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동체운동은 자본주의 환경문제의 대안인가?

[연속기고](14) 녹색성장, 환경적인가 환경의 적인가 4강 ⑧

2010년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겨울 대중 강좌 -녹색 성장, 환경적인가? 환경의 적인가?-, 4강 두 번째 강좌로 “생태공동체운동은 자본주의 환경문제의 대안인가?”라는 주제로 권오범(새움회원)의 강의를 듣고 토론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대안전략과 조직으로서의 생태공동체운동을 검토한다

기후변화, 오일 피크와 같은 전 지구적 생태,에너지 위기가 현실화되고, 광우병 문제, GMO 문제와 같은 먹거리 문제가 대두되면서 친환경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주거까지 해결하는 생태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큰 힘을 받고 있습니다. 2007년 기준으로 국내에 생태공동체가 주로 유기농 농산물 도농 직거래를 위주로 성장한 생활협동조합이 221개이고, 생태마을이나 지역통화공동체같은 공동체들이 대략 50~60여개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도 2008년의 광우병 위험 소고기 수입 문제로 인해 생협의 조합원수나 거래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아마도 2010년 1월인 지금 시점에서는 더 늘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국제협동조합연맹인 ICA에 가입된 단체의 조합원수가 대략 10억명 근처고, 경제규모로 보았을때 세계10권 국가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농협과 같은 현재상태로서는 도저히 협동조합이라고 보기도 힘든, 혹은 협동조합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단체도 가입되어 있으며, 국내에서 제대로 된 생활협동조합 중 icoop 생협만이 가입되어 있는 점을 볼 때, 이 수치가 그대로 의미있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요.

이처럼 생활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생태공동체가 발전함에 따라, 국내외적으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경문제의 대안으로서 생태공동체운동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야생초편지>의 저자이자, 생태공동체연구센터 소장인 황대권 선생님은 반대만 있고 대안이 없는 한국 사회운동의 성찰과 모색 차원에서 생태마을, 생활협동조합, 공동주거, 빈민공동체, 도시농업운동 등 생태공동체적 대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생태주의자인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자본주의적 농업의 반생태적 문제를 마르크스의 물질대사의 균열로 설명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업의 대안은 '자립적인 소농과 그들의 공동체'이며, '상호부조의 협동적 네트워크',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협동조합운동'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아야 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세부적인 표현과 대안전략과 조직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국가와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생태)공동체운동과 조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 대안사회로 이행해야 한다는 류의 주장들은 김종철 씨외에도 강수돌, 우석훈, 머레이 북친, 가라타니 고진 등 과 같은 진보좌파 진영의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생각들입니다.

따라서, 생태공동체운동의 활동가들이나 이들 진보좌파 진영의 지식인들의 주장대로 현재의 생태공동체운동이 정말로 자본주의의 모순 특히 그 중에서도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전략과 조직이 될 수 있는지, 현 상황을 검토해 보았을 때 얼마나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생태사회주의적 입장에서 검토하고, 평가를 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나 오해를 살 수 있을까봐 미리밝혀두자면,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왜 노동자계급과 조직에 기반하지 않느냐'는 식의 생태공동체운동의 다른 기반과 인식을 비난하고자 하는 평가는 아니며, 상호 간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평가라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국내 생태공동체 운동의 현황

