “남자 선생님들이 여럿 있긴 한데. 꼭 해병대 분위기야. 우르르 몰려다니며 와아 하고 떠드는 분위기 너도 알지?.”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응. 그래서 같이 안 다녀. 하나도 안 친하지.”


    “아이들은 좀 어때?”


    돼지 등뼈를 뒤적이던 성훈이가 큼지막한 것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내 앞 접시에 얹어 주었다. 나는 국자로 국물을 퍼서 등뼈 위에 끼얹었다. 성훈이는 자기 앞 접시에도 등뼈 한 덩이를 얹고선 국물을 떠 먹으며 말을 이었다.


    “착해. 너무 착해서 탈이지. 말하는 대로 다 믿어. 학교 마치구 남한 사회로 나가면 많이 다칠 것 같아.”


    “나이는? 고등학생들인가?”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양해.”


    “예전에 학교에서 토론회 했던 거 기억 나? 탈북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뭐 그런 주제로 토론회 열렸었는데.”


    “그래? 기억 안 나는데.”


    “그때 한쪽은 다함께에서 나온 사람이었고, 다른 한쪽은 반미 청년회에서 나온 사람이었지.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은 한총련 중앙 간부 출신이었고. 반미 청년회 사람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탈북은 남한 기독교 세력과 연계돼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획 탈북이니 남한 정부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고, 다함께 쪽은 정치적인 이유든 아니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인권을 지켜 주는 거라면서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서로 팽팽히 맞서던 중에 갑자기 객석에 있던 남학생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지.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북한 출신 학생이었어.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지. ‘탈북자인 제가 보기에 북한은 일당 독재 국가에 불과합니다.’ 북한에 살다가 온 학생이 직접 말을 하니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계속해서 북한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줄줄이 나열하니 거기서 그만 토론회는 끝나 버렸지. 물론 그 학생의 시선도 북한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북한에 살던 시절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 힘들었던 기억이라 그런지.”


    “근데 북한에서 남한까지 오는데도 굉장히 다양한 경로가 있지 않아? 중국을 거쳐서 올 수도 있고, 러시아나 몽골 쪽까지 지나서 올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 가서 돈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팔려 오기도 한다던데.”


    “그런 경우도 있긴 있는데 그건 아이들의 경우가 아니라 아이들 부모님의 경우가 많지. 조선족 여성이나 북한 출신 여성이 남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북한을 일단 빠져나와 중국에 가더라도 신분이 애매하니까 드러내 놓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지. 온갖 힘든 일 다 하다가 고생 끝에 남한에 오더라도 그놈의 편견이라는 벽에 또 부딪히게 돼. 자식이 딸린 여성들은 더욱 힘들지.”


    “새터민 아이들도 요새 아이들이랑 비슷한가? 주로 뭐 하고 놀아?”


    “비슷하지 뭐.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좋아하고...... 길거리에 널린 게 화려한 옷과 비싼 물건들이잖아. TV에는 잘 사는 사람들 얘기만 나오구.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나중에 남한 사회로 나가게 되더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왕창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렇게라도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어.”


    “현실이라...... 너는 아이들과 상담 같은 거 안 해?”


    “하지. 근데 내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뭘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은 쉬운 게 아니라고? 걔들은 지금 새터민 출신으로서 처해 있는 자신들의 현실 자체가 결코 견디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아이들이야. 선생 노릇이나 하는 내가 현실을 말해 봤자, 그런 말을 하는 나부터가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걔들은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들이 아니야. 자기가 남한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건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탈북자라는 자신의 조건은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돈을 악바리처럼 벌어서 일찌감치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 말이나 다 믿는 착한 아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며 사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섭도록 변할 수 있지.”


    “너도 참 쉽지가 않겠구나.”


    “난 그냥 아이들이 몸 건강히 학교 마치고 나가서 별 탈 없이 남한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어.”



    성훈이는 잔을 들어 쭉 들이켰고, 나도 입술만 축이던 아까와 달리 아주 조금만 목으로 넘겨 보았다. 꼭 화학 약품을 마시는 것 같이 입안이 썼다. 성훈이가 자기 손으로 빈 잔을 채웠다.


    “현실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나 작년 성탄절쯤에 아는 사람들이랑 지방에 취재하러 내려갔었어. 경상북도의 한 도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랑 만나서 인터뷰를 했지.”


    “근데?”


    “고등학생들은 인문계가 아니라 실업계, 그러니까 공고 학생들이었어. 힘들게 살더라.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장들에게 월급 다 뜯기고, 점장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불법인 거 아느냐고 협박해서 돈 안 주고, 근데 학생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고용주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가르쳐 주는 데가 없으니까.”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주고?”


    “학교에서는 졸업 후 취업에만 신경 쓰지 재학 중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 쓴대. 그 학교만 그러는지 공고들은 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공고 졸업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빠지지 않아?”


    “학교와 인근 중소기업들을 연결해서 맞춤형 취업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 있대. 고3 끝날 때쯤 되면 일터에 나가서 일을 조금씩 배우고, 졸업한 다음에는 바로 그 일터로 채용이 된다고 하더라고.”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난 얘기만 듣고는 잘 모르겠네.”


    “공장에서 확실히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나쁠 거야 없겠지.”


    “근데 걔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가 다른지는 알아?”


    “그게 문제야. 비정규직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양산되고 있고, 정규직에 비해 어떤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정규직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돈도 덜 받고,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 정도는 주위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걔들이 자신들의 꿈에 대해선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들은 꿈 같은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안 꾼대. 빨리 돈 벌어서 성공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게 꿈이라는 거야.”


    “...........”


    “그러니까 나 같이 글 쓰며 사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걔들 눈에는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 걔네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정글이야. 아니, 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경쟁이라는 걸 일찌감치 배우지. 기업에 입사 원서를 쓸 때도 성적 순으로 끊는다니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로 안 보이고 적수로만 보이는 거야. 돈벌이와 관련이 없는 꿈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다른 인문계 학생들보다 현실을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걔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라.”


    “그게 바로 그 아이들의 현실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집이 어려우면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 가야 할 테니까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된 애들이었는데 낭만적인 꿈 하나쯤은 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걔들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 같은 건 쓸데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선 꿈을 버린 거야. 꿈을 버리는 게 꿈이라는 거야.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을, 돈 안 되는 허황된 꿈보다는 돈 되는 현실적인 직업을 걔들은 원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걔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걔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걔들은 사회로 나가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 어떤 학생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언론에서 너무 안 좋게만 보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까지 말했고. 다들 비정규직 따위는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근데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착각이잖아! 비정규직은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신분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신분이고,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머릿수를 늘리고 있는 신분이라고. 노동 유연화다 뭐다 앞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계속될 텐데, 아무리 정규직 되겠다고 발버둥쳐 봤자 비정규직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는 작동 방식을 박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더구나 요즘 이명박 정부가 뭐라고 떠들고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고? 나 참. 고용주들의 목적은 오직 이윤일 뿐이지 노동자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야. 정부는 항상 고용주들의 편이고. 돈만 벌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이 걔들이 돈 많이 벌게 그냥 놔둘 것 같아? 걔들이 말한 현실이라는 건, 걔들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죄다 환상이야. 환상이라고. 안 그래?”


    나는 앞에 놓인 돼지 등뼈를 두 손으로 홱 꺾어 비어져 나온 고깃점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성훈이는 말없이 잔을 비우고는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가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네가 한번 말해 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어떤 게 현실이야?”


    “........”


    “그래, 꿈은 꿈으로 남을 때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경우도 있어. 꿈은 현실이 아니게 되고, 현실은 꿈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하지만 꿈은 꿈대로 버리게 만들고, 현실은 현실대로 환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무엇을 마음 속에 품든 죄다 거짓말 아니면 환상이 되어 버리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나에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인데, 내게 현실이라 함은 그거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고 환상이라 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생각하자니 그 현실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말짱 환상이 되어 버리고...... 정답은 결국 취직인가? 정규직인가? 하지만 취직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되나? 취직과 안정을 현실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마취된 것처럼 하루하루 아무것도 못 느끼고 살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열을 내며 말을 쏟아 내다가 성훈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성훈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뒷벽에 기댄 채 건너편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 속 아리따운 여배우를 멀거니 쳐다보았고 성훈이도 말없이 담배만 뻐끔거렸다.


    “내가 요새 이렇다. 말만 많아졌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갈까?”


    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성훈이는 입구 앞에서 새로 붙여 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게도 한 대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학아.”


    “응?”


    “요새도 글 써?”


    “아니.”


    “왜?”


    “쓰기 싫어졌어.”


    “아까는 글쓰기가 네 현실이라며.”


    “현실? 현실이라....... 현실이 병이 되겠다 젠장.”


    “사랑하는 누군가는 있어?”


    “없어.”


    “어머니는 잘 계시구?”


    “나 때문에 잘 못 계시지.”


    “너 걱정 많이 하시는구나.”


    “걱정되시겠지. 서른이 내일 모레인 녀석이 글 쓴답시고 빈둥대고만 있으니. 이젠 친척들에게 나 보이는 것도 창피하신가 봐.”


    “집 형편은?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 뭐.”


    “.......”


    “그래 맞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밥벌이를 하긴 해야겠지. 근데 뭘 해야 할까? 난 글 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다 병학아. 그런 말하지 마. 너도 아닌 거 알 거야.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봐. 우선 생활을 하는 거야. 난 너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어떻게든 생활을 해 나가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옛날 일만 쓰게 될 거야.”


    “옛날 일......”


    “네가 글 쓰는 걸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고 끝까지 그걸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한, 너는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쓰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니?”


    “.......”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다른 부잣집 자식들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꼭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은 다들 가지고 있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네가 만났다는 그 고등학생들도 떼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불편한 거니까.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에게 피해 안 주면서 남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삶에 지치더라도 그걸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꿈이겠지. 그런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 물론 그러기는 힘들어. 하지만 그게 밥벌이를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들과 밥벌이 사이에 너무 선을 긋지만 말고, 음, 그러니까, 바늘에 꿴 실이 있다고 생각을 해 봐. 바늘이 먼저 길을 뚫지만 실은 바늘과 한 몸처럼 되어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같이 가잖아. 그건 바늘에 실이 얼마나 단단히 매어졌느냐에 달렸지. 생활이라는 것도, 네가 말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몰라.”


    앞만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성훈이를 쳐다보았다.


    “......애들이랑 상담도 한다더니 말재주만 늘었구나.”


    “그게 다 너한테 배운 거 아니냐.”


    “춥다. 들어가자.”


    성훈이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어느새 식어 버린 감자탕을 다시 데우기 위해 밸브를 열었다. 나는 성훈이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이라면 환장을 하던 놈이...... 술 안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죽을 것 같아서 못 마시는 거야.”


    성훈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바닥에 술이 찰랑거리는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우리 이거 다 마시고 악기 치러 갈래?”


    “악기?”


    “술 좀 사 갖구 사위방으로 가자.”


    성훈이는 대학 시절 풍물패에서 쇠(꽹과리)를 쳤다. 나도 성훈이를 따라 놀러 다니다 보니 어깨 너머로 악기를 배워 간단한 장단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사범대 풍물패 이름이 ‘소리사위’였고, 사범대 학생회실에 있는 건물에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소리사위방’이 있었다. 풍물패 사람들은 시간 날 때마다 사위방에 모여 악기 연습을 했고, 술을 마시면 꼭 사위방에 모여 밤새도록 악기를 쳤다. 나도 머리끝까지 취해 풍물패 사람들과 함께 사위방에 와서 괭괭거리는 악기 소리에 묻혀 가며 얼씨구 잘한다 좋고 지화자 개잡아묵었나 하는 추임새 소리와 함께 가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북을 두들긴 적이 많았다. 문득 아무거나 손목이 빠지도록 두들겨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훈이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는 일어나 계산을 했고, 나는 바깥에 나가서 성훈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 형님이 따라 나와 몸 건강히 지내라며 손을 흔들었다.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든 성훈이는 내 팔짱을 끼고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외로울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니?”


    “외로울 때? 글쎄. 나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가 혹시 ‘외롭다’라는 단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저 심심한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외롭다고 자기도 모르게 표현해 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막연히 외롭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것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기준을 세웠지.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혼자서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심심한 거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혼자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외로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돼. 외로운 상태가 내게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외로운 상태를 외롭지 않은 상태로 만들거나 아예 해체해 버릴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눌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는 반에서 물건 하나가 없어지면 그 즉시 반 전체 아이들의 소지품 검사를 하거든. 나는 그게 뭔가 아닌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먹히더라. 무언가를 바꾸고는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너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랍시고 늘어 놓은 내 말을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성훈이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나라면, 글쎄, 나라면 말이지...... 예전에 학생회 간부 하던 시절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사람들 만나 가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딴 식으로 말하기는 싫고...... 아, 모르겠다. 역시 네 편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성훈이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만 옆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성훈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너무 내 얘기만 많이 하느라 정작 성훈이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방에 앉아 성훈이는 쇠를 들었고 나는 북을 세워 내 앞에 놓았다. 성훈이는 소주를 병째 꼴깍거리며 들이키더니 과자를 한 줌 집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성훈아, 우리 예전에 힙합 국악 하다가 선배들한테 혼난 거 기억 나?”


    “악기 가지고 장난 친다고 쿠사리 엄청 먹었지. 자, 간다.”


    성훈이가 쇠를 치며 장단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북을 잡았다가 장구를 잡았다가 하며 아는 장단이든 모르는 장단이든 흥이 나는 대로 두들겨 댔다. 그렇게 첫차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 모르고 악기를 쳤다. 성훈이가 벌떡 일어나 쇠를 치면 나도 북을 어깨에 매고 일어나 빙글빙글 돌면서 북을 쳤다. 장단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했다.


    어느덧 첫차 시간이 되자 우리는 악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는 사위방을 나왔다. 속옷이 땀에 추근히 젖어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한밤중처럼 어둑어둑했다. 잠 한 숨 자지 못했지만 실컷 악기를 치고 나서 찬바람을 쐬니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져 왔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성훈이는 버스를 타고 친척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냐.”


    “무슨 초상 났어? 그건 죽은 사람한테나 하는 말이고.”


    “또 싼타 클로스처럼 연말에나 나타나는 거 아냐?”


    “모르겠다. 시간이 언제 날지. 다시 올라오게 되면 연락할게.”


    “요즘 말이라는 걸 잘 안 하고 살았는데, 너 덕분에 오늘 실컷 떠든 것 같아서 좋네.”


    “나도 그래.”


    버스가 왔다. 성훈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놓더니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성훈이는 휘뚝거리며 빈 자리에 앉았다.


    “현실? 가지고 온 건 다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뭐해? 빨리 다 먹어.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내 앞에 놓인 먹다 남은 고깃점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승기가 투덜거렸다. 욕심 부리며 고기만 집어 와서 그런지 속이 느글거렸다. 그런데 정말 고기 탓일까?


    “느끼해서 더는 못 먹겠다. 근데 어쨌든 너 말대로 조건이 중요한 거라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 참에 수연이랑 갈라설 거야?”


    “몰라. 시간이 지나면 결말이 나겠지.”


    “우리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현실이라는 것에 도장을 꽝꽝 박아야 하냐? 나이 서른 먹으면 정해질 건 다 정해지는 건가? 우린 옴짝달싹 못하는 거야? 뭔가 이상해. 이것저것 조건이 빠질 수 없는 게 연애라 하더라도, 연애 자체가 몽땅 조건이라는 것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잖아?”


    “네 얘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 얘기지? 근데 닭도 아니고 달걀도 아니고, 사람한테는 무조건 밥이 먼저야. 이 세상에 연애를 자선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을 양팔 저울에 올려 놓고 재는 거지. 누구나 그래. 안 그럴 수가 없지.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도 다 사업이야.”


    “사업?”


    “사업.”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포크로 돼지고기를 결 따라 찢어 보았다. 살이 갈라지며 분홍빛으로 선명한 육질이 드러났다. 자꾸자꾸 가르고 찢었다. 고깃점들은 곧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네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현실이라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그곳엔 영화 포스터처럼 진부하게 보이는 것들만 잔뜩 쌓여 있어. 왜 그럴까? 현실은 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학 문제가 아니잖아?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도록 다양하고 변화무쌍해야 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부터 매끈하게 잘 뽑힌 사진 한 장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 안 들어? 뭔가 이상해. 잘 빠진 이미지 하나를 갖다 놓고 모두들 저게 현실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는 거야. 다들 거짓말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 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빵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둘의 중간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승기가 말을 받았다.


    “야, 네가 하는 말은 정말 말이니까 쉽지. 세상 혼자 살 수 있다면 차라리 너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면 땡이야. 얼마나 편해? 근데 그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기대하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어. 너도 집에서 그렇겠지만 당장 내 어머니만 봐도 그래.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지는 않더라도 어머니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연이는 수연이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대로 해 주기를 기대하고. 일터에서는 일터대로 또 나한테 주어지는 역할들이 있으니 나는 또 그걸 연극배우처럼 연기해야 하고. 그게 현실이라는 거야.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사는 게 왜 이리 좆 같은지.”


    승기는 남은 맥주를 한입에 들이키고 내 앞에 있는 찢어진 고깃점 하나를 손으로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미적지근해져 쓴 맛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허위허위 모임 꾸려 가며 활동하는 선배들 많아. 작년에 제대한 철호 형도 지방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고, 서울 지역만 해도 곳곳에 이른바 진보 일꾼들이 숨어 있다고. 억압이 있는 현장이 많은 만큼 그 억압과 싸우려 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러면 뭐 해. 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게 살고 있을 텐데. 철호 형 봐라. 총학생회장 선거 떨어지고 나서 여자랑도 헤어지고, 아직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 다닐 때 학점을 따 놓은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인제 뭐 하겠다는 거야? 운동도 좋지만 꼭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야 해?”


    “야,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직장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어. 일하는 시간에는 일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거야. 사회 단체나 진보 정당에서 일하면서 쥐꼬리 만한 활동비 받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고. 철호 형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지금 글 쓰겠다고 빌빌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젠장, 어떡하겠어?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밥만 벌어먹고 사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운동하는 거 아냐? 노동자들에겐 노동 운동이 자기 삶이 걸린 문제라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노동 운동이 일단 자기 삶을 책임진 다음에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고. 나도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삶과 내 시간과 내 마음들을 무작정 희생해 가면서 꼴아박는 활동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지 충분히 경험했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에 가입하게 될지, 학교 안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해.”


    나는 승기가 옷도 못 갈아입고 학생회실에서 먹고자며 밤이고 낮이고 회의만 하느라 새벽녘이면 머리가 부스스해져 노숙자처럼 되던 모습을 떠올렸다. 주위에서 승기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당당한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한총련 대의원은 힘들어 할 자격도 없다는 따가운 충고만이 전부였던 시절. 승기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난 후배들에게 항상 팔십 년대를 이야기했어.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고 팔십칠 년 노동자 대투쟁을 이야기했지. 막상 후배들한테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팔십 년대라는 시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후배들에게 팔십 년대를 기억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게 되게 우스워지더라. 넌 팔십 년대가 기억 나? 팔십 년 오월에 광주에 있었어? 팔십칠 년에 거리에 있었니? 난 팔십 년대에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던 꼬맹이였어. 광주든 뭐든 전부 다 나중에 책과 영상으로만 접한 것들 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나는 내가 마치 팔십 년대 정신을 몸소 겪어 본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난 항상 너무 쉽게 말하고 다녔어. 그리고 내가 겪어 보지도 못한 팔십 년대라는 시간에 항상 짓눌려 살았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열사 정신 계승? 4.19 정신 계승? 그런 것들 속에서 천년 만년 활동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대학 졸업하고 서른 넘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학생 운동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뭐 그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선배는 한 명도 없었어. 평생 대학생처럼 활동할 수 있겠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강철이 되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막상 강철이 되지 못하니 답답했겠지.”


    승기에겐 승기의 삶이 있었다.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처럼 남아 있는 승기의 삶이. 나는 뭐라고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던 승기가 손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번호판을 주물럭거렸다. 앞에 놓인 접시와 포크를 정리하면서 휴지로 입을 닦고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가 봐야겠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오래 보면서 한 잔 해.”


    “그럼 나도 일어나야겠네.”


    나는 승기와 탁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아직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참 잘들 차려입고 왔구나 싶어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이 갔다.


    샐러드를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주영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반갑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승기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주영이 있다.”


    “언제 왔지? 아깐 못 봤는데.”


    “가 보자.”


    주영이는 포크를 들고 웬 희한하게 생긴 작고 동그란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영이 앞에는 경애가 앉아 있었다. 둘은 나와 승기를 보고는 오랜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승기 오빠는 점점 대머리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병학 오빠는 가뜩이나 암울한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해요?”


    “넌 임마 기성 세대가 다 됐구나.”


    “피부 관리 좀 해라. 그게 뭐니?”


    승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고 경애도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가겠다며 가방을 들고 일어서 버렸다. 주영이는 접시에 잔뜩 쌓아 놓은 동그란 것들과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건 뭐냐?”


    주영이는 내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다섯 글자 정도의 알 수 없는 이름을 말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는 그냥 넘어갔다. 다른 곳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여기 것은 맛이 좀 별로라고 했다. 얄따란 껍질을 포크로 살살 벗겨내면 새하얀 알맹이가 나오는데 그걸 한입에 쏙 넣어 씨앗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먹고 씨는 뱉는 거라고 했다. 나도 하나 먹어 보았지만 찝지레한 맛이 싫어 금방 뱉어 버렸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근데 언제 왔어요?”


    “두 시 조금 넘어서 왔지. 너는? 사진 찍을 때 보니 없던데?”


    “늦게 왔어요. 식은 못 보고, 아까 광현이랑 신부가 피로연 장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할 때 처음 봤어요. 광현이가 오빠보다 일찍 결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피로연 장 벌써 돌았어? 왜 난 못 봤지?”


    “혹시 승기 오빠랑 저 구석에 앉아 있지 않았어요? 그쪽은 안 돌았어요. 지금 폐백실에서 폐백하고 있으니 나갈 때 한번 봐요.”


    “그런 걸 뭐 하러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다 허례허식 아냐? 결혼이라는 게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렇게 돈 처들여서 쇼를 할 필요가 어딨어?”


    “오빠가 연애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우리 예전에 지은이 언니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지은이 누나?”


    “지은이 언니 결혼할 때 예식장에서 식 올린다구 하니까 같이 여성 운동하던 주변 언니들이 그렇게 반대를 했대요. 결혼 제도라는 게 뭔지 알고도 그러냐, 너마저 돈 써 가며 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막 그랬다나?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혼례라는 형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죠. 근데 어디 결혼이 두 사람 마음만으로 되는 거예요? 양가 부모님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주변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친족과 다른 친족의 결합이기도 하니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지요.”


    주영이는 나에게 대거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배였다.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몸피에 안경을 쓰고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다니던 주영이는 언제나 나를 똑바로 보며 내 말을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따져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한 학번 후배인 주영이와 마주 앉아 내가 심심할 때마다 생각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놓기 좋아했고, 주영이는 내 말에 어딘가 헐겁거나 빠듯한 곳이 있으면 꼼꼼히 고쳐 주고 바로잡아 주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다른 후배들이 코대답도 하지 않고 넘겨 버리던 내 말은 주영이와 함께 있을 때면 활력을 얻고 제 뜻을 찾았다. 논쟁을 하다가 주영이에게 욕도 숱하게 얻어 먹었지만 주영이의 분석과 비판이 핵심을 비껴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건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결혼식 따위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쇼를 해야 할까? 성대한 결혼식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게 정말 이 세상 여자들의 꿈인 거야?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갖다 붙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일생에 단 한번이 아닌 게 어딨어? 지금 이 순간 흐르고 있는 일분 일초도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들인데.”


    “오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어쩌겠어요? 결혼은 제도로 굳어지기 이전에 풍습이었고, 풍습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막상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글쎄요, 어떻게 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


    “결국 또 현실이라는 건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놈의 현실.”


    “왜요? 요새 좀 안 좋아요? 뭐 하고 지내요 요즘?”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영이와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집에서 한숨만 쉬고 계실 어머니와 다시 마주하게 될 시간을 되도록이면 늦추고 싶었다.


    “일어날래?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


    “오빠가 웬일로 낮술 먹자구 안 해요? 차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주영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지난 연말에 한번 쓰러지구 나서 술 확 줄였다. 여기 와서도 맥주 한잔 밖에 안 마셨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나 저녁 때쯤에 약속 있어요. 오래 못 있는데.”


    “괜찮아. 아직 저녁 아니니까. 가자.”


    주영이와 나는 일어나서 폐백실 쪽으로 갔다. 고개를 살며시 뽑아 안을 들여다보니 쪽빛 한복을 갖춰 입은 광현이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무언가를 든 채 쩔쩔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광현이 쪽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나는 폐백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광현아! 형 간다! 봄 오기 전에 한번 보자!”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고 주영이는 팔꿈치로 내 허리를 찔렀지만 광현이는 고개를 돌려 밝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형, 잘 가요!”


    주영이가 황급히 나를 잡아 끌며 속삭였다.


    “오빠, 지금 폐백 하는데 뭐 하는 거예요?”


    “이런 게 다 추억에 남는 거야.”


    나는 주영이를 데리고 나와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2월답지 않게 아직 따스한 오후였다. 주영이가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횡단보도를 건너 어느 도너츠 집으로 들어갔다. 설탕과 초콜릿으로 뒤발을 해 놓은 알록달록한 도너츠들이 진열장마다 가득 쌓여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이 피둥피둥 찔 것 같았다. 곧 찾아올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느라 매장 안 이곳 저곳에는 신통방통한 모양을 하고 있는 초콜릿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주영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있는 의자에 외투를 벗어 놓았다. 가게 안은 손님이 별로 없어 음악 소리만 흐를 뿐 조용했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초콜릿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저런 초콜릿들은 진짜 비싸요. 전부 다 포장지 값이긴 하지만.”


    “내가 얘기한 적 있지? 발렌타인데이든 화이트 데이든 정욕과 상술의 은밀한 야합이라고.”


    “그건 오빠가 너무 오버하는 거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반드시 자본이나 상품이 필요한 건 아니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얘기가 다를 거예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안 줬다고 헤어지는 커플도 있으니까.”


    “그걸 문화적인 차이니 다양성이니 하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뭔가 좀 이상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거잖아? 돈이 있는 사람들만 뭐든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특권이지. 안 그래? 게다가 발렌타인데이가 강요하는 건 전형적인 이성애자들의 사랑이잖아?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낄 자리가 없어. 자본의 문제는 둘째 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도......”


    “됐어요. 뭐 먹을 거예요? 일단 먹으면서 얘기 해요.”


    주영이가 지갑을 챙겨 들며 일어섰다. 이런 도너츠 집에 평소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손님이 직접 판매대로 가서 주문한 다음 돈을 치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문한 것이 나오면 판매대 쪽에서 손님에게 알려 주는 모양이었다. 주영이와 나는 판매대 앞으로 가서 높은 곳에 붙어 있는 차림표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돈 없죠? 난 녹차라떼. 오빠는요?”


    “돈 없으니 너를 잡았지. 근데 뭔 놈의 메뉴가 전부 다 영어 투성이야? 커피 종류는 싫으니 그냥 국화차 먹을란다.”


    “오빠답네요.”


    주영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치르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주영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자기 돈으로 초콜릿 사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건 완전히 온 나라의 명절처럼 여겨지고 있잖아.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초콜릿을 사려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는 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야. 내가 내 돈으로 초콜릿을 사는 건 소비 행위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초콜릿을 산다는 건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요? 자본주의? 물신주의? 그리고 그런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만 원 이만 원 하는 비싼 초콜릿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빼빼로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겠죠. 재미로 말예요. 초콜릿 사는 사람들이 무분별한 소비 문화에 길들여졌다고 하는 건 결국 이 모든 상황이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소린데, 그러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초콜릿을 떼지어 사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이며 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돈지랄 하면서 비싼 초콜릿 사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초콜릿의 가격을 문제 삼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가격이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에 초콜릿을 산다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초콜릿 만드는 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겨. 초콜릿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발렌타인데이 한참 전부터 요란뻑적지근하게 광고를 때리고. 초콜릿을 사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야.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궁금한 거야. 도대체 뭐가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까? 농담으로 정욕과 상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정말 그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이성애자들끼리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밑그림이 발렌타인데이에서 빠지게 된다면 초콜릿은 훨씬 덜 팔리지 않을까?”


    “흠.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오빠처럼 하는 말 들으면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하겠죠. 그냥 초콜릿 하나 사서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젠장, 그럼 내가 이상한 거야?”


    가게 문이 열리고 왁자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 한 떼거리가 들어왔다. 다들 내 나이 또래 같았지만 양장을 날렵하게 차려 입은 매무새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한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 보니 아까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여자였다. 신부 쪽 친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신부 쪽 사람들인가 봐. 저 빨간 가방 메고 있는 여자 보이지? 아까 부케 받았어.”


    그들은 우리를 지나 가게 깊숙한 곳으로 가서 탁자 다섯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고즈넉하던 가게 안이 갑자기 우꾼해졌다.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는 종소리가 들렸다. 각자 시킨 것을 앞에다 두고 주영이와 나는 다시 마주 앉았다.


    “저 사람들 좀 봐.”


    “왜요?”


    “하나같이 말끔하고 고상하고 모범생처럼 보여. 옷도 반들반들 좋은 걸로 차려입었고. 신부가 학교 선생님이었으니 저 사람들도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정도 되는 일을 하고 있겠지?”


    “그래서요?”


    “글쎄. 그냥 저런 사람들 보면 진부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진부한 삶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 시달리는 사람들. 대학 나와서 졸업하고 취직한 다음에 돈 벌어 결혼하고 집 사고 자식 낳아 가정 꾸리고 계속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만 벌면서 살겠지?”


    “그게 나쁘다는 거예요?”


    “글쎄. 좋고 나쁘다는 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난 그냥 사람들이 너무 비슷비슷한 삶을 살려고 기를 쓰는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진부해. 광현이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만나던 광현이와 많이 달라져 있겠지? 아직은 기간제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정교사 되면 월급 차곡차곡 모아 가며 다른 것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겠지. 동기들이랑 만나면 더 이상 옛날처럼 민중 생존권이나 반전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그을림 하나 없이 말끔한 저 얼굴들을 봐. 손도 펜이나 잡아버릇했을 테니 보들보들하겠지.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어떤 계급적인 위치에 있는지 저 사람들은 가끔 생각이라도 할까?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더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가질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뜨적뜨적 말을 늘어놓다가 문득 고개를 제자리에 두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주영이가 있었다.


    “오빠, 저 사람들 잘 알아요?”


    “아니.”


    “저 사람들 삶이 어떤지 모르면서 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 뭐예요?”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주영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예전과 하나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저 사람들의 삶을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 그게 전분가? 그래.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때가 있어. 저 사람들은 또 어디서 어떤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구 말야. 하지만 그것도 내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드는 생각이겠지? 그건 나두 알아.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계급이라는 게 있어.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산다는 말로 간단히 뭉뚱그릴 수 없는 계급성.”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오빠가 말하는 대로라면 이 세상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라는 건 사회 속 갈등의 모양을 분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삶을 사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옷차림과 생김새만으로 멋대로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놀고먹는 한량들이 아닌 이상에야 다 노동자일 테고, 그럼 생산직 노동자냐 사무직 노동자냐 하는 것으로 구분해야 하나요? 나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그럼 화이트 칼라 노동잔가? 오빠는...... 오빠 아직도 그 학원 나가요?”


    “응.”


