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노동절 ‘44만원 세대’의 외침과 연대

[기고] 청소년 노동운동으로 세상 바라보기

메이데이는 ‘세계 노동자의 날’이다. 119년 전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피 흘리며 투쟁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8시간 노동제가 법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10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최저임금을 개악하고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겠다고 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는 바야흐로 경제 대공황을 맞이하려 하고 있어 자본의 고통분담 공격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혼란한 시기, 올해의 메이데이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사회연대노총’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며, 고통 받는 민중들의 집결을 주장하고 있다. 현 공황기에 회사에서 잘려나가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 대해 부족하기는 하나 관심과 투쟁을 늘려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급박한 시기에, 나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현재 청소년들의 노동은 통계로조차 제대로 집계.조사되지 않고 있으며, 주변부 끝자락에 내몰려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현재 청소년인권운동진영에서는 ‘청소년 노동운동’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으며, 따라서 ‘청소년 노동운동’이 고민하고 주장하는 노동권 및 경제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알바,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전태일 평전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과거 한국 산업화시기에 수많은 청소년 노동자들은 지옥 같은 노동을 경험했었다. 여공으로 상징되는 청소년 노동자들은 한국 경제발전에 매우 큰 비중을 담당한 임금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억은 잊혀 가고, 현재에 와서 청소년들의 노동은 무관심의 대상이다.

우선, ‘아르바이트’라는 말에서 청소년 노동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 시각을 읽어낼 수 있다. 줄여서 ‘알바’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의 노동은 단순한 ‘용돈벌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하에 그 노동의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용돈벌이를 위한 노동이라서 그 가치가 절하된다는 것도 우습지만, 더 큰 문제는 절박한 가난.빈곤으로 ‘알바’를 해야 하는 청소년 노동자들 역시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1)

이렇게 청소년의 노동이 주변부로 내몰리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우선적으로 청소년을 ‘미성년자’로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와 법이 근본적 문제로 작용한다. 미성년자는 말 그대로 성년에 이르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동착취를 금지하기 위해 청소년의 노동을 금지하게 되자, 청소년들은 ‘가족임금제’로 가정에 예속되어 경제적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노동하지 않기에 학교와 가정에서 보호받고 교육받아야할 존재가 되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란 기본적으로는 한 인간이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행위인데, 이러한 노동권을 박탈당한 청소년들은 주체로 고려되지 않는 미성숙한 존재, 미성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물적 토대는 서로를 강화한다. 청소년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정체성보다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이라는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노동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노는 애’라는 식의 사회적 낙인을 내면화한다.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는 당연히 청소년들 스스로 노동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도록 한다. 또한 ‘가족임금제’는 청소년들을 가정에 예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족임금제 이데올로기는 청소년들의 노동이 필요 없다는 논리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구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계급적으로 무산계급에 속함으로써 예비노동자라는 존재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노동으로부터의 ‘보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반 계급적’으로 청소년들을 제도에 가두어놓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동시에 청소년들을 노동으로부터 ‘보호’한 것은 ‘위험한 노동현장’이 아니라 ‘안전한 학교’에 구속하게 되었을 뿐이다.2) 이는 청소년들을 주체로 보지 않음으로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미성년자라는 이데올로기는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논리로 빠지기도 하지만, 청소년의 노동을 ‘경시’하는 입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많다. 위에서처럼 단순한 ‘용돈벌이’로 청소년 노동을 취급한다거나, 나이가 어리기에 속여도 된다는 식의 사고로 사업주들이 노동법을 위반하는 것들이 청소년 노동 경시의 예이다. 실제로 최저임금법 위반, 시간 외 수당에 대한 추가수당 미지급, 임금체불, 6시간 노동 위반, 인격모독과 폭력 등 다양한 노동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3) 특히 임금은 대략 한 달에 ‘44만원’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4) 그러나 이런 노동권침해에도 청소년 노동을 ‘경시’하는 사회는 이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오히려 무슨 청소년이 노동이냐는 식으로 청소년 노동자들을 공격하기까지 한다.