국내의 생태공동체 운동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생태공동체의 정의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연구자, 이론가마다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저는 길먼이라는 사람의 정의를 따라 '자연환경과 조화된 인간 활동, 건전한 발전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인간 규모와 완전한 정주체계'라고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국내의 김성균 선생이라는 분은 '농촌, 도시 또는 교외 단위에서 진행되는 계획적이거나 지속가능한 공동체'라고 정의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태공동체(Ecological Comminity)라는 용어가 쓰여지는 맥락에 대해 정리를 할 필요가 있는데요. 저는 황대권 선생님의 정리를 따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황대권 선생님에 따르면, 구미에서는 생태공동체(Ecological Community)라는 용어는 순수한 생태학적 의미, 즉 생물군집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즉 생태공동체라는 개념에는 순수한 생태학적 의미와, 사회생태론적 의미 두 가지가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회생태론적 의미에서 생태공동체란 인간사회가 다른 생물 종의 니취(생물군 안에서의 생태적 지위)를 침해하지 않도록 (혹은 침해를 최소화 하도록) 생태적 원리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사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영미권에서도 생태공동체를 생태사회론적 의미로도 쓰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 대체로 생태마을(Eco-Village) 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며, 반면에 한국에서는 생태공동체를 ① 이념적 의미 ② 생태적 지역 공동체의 의미 ③ 계획공동체의 의미로 다양하게 쓰고 있다고 합니다.

우선, 이념적 의미를 살펴본다면, 생태공동체는 일종의 대안사회의 이념이라는 겁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지양할 새로운 사회가 생태공동체 사회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생태공동체운동을 평가하는 기준 역시 바로 이 이념적 의미에서의 생태공동체운동입니다. 즉, 국내의 생태공동체운동이 정말로 자본주의 사회를 지양할 대안 사회, 혹은 대안사회로 하는 이행기 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는가?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 입니다.

두번 째로, 생태적 지역 공동체의 의미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범위에서 구현되는 지역 공동체라는 겁니다. 지역에 자리 잡은 생태공동체는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민주주의와 지역자립 경제를 추구한 다는 의미이며, 결국 국가의 강화가 아니라 마을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셋째는 계획공동체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계획공동체는 생태적 의식을 가진 일단의 사람들이 생태공동체 원리에 근거하여 의도적으로 만든 공동체입니다.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계획공동체의 규모는 작지만 생태공동체의 원리와 엑기스가 그 안에 집약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생태공동체의 전형이라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사실 사회주의운동도 일종의 계획 공동체를 전 세계적으로 건설하자는 공동체운동이고, 바로 그 공동체 운동에 생태적 성격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태공동체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진보좌파 진영은 이론적, 인식론적 기반과 실제 사회운동에서의 실천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의 교류, 비판,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쨋든, 생태공동체는 4가지 차원의 맥락 즉, 생태학적, 이념적, 지역공동체적, 계획공동체적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적절히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용어정리가 끝났으니, 이제는 현실의 생태공동체의 유형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은 생태공동체의 유형을 크게 정주형과 기능형으로 분류합니다. 정주형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특정공간 혹은 지역에 함께 거주하는 형태의 공동체이며, 기능형 공동체는 공동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모이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 함께 살지는 않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주형 공동체는 계획공동체, 공동주거, 생태마을 등이 있고, 기능형 공동체는 영성수련공동체, 생활공동체, 마을만들기운동, 지역통화운동(LETS) 등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당연히 정주형 공동체의 그것이 좀 더 근본적인 변화와 친환경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내에서 생태공동체의 자기완결성 정도를 고려하면, 기능형 공동체는 생태공동체의 전형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으며, 실제 정주형 공동체의 생태발자국 지수와 기능형 공동체의 생태발자국 지수를 비교해 본 결과 정주형 공동체가 더 친환경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중에 대안 사회로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계획공동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황대권 선생의 경우에도 협의의 생태공동체는 주로 계획공동체를 일컫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비단 공동체의 생태적 성격 뿐만 아니라 공동체성 역시, 생태마을로 조직된 세 마을을 비교해 보았을 때 계획공동체의 특성은 뚜렷합니다.

  세 곳의 생태마을의 공동체성 비교(최승호, 2007)


여기서 한마음공동체는 전남 장성에 있는 마을인데, 교회 차원에서 농민운동을 하다가 생산자 협동조합기반의 공동체로 전환한 사례이고, 풀무마을은 풀무학교 졸업생들이 중심되어 기존 마을을 생태마을로 전환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산안마을은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조라는 분이 제창하여 만들어진, 야마기시회가 한국에서는 66년부터 특별강습연찬회를 개최하고 나서, 84년 경에 야마기시즘 경향실현지로서 만든 계획공동체 마을입니다.