    “그럼 오빠도 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화이트 칼라네. 근데 그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제 말은, 계급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구분을 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구분이어야 하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저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엔 쫙 빼입고 왔지만 알고 보면 오빠랑 나처럼 쪼들리는 형편일지도 몰라요. 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생산직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밥 굶고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계급을 이야기하자는 게 착취 당하고 있는 계급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착취하고 있는 계급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점쟁이처럼 저 사람들의 삶은 어떨 것이다 뭐 이런 짐작이나 하자고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거 오빠도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나는 뜨거운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이 속을 덥혔다. 시큼털털한 차 맛이 입안 깊숙한 곳까지 남았다.


    “알지. 알아. 근데 말이야. 그럼 어차피 같이 살아 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테니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알지도 못하는 저 사람들을 겨냥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계급이란 분명 존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겠지만 어쨌든 억압 받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단 말야. 무엇을 위해서 계급을 구분하냐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붙이면 이상한가? 우선 나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데.”


    “오빠. 왜 슬쩍 피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겉모습만 보고 재단하려는 오빠의 시선을 말하고 있었어요. 광현이 얘기두 그래요. 저도 광현이랑 정말 가끔씩 연락 주고받고 사느라 요새 광현이가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광현이가 재수했으니 오빠랑 동갑이죠? 이제 스물 아홉인데. 집도 어려운 녀석이 서울에서 기간제 하면서 낑낑대며 살고 있어요. 오빠는 예전부터 말한 것처럼 임용고사라는 교사 양성 과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광현이에게는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자기 몫을 하며 사는 게 생활이라는 것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라요. 오빠가 전에 저한테도 그랬잖아요?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우선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기억 안 나요?”


    주영이는 논설문 쓰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듯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옷 입고 잠 자고 술 먹고 책 보던 털털한 녀석이었지만 의외로 수줍음이 많았다. 동기들이 전부 다 과 학생회장 자리를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지만 않았어도 주영이가 학생회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단독 후보로 선거에 나간 주영이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일 년 동안 고생했고, 그 이듬해엔 경애와 함께 짝을 이루어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시 휴학생이었지만 주영이 선거운동본부에서 으밀아밀 참모 비슷한 노릇을 했고, 사범대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던 승기와 함께 선거 기간 내내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가 누굴 왜 뽑는 선거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투표율은 매년마다 오십 퍼센트를 간신히 넘기는 편이었다. 오십 퍼센트를 넘지 못하면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했다. 주영이와 경애가 사범대 신관과 구관 강의실들을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도 투표율은 선거 마지막 날 해거름까지 사십구 퍼센트 후반에서 머뭇거렸다. 승기와 나는 애가 끓었다. 선거를 다시 치르자니 그 많은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했다. 십여 명만 더 투표를 하면 되는데 투표소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했고, 결국 선거를 밤 아홉 시까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들고 중앙 도서관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사범대 학생들에게 다가가 표를 받았다. 간신히 오십 퍼센트를 채우고 나서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투표소 앞에 가져다 놓고 한동안 얼싸안았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주영이는 경애와 함께 사범대 학생회를 책임지며 일 년 동안 각다분하게 살았다. 집에다는 사범대 학생회장이 고등학교 학생회장과 비슷한 자리라고 둘러대었다고 했다. 일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학생회장 임기도 다 끝나자 주변에서는 주영이에게 중앙 조직으로 가서 더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을 비쳤고 후배들은 아예 주영이가 임용고사를 포기하고 중앙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곧 4학년이 되는 주영이는한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오래 고민했다. 내게도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군말 없이 답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학생 운동이고 뭐고 그 전에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대학생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결국 주영이는 총학생회실에 가서 가끔씩 대자보나 현수막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것 말고는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마음 넉넉한 선배들은 주영이만 보면 힘내라고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지만 이제 막 2학년으로 올라가는 후배들은 대놓고 섭섭하다는 말을 하며 주영이에게 세모눈을 떴다. 어떤 녀석은 변절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처먹으며 방황을 하던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찾아가 주영이를 불러내 밥을 얻어먹으며 아직도 뭘 모르는 후배들을 싸잡아 욕했다. “걔들은 자기네도 죽을 때까지 대학생으로 사는 줄 아는 모양이지?” “괜찮아요. 솔직히 나도 좀 미안한데 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할 수 있겠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는 딴청을 피웠다.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휘저으며 픽 웃었다.


    “그때 오빠가 해 준 말이 난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걸 까먹었단 말예요? 어쨌든 그 말을 곱새기면서 결국 나 재수에 삼수까지 해서 붙었어요. 다른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어요. 직업적 혁명가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겁이 많았고, 승기 오빠나 철호 오빠처럼 살 자신도 없었어요. 일단은 졸업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다 변명 같긴 하지만.”


    “.........”


    “광현이도 분명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겠죠. 꼭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기간제 선생님이니 아직은 전교조에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오빠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노동 운동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운동만이 중심 운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니죠? 내가 아는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많이 가게 됐고, 거기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 글을 써도 노동자들 이야기만 쓰다시피 했지. 이 세상엔 비정규직 노동자들 말고도 아프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몸뚱이는 하나였어. 변명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낸다고 해도 동시에 두 집회를 나갈 수는 없었거든. 그동안 많이 만나 온 사람들이 노동자들이고, 보고 들어 온 것들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어떻게 탄압을 받고 있나 하는 것이었으니, 글쎄, 나도 어느새 시야가 좁아져 버린 건가? 매끈하게 잘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꼭 그런 사람들일 것만 같아. 광현이도 그렇게 변해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


    “오빠도 광현이도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뭐.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야금야금 홀짝이느라 어느새 다 비운 잔을 들고 판매대 앞으로 가서 물을 더 받아 왔다. 뜨끈한 물 위에서 국화 꽃심들이 물방개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주영이는 그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오빠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는 전부터 듣긴 들었어요. 무슨 글을 써요? 집회 기사 같은 거예요?”


    “기사도 아닌 것이 르포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나도 내가 뭘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지난 한 달 동안 몸 아프다는 핑계로 거의 안 썼어. 뭘 써도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짜증나기도 하고.”


    “집에서는요? 뭐라고 안 그래요?”


    “집? 뻔하지 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럴 수밖에요. 오빠도 이제 곧 서른인데. 학원에선 얼마 못 받는다구 했었죠? 슬슬 결혼하라는 압박도 있을 테고. 집에서 걱정 많이 하시겠네요.”


    지금도 거실에 누워 한숨만 끙끙 앓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혀를 쯧 차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다.


    “걱정만 하시면 좋게?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내 삶이 하나도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셔. 이십대에 내가 뭐 하나 해 놓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늘 말씀하시거든. 나도 내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지난 십 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나날들은 아니었을 거 아냐? 어머니가 원하는 건 결과물이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 물질적인 성과물.”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오빠 뿐예요?”


    “아니. 내 동생도 알바 하면서 벌고. 아버지도 가끔씩 찔끔찔끔 가져다 주시는 것 같긴 해. 내가 버는 건 푼돈이고.”


    “집에서는 오빠가 글 쓰며 다니는 거 아세요?”


    “그럼. 나 놀고만 있지는 않수 하면서 인터넷 매체에 글이 올라가는 족족 보여드렸거든. 처음에는 신기해 하시더니 이제는 그런 위험한 글들 그만 쓰라고 난리셔. 언제까지 비정규직이 데모하는 데만 쫓아다닐 거냐고.”


    “저는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겉으론 학교 잘 나가고 있으니까 집에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만, 사실 학교에서 제가 나름대로 뭔가 활동을 해 보려고 해도 저도 이제 겨우 3년차 되는 선생이라 그런지 자꾸만 몸을 사리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촛불 집회 할 때도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래 나가서 밤도 새우고 아침에 학교 오는 것 같았는데 교무실에서는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 집회 못 나가게 엄중히 단속하라고 하고. 선생님들끼리도 눈치 보이니까 같이 나가자는 말도 못하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왜 지금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 왜 십대 청소년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이랑 이야기 한 번 못하고 여름이 다 가 버렸어요. 어떤 선생님은 교실 뒤에 촛불 집회에서 받아 온 유인물을 붙여 놨다가 교감한테 호되게 야단 맞았어요. 저는 작년만 해도 2년차 교사였고, 솔직히 징계가 무서웠어요.”


    “근데 너는 촛불 집회 많이 나갔잖아. 시청 앞에서 나랑도 우연히 많이 만났고.”


    “저 혼자 그런 거죠. 제 성격이 원래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거 오빠도 알잖아요. 근데 집회에 나가면 혹시 아는 선생님들과 만나면 어떡하나 하는 것부터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우리 엄마 아빠랑 언니는 촛불 집회고 뭐고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한우 값 안 떨어지게 하려고 이익 단체들이 집회 하는 거라며 늘 구시렁대기만 하고..... 근데 어느 날인가 한우 값 얘기를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아빠는 딸이 촛불 집회 나가는데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냐고 말해 버렸죠. 그때가 한창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촛불 시민들이랑 전경들이랑 싸우던 시기였는데, 그 말로 들통이 나서 한동안 주말에는 집 밖에 못 나갔어요. 저도 개학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고.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다가 가을도 다 가 버렸고. 금방 방학이 왔어요. 얼마 전에 용산에서 철거민들 돌아가셨잖아요. 거기도 아직 못 가봤어요. 뉴스에 집회 장면 같은 게 나오기라도 하면 집에서는 그런 데 가지 말라고 선수를 쳐요. 새 학기 준비해야 하니 요새도 정신이 없고..... 제가 오늘 저녁에 누구 만나는 줄 알아요?”


    “남자 친구라도 생겼어?”


    “그러면 좋게? 형렬 오빠 만나요. 얼마 전부터 저를 계속 꼬시려고 했는데 오늘 담판을 지으려는 모양이에요.”


    “형렬이 형이 꼬신다면 딱 하나밖에 없는데?”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생긋 웃었다.


    “맞아요.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부 같이 하자는 거. 저 아직 조합원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선생님 되고 나서 탈당했어요. 우리 학교엔 전교조 선생님 한 명도 없는데 제가 덜컥 조합원이 돼 버리면, 글쎄,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나서 학교 쪽 분위기 안 좋은 거 오빠도 알잖아요. 처음에 형렬 오빠한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학교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 다음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사리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싫었어요. 대학 다닐 땐 안 그랬는데. 아이들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도 하나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젊은 시절 다 보내 버리면, 나중엔 수업만 대충 끝내고 노는 늙은 선생님들 꼴이 될 거잖아요. 교장이랑 재단이 하라는 대로 설설 기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게 되는 그런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어요. 근데 막상 조합원이 되고 나면 학교에서 날 어떻게 볼지 무섭기도 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니 이중적이 돼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속하는 사람은 사실 없어. 학원이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고. 집에서 날 닦달하는 사람은 어머니 하나 뿐인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그냥 내가 뭘 하든 지켜보실 수밖에 없지. 근데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날 봐도 전혀 웃지를 않아. 벌써 오래됐지. 그러고는 가끔씩 한밤중에 날 불러서 너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냐, 너 때문에 내가 세상 살기가 싫다, 그런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 놓으셔. 글 쓰는 일은 거지 되기 딱 알맞은 일이라 생각하시는데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우리 어머니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은데, 문제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방식을 내게 자꾸만 강요하고 있다는 거야. 나에겐 내 삶이 있는데 말야.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엄마랑 같이 죽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그렇게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릴 거면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기술이에요? 기술 배우면 다 성공해요?”


    “그럼 어떡할 거니. 다른 자식들은 네 나이쯤 되면 안정된 직업에 결혼까지 하는데 너는 어쩌려구 이래.”


    “그건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잖아요. 제가 왜 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해요? 그리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십 년 늦게 출발하면 십 년 더 오래 살면 되는 거 아녜요?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결혼하면 뭐 해요? 하나같이 다 불행해지던데.”


    “그럼 글 쓰면서 먹고살겠다고? 그게 말이 되니? 글 쓰면서 먹고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되겠니? 넌 어쩜 그렇게 비현실적인 생각만 하니? 네 나이쯤 되면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니?”


    “비현실적이요? 지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현실이란 게 뭔데요? 대학원 가서 학위 받아 교수나 되는 거? 임용고사 쳐서 공립학교 선생님 되는 거? 아무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그놈의 안정된 일자리에 주저앉는 거?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마다 최선을 다해 겪는 시간들이 저마다의 현실이라구요. 현실이고 비현실이고 하는 건 없어요 어머니.”


    “그럼 넌 뭐 먹고 살 거야? 평생 나한테만 의지하고 살 거니? 내가 이때껏 부모 된 도리로 널 키워 줬으면 너도 이제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잖니. 의료보험비 못 낸지 일 년이 넘어서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에미가 보이지도 않니? 네 사촌 동생을 봐라. 한 번에 임용고사 턱 붙어서 그 나이에 벌써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너처럼 그렇게 살려면 사범대는 애초에 왜 들어갔니?”


    “알았어요. 돈 벌면 되죠? 이 모든 원인이 제가 다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거죠? 뭘 하든 돈만 벌면 되는 거죠?”


    “그런 소리가 아니잖니. 내가 언제 너한테 글을 쓰지 말라고 하든? 글을 쓰는 건 좋은데 너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니니. 학교 선생님 하면 틈틈이 시간도 많을 거구. 그 시간에 글 쓰면 되구. 임용고사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그래서 피하는 거야?”


    “임용고사 같은 걸로 좋은 선생님을 가려 낼 수는 없어요. 그건 그냥 시험지 받아 문제 푸는 거라구요. 그런 쓰레기 같은 지식들로 머리를 채워 가며 일 년 이 년 낭비하는 거 전 절대로 못해요. 어머니가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저도 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죠. 저도 글만 쓰고 다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살 생각 없어요. 저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밀린 의료보험비는 올해 안으로 내가 다 청산할 테니까.”


    “그 말을 내가 처음 듣니? 작년부터, 아니 제대하고 나서부터 넌 계속 그랬어. 근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뭐니?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글이나 쓰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비난하고, 이상한 모임이나 나가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니?”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삶과 제가 생각하는 삶은 달라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겐 저만의 방식이 있어요. 저도 글만 쓰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좀 지켜보세요. 같이 죽자는 말이 뭐예요? 나이 스물 아홉에 죽긴 뭘 죽어요? 저는 제 인생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가 너만 생각하면 이 세상 살기가 싫어져.”


    “그리고 그날 밤에 어머니가 기어이 무너지고 마셨지.”


    “무슨 일 있었어요?”


    “밤중에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으로 세간을 막 때려 부수시더라고. 그러고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시는 거야.”


    “그래서요?”


    “아버지가 뛰어나와 말리셨지. 나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고.”


    “........”


    “그래서 올해는 정말 기간제라도 뛰면서 돈을 좀 벌까 해. 집안에 보태기도 해야겠지만 우선 나부터 좀 독립해야겠어.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자취라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지.”


    주영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탁자를 두들겨 가며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밝은 표정으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왈칵 멱살을 틀어쥐고 사는 게 그렇게 재밌느냐고 을러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서 나와 똑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뒤로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주영이가 조심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꺼냈다.


    “......오빤 어머니랑 얼마나 자주 얘기해요?”


    “글쎄.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호출이 있어.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선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나지.”


    “여태까지 계속 그랬어요?”


    “제대하고 나서 일 년 정도는 잠잠했어. 작년 봄부터는 집회 쫓아다니느라 집에 붙어있질 못했고. 뭐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어머니가 시름시름 속앓이를 하셨지.”


    “.........오빠, 혹시 오빠 어머니의 꿈이 뭔지 알아요?”


    “꿈? 우리 어머니는 간호 대학을 나오셨어. 나랑 내 여동생이 자기 앞가림 할 나이가 되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보고 싶으시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지.”


    “오빠처럼 집안 문제 겪는 사람들 난 학교 다닐 때 많이 봤어요. 오빠도 많이 봤을 거잖아요? 승기 오빠도 그랬고. 스무 살 넘기 전까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었는데 얘가 대학 들어가자 노조니 민중이니 학생회니 하는 걸 대다수 부모님들은 견디지 못하셨죠.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면 어떻게든 서울에서 눈속임하며 활동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집안 문제가 어느 때고는 터졌어요. 저도 그래서 학생회장 할 때 집에서 뻔질나게 싸웠죠. 근데 저도 그랬지만, 집안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부모님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과 자신이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도 너무나 다르다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저도 아직까지 전교조 활동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부모님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어요. 물론 정말 내겐 소중한 분들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자꾸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안 할 수 없었어요. 근데 말예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나처럼 젊은 시절에 무슨 꿈을 가지고 살았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했을까. 세월이 흐르며 엄마와 아빠의 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진첩에서나 보는 젊은 시절 사진 말고는 엄마 아빠의 청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


    “난 항상 엄마와 아빠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반대 쪽 진영에다 놓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꿈 꾸는 것들과 절대로 화해할 수 없을 줄 알았죠. 근데 마치 장기 말이 서로 상대편을 향해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의 삶과 내 삶이 정말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일까, 엄마 아빠와 함께 삼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나는 엄마랑 아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는 항상 겉돌았어요. 나는 언젠가부터 내 생각을 엄마 아빠한테 들려드리지 않기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와서 엄마가 차려 주시는 밥 먹고 그냥 내 방에 들어가 나 혼자 놀았어요. 아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생각들이 아마 조금씩 자라 온 거겠죠. 난 그걸 알고 싶었어요. 엄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시는지. 아빠는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지. 내가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엄마와 아빠는 이제 철 좀 들라고 정말 나를 몰아세우기만 하실지. 서로 말도 해 보지 않고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 못박아 두기는 싫었어요. 엄마 아빠랑 대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아직도 깜깜하기만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엄마 아빠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주영이는 남은 녹차라떼를 빨대로 포로록 들이마시고는 휴지로 입 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아직도 뜨겁기만 한 국화차를 아무 맛도 모르면서 홀짝거렸다.


    “집안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던 후배들 생각을 요새 가끔 해요. 집에다는 대학생 국토 대장정 간다고 속이고는 한 달 동안 공장 가서 생활하던 후배 생각도 나고....... 연희는 사범대 학생회 활동하다가 들켜서 아버지한테 머리도 잘리고 뺨까지 맞았잖아요. 근철이도 감옥 갔다 나와선 아버지와 허구한 날 싸우면서 힘들어 했고. 다 그랬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속 썩이고 있거나 아니면 마음 고쳐 먹고 효자 노릇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날까요? 근데 정말 꼭 그렇게 둘 중 하나로밖에는 될 수 없는 걸까요? 불효자 아니면 효자? 그런 극과 극이 아니라 뭔가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도 나도 쉽지 않은 현실을 함께 살아가면서 비슷한 병에 걸린 건데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조금 다를 뿐인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어차피 내가 아프면 가장 많이 걱정해 줄 분들이 우리 엄마 아빤데.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집에 들어가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에이, 참.”


    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누른 채 팔꿈치로 탁자를 짚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아버지는? 늘 밤 늦게 들어오셔서 방에서 혼자 TV를 보시다가 라면을 끓여 드시는,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어딘가로 나가시는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면 나는 또 다시 무거운 한숨과 침묵 앞에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겠지.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나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에게조차 당당히 내세우기 힘든 삶이다. 어째서 그럴까? 어머니와 내가 달라서일까?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단지 내가 내 생활을 제대로 꾸려 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고, 안 그러면 계속 옛날 일만 쓰게 된다고, 성훈이 그 자식이 그랬지. 젠장. 그 자식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니, 걔만큼 날 잘 아는 놈도 없었지. 비슷한 병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어머니, 엄마.......


    나는 안경을 쓰고 남은 국화차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미지근해진 찻물을 담뿍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목으로 넘기니 알싸한 국화 향기가 입안에 남았다. 주영이가 앉은 뒤로 이름 모를 단발머리 아가씨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아가씨와 아이들은 그대로 멈추어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치어다보기 좋았다. 나는 나오는 대로 지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예식장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지하철 역 출구에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를 만났지. 아무 말도 없이 불쑥 전단지를 내미는 통에 나는 무슨 전단진지도 모르고 그걸 받았어.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그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불쑥불쑥 전단지를 내밀고 있는 거야. 어차피 신장개업이니 뭐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전단지였고, 엉겁결에 받아 쥔 사람들도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냥 버리거나 쓰레기통에 처넣었어. 하지만 할머니는 일단 자기 손을 떠난 전단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듯 꿋꿋이 서서 줄기차게 사람들을 향해 전단지를 불쑥불쑥 내밀었지. 그 전단지 한 장에는 어쩌면 집에서 혼자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주한테 주는 밥 한 숟갈이 걸려 있었을지도 몰라. 한 장에 한 숟갈, 두 장에 두 숟갈.......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할머니는 겨울 한낮에 바깥으로 나와 품을 팔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주영아. 내가 쓰는 글이 그 할머니가 불쑥 내밀던 전단지보다, 아니, 그 전단지만큼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쓰는 글은 아무에게도 따뜻한 밥 한 술 되지 못해. 따뜻한 밥이 뭐야? 찬밥 한 덩이라도 되면 다행이겠지. 내가 끙끙거리며 기껏 글 하나를 싸질러 놓으면 그 즉시 냄새가 풍겨. 지당한 말씀 늘어놓는 걸 누가 못하냐, 결국 너 잘났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냐, 너 혼자 읽으려고 이런 걸 썼냐, 뭐 그런 구린내가 풍긴단 말야. 난 남들한테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창피해. 어머니한테도.”


    “......”


    “우리 어머니는 몸이 약하신 분야. 명절마다 내키지 않는 큰집 뒤치다꺼리를 하고 돌아오시면 며칠은 앓아 누우시지. 몸이 약하셔서 어디 일하러 나가시지도 못해. 몸만큼 마음도 약하셔서 친척들한테 내 험담이라도 들은 날에는 몇 날 며칠을 그 얘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셔. 작은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심란해 하시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 뭔지 잘 알아.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꿈을 늦게라도 이루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언제나 생각에서 끝나지. 어머니의 꿈은 내 어린 날들에 저당 잡혔어. 지금도 어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꿈은 고스란히 내가 저당 잡고 있어. 한평생을 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이란 말야.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내 꿈을 이루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꼴이야. 몸도 마음도 앓고 계신 어머니한테. 돈 좀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게 되면 잔소리도 한숨도 듣지 않게 될 테니 속은 편해지겠지. 그래. 하지만.......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 자신과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들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도 생활일 거야. 집에서 살든 나가서 살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글쓰기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난 결국 모든 것에서 도망치게 될까? 아니면 뭔가 하나라도 붙잡게 될까?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 하지만 도망치는 삶은 죽는 것보다 싫어.”


    말을 맺고 고자누룩해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영이는 갑자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뒤틀었다. 하품을 하면서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는 널려 있는 휴지들을 그러모아 탁자 밑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고서 나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요. 내가 뭘 알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하든 알아서 잘 살아 봐요. 오빠가 언젠 뭐 안 그랬나? 그리고 이젠 나이도 있으니 술 좀 줄이구요.”


    “네가 시작한 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딴청야.”


    “그나저나 어쩌죠? 형렬 오빠가 같이 집행부 하자고 할 텐데.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그냥은 못 빠져나갈 것 같아요.”


    “어쩌긴 뭘 어째.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내가 그랬다며.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풋. 오빠가 폼 잡으면서 그때 또 무슨 말을 한 줄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나 아직도 기억하구 있어요.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생활은....... 뭐?”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정말 까먹었어요? 누가 한 말이라고 했더라? 그땐 되게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레닌의 말이었다. 다이 호우잉의 소설책에서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주영이에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그게 벌써 언제적 일인데 그래.”


    “얼마를 살았다구 그렇게 늙은이처럼 말해요?”


    탁자 위에서 주영이의 손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손전화를 열고 뭔가를 조몰락거리더니 손전화를 다시 닫으며 주머니에 넣고 주영이는 외투를 꿰어 입었다.


    “형렬 오빠가 한 시간 뒤에 대학로에서 보자네요. 지금 일어나야겠어요. 오빠, 미안해요.”


    “미안할 거 없다. 차도 얻어먹었는데 뭐.”


    “서른 넘어서도 후배들 뜯어먹구 다니면 대머리 될 걸요?”


    “가발 사 달라고 하면 되지.”


    주영이와 나는 도너츠 가게를 나왔다. 따뜻한 곳에 오래 있다가 나와 보니 으슬으슬 추웠다. 참을성 없는 겨울 해는 벌써 가라앉으려는지 서쪽 하늘 부근에서 얼쩡거렸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강남의 고층 건물들은 눈치도 없이 주홍빛을 잘라 먹었다. 어딘가로 정한 곳 없이 가고 싶었다.


    “가라.”


    “오빠두 잘 가요.”


    주영이와 나는 별 말 없이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무슨 계기로 또 만나게 된다고 해도 주영이와 나는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이였으니.


    나는 코엑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리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지하철 삼성 역 가까이 다다르니 우람한 몸집으로 버티고 앉은 현대 백화점이 보였다. 일요일 해거름이라 그런지 길거리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나는 연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듯 최선을 다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월요일을 앞둔 자동차들은 험상궂어 보였다.


    코엑스몰은 재래시장 못지않은 뜨거운 기운이 넘쳐 났다. 노동에서 나오는 열기라고 하기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상품들과 상품들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어느 서점으로 들어갔다. 책꽂이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의 이름을 건듯건듯 훑었다. 무슨 놈의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평생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책만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것 같았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 읽으면 백 살이 넘을 텐데 백 살 넘어서 좋은 사람이 되면 무엇 할까를 생각했다. 역시 내 나이엔 책 말고 다른 더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집이 꽂혀 있는 서가 앞에 주저 앉아 이것 저것 꺼내 읽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저리면 일어났고 다리가 아프면 다시 앉았다. 배가 고파져 손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표지 색도 예쁘고 시인 이름도 예쁜 시집을 한 권 들고 값을 치렀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어둑어둑해진 사위엔 사람이 만든 불빛들만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 불빛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작정 발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얼음판처럼 맨송맨송한 보도블록 위에 가로등이 늘어뜨린 내 그림자가 얹혀 따라왔다. 얼마쯤 걷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니, 내 생활과 다시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아파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달덩이 같은 전등 하나가 달린 어느 건물 입구에 기대어 섰다. 길거리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산 시집을 꺼내 펴 들었다. 대강대강 넘기며 눈어림으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 편을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시를 썼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토마토 하나를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물이 뚝뚝 묻어 떨어졌다. 버찌처럼 둥글고 조그만 것들이 포탄처럼 허공에서 붉게 터졌다. 무언가가 엎어지고 쓰러지며 우당탕 소리를 냈고, 우우 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둥글고 조그만 것들은 점점 많아지며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하늘 위에서 자꾸만 붉게 터졌다. 광현이, 성훈이, 승기, 주영이의 얼굴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녔다. 터널 같은 것이 보였다. 아, 이제 그만 좀 던져! 나를 못 맞히고 빗나간 토마토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혀 퍽퍽거리며 터졌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다시 넘어지는 것들은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덩실덩실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녔다. 터널 안쪽은 하나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라보는 그쪽에 출구가 뚫려 있었다. 눈앞에 거울 하나가 둥실 나타났고 그 안에는 내 얼굴처럼 생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토마토를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어머니처럼 생긴 내 얼굴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어서 저기 보이는 출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따라와. 우리가 매일 뭘 했는지 가르쳐 줄 테니. 살아있는 한 말이야. 우리는 뭔가를 하게 돼 있어.


    고개를 들었다. 오렌지를 한입 베어 먹은 듯 입안에 시큼한 침이 흠뻑 고여 있었다. 나는 목울대를 크게 휘저어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한껏 벌리고 차가운 밤 공기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 진은영 시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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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새벽에 잠이 안와서 컴터 앞에 앉아 이글을 읽다 보니 두시간이나 지났더군요. 덕분에 오늘은 많이 피곤했고 잠이 왔지만 그래도 병학님의 솔직한 마음과 젊은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들을 느낄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감히 병학님의 인생에 끼어들어 한마디 하자면 기간제 교사로 살아보시길 권하고 싶네요. 비정규직의 고통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는 계기가 되실겁니다. 꼭 서울이 아니어도 울산,미신,창원등 공단에서 기간제 교사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듯 하네요. 주제 넘은 간섭 성가셨다면 미안하고요. 서해식
    2009.02.25 21:51 잘 읽었습니다... J
    2009.03.29 15:07 벌써 두 시가 다 됐는데 식은 시작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발 아래만 멀뚱히 내려다보며 걷는데 눈앞에 웬 네모난 것이 쑥 들어왔다. 지하철 선릉 역 출구를 막 나서는 중이었다. 네모의 한 귀퉁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샅에 끼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흰 등산 모자 밖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잔뜩 비어져 나온 할머니 한 분이 옆구리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낀 채 한 손으로는 울긋불긋한 전단지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할머니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리기도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켰다. 이 할머니는 전단지 한 장에 얼마씩 받으실까? 그 돈으로 누구를 먹여 살리실까? 내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드실까? 어차피 전단지가 자기 손을 떠나는 족족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엉겁결에 한 장을 받아 쥐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니 내 뒷사람들은 할머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재우쳐 갔고, 할머니께서는 들이민 손을 그때마다 군인 같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윗몸을 벌겋게 드러낸 남자가 갑각류의 우둘투둘한 외골격 같이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질을 과시하며, 무겁게 보이는 역기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여는 헬스 클럽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신다는 내용이 미끈한 글씨체로 전단지 구석구석에 쓰여 있었다. 성형외과와 헬스 클럽이 유난히 득시글거리는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 몸 가꿈과 이젠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누구나 자기 돈 들여 자기 몸 가꿀 수 있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은 두 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뛰어간다 해도 빠듯했다. 더구나 식장은 4층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구겨 외투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찾았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신부 쪽 친구들이거나 후배 놈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이겠거니 싶었다. 승강기가 4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여자 둘은 서로 아는 사인지 모르는 사인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둘은 확고한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내 앞에 훤히 펼쳐진 떠들썩한 분위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찾기 위해 시골뜨기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축의금을 넣는 하얀 상자가 보였고 신랑 쪽 사람과 신부 쪽 사람이 제각기 책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후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식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식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장 밖에서 끼리끼리 뭉쳐 재깔거리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식장 안을 넘겨다보았다. 후배 놈은 신부와 팔짱을 낀 채 주례 선생님 앞에 서 있느라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례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식장 안 이곳 저곳에 매달려 있는 화면으로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비쳤다. 녀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담뿍 먹은 신부의 얼굴은 후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TV와 길거리에서 낯을 익힌 화장기 진한 여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화장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입고 있는 턱시도며 신부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혼례복이며 전부 다 진부하게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누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아는 얼굴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자 후배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늘 소문으로만 접하는 얼굴들과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해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얼떨결에 튀어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후배들은 나를 지나쳐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축의금 받는 곳을 바라보니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다 후배들이었다. 흰 봉투를 품 속에서 꺼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 후배들의 손은 하나같이 고와 보였다.


    차비 대는 것도 빠듯한 내 형편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이랍시고 봉투에 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전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삼아 사람들과 늦은 저녁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후배 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후배였다. 손전화에 찍혀 나온 이름 석 자를 보며 후배 녀석과 함께 망나니짓하며 놀았던 대학 시절을 샘물 움키듯 떠올려 보았다. 전화를 받자 녀석은 다짜고짜 다음 주 일요일에 강남에서 결혼한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형, 미안해요. 내가 먼저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잘 살라는 말은 안 한다. 잘 살라고 하는 놈들 다 그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거 너도 알지? 광현이 네가 잘 살든 말든 하나도 상관 안 할 놈들이 꼭 입으로는 언죽번죽 잘 살라고 쉽게 말하잖아. 난 그런 말 못한다. 잘 살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저 네 선택을 존중할 뿐이야. 누가 알겠어? 얼마 못 가서 너 갈라설지도 모르잖아.”