비록 청소년 노동이 과거 산업화시기처럼 임금노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의 노동할 자유를 억압하거나, 혹은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할 권리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보호가 아닌 청소년 “노동의 보호”

청소년의 노동할 권리를 긍정할 때 당연히 청소년의 노동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시각에서 나온 논리는 위에서처럼 결국 청소년이 위험한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귀착되기 쉽다. 그렇기에 청소년의 ‘노동’이 보호받아야 하며, 이는 ‘청소년으로서’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당연히 보호받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제와 6시간 노동제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임금체불의 문제, 노동현장의 위험성과 인권침해 문제 등은 당연히 시정되어야할 문제들이다. 사회적으로 최저수준에 대해 합의된 것들조차 지켜지지 않는 청소년 노동인권실태에 대해서, 현재 노동부와 노동청에서 보여주는 미온적 태도가 아닌 정부의 단호한 감독과 대처가 마땅히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문제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논의는 노동착취의 문제범위를 한정할 뿐이다. 청소년 노동의 문제는 청소년이라는 원인과 동시에 노동자이기 때문이라는 이중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이 자기소외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합법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합법적인 노동의 권리보호는 모순의 한 부분만을 해결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현안적인 ‘부모동의서’ 문제가 있다. 현재 법상으로는 청소년이 노동을 하기 위해 부모동의서가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청소년의 “보호인지 억압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청소년 자식의 노동급여를 부모가 대신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주체적 존재로 인정하는 좋은 법 조항일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스스로 노동하겠다는 것에 대하여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 과연 청소년에 대한 제대로 된 보호일까? 오히려 실질적으로 노동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을 주체로서 인식할 때

몇 년 전 한국에서는 호주제 폐지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 되었던 적이 있다. 호주제에 대한 논쟁을 흑백의 입장으로 거칠게 구분하자면, 호주제 폐지가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주장과 여성이 가부장적인 질서에 대해 대항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나는 여기서 후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은 돈을 벌어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존재로 인식 ―가족임금제― 된다. 이러한 가부장의 희생은 한편으로는 가부장의 권위와 그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 가부장적 질서를 깨기 위해서는 여성의 노동을 통한 경제적 권리 획득이 매우 중요한 셈이다. 즉 가부장의 가족임금에 매달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주체적 여성이 될 때, 가부장적 질서는 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여성과 함께 청소년을 가정에 속해 보호받아야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노동하고 독립할 수도 있는 경제적 권리를 지닌 ‘주체’로 바라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청소년 자식들이 부모에게(특히 가부장에게) 종속되는 것 역시 경제적 측면에서 가부장이 벌어오는 가족임금이 큰 이유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에게 오로지 복종해야 하며, 가정폭력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부모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리고 부당한 가정 내의 문제에 저항하여 청소년이 가출을 하더라도 부모의 동의 없이 노동을 할 수 없기에 가출은 단기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청소년은 가부장적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청소년 노동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울 때, 그들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다르게 대응할 수 있다. 기존의 청소년들은 사업주의 인권침해나 불법행위에 대해 순응하거나 노동청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밖에는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청소년 노동자 역시 노동 3권에 보장된 권리들을 누릴 자유가 있으며, 적극적인 단결과 투쟁으로 노동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청소년 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청소년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사업들을 준비·실행하고 있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청소년 노동의 특성상 단기 계약직이 많으며, 청소년들을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의 시선이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된 탓에 적극적 저항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스스로의 주체적 조직화와 활동.투쟁에 더해서, 민주노총 차원에서 일반노조.지역노조를 통한 연대사업 역시 필요할 것이다. 또한 준조합원제5) 같은 정책을 통해 청소년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주변부에서, 그러나 연대를 외친다

SPM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계급갈등은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는 소리소문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해고거나 파산한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자체를 파탄으로 이르게 하고 있다. 따라서 ‘빈곤청소년’에 대한 문제 역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빈곤에 대해서는 일자리만이 아니라 사회복지제도의 확충 역시 시급한 문제이다.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사회안전망을 치는 사회복지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교육문제만 해도 등록금이나 사교육비로 인한 가정지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은 빈곤이 대물림되고,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은 대학생이 휴학을 하고 노동을 하면서 근근이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국가가 나서서 ‘무상교육제도’를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학벌사회인 한국은 학력과 학벌의 차별이 극심하다. 이런 사회에서 청소년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오히려 공고한 계급재생산을 불러올 소지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기본소득 제도 같은 혁신적인 제도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외쳐도 현 MB정부가 들을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대안적 정책을 주장해도 기만적인 비정규직법 개악이나 하는 마당에 정부에게 호소하는 것은 미련한 짓일 뿐이다.

