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정계개편이 필요하다

[6.2선거를 말한다](4) 2010년 지방선거와 진보신당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여러 조건을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거둔 성과는 썩 나쁘지 않다. 전국에서 3.13%(64만 7천여표)의 정당투표를 얻었고, 25명의 지방의원을 당선시켰다. 창당 2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점, 1만 5천명 정도에 불과한 당세를 감안하면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의 사퇴마저 불러온 반MB 연대 구도라는 폭풍을 뚫고 얻어낸 결과이므로 평가에 그리 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숙고해야 할 평가 지점은 이러한 단순 수치 혹은 평면적 결과에 있지 않다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당의 내포와 외연, 당의 흥망성쇠까지 좌우할 이른바 ‘진보의 재구성’ 작업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것, 그리하여 이번 선거의 성과를 근거로 나아갈 좌표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임에 분명하다. 우선 서울시장 선거를 중심으로 선거 과정과 결과를 짚어보고, 현재 진보신당의 과제를 생각해 본다.

서울 성적의 저조함

이미 선거 중반 여론조사에서 예상되었지만, 당을 대표하여 서울에서 뛰었던 노회찬 후보의 시험 성적표는 예상보다 초라한 것이다. 노회찬 후보의 지지율은 지난 해 말 여론조사에서 10%를 상회하기도 했지만, 예비선거운동 기간, 본 선거운동을 거치면서 오히려 계속 하락했고, 결국 3.26% 득표에 그쳤다. 한명숙 후보가 반MB, 노풍의 담지자로서 선거에 뛰어들면서 진보의 독자적 목소리가 어필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시험 성적표에 좌절하기 전에 진보신당은 이 지방선거, 특히 서울시장 선거가 무슨 시험인지를 몰랐다. 그러니 30점을 받고는 이게 잘 나온 점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시험에 어떤 비중을 갖고, 어떤 전략으로 임해야 할지를 헷갈렸던 것이다. 실은 그 이전에, 사람으로 치면 어떤 인생을 위해 이 시험을 치르는지가 애매했던 것이다. 당이 작고 어려우니 일단 이 선거에서 최대한 성과를 내고 보자, 그러기 위해서 지명도 있는 대표선수를 최대한 출마시켜야 한다는 것이 창당 이래 2년 동안 당을 지배한 가장 큰 논리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어떤 인생을 구상할 것인지가 분명하면 시험에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지도 나오고, 시험 결과도 저비용 고효율이 가능해진다.

노회찬 후보의 선거 전략이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진보신당이 외쳐야 할 것, 얻어야 할 것을 집약하는 슬로건은 시종 모호하고 좌충우돌했다. 출마선언 전후로는 “콘크리트 대신 사람에게 투자를”이 나왔다가,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이 되었다가, 본선 직전에는 “복지혁명, 그래 노회찬이야”가 되었다가 본선의 공식 슬로건은 “대한민국을 바꾸는 서울시장 노회찬”으로 나타났다.

최종 슬로건은 2007년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권영길”과도 오버랩 된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대담론이며 조급증의 발로다. 대한민국을 바꾼다는 큰 이야기를 해야 반MB와 차별화되는 ‘진보’의 가치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노회찬과 진보신당이 그런 ‘진보’라는 것을 모르는 서울 유권자는 없다. 문제는 그래서 그 진보를 이번에 왜 찍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기는 어렵지만, 애초 대단한 대답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서울 지방정치’의 진보적 비전을 성실하게 제시하고 이명박과 오세훈의 서울 실정을 치열하게 비판하는 게 기본이었을 것이다.

‘복지혁명’ 프레임은 서울시장의 스케일과 맞지 않는다. 어쩌면 애초 노회찬 후보의 캐릭터와 포지션이 서울시장 후보와 썩 맞지 않았던 점도 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것이라면 시장 선거 기간동안 노 후보는 전국적 인기정치인 대신 철저히 ‘서울시장 후보 노회찬’이 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유권자들도 이를 느끼고 있었다. 결국 서울 시민들은 인기 정치인 노회찬을 인정하고 좋아하지만, 진보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절박함은 공유하지 못했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반MB의 절박함’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서울시장 선본의 전략 운용에도 이어졌다.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에 노회찬 후보가 외견상으로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지하철역 아침인사였다. 앞서 말했듯이, 노회찬 후보의 인지도가 문제가 아닌데 이런 방식의 선거운동은 역량 낭비였다. 그 보다는 진보적 지방정치와 서울의 이슈를 만들고 찾아다니는 기획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물론 그러한 활동이 큰 득표를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막판 뒷심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국으로 작지 않은, 고른 성과는 기반

