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간섭을 받아야 했던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의 해역에서 여러 나라의 군대가 미사일을 장착한 군함과 헬기를 동원해 이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그 그림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사진을 검색해보니 21세기 해적의 초라한 행색에 더 의아해진다. 조그마한 나무배에 옹기종기 끼어 탄 그들은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해적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어부처럼 보일 뿐이다. 기껏해야 재래식 무기라도 들면 다행일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왜 각국의 정부들은 초대형 군함을 소말리아에 보내놓고 야단들인 걸까?
▲ 가운데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이 소말리아 |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중간 지점에 위치해있다. 아프리카 지도에서 동쪽 중간에 뿔처럼 솟아있는 부분이 바로 소말리아이다. 때문에 소말리아는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항구로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향해 열려있다. 그리고 세계석유 생산량의 1/4이 통과하는 주요 길목에 놓여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소말리아는 오래 전부터 끊임없는 외세의 간섭을 받아야만했고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을 치러야했다. 이런 과정에서 소말리아 내에는 파벌과 부족 사이의 갈등이 생겨났고 그 결과 소말리아는 끔찍한 내전에 휘말려 죽음과 굶주림의 공포를 겪었다.
소말리아는 내전으로 1991년에 정부가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사실상 정부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어왔는데, 소말리아 해역에 해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이다. 아니, 소말리아 인들에게 공평하고 정당하게 표현하자면 이때부터 소말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 줄 해양방범대가 필요해졌다.
1991년 당시 세계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소말리아 아이들의 사진을 돌려보면서 비참한 인간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엔을 비롯한 구호단체들은 소말리아에 식량을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치고 이제 막 세계무대에 데뷔한 한국에서도 소말리아 아이들에게 식량을 보내자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소말리아 해역에 나타난 건 핵쓰레기"
그런데 소말리아 해역에 나타난 것은 식량으로 가득 찬 배가 아니라 화학물질과 핵폐기물로 가득 찬 배였다. 유럽에서 온 수상한 배들은 핵폐기물이 들어있는 쓰레기더미를 소말리아 해역에 버리고 돌아갔고 이런 일은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유럽의 기업들에게 무정부상태의 소말리아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껏 폐기물을 버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된 것이었다.
이들 기업들은 유럽에서는 1톤 당 약 1천 달러의 처리비용이 드는 폐기물을 1톤 당 3달러를 주고 바다에 버렸다. 폐기물처리 비용은 내전을 벌이고 있던 군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후부터 소말리아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과 메스꺼움 등의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기형아 출산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러한 증상은 2005년에 쓰나미가 인도양을 덮쳤을 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방사능증(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유엔환경프로그램의 보고에 따르면 유럽 기업들이 버리고 간 폐기물에는 "우라늄, 방사능 폐기물, 카드뮴, 수은 등의 화학 폐기물"이 포함되어있었다.
다른 나라의 배들이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질병과 환경오염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소규모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말리아 어부들의 생존기반 자체를 흔들어놓았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외국의 어선들은 매년 약 3억 달러어치의 참치와 새우, 랍스터 등 어류와 해산물을 대량으로 쓸어갔다. 아시아 출신의 어선 중에는 당연히 한국 어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 어선들은 어부들의 그물을 걷어가고"
심지어 외국 어선들은 소말리아 어부들이 쳐 놓은 그물을 걷어가기까지 했다. 큰 규모의 어선과 장비를 갖춘 외국 어선들의 불법 어획에 소말리아 어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어선들이 휩쓸고 지나간 후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작은 고깃배로 어업을 하는 소말리아 어부들이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국 어선의 불법 어획은 소말리아 어부들의 생계수단을 강탈했고 소말리아 해역의 생태계를 파괴시켰다.
