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차기 지도부에 바란다

[연속기고](1)혁신과 투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지도부가 필요하다

진실을 은폐하는 통합후보 프레임

6기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통합지도부를 위한 정파회의 무산, 불출마 선언을 한 임성규 전 위원장의 출마와 사퇴 소동, 일부 부위원장 후보자들의 집단 사퇴가 있었다. 매번 민주노총 선거 시기마다 민주노총 혁신 방향과 전 지도부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어왔지만 이 번 선거처럼 통합후보 여부가 쟁점이 된 적은 없었다. 새해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악으로 노동조합의 존폐를 걱정할 수준에까지 이른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총연맹의 통합력을 주장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통합후보론은 통합을 명분으로만 삼고 있을 뿐, 총연맹의 단결투쟁과 혁신의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경선 자체가 마치 총연맹 중심의 단결투쟁을 훼손한다는 주장은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왜곡이다. 더군다나 통합후보는 총연맹 혁신의 내용도, 노조법 개정-민주노조 사수 투쟁의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밑도 끝도 없이 정파가 문제라는 ‘반(反)정파’ 정서만이 존재한다. 만약 이 주장대로라면 노동운동의 노선도 없이 중립만을 외치는 조합 관료나, 대중조직에서 어떠한 공식성도 인정받은 바 없는 정파 간 담합으로만 후보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비판해온 이념 없는 노동운동, 정파 질서가 대중조직 질서를 왜곡하는 노동운동이다.

[출처: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총연맹의 통합력이 노동운동 정파들의 총연맹 지도부에 대한 승인 여부와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당장 통합후보를 주장한 임성규 보궐 지도부와 산별연맹대표자들부터가 그렇다. 임성규 지도부는 2009년 2월에 제 정파들, 산별연맹 지도부들의 승인 속에 단독출마로 당선되었다. 일종의 통합지도부다. 하지만 작년 민주노총이 보여준 투쟁은 노동운동의 그 어떤 통합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해고 문제에 대한 노정간 정면충돌이었던 쌍용차 투쟁에서도, 정권의 노조 와해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공기업 노조들에 대한 정권의 탄압에서도 총연맹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총연맹 중심의 단결 투쟁력 복원은 노동자운동 혁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총연맹이 민주노조 운동의 구심으로서 자기 역할을 잃어버린 것은 10여 년 간의 노동운동 노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대중투쟁의 강화보다 노사정 타협에 목을 매었던 노동운동 세력은 총연맹을 투쟁의 조직 주체가 아니라 대정부 협상의 주체로 협소화시켰다. “산별노조-진보정당건설” 전략 속에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보다 형식적 산별전환과 선거 운동에 매몰된 노동운동은 총연맹을 기층과 분리되어 산별연맹과 진보정당에 대해 공허한 지침만 내리는 기구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상징하는 노동운동의 ‘이념’은 사라지고, 총연맹은 한국노동운동 ‘이념’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사령부가 아니라, 저 멀리 상층에서만 있는 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파 문제로 은폐된 민주노총 위기의 진실이다.

통합적 지도력은 대중투쟁 중심의 총연맹 노선 정립에서부터

  민주노총 제6기 임원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19일 울산에서 합동유세를 벌였다. [출처: 민주노총 선거관리위원회]

그렇다면 총연맹이 명실상부한 민주노조 운동의 구심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총연맹의 성격을 변화시켜야 한다. 총연맹은 노정 협상의 창구, 정당의 선거운동 창구, 산별노조간의 협의 창구가 아니라 반정부 반자본 대중 투쟁을 조직하는 전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분명 십 수년간 민주노총의 주류적 노선이었던 노동운동 전략의 변화를 의미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노동운동의 지배적 노선이었던 사회적합의주의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렸지만,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해 민주당과의 협조를 강조하는 묻지마식 반MB연대로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총연맹은 민주당에 대한 구애에 다름아닌 현재 연대운동을 청산하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의 대중조직과 진보정당, 지역사회단체들을 중심에 세우는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노동자 운동 내적으로는 총연맹-산별노조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부터 현재까지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산별협약 쟁취를 중심으로 한 산별노조 건설 강화 운동 속에 노동자 총단결 투쟁 전선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별 노조를 넘어서는 산별노조 건설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산별노조는 기업지부 전환 논란, 쌍용차파업엄호 논란이 있었던 금속노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산별노조 내 단결에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산별노조 외부에 존재하는 현 총연맹의 지침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힘을 잃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총연맹이 투쟁 전선을 구축한다해도 조합원 대중이 없는 총연맹 상층만의 전선으로 협소해진다.