    “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광현이는 웃으며 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청첩장을 보내 줄 모양이었다. 일요일 오후 두 시. 글쓰기 모임 일정 때문에 못 갈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결혼식 날에 보자고 광현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게 간 군대를 마치고 나와 보니 후배 녀석들은 죄다 자기 갈 길 가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었고, 한번 만나자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닌 나는 하나 둘 후배들과 멀어져 갔다. 군복을 입고 정기 휴가를 나왔을 때도 누구에게든 먼저 전화를 걸어 제발 좀 만나달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선배와 동기들은 먹고사느라 바쁠 테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만만한 게 후배들이었지만 후배들 역시 뭔지 모를 이유들로 하루하루가 빡빡할 것이어서 아마 나는 구차하게시리 시간 좀 거저 달라고 매달리는 거지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입대 전까지 살붙이처럼 가까이 지낸 광현이에게도 휴가 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광현이와는 두 학번 차이가 났지만 내가 2월 생이라 일 년 빨리 입학했고 광현이는 재수생이라 일 년 늦게 입학한 탓에 나이가 같아 술자리에서는 늘 나이 얘기가 우스개 삼아 안줏거리로 올라왔다. 비록 도중에 집어치우긴 했지만 녀석과는 <자본>을 함께 읽은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별의별 못난 꼴들을 속속들이 보여주느라 숫제 할말 못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녀석은 나보다 군대를 일찍 다녀왔지만 군생활 중에 휴가 나왔다는 연락 한 번 없이 고향인 청주에서 휴가를 다 보내고 슬그머니 복귀해 버리고는 했다. 다른 후배들은 녀석과 나를 하나로 묶어 ‘암울 형제’라고 불렀다. 술만 퍼마시면 어두운 표정으로 김광석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작 수컷처럼 자기 매무새를 멋지게 꾸밀 줄 알아야 정신 똑바로 박힌 대학생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딱 한번 광현이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리던 때였다. 차마 통화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하기엔 낯뜨거웠는지 나는 몇몇 이들에게 손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광현이였다. 광현이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임용고사에 연거푸 떨어지고 난 뒤 서울대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기간제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돈 얘기가 사달이었는지 그 뒤로도 광현이에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러구러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느닷없이 연락하고선 결혼을 한다니. 분명 당사자에게 들었는데도 꼭 거짓말 같았다.


    집에 들어 와서도 나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녀석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헤집어 보며 옛 생각에 젖었다. 녀석과 자취방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술 퍼먹으며 누구를 향해 어떤 불만을 쏟아 냈는지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인데 축의금을 못 줄 망정 뭐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다가 책이나 한 권 안겨 주기로 했다. 편지도 한 통 쓰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만 같구나. 변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홀몸이던 네가 결혼을 하고, 일자리 없이 헤매던 승기가 기간제 자리를 구하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오래 갈 것 같던 연인들이 어느새 각자의 길을 가고....... 하지만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차피 사람의 기준이겠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라면, 새로 만나든 새로 헤어지든 막상 변했다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저 일상이고 시간일 테니. 결혼이 일주일 남았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겠구나.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너한테 가끔씩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하면 너는 여자 친구 생겼다는 거짓부렁을 항상 지어내고는 했었지. 김광석 노래는 좀 부르니? 옛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했구나. 다른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떠올리면 이제 더 이상 팔 벌려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드는데,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결혼 축하한다는 진부한 말보다는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잘 살라는 말보다는 앞으로도 한결같이 너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공책에 괴발개발 쓰던 편지를 좍 찢어 구겨 버렸다.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책은 나중에 결혼식 끝나고 광현이 녀석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따로 한번 만나서 건네주기로 했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주례사는 금방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염없이 지루한 웅얼거림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식장 밖을 어슬렁거리며 낯익은 얼굴들과 시간을 때웠다.


    “어, 형!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하세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낯익은 얼굴들이 거듭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흔들었지만 대화는 이처럼 되풀이되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 모임을 꾸려 가던 녀석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녀석도, 소주 한 병을 누가 빨리 비워 내나 같이 내기하던 녀석도, 한 여자 후배를 두고 다투어야 했던 녀석도, 반년 정도 속으로만 좋아하고 고백 한번 못해 본 새침한 녀석도, 그 어떤 후배 녀석도 전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마 편한 내 동기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좀 이상했다. 광현이와 꽤나 허물없이 지낸 동기 녀석들이 식에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식은 안 보고 벌써부터 피로연 장에서 처먹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식권을 받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축의금 없이 식권을 받으려면 배짱이 필요하다. 나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축의금 상자가 놓인 책상에 다가가 식권 두 장만 달라고 했다.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식권을 주고 들어가는 피로연 장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혹시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일부러 두 장을 달라 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식권 두 장을 주었다.


    주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들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모님들은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삼십 년 가까이 키운 자식이 마침내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게 되는 순간을 부모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슴앓이 탓에 잠을 못 이루시던 어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서랍장 하나를 손가방으로 두들겨 부수려 하셨다.


    나이 스물 아홉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글 쓰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서서히 지쳐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보험 회사 상담원처럼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 계획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들려드릴 수가 없었다. 딱히 문예지에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쓸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시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길만큼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시험을 쳐서 지긋지긋한 공무원이 되는 길을 가느니 차라리 개똥이 널린 길을 낮은 포복으로 기는 게 나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교육학 교재들을 몽땅 외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임용고사부터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이 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집안 한구석에 음흉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생활비를 옛 소련에서 식량 배급하는 만큼이나 어렵사리 대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몇 달마다 한번씩 생활비를 얼마간 가져오셨고 나는 조그만 보습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버는 푼돈을 쪼개 달마다 생활비랍시고 보탰다. 우리집에선 노량진에 있는 한 입시 학원에서 수업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 동생이 가장 많이 벌었다. 온 가족 의료보험비는 일 년이 넘도록 밀려 있었고 다른 공과금들도 몇 달에 한 번씩 전기나 수도가 끊기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겨우 냈다. 구질구질하다면 구질구질한 살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살림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모아둔 돈도 없었고, 어느 눈매 고운 여자 만나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숫제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내 형편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천하태평인가 싶었다. 물론 어머니는 나와 달랐다.


    현실이라는 것은 어느새 어머니 마음에 들어앉은 무거운 병이 되어 암세포처럼 어머니의 몸뚱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에 가기를 바라셨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 교수 자리를 꿰찼으면 하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회 현장이나 노조 천막을 돌아다니며 글 쓰는 짓거리를 그만 두고 어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 결혼도 해서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돈 안 되는 글쓰기 같은 건 집어 치우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보겠다고 헌걸차게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 쓰는 일로 벌어 먹고 살겠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무언가 일거리를 하나 잡고 생활비를 벌면서 글을 써야 하긴 할 텐데, 어머니는 최소한 학교 선생님 이상 가는 자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내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가장 많이 밥줄로 삼고 있는 직업을 고작 불합리한 공교육 제도의 노예 신세일 뿐이라 우습게 보게 되었다.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서른을 코앞에 두게 되자 어머니의 한숨에는 더 축축한 습기가 맺혀 나왔다. 에휴 어이고 하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 줄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조금씩 어머니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예전처럼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듣지 못했다. 구정 연휴 동안 큰집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사촌 동생, 고등학교에서 얌전히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고 가슴에 뭐라도 얹히셨는지 명절이 끝나고 나서부터 내내 한숨 바람이셨다.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서 서점이나 시립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밤늦게야 슬그머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있으면 거실 마루에 누워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잠을 못 이루시더니 느닷없이 이불을 차 버리고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을 들어 마루에 있는 서랍장에 마구 두들겨 대셨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뛰어 나가 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를 말리고 계셨다. 동생은 친구들과 먼 곳으로 놀러 가 집에 없었다. 내 한 팔로도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집으로 손가방을 서랍장 모서리에 쾅쾅 마구 짓찧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아 끌자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아 끄윽 끅 울음을 쏟아내셨다. 방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연신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는 쇳소리 섞인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끊은 지 한 달째가 되어 가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정말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좀 벌어서 어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모르긴 해도 광현이와 신부 부모님들은 아마 행복할 것 같았다. 아들이며 딸이며 전부 학교 선생님으로 남 부러울 데 없이 키워 놓았고, 이젠 혼례까지 치렀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젠 손자를 바라게 될까? 광현이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할까? 차 사고, 집 사고, 우유 값 벌고, 좋은 선생님에 착한 남편 노릇하며 수더분하게 늙어가게 될까? 정말 그렇다면 광현이도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었다.


    신랑 신부 행진을 하기에 앞서 광현이의 동기이자 내 후배이기도 한 사회자가 신랑에게 짓궂은 장난질을 시켰다. 광현이는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린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식장 안은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거푸 팔굽혀펴기를 하고 “심봤다”를 몇 번이나 외친 끝에 광현이는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나도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광현이 눈에 잘 뜨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광현이가 깜짝 놀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괜히 열없어져서 “너 머리가 그게 뭐냐? 양아치야?”라고 해 버렸다.


    행진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 신부의 친척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갔다.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먹고 나온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사진은 됐으니 바로 피로연 장으로 들어가 배나 채울까 궁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승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뭐야. 지금 오는 거야?”


    “아니, 안에서 먹고 지금 나오는 거다.”


    “우리 동기들은 안 왔어? 안에서 처먹고 있는 거 아냐?”


    “없어. 안 왔다.”


    나이 서른에 이마가 훤히 벗겨진 승기의 뒤로 후배들 한 떼거리가 걸어 나왔다. 다들 먼저 피로연 장에서 배를 채우고 사진 찍을 때쯤 해서 나온 모양이었다.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까지 찍고 밥 먹기로 하고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후배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새 뭐 해요? 돈 되는 일 빼고 다 한다. 그럼 연애도 하겠네요? 연애가 돈 안 되는 일이었나? 그럼요, 연애하면 돈이 얼마나 나가는데. 야, 그러려면 우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신랑 신부의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몰려 나온 빈 공간을 젊은이들이 거침없는 걸음새로 채우기 시작했다. 다들 예쁘고 새뜻하게 보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결혼식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으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말끔한 정장 몇 벌쯤은 옷장 속에 쟁여져 있는, 굳은살 없는 손과 그을림 없는 얼굴을 가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들이 신랑과 신부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장을 몹시 싫어하는 나는 눈앞에 활짝 펼쳐진 정장들의 물결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젊은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어디론가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식장 바깥으로 나가며 승기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간제 구했다며?”


    “그렇게 됐다.”


    “야, 나도 어디 기간제 하나 구할 수 없냐? 돈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아야지 숨막혀 죽겠어.”


    “집에 엄마랑 둘이 있으면 분위기가 폭발할 것 같지? 나도 알지 그 기분.”


    내가 출근하는 학원은 승기가 꽤 오랫동안 맡아 하던 걸 내게 슬쩍 이어준 곳이었고, 승기는 그 뒤로 다른 학원들을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결국 임용고사 공부를 시작하며 강사 일을 정리해 버렸다. 어디서 공부를 하는지 승기는 그 뒤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임용고사가 있던 날 저녁에 승기는 내게 전화를 걸어 시험을 망쳤으니 일단은 기간제나 알아봐야겠다며 쓰게 웃었고, 그게 지난 세밑이었는데,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결국 기간제 선생님 자리를 하나 구한 모양이었다.


    “원래 학기 중에는 잘 안 구해지지 않아? 방학이나 돼야 자리가 날 텐데.”


    “학교마다 다르지. 여자 선생님 출산 휴가 때문에 기간제 쓰는 학교도 있고. 지난 한 달 동안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백 통도 넘게 출력했어. 원서를 좆 빠지게 내밀고 다녀도 잘 안 구해지더라. 요새 사립 학교들이 눈이 너무 높아져서 토익 점수니 학점이니 뭐니 장난 아니게 따지거든.”


    “너는 어떻게 구했는데?”


    “쑤시고 다니다 보니 운 좋게 된 거지 뭐.”


    “자기가 원서 들고 학교마다 찾아 댕겨야 하는 거야? 원서는 어떻게 넣어?”


    “경기도 교육청이랑 서울, 인천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구인구직란이 있어. 거기 보면 어디 어디 학교에서 기간제 구한다는 공고가 뜨거든. 그거 보고 내는 거야.”


    “그래......”


    막상 기간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했다. 기간제 자리를 덜컥 구해서 아침마다 출근하게 된다고 해도 꽉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을지, 어딘가를 취재해서 글을 쓸 수는 있을지, 책 읽을 시간은 날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필요한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 전부라 생각하며 부여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버려야 할 것이다. 피로연 장에 있을 술 생각이 났다.


    “너 밥 먹었다구 그랬지? 집에 갈 거냐?”


    “글쎄. 밖에 나가서 한 잔 할래?”


    “나 밥도 안 먹었어. 그러지 말고 너도 들어와서 2차로 밥 먹어라. 응? 안에 공짜 술도 있구.”


    “밥이 술이냐? 무슨 2차야? 나 식권도 없어.”


    “걱정 마라. 나한테 두 장 있다.”


    우격다짐으로 승기를 끌고 피로연 장으로 들어 갔다. 느끼한 음식 냄새가 금세 콧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는 과일을 몇 개 집은 승기와 함께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한산한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이컵에 맥주를 붓고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에 쓴 물이 가득 괴어 올랐다.


    “아우, 써.”


    “웬일이냐? 결혼식에 와서 네가 소주를 안 처먹고?”


    “나 지난 연말에 술 때문에 쓰러졌잖냐. 1월 중순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았어. 오늘이 2월 8일이니까 술 안 마신지 한 달 조금 넘었네.”


    “너 술 마신 게 하루 이틀이냐? 얼마나 마셔댔길래 그래?”


    “글쎄. 한 반년 넘게 물처럼 마셨나? 작년 봄에 촛불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 이런저런 현장에 돌아다닌답시고 술만 처먹고 다녔지 뭐. 노조 천막에서 조합원들이랑 술 마시면 나 땜에 밤 새느라 다음날 노조 회의 하나가 작살이 났으니까.”


    “오늘은 마셔도 되는 거야?”


    “맥주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근데 오랜만에 마시니 술 맛을 모르겠다.”


    승기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 술을 마셨다. 수배를 피해 학교 학생회실에서 먹고 자던 추레한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수배가 풀린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때운 승기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다시 학교로 복학해서, 승기가 한창 때 대학 안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는 어린 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학내 조직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고, 나도 얼굴을 어릿어릿하게 기억할 뿐인 후배들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쉽사리 마음이 꺾였다. 팔십 년대 투사들이 구십 년대에 들어 방황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이른바 ‘후일담’ 소설들을 한때 염소가 종이 먹듯 마구 읽어 치운 적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 것들을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보며 조금씩 되짚어 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한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이던 녀석과 으리으리한 피로연 장에서 고깃점을 잔뜩 쌓아 놓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나는 이미 소설 속에서 숱하게 읽었다. 술에 얼근하도록 취하면 피로연 장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후배들 멱살을 잡아야 하는지, 어디에 털썩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쳐다보아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나는 죄다 알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서 몇 번 나가 보았던 동기들 모임에서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혼과 집장만과 자가용과 대학원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동기들 틈에 끼어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어휘들을 속으로 주물럭거리며 줄담배를 피워 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 싫었다기보다는 내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들 자체가 너무나 진부하다는 것이 못 견디도록 싫었고, 이미 팔십 년대 작가들이 오래 전에 소설로 썼던 이야기들을 이제 와서 내가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사실 또한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돈 벌고 애인 만들며 안락한 삶을 향해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 또한 점점 진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어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도 아니고 후일담이든 뭐든 소설에 쓰여진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었지만, 나 자신을 보고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거기서 거기인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아직 삼십 년도 채 살지 않은 녀석이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다른 어떤 생각 못지않게 진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러다간 진부함이라는 터널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귤을 우물거리고 있는 승기의 하얀 양복 와이셔츠 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훤히 벗겨진 이마에는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머무르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고깃점들을 아구아구 입속에 처넣었다.


    “요새 뭐 하냐?”


    승기가 짐짓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오늘 하루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돈 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내 대답에 그처럼 되물어 준 사람은 승기가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말을 잇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물거렸다.


    “글은 계속 쓰고 있냐? 글쓰기 모임 한다면서 거기엔 아직도 나가?”


    승기한테는 굳이 숨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 시간도 때울 겸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 보기로 했다.


    “글이라. 글쎄. 모르겠다. 써도 써도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나 하는 생각밖엔 안 들어. 별로 많이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야. 모임에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구. 글을 쓰면 뭐 하냐. 읽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한 편 쓰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아니, 돈을 바라고 써야 하는 거 맞지. 내게도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근데 돈 나오는 글을 쓰려면 등단을 하든 뭘 하든 해서 글에 돈을 쳐주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생각은 있긴 있는데 들어갈 능력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능력은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정말 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다른 밥벌이를 해야 하나.....”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애들 알아?”


    “알지. ‘싸구려 커피’ 부른 인디 밴드 말하는 거지? TV에도 가끔 나오는 걸 보니 인디 밴드 치고는 꽤 알려진 모양이던데.”


    “장기하가 인터뷰하는 걸 보면서 너 생각을 했거든.”


    “뭐라고 그랬길래?”


    “기자가 좀 짓궂게 장기하한테 인디 음악 하면서 배고플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어. 장기하는 배가 고파도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지 웬만하면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 ‘웬만하면’이라는 말이 걸리더라고.”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말이네. 견딜 만하니까 그러지.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아직까지는 ‘웬만하면’이야. 나 참. 아직은 누워 잘 곳은 있고, 밥은 안 굶고 다니니......”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고민 많고 글재주 있는 놈들 여럿 있었잖아? 학교 선생님으로 나갈 생각 전혀 안 하던 녀석들 지금은 전부 다 학교나 학원에 가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사범대 나왔겠다 학력 되겠다 한 자리씩 잡으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살면서 보험 하나씩 들어두는 건 필요하긴 한가봐.”


    “어떤 놈들은 돈 많은 여자 친구를 보험으로 삼고 사귀기도 하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세컨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수연이는 잘 있냐?”


    “잘 있기야 하지. 돈 버느라 바빠.”


    “너희도 젊은 연인들 치고는 오래 가는 거야. 요새 누가 오래 연애하냐? 제깍 결혼하든가, 아니면 가망 없는 사람 등지고 딴 사람 찾든가 하지. 얼굴은 자주 봐?”


    “못 봐. 가끔씩 만나도 회사원과 백수라는 신분이 정말 다르긴 다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 걔야 지금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지. 경력도 좀 되고. 나야 작년 내내 임용고사 준비만 했지 돈을 벌었냐 일을 했냐. 학원 하면서 벌어놓은 것도 거의 다 헐어 쓰고 보니 수연이한테 기념일마다 선물 챙겨 주는 것도, 날씨 좋은 날에 같이 놀러 다니는 것도,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 내 담뱃값 대는 것도 힘드니 말 다 했지. 학교 다닐 때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서 떡볶이 같은 것도 같이 맛나게 잘 먹었는데, 이제는 그런 데는 구질구질해서 싫대. 길거리를 가면서도 비싼 옷이나 액세서리 파는 데에서는 한참씩 있다가 가고......”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안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임마. 마음만으로 되는 게 이 세상에 어딨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수연이와 내가 자꾸 조건이 안 맞아가고 있다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뭐가 사랑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에 조건이라고 해 봤자, 결국 돈밖에 없잖아.”


    “돈이 아니라 현실이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돈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뜻해. 연애도 못하는 너는 모를 거다.”


    나는 수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하얀 얼굴에 똘방똘방한 눈으로 항상 웃고 다니던 수연이는 승기가 공익근무요원 노릇을 할 때 과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승기와 사귀게 된 후에 수연이는 어느 날인가 승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하던 시간들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요. 그 시간에 공부를 더 못 한 게 두고두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암, 그럴 수 있지. 조직이란 건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까딱 잘못하다간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할 일은 태산 같이 쌓여 있는데, 바꾸고 고쳐 나가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주변 사람들은 좀처럼 거기엔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항상 몇몇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술꾼이 되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힌 우등생이 되기 일쑤였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다운 ‘낭만’이라는 것을 넉넉히 누린 것도 아닌 어느 졸업생이 금테 둘러진 대학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집안 사정도 몹시 어렵다면?


    꿈 꿀 수 있는 여지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현실과는 어떻게든 화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놈의 현실이란!


    “예쁘지만 가난한 여자는 자기의 몸값을 제대로 알지. 그래서 잘생겼지만 돈 없는 남자 아니면 못생겼지만 돈 많은 남자를 골라. 못생겼지만 돈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야. 어딘가 흠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게 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결혼도 어차피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손해를 보려구 하겠냐? 내가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니 돈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나이 서른에 아직도 시험 준비하랴 기간제 구하랴 빌빌대니까 당연히 성에 안 찰 수밖에.”


    승기는 맥주를 샘물 먹는 소처럼 벌컥거리며 쭉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동화책이나 소설이나 드라마 보면 조건 같은 거 안 따지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많이 나오잖아? 그거 다 개소리야. 책이나 TV에 나오는 남녀는 죄다 미남 미녀들이니 일단 외모라는 조건에서는 서로 들어맞는 거지. 나머지는 작가들이 다 알아서 쓰는 거고. 항상 결혼에 골인하거나 부자가 되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나오는 거 봐. 현실에서도 똑같아.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결국 조건 아니면 돈이야. 자기 조건 제대로 아는 눈치 빠른 사람은 자기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돼 있어.”


    나는 승기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시절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더라. 민중 생존권 쟁취와 학원 자주화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라크 전쟁 반대와 노동자 농민의 정치세력화와...... 하긴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보다는 차라리 승기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차라리 더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도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승기의 말을 받았다.


    “사실 조건이라는 것을 따지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오히려 피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일단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고를 거잖아. 그거부터가 이미 조건을 따지자는 건데. 안 그래? 그러면서 조건은 하나씩 늘어가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얼굴이 흉측하게 생기지 않아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비슷한 취미가 있어야 하고...... 외모나 학벌이나 집안, 재산 같은 걸 속속들이 따지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 자기네 혈통을 관리해야 하는 엄청난 부자들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쓰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 조건을 내건다고. 그리고 그렇게 내건 조건이 또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새로운 조건이 되고. 무엇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할 때는 그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는 소리잖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쨌든 문제는 말이야. 그 조건이라고 하는 게 우리들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얼마나 잠식해 가고 있느냐 하는 건데. 막말로 승기 네가 돈이 없어서 수연이 걔가 멀어져 간 거라고 쳐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거지로 나눠지는 건 아니니까, 아마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경제적 능력도 부자와 거지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 정도의 능력이겠지. 너는 그런 애매한 위치의 능력조차 걔를 위해 발휘할 수 없었다는 건데, 그것도 너의 잘못은 아닐 테구. 빌어 처먹을 놈의 학교들이 기간제만 자꾸 쓰려고 하니까 임용고사 정교사 정원이 확 줄어서 그런 걸 테지? 너와 수연이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달라서 이렇게까지 된 거 아냐? 정말로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것이 네가 가진 것 이상 가는 경제적 능력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못 미치는 네가 실망스러워서 등을 돌려 버린 것이라면, 너의 인간적 가치는 끝내 돈이라는 것에 납작하게 짓눌려 버린 것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수연이를 두고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어. 걔가 풍족한 삶을 원하는 인간이라면, 사실 풍족한 삶은 누구나 속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거니와, 걔가 그런 삶을 원하도록 자꾸만 부추겨 온 보이지 않는 힘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야지. 바로 그 힘이 너라는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갉아먹어 버린 몹쓸 것 아니겠어?”


    내가 한바탕 쏟아 낸 연설을 듣고 승기는 손을 홰홰 젓더니 귤을 집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관 둬 임마. 괜한 얘기를 꺼내가지구. 어디 돈 때문에 그런 거겠냐? 남녀 사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넌 연애도 못하는 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논문을 쓰냐? 그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만큼 케케묵은 개소리가 또 어딨어?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거야? 베네수엘라처럼 대안 체제를 향해 가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수연이가 나한테 다시 매달릴까? 아냐. 여자들 대부분이 다 비슷해. 이십대에 꿈을 꾸든 지랄을 하든 뭘 하든, 서른 넘어가면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게 되어 있다고.”


    “네가 여자를 몇이나 만나 봤다고 그래? 그리고 어디 여자만 그러냐?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자꾸 현실 현실 하는데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나는 얼마 전 한 친구와 감자탕을 먹으며 눈을 치뜬 채 똑같은 물음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구정 연휴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이었다. 글쓰기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물 한 잔을 앞에 둔 채 살이 발라진 닭 뼈다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터뷰를 어떻게 짤 것이며 누가 어디를 맡아 글을 쓸지, 다음 모임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열띤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잦은 술자리와 줄담배 탓에 지난 세밑에 결국 거꾸러진 후 나는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학원에만 겨우겨우 출근했고, 다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워 있으면서도 깨죽깨죽 뭔가를 읽었고, 귀가 아프도록 음악을 들었다. 뉴스 같은 건 하나도 보지 않았다. 배고프면 밥을 먹었으며, 잠이 오면 이불을 덮어쓰고 잤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썼던 적지 않은 글들을 떠올려 보면 나 혼자서만 아무 의미 없는 헛지랄을 한 것 같아서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내 글쓰기를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도 나는 정물화 속 꽃병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내게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재능이란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빚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넘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게을러 빠진 소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귓등으로 흘리며 튀김 닭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손전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전화 화면에 찍힌 이름 석 자를 보고 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피돌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 미친 놈아. 난 너 죽은 줄 알았다.”


    “잘 있었냐. 지금 밖인가 보네?”


    “서울 올라온 거야? 얌마, 네가 무슨 싼타 클로스냐? 일 년에 한 번 보는 게 왜 이리 힘들어?”


    “지금 서울이다. 아는 사람들이랑 한 잔 하구 학교 근처로 가는 길야. 너 혹시 지금 나올 수 있어?”


    “지금 몇 시나 됐냐? 어.... 그러니까...... 열 시네. 여기 대학로야. 학교까지는 삼십 분이면 간다. 근데 꼭 오늘 봐야 돼? 날 잡아서 승기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미안. 오늘 말고는 시간이 안 날 것 같네.”


    “그럼 여기 끝나면 갈 테니까 제기 시장 쪽에서 자리 잡고 기다리구 있어. 나 감자탕 먹고 싶다.”


    “어서 와라.”


    뒤풀이가 끝나고 나는 대학로에서 버스를 탔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성에가 뿌옇게 낀 감자탕 집 문을 드르륵 밀어젖히며 눈으로 성훈이를 찾았다. 성훈이가 팔을 번쩍 쳐들었다. 나는 성훈이에게 다가가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껴안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올라왔어? 연락도 안 되더니.”


    “자꾸 내 사망설이 퍼지고 있길래 나 살아 있소 하려구 올라왔지.”


    대학 시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감자탕 집이었다. 주인 형님에게 인사를 하니 오랜만에 왔다고 함빡 웃어 주었다. 저녁을 튀김 닭 몇 조각으로 때워서 배가 몹시 고팠다. 기본 안주인 비빔국수 한 사발을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나를 성훈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이구, 잘 먹네.”


    “남 먹는 거 쳐다보면 좋냐? 너는 먹었어?”


    “먹었다. 마이 묵어라.”


    오글보글 감자탕이 끓자 성훈이는 내 잔에 소주를 붓고는 소주병을 내게 넘겼다. 성훈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이 녀석 잔에 술을 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요새 술 못 마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하의 술꾼인 네가 술을 못 마신다니. 죽을 때가 된 거 아냐?”


    “죽을 때는 아직 안 됐는데, 죽을 뻔하긴 했지. 하도 마셔 대다가 지난 연말에 쓰러졌었어.”


    “그러게 작작 좀 먹지. 우리도 늙었어.”


    “난 아직 이십대야.”


    “자랑이다. 그래 봤자 스물 아홉이면서. ”


    남들 보다 일 년 일찍 입학한 나와 달리 성훈이는 재수를 해서 남들 보다 일 년을 늦게 들어오느라 나와는 두 살 차이가 났다. 성훈이 여동생이 나랑 동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이 잘 맞았고,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술을 퍼마시며 우리를 거부한 여자들과 그 여자들을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한 이 세상을 향해 군소리를 퍼부어 댔다. 성훈이는 내가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마시든, 돈이 없어 자판기 커피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맥주와 소주를 사 놓고 소주 안주로 맥주를 마시든,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수업 도중에 홀짝거리든, 학교 식당에서 김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한번도 놀라지 않았고 나를 알코올 중독자라 닦아세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가끔은 서로 싸움질도 했으며, 서로가 자신의 가장 못나고 부끄러운 사연들마저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친구라 생각했다.


    “너랑 마지막으로 본 게 지지난해 연말이었지?”


    “벌써 그렇게 됐네.”


    “자주 좀 올라오지 그랬냐. 그렇게 바빠?”


    “알다시피 내가 있는 곳이 학교 기숙사잖아. 당직도 자주 서고 하니까 평일엔 시간 내기가 좀 힘들어. 이번에도 휴가라서 겨우 올라온 거야.”


    “아직도 그 새터민 학교에 있는 거 맞지?”


    “응.”


    성훈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는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새터민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을 빠져 나온 북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술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성훈이는 잔을 비웠고 나는 입술만 축이고는 내려놓았다. 다시 소주병을 들어 성훈이 잔을 채워 주었다.


    “지방에만 있다 보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더라.”


    “그 학교에는 너랑 마음 맞는 사람 없구?”


    “한 명 있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인데, 인제 삼십대 중반 정도 됐어. 가끔 내 방이나 그 선생님 방에서 밤새 술 먹기도 하고...... 그냥 그 선생님과는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다른 선생님들은? 교무실 분위기가 좀 그래?”


    “남자 선생님들이 여럿 있긴 한데. 꼭 해병대 분위기야. 우르르 몰려다니며 와아 하고 떠드는 분위기 너도 알지?.”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응. 그래서 같이 안 다녀. 하나도 안 친하지.”


    “아이들은 좀 어때?”


    돼지 등뼈를 뒤적이던 성훈이가 큼지막한 것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내 앞 접시에 얹어 주었다. 나는 국자로 국물을 퍼서 등뼈 위에 끼얹었다. 성훈이는 자기 앞 접시에도 등뼈 한 덩이를 얹고선 국물을 떠 먹으며 말을 이었다.


    “착해. 너무 착해서 탈이지. 말하는 대로 다 믿어. 학교 마치구 남한 사회로 나가면 많이 다칠 것 같아.”


    “나이는? 고등학생들인가?”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양해.”


    “예전에 학교에서 토론회 했던 거 기억 나? 탈북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뭐 그런 주제로 토론회 열렸었는데.”


    “그래? 기억 안 나는데.”


    “그때 한쪽은 다함께에서 나온 사람이었고, 다른 한쪽은 반미 청년회에서 나온 사람이었지.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은 한총련 중앙 간부 출신이었고. 반미 청년회 사람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탈북은 남한 기독교 세력과 연계돼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획 탈북이니 남한 정부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고, 다함께 쪽은 정치적인 이유든 아니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인권을 지켜 주는 거라면서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서로 팽팽히 맞서던 중에 갑자기 객석에 있던 남학생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지.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북한 출신 학생이었어.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지. ‘탈북자인 제가 보기에 북한은 일당 독재 국가에 불과합니다.’ 북한에 살다가 온 학생이 직접 말을 하니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계속해서 북한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줄줄이 나열하니 거기서 그만 토론회는 끝나 버렸지. 물론 그 학생의 시선도 북한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북한에 살던 시절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 힘들었던 기억이라 그런지.”