물론, 산암마을은 기존 구성원들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마을 주민으로 공동체적 삶을 살 수 있고, 체험활동이나 교육 등을 외부에 공개하지만, 마을 주민이 아닌 농업 생산자와의 조합을 결성하거나, 같은 브랜드로 판매하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현재 산안마을의 주민은 약 50여명 수준으로 알고, 인원 증가 추세 없이 정체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안마을이 사회주의적 공동생산과 무소유(자신들은 일체적 생활이라고 표현)를 실천하면서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산안마을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유기농 유정란을 생산한 곳이기도 합니다. 어쨋든, 계획공동체가 많은 생태공동체 유형 중에서 가장 대안사회의 모습에 가깝다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이런 정주형 생태공동체는 국내에 20여개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공동생산과 공동소유는 더더욱 없는(산안마을이 유일할 수도 있음)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대안사회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지만 한국 사회에 고립되어 있는 계획공동체를 제외하고, 현재 국내에 가장 많은 생태공동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생활협동조합과 생태마을(기존마을의 생태적 전환)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생활협동조합은 2008년 이준으로 국내 모든 친환경농산물 거래액 2조 9,330억원 중 약 11%를 담당하고 있으며, 저농약 식품 외에 무농약, 무기농식품의 경우 이 비율이 훨씬 더 증가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조합원수는 같은 년도 기준으로 31만세대이며, 이를 4인가구 기준으로 계산하면 120만명 정도가 직접 생협으로 식재료를 공급받는 인원이겠지요.(대학생협,의료생협 빼고) 대략 02년도 이후의 추세를 보면 전체 친환경유기농산물 유통시장에서 생협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통업체(특히 대형할인마트)의 취급과 생산자조직(농협)의 거래액 증가로 인해 줄으드는 추세였고, 조합원수의 증가 추세도 주거지 인근의 유기농 매장의 개설 등으로 인해 약간 둔화되다가, 08년도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나, 멜라민 파동 등과 같은 먹거리 문제의 이슈화로 인해 조합원 수나, 거래액 모두 상당히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대학생협이 대학교 식당을 운영하며, 각 생협의 주거지 인근의 매장을 늘리는 추세이므로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생협을 통해 식재료를 구매(섭취)하는 인원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생협의 성과는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분명합니다. 농민들에게는 친환경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매처가 되어주고, 도시 민중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의 믿을만한 식자재를 공급해 줍니다. 특히, 한국 농산물 유통의 고질적인 병페인 중상상인에 의한 폭리와 농민들에 대한 횡포를 해결해 주는 측면은 매우 큽니다. 2005년도 연구(조완형)에 따르면 일반 소매업체의 유통마진율이 56%인 반면에, 한살림의 유통마진율은 30%라고 합니다. 즉, 최종 소비자가격이 100이라면 일반 소매업체가 농민들에게 구입하는 가격은 44인 반면, 한살림이 구입하는 가격은 무려 70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 소매업체는 친환경농산물 외에 일반 농산물을 압도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좀 더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는 동기를 생협이 제공해 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런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외에 생협의 활동분야로는 공동구매, 의료생협, 공동육아, 생산활동인데 이 중에서는 생산활동의 비중이 가장 떨어지는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생협이 기본적으로 소비자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한데, 생협운동 내부에서도 생산-소비협동조합 복합체로 가야한다는 의견도 있고, 한살림의 워커즈 콜렉티브 등 작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생협이 상업자본, 특히 농산물 유통자본의 폐해를 시정하고, 친환경농업생산을 고무한 것은 분명한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자본의 폐해만 시정한다고 하여 대안사회가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한국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는 농협의 진정한 농업 생산자협동조합으로의 전환 및 개혁이나 농촌공동체 혹은 마을의 공동체화 등과도 연결된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생협 외에 국내의 대표적 생태공동체운동으로는 생태마을/마을 만들기 운동이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계획공동체들 역시 일종의 생태마을입니다. 