그런데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보호해 줄 정부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당장 해군이 출동하고 외교적인 마찰이 불거졌겠지만 소말리아 인들은 스스로로 외국 선박의 불법 어획과 폐기물 투기에 맞서 자신들의 바다와 생명을 지켜야 했다. 어부들은 배를 타고 나가 외국 선박의 불법행위를 방해하고 그들을 내쫒았다. 그리고 외국 선박이 저지른 불법적인 일에 대해 일종의 벌금도 받아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진짜 '해적'이라 불릴만한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수십 년에 걸친 오랜 전쟁-내전으로 포장된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소말리아 민중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고, 2006년 12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과도정부가 소말리아를 침공하여 수도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사실상 정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던 이슬람법정연대를 무너뜨리면서 소말리아는 또다시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반복되는 전쟁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한 소말리아의 민중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별다른 선택권을 갖지 못했다. 어부들이 외국 선박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배를 타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골치덩이가 된 어부"
그러나 지금까지 소말리아 해적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알려진 외국선박들 중 불법 어획이나 폐기물 투기와 같은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선박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해당 국가의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각국의 정부들은 자국의 선박이 소말리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감춘 채 무조건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들의 호들갑에 어느새 소말리아의 어부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인도와 러시아가 소말리아 해역에 군대 파견을 결정하고, 곧이어 2008년 10월에 유엔 안보리에서 소말리아의 해적문제 해결을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 1838호를 통과시켰다. 각국의 정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말리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현재 소말리아 해역에서 군사작전을 수행중인 국가는 23개국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호가 필요한 쪽은 과연 누구일까?
"해적"이라고 소개된 소말리아 인 수구레 알리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가 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적은 바로 소말리아 바다에서 불법적인 어획을 일삼고 폐기물을 투기하고, 무기를 운반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바다를 지키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해안경비대와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짜 해적은 누구일까?"
소말리아의 뉴스 사이트인 와드허뉴스에 따르면 소말리아인의 70%가 소말리아의 영해를 지키는 군대의 형태로서 해적들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거대한 군함들은 마치 자신들이 악당에 맞서 세계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소말리아 인들의 눈에 그들은 다름 아닌 약탈자이자 파렴치한 해적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소말리아에 외국 군함이 주둔하는 문제에 있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과연 그들이 단지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많은 군대를 파견했냐는 것이다. 23개국에서 파견된 거대한 해군 함정이 적으로 지명한 이들은 고작 10명도 채 수용할 수 없는 나무배를 타고 재래식 무기를 든 사람들이다. 아무리 이들의 숫자가 많다고 할지라도 일단 규모면에서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 군함 근처에 다가간 "해적"의 사진을 보면 군함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아 해적선을 금방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
군함 근처에 다가간 "해적"의 사진을 보면 군함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아 해적선을 금방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군대를 파견한 국가들의 의도가 단순히 선박을 보호하기 위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의 예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2009년 3월에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역으로 파견된 이후 국방부는 청해부대가 얼마나 용맹하게 업적을 세우고 있는가를 선전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언론은 국방부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쓰며 “해적 킬러”라는 수식어까지 사용하고 있다. 청해부대에 대한 그들의 수사는 선박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세계 속의 한국군을 드러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한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파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다시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재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아예 해외 파병을 위한 상시부대를 창설하고 해외 파병 시 국회의 동의 절차를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의 평화유지군 파견법을 제정하려고 노력 중이다. 2007년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동명부대를 파견한 것이나 소말리아에 청해부대를 파견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해외 파병을 위한 발판을 쌓기 위함이다. 더욱이 처음으로 해군을 해외에 파병한 것은 첫 경험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그 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평화유지나 재건 등과 같은 해외파병의 명분은 그저 포장에 불과할 뿐 파병의 실제 목적과 결과는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적 소탕을 내세운 소말리아 파병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해외 파병으로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군사력을 통한 세계질서재편에 동참하는 것이다. 세계평화를 내세우며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점령하여 그들의 삶과 터전을 파괴하는 데에 한 몫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로서, 그리고 천연자원 수송의 주요 통로로서 강대국들에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과연 소말리아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한 무리의 해적들뿐이었다면 미국과 영국, 러시아, 한국 등 23개 국가들이 거대한 함정과 최신식 무기를 동원해 소말리아로 달려갔을까? 2006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과도정부가 수도 모가디슈로 향했을 때, 그들이 가진 정보와 무기가 미국의 지원으로부터 나왔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소말리아를 감히 '제 2의 이라크'라 불렀다.
지금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소말리아의 민중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해적의 소탕이 아닌 과거 침략자들의 반성과 사과, 그리고 다른 나라 민중들과의 진실한 연대일 것이다. 그리고 소말리아 민중은 그들의 땅에 손을 대는 자들에게 맞서 외치고 있다. "해적"으로 변신한 어부들이 그랬듯이 소말리아 민중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지켜나갈 힘이 있다고 말이다.
::글 _ 수진
::참고자료 _
Why We Don't Condemn Our Pirates http://www.huffingtonpost.com/michael-vazquez/on-pirates_b_186015.html
You Are Being Lied to About Pirates http://www.commondreams.org/view/2009/04/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