    “근데 북한에서 남한까지 오는데도 굉장히 다양한 경로가 있지 않아? 중국을 거쳐서 올 수도 있고, 러시아나 몽골 쪽까지 지나서 올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 가서 돈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팔려 오기도 한다던데.”


    “그런 경우도 있긴 있는데 그건 아이들의 경우가 아니라 아이들 부모님의 경우가 많지. 조선족 여성이나 북한 출신 여성이 남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북한을 일단 빠져나와 중국에 가더라도 신분이 애매하니까 드러내 놓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지. 온갖 힘든 일 다 하다가 고생 끝에 남한에 오더라도 그놈의 편견이라는 벽에 또 부딪히게 돼. 자식이 딸린 여성들은 더욱 힘들지.”


    “새터민 아이들도 요새 아이들이랑 비슷한가? 주로 뭐 하고 놀아?”


    “비슷하지 뭐.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좋아하고...... 길거리에 널린 게 화려한 옷과 비싼 물건들이잖아. TV에는 잘 사는 사람들 얘기만 나오구.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나중에 남한 사회로 나가게 되더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왕창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렇게라도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어.”


    “현실이라...... 너는 아이들과 상담 같은 거 안 해?”


    “하지. 근데 내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뭘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은 쉬운 게 아니라고? 걔들은 지금 새터민 출신으로서 처해 있는 자신들의 현실 자체가 결코 견디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아이들이야. 선생 노릇이나 하는 내가 현실을 말해 봤자, 그런 말을 하는 나부터가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걔들은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들이 아니야. 자기가 남한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건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탈북자라는 자신의 조건은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돈을 악바리처럼 벌어서 일찌감치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 말이나 다 믿는 착한 아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며 사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섭도록 변할 수 있지.”


    “너도 참 쉽지가 않겠구나.”


    “난 그냥 아이들이 몸 건강히 학교 마치고 나가서 별 탈 없이 남한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어.”



    성훈이는 잔을 들어 쭉 들이켰고, 나도 입술만 축이던 아까와 달리 아주 조금만 목으로 넘겨 보았다. 꼭 화학 약품을 마시는 것 같이 입안이 썼다. 성훈이가 자기 손으로 빈 잔을 채웠다.


    “현실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나 작년 성탄절쯤에 아는 사람들이랑 지방에 취재하러 내려갔었어. 경상북도의 한 도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랑 만나서 인터뷰를 했지.”


    “근데?”


    “고등학생들은 인문계가 아니라 실업계, 그러니까 공고 학생들이었어. 힘들게 살더라.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장들에게 월급 다 뜯기고, 점장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불법인 거 아느냐고 협박해서 돈 안 주고, 근데 학생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고용주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가르쳐 주는 데가 없으니까.”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주고?”


    “학교에서는 졸업 후 취업에만 신경 쓰지 재학 중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 쓴대. 그 학교만 그러는지 공고들은 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공고 졸업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빠지지 않아?”


    “학교와 인근 중소기업들을 연결해서 맞춤형 취업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 있대. 고3 끝날 때쯤 되면 일터에 나가서 일을 조금씩 배우고, 졸업한 다음에는 바로 그 일터로 채용이 된다고 하더라고.”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난 얘기만 듣고는 잘 모르겠네.”


    “공장에서 확실히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나쁠 거야 없겠지.”


    “근데 걔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가 다른지는 알아?”


    “그게 문제야. 비정규직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양산되고 있고, 정규직에 비해 어떤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정규직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돈도 덜 받고,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 정도는 주위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걔들이 자신들의 꿈에 대해선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들은 꿈 같은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안 꾼대. 빨리 돈 벌어서 성공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게 꿈이라는 거야.”


    “...........”


    “그러니까 나 같이 글 쓰며 사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걔들 눈에는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 걔네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정글이야. 아니, 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경쟁이라는 걸 일찌감치 배우지. 기업에 입사 원서를 쓸 때도 성적 순으로 끊는다니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로 안 보이고 적수로만 보이는 거야. 돈벌이와 관련이 없는 꿈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다른 인문계 학생들보다 현실을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걔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라.”


    “그게 바로 그 아이들의 현실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집이 어려우면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 가야 할 테니까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된 애들이었는데 낭만적인 꿈 하나쯤은 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걔들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 같은 건 쓸데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선 꿈을 버린 거야. 꿈을 버리는 게 꿈이라는 거야.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을, 돈 안 되는 허황된 꿈보다는 돈 되는 현실적인 직업을 걔들은 원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걔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걔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걔들은 사회로 나가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 어떤 학생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언론에서 너무 안 좋게만 보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까지 말했고. 다들 비정규직 따위는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근데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착각이잖아! 비정규직은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신분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신분이고,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머릿수를 늘리고 있는 신분이라고. 노동 유연화다 뭐다 앞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계속될 텐데, 아무리 정규직 되겠다고 발버둥쳐 봤자 비정규직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는 작동 방식을 박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더구나 요즘 이명박 정부가 뭐라고 떠들고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고? 나 참. 고용주들의 목적은 오직 이윤일 뿐이지 노동자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야. 정부는 항상 고용주들의 편이고. 돈만 벌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이 걔들이 돈 많이 벌게 그냥 놔둘 것 같아? 걔들이 말한 현실이라는 건, 걔들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죄다 환상이야. 환상이라고. 안 그래?”


    나는 앞에 놓인 돼지 등뼈를 두 손으로 홱 꺾어 비어져 나온 고깃점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성훈이는 말없이 잔을 비우고는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가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네가 한번 말해 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어떤 게 현실이야?”


    “........”


    “그래, 꿈은 꿈으로 남을 때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경우도 있어. 꿈은 현실이 아니게 되고, 현실은 꿈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하지만 꿈은 꿈대로 버리게 만들고, 현실은 현실대로 환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무엇을 마음 속에 품든 죄다 거짓말 아니면 환상이 되어 버리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나에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인데, 내게 현실이라 함은 그거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고 환상이라 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생각하자니 그 현실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말짱 환상이 되어 버리고...... 정답은 결국 취직인가? 정규직인가? 하지만 취직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되나? 취직과 안정을 현실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마취된 것처럼 하루하루 아무것도 못 느끼고 살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열을 내며 말을 쏟아 내다가 성훈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성훈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뒷벽에 기댄 채 건너편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 속 아리따운 여배우를 멀거니 쳐다보았고 성훈이도 말없이 담배만 뻐끔거렸다.


    “내가 요새 이렇다. 말만 많아졌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갈까?”


    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성훈이는 입구 앞에서 새로 붙여 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게도 한 대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학아.”


    “응?”


    “요새도 글 써?”


    “아니.”


    “왜?”


    “쓰기 싫어졌어.”


    “아까는 글쓰기가 네 현실이라며.”


    “현실? 현실이라....... 현실이 병이 되겠다 젠장.”


    “사랑하는 누군가는 있어?”


    “없어.”


    “어머니는 잘 계시구?”


    “나 때문에 잘 못 계시지.”


    “너 걱정 많이 하시는구나.”


    “걱정되시겠지. 서른이 내일 모레인 녀석이 글 쓴답시고 빈둥대고만 있으니. 이젠 친척들에게 나 보이는 것도 창피하신가 봐.”


    “집 형편은?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 뭐.”


    “.......”


    “그래 맞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밥벌이를 하긴 해야겠지. 근데 뭘 해야 할까? 난 글 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다 병학아. 그런 말하지 마. 너도 아닌 거 알 거야.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봐. 우선 생활을 하는 거야. 난 너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어떻게든 생활을 해 나가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옛날 일만 쓰게 될 거야.”


    “옛날 일......”


    “네가 글 쓰는 걸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고 끝까지 그걸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한, 너는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쓰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니?”


    “.......”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다른 부잣집 자식들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꼭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은 다들 가지고 있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네가 만났다는 그 고등학생들도 떼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불편한 거니까.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에게 피해 안 주면서 남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삶에 지치더라도 그걸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꿈이겠지. 그런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 물론 그러기는 힘들어. 하지만 그게 밥벌이를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들과 밥벌이 사이에 너무 선을 긋지만 말고, 음, 그러니까, 바늘에 꿴 실이 있다고 생각을 해 봐. 바늘이 먼저 길을 뚫지만 실은 바늘과 한 몸처럼 되어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같이 가잖아. 그건 바늘에 실이 얼마나 단단히 매어졌느냐에 달렸지. 생활이라는 것도, 네가 말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몰라.”


    앞만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성훈이를 쳐다보았다.


    “......애들이랑 상담도 한다더니 말재주만 늘었구나.”


    “그게 다 너한테 배운 거 아니냐.”


    “춥다. 들어가자.”


    성훈이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어느새 식어 버린 감자탕을 다시 데우기 위해 밸브를 열었다. 나는 성훈이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이라면 환장을 하던 놈이...... 술 안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죽을 것 같아서 못 마시는 거야.”


    성훈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바닥에 술이 찰랑거리는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우리 이거 다 마시고 악기 치러 갈래?”


    “악기?”


    “술 좀 사 갖구 사위방으로 가자.”


    성훈이는 대학 시절 풍물패에서 쇠(꽹과리)를 쳤다. 나도 성훈이를 따라 놀러 다니다 보니 어깨 너머로 악기를 배워 간단한 장단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사범대 풍물패 이름이 ‘소리사위’였고, 사범대 학생회실에 있는 건물에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소리사위방’이 있었다. 풍물패 사람들은 시간 날 때마다 사위방에 모여 악기 연습을 했고, 술을 마시면 꼭 사위방에 모여 밤새도록 악기를 쳤다. 나도 머리끝까지 취해 풍물패 사람들과 함께 사위방에 와서 괭괭거리는 악기 소리에 묻혀 가며 얼씨구 잘한다 좋고 지화자 개잡아묵었나 하는 추임새 소리와 함께 가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북을 두들긴 적이 많았다. 문득 아무거나 손목이 빠지도록 두들겨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훈이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는 일어나 계산을 했고, 나는 바깥에 나가서 성훈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 형님이 따라 나와 몸 건강히 지내라며 손을 흔들었다.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든 성훈이는 내 팔짱을 끼고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외로울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니?”


    “외로울 때? 글쎄. 나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가 혹시 ‘외롭다’라는 단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저 심심한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외롭다고 자기도 모르게 표현해 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막연히 외롭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것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기준을 세웠지.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혼자서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심심한 거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혼자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외로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돼. 외로운 상태가 내게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외로운 상태를 외롭지 않은 상태로 만들거나 아예 해체해 버릴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눌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는 반에서 물건 하나가 없어지면 그 즉시 반 전체 아이들의 소지품 검사를 하거든. 나는 그게 뭔가 아닌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먹히더라. 무언가를 바꾸고는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너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랍시고 늘어 놓은 내 말을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성훈이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나라면, 글쎄, 나라면 말이지...... 예전에 학생회 간부 하던 시절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사람들 만나 가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딴 식으로 말하기는 싫고...... 아, 모르겠다. 역시 네 편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성훈이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만 옆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성훈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너무 내 얘기만 많이 하느라 정작 성훈이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방에 앉아 성훈이는 쇠를 들었고 나는 북을 세워 내 앞에 놓았다. 성훈이는 소주를 병째 꼴깍거리며 들이키더니 과자를 한 줌 집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성훈아, 우리 예전에 힙합 국악 하다가 선배들한테 혼난 거 기억 나?”


    “악기 가지고 장난 친다고 쿠사리 엄청 먹었지. 자, 간다.”


    성훈이가 쇠를 치며 장단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북을 잡았다가 장구를 잡았다가 하며 아는 장단이든 모르는 장단이든 흥이 나는 대로 두들겨 댔다. 그렇게 첫차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 모르고 악기를 쳤다. 성훈이가 벌떡 일어나 쇠를 치면 나도 북을 어깨에 매고 일어나 빙글빙글 돌면서 북을 쳤다. 장단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했다.


    어느덧 첫차 시간이 되자 우리는 악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는 사위방을 나왔다. 속옷이 땀에 추근히 젖어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한밤중처럼 어둑어둑했다. 잠 한 숨 자지 못했지만 실컷 악기를 치고 나서 찬바람을 쐬니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져 왔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성훈이는 버스를 타고 친척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냐.”


    “무슨 초상 났어? 그건 죽은 사람한테나 하는 말이고.”


    “또 싼타 클로스처럼 연말에나 나타나는 거 아냐?”


    “모르겠다. 시간이 언제 날지. 다시 올라오게 되면 연락할게.”


    “요즘 말이라는 걸 잘 안 하고 살았는데, 너 덕분에 오늘 실컷 떠든 것 같아서 좋네.”


    “나도 그래.”


    버스가 왔다. 성훈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놓더니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성훈이는 휘뚝거리며 빈 자리에 앉았다.


    “현실? 가지고 온 건 다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뭐해? 빨리 다 먹어.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내 앞에 놓인 먹다 남은 고깃점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승기가 투덜거렸다. 욕심 부리며 고기만 집어 와서 그런지 속이 느글거렸다. 그런데 정말 고기 탓일까?


    “느끼해서 더는 못 먹겠다. 근데 어쨌든 너 말대로 조건이 중요한 거라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 참에 수연이랑 갈라설 거야?”


    “몰라. 시간이 지나면 결말이 나겠지.”


    “우리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현실이라는 것에 도장을 꽝꽝 박아야 하냐? 나이 서른 먹으면 정해질 건 다 정해지는 건가? 우린 옴짝달싹 못하는 거야? 뭔가 이상해. 이것저것 조건이 빠질 수 없는 게 연애라 하더라도, 연애 자체가 몽땅 조건이라는 것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잖아?”


    “네 얘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 얘기지? 근데 닭도 아니고 달걀도 아니고, 사람한테는 무조건 밥이 먼저야. 이 세상에 연애를 자선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을 양팔 저울에 올려 놓고 재는 거지. 누구나 그래. 안 그럴 수가 없지.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도 다 사업이야.”


    “사업?”


    “사업.”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포크로 돼지고기를 결 따라 찢어 보았다. 살이 갈라지며 분홍빛으로 선명한 육질이 드러났다. 자꾸자꾸 가르고 찢었다. 고깃점들은 곧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네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현실이라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그곳엔 영화 포스터처럼 진부하게 보이는 것들만 잔뜩 쌓여 있어. 왜 그럴까? 현실은 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학 문제가 아니잖아?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도록 다양하고 변화무쌍해야 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부터 매끈하게 잘 뽑힌 사진 한 장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 안 들어? 뭔가 이상해. 잘 빠진 이미지 하나를 갖다 놓고 모두들 저게 현실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는 거야. 다들 거짓말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 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빵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둘의 중간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승기가 말을 받았다.


    “야, 네가 하는 말은 정말 말이니까 쉽지. 세상 혼자 살 수 있다면 차라리 너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면 땡이야. 얼마나 편해? 근데 그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기대하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어. 너도 집에서 그렇겠지만 당장 내 어머니만 봐도 그래.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지는 않더라도 어머니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연이는 수연이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대로 해 주기를 기대하고. 일터에서는 일터대로 또 나한테 주어지는 역할들이 있으니 나는 또 그걸 연극배우처럼 연기해야 하고. 그게 현실이라는 거야.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사는 게 왜 이리 좆 같은지.”


    승기는 남은 맥주를 한입에 들이키고 내 앞에 있는 찢어진 고깃점 하나를 손으로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미적지근해져 쓴 맛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허위허위 모임 꾸려 가며 활동하는 선배들 많아. 작년에 제대한 철호 형도 지방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고, 서울 지역만 해도 곳곳에 이른바 진보 일꾼들이 숨어 있다고. 억압이 있는 현장이 많은 만큼 그 억압과 싸우려 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러면 뭐 해. 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게 살고 있을 텐데. 철호 형 봐라. 총학생회장 선거 떨어지고 나서 여자랑도 헤어지고, 아직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 다닐 때 학점을 따 놓은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인제 뭐 하겠다는 거야? 운동도 좋지만 꼭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야 해?”


    “야,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직장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어. 일하는 시간에는 일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거야. 사회 단체나 진보 정당에서 일하면서 쥐꼬리 만한 활동비 받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고. 철호 형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지금 글 쓰겠다고 빌빌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젠장, 어떡하겠어?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밥만 벌어먹고 사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운동하는 거 아냐? 노동자들에겐 노동 운동이 자기 삶이 걸린 문제라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노동 운동이 일단 자기 삶을 책임진 다음에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고. 나도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삶과 내 시간과 내 마음들을 무작정 희생해 가면서 꼴아박는 활동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지 충분히 경험했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에 가입하게 될지, 학교 안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해.”


    나는 승기가 옷도 못 갈아입고 학생회실에서 먹고자며 밤이고 낮이고 회의만 하느라 새벽녘이면 머리가 부스스해져 노숙자처럼 되던 모습을 떠올렸다. 주위에서 승기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당당한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한총련 대의원은 힘들어 할 자격도 없다는 따가운 충고만이 전부였던 시절. 승기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난 후배들에게 항상 팔십 년대를 이야기했어.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고 팔십칠 년 노동자 대투쟁을 이야기했지. 막상 후배들한테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팔십 년대라는 시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후배들에게 팔십 년대를 기억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게 되게 우스워지더라. 넌 팔십 년대가 기억 나? 팔십 년 오월에 광주에 있었어? 팔십칠 년에 거리에 있었니? 난 팔십 년대에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던 꼬맹이였어. 광주든 뭐든 전부 다 나중에 책과 영상으로만 접한 것들 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나는 내가 마치 팔십 년대 정신을 몸소 겪어 본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난 항상 너무 쉽게 말하고 다녔어. 그리고 내가 겪어 보지도 못한 팔십 년대라는 시간에 항상 짓눌려 살았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열사 정신 계승? 4.19 정신 계승? 그런 것들 속에서 천년 만년 활동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대학 졸업하고 서른 넘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학생 운동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뭐 그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선배는 한 명도 없었어. 평생 대학생처럼 활동할 수 있겠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강철이 되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막상 강철이 되지 못하니 답답했겠지.”


    승기에겐 승기의 삶이 있었다.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처럼 남아 있는 승기의 삶이. 나는 뭐라고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던 승기가 손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번호판을 주물럭거렸다. 앞에 놓인 접시와 포크를 정리하면서 휴지로 입을 닦고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가 봐야겠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오래 보면서 한 잔 해.”


    “그럼 나도 일어나야겠네.”


    나는 승기와 탁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아직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참 잘들 차려입고 왔구나 싶어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이 갔다.


    샐러드를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주영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반갑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승기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주영이 있다.”


    “언제 왔지? 아깐 못 봤는데.”


    “가 보자.”


    주영이는 포크를 들고 웬 희한하게 생긴 작고 동그란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영이 앞에는 경애가 앉아 있었다. 둘은 나와 승기를 보고는 오랜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승기 오빠는 점점 대머리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병학 오빠는 가뜩이나 암울한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해요?”


    “넌 임마 기성 세대가 다 됐구나.”


    “피부 관리 좀 해라. 그게 뭐니?”


    승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고 경애도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가겠다며 가방을 들고 일어서 버렸다. 주영이는 접시에 잔뜩 쌓아 놓은 동그란 것들과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건 뭐냐?”


    주영이는 내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다섯 글자 정도의 알 수 없는 이름을 말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는 그냥 넘어갔다. 다른 곳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여기 것은 맛이 좀 별로라고 했다. 얄따란 껍질을 포크로 살살 벗겨내면 새하얀 알맹이가 나오는데 그걸 한입에 쏙 넣어 씨앗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먹고 씨는 뱉는 거라고 했다. 나도 하나 먹어 보았지만 찝지레한 맛이 싫어 금방 뱉어 버렸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근데 언제 왔어요?”


    “두 시 조금 넘어서 왔지. 너는? 사진 찍을 때 보니 없던데?”


    “늦게 왔어요. 식은 못 보고, 아까 광현이랑 신부가 피로연 장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할 때 처음 봤어요. 광현이가 오빠보다 일찍 결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피로연 장 벌써 돌았어? 왜 난 못 봤지?”


    “혹시 승기 오빠랑 저 구석에 앉아 있지 않았어요? 그쪽은 안 돌았어요. 지금 폐백실에서 폐백하고 있으니 나갈 때 한번 봐요.”


    “그런 걸 뭐 하러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다 허례허식 아냐? 결혼이라는 게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렇게 돈 처들여서 쇼를 할 필요가 어딨어?”


    “오빠가 연애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우리 예전에 지은이 언니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지은이 누나?”


    “지은이 언니 결혼할 때 예식장에서 식 올린다구 하니까 같이 여성 운동하던 주변 언니들이 그렇게 반대를 했대요. 결혼 제도라는 게 뭔지 알고도 그러냐, 너마저 돈 써 가며 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막 그랬다나?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혼례라는 형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죠. 근데 어디 결혼이 두 사람 마음만으로 되는 거예요? 양가 부모님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주변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친족과 다른 친족의 결합이기도 하니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지요.”


    주영이는 나에게 대거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배였다.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몸피에 안경을 쓰고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다니던 주영이는 언제나 나를 똑바로 보며 내 말을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따져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한 학번 후배인 주영이와 마주 앉아 내가 심심할 때마다 생각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놓기 좋아했고, 주영이는 내 말에 어딘가 헐겁거나 빠듯한 곳이 있으면 꼼꼼히 고쳐 주고 바로잡아 주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다른 후배들이 코대답도 하지 않고 넘겨 버리던 내 말은 주영이와 함께 있을 때면 활력을 얻고 제 뜻을 찾았다. 논쟁을 하다가 주영이에게 욕도 숱하게 얻어 먹었지만 주영이의 분석과 비판이 핵심을 비껴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건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결혼식 따위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쇼를 해야 할까? 성대한 결혼식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게 정말 이 세상 여자들의 꿈인 거야?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갖다 붙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일생에 단 한번이 아닌 게 어딨어? 지금 이 순간 흐르고 있는 일분 일초도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들인데.”


    “오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어쩌겠어요? 결혼은 제도로 굳어지기 이전에 풍습이었고, 풍습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막상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글쎄요, 어떻게 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


    “결국 또 현실이라는 건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놈의 현실.”


    “왜요? 요새 좀 안 좋아요? 뭐 하고 지내요 요즘?”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영이와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집에서 한숨만 쉬고 계실 어머니와 다시 마주하게 될 시간을 되도록이면 늦추고 싶었다.


    “일어날래?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


    “오빠가 웬일로 낮술 먹자구 안 해요? 차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주영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지난 연말에 한번 쓰러지구 나서 술 확 줄였다. 여기 와서도 맥주 한잔 밖에 안 마셨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나 저녁 때쯤에 약속 있어요. 오래 못 있는데.”


    “괜찮아. 아직 저녁 아니니까. 가자.”


    주영이와 나는 일어나서 폐백실 쪽으로 갔다. 고개를 살며시 뽑아 안을 들여다보니 쪽빛 한복을 갖춰 입은 광현이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무언가를 든 채 쩔쩔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광현이 쪽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나는 폐백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광현아! 형 간다! 봄 오기 전에 한번 보자!”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고 주영이는 팔꿈치로 내 허리를 찔렀지만 광현이는 고개를 돌려 밝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형, 잘 가요!”


    주영이가 황급히 나를 잡아 끌며 속삭였다.


    “오빠, 지금 폐백 하는데 뭐 하는 거예요?”


    “이런 게 다 추억에 남는 거야.”


    나는 주영이를 데리고 나와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2월답지 않게 아직 따스한 오후였다. 주영이가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횡단보도를 건너 어느 도너츠 집으로 들어갔다. 설탕과 초콜릿으로 뒤발을 해 놓은 알록달록한 도너츠들이 진열장마다 가득 쌓여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이 피둥피둥 찔 것 같았다. 곧 찾아올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느라 매장 안 이곳 저곳에는 신통방통한 모양을 하고 있는 초콜릿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주영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있는 의자에 외투를 벗어 놓았다. 가게 안은 손님이 별로 없어 음악 소리만 흐를 뿐 조용했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초콜릿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저런 초콜릿들은 진짜 비싸요. 전부 다 포장지 값이긴 하지만.”


    “내가 얘기한 적 있지? 발렌타인데이든 화이트 데이든 정욕과 상술의 은밀한 야합이라고.”


    “그건 오빠가 너무 오버하는 거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반드시 자본이나 상품이 필요한 건 아니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얘기가 다를 거예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안 줬다고 헤어지는 커플도 있으니까.”


    “그걸 문화적인 차이니 다양성이니 하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뭔가 좀 이상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거잖아? 돈이 있는 사람들만 뭐든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특권이지. 안 그래? 게다가 발렌타인데이가 강요하는 건 전형적인 이성애자들의 사랑이잖아?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낄 자리가 없어. 자본의 문제는 둘째 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도......”


    “됐어요. 뭐 먹을 거예요? 일단 먹으면서 얘기 해요.”


    주영이가 지갑을 챙겨 들며 일어섰다. 이런 도너츠 집에 평소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손님이 직접 판매대로 가서 주문한 다음 돈을 치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문한 것이 나오면 판매대 쪽에서 손님에게 알려 주는 모양이었다. 주영이와 나는 판매대 앞으로 가서 높은 곳에 붙어 있는 차림표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돈 없죠? 난 녹차라떼. 오빠는요?”


    “돈 없으니 너를 잡았지. 근데 뭔 놈의 메뉴가 전부 다 영어 투성이야? 커피 종류는 싫으니 그냥 국화차 먹을란다.”


    “오빠답네요.”


    주영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치르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주영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자기 돈으로 초콜릿 사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건 완전히 온 나라의 명절처럼 여겨지고 있잖아.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초콜릿을 사려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는 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야. 내가 내 돈으로 초콜릿을 사는 건 소비 행위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초콜릿을 산다는 건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요? 자본주의? 물신주의? 그리고 그런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만 원 이만 원 하는 비싼 초콜릿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빼빼로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겠죠. 재미로 말예요. 초콜릿 사는 사람들이 무분별한 소비 문화에 길들여졌다고 하는 건 결국 이 모든 상황이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소린데, 그러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초콜릿을 떼지어 사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이며 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돈지랄 하면서 비싼 초콜릿 사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초콜릿의 가격을 문제 삼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가격이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에 초콜릿을 산다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초콜릿 만드는 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겨. 초콜릿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발렌타인데이 한참 전부터 요란뻑적지근하게 광고를 때리고. 초콜릿을 사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야.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궁금한 거야. 도대체 뭐가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까? 농담으로 정욕과 상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정말 그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이성애자들끼리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밑그림이 발렌타인데이에서 빠지게 된다면 초콜릿은 훨씬 덜 팔리지 않을까?”


    “흠.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오빠처럼 하는 말 들으면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하겠죠. 그냥 초콜릿 하나 사서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젠장, 그럼 내가 이상한 거야?”


    가게 문이 열리고 왁자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 한 떼거리가 들어왔다. 다들 내 나이 또래 같았지만 양장을 날렵하게 차려 입은 매무새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한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 보니 아까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여자였다. 신부 쪽 친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신부 쪽 사람들인가 봐. 저 빨간 가방 메고 있는 여자 보이지? 아까 부케 받았어.”


    그들은 우리를 지나 가게 깊숙한 곳으로 가서 탁자 다섯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고즈넉하던 가게 안이 갑자기 우꾼해졌다.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는 종소리가 들렸다. 각자 시킨 것을 앞에다 두고 주영이와 나는 다시 마주 앉았다.


    “저 사람들 좀 봐.”


    “왜요?”


    “하나같이 말끔하고 고상하고 모범생처럼 보여. 옷도 반들반들 좋은 걸로 차려입었고. 신부가 학교 선생님이었으니 저 사람들도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정도 되는 일을 하고 있겠지?”


    “그래서요?”


    “글쎄. 그냥 저런 사람들 보면 진부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진부한 삶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 시달리는 사람들. 대학 나와서 졸업하고 취직한 다음에 돈 벌어 결혼하고 집 사고 자식 낳아 가정 꾸리고 계속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만 벌면서 살겠지?”


    “그게 나쁘다는 거예요?”


    “글쎄. 좋고 나쁘다는 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난 그냥 사람들이 너무 비슷비슷한 삶을 살려고 기를 쓰는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진부해. 광현이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만나던 광현이와 많이 달라져 있겠지? 아직은 기간제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정교사 되면 월급 차곡차곡 모아 가며 다른 것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겠지. 동기들이랑 만나면 더 이상 옛날처럼 민중 생존권이나 반전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그을림 하나 없이 말끔한 저 얼굴들을 봐. 손도 펜이나 잡아버릇했을 테니 보들보들하겠지.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어떤 계급적인 위치에 있는지 저 사람들은 가끔 생각이라도 할까?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더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가질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뜨적뜨적 말을 늘어놓다가 문득 고개를 제자리에 두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주영이가 있었다.


    “오빠, 저 사람들 잘 알아요?”


    “아니.”


    “저 사람들 삶이 어떤지 모르면서 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 뭐예요?”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주영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예전과 하나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저 사람들의 삶을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 그게 전분가? 그래.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때가 있어. 저 사람들은 또 어디서 어떤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구 말야. 하지만 그것도 내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드는 생각이겠지? 그건 나두 알아.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계급이라는 게 있어.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산다는 말로 간단히 뭉뚱그릴 수 없는 계급성.”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오빠가 말하는 대로라면 이 세상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라는 건 사회 속 갈등의 모양을 분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삶을 사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옷차림과 생김새만으로 멋대로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놀고먹는 한량들이 아닌 이상에야 다 노동자일 테고, 그럼 생산직 노동자냐 사무직 노동자냐 하는 것으로 구분해야 하나요? 나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그럼 화이트 칼라 노동잔가? 오빠는...... 오빠 아직도 그 학원 나가요?”


    “응.”


    “그럼 오빠도 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화이트 칼라네. 근데 그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제 말은, 계급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구분을 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구분이어야 하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저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엔 쫙 빼입고 왔지만 알고 보면 오빠랑 나처럼 쪼들리는 형편일지도 몰라요. 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생산직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밥 굶고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계급을 이야기하자는 게 착취 당하고 있는 계급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착취하고 있는 계급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점쟁이처럼 저 사람들의 삶은 어떨 것이다 뭐 이런 짐작이나 하자고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거 오빠도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나는 뜨거운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이 속을 덥혔다. 시큼털털한 차 맛이 입안 깊숙한 곳까지 남았다.


    “알지. 알아. 근데 말이야. 그럼 어차피 같이 살아 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테니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알지도 못하는 저 사람들을 겨냥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계급이란 분명 존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겠지만 어쨌든 억압 받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단 말야. 무엇을 위해서 계급을 구분하냐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붙이면 이상한가? 우선 나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데.”


    “오빠. 왜 슬쩍 피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겉모습만 보고 재단하려는 오빠의 시선을 말하고 있었어요. 광현이 얘기두 그래요. 저도 광현이랑 정말 가끔씩 연락 주고받고 사느라 요새 광현이가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광현이가 재수했으니 오빠랑 동갑이죠? 이제 스물 아홉인데. 집도 어려운 녀석이 서울에서 기간제 하면서 낑낑대며 살고 있어요. 오빠는 예전부터 말한 것처럼 임용고사라는 교사 양성 과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광현이에게는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자기 몫을 하며 사는 게 생활이라는 것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라요. 오빠가 전에 저한테도 그랬잖아요?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우선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기억 안 나요?”


