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용산, 의자들>을 만난 유가족들

“우리는 잊혀지지 않을 거야. 우리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깜깜한 망루 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8개월 전 그 곳. 용산 4구역 남일당 건물 위 옥상이다. 그 곳에 의자들이 놓여진다. 그리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초대한다.


연극을 보고 나온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의 눈에는 눈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아들이 생각났어요. 아버지 영정 앞에도 한 번 못 와보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있는 아들이 말이에요.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죽은 아버지 대신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하고 싶겠어요”

  <용산, 의자들> 중

무대 위 의자에는 망루 속 사람들이 그렇게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앉는다. 세상을 맘대로 주무르는 재벌 총수며 강남에 건물 12채를 갖고 있다는 사모님이며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간 경찰총장이며 자신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고 간 조중동 기자들이며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통령까지 부른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서요. 곧 대변인이 올 겁니다. 대변인이 오면 입장을 발표할 거거든요”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상복을 입은 대변인이 도착한다. 하지만 대변인은...


전재숙 씨는 말한다.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요. 가슴에 맺힌 말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용산, 의자들>이다.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진 연출가 기국서 씨의 연출로 ‘극단 76’이 만든 용산 이야기가 지난 9월 4일부터 서울 대학로 창조아트센터 2관에서 열리고 있다. 6일에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초대되었다.

  극장을 찾은 유가족들

연극을 보고 나온 유가족들은 “고맙다”며 연출가며 배우들의 손을 꼭 잡았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다들 잊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기억해주고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자리에 함께 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말을 이어간다.

“원통한 현실을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멀리 떠나보내려는 음모가 있어요. 원통한 현실을 예술로 다시 만든다는 것은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에요. 현실을 극적인 꾸밈으로 애매하게 꾸며서는 안돼요. 연극은 관념이 아닌 역사적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연극은 예술인 거에요”

무대에 오른 망루 속 사람이 말한다.

“사람들이 기억할 거예요. 냉동실을 기억할 거예요”


혜화역 1번 출구 앞 극장. 그곳에서 망루 속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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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 유가족 , 연극 , 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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