계획공동체의 경우 생태적인 이념과 철학이 동질적인 구성원들이 주민자치적으로 마을을 조성하거나, 이를 염두에 두고 마을을 조성한 후 입주자들을 구성하여 생태공동체로 형성되는 계획적인 생태마을을 구성하게 되는 것으로, 국내의 경남 산청 간디생태마을이나 무주군 진도리 생태마을 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만, 국내에서 많은 참여와 시도가 있는 생태공동체 운동은 기존마을의 공동체를 활성화시켜, 생태마을으로 전환시키거나 생태마을/마을만들기 운동입니다. 주로 농촌의 기존마을 주민들이 생산방식을 환경농업으로 바꾸거나 마을환경을 개선하거나, 삶의 방식을 생태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기존 마을 공동체가 생태마을로 전환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전남 장성의 한마음 공동체, 충남 홍성 문당리,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강원도 화천군 용호리 등을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표적 사례로 한마음 공동체를 살펴보면, 60가구를 중심으로 한 생산자 협업공동체, 3,000세대로 이루어진 생활공동체(생협), 교육공동체(한마음 자연학교)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생산, 소비, 유통, 교육을 통합하는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태마을과 마을 만들기 운동을 굳이 구분을 하자면 사실상 저소비, 자원순환형의 지역 공동체를 도시에서 만들기는 거의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태마을이 농촌에서 이루어지는데 반해, 마을 만들기 운동은 생태적 지향이 좀 덜 강조되면서,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체 만들기,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생활공동체만들기 등을 실천하는 사회운동이며, 관익주민연대, 태백지역사회연구소, 금호/행당/하왕 주민기획단과 그를 바탕으로 설립된 논골신협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 하나는 바로 정부 정책에 의한 지역사회개발사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 중 하나가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인데요. 전국에서 30개의 특색있는 농촌 마을을 선정하여, 각종 규제 완화, 재정지원, 행정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으로 지역사회 공동체를 발전시킨다는 뭐 그런 사업이었습니다. 산림청에서도 '산촌 생태마을' 사업이라고 주로 낙후된 산촌 마을의 자연환경을 관리하여 관광자원이나 소득창출자원으로 만들자는 그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런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에서 떨어진 신청 마을을 지자체(도) 차원에서 추가 선정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 마을의 마을 만들기는 정부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사회개발사업이기도 합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국가와 생태공동체와의 관계라는 쟁점이 바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산 물만공공동체는 철거 지역 주민들이 투쟁을 통해 공동체를 결성하고, 생태마을로 전환하려고 시도한 바로 귀중한 (생태)공동체운동, 철거민 운동의 사례입니다. 2007년에 철거지역마을과 재개발을 다뤄 개봉한 영화 <1번가의 기적>의 주요한 로케이션 장소가 되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바로 그 영화 촬영 유치나 문화관광부의 지원사업 신청, 신규 부지 매입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절차 때문에 비대위가 구성되고, 갈등이 생기는 등 공동체 운동이 정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 부산 물만골공동체는 전형적인 달동네이고, 저소득층 밀집지역이기 때문에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공동체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사회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뿐더러, 원래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할 수도 없겠지요.