    주영이는 논설문 쓰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듯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옷 입고 잠 자고 술 먹고 책 보던 털털한 녀석이었지만 의외로 수줍음이 많았다. 동기들이 전부 다 과 학생회장 자리를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지만 않았어도 주영이가 학생회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단독 후보로 선거에 나간 주영이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일 년 동안 고생했고, 그 이듬해엔 경애와 함께 짝을 이루어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시 휴학생이었지만 주영이 선거운동본부에서 으밀아밀 참모 비슷한 노릇을 했고, 사범대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던 승기와 함께 선거 기간 내내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가 누굴 왜 뽑는 선거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투표율은 매년마다 오십 퍼센트를 간신히 넘기는 편이었다. 오십 퍼센트를 넘지 못하면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했다. 주영이와 경애가 사범대 신관과 구관 강의실들을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도 투표율은 선거 마지막 날 해거름까지 사십구 퍼센트 후반에서 머뭇거렸다. 승기와 나는 애가 끓었다. 선거를 다시 치르자니 그 많은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했다. 십여 명만 더 투표를 하면 되는데 투표소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했고, 결국 선거를 밤 아홉 시까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들고 중앙 도서관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사범대 학생들에게 다가가 표를 받았다. 간신히 오십 퍼센트를 채우고 나서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투표소 앞에 가져다 놓고 한동안 얼싸안았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주영이는 경애와 함께 사범대 학생회를 책임지며 일 년 동안 각다분하게 살았다. 집에다는 사범대 학생회장이 고등학교 학생회장과 비슷한 자리라고 둘러대었다고 했다. 일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학생회장 임기도 다 끝나자 주변에서는 주영이에게 중앙 조직으로 가서 더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을 비쳤고 후배들은 아예 주영이가 임용고사를 포기하고 중앙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곧 4학년이 되는 주영이는한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오래 고민했다. 내게도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군말 없이 답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학생 운동이고 뭐고 그 전에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대학생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결국 주영이는 총학생회실에 가서 가끔씩 대자보나 현수막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것 말고는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마음 넉넉한 선배들은 주영이만 보면 힘내라고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지만 이제 막 2학년으로 올라가는 후배들은 대놓고 섭섭하다는 말을 하며 주영이에게 세모눈을 떴다. 어떤 녀석은 변절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처먹으며 방황을 하던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찾아가 주영이를 불러내 밥을 얻어먹으며 아직도 뭘 모르는 후배들을 싸잡아 욕했다. “걔들은 자기네도 죽을 때까지 대학생으로 사는 줄 아는 모양이지?” “괜찮아요. 솔직히 나도 좀 미안한데 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할 수 있겠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는 딴청을 피웠다.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휘저으며 픽 웃었다.


    “그때 오빠가 해 준 말이 난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걸 까먹었단 말예요? 어쨌든 그 말을 곱새기면서 결국 나 재수에 삼수까지 해서 붙었어요. 다른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어요. 직업적 혁명가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겁이 많았고, 승기 오빠나 철호 오빠처럼 살 자신도 없었어요. 일단은 졸업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다 변명 같긴 하지만.”


    “.........”


    “광현이도 분명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겠죠. 꼭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기간제 선생님이니 아직은 전교조에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오빠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노동 운동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운동만이 중심 운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니죠? 내가 아는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많이 가게 됐고, 거기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 글을 써도 노동자들 이야기만 쓰다시피 했지. 이 세상엔 비정규직 노동자들 말고도 아프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몸뚱이는 하나였어. 변명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낸다고 해도 동시에 두 집회를 나갈 수는 없었거든. 그동안 많이 만나 온 사람들이 노동자들이고, 보고 들어 온 것들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어떻게 탄압을 받고 있나 하는 것이었으니, 글쎄, 나도 어느새 시야가 좁아져 버린 건가? 매끈하게 잘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꼭 그런 사람들일 것만 같아. 광현이도 그렇게 변해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


    “오빠도 광현이도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뭐.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야금야금 홀짝이느라 어느새 다 비운 잔을 들고 판매대 앞으로 가서 물을 더 받아 왔다. 뜨끈한 물 위에서 국화 꽃심들이 물방개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주영이는 그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오빠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는 전부터 듣긴 들었어요. 무슨 글을 써요? 집회 기사 같은 거예요?”


    “기사도 아닌 것이 르포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나도 내가 뭘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지난 한 달 동안 몸 아프다는 핑계로 거의 안 썼어. 뭘 써도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짜증나기도 하고.”


    “집에서는요? 뭐라고 안 그래요?”


    “집? 뻔하지 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럴 수밖에요. 오빠도 이제 곧 서른인데. 학원에선 얼마 못 받는다구 했었죠? 슬슬 결혼하라는 압박도 있을 테고. 집에서 걱정 많이 하시겠네요.”


    지금도 거실에 누워 한숨만 끙끙 앓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혀를 쯧 차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다.


    “걱정만 하시면 좋게?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내 삶이 하나도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셔. 이십대에 내가 뭐 하나 해 놓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늘 말씀하시거든. 나도 내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지난 십 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나날들은 아니었을 거 아냐? 어머니가 원하는 건 결과물이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 물질적인 성과물.”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오빠 뿐예요?”


    “아니. 내 동생도 알바 하면서 벌고. 아버지도 가끔씩 찔끔찔끔 가져다 주시는 것 같긴 해. 내가 버는 건 푼돈이고.”


    “집에서는 오빠가 글 쓰며 다니는 거 아세요?”


    “그럼. 나 놀고만 있지는 않수 하면서 인터넷 매체에 글이 올라가는 족족 보여드렸거든. 처음에는 신기해 하시더니 이제는 그런 위험한 글들 그만 쓰라고 난리셔. 언제까지 비정규직이 데모하는 데만 쫓아다닐 거냐고.”


    “저는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겉으론 학교 잘 나가고 있으니까 집에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만, 사실 학교에서 제가 나름대로 뭔가 활동을 해 보려고 해도 저도 이제 겨우 3년차 되는 선생이라 그런지 자꾸만 몸을 사리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촛불 집회 할 때도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래 나가서 밤도 새우고 아침에 학교 오는 것 같았는데 교무실에서는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 집회 못 나가게 엄중히 단속하라고 하고. 선생님들끼리도 눈치 보이니까 같이 나가자는 말도 못하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왜 지금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 왜 십대 청소년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이랑 이야기 한 번 못하고 여름이 다 가 버렸어요. 어떤 선생님은 교실 뒤에 촛불 집회에서 받아 온 유인물을 붙여 놨다가 교감한테 호되게 야단 맞았어요. 저는 작년만 해도 2년차 교사였고, 솔직히 징계가 무서웠어요.”


    “근데 너는 촛불 집회 많이 나갔잖아. 시청 앞에서 나랑도 우연히 많이 만났고.”


    “저 혼자 그런 거죠. 제 성격이 원래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거 오빠도 알잖아요. 근데 집회에 나가면 혹시 아는 선생님들과 만나면 어떡하나 하는 것부터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우리 엄마 아빠랑 언니는 촛불 집회고 뭐고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한우 값 안 떨어지게 하려고 이익 단체들이 집회 하는 거라며 늘 구시렁대기만 하고..... 근데 어느 날인가 한우 값 얘기를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아빠는 딸이 촛불 집회 나가는데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냐고 말해 버렸죠. 그때가 한창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촛불 시민들이랑 전경들이랑 싸우던 시기였는데, 그 말로 들통이 나서 한동안 주말에는 집 밖에 못 나갔어요. 저도 개학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고.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다가 가을도 다 가 버렸고. 금방 방학이 왔어요. 얼마 전에 용산에서 철거민들 돌아가셨잖아요. 거기도 아직 못 가봤어요. 뉴스에 집회 장면 같은 게 나오기라도 하면 집에서는 그런 데 가지 말라고 선수를 쳐요. 새 학기 준비해야 하니 요새도 정신이 없고..... 제가 오늘 저녁에 누구 만나는 줄 알아요?”


    “남자 친구라도 생겼어?”


    “그러면 좋게? 형렬 오빠 만나요. 얼마 전부터 저를 계속 꼬시려고 했는데 오늘 담판을 지으려는 모양이에요.”


    “형렬이 형이 꼬신다면 딱 하나밖에 없는데?”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생긋 웃었다.


    “맞아요.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부 같이 하자는 거. 저 아직 조합원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선생님 되고 나서 탈당했어요. 우리 학교엔 전교조 선생님 한 명도 없는데 제가 덜컥 조합원이 돼 버리면, 글쎄,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나서 학교 쪽 분위기 안 좋은 거 오빠도 알잖아요. 처음에 형렬 오빠한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학교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 다음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사리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싫었어요. 대학 다닐 땐 안 그랬는데. 아이들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도 하나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젊은 시절 다 보내 버리면, 나중엔 수업만 대충 끝내고 노는 늙은 선생님들 꼴이 될 거잖아요. 교장이랑 재단이 하라는 대로 설설 기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게 되는 그런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어요. 근데 막상 조합원이 되고 나면 학교에서 날 어떻게 볼지 무섭기도 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니 이중적이 돼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속하는 사람은 사실 없어. 학원이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고. 집에서 날 닦달하는 사람은 어머니 하나 뿐인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그냥 내가 뭘 하든 지켜보실 수밖에 없지. 근데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날 봐도 전혀 웃지를 않아. 벌써 오래됐지. 그러고는 가끔씩 한밤중에 날 불러서 너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냐, 너 때문에 내가 세상 살기가 싫다, 그런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 놓으셔. 글 쓰는 일은 거지 되기 딱 알맞은 일이라 생각하시는데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우리 어머니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은데, 문제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방식을 내게 자꾸만 강요하고 있다는 거야. 나에겐 내 삶이 있는데 말야.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엄마랑 같이 죽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그렇게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릴 거면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기술이에요? 기술 배우면 다 성공해요?”


    “그럼 어떡할 거니. 다른 자식들은 네 나이쯤 되면 안정된 직업에 결혼까지 하는데 너는 어쩌려구 이래.”


    “그건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잖아요. 제가 왜 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해요? 그리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십 년 늦게 출발하면 십 년 더 오래 살면 되는 거 아녜요?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결혼하면 뭐 해요? 하나같이 다 불행해지던데.”


    “그럼 글 쓰면서 먹고살겠다고? 그게 말이 되니? 글 쓰면서 먹고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되겠니? 넌 어쩜 그렇게 비현실적인 생각만 하니? 네 나이쯤 되면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니?”


    “비현실적이요? 지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현실이란 게 뭔데요? 대학원 가서 학위 받아 교수나 되는 거? 임용고사 쳐서 공립학교 선생님 되는 거? 아무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그놈의 안정된 일자리에 주저앉는 거?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마다 최선을 다해 겪는 시간들이 저마다의 현실이라구요. 현실이고 비현실이고 하는 건 없어요 어머니.”


    “그럼 넌 뭐 먹고 살 거야? 평생 나한테만 의지하고 살 거니? 내가 이때껏 부모 된 도리로 널 키워 줬으면 너도 이제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잖니. 의료보험비 못 낸지 일 년이 넘어서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에미가 보이지도 않니? 네 사촌 동생을 봐라. 한 번에 임용고사 턱 붙어서 그 나이에 벌써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너처럼 그렇게 살려면 사범대는 애초에 왜 들어갔니?”


    “알았어요. 돈 벌면 되죠? 이 모든 원인이 제가 다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거죠? 뭘 하든 돈만 벌면 되는 거죠?”


    “그런 소리가 아니잖니. 내가 언제 너한테 글을 쓰지 말라고 하든? 글을 쓰는 건 좋은데 너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니니. 학교 선생님 하면 틈틈이 시간도 많을 거구. 그 시간에 글 쓰면 되구. 임용고사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그래서 피하는 거야?”


    “임용고사 같은 걸로 좋은 선생님을 가려 낼 수는 없어요. 그건 그냥 시험지 받아 문제 푸는 거라구요. 그런 쓰레기 같은 지식들로 머리를 채워 가며 일 년 이 년 낭비하는 거 전 절대로 못해요. 어머니가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저도 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죠. 저도 글만 쓰고 다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살 생각 없어요. 저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밀린 의료보험비는 올해 안으로 내가 다 청산할 테니까.”


    “그 말을 내가 처음 듣니? 작년부터, 아니 제대하고 나서부터 넌 계속 그랬어. 근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뭐니?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글이나 쓰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비난하고, 이상한 모임이나 나가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니?”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삶과 제가 생각하는 삶은 달라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겐 저만의 방식이 있어요. 저도 글만 쓰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좀 지켜보세요. 같이 죽자는 말이 뭐예요? 나이 스물 아홉에 죽긴 뭘 죽어요? 저는 제 인생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가 너만 생각하면 이 세상 살기가 싫어져.”


    “그리고 그날 밤에 어머니가 기어이 무너지고 마셨지.”


    “무슨 일 있었어요?”


    “밤중에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으로 세간을 막 때려 부수시더라고. 그러고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시는 거야.”


    “그래서요?”


    “아버지가 뛰어나와 말리셨지. 나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고.”


    “........”


    “그래서 올해는 정말 기간제라도 뛰면서 돈을 좀 벌까 해. 집안에 보태기도 해야겠지만 우선 나부터 좀 독립해야겠어.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자취라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지.”


    주영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탁자를 두들겨 가며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밝은 표정으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왈칵 멱살을 틀어쥐고 사는 게 그렇게 재밌느냐고 을러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서 나와 똑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뒤로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주영이가 조심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꺼냈다.


    “......오빤 어머니랑 얼마나 자주 얘기해요?”


    “글쎄.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호출이 있어.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선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나지.”


    “여태까지 계속 그랬어요?”


    “제대하고 나서 일 년 정도는 잠잠했어. 작년 봄부터는 집회 쫓아다니느라 집에 붙어있질 못했고. 뭐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어머니가 시름시름 속앓이를 하셨지.”


    “.........오빠, 혹시 오빠 어머니의 꿈이 뭔지 알아요?”


    “꿈? 우리 어머니는 간호 대학을 나오셨어. 나랑 내 여동생이 자기 앞가림 할 나이가 되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보고 싶으시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지.”


    “오빠처럼 집안 문제 겪는 사람들 난 학교 다닐 때 많이 봤어요. 오빠도 많이 봤을 거잖아요? 승기 오빠도 그랬고. 스무 살 넘기 전까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었는데 얘가 대학 들어가자 노조니 민중이니 학생회니 하는 걸 대다수 부모님들은 견디지 못하셨죠.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면 어떻게든 서울에서 눈속임하며 활동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집안 문제가 어느 때고는 터졌어요. 저도 그래서 학생회장 할 때 집에서 뻔질나게 싸웠죠. 근데 저도 그랬지만, 집안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부모님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과 자신이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도 너무나 다르다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저도 아직까지 전교조 활동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부모님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어요. 물론 정말 내겐 소중한 분들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자꾸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안 할 수 없었어요. 근데 말예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나처럼 젊은 시절에 무슨 꿈을 가지고 살았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했을까. 세월이 흐르며 엄마와 아빠의 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진첩에서나 보는 젊은 시절 사진 말고는 엄마 아빠의 청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


    “난 항상 엄마와 아빠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반대 쪽 진영에다 놓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꿈 꾸는 것들과 절대로 화해할 수 없을 줄 알았죠. 근데 마치 장기 말이 서로 상대편을 향해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의 삶과 내 삶이 정말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일까, 엄마 아빠와 함께 삼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나는 엄마랑 아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는 항상 겉돌았어요. 나는 언젠가부터 내 생각을 엄마 아빠한테 들려드리지 않기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와서 엄마가 차려 주시는 밥 먹고 그냥 내 방에 들어가 나 혼자 놀았어요. 아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생각들이 아마 조금씩 자라 온 거겠죠. 난 그걸 알고 싶었어요. 엄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시는지. 아빠는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지. 내가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엄마와 아빠는 이제 철 좀 들라고 정말 나를 몰아세우기만 하실지. 서로 말도 해 보지 않고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 못박아 두기는 싫었어요. 엄마 아빠랑 대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아직도 깜깜하기만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엄마 아빠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주영이는 남은 녹차라떼를 빨대로 포로록 들이마시고는 휴지로 입 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아직도 뜨겁기만 한 국화차를 아무 맛도 모르면서 홀짝거렸다.


    “집안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던 후배들 생각을 요새 가끔 해요. 집에다는 대학생 국토 대장정 간다고 속이고는 한 달 동안 공장 가서 생활하던 후배 생각도 나고....... 연희는 사범대 학생회 활동하다가 들켜서 아버지한테 머리도 잘리고 뺨까지 맞았잖아요. 근철이도 감옥 갔다 나와선 아버지와 허구한 날 싸우면서 힘들어 했고. 다 그랬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속 썩이고 있거나 아니면 마음 고쳐 먹고 효자 노릇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날까요? 근데 정말 꼭 그렇게 둘 중 하나로밖에는 될 수 없는 걸까요? 불효자 아니면 효자? 그런 극과 극이 아니라 뭔가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도 나도 쉽지 않은 현실을 함께 살아가면서 비슷한 병에 걸린 건데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조금 다를 뿐인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어차피 내가 아프면 가장 많이 걱정해 줄 분들이 우리 엄마 아빤데.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집에 들어가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에이, 참.”


    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누른 채 팔꿈치로 탁자를 짚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아버지는? 늘 밤 늦게 들어오셔서 방에서 혼자 TV를 보시다가 라면을 끓여 드시는,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어딘가로 나가시는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면 나는 또 다시 무거운 한숨과 침묵 앞에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겠지.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나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에게조차 당당히 내세우기 힘든 삶이다. 어째서 그럴까? 어머니와 내가 달라서일까?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단지 내가 내 생활을 제대로 꾸려 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고, 안 그러면 계속 옛날 일만 쓰게 된다고, 성훈이 그 자식이 그랬지. 젠장. 그 자식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니, 걔만큼 날 잘 아는 놈도 없었지. 비슷한 병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어머니, 엄마.......


    나는 안경을 쓰고 남은 국화차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미지근해진 찻물을 담뿍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목으로 넘기니 알싸한 국화 향기가 입안에 남았다. 주영이가 앉은 뒤로 이름 모를 단발머리 아가씨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아가씨와 아이들은 그대로 멈추어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치어다보기 좋았다. 나는 나오는 대로 지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예식장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지하철 역 출구에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를 만났지. 아무 말도 없이 불쑥 전단지를 내미는 통에 나는 무슨 전단진지도 모르고 그걸 받았어.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그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불쑥불쑥 전단지를 내밀고 있는 거야. 어차피 신장개업이니 뭐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전단지였고, 엉겁결에 받아 쥔 사람들도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냥 버리거나 쓰레기통에 처넣었어. 하지만 할머니는 일단 자기 손을 떠난 전단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듯 꿋꿋이 서서 줄기차게 사람들을 향해 전단지를 불쑥불쑥 내밀었지. 그 전단지 한 장에는 어쩌면 집에서 혼자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주한테 주는 밥 한 숟갈이 걸려 있었을지도 몰라. 한 장에 한 숟갈, 두 장에 두 숟갈.......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할머니는 겨울 한낮에 바깥으로 나와 품을 팔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주영아. 내가 쓰는 글이 그 할머니가 불쑥 내밀던 전단지보다, 아니, 그 전단지만큼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쓰는 글은 아무에게도 따뜻한 밥 한 술 되지 못해. 따뜻한 밥이 뭐야? 찬밥 한 덩이라도 되면 다행이겠지. 내가 끙끙거리며 기껏 글 하나를 싸질러 놓으면 그 즉시 냄새가 풍겨. 지당한 말씀 늘어놓는 걸 누가 못하냐, 결국 너 잘났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냐, 너 혼자 읽으려고 이런 걸 썼냐, 뭐 그런 구린내가 풍긴단 말야. 난 남들한테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창피해. 어머니한테도.”


    “......”


    “우리 어머니는 몸이 약하신 분야. 명절마다 내키지 않는 큰집 뒤치다꺼리를 하고 돌아오시면 며칠은 앓아 누우시지. 몸이 약하셔서 어디 일하러 나가시지도 못해. 몸만큼 마음도 약하셔서 친척들한테 내 험담이라도 들은 날에는 몇 날 며칠을 그 얘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셔. 작은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심란해 하시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 뭔지 잘 알아.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꿈을 늦게라도 이루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언제나 생각에서 끝나지. 어머니의 꿈은 내 어린 날들에 저당 잡혔어. 지금도 어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꿈은 고스란히 내가 저당 잡고 있어. 한평생을 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이란 말야.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내 꿈을 이루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꼴이야. 몸도 마음도 앓고 계신 어머니한테. 돈 좀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게 되면 잔소리도 한숨도 듣지 않게 될 테니 속은 편해지겠지. 그래. 하지만.......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 자신과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들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도 생활일 거야. 집에서 살든 나가서 살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글쓰기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난 결국 모든 것에서 도망치게 될까? 아니면 뭔가 하나라도 붙잡게 될까?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 하지만 도망치는 삶은 죽는 것보다 싫어.”


    말을 맺고 고자누룩해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영이는 갑자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뒤틀었다. 하품을 하면서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는 널려 있는 휴지들을 그러모아 탁자 밑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고서 나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요. 내가 뭘 알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하든 알아서 잘 살아 봐요. 오빠가 언젠 뭐 안 그랬나? 그리고 이젠 나이도 있으니 술 좀 줄이구요.”


    “네가 시작한 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딴청야.”


    “그나저나 어쩌죠? 형렬 오빠가 같이 집행부 하자고 할 텐데.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그냥은 못 빠져나갈 것 같아요.”


    “어쩌긴 뭘 어째.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내가 그랬다며.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풋. 오빠가 폼 잡으면서 그때 또 무슨 말을 한 줄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나 아직도 기억하구 있어요.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생활은....... 뭐?”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정말 까먹었어요? 누가 한 말이라고 했더라? 그땐 되게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레닌의 말이었다. 다이 호우잉의 소설책에서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주영이에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그게 벌써 언제적 일인데 그래.”


    “얼마를 살았다구 그렇게 늙은이처럼 말해요?”


    탁자 위에서 주영이의 손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손전화를 열고 뭔가를 조몰락거리더니 손전화를 다시 닫으며 주머니에 넣고 주영이는 외투를 꿰어 입었다.


    “형렬 오빠가 한 시간 뒤에 대학로에서 보자네요. 지금 일어나야겠어요. 오빠, 미안해요.”


    “미안할 거 없다. 차도 얻어먹었는데 뭐.”


    “서른 넘어서도 후배들 뜯어먹구 다니면 대머리 될 걸요?”


    “가발 사 달라고 하면 되지.”


    주영이와 나는 도너츠 가게를 나왔다. 따뜻한 곳에 오래 있다가 나와 보니 으슬으슬 추웠다. 참을성 없는 겨울 해는 벌써 가라앉으려는지 서쪽 하늘 부근에서 얼쩡거렸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강남의 고층 건물들은 눈치도 없이 주홍빛을 잘라 먹었다. 어딘가로 정한 곳 없이 가고 싶었다.


    “가라.”


    “오빠두 잘 가요.”


    주영이와 나는 별 말 없이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무슨 계기로 또 만나게 된다고 해도 주영이와 나는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이였으니.


    나는 코엑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리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지하철 삼성 역 가까이 다다르니 우람한 몸집으로 버티고 앉은 현대 백화점이 보였다. 일요일 해거름이라 그런지 길거리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나는 연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듯 최선을 다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월요일을 앞둔 자동차들은 험상궂어 보였다.


    코엑스몰은 재래시장 못지않은 뜨거운 기운이 넘쳐 났다. 노동에서 나오는 열기라고 하기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상품들과 상품들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어느 서점으로 들어갔다. 책꽂이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의 이름을 건듯건듯 훑었다. 무슨 놈의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평생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책만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것 같았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 읽으면 백 살이 넘을 텐데 백 살 넘어서 좋은 사람이 되면 무엇 할까를 생각했다. 역시 내 나이엔 책 말고 다른 더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집이 꽂혀 있는 서가 앞에 주저 앉아 이것 저것 꺼내 읽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저리면 일어났고 다리가 아프면 다시 앉았다. 배가 고파져 손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표지 색도 예쁘고 시인 이름도 예쁜 시집을 한 권 들고 값을 치렀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어둑어둑해진 사위엔 사람이 만든 불빛들만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 불빛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작정 발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얼음판처럼 맨송맨송한 보도블록 위에 가로등이 늘어뜨린 내 그림자가 얹혀 따라왔다. 얼마쯤 걷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니, 내 생활과 다시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아파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달덩이 같은 전등 하나가 달린 어느 건물 입구에 기대어 섰다. 길거리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산 시집을 꺼내 펴 들었다. 대강대강 넘기며 눈어림으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 편을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시를 썼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토마토 하나를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물이 뚝뚝 묻어 떨어졌다. 버찌처럼 둥글고 조그만 것들이 포탄처럼 허공에서 붉게 터졌다. 무언가가 엎어지고 쓰러지며 우당탕 소리를 냈고, 우우 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둥글고 조그만 것들은 점점 많아지며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하늘 위에서 자꾸만 붉게 터졌다. 광현이, 성훈이, 승기, 주영이의 얼굴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녔다. 터널 같은 것이 보였다. 아, 이제 그만 좀 던져! 나를 못 맞히고 빗나간 토마토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혀 퍽퍽거리며 터졌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다시 넘어지는 것들은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덩실덩실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녔다. 터널 안쪽은 하나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라보는 그쪽에 출구가 뚫려 있었다. 눈앞에 거울 하나가 둥실 나타났고 그 안에는 내 얼굴처럼 생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토마토를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어머니처럼 생긴 내 얼굴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어서 저기 보이는 출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따라와. 우리가 매일 뭘 했는지 가르쳐 줄 테니. 살아있는 한 말이야. 우리는 뭔가를 하게 돼 있어.


    고개를 들었다. 오렌지를 한입 베어 먹은 듯 입안에 시큼한 침이 흠뻑 고여 있었다. 나는 목울대를 크게 휘저어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한껏 벌리고 차가운 밤 공기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하하하
    2009.03.30 10:21 내용을 입력하세요 gsh_lsy_sky
    2009.05.13 20:52 내용을 입력하세요 gsh_lsy_sky
    2009.05.13 20:52 저, 제가 좋아하는 책이네요 ㅎ

    이 책 제가 추천합니다. ㅎㅎ

    저 에덴의동쪽에 나온 한지혜입니다.ㅎ

    에덴의동쪽 사랑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리구요,

    응원해주세요 ! 한지혜
    2009.06.02 21:30 내용을 입력하세요 씨발
    2009.06.02 21:30 기사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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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밤

    많은 활동가들이 부모님과의 관계맺음으로 인해 힘겨워합니다. 저 역시도 부모님을 제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래서 제가 버려야 할, 떠나보내야 할 존재로만 생각했었는데..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으로 울고 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skse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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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현실이라는 마음의 병 (2)
    박병학 / 2009년02월23일 10시12분

    벌써 두 시가 다 됐는데 식은 시작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발 아래만 멀뚱히 내려다보며 걷는데 눈앞에 웬 네모난 것이 쑥 들어왔다. 지하철 선릉 역 출구를 막 나서는 중이었다. 네모의 한 귀퉁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샅에 끼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흰 등산 모자 밖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잔뜩 비어져 나온 할머니 한 분이 옆구리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낀 채 한 손으로는 울긋불긋한 전단지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할머니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리기도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켰다. 이 할머니는 전단지 한 장에 얼마씩 받으실까? 그 돈으로 누구를 먹여 살리실까? 내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드실까? 어차피 전단지가 자기 손을 떠나는 족족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엉겁결에 한 장을 받아 쥐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니 내 뒷사람들은 할머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재우쳐 갔고, 할머니께서는 들이민 손을 그때마다 군인 같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윗몸을 벌겋게 드러낸 남자가 갑각류의 우둘투둘한 외골격 같이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질을 과시하며, 무겁게 보이는 역기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여는 헬스 클럽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신다는 내용이 미끈한 글씨체로 전단지 구석구석에 쓰여 있었다. 성형외과와 헬스 클럽이 유난히 득시글거리는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 몸 가꿈과 이젠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누구나 자기 돈 들여 자기 몸 가꿀 수 있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은 두 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뛰어간다 해도 빠듯했다. 더구나 식장은 4층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구겨 외투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찾았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신부 쪽 친구들이거나 후배 놈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이겠거니 싶었다. 승강기가 4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여자 둘은 서로 아는 사인지 모르는 사인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둘은 확고한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내 앞에 훤히 펼쳐진 떠들썩한 분위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찾기 위해 시골뜨기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축의금을 넣는 하얀 상자가 보였고 신랑 쪽 사람과 신부 쪽 사람이 제각기 책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후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식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식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장 밖에서 끼리끼리 뭉쳐 재깔거리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식장 안을 넘겨다보았다. 후배 놈은 신부와 팔짱을 낀 채 주례 선생님 앞에 서 있느라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례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식장 안 이곳 저곳에 매달려 있는 화면으로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비쳤다. 녀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담뿍 먹은 신부의 얼굴은 후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TV와 길거리에서 낯을 익힌 화장기 진한 여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화장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입고 있는 턱시도며 신부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혼례복이며 전부 다 진부하게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누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아는 얼굴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자 후배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늘 소문으로만 접하는 얼굴들과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해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얼떨결에 튀어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후배들은 나를 지나쳐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축의금 받는 곳을 바라보니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다 후배들이었다. 흰 봉투를 품 속에서 꺼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 후배들의 손은 하나같이 고와 보였다.


    차비 대는 것도 빠듯한 내 형편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이랍시고 봉투에 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전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삼아 사람들과 늦은 저녁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후배 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후배였다. 손전화에 찍혀 나온 이름 석 자를 보며 후배 녀석과 함께 망나니짓하며 놀았던 대학 시절을 샘물 움키듯 떠올려 보았다. 전화를 받자 녀석은 다짜고짜 다음 주 일요일에 강남에서 결혼한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형, 미안해요. 내가 먼저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잘 살라는 말은 안 한다. 잘 살라고 하는 놈들 다 그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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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현실이라는 마음의 병 (2)
    박병학 / 2009년02월23일 10시12분

    벌써 두 시가 다 됐는데 식은 시작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발 아래만 멀뚱히 내려다보며 걷는데 눈앞에 웬 네모난 것이 쑥 들어왔다. 지하철 선릉 역 출구를 막 나서는 중이었다. 네모의 한 귀퉁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샅에 끼어 조금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흰 등산 모자 밖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잔뜩 비어져 나온 할머니 한 분이 옆구리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낀 채 한 손으로는 울긋불긋한 전단지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할머니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 버리기도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켰다. 이 할머니는 전단지 한 장에 얼마씩 받으실까? 그 돈으로 누구를 먹여 살리실까? 내가 안 받으면 그만큼 더 힘이 드실까? 어차피 전단지가 자기 손을 떠나는 족족 몇 걸음 못 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계실까? 엉겁결에 한 장을 받아 쥐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니 내 뒷사람들은 할머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재우쳐 갔고, 할머니께서는 들이민 손을 그때마다 군인 같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윗몸을 벌겋게 드러낸 남자가 갑각류의 우둘투둘한 외골격 같이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질을 과시하며, 무겁게 보이는 역기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여는 헬스 클럽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신다는 내용이 미끈한 글씨체로 전단지 구석구석에 쓰여 있었다. 성형외과와 헬스 클럽이 유난히 득시글거리는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 몸 가꿈과 이젠 더 이상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누구나 자기 돈 들여 자기 몸 가꿀 수 있다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은 두 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뛰어간다 해도 빠듯했다. 더구나 식장은 4층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구겨 외투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는 다리를 재게 놀렸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거무튀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승강기를 찾았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둘이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신부 쪽 친구들이거나 후배 놈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이겠거니 싶었다. 승강기가 4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여자 둘은 서로 아는 사인지 모르는 사인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 둘은 확고한 걸음걸이로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내 앞에 훤히 펼쳐진 떠들썩한 분위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찾기 위해 시골뜨기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축의금을 넣는 하얀 상자가 보였고 신랑 쪽 사람과 신부 쪽 사람이 제각기 책상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어야 할 후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벌써 식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식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식장 밖에서 끼리끼리 뭉쳐 재깔거리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식장 안을 넘겨다보았다. 후배 놈은 신부와 팔짱을 낀 채 주례 선생님 앞에 서 있느라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례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었다. 식장 안 이곳 저곳에 매달려 있는 화면으로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비쳤다. 녀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담뿍 먹은 신부의 얼굴은 후배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TV와 길거리에서 낯을 익힌 화장기 진한 여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화장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랑이 입고 있는 턱시도며 신부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있는 혼례복이며 전부 다 진부하게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누가 내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아는 얼굴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자 후배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늘 소문으로만 접하는 얼굴들과 막상 마주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해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얼떨결에 튀어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 후배들은 나를 지나쳐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다. 축의금 받는 곳을 바라보니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다 후배들이었다. 흰 봉투를 품 속에서 꺼내 구겨질세라 조심스럽게 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 후배들의 손은 하나같이 고와 보였다.


