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마지막 희망 전교조에 전달했지만

대의원 대회, 피해자 요구 부결...정진후 위원장엔 경고

민주노총 김 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29일 열린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밝혔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진보적 운동사회의 핵심 단체 중 하나인 전교조의 반성폭력 운동 시계를 다시 거꾸로 돌리는 결정이라 파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 조합원인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이날 대의원대회에 자신의 심정이 담긴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지난 9개월 동안 저는 암흑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지내면서 조직으로부터, 동지로부터 상처 받는데도 마지막까지 조직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대의원대회에서 만이라도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밝혔다. 피해자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던 전교조 대의원대회는 희망으로 답해주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린 전교조 59차 임시 대의원대회는 29일 오후 5시께 부터 다음날 새벽 6시를 넘겨서 까지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에서 열렸다. 이중 아홉 시간 여를 성폭력 사건 해결 관련 안건을 논의했다.

이 대회에서 황 모 대의원 등 82명의 대의원은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의 요구사항 이행 승인과 위원장 및 재심위원장의 징계조치, 그리고 그 후속조치와 특별결의문 채택을 촉구하는 대의원안'(성폭력 사건 해결안)을 발의했다.

‘성폭력 사건 해결안’은 피해자가 피해자 지지모임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함에 따라 지지모임에 참여하는 대의원들의 주도로 다른 대의원들에게 동의를 받아 발의됐다.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 해결안’에서 성폭력 징계 재심위원회를 재구성하여 재논의를 해 달라고 대의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재심위원회 재구성 안건은 찬성141, 반대142, 무효3으로 한 표 차이로 부결됐다. 피해자는 재심위원회 재구성 이유로 "재심위원회가 구성, 재심 과정 및 절차, 징계 양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와 전교조 성폭력 예방 및 처벌 규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또 2차 가해자 3인(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 손 모, 박 모씨)의 공식적인 사과와 자숙 기간(최소 3년 이상) 가지기, 가해자 프로그램 이수 등 후속대책 이행과 특별 결의문 채택을 요구했지만, 이 요구도 부결됐다.

성폭력 사건 해결안 중 하나로 대의원들이 요구한 “위원장과 재심위원장이 행한 일련의 행위에 대하여 ‘경고’로 조치해 달라”는 안은 통과됐다.

이 같은 대의원 대회 결과는 위원장과 재심위원장이 성폭력 사건을 잘못 처리했지만 조직의 규정과 절차는 지켜, 경고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2차 가해자들이 활동하는 것도 문제가 없어 자숙기간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진보적 운동사회는 보통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활동하도록 돕기 위해 가해자들과 만나지 않도록 조직에서 가해자를 격리 조치하는 관례를 따라왔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조직적 은폐조장 명예 찾기 위해 모순적 결과 도출

이번 결정으로 9개월여나 지난 성폭력 사건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데 그 심각성이 더하다. 지난 2월 5일 성폭력 사건이 일부 언론에 공개 된 후, 피해자 대리인은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사건 해결과정에 대해 문제제기 했다.

당시 성폭력 가해자뿐만 아니라 2차 가해자로 인해 고통 받았던 피해자의 아픔은 전사회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차 가해의 핵심적인 내용은 ‘조직적 은폐 조장’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파장이 커지자 이례적으로 민주노총은 외부 여성단체 인사와 변호사까지 포함해 공정성을 담보한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진상조사를 했다.

당시 진상규명위원회는 한 달여 동안 활동을 통해 진상조사 보고서를 남겼고 '민주노총이나 전교조가 공식적인 회의라인을 통해 은폐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간부가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며 은폐 시도가 있었기에 조직적 은폐시도라 명명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이런 은폐 시도 과정에서 전교조의 많은 관계자들이 피해자에게 원만한 사건 해결을 요구했고 그들을 만난 피해자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렇게 피해자가 느끼는 무언의 압력을 압력으로 인정하고, 사건 해결과정에서 피해자가 무언의 압력으로 받은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다.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은 자신은 피해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압력을 주지 않았기에 2차 가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피해자는 정진화 전 위원장에게 "정 전 위원장은 조직만 생각했지, 피해자는 생각하지 않았다. 심리적인 불안감과 압박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교조 사정에 밝은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문제는 정 전 위원장이 자신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교조 징계 재심위원회는 2차 가해자 3인에 대해 징계위원회 제명 결과를 경고 조치로 낮추면서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피해자의 재심위원회 재구성 요구는 징계 양정 결과뿐 아니라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가 없었다’는 결정을 다시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홉 시간이 넘는 치열한 ‘성폭력 사건 해결안’ 논의의 결과는 대단히 모순적이다. 대의원들이 재심위 재구성을 부결한 것은 조직의 규정과 절차는 지켰다는 것이다.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가 없었다는 재심위 결정을 뒤바꿀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재심과정에 책임이 막중한 정진후 위원장과 재심위 위원장의 행위에는 경고 조치를 내렸다.