현재 MB정부가 시행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은 청소년들의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고용의 유연화는 청소년들에게도 일자리 부족의 고통을 겪게 할 것임으로, 자본가들의 고통분담에 맞선 청소년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필요하다.6)

청소년 노동자의 문제는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와 약자들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메이데이에 청소년들 역시 나설 것이다.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연대하듯, 청소년들 역시 하나의 주체로써 비청소년들과 함께 연대할 것이다.

덧― 더욱 고민이 필요한 문제들

위 글에서도 드러나는 고민들이지만 좀 더 깊은 논쟁과 대안이 필요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1. 청소년들의 경제적 지위와 권리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위 글에서 청소년들의 경제적 지위에 대한 두 가지 모순된 입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청소년들의 노동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본소득제도 같은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자는 청소년들을 주체로 인식해야 하고, 따라서 자유로운 노동의 권리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인 반면, 후자는 노동할 권리는 노동해야할 빈곤청소년과 노동하지 않아도 될 부유한 청소년 사이의 계급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사회복지제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것이 맞겠지만, 문제의 초점은 청소년의 ‘경제적 지위’와 ‘경제적 권리’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스스로 노동하고 독립해서 살 정도의 지위와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바람직한지, 반대로 청소년들이 노동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고 ‘학습노동’하도록 하는 것은 옳은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는 사회적 논쟁과 합의가 필요하다.

2. 최근에 청소년인권운동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청소년 노동조합’ 같은 내용이다. 청소년들의 노동문제를 대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투쟁하는 것이 근본적 문제해결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해야 할 고민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청소년 노동자들 스스로가 ‘알바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내면화된 정체성으로 노동권들을 침해당하는 것에 불감증을 느끼는 것부터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청소년들 스스로의 조직화만이 아니라, 일반노조나 지역노조 차원에서의 조직화 및 연대, 그리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서 하려고 했었던 ‘준조합원제’와 같은 외연을 넓히는 방식의 조직화도 필요할 것이다.

* 후주

1) 2008, ‘아르바이트 청소년의 임금과 노동인권실태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아르바이트 임금 사용처 항목을 보면 생계비 계측조사에 들어가는 항목이 피복비, 교통비 등으로 62.3%가 된다. 또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게 되면 가장 걱정되는 것에 대한 항목에서는 “특별히 걱정 없다.”가 10.6%로, 약 90%가 생계형 아르바이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이런 현실은 한 청소년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했다. “17살 고등학생의 자살, 그 이유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31498)

3) 2008, ‘아르바이트 청소년의 임금과 노동인권실태보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4) 청소년 노동 한 달 임금을 계산해보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시간 당 임금 3000원 * 법적 최대 노동시간 40시간 * 4주 = 한 달 임금액 480000원이 나온다. 여기에서 임금 떼먹기 등을 고려한다면 44만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20대 비정규직의 한 달 임금이 약 88만원이라고 한다면, 청소년들의 노동은 비정규직의 “절반 값” 밖에 안 되는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로 볼 때 20대가 “88만원 세대”라고 한다면, 청소년들은 “44만원 세대”인 것이다.

5) http://www.nodongnews.or.kr/News/View.aspx?pdsid=3240&page=1&type=&totalid=4340&keyword=준조합원제&keyfield=content

6) 청소년들의 노동력 수요가 필요한 곳은 주로 중소영세사업장이다. 중소영세사업장들은 내수에 가장 직접적이며, 따라서 현재 한국의 내수문제는 중소영세사업장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일자리 및 임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최성용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태그

호주제 , 노동절 , 메이데이 , 청소년 , 미성년자 , 최저임금 ,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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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문석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88만원 세대라는 말에서 유래한 44만원 세대라는 말을 사회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의 세대론은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패배자의 인식을 담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 공현

    44만원세대라는 말은 저도 굳이 유포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88만원 세대조차 되지 못하는,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노동자"라고 하는 게 더 명확하고 의미있겠지요. 그러나 44만원세대라는 말을 일종의 현실 고발과 비꼬는 의미로 어느 정도 쓸 수는 있을 듯도...

  • 호적돌

    글을 쓴 사람으로서도 동의해요 거기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