    차비 대는 것도 빠듯한 내 형편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이랍시고 봉투에 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전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삼아 사람들과 늦은 저녁 밥을 먹고 나오는데 후배 놈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후배였다. 손전화에 찍혀 나온 이름 석 자를 보며 후배 녀석과 함께 망나니짓하며 놀았던 대학 시절을 샘물 움키듯 떠올려 보았다. 전화를 받자 녀석은 다짜고짜 다음 주 일요일에 강남에서 결혼한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형, 미안해요. 내가 먼저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잘 살라는 말은 안 한다. 잘 살라고 하는 놈들 다 그거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거 너도 알지? 광현이 네가 잘 살든 말든 하나도 상관 안 할 놈들이 꼭 입으로는 언죽번죽 잘 살라고 쉽게 말하잖아. 난 그런 말 못한다. 잘 살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저 네 선택을 존중할 뿐이야. 누가 알겠어? 얼마 못 가서 너 갈라설지도 모르잖아.”


    “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광현이는 웃으며 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청첩장을 보내 줄 모양이었다. 일요일 오후 두 시. 글쓰기 모임 일정 때문에 못 갈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결혼식 날에 보자고 광현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게 간 군대를 마치고 나와 보니 후배 녀석들은 죄다 자기 갈 길 가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었고, 한번 만나자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닌 나는 하나 둘 후배들과 멀어져 갔다. 군복을 입고 정기 휴가를 나왔을 때도 누구에게든 먼저 전화를 걸어 제발 좀 만나달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선배와 동기들은 먹고사느라 바쁠 테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만만한 게 후배들이었지만 후배들 역시 뭔지 모를 이유들로 하루하루가 빡빡할 것이어서 아마 나는 구차하게시리 시간 좀 거저 달라고 매달리는 거지 꼴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입대 전까지 살붙이처럼 가까이 지낸 광현이에게도 휴가 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광현이와는 두 학번 차이가 났지만 내가 2월 생이라 일 년 빨리 입학했고 광현이는 재수생이라 일 년 늦게 입학한 탓에 나이가 같아 술자리에서는 늘 나이 얘기가 우스개 삼아 안줏거리로 올라왔다. 비록 도중에 집어치우긴 했지만 녀석과는 <자본>을 함께 읽은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별의별 못난 꼴들을 속속들이 보여주느라 숫제 할말 못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녀석은 나보다 군대를 일찍 다녀왔지만 군생활 중에 휴가 나왔다는 연락 한 번 없이 고향인 청주에서 휴가를 다 보내고 슬그머니 복귀해 버리고는 했다. 다른 후배들은 녀석과 나를 하나로 묶어 ‘암울 형제’라고 불렀다. 술만 퍼마시면 어두운 표정으로 김광석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작 수컷처럼 자기 매무새를 멋지게 꾸밀 줄 알아야 정신 똑바로 박힌 대학생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대하고 나서 딱 한번 광현이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돌리던 때였다. 차마 통화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하기엔 낯뜨거웠는지 나는 몇몇 이들에게 손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광현이였다. 광현이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임용고사에 연거푸 떨어지고 난 뒤 서울대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기간제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돈 얘기가 사달이었는지 그 뒤로도 광현이에게 선뜻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러구러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느닷없이 연락하고선 결혼을 한다니. 분명 당사자에게 들었는데도 꼭 거짓말 같았다.


    집에 들어 와서도 나는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녀석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헤집어 보며 옛 생각에 젖었다. 녀석과 자취방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술 퍼먹으며 누구를 향해 어떤 불만을 쏟아 냈는지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인데 축의금을 못 줄 망정 뭐라도 하나 줘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다가 책이나 한 권 안겨 주기로 했다. 편지도 한 통 쓰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것만 같구나. 변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홀몸이던 네가 결혼을 하고, 일자리 없이 헤매던 승기가 기간제 자리를 구하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오래 갈 것 같던 연인들이 어느새 각자의 길을 가고....... 하지만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차피 사람의 기준이겠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라면, 새로 만나든 새로 헤어지든 막상 변했다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그저 일상이고 시간일 테니. 결혼이 일주일 남았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겠구나.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너한테 가끔씩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하면 너는 여자 친구 생겼다는 거짓부렁을 항상 지어내고는 했었지. 김광석 노래는 좀 부르니? 옛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했구나. 다른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떠올리면 이제 더 이상 팔 벌려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만 드는데,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결혼 축하한다는 진부한 말보다는 너의 선택을 믿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잘 살라는 말보다는 앞으로도 한결같이 너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공책에 괴발개발 쓰던 편지를 좍 찢어 구겨 버렸다.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책은 나중에 결혼식 끝나고 광현이 녀석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따로 한번 만나서 건네주기로 했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주례사는 금방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염없이 지루한 웅얼거림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식장 밖을 어슬렁거리며 낯익은 얼굴들과 시간을 때웠다.


    “어, 형! 오랜만이에요! 요새 뭐 하세요?”


    “나? 나야 뭐, 돈 되는 일 빼곤 다 하지.”


    낯익은 얼굴들이 거듭 나타나 내 손을 잡고 흔들었지만 대화는 이처럼 되풀이되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 모임을 꾸려 가던 녀석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녀석도, 소주 한 병을 누가 빨리 비워 내나 같이 내기하던 녀석도, 한 여자 후배를 두고 다투어야 했던 녀석도, 반년 정도 속으로만 좋아하고 고백 한번 못해 본 새침한 녀석도, 그 어떤 후배 녀석도 전혀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나마 편한 내 동기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좀 이상했다. 광현이와 꽤나 허물없이 지낸 동기 녀석들이 식에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식은 안 보고 벌써부터 피로연 장에서 처먹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식권을 받는다는 걸 깜빡 잊었다. 축의금 없이 식권을 받으려면 배짱이 필요하다. 나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축의금 상자가 놓인 책상에 다가가 식권 두 장만 달라고 했다.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식권을 주고 들어가는 피로연 장은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나는 혹시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봐 일부러 두 장을 달라 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식권 두 장을 주었다.


    주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들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모님들은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삼십 년 가까이 키운 자식이 마침내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게 되는 순간을 부모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슴앓이 탓에 잠을 못 이루시던 어머니는 한밤중에 일어나 서랍장 하나를 손가방으로 두들겨 부수려 하셨다.


    나이 스물 아홉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글 쓰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서서히 지쳐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보험 회사 상담원처럼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 계획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들려드릴 수가 없었다. 딱히 문예지에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쓸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시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길만큼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시험을 쳐서 지긋지긋한 공무원이 되는 길을 가느니 차라리 개똥이 널린 길을 낮은 포복으로 기는 게 나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교육학 교재들을 몽땅 외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임용고사부터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이 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집안 한구석에 음흉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나도 생활비를 옛 소련에서 식량 배급하는 만큼이나 어렵사리 대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몇 달마다 한번씩 생활비를 얼마간 가져오셨고 나는 조그만 보습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버는 푼돈을 쪼개 달마다 생활비랍시고 보탰다. 우리집에선 노량진에 있는 한 입시 학원에서 수업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 동생이 가장 많이 벌었다. 온 가족 의료보험비는 일 년이 넘도록 밀려 있었고 다른 공과금들도 몇 달에 한 번씩 전기나 수도가 끊기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겨우 냈다. 구질구질하다면 구질구질한 살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살림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모아둔 돈도 없었고, 어느 눈매 고운 여자 만나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숫제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내 형편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천하태평인가 싶었다. 물론 어머니는 나와 달랐다.


    현실이라는 것은 어느새 어머니 마음에 들어앉은 무거운 병이 되어 암세포처럼 어머니의 몸뚱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에 가기를 바라셨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 교수 자리를 꿰찼으면 하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회 현장이나 노조 천막을 돌아다니며 글 쓰는 짓거리를 그만 두고 어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 결혼도 해서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돈 안 되는 글쓰기 같은 건 집어 치우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보겠다고 헌걸차게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 쓰는 일로 벌어 먹고 살겠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무언가 일거리를 하나 잡고 생활비를 벌면서 글을 써야 하긴 할 텐데, 어머니는 최소한 학교 선생님 이상 가는 자리가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내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가장 많이 밥줄로 삼고 있는 직업을 고작 불합리한 공교육 제도의 노예 신세일 뿐이라 우습게 보게 되었다.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서른을 코앞에 두게 되자 어머니의 한숨에는 더 축축한 습기가 맺혀 나왔다. 에휴 어이고 하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 줄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조금씩 어머니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예전처럼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듣지 못했다. 구정 연휴 동안 큰집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사촌 동생, 고등학교에서 얌전히 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고 가슴에 뭐라도 얹히셨는지 명절이 끝나고 나서부터 내내 한숨 바람이셨다.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서 서점이나 시립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밤늦게야 슬그머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있으면 거실 마루에 누워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전,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잠을 못 이루시더니 느닷없이 이불을 차 버리고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을 들어 마루에 있는 서랍장에 마구 두들겨 대셨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려 뛰어 나가 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나와 어머니를 말리고 계셨다. 동생은 친구들과 먼 곳으로 놀러 가 집에 없었다. 내 한 팔로도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몸집으로 손가방을 서랍장 모서리에 쾅쾅 마구 짓찧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아 끌자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아 끄윽 끅 울음을 쏟아내셨다. 방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연신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는 쇳소리 섞인 울음을 그치지 못하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끊은 지 한 달째가 되어 가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정말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좀 벌어서 어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모르긴 해도 광현이와 신부 부모님들은 아마 행복할 것 같았다. 아들이며 딸이며 전부 학교 선생님으로 남 부러울 데 없이 키워 놓았고, 이젠 혼례까지 치렀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젠 손자를 바라게 될까? 광현이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할까? 차 사고, 집 사고, 우유 값 벌고, 좋은 선생님에 착한 남편 노릇하며 수더분하게 늙어가게 될까? 정말 그렇다면 광현이도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었다.


    신랑 신부 행진을 하기에 앞서 광현이의 동기이자 내 후배이기도 한 사회자가 신랑에게 짓궂은 장난질을 시켰다. 광현이는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린 채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식장 안은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거푸 팔굽혀펴기를 하고 “심봤다”를 몇 번이나 외친 끝에 광현이는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나도 식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광현이 눈에 잘 뜨일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광현이가 깜짝 놀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괜히 열없어져서 “너 머리가 그게 뭐냐? 양아치야?”라고 해 버렸다.


    행진이 끝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 신부의 친척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나갔다.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먹고 나온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사진은 됐으니 바로 피로연 장으로 들어가 배나 채울까 궁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승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뭐야. 지금 오는 거야?”


    “아니, 안에서 먹고 지금 나오는 거다.”


    “우리 동기들은 안 왔어? 안에서 처먹고 있는 거 아냐?”


    “없어. 안 왔다.”


    나이 서른에 이마가 훤히 벗겨진 승기의 뒤로 후배들 한 떼거리가 걸어 나왔다. 다들 먼저 피로연 장에서 배를 채우고 사진 찍을 때쯤 해서 나온 모양이었다.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까지 찍고 밥 먹기로 하고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후배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요새 뭐 해요? 돈 되는 일 빼고 다 한다. 그럼 연애도 하겠네요? 연애가 돈 안 되는 일이었나? 그럼요, 연애하면 돈이 얼마나 나가는데. 야, 그러려면 우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신랑 신부의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몰려 나온 빈 공간을 젊은이들이 거침없는 걸음새로 채우기 시작했다. 다들 예쁘고 새뜻하게 보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결혼식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가 있으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말끔한 정장 몇 벌쯤은 옷장 속에 쟁여져 있는, 굳은살 없는 손과 그을림 없는 얼굴을 가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들이 신랑과 신부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장을 몹시 싫어하는 나는 눈앞에 활짝 펼쳐진 정장들의 물결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젊은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어디론가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식장 바깥으로 나가며 승기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간제 구했다며?”


    “그렇게 됐다.”


    “야, 나도 어디 기간제 하나 구할 수 없냐? 돈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아야지 숨막혀 죽겠어.”


    “집에 엄마랑 둘이 있으면 분위기가 폭발할 것 같지? 나도 알지 그 기분.”


    내가 출근하는 학원은 승기가 꽤 오랫동안 맡아 하던 걸 내게 슬쩍 이어준 곳이었고, 승기는 그 뒤로 다른 학원들을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결국 임용고사 공부를 시작하며 강사 일을 정리해 버렸다. 어디서 공부를 하는지 승기는 그 뒤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임용고사가 있던 날 저녁에 승기는 내게 전화를 걸어 시험을 망쳤으니 일단은 기간제나 알아봐야겠다며 쓰게 웃었고, 그게 지난 세밑이었는데,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결국 기간제 선생님 자리를 하나 구한 모양이었다.


    “원래 학기 중에는 잘 안 구해지지 않아? 방학이나 돼야 자리가 날 텐데.”


    “학교마다 다르지. 여자 선생님 출산 휴가 때문에 기간제 쓰는 학교도 있고. 지난 한 달 동안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백 통도 넘게 출력했어. 원서를 좆 빠지게 내밀고 다녀도 잘 안 구해지더라. 요새 사립 학교들이 눈이 너무 높아져서 토익 점수니 학점이니 뭐니 장난 아니게 따지거든.”


    “너는 어떻게 구했는데?”


    “쑤시고 다니다 보니 운 좋게 된 거지 뭐.”


    “자기가 원서 들고 학교마다 찾아 댕겨야 하는 거야? 원서는 어떻게 넣어?”


    “경기도 교육청이랑 서울, 인천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구인구직란이 있어. 거기 보면 어디 어디 학교에서 기간제 구한다는 공고가 뜨거든. 그거 보고 내는 거야.”


    “그래......”


    막상 기간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했다. 기간제 자리를 덜컥 구해서 아침마다 출근하게 된다고 해도 꽉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을지, 어딘가를 취재해서 글을 쓸 수는 있을지, 책 읽을 시간은 날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필요한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 전부라 생각하며 부여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버려야 할 것이다. 피로연 장에 있을 술 생각이 났다.


    “너 밥 먹었다구 그랬지? 집에 갈 거냐?”


    “글쎄. 밖에 나가서 한 잔 할래?”


    “나 밥도 안 먹었어. 그러지 말고 너도 들어와서 2차로 밥 먹어라. 응? 안에 공짜 술도 있구.”


    “밥이 술이냐? 무슨 2차야? 나 식권도 없어.”


    “걱정 마라. 나한테 두 장 있다.”


    우격다짐으로 승기를 끌고 피로연 장으로 들어 갔다. 느끼한 음식 냄새가 금세 콧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는 과일을 몇 개 집은 승기와 함께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한산한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종이컵에 맥주를 붓고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에 쓴 물이 가득 괴어 올랐다.


    “아우, 써.”


    “웬일이냐? 결혼식에 와서 네가 소주를 안 처먹고?”


    “나 지난 연말에 술 때문에 쓰러졌잖냐. 1월 중순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았어. 오늘이 2월 8일이니까 술 안 마신지 한 달 조금 넘었네.”


    “너 술 마신 게 하루 이틀이냐? 얼마나 마셔댔길래 그래?”


    “글쎄. 한 반년 넘게 물처럼 마셨나? 작년 봄에 촛불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 이런저런 현장에 돌아다닌답시고 술만 처먹고 다녔지 뭐. 노조 천막에서 조합원들이랑 술 마시면 나 땜에 밤 새느라 다음날 노조 회의 하나가 작살이 났으니까.”


    “오늘은 마셔도 되는 거야?”


    “맥주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근데 오랜만에 마시니 술 맛을 모르겠다.”


    승기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 술을 마셨다. 수배를 피해 학교 학생회실에서 먹고 자던 추레한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수배가 풀린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때운 승기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다시 학교로 복학해서, 승기가 한창 때 대학 안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는 어린 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학내 조직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고, 나도 얼굴을 어릿어릿하게 기억할 뿐인 후배들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쉽사리 마음이 꺾였다. 팔십 년대 투사들이 구십 년대에 들어 방황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이른바 ‘후일담’ 소설들을 한때 염소가 종이 먹듯 마구 읽어 치운 적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 것들을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보며 조금씩 되짚어 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한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이던 녀석과 으리으리한 피로연 장에서 고깃점을 잔뜩 쌓아 놓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나는 이미 소설 속에서 숱하게 읽었다. 술에 얼근하도록 취하면 피로연 장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후배들 멱살을 잡아야 하는지, 어디에 털썩 드러누워 밤하늘 별을 쳐다보아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나는 죄다 알고 있었다.


    제대하고 나서 몇 번 나가 보았던 동기들 모임에서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혼과 집장만과 자가용과 대학원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동기들 틈에 끼어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어휘들을 속으로 주물럭거리며 줄담배를 피워 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 싫었다기보다는 내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감정들 자체가 너무나 진부하다는 것이 못 견디도록 싫었고, 이미 팔십 년대 작가들이 오래 전에 소설로 썼던 이야기들을 이제 와서 내가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사실 또한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돈 벌고 애인 만들며 안락한 삶을 향해 납작 엎드려 기어가는 다른 이들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 또한 점점 진부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어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라 만차의 기사 돈 키호테도 아니고 후일담이든 뭐든 소설에 쓰여진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었지만, 나 자신을 보고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거기서 거기인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물론 아직 삼십 년도 채 살지 않은 녀석이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다른 어떤 생각 못지않게 진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러다간 진부함이라는 터널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귤을 우물거리고 있는 승기의 하얀 양복 와이셔츠 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훤히 벗겨진 이마에는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머무르고 있어 눈이 부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고깃점들을 아구아구 입속에 처넣었다.


    “요새 뭐 하냐?”


    승기가 짐짓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오늘 하루의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돈 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내 대답에 그처럼 되물어 준 사람은 승기가 처음이었다. 나는 얼른 말을 잇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물거렸다.


    “글은 계속 쓰고 있냐? 글쓰기 모임 한다면서 거기엔 아직도 나가?”


    승기한테는 굳이 숨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 시간도 때울 겸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해 보기로 했다.


    “글이라. 글쎄. 모르겠다. 써도 써도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나 하는 생각밖엔 안 들어. 별로 많이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야. 모임에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구. 글을 쓰면 뭐 하냐. 읽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한 편 쓰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아니, 돈을 바라고 써야 하는 거 맞지. 내게도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근데 돈 나오는 글을 쓰려면 등단을 하든 뭘 하든 해서 글에 돈을 쳐주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생각은 있긴 있는데 들어갈 능력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능력은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앉아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정말 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다른 밥벌이를 해야 하나.....”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애들 알아?”


    “알지. ‘싸구려 커피’ 부른 인디 밴드 말하는 거지? TV에도 가끔 나오는 걸 보니 인디 밴드 치고는 꽤 알려진 모양이던데.”


    “장기하가 인터뷰하는 걸 보면서 너 생각을 했거든.”


    “뭐라고 그랬길래?”


    “기자가 좀 짓궂게 장기하한테 인디 음악 하면서 배고플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어. 장기하는 배가 고파도 자기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지 웬만하면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 ‘웬만하면’이라는 말이 걸리더라고.”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말이네. 견딜 만하니까 그러지. 나도 마찬가지야. 나 역시 아직까지는 ‘웬만하면’이야. 나 참. 아직은 누워 잘 곳은 있고, 밥은 안 굶고 다니니......”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고민 많고 글재주 있는 놈들 여럿 있었잖아? 학교 선생님으로 나갈 생각 전혀 안 하던 녀석들 지금은 전부 다 학교나 학원에 가서 애들 가르치고 있어. 사범대 나왔겠다 학력 되겠다 한 자리씩 잡으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살면서 보험 하나씩 들어두는 건 필요하긴 한가봐.”


    “어떤 놈들은 돈 많은 여자 친구를 보험으로 삼고 사귀기도 하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세컨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수연이는 잘 있냐?”


    “잘 있기야 하지. 돈 버느라 바빠.”


    “너희도 젊은 연인들 치고는 오래 가는 거야. 요새 누가 오래 연애하냐? 제깍 결혼하든가, 아니면 가망 없는 사람 등지고 딴 사람 찾든가 하지. 얼굴은 자주 봐?”


    “못 봐. 가끔씩 만나도 회사원과 백수라는 신분이 정말 다르긴 다른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 걔야 지금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지. 경력도 좀 되고. 나야 작년 내내 임용고사 준비만 했지 돈을 벌었냐 일을 했냐. 학원 하면서 벌어놓은 것도 거의 다 헐어 쓰고 보니 수연이한테 기념일마다 선물 챙겨 주는 것도, 날씨 좋은 날에 같이 놀러 다니는 것도,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 내 담뱃값 대는 것도 힘드니 말 다 했지. 학교 다닐 때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서 떡볶이 같은 것도 같이 맛나게 잘 먹었는데, 이제는 그런 데는 구질구질해서 싫대. 길거리를 가면서도 비싼 옷이나 액세서리 파는 데에서는 한참씩 있다가 가고......”


    “사랑은 마음만으로는 안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임마. 마음만으로 되는 게 이 세상에 어딨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수연이와 내가 자꾸 조건이 안 맞아가고 있다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뭐가 사랑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에 조건이라고 해 봤자, 결국 돈밖에 없잖아.”


    “돈이 아니라 현실이지.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돈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뜻해. 연애도 못하는 너는 모를 거다.”


    나는 수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하얀 얼굴에 똘방똘방한 눈으로 항상 웃고 다니던 수연이는 승기가 공익근무요원 노릇을 할 때 과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승기와 사귀게 된 후에 수연이는 어느 날인가 승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하던 시간들이 너무나 후회스러워요. 그 시간에 공부를 더 못 한 게 두고두고 안타까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암, 그럴 수 있지. 조직이란 건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까딱 잘못하다간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할 일은 태산 같이 쌓여 있는데, 바꾸고 고쳐 나가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주변 사람들은 좀처럼 거기엔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항상 몇몇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술꾼이 되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힌 우등생이 되기 일쑤였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대학생다운 ‘낭만’이라는 것을 넉넉히 누린 것도 아닌 어느 졸업생이 금테 둘러진 대학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집안 사정도 몹시 어렵다면?


    꿈 꿀 수 있는 여지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현실과는 어떻게든 화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놈의 현실이란!


    “예쁘지만 가난한 여자는 자기의 몸값을 제대로 알지. 그래서 잘생겼지만 돈 없는 남자 아니면 못생겼지만 돈 많은 남자를 골라. 못생겼지만 돈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야. 어딘가 흠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게 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더라. 결혼도 어차피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손해를 보려구 하겠냐? 내가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니 돈이라도 많아야 할 텐데 나이 서른에 아직도 시험 준비하랴 기간제 구하랴 빌빌대니까 당연히 성에 안 찰 수밖에.”


    승기는 맥주를 샘물 먹는 소처럼 벌컥거리며 쭉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동화책이나 소설이나 드라마 보면 조건 같은 거 안 따지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많이 나오잖아? 그거 다 개소리야. 책이나 TV에 나오는 남녀는 죄다 미남 미녀들이니 일단 외모라는 조건에서는 서로 들어맞는 거지. 나머지는 작가들이 다 알아서 쓰는 거고. 항상 결혼에 골인하거나 부자가 되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나오는 거 봐. 현실에서도 똑같아. 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결국 조건 아니면 돈이야. 자기 조건 제대로 아는 눈치 빠른 사람은 자기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돼 있어.”


    나는 승기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시절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더라. 민중 생존권 쟁취와 학원 자주화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라크 전쟁 반대와 노동자 농민의 정치세력화와...... 하긴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보다는 차라리 승기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차라리 더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도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승기의 말을 받았다.


    “사실 조건이라는 것을 따지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냐. 오히려 피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일단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고를 거잖아. 그거부터가 이미 조건을 따지자는 건데. 안 그래? 그러면서 조건은 하나씩 늘어가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얼굴이 흉측하게 생기지 않아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비슷한 취미가 있어야 하고...... 외모나 학벌이나 집안, 재산 같은 걸 속속들이 따지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 자기네 혈통을 관리해야 하는 엄청난 부자들이나 그런 것에 신경 쓰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있어 조건을 내건다고. 그리고 그렇게 내건 조건이 또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새로운 조건이 되고. 무엇 무엇이 마음에 든다고 할 때는 그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는 소리잖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어쨌든 문제는 말이야. 그 조건이라고 하는 게 우리들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얼마나 잠식해 가고 있느냐 하는 건데. 막말로 승기 네가 돈이 없어서 수연이 걔가 멀어져 간 거라고 쳐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거지로 나눠지는 건 아니니까, 아마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경제적 능력도 부자와 거지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 정도의 능력이겠지. 너는 그런 애매한 위치의 능력조차 걔를 위해 발휘할 수 없었다는 건데, 그것도 너의 잘못은 아닐 테구. 빌어 처먹을 놈의 학교들이 기간제만 자꾸 쓰려고 하니까 임용고사 정교사 정원이 확 줄어서 그런 걸 테지? 너와 수연이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달라서 이렇게까지 된 거 아냐? 정말로 수연이가 너에게 원했던 것이 네가 가진 것 이상 가는 경제적 능력이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못 미치는 네가 실망스러워서 등을 돌려 버린 것이라면, 너의 인간적 가치는 끝내 돈이라는 것에 납작하게 짓눌려 버린 것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수연이를 두고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어. 걔가 풍족한 삶을 원하는 인간이라면, 사실 풍족한 삶은 누구나 속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거니와, 걔가 그런 삶을 원하도록 자꾸만 부추겨 온 보이지 않는 힘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야지. 바로 그 힘이 너라는 인간의 인간적인 부분을 갉아먹어 버린 몹쓸 것 아니겠어?”


    내가 한바탕 쏟아 낸 연설을 듣고 승기는 손을 홰홰 젓더니 귤을 집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관 둬 임마. 괜한 얘기를 꺼내가지구. 어디 돈 때문에 그런 거겠냐? 남녀 사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넌 연애도 못하는 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논문을 쓰냐? 그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만큼 케케묵은 개소리가 또 어딨어?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거야? 베네수엘라처럼 대안 체제를 향해 가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수연이가 나한테 다시 매달릴까? 아냐. 여자들 대부분이 다 비슷해. 이십대에 꿈을 꾸든 지랄을 하든 뭘 하든, 서른 넘어가면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게 되어 있다고.”


    “네가 여자를 몇이나 만나 봤다고 그래? 그리고 어디 여자만 그러냐?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자꾸 현실 현실 하는데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나는 얼마 전 한 친구와 감자탕을 먹으며 눈을 치뜬 채 똑같은 물음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구정 연휴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이었다. 글쓰기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물 한 잔을 앞에 둔 채 살이 발라진 닭 뼈다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인터뷰를 어떻게 짤 것이며 누가 어디를 맡아 글을 쓸지, 다음 모임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열띤 얼굴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잦은 술자리와 줄담배 탓에 지난 세밑에 결국 거꾸러진 후 나는 까라지려는 몸을 추슬러 가며 학원에만 겨우겨우 출근했고, 다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워 있으면서도 깨죽깨죽 뭔가를 읽었고, 귀가 아프도록 음악을 들었다. 뉴스 같은 건 하나도 보지 않았다. 배고프면 밥을 먹었으며, 잠이 오면 이불을 덮어쓰고 잤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썼던 적지 않은 글들을 떠올려 보면 나 혼자서만 아무 의미 없는 헛지랄을 한 것 같아서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내 글쓰기를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도 나는 정물화 속 꽃병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도 무슨 뜻인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내게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재능이란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빚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넘쳐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게을러 빠진 소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귓등으로 흘리며 튀김 닭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손전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전화 화면에 찍힌 이름 석 자를 보고 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피돌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 미친 놈아. 난 너 죽은 줄 알았다.”


    “잘 있었냐. 지금 밖인가 보네?”


    “서울 올라온 거야? 얌마, 네가 무슨 싼타 클로스냐? 일 년에 한 번 보는 게 왜 이리 힘들어?”


    “지금 서울이다. 아는 사람들이랑 한 잔 하구 학교 근처로 가는 길야. 너 혹시 지금 나올 수 있어?”


    “지금 몇 시나 됐냐? 어.... 그러니까...... 열 시네. 여기 대학로야. 학교까지는 삼십 분이면 간다. 근데 꼭 오늘 봐야 돼? 날 잡아서 승기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미안. 오늘 말고는 시간이 안 날 것 같네.”


    “그럼 여기 끝나면 갈 테니까 제기 시장 쪽에서 자리 잡고 기다리구 있어. 나 감자탕 먹고 싶다.”


    “어서 와라.”


    뒤풀이가 끝나고 나는 대학로에서 버스를 탔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들어가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성에가 뿌옇게 낀 감자탕 집 문을 드르륵 밀어젖히며 눈으로 성훈이를 찾았다. 성훈이가 팔을 번쩍 쳐들었다. 나는 성훈이에게 다가가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껴안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올라왔어? 연락도 안 되더니.”


    “자꾸 내 사망설이 퍼지고 있길래 나 살아 있소 하려구 올라왔지.”


    대학 시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감자탕 집이었다. 주인 형님에게 인사를 하니 오랜만에 왔다고 함빡 웃어 주었다. 저녁을 튀김 닭 몇 조각으로 때워서 배가 몹시 고팠다. 기본 안주인 비빔국수 한 사발을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나를 성훈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이구, 잘 먹네.”


    “남 먹는 거 쳐다보면 좋냐? 너는 먹었어?”


    “먹었다. 마이 묵어라.”


    오글보글 감자탕이 끓자 성훈이는 내 잔에 소주를 붓고는 소주병을 내게 넘겼다. 성훈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이 녀석 잔에 술을 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요새 술 못 마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하의 술꾼인 네가 술을 못 마신다니. 죽을 때가 된 거 아냐?”


    “죽을 때는 아직 안 됐는데, 죽을 뻔하긴 했지. 하도 마셔 대다가 지난 연말에 쓰러졌었어.”


    “그러게 작작 좀 먹지. 우리도 늙었어.”


    “난 아직 이십대야.”


