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을 다 갈라 놓잖아요”

[인터뷰] 울산 미포조선 현장투 김석진 의장

“내가 도를 닦아요. 절에 가서 도를 닦으면 시주를 하고 도를 닦지만 회사에 다니며 도를 닦으니 돈을 받고 도를 닦는거죠. 아침에 출근을 해서 들어가면 사람들이 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하잖아요. 내가 사십아홉인데 서른, 마흔, 젊은 시절에는 다 형님형님하던 친구들이 고개를 탁 돌려 버리는 게 저게 자기 본심으로 저러겠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그게 잘 안돼요. 현장에 일하다가, 바로 현수막 밑에서 일하잖아요. 현수막 밑에서 일하니까 현수막 계속 보잖아요. 기만과 거짓, 너의 욕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일터 말아먹으려는 자, 당신을 규탄한다 그렇게 쓰인, 그 옆에서 일하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그게 잘 안돼요. 사람이 예민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그렇잖아요.”

김석진 의장을 다시 만난 건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파업이 끝난 며칠 후였다. 사람들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옥쇄 파업이라고 했다. ‘옥쇄’,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지난 해, 기륭 전자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단식을 두고도 사람들은 ‘옥쇄 단식’이라고 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듯한 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부서진다’는 말이 퍼뜩 와 닿았다.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게 다 뭔가. 부서진다는 건 말 그대로 찢어지는 고통일 뿐이었다.


일곱 달 만이었다. 지난 겨울, 미포조선 굴뚝 투쟁 지원 농성장을 새벽에 습격한 현대 중공업 경비대들이 소화기로 몸을 내리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던 김석진 의장은 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암흑 같던 새벽,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일어난 폭행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수시로 엄습해오는 공포로 괴롭다던 그는 오랜 투쟁이 남길 정신적 고통에 대해 우려했다.

미포 조선의 사업주와 관리자들에게 항의하며 목에 줄을 매달고 뛰어 내린 노동자,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복직과 현장 조직 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백 미터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 그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정신적 고통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 했다. 미포조선 굴뚝 투쟁 후 이개월 간의 정직이라는 징계를 당하고 현장에 복직한 그에게는 미행과 감시, 폭언과 폭행, 동료들의 따돌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옥쇄’, 이러다가 저 사람도 부서지는 게 아닐까. 여름 휴가의 끝날, 휴가는 다녀왔냐는 나의 물음이 금방 민망해져 버렸다. 팔 년을 넘게 끌었던 해고 무효 소송이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로 판결나면서 2005년에 다시 미포 조선으로 복직한 그는 부당 해고 기간의 임금 가산금을 지급하라고 회사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울산 지방법원에서 승소를 했고 회사쪽의 항소로 지금은 부산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 준비로 부산을 오가느라 휴가는커녕 집에서 편하게 가족들과 밥 한번 먹을 여유조차 없었을 듯하다.

때마침 부산을 다녀오는 길에 울산 톨게이트 입구에서 차가 고장 나서 갑자기 서버리는 바람에 폐차를 했단다. 그의 분신처럼 그와 함께 현수막을 두르고 늘 일인 시위에 함께였던 그 차가 없어지면서 그는 이번 주에 일인 시위를 하지 못했다. 현대 중공업 경비대 폭행에 대해 정몽준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미포 조선 굴뚝 투쟁의 결과로 나온 합의서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그의 일인 시위는 휴가 중에도 계속되었다. 그의 차도 지친 것일까. 고속도로가 아닌, 톨게이트 부근에서 차가 멈춰 버린 것을 두고 김석진 의장은 죽음이 그를 비껴간 듯한 안도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의 차가 수명을 다하면서 그의 일인 시위도 하루 쉴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이제 올 십이월 일일이 근속 이십 구 년이에요. 이십 구년이면 전부 다 알잖아요. 나하고 친한 사람들도 둘이 있을 때는 인사하고 그러는데, 나도 몰랐는데, 나를 비난하는 현수막을 공장 안에 걸고 그러니 사내에서는 이게 이슈가 되잖아요. 석진이하고 말하면 너도 왕따 당한다. 이게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염이 되니 본의 아니게 나를 피하는 거에요. 출근할 때 혼자고, 퇴근할 때 혼자고, 말도 없고 인사할 수 없고 퇴근할 때 잘 가라는 말도 할 수 없고, 수고하라는 말도 할 수 없고, 이게 무섭더라고요. 그냥 한사람을 왕따 시키는 그런 문제가 아니고, 지금이라도 내가 항복만 하면 문제가 틀려지겠죠. 그런데 나까지 물러설 순 없잖아요.”

