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멎고
바람도 잠시 허리를 쉬는
햇살 맑은 어느 가을날 오후
너를 만나러
낯선 길을 달리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가올 과거와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상투의 외투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너 또한 구태의 속옷을
그냥 입고 있다면
어떤 입맞춤이나 섹스가
우리를 감동시키겠니?
그곳이 생강나무 노란 단풍 곱게 물드는
어느 깊은 계곡
이름 모를 암자라 한들
구월이 그렇게 가고
또 시월이 낙엽처럼 우수수 온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니?
* 아, 용산의 9월도 간다. 달라지는 게 없다. 가을햇살에 유족들 슬픈 그림자만 짙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