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제 여전히 ‘심의’에 맞선다

[인터뷰] 13회 영화제 총기획 김일숙(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인권영화제 총기획 김일숙씨
“이번 인권영화제도 거리로 나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나온 이유는 똑같다. ‘심의’ 때문이다.”

인권영화제 총기획을 맡은 김일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오는 6월에 열릴 13회 인권영화제를 상영관을 못 구해 청계광장에서 여는 이유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이하 영비법)의 등급제 심의 때문이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13회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올 1월에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와 상영을 협의했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상영이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영비법상 ‘영리 목적의 모든 영화’는 상영등급을 받아야 한다.(29조)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영리복적이 아니라 등급분류를 받을 의무가 없다. 그러나 영비법 29조 3항에는 ‘누구든지’ 상영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해서는 안 된다. 법 모순이다. 그럼에도 상영관은 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도 영비법 29조 3항 위반이 돼 같은 법 94조의 처벌조항에 따라 3년이상 징역 또는 3천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는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나 인디스페이스도 인권영화제 취지엔 동의하지만 대관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김 씨는 “올해엔 전화로 두 상영관의 입장만 듣고 대관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비법을 개정할 일이지, 상영관을 괴롭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다.

방법은 하나 더 있다. 영비법 29조 1항 2호에 따르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상영등급을 받지 않아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추천을 받으면 상영할 수 있다. 영등위의 사실상 검열제도를 피하기 위해 ‘영진위 추천’이란 쉬운 해결책을 법 개정으로 열었다. 법 개정 이후 대부분의 인디 영화제가 이 조항에 기대어 영진위 추천으로 등급을 받지 않고 통으로 상영한다.

그러나 인권영화제는 영진위 추천도 언제든 ‘검열’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거부했다. 김 씨는 “‘인권’을 말하는 영화제가 준정부기관인 영진위에 추천, 경우에 따라선 검열이 될 수 있는 걸 받아들일 순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01년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2001-a space odyssey)>가 영진위의 추천을 받지 못해 상영하지 못했다. 폭력적이고 노출이 심하다는 이유였다. ‘영진위 추천’이 검열로 작동한 사례다.

청계광장 개최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대학로 마로니에에서 상영은 지붕이 있어 비가 와도 상관없었는데, 장소가 안으로 들어가 갇힌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청계광장’을 노렸다. 영화제 시기인 5-6월이 ‘촛불 1주년’이란 상징과 잘 어울렸다. 5월 상영을 목표로 1월 23일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청계광장 시설사용을 신청했다. 공단은 규정상 3일 이상은 안되고, 또 5월도 안된다고 했다. 이유는 <하이 서울페스티벌> 때문이었다. 결국 20일 넘게 옥신각신하다 꼭 주말을 낀 6월 5(금), 6(토), 7(일)을 잡았다.

  김일숙씨는 '인권'을 말하는 영화제가 언제든 '검열'로 작동할 수 있는 영진위 추천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고 말한다.

사흘만 하는 영화제라서 눈물을 머금고 상영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여느 해보다 훨씬 많은 80편의 국내작품이 들어왔지만 11편밖에 상영하지 못한다. 여기에 해외작 12개 등 모두 25편만 상영한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재상영회를 열기로 했지만 그마저 어려웠다. 영화제에 이어 6월 8일부터 11일까지 광화문의 미디액트를 빌려서라도 재상영회를 하려 했다. 그러나 미디액트의 장기 교육 일정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다른 재상영회 장소를 찾고 있다.

영화제를 거리에서 고작 사흘만 하다보니 해가 진 저녁에만 여유있게 상영하면 25개 작품도 다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싼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으로 매일 낮 12시부터 상영한다. LED 대여에만 800만원을 추가 지출해야 했다. 1시간에 2만원 넘는 청계광장 사용료만 사흘동안 모두 127만원을 내야 한다. 김 씨는 “이번 영화제를 하면서는 재정은 포기해야 했다”고 했다.

걱정은 또 있다. 지난해 마로니에 공원과 달리 청계광장은 하늘이 열려 있다. 비가 오면 끝이다. 지난해에도 영화제 중간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김 씨는 “날씨 때문에 지금도 비오는 날을 체크하고 있다”고 했다. 기상청 예보보다는 확률을 믿을 수밖에. 6월초 장마와도 맞물려 버리면 끔찍하다. 김 씨는 “비가 오면 LED가 버틸 수 있는데까지 상영하는 걸로 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지난 2001년 5.5회때부터 인권영화제 일을 해오다 잠시 외유를 마친 뒤 계속 인권영화제 기획을 맡아왔다. 김 씨는 11편의 국내작 가운데 꼭 추천하고픈 작품 2개를 묻자 여러 번 머뭇거리다가 두 작품을 빼고는 모두 소개했다. 그만큼 작품에 애정이 많았다.

6월 5일(금) 저녁 5시30분에 상영할 <작은 새의 날개짓>은 장애인의 자립과 장애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제약을 다룬 14분짜리 다큐로 카메라를 들이댄 감독 자신이 장애여성이다. 박홍준 감독의 <소년 마부>는 노점상을 하는 아버지의 분신이 이후 아들이 그 노점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과정을 다룬 극 영화로 44분이 넘는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성폭행 피해자들의 상처와 회복 과정을 드러냈다. <고양이들>은 비혼 여성 3명의 얘기다. <기타(其他) 이야기>는 콜트악기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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