피해자가 전교조의 자기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며 채택해 달라던 특별결의문이 채택 되지 않은 것도 특별결의문 안에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가 있었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한 대의원은 “특별결의안도 부결된 것은 결의안 안에 조직적 은폐를 인정하자는 것이 담겨 있는데 대의원들이 조직적 은폐를 인정 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위의 결과를 전교조 대의원 대회에서 에서 부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교조는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별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부터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민주노총 중집 등에서 조직적 은폐 조장의 의미를 축소하고 명예회복을 우선에 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의원 대회는 이런 전교조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번 대의원대회 결과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그나마 전국의 전교조 대의원들이 모여 이번 사건을 다시 진지하게 토론하고 전교조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은 성폭력 사건 논의에 있어 긍정적이다.

피해자 지지모임은 조만간 회의를 열고 이번 대의원 대회결과에 대한 피해자의 입장을 반영해 이후 입장과 일정을 밝힐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9월 10일로 예정된 대의원 대회에서 이번 성폭력 사건의 후속 조치 결과를 보고 받고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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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 전교조 , 대의원대회 , 피해자 , 정진후 , 피해자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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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nseksrmrqhr

    어느덧 개인이 조직속에 묻히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구호가 쟁쟁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디서건 강령과 법률따로 실천하는 사항 따로....문제는 여전하다

  • 늙은학생

    니들 하는 짓거리들보니 전교조는 문닫아 마땅하다. 수업이나 열심히해 이제 니들이 어떤 집단인지 알았으니 헛소리들 하지말어. 문닫기 싫으면 예전 우리 선생님들 해직되던 그때 그 전교조랑 헷갈리니까 이름바꿔라. 전국꼴통꼰대협회. 좋잖어? 컄~~~~~퉤!!!

  • .

    이미 가해자가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의기양양한 여성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외눈박이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객관적인 실재를 조사 연구하여 결론을 내리는것이 지극히 합당한데도 피해자중심주의라는 주관주의를 떠받들며 피해자 진술이라면 무조건 수용하라고 강변하고 있지 않는가?

    법정에서도 피해자의 진술이 부분적으로 사실이 아님을, 엘리베이터 CCTV에 관한 진술이 인정되지 않았던것을 잊은것인가? 피해자를 탓하는것이 아니다. 다만 피해자의 말만을 전적으로 믿을수는 없다는것이다.

    2차가해니 머니 허튼소리 하지말고 정말로 증거가 있고 처벌할 의지가 있다면 그들도 죄다 법정에 세워야 할것이다.

  • 공허한주둥아리

    조직은 조직이다. 입과 머리와 행동은 다른길로......! "양극단은 대칭이다"를 다시금 느끼게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민주주의 식 처리방법 멋지십니다. 앞선 사람의 모습은 뒤를 따라가는 사람에게 좋은 귀감이 되겠지요.

  • .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는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던 이들이 왜 굳이 전교조에 요청을 한다느니 하는 언론플레이를 하는것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닌가? 분명히 이러한 기사가 올라올때마다 성폭력대책위는 보고 있을것이다. 비겁하게 언론플레이하지말고 당신들이 지목한 2차 가해자들도 법정에 세워서 판결을 받게 하라 그렇게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던가 순진한 노동자 청년 학생들 참주선동하지말고

  • 붓꽃

    초창기 양심적인 전교조 교사라고 하면서 인간 이하의 짓을 하는 남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후 남선생들이 뭉쳐서 여선생에게 보복을 하는 사건이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기자님, 이향원선생님 취재 및 연락 부탁드립니다. 개인의 진실을 짓밟는 조직의 논리는 허위일 뿐입니다. cj0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