87년 이후 노동자 투쟁에서 굳이 산별체계가 아니었어도 단결투쟁을 훌륭하게 벌였던 수많은 사례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노동자의 단결은 체계 문제에 앞서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넘어 싸워야만 할 전선의 ‘명료함’과 이 전선을 사수하겠다는 지도부의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산별 건설 운동은 업종별 내적 질서의 쟁점보다도 총연맹 중심의 투쟁 전선 강화에 복무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총연맹과 산별노조 양자를 모두 강화 발전시키는 길이다. 이는 세계 노동운동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 브라질, 프랑스, 남아공 등 노동조합 운동이 변화하고 내적 변화를 겪었던 나라들에서는 총연맹이 전선 속에서 제 역할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했다.

올바른 관점으로 노조법 투쟁을 사수할 수 있는 지도부여야 한다

다음으로 총연맹이 이 번 노조법 개악을 어떻게 진행하느냐는 지도부가 밝힌 총연맹 노선과 지도력의 진정성과 실체를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총연맹 지도부는 올해 노조법 투쟁에서 노동운동 혁신과 통합적 지도력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연초에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악안이 민주노조운동에 미칠 영향력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법 개악 투쟁을 어떠한 관점에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개악안을 부정하는 단호한 총파업을 이야기하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근로시간면제위 참가를 통한 실리 획득과 2012년 총선에서 법 재개정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노조법 개악안은 전임자 수와 활동 영역을 제한하고 초기업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여 노동조합 운동 자체를 사회운동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민주노조 운동 노선을 노조 제도 근간을 흔들어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도가 이러할진데, 여기에 맞서 싸우는 민주노조 진영이 사소한 실리를 주고 받기 위해 정부와 타협한다는 것은 아둔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져 죽어가는지도 모르는데,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소소한 실리를 가지고 싸운다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처 정부 시절의 영국 노동자 운동이 이와 비슷했다. 대처정부는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연대파업제한, 클로즈드숍 제한, 자기 사업장 이외의 공간에서 피켓팅 금지, 노동쟁의 대상 제한 등 노동조합의 연대와 사회운동 성격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노동관계법을 개악했다. 하지만 영국 노동운동은 이에 대해 노동당 선거운동을 지원하며 노동법 각론을 다투는 것 외에 특별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산별노조는 식물노조가 되었고, 노동운동 전체의 힘도 잃었다.

따라서 차기 총연맹 지도부는 단기간의 실리가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의 연대정신, 사회운동적 성격을 지켜낸다는 관점에서 단호한 의지로 노조법 투쟁을 진행할 수 있는 지도부여야 한다.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투쟁 전선은 상반기 총파업일 수도 있고, 좀 더 긴 준비를 거치며 현장에서부터 임단협과 파업을 통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전술이 무엇이냐가 아니다. 투쟁에 임하는 관점이다. 단지 노조법 개악을 전임자 수의 확보 수준에서 대응한다면, 대공장은 기업별 협상을 통해 이래저래 감소 수준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게 될 것이고, 한국노총 사업장으로 대표되는 실리주의 노조들은 노조의 연대 정신과 전임자 관련 사측의 양보를 교환하게 될 것이다. 일부 사업장 노조는 살수도 있겠지만 민주노조 운동은 소멸할 것이다.

