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민주노총 대의원에 절절한 호소

“더 이상 사건의 해결을 다음으로 유예하지 말아주십시오”

2008년 12월 26일.
김 모 민주노총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도피 과정에서 도피를 도와 줬던 전교조 소속 조합원에 성폭력을 가했다. 이 사건은 2009년 2월 5일 언론에 공개된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규명 특위는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서 전교조의 일부 핵심간부들이 성폭력사건 은폐조장 행위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9년 4월 1일 서울 등촌동 88체육관.
민주노총은 사상최악의 위기 속에서 46차 임시 대의원 대회를 열고 △ 김 모 성폭력 사건 후속 사업 채택 △5기 보궐 임원선거를 치렀다. 민주노총은 이날 첫 번째 논의 안건인 성폭력 사건 후속 사업을 놓고 원안인 ‘성평등 미래위원회’ 설치를 주 내용으로 하는 수정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안건 통과도 쉽지 않았다. 안건 논의 과정에서 이 모 민주택시본부 소속 대의원이 미래위원회 설치를 반대하고 여성위원회 강화를 요구하는 반대안을 제출했다. 반대안은 559명 중 13명만 찬성해 부결됐다. 당시 ‘성평등 미래위원회’ 설치 반대를 놓고 임성규 민주노총 비대위 위원장은 “성평등 미래위원회 설치 권고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비대위 위원장 사퇴 뿐 아니라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직도 사퇴하겠다”며 설치 반대 의견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임성규 비대위 위원장은 성폭력 사건 후속사업 안건이 통과되자 ‘김 모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한 피해자의 편지’를 공개했다. 피해자는 민주노총에 보낸 편지에서 “민주노총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하며 금전 보상은 정중히 사양하고 그 마음만 받겠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또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노총 조합원이기도 하다”면서 “저는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이 저에 대한 보상보다는 일정액수를 성 평등 사업 예산에 책정해 안정적 성 평등 사업을 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08년 12월 26일 발생한 김 모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의 성폭력 사건은 해결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2010년 1월 28일. 다시 서울 등촌동 88 체육관.
그로 부터 근 1년 이 지난 후 민주노총은 똑같은 장소에서 6기 임원선거와 △김 모 성폭력사건 보고서 채택의 건을 다룬다. 민주노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모 성폭력사건 보고서 채택의 건’은 2009년 4월 임원 총사퇴까지 빚었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조직의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보고서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성평등미래위원회의 협의를 통해 작성·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대의원 대회에서 1년 전 성폭력 피해자 지지모임은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2009년 4월 진상특위보고서를 채택한 책임을 다해 주십시오”라는 피해자 호소의 편지를 대의원 대회 유인물로 뿌릴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9월 28일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에 대한 46차 임시대대 결정사항 후속 사업 채택의 건'의 안건처리 방식을 놓고 공방하다 성원 부족으로 임시대의원대회가 유예됨에 따라 처리하지 못했다.

당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다음 대의원대회 전에 공개토론회 개최를 약속하고 그 결과에 따른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성규 위원장은 사퇴를 했고 이번 임원을 선출하는 이번 대의원 대회에서 후속조치 이행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저의 조직 민주노총에 위로받고 치유받아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습니다"

피해생존자는 대의원 대회에 앞서 27일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피해생존자는“앞으로 저와 같은 피해생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조직 내 성폭력근절 및 성평등한 조직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길 바랬을 뿐”이라고 민주노총 후속조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해생존자는 편지에서 “저는 2009년 4월 대의원대회에서 김 모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보고서가 채택되고, 후속사업이 결의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사건이 제대로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면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폭력사건 후속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지난 9월 대대에서 70여명의 대의원들이 성폭력사건 후속조치 이행건을 어렵게 발의하고 발제하였지만 토론조차 되지 못하였고 두 차례나 대대가 유예됨을 보면서 조직은 해결의지가 있는 것인지 실망스럽고 불안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피해생존자는 이어 “조직에 ‘성평등 미래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어떻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사건의 해결 과정과 조직의 노력과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 더 알아야 할 피해생존자인 제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민주노총도 성평등 미래위원회도 사건 해결을 위해, 성평등한 조직의 미래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불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피해생존자는 자신이 속한 전교조의 논의 과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해자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저의 소속연맹으로부터 저는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그 아픔이 내내 제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피멍을 남겼다”며 “민주노총에서라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진정어린 책임을 다함으로써 저의 가슴에 남아있는 피멍을 치유해주는 조직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고 호소했다.