이는 대부분의 생태마을, 마을 만들기 운동에도 해당되는 쟁점이라고 봅니다.(예: 성미산 마을도 건교부 지원받은 사례) 생태공동체운동이 정말 대안적 사회운동이 되려면, 조합원이나 공동체 구성원만을 위한 배타적인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나 시장에 친화적인 관계 및 발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더불어 발전하는 사회운동 및 조직이어야 하겠지요.

이 문제는 나중에 더 다루기로 하고, 다음으로는 기타의 생태공동체 운동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지역화폐운동(LETS)은 국정 발행 화폐를 대체하는 대안화폐를 지역공동체와 대면관게에 기초해 발행하고, 유통하는 지역경제운동입니다. 지역의 구성원들이 화폐없이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하여, 지역 내의 자원, 노동력을 순환시키고, 대면관계와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국내에서는 대전한밭레츠, 송파품앗이, 광명그루, 미내사클럽 등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는 종교적 신념과 가치에 근거하여 운영되는 영성공동체, 영성 생태마을 등이 있습니다.


3. 생태공동체운동의 이념과 전략

다음으로 국내의 생태공동체운동 혹은 생태공동체운동을 대안적 사회운동으로 주창하는 지식인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전략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강연을 시작 할 떄, 김종철 선생에 대해 잠깐 이야기 했는데요. 녹생평론을 통해 LETS를 국내에 선구적으로 소개하였고, 공동체운동 및 협동조합이나 자발적 결사체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분이므로 이 문제를 다룰 때 이 분의 주장을 꼭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제가 녹색평론이나 기타 지면, 강연 등을 통해 김종철 선생이 논의한 '생태공동체 담론' 전부를 정리, 요약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적절치 않으므로 최근에 주장하는 논의를 주로 검토하겠습니다. 일단 이 분은 농업이 중심되는 사회, 특히 자립적 소농과 그들의 공동체가 사회가 생태적 대안이 된다고 보고, 성장 경제(경제성장이 필수인 사회)의 대안으로 순환경제를 이야기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여전히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예속되어, 경제성장을 필수적으료 요하기 때문에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고, 조합원이 경영자, 노동자, 종업원이 되는 협동조합과 같은 조직이 주주자본주의에 기반한 주식회사나 기업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가나 자본에게 의존하지 않는 로버트 오웬식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며, 농업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농촌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성미산 마을 같은 자발적 결사체를 만들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텃밭 바꾸기나 생태적 삶을 위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김종철 선생의 이런 논의는 대략 협동조합주의, 생태주의, 공동체주의(혹은 아나키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사회주의나 노동자계급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만 일종의 반자본주의적 대안사회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철 선생은 이반 일리치나 간디에 근거하여 근검절약하는 자립적 생태공동체의 연합을 이상적인 상태로 본다던가, 탈성장 혹은 반경제성장을 주장하지만,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생태주의와는 최근에 더욱 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김종철 선생의 이런 논의에서 국내에서 생태공동체운동의 이념과 전략을 상당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즉 1) 생태주의에 기반을 둔 탈성장, 혹은 반성장주의 순환경제으로 이행 2) 친환경적 농업과 농촌을 중시 3) 자발적 결사체, 혹은 자립적 공동체를 늘려나가는 점진주의적 전략 4) 사적 소유와 기업을 공동체적, 협동조합적 소유와 조직으로 대체

