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열사들을 기리는 4.9통일평화재단(이사장 문정현 신부)이 9일 저녁 6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인혁당 민주열사 34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지난해 창립한 재단 이사장 문정현 신부는 인사말에서 "1975년 4월 9일 오늘, 용산참사가 오버랩 된다. 용산에서도 인혁당처럼 망루를 세운지 하루만에 희생됐다. 요즘이 바로 인혁당 시절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인사말을 마친 뒤 추모객 200여명 앞에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한 뒤 용산 살인진압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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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선생이 열사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안보영 기자 |
이부영 전 의원은 추도사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여한이 남지 않도록 남은 자들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한번 선배님, 동지들께 위로를 드리면서 다함께 추모의 정을 나누자"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이명박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이 세상은 캄캄한 숲속보다 더 어두운 암흑 속"이라면서 "인혁당 민주해방열사의 뒤를 따라서 우리도 달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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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삼헌씨가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춤을 추고 있다. /안보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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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영 전 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안보영 기자 |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노중선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 등 각계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선 이삼헌 씨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추모 춤을 공연하기도 했다.
34년 전 1975년 4월 9일 이수병 열사 등 8명이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뒤 장석구 이재문 선생이 모진 고문으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1982년 형집행정지로 남은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지만 이재형 선생 등이 이후 운명해 현재 전창일 선생 등 16명의 사건 당사자들만 남았다.
'인혁당 사건'은 지난 1974년 4월 3일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에 맞서 전국 대학생들이 총궐기했던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23명을 지목, 국가 변란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 중 이수병 서도원 하재완 김용원 송상진 도예종 이수병 우홍선 여정남씨 등 8명에 사형, 15명에게 무기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특히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다음해인 75년 4월 9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고서 18시간만에 사형집행해 '사법살인' 사건이라 불린다. 스위스 국제법학자협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혹평하기도 했다. 사형 당한 8명은 물론 무기 등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생존자 9명은 재심을 신청해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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