피해생존자는 마지막으로 “저는 민주노총이라는 우리의 조직이 성폭력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치유로 나아가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고 싶다”며 “더 이상 이 사건의 해결 및 공론화를 다음으로 유예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부탁의 호소를 했다.

저는 지난 2008년 12월 6일 발생한 김○○ 성폭력사건의 피해생존자입니다.

< 대의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 >

민주노총 대의원동지 여러분!

저는 지난 2008년 12월 6일 발생한 김○○ 성폭력사건의 피해생존자입니다.

동지들! 저는 지난 4월 대의원대회에서 김00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보고서가 채택되고, 후속사업이 결의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사건이 제대로 해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폭력사건 후속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대대에서 70여명의 대의원들이 성폭력사건 후속조치 이행건을 어렵게 발의하고 발제하였지만 토론조차 되지 못하였고 두 차례나 대대가 유예됨을 보면서 조직은 해결의지가 있는 것인지 실망스럽고 불안했습니다.

내가 일해 온 민주노총이란 조직은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있는 것인지, 대의원들은 사건의 진상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저와의 약속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또 진상규명특위 이후 조직이 저에게 물질적 피해보상을 하고자 했을 때 저는 거절하였고 이후 조직에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조직 내 올바른 성평등 문화가 정착되는데 사용해달라는 저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로 인해 조직에서는 ‘성평등 미래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어떻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성평등 미래위원회’는 이번 사건에 대한 근본적 진단 이후 중장기적인 과제와 기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입니까? 성폭력사건 이후 사건 해결을 위한 후속조치들은 어떤 단위에서 점검되고 집행되고 있습니까? 저는 피해자 지지모임 동지들을 통해 들려오는 얘기 외에 공식적으로 조직을 통해 들은 바가 없습니다.
사건의 해결 과정과 조직의 노력과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 더 알아야 할 피해생존자인 제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민주노총도 성평등 미래위원회도 사건 해결을 위해, 성평등한 조직의 미래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저만을 위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겪어야만 했던 상처가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기에 가감 없이 사실만을 말했고 조직으로부터 그 상처를 위로 받고 치유 받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피해생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조직 내 성폭력근절 및 성평등한 조직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길 바랬을 뿐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가요?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저의 소속연맹으로부터 저는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그 아픔이 내내 제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피멍을 남겼습니다. 민주노총에서라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진정어린 책임을 다함으로써 저의 가슴에 남아있는 피멍을 치유해주는 조직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민주노총의 도덕성을 무너져 내리게 했고 민주노총의 위상을 바닥에 떨어뜨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때문인 것 같아 저도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폭력사건 때문에 도덕성과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고 조직의 위기를 걱정하고 계십니까?
동지들! 조직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왜곡된 조직보위를 내세운다고 조직의 도덕성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조직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각성하여 조직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조직의 도덕성과 위상, 신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폭력사건 해결을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던 임성규위원장님의 대의원대회에서의 약속을 믿어왔습니다. 그간 제대로 해결하지도 공론화하지도 못했지만, 성폭력사건 해결과정에 대해 반드시 평가해내고, 조직내에서의 공론화를 통해 1월 28일에 있을 대의원대회 전에 토론회를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반드시 대의원대회에서 공론화하고 채택하겠다던 그 약속! 그래서 전 오늘까지 기다렸습니다.

1월 28일 이번 대대에서 반드시 ‘성폭력사건 평가보고서 채택’건에 대한 안건 심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반드시 토론되어야 합니다. 대의원대회에서 두 번이나 성폭력사건에 대한 토론이 유예되는 걸 지켜보면서 너무나 불안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더 이상 다음으로 유예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민주노총이라는 우리의 조직이 성폭력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피해생존자인 저는 치유로 나아가 조금이라도 평안을 찾고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고 싶습니다.

대의원동지 여러분!
더 이상 이 사건의 해결 및 공론화를 다음으로 유예하지 말아주십시오.
지난 4월 대대에서 진상특위보고서를 채택하신 책임을 다해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며 우리 모두가 살아나는 길입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이 이번 대대에서 꼭 이루어지기를 거듭 부탁! 부탁!! 또 부탁드립니다!!!

2010년 1월 27일 피해생존자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