예를 들어 보면 실제 주민자치운동이나 마을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는 강수돌 선생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생태마을을 꼽는 강수돌 선생은 '지속가능한 축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쟁(시장) 패러다임도, 명령(국가) 패러다임도 아닌 진정한 제3의 길, 즉 자율(자치) 패러다임에 기초'해서 사회를 재구성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대안 사회의 밑그림은 '200개의 국가들이, 200만 개 이상의 연대하고 협동하는 자율적 생태공동체로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김종철 선생과는 좀 다른 것은 요즘 많이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적녹보 연대'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다는 강조에 있습니다. '생산성 향상의 파괴적 성격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노동운동 내부의 가부장주의와 반생태주의를 극복하려는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하며, 이윤(자본)논리 반대 운동과 지배관계 반대운동을 여성운동이나 생명운동과 공동 추진해야'된다는 강수돌 선생의 주장은 '적녹보연대'와도 상당한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적 발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비시켜 이 2가지 발전형태의 양립불가능성을 주장하고, 국가와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생태공동체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생태공동체운동 이념은 다분히 반자본주의적이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안사회의 이념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내의 대표적인 생태공동체운동인 협동조합운동과 생태마을운동을 대립적이거나,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고 않으며, 서로 통합되고 총체적으로 결합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므로, 국내의 생태공동체의 현황과도 조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현실의 생태마을과 생활협동조합이 어떤 협동적 관계를 맺고, 어떤 식의 실천을 하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런 지식인들 외에 생태공동체운동 내부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운동을 어떻게 위치지우고 있느냐는 다른 차원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두레생협의 이사인 김기섭씨의 강연 내용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분은 자본축적과정(혹은 자본운동)을 마르크스의 자본의 일반공식〈M―C―M'〉에 근거하여, 노동자로부터 노동력을 상품으로 하여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분할하여 지배하고, 그렇게 생산한 상품을 노동자에게 판매하여 소비과정에서 노동자를 분할하여 지배하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만 실패해도 자본은 자본일 수 없는데, 이분에 따르면 국내의 생협운동은 자본운동에 대〈C―M'〉과정, 즉 소비와 유통의 영역에서 “자본이 생산한 상품을 사지 말자!”는 보이콧 운동, 자본 순환의 마지막 단계에서 특정 자본의 순환을 저지하자는 운동, 나아가 자본의 자기증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품(물품)을 생산자와 연계하여 개발 취급하자는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이러한 생협운동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화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일시적 보이콧 혹은 저지 운동, 부분적 대안 상품의 취급만으로는 이 자본운동을 극복하기엔 부족하고, 자본의 유연한 대응으로 ‘안전의 상품화’가 진행되면서 ‘상품화한 안전’을 선택하는 영리한 소비자가 생겨나고, 또한 ‘생활 속 노동’은 더욱 치밀하게 자본에 ‘매수’되어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자본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규제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협력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유통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자를 강제하지 못한다. 일하는 것을 강제하는 권력은 있어도, 구매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은 없다는 것이죠. 유통과정에서 노동자의 첫 번째 투쟁은 강제된 구매를 거부하는 것이고, 두 번째 투쟁은 구매를 강제하게 하는 제도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다시 노동자여야만 인간의 소외를 극복하고 사회를 재구축할 수 있습니다. 유통과정에서 노동자의 세 번째 투쟁은 강제된 구매와는 전혀 다른 구매를 행하는 것이고, 이것은 나아가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노동을 조직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산하는 소비자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선택하는 소비자로 머무르느냐가 생협운동이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느냐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분의 논의에 따르면 이제부터의 생협운동은 , 즉 소비와 유통의 영역을 더욱 굳건히 다지면서, 새로운 , 즉 생산과 노동의 영역에서, 탈상품화를 수행하는 '생활자 노동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노동력 상품을 자본에게 팔지도 말고,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을 사지도 않는” 두 가지 운동이 결합되어 생산-소비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것이고, 또,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생산-소비 협동조합의 구조적 안정화를 위해, 기존의 신용제도를 대신하는 지불결제 시스템의 공동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외에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국제연대, 예를 들어 '공정무역' 등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 분의 논의를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몇 가지 이견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생협운동에 대한 평가나 전망이 제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문제는 그저 학술적인 논의나, 이론에 대한 평가는 아니므로 실제 생태공동체운동의 실천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시도와 노력이 아직 현실화되거나, 많은 성과를 낳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론적' 수준에서나나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이견과 생태공동체운동이 진정으로 대안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가능성고 한계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생태공동체운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평가와 제언

우선 저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수단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고, 또 그런 관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해 공부해 왔으니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해 보겠습니다. 그를 위해선 한 2가지 문제를 짚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는 '마르크스주의는 국내 생태공동체 운동의 한 축인 협동조합운동에 원래 적대적인거 아니냐'는 오해와 자본주의의 환경문제는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메커니즘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첫번째 '오해'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마르크스에 근거하여 협동조합운동을 폄하하거나, 또는 그가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폄하, 무시했다는 견해는 완전한 오류이고, 허위사실입니다. 물론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프르트와 브뤼메르 18일>을 쓸때까지만(1852년) 해도 노동자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이나 1871년 프랑스 내전, 또 자본론에서는 협동조합의 유용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모든 언급을 인용할 수는 없고, 자본론에서의 중요한 언급을 살펴보겠습니다.