스스로는 의지가 강하니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칠 개월 사이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동해안의 이상 기후로 올 여름은 내내 서늘했다. 봄과 여름이 오가던 환절기에 들어 버린 감기가 칠월이 가고 팔월이 와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의 몸에도 짙은 감기 몸살이 눌러 붙은 듯하다. 쉬어 버린 목소리, 가끔씩 쿨럭이던 기침 소리,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는 뜬눈으로 지새웠나. 배 수리를 하는 중노동을 하지만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고 잠 못 드는 밤이 많다.

할 수만 있다면 미포조선 공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 그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싶다. 모두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공장, 그를 힐난하는 현수막 아래에서 녹슨 배를 닦아내는 그의 아픈 어깨에 내려앉은 짐을 덜어내고 싶다. 그러나 무엇 하나 할 수가 없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담아내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력하다.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나중에 이 싸움이 끝난다 해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가슴에 상처를 주고 있잖아요. 얼마 전에는 뭐까지 했냐면 반별로 거두는 회비까지, 송년회비며 회식비며 친목회비처럼 내는 돈, 반에는 반비를 내는데 그거까지 중단시켜 버린 거예요. 내꺼는 안 받겠다는 거예요. 이런 부분이 쌓이고 쌓여서, 이런 부분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한 삼분의 일이 되는데, 삼분의 이는 그냥 지켜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해가 되는데, 욕하고, 빼앗고, 폭언하고 폭행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정년퇴직해도 죽을 때까지 용서가 안돼요. 친일파 용서 못 하듯이요.”

쌍용 자동차의 파업이 끝난 후, 빠른 속도로 공장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장이 회복된다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내려꽂힌 날카로운 칼날을 무엇으로 뽑을 건가. 세월이 지나 칼날이 녹슬고 무뎌진다 해도 그 자리의 깊게 패인 상처들은 또 무엇으로 메꿀 건가. 원망스러운 것은 김석진 의장을 외면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공장안의 노동자와 공장 밖의 노동자가 나누어졌다 해도 결코 그 누구도 서로의 적들이 아니었다는 걸 쌍용차의 노동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본이 노리는 게 뭐냐면 개별화죠. 더불어 살고, 함께, 공동체, 이런 걸 무 자르듯 다 잘라 놓잖아요. 같은 동료가 동료를 그렇게 해버리니까, 한번 상처를 받으면 의식적으로 무장되지 않은 채 상처를 받으면 그게 오래 가요. 심신이 허약한 사람이라면 우울증 걸리고 이상한 행동도 할 것 같아요. 그게 자식들까지도 영향을 받더라고요.”

쌍용 자동차의 오랜 파업은 아이들의 마음도 갈라 놓았다. 경찰과 대치 중인 공장을 그린 아이의 그림, 그 공장안에서 일자리를 지키려고 투쟁중인 아빠를 떠올리며 그렸을 그 그림을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공유할 수 없었다며 미술 학원 선생님은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산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깊은 벽은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선을 긋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김석진 의장의 큰 딸도 경찰만 보면 예민한 반응을 보여 걱정이라고 했다. 저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면 안되는데 걱정이 되면서도 오랜 삶을 투쟁 속에서 살아온 아빠의 삶이 아이에게도 깊은 고통으로 내려앉은 듯 하다며 마음 아파했다. 아빠를 외면하고 폭언하고 폭행하는 사람들을 그의 딸들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는 또 이 고통을 어떻게 이기며 살아 가고 있는가.