    “자랑이다. 그래 봤자 스물 아홉이면서. ”


    남들 보다 일 년 일찍 입학한 나와 달리 성훈이는 재수를 해서 남들 보다 일 년을 늦게 들어오느라 나와는 두 살 차이가 났다. 성훈이 여동생이 나랑 동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이 잘 맞았고,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술을 퍼마시며 우리를 거부한 여자들과 그 여자들을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한 이 세상을 향해 군소리를 퍼부어 댔다. 성훈이는 내가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마시든, 돈이 없어 자판기 커피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맥주와 소주를 사 놓고 소주 안주로 맥주를 마시든,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수업 도중에 홀짝거리든, 학교 식당에서 김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든, 한번도 놀라지 않았고 나를 알코올 중독자라 닦아세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가끔은 서로 싸움질도 했으며, 서로가 자신의 가장 못나고 부끄러운 사연들마저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친구라 생각했다.


    “너랑 마지막으로 본 게 지지난해 연말이었지?”


    “벌써 그렇게 됐네.”


    “자주 좀 올라오지 그랬냐. 그렇게 바빠?”


    “알다시피 내가 있는 곳이 학교 기숙사잖아. 당직도 자주 서고 하니까 평일엔 시간 내기가 좀 힘들어. 이번에도 휴가라서 겨우 올라온 거야.”


    “아직도 그 새터민 학교에 있는 거 맞지?”


    “응.”


    성훈이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는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새터민 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을 빠져 나온 북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술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성훈이는 잔을 비웠고 나는 입술만 축이고는 내려놓았다. 다시 소주병을 들어 성훈이 잔을 채워 주었다.


    “지방에만 있다 보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더라.”


    “그 학교에는 너랑 마음 맞는 사람 없구?”


    “한 명 있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인데, 인제 삼십대 중반 정도 됐어. 가끔 내 방이나 그 선생님 방에서 밤새 술 먹기도 하고...... 그냥 그 선생님과는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다른 선생님들은? 교무실 분위기가 좀 그래?”


    “남자 선생님들이 여럿 있긴 한데. 꼭 해병대 분위기야. 우르르 몰려다니며 와아 하고 떠드는 분위기 너도 알지?.”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응. 그래서 같이 안 다녀. 하나도 안 친하지.”


    “아이들은 좀 어때?”


    돼지 등뼈를 뒤적이던 성훈이가 큼지막한 것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내 앞 접시에 얹어 주었다. 나는 국자로 국물을 퍼서 등뼈 위에 끼얹었다. 성훈이는 자기 앞 접시에도 등뼈 한 덩이를 얹고선 국물을 떠 먹으며 말을 이었다.


    “착해. 너무 착해서 탈이지. 말하는 대로 다 믿어. 학교 마치구 남한 사회로 나가면 많이 다칠 것 같아.”


    “나이는? 고등학생들인가?”


    “십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양해.”


    “예전에 학교에서 토론회 했던 거 기억 나? 탈북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뭐 그런 주제로 토론회 열렸었는데.”


    “그래? 기억 안 나는데.”


    “그때 한쪽은 다함께에서 나온 사람이었고, 다른 한쪽은 반미 청년회에서 나온 사람이었지.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은 한총련 중앙 간부 출신이었고. 반미 청년회 사람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탈북은 남한 기독교 세력과 연계돼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획 탈북이니 남한 정부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고, 다함께 쪽은 정치적인 이유든 아니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인권을 지켜 주는 거라면서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서로 팽팽히 맞서던 중에 갑자기 객석에 있던 남학생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지.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북한 출신 학생이었어. 반미 청년회 쪽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지. ‘탈북자인 제가 보기에 북한은 일당 독재 국가에 불과합니다.’ 북한에 살다가 온 학생이 직접 말을 하니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 계속해서 북한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줄줄이 나열하니 거기서 그만 토론회는 끝나 버렸지. 물론 그 학생의 시선도 북한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북한에 살던 시절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 힘들었던 기억이라 그런지.”


    “근데 북한에서 남한까지 오는데도 굉장히 다양한 경로가 있지 않아? 중국을 거쳐서 올 수도 있고, 러시아나 몽골 쪽까지 지나서 올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 가서 돈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팔려 오기도 한다던데.”


    “그런 경우도 있긴 있는데 그건 아이들의 경우가 아니라 아이들 부모님의 경우가 많지. 조선족 여성이나 북한 출신 여성이 남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북한을 일단 빠져나와 중국에 가더라도 신분이 애매하니까 드러내 놓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지. 온갖 힘든 일 다 하다가 고생 끝에 남한에 오더라도 그놈의 편견이라는 벽에 또 부딪히게 돼. 자식이 딸린 여성들은 더욱 힘들지.”


    “새터민 아이들도 요새 아이들이랑 비슷한가? 주로 뭐 하고 놀아?”


    “비슷하지 뭐. 동방신기나 소녀시대 좋아하고...... 길거리에 널린 게 화려한 옷과 비싼 물건들이잖아. TV에는 잘 사는 사람들 얘기만 나오구.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나중에 남한 사회로 나가게 되더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왕창 성공할 수 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렇게라도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꿈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어.”


    “현실이라...... 너는 아이들과 상담 같은 거 안 해?”


    “하지. 근데 내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뭘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은 쉬운 게 아니라고? 걔들은 지금 새터민 출신으로서 처해 있는 자신들의 현실 자체가 결코 견디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아이들이야. 선생 노릇이나 하는 내가 현실을 말해 봤자, 그런 말을 하는 나부터가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걔들은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들이 아니야. 자기가 남한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건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남한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탈북자라는 자신의 조건은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으니 그 대신 돈을 악바리처럼 벌어서 일찌감치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무 말이나 다 믿는 착한 아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며 사는 게 장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섭도록 변할 수 있지.”


    “너도 참 쉽지가 않겠구나.”


    “난 그냥 아이들이 몸 건강히 학교 마치고 나가서 별 탈 없이 남한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어.”



    성훈이는 잔을 들어 쭉 들이켰고, 나도 입술만 축이던 아까와 달리 아주 조금만 목으로 넘겨 보았다. 꼭 화학 약품을 마시는 것 같이 입안이 썼다. 성훈이가 자기 손으로 빈 잔을 채웠다.


    “현실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나 작년 성탄절쯤에 아는 사람들이랑 지방에 취재하러 내려갔었어. 경상북도의 한 도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랑 만나서 인터뷰를 했지.”


    “근데?”


    “고등학생들은 인문계가 아니라 실업계, 그러니까 공고 학생들이었어. 힘들게 살더라.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장들에게 월급 다 뜯기고, 점장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불법인 거 아느냐고 협박해서 돈 안 주고, 근데 학생들은 미성년자 취업이 고용주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가르쳐 주는 데가 없으니까.”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주고?”


    “학교에서는 졸업 후 취업에만 신경 쓰지 재학 중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 쓴대. 그 학교만 그러는지 공고들은 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공고 졸업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빠지지 않아?”


    “학교와 인근 중소기업들을 연결해서 맞춤형 취업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 있대. 고3 끝날 때쯤 되면 일터에 나가서 일을 조금씩 배우고, 졸업한 다음에는 바로 그 일터로 채용이 된다고 하더라고.”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난 얘기만 듣고는 잘 모르겠네.”


    “공장에서 확실히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나쁠 거야 없겠지.”


    “근데 걔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가 다른지는 알아?”


    “그게 문제야. 비정규직이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양산되고 있고, 정규직에 비해 어떤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정규직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돈도 덜 받고,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 정도는 주위에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걔들이 자신들의 꿈에 대해선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들은 꿈 같은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안 꾼대. 빨리 돈 벌어서 성공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게 꿈이라는 거야.”


    “...........”


    “그러니까 나 같이 글 쓰며 사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걔들 눈에는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 걔네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정글이야. 아니, 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경쟁이라는 걸 일찌감치 배우지. 기업에 입사 원서를 쓸 때도 성적 순으로 끊는다니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로 안 보이고 적수로만 보이는 거야. 돈벌이와 관련이 없는 꿈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다른 인문계 학생들보다 현실을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걔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라.”


    “그게 바로 그 아이들의 현실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집이 어려우면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 가야 할 테니까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된 애들이었는데 낭만적인 꿈 하나쯤은 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걔들은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 같은 건 쓸데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선 꿈을 버린 거야. 꿈을 버리는 게 꿈이라는 거야.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을, 돈 안 되는 허황된 꿈보다는 돈 되는 현실적인 직업을 걔들은 원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만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걔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걔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걔들은 사회로 나가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 어떤 학생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언론에서 너무 안 좋게만 보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까지 말했고. 다들 비정규직 따위는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근데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착각이잖아! 비정규직은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신분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신분이고, 고용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머릿수를 늘리고 있는 신분이라고. 노동 유연화다 뭐다 앞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계속될 텐데, 아무리 정규직 되겠다고 발버둥쳐 봤자 비정규직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는 작동 방식을 박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더구나 요즘 이명박 정부가 뭐라고 떠들고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고? 나 참. 고용주들의 목적은 오직 이윤일 뿐이지 노동자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야. 정부는 항상 고용주들의 편이고. 돈만 벌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이 걔들이 돈 많이 벌게 그냥 놔둘 것 같아? 걔들이 말한 현실이라는 건, 걔들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죄다 환상이야. 환상이라고. 안 그래?”


    나는 앞에 놓인 돼지 등뼈를 두 손으로 홱 꺾어 비어져 나온 고깃점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성훈이는 말없이 잔을 비우고는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가 환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네가 한번 말해 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뭐야? 어떤 게 현실이야?”


    “........”


    “그래, 꿈은 꿈으로 남을 때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경우도 있어. 꿈은 현실이 아니게 되고, 현실은 꿈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하지만 꿈은 꿈대로 버리게 만들고, 현실은 현실대로 환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무엇을 마음 속에 품든 죄다 거짓말 아니면 환상이 되어 버리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나에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실인데, 내게 현실이라 함은 그거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걸 보고 환상이라 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생각하자니 그 현실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말짱 환상이 되어 버리고...... 정답은 결국 취직인가? 정규직인가? 하지만 취직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되나? 취직과 안정을 현실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마취된 것처럼 하루하루 아무것도 못 느끼고 살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열을 내며 말을 쏟아 내다가 성훈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성훈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뒷벽에 기댄 채 건너편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 속 아리따운 여배우를 멀거니 쳐다보았고 성훈이도 말없이 담배만 뻐끔거렸다.


    “내가 요새 이렇다. 말만 많아졌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갈까?”


    마침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성훈이는 입구 앞에서 새로 붙여 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게도 한 대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학아.”


    “응?”


    “요새도 글 써?”


    “아니.”


    “왜?”


    “쓰기 싫어졌어.”


    “아까는 글쓰기가 네 현실이라며.”


    “현실? 현실이라....... 현실이 병이 되겠다 젠장.”


    “사랑하는 누군가는 있어?”


    “없어.”


    “어머니는 잘 계시구?”


    “나 때문에 잘 못 계시지.”


    “너 걱정 많이 하시는구나.”


    “걱정되시겠지. 서른이 내일 모레인 녀석이 글 쓴답시고 빈둥대고만 있으니. 이젠 친척들에게 나 보이는 것도 창피하신가 봐.”


    “집 형편은?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 뭐.”


    “.......”


    “그래 맞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밥벌이를 하긴 해야겠지. 근데 뭘 해야 할까? 난 글 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다 병학아. 그런 말하지 마. 너도 아닌 거 알 거야.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봐. 우선 생활을 하는 거야. 난 너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어떻게든 생활을 해 나가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옛날 일만 쓰게 될 거야.”


    “옛날 일......”


    “네가 글 쓰는 걸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하고 끝까지 그걸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한, 너는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쓰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러지 않았니?”


    “.......”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다른 부잣집 자식들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꼭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은 다들 가지고 있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네가 만났다는 그 고등학생들도 떼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불편한 거니까. 불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에게 피해 안 주면서 남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삶에 지치더라도 그걸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꿈이겠지. 그런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 물론 그러기는 힘들어. 하지만 그게 밥벌이를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들과 밥벌이 사이에 너무 선을 긋지만 말고, 음, 그러니까, 바늘에 꿴 실이 있다고 생각을 해 봐. 바늘이 먼저 길을 뚫지만 실은 바늘과 한 몸처럼 되어 끝까지 그 길을 따라 같이 가잖아. 그건 바늘에 실이 얼마나 단단히 매어졌느냐에 달렸지. 생활이라는 것도, 네가 말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몰라.”


    앞만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성훈이를 쳐다보았다.


    “......애들이랑 상담도 한다더니 말재주만 늘었구나.”


    “그게 다 너한테 배운 거 아니냐.”


    “춥다. 들어가자.”


    성훈이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어느새 식어 버린 감자탕을 다시 데우기 위해 밸브를 열었다. 나는 성훈이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이라면 환장을 하던 놈이...... 술 안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죽을 것 같아서 못 마시는 거야.”


    성훈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바닥에 술이 찰랑거리는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우리 이거 다 마시고 악기 치러 갈래?”


    “악기?”


    “술 좀 사 갖구 사위방으로 가자.”


    성훈이는 대학 시절 풍물패에서 쇠(꽹과리)를 쳤다. 나도 성훈이를 따라 놀러 다니다 보니 어깨 너머로 악기를 배워 간단한 장단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사범대 풍물패 이름이 ‘소리사위’였고, 사범대 학생회실에 있는 건물에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소리사위방’이 있었다. 풍물패 사람들은 시간 날 때마다 사위방에 모여 악기 연습을 했고, 술을 마시면 꼭 사위방에 모여 밤새도록 악기를 쳤다. 나도 머리끝까지 취해 풍물패 사람들과 함께 사위방에 와서 괭괭거리는 악기 소리에 묻혀 가며 얼씨구 잘한다 좋고 지화자 개잡아묵었나 하는 추임새 소리와 함께 가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북을 두들긴 적이 많았다. 문득 아무거나 손목이 빠지도록 두들겨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훈이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는 일어나 계산을 했고, 나는 바깥에 나가서 성훈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 형님이 따라 나와 몸 건강히 지내라며 손을 흔들었다.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든 성훈이는 내 팔짱을 끼고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외로울 때 그걸 어떻게 극복하니?”


    “외로울 때? 글쎄. 나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가 혹시 ‘외롭다’라는 단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저 심심한 것 뿐인데 그걸 가지고 외롭다고 자기도 모르게 표현해 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막연히 외롭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것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기준을 세웠지.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혼자서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심심한 거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혼자 하고 있을 때 오는 느낌은 외로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많이 돼. 외로운 상태가 내게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외로운 상태를 외롭지 않은 상태로 만들거나 아예 해체해 버릴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구나. 나는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눌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는 반에서 물건 하나가 없어지면 그 즉시 반 전체 아이들의 소지품 검사를 하거든. 나는 그게 뭔가 아닌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먹히더라. 무언가를 바꾸고는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너는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랍시고 늘어 놓은 내 말을 주워 담아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성훈이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나라면, 글쎄, 나라면 말이지...... 예전에 학생회 간부 하던 시절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사람들 만나 가면서 설득해야 한다고.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딴 식으로 말하기는 싫고...... 아, 모르겠다. 역시 네 편을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성훈이는 말없이 걷기만 했고,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만 옆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성훈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너무 내 얘기만 많이 하느라 정작 성훈이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방에 앉아 성훈이는 쇠를 들었고 나는 북을 세워 내 앞에 놓았다. 성훈이는 소주를 병째 꼴깍거리며 들이키더니 과자를 한 줌 집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성훈아, 우리 예전에 힙합 국악 하다가 선배들한테 혼난 거 기억 나?”


    “악기 가지고 장난 친다고 쿠사리 엄청 먹었지. 자, 간다.”


    성훈이가 쇠를 치며 장단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북을 잡았다가 장구를 잡았다가 하며 아는 장단이든 모르는 장단이든 흥이 나는 대로 두들겨 댔다. 그렇게 첫차 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 모르고 악기를 쳤다. 성훈이가 벌떡 일어나 쇠를 치면 나도 북을 어깨에 매고 일어나 빙글빙글 돌면서 북을 쳤다. 장단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했다.


    어느덧 첫차 시간이 되자 우리는 악기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는 사위방을 나왔다. 속옷이 땀에 추근히 젖어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한밤중처럼 어둑어둑했다. 잠 한 숨 자지 못했지만 실컷 악기를 치고 나서 찬바람을 쐬니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져 왔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성훈이는 버스를 타고 친척집으로 간다고 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냐.”


    “무슨 초상 났어? 그건 죽은 사람한테나 하는 말이고.”


    “또 싼타 클로스처럼 연말에나 나타나는 거 아냐?”


    “모르겠다. 시간이 언제 날지. 다시 올라오게 되면 연락할게.”


    “요즘 말이라는 걸 잘 안 하고 살았는데, 너 덕분에 오늘 실컷 떠든 것 같아서 좋네.”


    “나도 그래.”


    버스가 왔다. 성훈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놓더니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성훈이는 휘뚝거리며 빈 자리에 앉았다.


    “현실? 가지고 온 건 다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뭐해? 빨리 다 먹어.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내 앞에 놓인 먹다 남은 고깃점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승기가 투덜거렸다. 욕심 부리며 고기만 집어 와서 그런지 속이 느글거렸다. 그런데 정말 고기 탓일까?


    “느끼해서 더는 못 먹겠다. 근데 어쨌든 너 말대로 조건이 중요한 거라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 참에 수연이랑 갈라설 거야?”


    “몰라. 시간이 지나면 결말이 나겠지.”


    “우리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현실이라는 것에 도장을 꽝꽝 박아야 하냐? 나이 서른 먹으면 정해질 건 다 정해지는 건가? 우린 옴짝달싹 못하는 거야? 뭔가 이상해. 이것저것 조건이 빠질 수 없는 게 연애라 하더라도, 연애 자체가 몽땅 조건이라는 것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잖아?”


    “네 얘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 얘기지? 근데 닭도 아니고 달걀도 아니고, 사람한테는 무조건 밥이 먼저야. 이 세상에 연애를 자선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을 양팔 저울에 올려 놓고 재는 거지. 누구나 그래. 안 그럴 수가 없지.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도 다 사업이야.”


    “사업?”


    “사업.”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포크로 돼지고기를 결 따라 찢어 보았다. 살이 갈라지며 분홍빛으로 선명한 육질이 드러났다. 자꾸자꾸 가르고 찢었다. 고깃점들은 곧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네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현실이라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그곳엔 영화 포스터처럼 진부하게 보이는 것들만 잔뜩 쌓여 있어. 왜 그럴까? 현실은 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학 문제가 아니잖아?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도록 다양하고 변화무쌍해야 하는 현실이 어느 순간부터 매끈하게 잘 뽑힌 사진 한 장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 안 들어? 뭔가 이상해. 잘 빠진 이미지 하나를 갖다 놓고 모두들 저게 현실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는 거야. 다들 거짓말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 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빵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둘의 중간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승기가 말을 받았다.


    “야, 네가 하는 말은 정말 말이니까 쉽지. 세상 혼자 살 수 있다면 차라리 너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면 땡이야. 얼마나 편해? 근데 그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기대하는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살 수는 없어. 너도 집에서 그렇겠지만 당장 내 어머니만 봐도 그래.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지는 않더라도 어머니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연이는 수연이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대로 해 주기를 기대하고. 일터에서는 일터대로 또 나한테 주어지는 역할들이 있으니 나는 또 그걸 연극배우처럼 연기해야 하고. 그게 현실이라는 거야. 에휴. 말하면 뭐 하냐. 사는 게 왜 이리 좆 같은지.”


    승기는 남은 맥주를 한입에 들이키고 내 앞에 있는 찢어진 고깃점 하나를 손으로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미적지근해져 쓴 맛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허위허위 모임 꾸려 가며 활동하는 선배들 많아. 작년에 제대한 철호 형도 지방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고, 서울 지역만 해도 곳곳에 이른바 진보 일꾼들이 숨어 있다고. 억압이 있는 현장이 많은 만큼 그 억압과 싸우려 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러면 뭐 해. 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게 살고 있을 텐데. 철호 형 봐라. 총학생회장 선거 떨어지고 나서 여자랑도 헤어지고, 아직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 다닐 때 학점을 따 놓은 것도 아니고, 그 나이에 인제 뭐 하겠다는 거야? 운동도 좋지만 꼭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야 해?”


    “야,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직장도 있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어. 일하는 시간에는 일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거야. 사회 단체나 진보 정당에서 일하면서 쥐꼬리 만한 활동비 받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고. 철호 형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지금 글 쓰겠다고 빌빌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젠장, 어떡하겠어?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밥만 벌어먹고 사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운동하는 거 아냐? 노동자들에겐 노동 운동이 자기 삶이 걸린 문제라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노동 운동이 일단 자기 삶을 책임진 다음에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고. 나도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 삶과 내 시간과 내 마음들을 무작정 희생해 가면서 꼴아박는 활동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지 충분히 경험했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에 가입하게 될지, 학교 안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해.”


    나는 승기가 옷도 못 갈아입고 학생회실에서 먹고자며 밤이고 낮이고 회의만 하느라 새벽녘이면 머리가 부스스해져 노숙자처럼 되던 모습을 떠올렸다. 주위에서 승기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당당한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한총련 대의원은 힘들어 할 자격도 없다는 따가운 충고만이 전부였던 시절. 승기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 난 후배들에게 항상 팔십 년대를 이야기했어.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고 팔십칠 년 노동자 대투쟁을 이야기했지. 막상 후배들한테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팔십 년대라는 시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후배들에게 팔십 년대를 기억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게 되게 우스워지더라. 넌 팔십 년대가 기억 나? 팔십 년 오월에 광주에 있었어? 팔십칠 년에 거리에 있었니? 난 팔십 년대에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던 꼬맹이였어. 광주든 뭐든 전부 다 나중에 책과 영상으로만 접한 것들 뿐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나는 내가 마치 팔십 년대 정신을 몸소 겪어 본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난 항상 너무 쉽게 말하고 다녔어. 그리고 내가 겪어 보지도 못한 팔십 년대라는 시간에 항상 짓눌려 살았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열사 정신 계승? 4.19 정신 계승? 그런 것들 속에서 천년 만년 활동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대학 졸업하고 서른 넘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학생 운동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뭐 그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선배는 한 명도 없었어. 평생 대학생처럼 활동할 수 있겠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강철이 되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막상 강철이 되지 못하니 답답했겠지.”


    승기에겐 승기의 삶이 있었다. 아직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처럼 남아 있는 승기의 삶이. 나는 뭐라고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던 승기가 손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번호판을 주물럭거렸다. 앞에 놓인 접시와 포크를 정리하면서 휴지로 입을 닦고는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가 봐야겠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오래 보면서 한 잔 해.”


    “그럼 나도 일어나야겠네.”


    나는 승기와 탁자들 사이를 빠져 나오며 아직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참 잘들 차려입고 왔구나 싶어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이 갔다.


    샐러드를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주영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반갑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승기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주영이 있다.”


    “언제 왔지? 아깐 못 봤는데.”


    “가 보자.”


    주영이는 포크를 들고 웬 희한하게 생긴 작고 동그란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영이 앞에는 경애가 앉아 있었다. 둘은 나와 승기를 보고는 오랜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승기 오빠는 점점 대머리가 돼 가는 것 같아요.”


    “병학 오빠는 가뜩이나 암울한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해요?”


    “넌 임마 기성 세대가 다 됐구나.”


    “피부 관리 좀 해라. 그게 뭐니?”


    승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고 경애도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가겠다며 가방을 들고 일어서 버렸다. 주영이는 접시에 잔뜩 쌓아 놓은 동그란 것들과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건 뭐냐?”


    주영이는 내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다섯 글자 정도의 알 수 없는 이름을 말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는 그냥 넘어갔다. 다른 곳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여기 것은 맛이 좀 별로라고 했다. 얄따란 껍질을 포크로 살살 벗겨내면 새하얀 알맹이가 나오는데 그걸 한입에 쏙 넣어 씨앗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먹고 씨는 뱉는 거라고 했다. 나도 하나 먹어 보았지만 찝지레한 맛이 싫어 금방 뱉어 버렸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없어서 못 먹는 거예요. 근데 언제 왔어요?”


    “두 시 조금 넘어서 왔지. 너는? 사진 찍을 때 보니 없던데?”


    “늦게 왔어요. 식은 못 보고, 아까 광현이랑 신부가 피로연 장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할 때 처음 봤어요. 광현이가 오빠보다 일찍 결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피로연 장 벌써 돌았어? 왜 난 못 봤지?”


    “혹시 승기 오빠랑 저 구석에 앉아 있지 않았어요? 그쪽은 안 돌았어요. 지금 폐백실에서 폐백하고 있으니 나갈 때 한번 봐요.”


    “그런 걸 뭐 하러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다 허례허식 아냐? 결혼이라는 게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렇게 돈 처들여서 쇼를 할 필요가 어딨어?”


    “오빠가 연애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우리 예전에 지은이 언니 얘기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지은이 누나?”


    “지은이 언니 결혼할 때 예식장에서 식 올린다구 하니까 같이 여성 운동하던 주변 언니들이 그렇게 반대를 했대요. 결혼 제도라는 게 뭔지 알고도 그러냐, 너마저 돈 써 가며 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막 그랬다나?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혼례라는 형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죠. 근데 어디 결혼이 두 사람 마음만으로 되는 거예요? 양가 부모님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주변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친족과 다른 친족의 결합이기도 하니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지요.”


    주영이는 나에게 대거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배였다.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 몸피에 안경을 쓰고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다니던 주영이는 언제나 나를 똑바로 보며 내 말을 꼬치꼬치 미주알고주알 따져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한 학번 후배인 주영이와 마주 앉아 내가 심심할 때마다 생각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놓기 좋아했고, 주영이는 내 말에 어딘가 헐겁거나 빠듯한 곳이 있으면 꼼꼼히 고쳐 주고 바로잡아 주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다른 후배들이 코대답도 하지 않고 넘겨 버리던 내 말은 주영이와 함께 있을 때면 활력을 얻고 제 뜻을 찾았다. 논쟁을 하다가 주영이에게 욕도 숱하게 얻어 먹었지만 주영이의 분석과 비판이 핵심을 비껴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건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결혼식 따위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쇼를 해야 할까? 성대한 결혼식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게 정말 이 세상 여자들의 꿈인 거야?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갖다 붙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일생에 단 한번이 아닌 게 어딨어? 지금 이 순간 흐르고 있는 일분 일초도 다시는 오지 않는 시간들인데.”


    “오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어쩌겠어요? 결혼은 제도로 굳어지기 이전에 풍습이었고, 풍습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결혼식이라는 형식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막상 결혼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글쎄요, 어떻게 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 세상 여자들이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오빠도 잘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


    “결국 또 현실이라는 건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놈의 현실.”


    “왜요? 요새 좀 안 좋아요? 뭐 하고 지내요 요즘?”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영이와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집에서 한숨만 쉬고 계실 어머니와 다시 마주하게 될 시간을 되도록이면 늦추고 싶었다.


    “일어날래?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


    “오빠가 웬일로 낮술 먹자구 안 해요? 차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주영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지난 연말에 한번 쓰러지구 나서 술 확 줄였다. 여기 와서도 맥주 한잔 밖에 안 마셨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


    “나 저녁 때쯤에 약속 있어요. 오래 못 있는데.”


    “괜찮아. 아직 저녁 아니니까. 가자.”


    주영이와 나는 일어나서 폐백실 쪽으로 갔다. 고개를 살며시 뽑아 안을 들여다보니 쪽빛 한복을 갖춰 입은 광현이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무언가를 든 채 쩔쩔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광현이 쪽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나는 폐백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광현아! 형 간다! 봄 오기 전에 한번 보자!”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고 주영이는 팔꿈치로 내 허리를 찔렀지만 광현이는 고개를 돌려 밝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형, 잘 가요!”


    주영이가 황급히 나를 잡아 끌며 속삭였다.


    “오빠, 지금 폐백 하는데 뭐 하는 거예요?”


    “이런 게 다 추억에 남는 거야.”


    나는 주영이를 데리고 나와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2월답지 않게 아직 따스한 오후였다. 주영이가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횡단보도를 건너 어느 도너츠 집으로 들어갔다. 설탕과 초콜릿으로 뒤발을 해 놓은 알록달록한 도너츠들이 진열장마다 가득 쌓여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이 피둥피둥 찔 것 같았다. 곧 찾아올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느라 매장 안 이곳 저곳에는 신통방통한 모양을 하고 있는 초콜릿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주영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있는 의자에 외투를 벗어 놓았다. 가게 안은 손님이 별로 없어 음악 소리만 흐를 뿐 조용했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초콜릿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저런 초콜릿들은 진짜 비싸요. 전부 다 포장지 값이긴 하지만.”


    “내가 얘기한 적 있지? 발렌타인데이든 화이트 데이든 정욕과 상술의 은밀한 야합이라고.”


    “그건 오빠가 너무 오버하는 거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반드시 자본이나 상품이 필요한 건 아니긴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길들여져 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얘기가 다를 거예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 안 줬다고 헤어지는 커플도 있으니까.”


    “그걸 문화적인 차이니 다양성이니 하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뭔가 좀 이상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거잖아? 돈이 있는 사람들만 뭐든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다양성이 아니라 특권이지. 안 그래? 게다가 발렌타인데이가 강요하는 건 전형적인 이성애자들의 사랑이잖아?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낄 자리가 없어. 자본의 문제는 둘째 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도......”


    “됐어요. 뭐 먹을 거예요? 일단 먹으면서 얘기 해요.”


    주영이가 지갑을 챙겨 들며 일어섰다. 이런 도너츠 집에 평소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손님이 직접 판매대로 가서 주문한 다음 돈을 치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문한 것이 나오면 판매대 쪽에서 손님에게 알려 주는 모양이었다. 주영이와 나는 판매대 앞으로 가서 높은 곳에 붙어 있는 차림표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돈 없죠? 난 녹차라떼. 오빠는요?”


    “돈 없으니 너를 잡았지. 근데 뭔 놈의 메뉴가 전부 다 영어 투성이야? 커피 종류는 싫으니 그냥 국화차 먹을란다.”


    “오빠답네요.”


    주영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치르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주영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자기 돈으로 초콜릿 사는 건데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건 완전히 온 나라의 명절처럼 여겨지고 있잖아.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초콜릿을 사려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는 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야. 내가 내 돈으로 초콜릿을 사는 건 소비 행위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초콜릿을 산다는 건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요? 자본주의? 물신주의? 그리고 그런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만 원 이만 원 하는 비싼 초콜릿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빼빼로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겠죠. 재미로 말예요. 초콜릿 사는 사람들이 무분별한 소비 문화에 길들여졌다고 하는 건 결국 이 모든 상황이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소린데, 그러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초콜릿을 떼지어 사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이며 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지를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돈지랄 하면서 비싼 초콜릿 사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초콜릿의 가격을 문제 삼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가격이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에 초콜릿을 산다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초콜릿 만드는 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겨. 초콜릿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발렌타인데이 한참 전부터 요란뻑적지근하게 광고를 때리고. 초콜릿을 사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야.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궁금한 거야. 도대체 뭐가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까? 농담으로 정욕과 상술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정말 그 때문일 수도 있겠지. 이성애자들끼리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밑그림이 발렌타인데이에서 빠지게 된다면 초콜릿은 훨씬 덜 팔리지 않을까?”


    “흠.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오빠처럼 하는 말 들으면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하겠죠. 그냥 초콜릿 하나 사서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젠장, 그럼 내가 이상한 거야?”


    가게 문이 열리고 왁자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 한 떼거리가 들어왔다. 다들 내 나이 또래 같았지만 양장을 날렵하게 차려 입은 매무새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한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 보니 아까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여자였다. 신부 쪽 친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아니. 신부 쪽 사람들인가 봐. 저 빨간 가방 메고 있는 여자 보이지? 아까 부케 받았어.”