<자본론 3권, p.546)

또한, 마르크스가 프루동식 아나키즘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비판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생전 당시 러시아의 농민공동체인 미르에 근거한 사회주의 이행의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평가를 했던 것으로 보아, 모든 종류의 공동체 운동 혹은 공동체에 근거한 사회변혁의 가능성에 부정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자본주의의 환경문제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또 비판하느냐의 문제인데 이것은 아마도 황정규씨의 강연에서 충분히 다루어진(질?) 것으로 보고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마르크스의 철학, 역사유물론,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풍부한 논의 중에서 생태공동체 혹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조건(혹은 기준)으로 꼽을만한 것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인간과 자연의 소외 극복
2)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양자의 이해 대립 해결
3) 에너지 소비의 최소화
4)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의 합리화

아마도 구체적 표현이나 세부적인 강조점, 혹은 생태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전략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생태적으로 건전한 사회에 대한 구상으로서는 생태공동체운동에서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생태공동체운동이 지금 보다 더 발전하여, 정말로 대안사회으로의 이행에 중대한 기여할 수 있기 위한 조건, 현재적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먼저 대안사회로의 이행의 가능성, 혹은 앞으로 한국 사회의 변혁에 이런 점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첫째로, 생태적 의미에서의 노동자-농민연대를 실현하는 사회운동을 전개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크스는 도시(노동자)와 농촌(농민)의 분리와 양자 간의 이해대립을 매우 중요한 사회문제이자, 물질대사의 균열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해야 될 중요한 생태문제로 이해하였습니다. 여러가지 한계와 단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생활협동조합이 도시와 농촌의 연대와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도시지역 소비자(노동자)들이 안정하고, 저렴한 가격에 식자료를 공급하고, 농민들이 친환경,유기농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안정적인 판매처와 유통마진 측면에서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 생활협동조합의 기여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푸르마일리지를 최소화 해야할 필요성 및 도시의 과밀한 인구 집중 해소 및 농촌과의 영양, 자원순환을 이루기 위해선 도시와 농촌의 연대 및 생태적 의미에서의 노동자-농민 연대가 매우 중요하므로 생활협동조합이 이 문제에 대해 기여할 바가 앞으로 크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또한, 생태공동체운동 내부에서도 생산자협동조합을 포괄하는 협동조합 복합체를 지향하고, 부산에서는 노동운동진영에서 노동자생협을 운영하는 등 국내에서도 몇 가지 사례와 시도들이 있으니 이런 것들을 잘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두 번째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에게 협동조합적 상업보다는 협동조합적 생산 및 공장을 취할 것을 권하였는데, 이는 전자가 근대 경제체계의 표피만을 건드린다면 후자는 그것의 기반을 침식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협동조합적 노동은 전 국가적인 수준에서, 따라서 전 국가적 생산수단으로 발전되어야만 한다."라는 주장도 하였는데, 마르크스는 소비자협동조합보다는 노동자 생산협조합의 긍정성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의 김기섭씨의 강연자료에서도 보고 있듯이 국내의 생협들도 소비자협동조합 뿐만 아니라 생산-소비 협동조합 복합체로 발전하고 싶어 하고, 그런 계획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자본가계급이나 정부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강권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쨋든 정말로 자본주의가 붕괴하였을 때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이나 협동조합 기업의 경험이나 사례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협동조합 공동체가 전 국가적으로 존재하고, 또 협력할 수 있다면, 대안사회로의 이행에 큰 힘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세번째로, 오일 피크로 인한 에너지 위기나 식량 위기 등이 정말로 현실화 될 경우 도시 노동자계급 및 빈민층들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식자재 혹은 다른 필수적 사용가치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을 생태공동체 조직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굳이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장기 파업 노동자들과의 협약체결을 통해 파업 시 생계가 곤란해 지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것이 생태공동체입니다.