“아침, 저녁으로 어지간하면 동네 운동장을 한 시간씩 걸어요. 운동장이 흙이예요. 걸으면서 정리를 해요. 문제가 뭐고 내가 분노하면 안된다, 석진이 너 알면서 왜 그러느냐, 스스로 그렇게 정리를 하잖아요.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장 밖에 나와서 조합원들 만나잖아요. 날 만나면 끌어안는 사람도 있고, 술 한잔 먹고 분풀이해요. 도와 주지는 못하지만 참아라 참아라 하고 이런 사람들도 있잖아요.”

아이보리색 여름 작업복에는 ‘미포조선’이라는 한자가 기계 자수로 새겨져 있다. 공고를 졸업하고 하복과 동복을 번갈아 가며 오랜 세월 입었을 저 작업복, 저 작업복을 입고 산 세월 동안 미포조선에도 민주노조가 세워지고 무너진 세월이 있었다. 가혹한 노동조합과 현장의 조합원들에 대해 왜 김석진 의장에게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하는 나의 탄식에 그는 깊은 아픔을 털어 놓았다.

“팔십 칠년도에 노동조합 만들었잖아요. 그렇게 만든 노동조합들이 다 자본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노조 관료가 되었잖아요. 지금은 노동조합이 회사와 조합원들의 중간 역할을 하는 거죠. 그래도 조합원들은 기댈 데가 조합밖에 없는 거예요. 이십 년간 노동 운동하면서 활동가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포기해 버리니까 이 꼬라지 난거죠. 나도 그 벌을 받는 거라 생각해요.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김석진 의장과 울산인권운동연대는 얼마 전 김석진 의장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세 개씩이나 공장안에 내걸고 조합원들에게 김석진 의장을 처절히 외면할 것을 강요하며 폭언과 폭행을 주도하는 미포조선에 대해 인권 침해를 중단하라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한 여름에도 녹슨 때처럼 우리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감기가 떨어지길 바라며 매운 낙지볶음을 밥 한 그릇과 다 먹어 치웠다. 그의 삶을 집요하게 따라 붙는 사슬, 그 구속 속에서도 그는 오늘도 걸을 것이다. 자신 속으로, 그가 믿고 있는 대중의 힘 속으로. 모처럼 무더운 여름 날씨다. 감기가 뚝 떨어졌다. 그도 부디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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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굴뚝농성 , 미포조선 , 현장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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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적인 사실확인 고사하고, 오로지 자본가 대 노동자 2분법논리로 치닫는 소위 이 르포라이터의 사회적 책임감은 김석진의 양심과 함께 사라져 버린걸까요

  • qnseksrmrqhr

    권력의 배분이 점점 금융과 정보의 단계로 분화되어 간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본의 권력은 막강한 것 같다.그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다중의 차별적인 시각, 역사의식으로 결집된 힘, 언제라도 합리적인 것을 벗어난 것들에 대한 부서질 수 있는 힘들이다. 자신의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 만큼 비참한 삶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 ㅁㄴㅇㅁㄴㅇ

    미친 이 벼룩 개쌔끼야 그 엄청 잘난 "기본적인 사실확인"이 뭔지 니 더러운 아가리로 한번 씨부렁거려봐라 나가 뒤질 미친 개새끼

  • 노동자

    8년5개월동안 원직복직투쟁 할 그당시 노조대의원 92%서명하여 김석진씨 복직되면 8년무쟁의 깨진다면서 대법원에 진술서 제출 한것도 모자라 비정규직 복직투쟁 연대했다고 노동조합은 5년 유기정권을 때리고 회사는 2개월 정직을 때리고 동료 팀원들은 출,퇴근 현장사무실 입구에 비방 현수막을 3장이 내걸어 도배하고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우째 이런일이 있노...

