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진료를 다녀와서

[미디어충청] 기억하는 건, 끝나지 않았다는 것!

전남 광양에서 매주 올라와 용산 철거민유가족들 진료와 평택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노동자들 진료를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해서 어떤 분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윤성현 들풀한의원 원장님이셨다. 몇 번의 전화통화로 들려오는 낮게 깔린 저음이 고향이 순천이었던 친구를 연상하곤 했다.

진료는 18일 아침 9시부터 평택 통복동에 있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이하 정특위)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등산복 같은 상의를 입고 있는 두 분을 한꺼번에 대하게 됐다. 첫 인상에 체격도 좋고 우락부락해 보이는 분이 윤성현 원장님이고 마르고 키가 큰 분이 정특위 의장님이려니 생각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분을 반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 차’했다. 내가 반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두 분이 알아채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서로 웃었다.

윤성현 원장님이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전씨이공산, 향사평위산, 평보지출환, 보심환, 교감단 등 등 비위 내상에 쓰는 환약들과 정신안정에 쓰는 환약들을 직접 만들어오셨는데 진료하다 보니 꼭 필요한 약들이었다. 77일간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을 하면서 다들 비위가 약해졌고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전쟁터와 같은,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밥 먹는 것조차 여의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소화불량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불안, 불면, 우울감, 분노 등 정신적 증상은 다들 몇 가지씩은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몸상태는 공장 안에서 투쟁할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때는 다들 의욕이 넘치고 웃는 얼굴들이 많았다. 다만, 어깨가 뭉친다, 허리가 아프다는 등 통증 위주의 증상이 주였었다. 그런데 77일간의 파업투쟁이 끝나고 공장 밖에서 그 분들은 지금 투쟁의 후유증을 더 심하게 앓고 있는 것 같다.

모두 50여명 진료를 했다. 재진은 모두 윤 원장님이 하시고 초진은 내가 했다. 정리해고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진료를 받으러 왔다. 무급휴직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리해고 된 50대 한 노동자는 진료 받다가 지금의 상실감과 분노에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만 했는데 노조 대의원을 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가 되었다는 게 너무 분해 하셨다. 며칠 전 구치소에서 출소한 30대 젊은 노동자는 하도 열불이 나서 구치소 담벽을 너무 세게 쳐서 손목이 너무 아프다고 침을 맞으러 오기도 했다. 노동자의 아내들도 정리해고 된 남편과 다를 바 없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 아이는 길을 가다 경찰만 보면 눈이 동그래지면 "나쁜 경찰, 나쁜 경찰"을 연발한다고 한다. 그리고 TV에서 쌍용자동차 뉴스만 나오면 "아빠, 복직된대!"하고 눈이 빠져라 본다고 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더니 아이들이 그랬다. 쌍용자동차 파업투쟁 이후 평택의 수많은 가정들이 정리해고의 고통을 가족 단위로 앓고 있었다.

파업투쟁은 끝났지만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미 40여명은 구속된 상태이고 앞으로 30여명은 더 구속될 것 같다고 한다. 정리해고명단에 오른 사람 중 절반은 무급휴직으로 전환한다지만 무급휴직이라는 게 일체 생계비 지원 없이 건강보험비 달랑 내주는 거라 아프면 병원이나 가라는 식이다. 그 와중에도 사측에서는 퇴직 신청하라고 뒷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11월에는 노동조합 선거가 있는데 사측 입맛에 맞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 한창이라고 한다.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 역시 최악이라고 한다. 전에는 1시간에 자동차를 17대 정도 생산하는 속도였다면 지금은 21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3명 중 1명이 정리해고 된 상태에서 일하는 강도는 더 세진 셈이다. 예전에 한 사람이 10가지 일을 했다면 지금은 17-18가지 작업을 한다고 하니 노동강도를 얼마나 쥐어짜는지 알만 하다. 잔업도 보통 3시간하던 걸 2시간으로 줄였다고 한다. 잔업은 수당과 직결되기 때문에 곧잘 하곤 했는데 3시간 할 때는 저녁밥이 나왔는데 지금은 빵과 우유 한 개씩만 주고 저녁밥은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다고 한다. 거기다 다들 월급이 30% 정도 줄어서 말을 못할 뿐이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20년 넘게 일만 해온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시키고도 모자라 남은 사람들을 쥐어짜내는 사측의 행태를 보며 자본가의 비정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는 ‘사이코패스’ 같기도 하다.

정리해고 된 한 노동자는 예전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 동료들이 해고될 때 함께 싸우지 못해 이제 자기들 차례가 되었다며 지난 과오를 뒤늦게 후회 아닌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무급휴직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해고된 동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하는 노동자에게서 노동자들의 사상,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함께 어려울 때 사람만이 가진 따뜻한 인간애가 생기는 것 같다.

지금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상실감이 큰 것 같다. 일터가 사라졌고, 함께 어울리던 동료들이 사라졌고, 가정의 웃음이 사라졌고, 그리고 지난 20여년의 인생과 더불어 삶의 희망이 저 멀리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들의 상실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하루간의 진료였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다시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아직은 현장에서 쥐어 짜이며 일하는 생존자들이 다시 부둥켜안고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또 가정들마다 다시 웃음이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평택의 해장국집이 일 마친 노동자들의 입담으로 술렁대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이것만이라도 바랄 뿐이다.

뱀발,
윤성현 원장님과 지속적으로 관심가지고 연대해가자고 했다. 초라한 진료지원일지라도 고마워하는 그 분들에게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기억한다는 건 끝나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의 투쟁에 관심과 애정을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말

박재만 님은 녹색한방병원 한의사입니다.

태그

쌍용차 , 정리해고 , 윤성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재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아픔

    아픕니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이런 극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수십년은 더 갈 것 같아서 아픕니다.

  • 투쟁!

    먼곳에서 올라오시기도 하고 고생이많으시네요. 그래도 서로 연대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위로해주네요.

  • cnj8924

    내용을 입력하세요

  • cnj8924

    내용을 입력하세요

  • 투쟁

    쌍차 동지들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할지...
    밖에 나오신 분들 치료 잘 받으시고.
    아직 안에 계신분들에 대해서도 꼭 알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서신도 쓰고 합시다.
    참 마음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