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살인교사’ 유죄”

[참소리]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을 다녀와서

  국민법정 모습
용산 참사가 있은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용산 참사는 사건 자체만으로도 시민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지만 그 이후 검찰의 대응도 시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검찰은 대규모 수사본부를 만들어 유가족 동의 없이 사망한 철거민들 시신을 강제 부검했다. 모든 혐의는 철거민에게 뒤집어씌워지고 경찰은 무혐의처리, 소수의 용역 깡패만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용산참사 재판과 관련해 국민참여재판을 무산시키고 법원의 명령에도 용산참사 수사기록 3천여 쪽을 제출하지 않았다.

진실을 은폐하고 모두가 철거민의 목을 죄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직접 법정을 세우고 형사재판절차에 따라 사건 실체를 밝히기 위해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이하 용산국민법정)이 준비되었다.

이를 위해 1만 명의 기소인 모집을 목표로 약 한 달간 각계각층의 시민들의 노력한 결과로 용산국민법정이 열리게 되었다. 기소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장규 용산구청장, 재개발조합, 건설사, 용역업체 등이었다.

10월 18일, 지역에서 서울은 먼 걸음이었지만 용산국민법정에 함께 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서울 명동성당 옆의 가톨릭 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요일이라 명동성당 근처는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 외출한 가족들로 북적였다.

그 가운데 명동성당 출입구에서 서성이는 경찰들도 보였다. 명동성당에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싸우는 이종회․박래군․남경남씨 등이 농성중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성당과 가톨릭회관을 오가는 사람들, 차량 운전자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다.

  경찰이 농성 중인 수배자 검거를 위해 명동성당 출입구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있다.

저렇게 사람들 얼굴 열심히 보듯이 용역깡패들에게 신음하는 철거민들도 살폈으면 용산참사는 생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톨릭회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법정이 열리는 7층으로 가기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했지만 엘리베이터 타는 곳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참을 기다려 간신히 올라간 7층은 재판부와 배심원과 취재진, 방청객들이 이미 가득해서 앉을 수가 없었다.

높지 않지만 낮은 이야기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국민법정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되면서 용산국민법정은 시작됐다. 7층 공간이 없어 방청을 못하는 사람들은 영상으로 법정 과정을 상영하는 1층 강당으로 갔다. 그러나 3백 명 정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던 1층 강당도 순식간에 빈자리가 없어졌다.

방청객 자리가 없어 창턱과 통로에 앉는 사람도 있었다. 용산국민법정 준비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시민 2만 5천여 명이 용산참사의 여섯 주범들을 기소를 하고, 265명이 배심원 신청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방청객들 숫자만이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니 놀라웠다. 여전히 용산참사는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재판부 소개와 배심원단의 입장․선서 등이 끝나고 용산참사를 불러온 경찰 강경진압과 검찰의 진실은폐에 관한 1부 심리가 시작되며 재판이 시작됐다. 법정 동영상 생중계는 매끄럽지 않았다. 중간 중간 영상이 끊기기도 하고 멈추면서 보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며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생중계 영상에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이 함께 진행되고 있어서 청각장애인들도 재판을 방청할 수 있었다.

  1층 강당에서 방청하는 모습

심리는 유가족들이 방청객석 맨 앞에 앉은 가운데 침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1층에선 증거로 제시된 동영상이 나올 때 방청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참사 당시 소방공무원의 ‘나몰라’식 대처, 경찰 폭력 등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 나오고 방청석에선 분노 섞인 외침과 탄식이 터졌다. 그리고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건물의 철거민들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증거로 채택되어 상영되자 법정과 방청석은 숙연한 분위기에 잠겼다.

참사 그날의 남일당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철거민들의 모습에 침착한 얼굴이던 유가족은 눈시울을 붉혀야 했고 방청객 몇몇도 고개를 숙이고 손수건을 적셨다. 조용히 눈가를 훔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9개월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철거민과 유가족들의 슬픔이 함께 전해지고 있었다. 이 슬픔을 그 동안 재판부는 얼마나 받아 안았고 알고 있을까, 수사기록 3천 쪽 은닉이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검찰에게 과연 심장이 있는 것인가라고 외치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1부 심리가 끝나고 약 10분간의 휴식시간 뒤, 2부 심리는 재개발 과정에서의 세입자 소외와 용역폭력 문제에 관해서 진행되었다. 재개발 과정에서 배제되는 서민, 철거민들에 관해 재개발과 부동산 관련 책을 쓴 손낙구씨를 비롯한 증인들이 출석했다. 재판은 기소 대리인단의 주장과 피고인들의 대리인인 변호인들의 변론 속에서 진행되었다.

배심원단의 평의와 그에 따른 판결주문 낭독이 있었지만 지역으로 돌아오기 위해 법정을 나서야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배심원단은 각 혐의에 대해 압도적인 유죄 판결을 내렸다.

지금 작성되고 있을 재판부의 판결문이 피고들에게 최종적으로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그에 따른 제도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용산참사의 슬픔을 함께하는 2만 5천여 명의 기소인들이 진실을 은폐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을 국민법정에서 다시 확인했다.

10월 중 판결이 나올 용산 참사 재판에 적어도 2만 5천명의 시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는 것을 용삼참사 실제 재판부도 알 것이다. 혹 재판부가 내 글을 보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용산국민법정 배심원단의 판결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
'살인 및 상해 교사죄' 유죄 35명 / '강제퇴거죄' 유죄 44명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 6명
'공무원의 폭행 가혹행위죄' 유죄 44명 / '살인 및 상해죄' 유죄 43명

천성관 전 서울지방검찰청장
'증거은닉죄' 유죄 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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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 철거민 , 용산 , 국민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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