    그들은 우리를 지나 가게 깊숙한 곳으로 가서 탁자 다섯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고즈넉하던 가게 안이 갑자기 우꾼해졌다.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는 종소리가 들렸다. 각자 시킨 것을 앞에다 두고 주영이와 나는 다시 마주 앉았다.


    “저 사람들 좀 봐.”


    “왜요?”


    “하나같이 말끔하고 고상하고 모범생처럼 보여. 옷도 반들반들 좋은 걸로 차려입었고. 신부가 학교 선생님이었으니 저 사람들도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정도 되는 일을 하고 있겠지?”


    “그래서요?”


    “글쎄. 그냥 저런 사람들 보면 진부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진부한 삶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 시달리는 사람들. 대학 나와서 졸업하고 취직한 다음에 돈 벌어 결혼하고 집 사고 자식 낳아 가정 꾸리고 계속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만 벌면서 살겠지?”


    “그게 나쁘다는 거예요?”


    “글쎄. 좋고 나쁘다는 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난 그냥 사람들이 너무 비슷비슷한 삶을 살려고 기를 쓰는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진부해. 광현이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만나던 광현이와 많이 달라져 있겠지? 아직은 기간제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정교사 되면 월급 차곡차곡 모아 가며 다른 것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겠지. 동기들이랑 만나면 더 이상 옛날처럼 민중 생존권이나 반전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그을림 하나 없이 말끔한 저 얼굴들을 봐. 손도 펜이나 잡아버릇했을 테니 보들보들하겠지.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어떤 계급적인 위치에 있는지 저 사람들은 가끔 생각이라도 할까?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데도 자기보다 훨씬 더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라도 가질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뜨적뜨적 말을 늘어놓다가 문득 고개를 제자리에 두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주영이가 있었다.


    “오빠, 저 사람들 잘 알아요?”


    “아니.”


    “저 사람들 삶이 어떤지 모르면서 저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 뭐예요?”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주영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예전과 하나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저 사람들의 삶을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 그게 전분가? 그래.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때가 있어. 저 사람들은 또 어디서 어떤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구 말야. 하지만 그것도 내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드는 생각이겠지? 그건 나두 알아.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계급이라는 게 있어.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산다는 말로 간단히 뭉뚱그릴 수 없는 계급성.”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오빠가 말하는 대로라면 이 세상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만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라는 건 사회 속 갈등의 모양을 분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삶을 사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옷차림과 생김새만으로 멋대로 평가할 때 쓰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놀고먹는 한량들이 아닌 이상에야 다 노동자일 테고, 그럼 생산직 노동자냐 사무직 노동자냐 하는 것으로 구분해야 하나요? 나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그럼 화이트 칼라 노동잔가? 오빠는...... 오빠 아직도 그 학원 나가요?”


    “응.”


    “그럼 오빠도 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화이트 칼라네. 근데 그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제 말은, 계급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구분을 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구분이어야 하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저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엔 쫙 빼입고 왔지만 알고 보면 오빠랑 나처럼 쪼들리는 형편일지도 몰라요. 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생산직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밥 굶고 라면만 먹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계급을 이야기하자는 게 착취 당하고 있는 계급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착취하고 있는 계급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점쟁이처럼 저 사람들의 삶은 어떨 것이다 뭐 이런 짐작이나 하자고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거 오빠도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나는 뜨거운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이 속을 덥혔다. 시큼털털한 차 맛이 입안 깊숙한 곳까지 남았다.


    “알지. 알아. 근데 말이야. 그럼 어차피 같이 살아 보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테니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알지도 못하는 저 사람들을 겨냥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계급이란 분명 존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겠지만 어쨌든 억압 받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단 말야. 무엇을 위해서 계급을 구분하냐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붙이면 이상한가? 우선 나 자신이 이 사회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데.”


    “오빠. 왜 슬쩍 피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겉모습만 보고 재단하려는 오빠의 시선을 말하고 있었어요. 광현이 얘기두 그래요. 저도 광현이랑 정말 가끔씩 연락 주고받고 사느라 요새 광현이가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광현이가 재수했으니 오빠랑 동갑이죠? 이제 스물 아홉인데. 집도 어려운 녀석이 서울에서 기간제 하면서 낑낑대며 살고 있어요. 오빠는 예전부터 말한 것처럼 임용고사라는 교사 양성 과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광현이에게는 임용고사를 통해 선생님이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자기 몫을 하며 사는 게 생활이라는 것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라요. 오빠가 전에 저한테도 그랬잖아요?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우선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기억 안 나요?”


    주영이는 논설문 쓰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듯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옷 입고 잠 자고 술 먹고 책 보던 털털한 녀석이었지만 의외로 수줍음이 많았다. 동기들이 전부 다 과 학생회장 자리를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지만 않았어도 주영이가 학생회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단독 후보로 선거에 나간 주영이는 과 학생회장을 맡아 일 년 동안 고생했고, 그 이듬해엔 경애와 함께 짝을 이루어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나는 당시 휴학생이었지만 주영이 선거운동본부에서 으밀아밀 참모 비슷한 노릇을 했고, 사범대 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던 승기와 함께 선거 기간 내내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가 누굴 왜 뽑는 선거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투표율은 매년마다 오십 퍼센트를 간신히 넘기는 편이었다. 오십 퍼센트를 넘지 못하면 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했다. 주영이와 경애가 사범대 신관과 구관 강의실들을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녔는데도 투표율은 선거 마지막 날 해거름까지 사십구 퍼센트 후반에서 머뭇거렸다. 승기와 나는 애가 끓었다. 선거를 다시 치르자니 그 많은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했다. 십여 명만 더 투표를 하면 되는데 투표소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했고, 결국 선거를 밤 아홉 시까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들고 중앙 도서관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사범대 학생들에게 다가가 표를 받았다. 간신히 오십 퍼센트를 채우고 나서 승기와 나는 투표함을 투표소 앞에 가져다 놓고 한동안 얼싸안았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주영이는 경애와 함께 사범대 학생회를 책임지며 일 년 동안 각다분하게 살았다. 집에다는 사범대 학생회장이 고등학교 학생회장과 비슷한 자리라고 둘러대었다고 했다. 일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학생회장 임기도 다 끝나자 주변에서는 주영이에게 중앙 조직으로 가서 더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을 비쳤고 후배들은 아예 주영이가 임용고사를 포기하고 중앙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곧 4학년이 되는 주영이는한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오래 고민했다. 내게도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군말 없이 답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학생 운동이고 뭐고 그 전에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대학생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결국 주영이는 총학생회실에 가서 가끔씩 대자보나 현수막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것 말고는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마음 넉넉한 선배들은 주영이만 보면 힘내라고 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지만 이제 막 2학년으로 올라가는 후배들은 대놓고 섭섭하다는 말을 하며 주영이에게 세모눈을 떴다. 어떤 녀석은 변절이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처먹으며 방황을 하던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찾아가 주영이를 불러내 밥을 얻어먹으며 아직도 뭘 모르는 후배들을 싸잡아 욕했다. “걔들은 자기네도 죽을 때까지 대학생으로 사는 줄 아는 모양이지?” “괜찮아요. 솔직히 나도 좀 미안한데 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할 수 있겠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나는 딴청을 피웠다.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휘저으며 픽 웃었다.


    “그때 오빠가 해 준 말이 난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걸 까먹었단 말예요? 어쨌든 그 말을 곱새기면서 결국 나 재수에 삼수까지 해서 붙었어요. 다른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어요. 직업적 혁명가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겁이 많았고, 승기 오빠나 철호 오빠처럼 살 자신도 없었어요. 일단은 졸업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다 변명 같긴 하지만.”


    “.........”


    “광현이도 분명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겠죠. 꼭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기간제 선생님이니 아직은 전교조에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오빠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노동 운동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운동만이 중심 운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니죠? 내가 아는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많이 가게 됐고, 거기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 글을 써도 노동자들 이야기만 쓰다시피 했지. 이 세상엔 비정규직 노동자들 말고도 아프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몸뚱이는 하나였어. 변명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낸다고 해도 동시에 두 집회를 나갈 수는 없었거든. 그동안 많이 만나 온 사람들이 노동자들이고, 보고 들어 온 것들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어떻게 탄압을 받고 있나 하는 것이었으니, 글쎄, 나도 어느새 시야가 좁아져 버린 건가? 매끈하게 잘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꼭 그런 사람들일 것만 같아. 광현이도 그렇게 변해 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


    “오빠도 광현이도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뭐.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야금야금 홀짝이느라 어느새 다 비운 잔을 들고 판매대 앞으로 가서 물을 더 받아 왔다. 뜨끈한 물 위에서 국화 꽃심들이 물방개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주영이는 그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근데 오빠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소리는 전부터 듣긴 들었어요. 무슨 글을 써요? 집회 기사 같은 거예요?”


    “기사도 아닌 것이 르포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나도 내가 뭘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지난 한 달 동안 몸 아프다는 핑계로 거의 안 썼어. 뭘 써도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짜증나기도 하고.”


    “집에서는요? 뭐라고 안 그래요?”


    “집? 뻔하지 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럴 수밖에요. 오빠도 이제 곧 서른인데. 학원에선 얼마 못 받는다구 했었죠? 슬슬 결혼하라는 압박도 있을 테고. 집에서 걱정 많이 하시겠네요.”


    지금도 거실에 누워 한숨만 끙끙 앓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혀를 쯧 차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다.


    “걱정만 하시면 좋게?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내 삶이 하나도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셔. 이십대에 내가 뭐 하나 해 놓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고 늘 말씀하시거든. 나도 내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지난 십 년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나날들은 아니었을 거 아냐? 어머니가 원하는 건 결과물이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 물질적인 성과물.”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오빠 뿐예요?”


    “아니. 내 동생도 알바 하면서 벌고. 아버지도 가끔씩 찔끔찔끔 가져다 주시는 것 같긴 해. 내가 버는 건 푼돈이고.”


    “집에서는 오빠가 글 쓰며 다니는 거 아세요?”


    “그럼. 나 놀고만 있지는 않수 하면서 인터넷 매체에 글이 올라가는 족족 보여드렸거든. 처음에는 신기해 하시더니 이제는 그런 위험한 글들 그만 쓰라고 난리셔. 언제까지 비정규직이 데모하는 데만 쫓아다닐 거냐고.”


    “저는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겉으론 학교 잘 나가고 있으니까 집에서도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만, 사실 학교에서 제가 나름대로 뭔가 활동을 해 보려고 해도 저도 이제 겨우 3년차 되는 선생이라 그런지 자꾸만 몸을 사리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촛불 집회 할 때도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래 나가서 밤도 새우고 아침에 학교 오는 것 같았는데 교무실에서는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 집회 못 나가게 엄중히 단속하라고 하고. 선생님들끼리도 눈치 보이니까 같이 나가자는 말도 못하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왜 지금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 왜 십대 청소년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이랑 이야기 한 번 못하고 여름이 다 가 버렸어요. 어떤 선생님은 교실 뒤에 촛불 집회에서 받아 온 유인물을 붙여 놨다가 교감한테 호되게 야단 맞았어요. 저는 작년만 해도 2년차 교사였고, 솔직히 징계가 무서웠어요.”


    “근데 너는 촛불 집회 많이 나갔잖아. 시청 앞에서 나랑도 우연히 많이 만났고.”


    “저 혼자 그런 거죠. 제 성격이 원래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거 오빠도 알잖아요. 근데 집회에 나가면 혹시 아는 선생님들과 만나면 어떡하나 하는 것부터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우리 엄마 아빠랑 언니는 촛불 집회고 뭐고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에요. 한우 값 안 떨어지게 하려고 이익 단체들이 집회 하는 거라며 늘 구시렁대기만 하고..... 근데 어느 날인가 한우 값 얘기를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아빠는 딸이 촛불 집회 나가는데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냐고 말해 버렸죠. 그때가 한창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촛불 시민들이랑 전경들이랑 싸우던 시기였는데, 그 말로 들통이 나서 한동안 주말에는 집 밖에 못 나갔어요. 저도 개학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고.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다가 가을도 다 가 버렸고. 금방 방학이 왔어요. 얼마 전에 용산에서 철거민들 돌아가셨잖아요. 거기도 아직 못 가봤어요. 뉴스에 집회 장면 같은 게 나오기라도 하면 집에서는 그런 데 가지 말라고 선수를 쳐요. 새 학기 준비해야 하니 요새도 정신이 없고..... 제가 오늘 저녁에 누구 만나는 줄 알아요?”


    “남자 친구라도 생겼어?”


    “그러면 좋게? 형렬 오빠 만나요. 얼마 전부터 저를 계속 꼬시려고 했는데 오늘 담판을 지으려는 모양이에요.”


    “형렬이 형이 꼬신다면 딱 하나밖에 없는데?”


    주영이는 녹차라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생긋 웃었다.


    “맞아요. 전교조 서울지부 집행부 같이 하자는 거. 저 아직 조합원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선생님 되고 나서 탈당했어요. 우리 학교엔 전교조 선생님 한 명도 없는데 제가 덜컥 조합원이 돼 버리면, 글쎄,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나서 학교 쪽 분위기 안 좋은 거 오빠도 알잖아요. 처음에 형렬 오빠한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학교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 다음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사리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싫었어요. 대학 다닐 땐 안 그랬는데. 아이들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도 하나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젊은 시절 다 보내 버리면, 나중엔 수업만 대충 끝내고 노는 늙은 선생님들 꼴이 될 거잖아요. 교장이랑 재단이 하라는 대로 설설 기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게 되는 그런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어요. 근데 막상 조합원이 되고 나면 학교에서 날 어떻게 볼지 무섭기도 하고..... 학교 졸업하고 나니 이중적이 돼 버린 것 같아요.”


    “나를 구속하는 사람은 사실 없어. 학원이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고. 집에서 날 닦달하는 사람은 어머니 하나 뿐인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그냥 내가 뭘 하든 지켜보실 수밖에 없지. 근데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날 봐도 전혀 웃지를 않아. 벌써 오래됐지. 그러고는 가끔씩 한밤중에 날 불러서 너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냐, 너 때문에 내가 세상 살기가 싫다, 그런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 놓으셔. 글 쓰는 일은 거지 되기 딱 알맞은 일이라 생각하시는데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우리 어머니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은데, 문제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방식을 내게 자꾸만 강요하고 있다는 거야. 나에겐 내 삶이 있는데 말야.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엄마랑 같이 죽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그렇게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릴 거면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기술이에요? 기술 배우면 다 성공해요?”


    “그럼 어떡할 거니. 다른 자식들은 네 나이쯤 되면 안정된 직업에 결혼까지 하는데 너는 어쩌려구 이래.”


    “그건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잖아요. 제가 왜 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해요? 그리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십 년 늦게 출발하면 십 년 더 오래 살면 되는 거 아녜요?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결혼하면 뭐 해요? 하나같이 다 불행해지던데.”


    “그럼 글 쓰면서 먹고살겠다고? 그게 말이 되니? 글 쓰면서 먹고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되겠니? 넌 어쩜 그렇게 비현실적인 생각만 하니? 네 나이쯤 되면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니?”


    “비현실적이요? 지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현실이란 게 뭔데요? 대학원 가서 학위 받아 교수나 되는 거? 임용고사 쳐서 공립학교 선생님 되는 거? 아무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그놈의 안정된 일자리에 주저앉는 거?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저마다 최선을 다해 겪는 시간들이 저마다의 현실이라구요. 현실이고 비현실이고 하는 건 없어요 어머니.”


    “그럼 넌 뭐 먹고 살 거야? 평생 나한테만 의지하고 살 거니? 내가 이때껏 부모 된 도리로 널 키워 줬으면 너도 이제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잖니. 의료보험비 못 낸지 일 년이 넘어서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에미가 보이지도 않니? 네 사촌 동생을 봐라. 한 번에 임용고사 턱 붙어서 그 나이에 벌써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너처럼 그렇게 살려면 사범대는 애초에 왜 들어갔니?”


    “알았어요. 돈 벌면 되죠? 이 모든 원인이 제가 다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거죠? 뭘 하든 돈만 벌면 되는 거죠?”


    “그런 소리가 아니잖니. 내가 언제 너한테 글을 쓰지 말라고 하든? 글을 쓰는 건 좋은데 너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니니. 학교 선생님 하면 틈틈이 시간도 많을 거구. 그 시간에 글 쓰면 되구. 임용고사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그래서 피하는 거야?”


    “임용고사 같은 걸로 좋은 선생님을 가려 낼 수는 없어요. 그건 그냥 시험지 받아 문제 푸는 거라구요. 그런 쓰레기 같은 지식들로 머리를 채워 가며 일 년 이 년 낭비하는 거 전 절대로 못해요. 어머니가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저도 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죠. 저도 글만 쓰고 다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살 생각 없어요. 저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밀린 의료보험비는 올해 안으로 내가 다 청산할 테니까.”


    “그 말을 내가 처음 듣니? 작년부터, 아니 제대하고 나서부터 넌 계속 그랬어. 근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뭐니?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글이나 쓰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비난하고, 이상한 모임이나 나가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니?”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삶과 제가 생각하는 삶은 달라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겐 저만의 방식이 있어요. 저도 글만 쓰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좀 지켜보세요. 같이 죽자는 말이 뭐예요? 나이 스물 아홉에 죽긴 뭘 죽어요? 저는 제 인생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가 너만 생각하면 이 세상 살기가 싫어져.”


    “그리고 그날 밤에 어머니가 기어이 무너지고 마셨지.”


    “무슨 일 있었어요?”


    “밤중에 일어나셔서는 손가방으로 세간을 막 때려 부수시더라고. 그러고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시는 거야.”


    “그래서요?”


    “아버지가 뛰어나와 말리셨지. 나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고.”


    “........”


    “그래서 올해는 정말 기간제라도 뛰면서 돈을 좀 벌까 해. 집안에 보태기도 해야겠지만 우선 나부터 좀 독립해야겠어.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자취라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지.”


    주영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쪽에서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탁자를 두들겨 가며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밝은 표정으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왈칵 멱살을 틀어쥐고 사는 게 그렇게 재밌느냐고 을러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보고서 나와 똑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뒤로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주영이가 조심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꺼냈다.


    “......오빤 어머니랑 얼마나 자주 얘기해요?”


    “글쎄.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호출이 있어.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선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나지.”


    “여태까지 계속 그랬어요?”


    “제대하고 나서 일 년 정도는 잠잠했어. 작년 봄부터는 집회 쫓아다니느라 집에 붙어있질 못했고. 뭐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어머니가 시름시름 속앓이를 하셨지.”


    “.........오빠, 혹시 오빠 어머니의 꿈이 뭔지 알아요?”


    “꿈? 우리 어머니는 간호 대학을 나오셨어. 나랑 내 여동생이 자기 앞가림 할 나이가 되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 보고 싶으시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지.”


    “오빠처럼 집안 문제 겪는 사람들 난 학교 다닐 때 많이 봤어요. 오빠도 많이 봤을 거잖아요? 승기 오빠도 그랬고. 스무 살 넘기 전까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었는데 얘가 대학 들어가자 노조니 민중이니 학생회니 하는 걸 대다수 부모님들은 견디지 못하셨죠. 부모님이 지방에 사시면 어떻게든 서울에서 눈속임하며 활동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집안 문제가 어느 때고는 터졌어요. 저도 그래서 학생회장 할 때 집에서 뻔질나게 싸웠죠. 근데 저도 그랬지만, 집안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부모님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과 자신이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도 너무나 다르다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저도 아직까지 전교조 활동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입도 뻥긋 못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부모님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어요. 물론 정말 내겐 소중한 분들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자꾸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안 할 수 없었어요. 근데 말예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나처럼 젊은 시절에 무슨 꿈을 가지고 살았을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했을까. 세월이 흐르며 엄마와 아빠의 꿈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진첩에서나 보는 젊은 시절 사진 말고는 엄마 아빠의 청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


    “난 항상 엄마와 아빠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반대 쪽 진영에다 놓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꿈 꾸는 것들과 절대로 화해할 수 없을 줄 알았죠. 근데 마치 장기 말이 서로 상대편을 향해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 아빠의 삶과 내 삶이 정말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일까, 엄마 아빠와 함께 삼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나는 엄마랑 아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는 항상 겉돌았어요. 나는 언젠가부터 내 생각을 엄마 아빠한테 들려드리지 않기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와서 엄마가 차려 주시는 밥 먹고 그냥 내 방에 들어가 나 혼자 놀았어요. 아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생각들이 아마 조금씩 자라 온 거겠죠. 난 그걸 알고 싶었어요. 엄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시는지. 아빠는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지. 내가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엄마와 아빠는 이제 철 좀 들라고 정말 나를 몰아세우기만 하실지. 서로 말도 해 보지 않고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 못박아 두기는 싫었어요. 엄마 아빠랑 대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아직도 깜깜하기만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엄마 아빠의 삶을 내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주영이는 남은 녹차라떼를 빨대로 포로록 들이마시고는 휴지로 입 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아직도 뜨겁기만 한 국화차를 아무 맛도 모르면서 홀짝거렸다.


    “집안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던 후배들 생각을 요새 가끔 해요. 집에다는 대학생 국토 대장정 간다고 속이고는 한 달 동안 공장 가서 생활하던 후배 생각도 나고....... 연희는 사범대 학생회 활동하다가 들켜서 아버지한테 머리도 잘리고 뺨까지 맞았잖아요. 근철이도 감옥 갔다 나와선 아버지와 허구한 날 싸우면서 힘들어 했고. 다 그랬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속 썩이고 있거나 아니면 마음 고쳐 먹고 효자 노릇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날까요? 근데 정말 꼭 그렇게 둘 중 하나로밖에는 될 수 없는 걸까요? 불효자 아니면 효자? 그런 극과 극이 아니라 뭔가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도 나도 쉽지 않은 현실을 함께 살아가면서 비슷한 병에 걸린 건데 그저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조금 다를 뿐인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


    “어차피 내가 아프면 가장 많이 걱정해 줄 분들이 우리 엄마 아빤데.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집에 들어가서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에이, 참.”


    나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누른 채 팔꿈치로 탁자를 짚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아버지는? 늘 밤 늦게 들어오셔서 방에서 혼자 TV를 보시다가 라면을 끓여 드시는,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어딘가로 나가시는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면 나는 또 다시 무거운 한숨과 침묵 앞에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겠지.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나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에게조차 당당히 내세우기 힘든 삶이다. 어째서 그럴까? 어머니와 내가 달라서일까?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단지 내가 내 생활을 제대로 꾸려 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고, 안 그러면 계속 옛날 일만 쓰게 된다고, 성훈이 그 자식이 그랬지. 젠장. 그 자식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니, 걔만큼 날 잘 아는 놈도 없었지. 비슷한 병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어머니, 엄마.......


    나는 안경을 쓰고 남은 국화차를 한꺼번에 들이켰다. 미지근해진 찻물을 담뿍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목으로 넘기니 알싸한 국화 향기가 입안에 남았다. 주영이가 앉은 뒤로 이름 모를 단발머리 아가씨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아가씨와 아이들은 그대로 멈추어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치어다보기 좋았다. 나는 나오는 대로 지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예식장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지하철 역 출구에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를 만났지. 아무 말도 없이 불쑥 전단지를 내미는 통에 나는 무슨 전단진지도 모르고 그걸 받았어.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그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불쑥불쑥 전단지를 내밀고 있는 거야. 어차피 신장개업이니 뭐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전단지였고, 엉겁결에 받아 쥔 사람들도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냥 버리거나 쓰레기통에 처넣었어. 하지만 할머니는 일단 자기 손을 떠난 전단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듯 꿋꿋이 서서 줄기차게 사람들을 향해 전단지를 불쑥불쑥 내밀었지. 그 전단지 한 장에는 어쩌면 집에서 혼자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주한테 주는 밥 한 숟갈이 걸려 있었을지도 몰라. 한 장에 한 숟갈, 두 장에 두 숟갈.......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할머니는 겨울 한낮에 바깥으로 나와 품을 팔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주영아. 내가 쓰는 글이 그 할머니가 불쑥 내밀던 전단지보다, 아니, 그 전단지만큼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쓰는 글은 아무에게도 따뜻한 밥 한 술 되지 못해. 따뜻한 밥이 뭐야? 찬밥 한 덩이라도 되면 다행이겠지. 내가 끙끙거리며 기껏 글 하나를 싸질러 놓으면 그 즉시 냄새가 풍겨. 지당한 말씀 늘어놓는 걸 누가 못하냐, 결국 너 잘났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냐, 너 혼자 읽으려고 이런 걸 썼냐, 뭐 그런 구린내가 풍긴단 말야. 난 남들한테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창피해. 어머니한테도.”


    “......”


    “우리 어머니는 몸이 약하신 분야. 명절마다 내키지 않는 큰집 뒤치다꺼리를 하고 돌아오시면 며칠은 앓아 누우시지. 몸이 약하셔서 어디 일하러 나가시지도 못해. 몸만큼 마음도 약하셔서 친척들한테 내 험담이라도 들은 날에는 몇 날 며칠을 그 얘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셔. 작은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심란해 하시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 뭔지 잘 알아.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꿈을 늦게라도 이루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언제나 생각에서 끝나지. 어머니의 꿈은 내 어린 날들에 저당 잡혔어. 지금도 어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꿈은 고스란히 내가 저당 잡고 있어. 한평생을 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분이란 말야.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내 꿈을 이루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꼴이야. 몸도 마음도 앓고 계신 어머니한테. 돈 좀 벌어서 방 하나 구해 나가 살게 되면 잔소리도 한숨도 듣지 않게 될 테니 속은 편해지겠지. 그래. 하지만.......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 자신과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들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도 생활일 거야. 집에서 살든 나가서 살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 글쓰기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난 결국 모든 것에서 도망치게 될까? 아니면 뭔가 하나라도 붙잡게 될까?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 하지만 도망치는 삶은 죽는 것보다 싫어.”


    말을 맺고 고자누룩해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영이는 갑자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뒤틀었다. 하품을 하면서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는 널려 있는 휴지들을 그러모아 탁자 밑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얹고서 나를 바라보며 생글거렸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요. 내가 뭘 알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하든 알아서 잘 살아 봐요. 오빠가 언젠 뭐 안 그랬나? 그리고 이젠 나이도 있으니 술 좀 줄이구요.”


    “네가 시작한 얘기 아니냐? 이제 와서 딴청야.”


    “그나저나 어쩌죠? 형렬 오빠가 같이 집행부 하자고 할 텐데.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그냥은 못 빠져나갈 것 같아요.”


    “어쩌긴 뭘 어째.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내가 그랬다며. 너 자신의 생활과 정직하게 마주하라고.”


    “풋. 오빠가 폼 잡으면서 그때 또 무슨 말을 한 줄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나 아직도 기억하구 있어요.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생활은....... 뭐?”


    “생활은 반드시 생활 자체를 위해 길을 연다. 정말 까먹었어요? 누가 한 말이라고 했더라? 그땐 되게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레닌의 말이었다. 다이 호우잉의 소설책에서 보고 기억해 두었다가 주영이에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그게 벌써 언제적 일인데 그래.”


    “얼마를 살았다구 그렇게 늙은이처럼 말해요?”


    탁자 위에서 주영이의 손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손전화를 열고 뭔가를 조몰락거리더니 손전화를 다시 닫으며 주머니에 넣고 주영이는 외투를 꿰어 입었다.


    “형렬 오빠가 한 시간 뒤에 대학로에서 보자네요. 지금 일어나야겠어요. 오빠, 미안해요.”


    “미안할 거 없다. 차도 얻어먹었는데 뭐.”


    “서른 넘어서도 후배들 뜯어먹구 다니면 대머리 될 걸요?”


    “가발 사 달라고 하면 되지.”


    주영이와 나는 도너츠 가게를 나왔다. 따뜻한 곳에 오래 있다가 나와 보니 으슬으슬 추웠다. 참을성 없는 겨울 해는 벌써 가라앉으려는지 서쪽 하늘 부근에서 얼쩡거렸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강남의 고층 건물들은 눈치도 없이 주홍빛을 잘라 먹었다. 어딘가로 정한 곳 없이 가고 싶었다.


    “가라.”


    “오빠두 잘 가요.”


    주영이와 나는 별 말 없이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무슨 계기로 또 만나게 된다고 해도 주영이와 나는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사이였으니.


    나는 코엑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리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지하철 삼성 역 가까이 다다르니 우람한 몸집으로 버티고 앉은 현대 백화점이 보였다. 일요일 해거름이라 그런지 길거리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나는 연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듯 최선을 다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월요일을 앞둔 자동차들은 험상궂어 보였다.


    코엑스몰은 재래시장 못지않은 뜨거운 기운이 넘쳐 났다. 노동에서 나오는 열기라고 하기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상품들과 상품들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어느 서점으로 들어갔다. 책꽂이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의 이름을 건듯건듯 훑었다. 무슨 놈의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평생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책만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것 같았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 읽으면 백 살이 넘을 텐데 백 살 넘어서 좋은 사람이 되면 무엇 할까를 생각했다. 역시 내 나이엔 책 말고 다른 더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시집이 꽂혀 있는 서가 앞에 주저 앉아 이것 저것 꺼내 읽으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저리면 일어났고 다리가 아프면 다시 앉았다. 배가 고파져 손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표지 색도 예쁘고 시인 이름도 예쁜 시집을 한 권 들고 값을 치렀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어둑어둑해진 사위엔 사람이 만든 불빛들만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 불빛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작정 발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얼음판처럼 맨송맨송한 보도블록 위에 가로등이 늘어뜨린 내 그림자가 얹혀 따라왔다. 얼마쯤 걷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니, 내 생활과 다시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아파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달덩이 같은 전등 하나가 달린 어느 건물 입구에 기대어 섰다. 길거리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산 시집을 꺼내 펴 들었다. 대강대강 넘기며 눈어림으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 편을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시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시를 썼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토마토 하나를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물이 뚝뚝 묻어 떨어졌다. 버찌처럼 둥글고 조그만 것들이 포탄처럼 허공에서 붉게 터졌다. 무언가가 엎어지고 쓰러지며 우당탕 소리를 냈고, 우우 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둥글고 조그만 것들은 점점 많아지며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하늘 위에서 자꾸만 붉게 터졌다. 광현이, 성훈이, 승기, 주영이의 얼굴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녔다. 터널 같은 것이 보였다. 아, 이제 그만 좀 던져! 나를 못 맞히고 빗나간 토마토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혀 퍽퍽거리며 터졌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다시 넘어지는 것들은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덩실덩실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녔다. 터널 안쪽은 하나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라보는 그쪽에 출구가 뚫려 있었다. 눈앞에 거울 하나가 둥실 나타났고 그 안에는 내 얼굴처럼 생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토마토를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어머니처럼 생긴 내 얼굴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어서 저기 보이는 출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날 따라와. 우리가 매일 뭘 했는지 가르쳐 줄 테니. 살아있는 한 말이야. 우리는 뭔가를 하게 돼 있어.


    고개를 들었다. 오렌지를 한입 베어 먹은 듯 입안에 시큼한 침이 흠뻑 고여 있었다. 나는 목울대를 크게 휘저어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한껏 벌리고 차가운 밤 공기를 가슴이 터질 것처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 진은영 시인에게 감사한다.

  • 김혜선

    작가가쓴대표적인책좀추천해주세요

  • dmasid

    대화의 패턴을 보면..
    글쓴이가 좀.. 부정적인 경향이 있는 분인듯..
    읽다가 중간에 대화하시는 내용이나.. 글쓰신게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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