네번째로, 농촌 지역의 생태마을이나 계획공동체에서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및 신재생에너지, 친환경적, 자원순환형 농업과 생활양식을 미리 테스트 해 볼 수 있고, 대안 사회로의 이행에 있어 이런 분야에 대한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습니다.

다섯째, 북한과의 통일과정에서 있어 협동조합운동이나 생태공동체운동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유지된 상태에서의 통일이 추진되더라도, 현재 북한의 국유화 혹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공장이나 생산수단, 농장을 사적인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 소유 기업이나 종업원 소유 기업 등으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현재 국내의 생태공동체 운동이 보완해야 될 지점과 한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생태공동체운동은 대체로 점진주의적으로 대안사회로 이행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절박함에 대해 알고 있듯이, 점진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과 환경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지구가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기후변화가 임계점을 넘어서지 못 하도록 묶어두는 조건인 섭시 2도, 혹은 대기중 이산화탄소 450 ppm를 실현하기 위해선, 적어도 15~20년내로 아주 급진적인 생산양식과 사회체제의 변화가 필요한데, 점진주의적 전략은 이에 부응하지 못 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두 번째, 생태공동체적운동의 대안사회로의 이행 전략은 일종의 필수적 사용가치와 토지, 생산수단을 하나씩 탈상품화해 나가자는 '공유지 탈환'(reclaming the commons)전략이나 해방구 전략처럼 해방된 지역을 하나씩 늘려나간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비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이행할 때 단순히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하나씩 늘어난 것이 아니라 '본원적 축적'이라는 국가가 개입한 정치,경제,사회적 갈등과 계급투쟁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과연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적 생산양식, 사회로의 이행에 '본원적 축적'과 같은 국가의 강권적, 폭력적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국내의 정주형 생태공동체가 재생가능에너지, 친생태적 대안에너지 체계를 아직 제대로 만들지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쓰레기 제로'라는 측면에서 일반 음식물쓰레기 처리나 재활용과 퇴비전환 활용의 측면에 있어서는 많은 정주형 생태공동체가 잘 실천하고 있으나, 친생태적인 대안에너지 개발 및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시키는 에너지 시스템을 아직 큰 진전이 없다는 지적입니다.(경남 산청의 민들레 공동체는 예외적으로 이런 부분이 잘 된다고 함.) 실제로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력생산이나 에너지 시스템은 국가에 의해 중앙집중적으로 통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주형 생태공동체(당연히 기능형도) 내에서 분산형이자 친생태적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넷째, 아주 높은 수준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고 있는 산안마을도 철제 제품이나 몇 가지 필수 재화들은 공동체 밖의 시장에서 구매를 해야합니다. 즉 현대 인간에게 거의 필수적인 몇몇 사용가치 철, 종이, 컴퓨터 등등 이런 재화들의 생산, 특히 기간산업은 국유화되어 있거나 거대 자본에 의해 소유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런 산업체를 어떻게 협동조합화, 사회화 시킬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필요한데, 이 문제를 협동조합이나 생태공동체가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해결하려는 발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운동 혹은 조직과 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운동은 생태공동체 운동에도 매우 중요하고, 또 상호 간 발전의 도움이 되는 연대의 대상이자 주체입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를 근원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이며, 국가와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혹은 이 둘을 폐지한) 계획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사회운동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물론, 역사적 오류나 실패가 있고, 한계가 있었지만,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도 이상적인 대안 사회의 생태적 의미와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있는 만큼 양자간의 상호 교류와 결합은 매우 유용한 함의를 지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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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 생협운동 , 대안에너지 , 생태공동체 , 마르크스주의 , 노동자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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