사회운동 관점에서 진행하는 노조법 투쟁은 총연맹 중심으로 얼마나 질서있게 임단협, 파업, 거리 시위 등을 할 수 있냐가 관건이다. 기업 규모별 차이, 산업별 차이,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차이, 단협 체결 시기 차이에 따라 노조법이 미치는 영향은 모두 제 각각이다. 산별교섭으로 보충교섭을 쟁취한 금속노조 일부 사업장과 존재하는 단협도 모두 해지될 상황인 공공노조 사업장이 다르고, 소산별의 소수 전임자가 사업장 교섭 대부분을 관장하는 노조와 수 십명의 전임자가 기업 교섭을 하는 대공장이 다르다. 이 모든 사업장들이 자기 사정에 맞게만 싸운다면 노조법 투쟁은 시작부터 패배한 것이다. 더욱이 이 개별 대응 과정에서 총연맹은 지위를 상실할 것이고, 산별노조는 완전히 분권화된 교섭 구조로 몰락할 것이다. 총연맹이 강력한 임단협 투쟁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산별노조의 교섭과 개별노조의 교섭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국적 투쟁 전선을 만들어야만 한다.

1월 28일 대의원들의 선택과 결의가 한국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좌우한다

총연맹 선거는 지도부의 선출과 더불어 노조법 투쟁에 대한 결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차기 지도부는 이를 위해 모든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통합후보 프레임에 갖혀 지도부 선거를 보이콧한다든지, 그 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회의론은 노동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민주노총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는 총연맹의 노선을 기존 노사정협조주의에서 총노동 투쟁 전선으로 바꾸어 낼 지도부, 노조법 개악 투쟁을 노동조합 운동의 사회운동 성격 강화라는 관점에서 돌파할 지도부, 이 모든 혁신과 투쟁을 통합적 지도력 속에서 펼쳐낼 지도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대의원대회에서 선택된 지도부는 총연맹 혁신과 노조법 투쟁을 자기 정파의 독선과 아집이 아니라 초정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만드는 통큰 배포와 실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기고는 분량 상 두 차례에 걸쳐 내보냅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민주노총 혁신의 중요 내용들로, 금융 세계화에 맞선 투쟁, 비정규직 운동, 정치세력화 전략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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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 지도부 선거 , 민주노총 , 6기임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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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노협

    오늘이바로 전노협창립 20주년
    되는날인데 다들 말로는 전노협정신을
    계승하자고 하던데...

    어디를보아도 전노협 창립20주년을맞아
    전노협 정신신을 실천하자는 글은 없구나.

    이것이바로 민주노총의
    위기를 반영하는것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기위해서는
    다시 전노협정신과 실천으로
    돌아가야만된다.

    이제 전노협은 지나간 시대적 유물인가

    민주노총 다시 서기위해서는 멋진글로
    좋은말로만 바란다고 다시서는것이 아니라
    전노협정신을 가지고 투쟁과실천을 조직할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 조합원

    내용이 절절합니다. 과연 현재 노동운동의 지도부라고 하는 세력들이 이 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첫째도 단결! 둘째도 단결! 셋째도 단결!
    첫째도 투쟁! 둘째도 투쟁! 셋째도 투쟁!
    첫째도 연대! 둘째도 연대! 셋째도 연대!
    잊지 맙시다.

  • 김선달

    글대로 두 선본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올해 열심히 싸울수 있는 지도부를 뽑아야겠죠. 전국회의 후보는 지난 과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 전노협 2

    통합후보란 뭣이냐?
    밀실 야합해서 한후보 밀자는 거 아니냐?
    밖에서 볼때 분열로 비치니 그리 해달라고... 아니다
    여러 정파에서 내가 한번 해볼란다고 나와서
    심판 받아 뽑힌 일꾼이 진짜 일꾼이다....
    통합후보 그런 소리 하덜덜덜 말아라!!!

  • 노동자

    정말 학부서클 수준의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