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조활동가의 안타까운 실업급여

[기자의 눈] 활동가 임금도 못주는 노동운동의 씁쓸한 풍경

비정규직 조직활동가를 양성해야 했던 열악한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2006년에 조합원 1인당 1만 원의 비정규 기금을 걷어 50억을 조성해 조직활동가를 양성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겠다는 전략조직화사업을 기획했다. 실제 50억 원을 다 모으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모은 기금을 통해 조직활동가를 선발, 교육하고 3년 동안 서울, 대전, 부산 등의 공공, 건설, 서비스 등의 업종으로 배치했다. 양극화 시대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넘어 비정규직 문제에 더 접근하기 위한 일종의 비정규직 조직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렇게 채용된 조직활동가들은 사실상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연대 기금을 통해 마련된 한시적 재원이라 안정적인 채용은 애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이들 조직활동가는 노동운동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계약직에 놓고, 낮은 임금을 받으며 조직화 사업을 벌였다. 이들은 조직활동가가 아니었다면 어떤 의미에서 파견노동자에다 이중삼중의 비정규직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들도 열악한 처우에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열악한 노동조합 재정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를 해 보겠다는 일종의 고육지책을 택했던 것이다.

3년이 흐르자 각 연맹이나 조직활동가 당사자들은 더 활동이 필요함을 느꼈지만 활동할 수 없었다. 한시적인 비정규직연대기금으로 채용된 상황이라 각 연맹엔 이들을 채용할 재정 여력이 없었다.

지난 17일 언론에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로 발표된 노 모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 모 서비스연맹 조직부장은 바로 이 비정규직 조직활동가 출신이다. 서비스연맹은 실제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이 12,000여 명 규모다. 서비스연맹 1년 예산은 6억 원으로 이 예산에서 실제 사업비는 15% 정도고 나머지는 대부분 기본 관리비와 활동비로 나갈 정도로 빠듯하다. 영세한 중소기업보다도 못한 재정 규모다.

당시 비정규직 조직활동가는 서비스 연맹에 7명이 할당 됐다. 이들 7명은 그 사이 비정규직과 유통사업 부문 조직화에 상당한 성과를 남겼고 서비스 연맹은 몇 명이라도 더 활동할 방안을 찾았지만 돈이 없어 간신히 두 명만 활동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재정이 모자라 이들에 대한 실업급여를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둘은 이 과정에서 서비스연맹에 조직부장으로 배치됐고 연맹은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서비스 유통 산별노조를 만들어 조합원 자격을 부여했다. 이후 조합원 자격으로 활동하던 노 부위원장은 올 초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노동운동 활동가였기 때문에 비상식적인 상황 오히려 감내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은 17일 두 사람에 대해 ”지난해 9월부터 1월까지 서비스연맹에 근무해 자격 조건이 되지 않는데도 실업급여를 받았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남부지청은 여기에 강 모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부정수급을 공모했다고 함께 고발했다.

마치 민주노총 소속 연맹 간부가 실업급여를 조직적으로 부정수급해 파렴치한 짓을 한 것처럼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조활동가의 재정적 어려움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노동운동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노동운동 판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일하면서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헌신을 다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오래된 노동운동의 열악한 풍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노 부위원장의 부정수급 문제도 악질적인 불법행위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노동현장에서 저임금을 받고 활동을 하던 계약직 활동가에게 최소 생활이라도 할 수 있게 하려는 고민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 부위원장은 지난해 8월 7일 계약기간이 끝나자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이 사이 서비스연맹은 단 두 명이라도 활동할 수 있게 실업급여에 연맹 재정을 더 보태 월 130여만 원을 지급했다. 노 부위원장은 분기별 상여금까지 계산하면 월 150여만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지청에 따르면 노 부위원장은 150일간 실업급여로 대략 월 86만 4천원 가량을 받았다. 노 부위원장이 만약 이 돈만 받고 연맹에서 노력 봉사를 했다면 문제가 안됐을 것이다. 서비스연맹은 노 부위원장이 생계를 유지 할 수 있도록 월 65만원 정도를 지원해줬다. 이들 활동가들은 실업급여가 없었다면 더 활동을 할 수도 없었고, 혹은 65만원 정도만 받고 활동을 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이들은 연맹과 채용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4대보험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불이익도 감수했다. 이들이 일반적인 업체에 취직한 구직자가 아니라 노동운동 활동가였기 때문에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감내했던 것이다.

보통 고용주가 서비스연맹 같은 노동단체 위원장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의 사장이었다면 고용유지지원금 같은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은 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정부에 일정 지원금을 받고 순환휴직 같은 방식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노조가 이런 방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조직화 기금을 모아 각 연맹에 한시적으로 할당한 활동기금이기 때문에 연맹의 열악한 재정 구조를 타파할 방법도 없었다.

물론 이들이 현행법을 어긴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잘못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현행법을 어긴 문제이기 때문에 부위원장직 사퇴가 거론되기도 했다.

타임오프 시작되면 생계 더 어려워

이번 사건으로 민주노총을 노동기생충이니 귀족노조니 왈가왈부하기에는 턱없이 낮은 활동비를 받으며 활동하는 노동운동 활동가의 현실을 더욱 처량하게 한다. 이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아주고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헌신하던 활동가들의 임금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노동운동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서비스 연맹은 경찰조사에서 의도적으로 공모한 사실은 없다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비정규직 운동에 3년이나 헌신하던 비정규직 활동가가 어떻게든 활동하도록 없는 재정에 무리해 채용한 것이 죄라면 죄라 더 안타깝다. 또 7월 1일부터 시행할 타임오프 한도 탓에 열악해질 노동조합 재정으로 더욱 힘들어질 생계를 감내하며 노동운동 판에 남아 있을 활동가들의 처지가 씁쓸하다.
태그

비정규직 , 민주노총 , 실업급여 , 실업급여 , 비정규 , 타임오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용욱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노동자

    중앙일보,국민들은 삼성반도체 이건희,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수조의 부를 축적하는 것 반드시 국민법정의 단두대가 필요할 것이다.
    이건희,조전혁!

  • 김신범

    조직활동가로서 역할이 끝났으니 현장에 내려가겠다고 말할 때, 당신이 없으면 서비스연맹은 어떻게 하냐며 잡았던 제게 죄가 있습니다. 두 분 항상 존경합니다. 힘내세요.

  • 그냥

    이전부터 중소영세 회사를 조직하는 일반노조나 지역업종노조에서 활동하는 간부들은 생활하기 힘든 생계비를 받고 조직하고 투쟁하지만. 민주노총이나 산별은 관심밖이었지요; 말만 비정규직 조직화하지말고 일반노조들 지원합시다.

  • 동지

    일반노조간부들 열악한 상황에서 정말 열심히 조직화,투쟁하시죠. 민주노총 지역본부 동지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민주노총도 상대적으로 나아도 별반 다르지 않은거 같습니다. 그나마 산별이 제일 상황이 낫긴해도, 최근 전임자임금지급 문제때문에 더욱 어려워질 것은 뻔합니다. 흠. 활로가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 노동자

    기사를 보고 왜또 민주노총에 이렇게 큰짐을 지우냐고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힘내세요

  • 노동자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평가에 관련된 문건이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위 글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낳았다고 쓰고 있는데 그러한지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