  • 석진동지

    동지가 복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알지도 못하는 내가 가슴이 뛰었습니다. 오랜 시간 노동자가 흘리는 눈물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산적한 현장은 이전의 현장과는 달라졌겠지요. 그럼에도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싸우고 정리하려는 모습은 과히 노동자의 귀감이라 할 것입니다. 동지... 동지와 난 일면식도 없고, 서로 알진 못해도 동지의 투쟁에 말없이 마음으로나마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름없는 전국의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은 희망이라고 빈대 낮짝보다 없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많은 동지들이 어깨를 함께하리라 믿습니다. 87년의 그때처럼.

  • wlwl

    힘내세요. 우리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정말 막걸리 한잔 나누며 깊은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님, 과거에 도랑치고 가재잡던 추억의 힘으로 끗끗이 견뎌 ㅠ내삼~~

  • 민주파

    과연 그(들)은 민주화 투사였나(울산노동뉴스펌)

    얄궂게도 같은 해에 노환과 자살로 마감한 이들의 삶을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공헌으로 언론은 미화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그들은 과연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그들이 한 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실질적 기여도는 의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민주화 운동가였다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정치인이다.

    MB정권 아래서 처참해진 민주주의와 인권이 3김이나 노무현, 이른바 청와대 세입자들이 쟁취한 것이었는가? 아니다. 이 사회의 민주주의는 개인으로서 그들보다 더 많은 개인적 고통을 겪었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힘으로,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것이다. 그들은 한때 정치적 차이 때문에 고문과 약간의 정신적 고통을 받을 뿐이지만, 이름 없는 민초들의 어마어마한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세월을 넘어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른바 민주화 정치세력이 성취한 것보다는 자신들의 개인적 야욕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실패한 것이 더 많다는 점이다. 현재의 민주주의가 이토록 부실하고 지지부진한 것은 거슬러보자면 1980년 봄 당시 3김씨의 행태, 1987년 대선의 양김의 분열, 그리고 집권에 성공한 양김과 노무현의 친자본-친제국적 본질과 정치적 무능력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언론은 철저히 침묵한다. 그들은 민중투쟁으로 쟁취한 공간에서 항상 보수세력, 독재세력을 핑계대면서 절충과 타협으로 일관했고, 집권 동안에도 항상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핑계로 개혁(?)을 멈췄다. 거기까지! 그들은 민주주의를 대중의 열망만큼 확장하지도 않았고, 정권이 위태롭다고 느껴지면 언제나 그들 스스로 저주했던 박정희와 전두환 스타일의 국가폭력을 휘두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폭력을 선동-사주했던 언론은 철저한 공모의 침묵을 지키며, 영웅주의적 신비화를 완성하고자 한다.

  • 투사

    끝까지 믿는다

  • shehdwk

    저항하라!!저항하라!! 용서하지마라!! 용서하지마라!! 현장의 힘으로 기필코 응징할때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라 노동자여!!

  • 미포 이재상

    위의 사실이 허위사실이 아님은 미포노동자라면 모두 알고있다.힘내어 투쟁 하시길...........

  • 투사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아야지... 약속문서, 폭력 종지부를 찍어야한다...투쟁

  • 주부/펌

    노동자는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놓고 거짓과 음모를 꾸미지 않는다.
    자본에 빼앗기고 당하고 있는 것들을 온전히 드러내고,
    진실하게 말하는 것만이 노동자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노동자의 진실을 아무리 숨기고 짓밟아도
    결코 가려지지 않으며, 노동자의 투쟁도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노동자가 사는 현실 그 자체다,

    노동자의 현실은 투쟁 없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투쟁만이 야만에 짓눌려있는 노동자의 진실을 바꿀 수 있다.
    무너진 민주노조 재대로 세워내야 한다.

  • 해방

    이...너 사측의 개가 어디 여기와서 헛소리냐? 김석진 동지의 양심의 발톱만큼이라도 니가 양심이 있으면 또 들이대라..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