민주노동당과의 분당 이후 진보신당의 지방의원은 광역 1명, 기초 14명에 불과했는데, 이번 선거로 광역 3명, 기초 22명을 확보했다. 전통적 강세지역이었던 울산 북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것은 적잖은 충격이다. 대신에 지방의원이 없던 서울에서 4명 등 수도권과 부산에서 의미있는 거점을 확보했고, 거제, 대구, 전주 등 전국에서 당선자를 유지 내지 확대했다. 비록 총 의석 수가 많지는 않지만 진보신당의 창당정신으로 강조했던 지역정치를 실험하고 다시 전국적으로 엮어낼 기반이 확보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의 대부분은 당의 전략과 역량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후보와 지역 조직의 꾸준한 노력과 작업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진보신당만의 차별화된 비전과 의미 제시는 지역 선거에서 별달리 작용하지 못했고, 진보신당 후보들은 성실하고 참신한 후보들 이상이 되기 어려웠다. 또한 야권 후보 단일화 결과 단체장 후보를 내지 못한 부산, 충남, 울산북구 후보가 중도사퇴한 경기 등의 경우 지역후보들은 오히려 당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힘든 선거를 치러야 했다.

한편, 이제까지 진보정당이 선거상의 성과를 거둔 곳은 노동자 인구 밀집지역이거나 민주화운동의 지역 전통이 강한 곳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성과를 거둔 지역을 보면, 그러한 경향이 지속되기는 하지만 도시사회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사례들이 눈에 띈다.

또한 선거구도가 열악하지 않고 후보가 꾸준한 지역 활동을 한 선거구의 경우 10-15%의 득표를 고르게 기록한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지지율은 당선이 안되더라도 선거 재정의 부담에서 많이 놓여날 수 있어 지속가능한 정치활동을 가능케 할뿐 아니라, 지역에서 압력의 정치와 개입의 정치를 실행할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후보와 지역 조직의 자가발전에 지역정치의 총괄적 전략이 결합된다면 진보신당 고유의 정치활동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대, 연합의 문제

이른바 연대, 연합의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 내내 진보신당을 괴롭혔고 지금도 풀리지 않은 문제다. 시민사회를 끼기는 했지만 결국 범민주, 친노 세력의 배경이 된 ‘5+4’협상 참가가 구체적인 발단이었지만, 더 넓게는 당의 정치적 외연과 전망에 대한 구상에서 비롯된 일들이었다.

독자적 진보 생존 노선을 취하더라도 개별 선거나 지역에서 연대, 결국 후보조정의 여지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비례대표 비율이나 결선투표 등 선거제도의 문제가 결정적이기는 하지만, 당의 색깔과 비전이 뚜렷할수록 연대나 연합에는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맞는 진보신당의 처지는 ‘독자후보 없이는 정치적 생존 없다’는 상황이었고, 조성된 반MB 구도는 이와 충돌했다.

물론 5+4 협상 과정에서 당의 대응이 극도로 난맥상을 보였다는 것은 환기해야 한다. 5+4협상의 의미와 원칙에 대해 대표단회의에서조차 뚜렷이 결정된 바 없는 가운데, 많은 당 활동가들과 지역 출마예정자들은 언론매체를 보고야 그런 협상에 당이 결합하는지 알게 될 정도로 과정의 문제도 있었다.

결국 부산시당은 진보신당 후보로의 단일화를 낙관하면서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했다가 자충수를 두게 되었고, 충남도지사 후보는 이에 반발하며 후보 등록을 철회했으며, 울산의 단일화는 기초선거 참패의 한 원인이 되었다. 각 지역 조직은 알아서 대응하라는 지침 아닌 지침 아래서 혼선을 겪었다. 심상정 후보 사태 역시 이의 결과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연장선상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범민주 혹은 반MB 전선의 유의미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진보신당이 5+4 협상에 열심히 임할 필요가 큰 것은 아니었고, 선거연대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외부의 압박이 큰 것도 아니었다. 5+4 협상의 문제점과 진보신당의 입장을 처음부터 강하게 제기했더라면, 일부에서 진보신당을 비판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이해에 근거한 비판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 조직 내에서 5+4 협상에 적극 결합해야 한다는 기층의 요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역에서 후보 조정이나 연대가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상층의 공식적 선거 협상을 전제로 할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5+4의 혼선과 결과적인 피해는 누구의 책임인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아래에는 진보신당의 독자적 전망에 대한 조바심 내지 부정적 의견이 깔려있던 것이 아닌가 따져보아야 할 듯하다. 일례로 당 대표와 협상 당사자는 이 과정을 전후로 선거 이후 진보신당의 확대 내지 재편을 수차례 이야기했고, 구체적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및 시민사회 일부를 이야기하는 그림을 내비쳤다. 이러한 그림이 좋다 나쁘다, 혹은 가능하다 아니다는 논의를 해 볼 수 있으며, 당적으로 논의하는 게 마땅하다. 시대의 요구와 정신을 담는 진보정당을 만드는 길이라면 개방적으로 그러나 책임있게 논의를 벌이면 되고, 지금의 진보신당에 모두 뼈를 묻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전후로 그러한 맥락을 가진 행보가 진행된 것이라면, 그것은 과정으로서도 옳지 못했고 결과 역시 부정적이었다.

재창당 논의 본격화해야

이제 무엇을 논의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중요하다. 지방선거 결과 민주노동당이 반MB 연대에 결합하여 사실상 범민주진영으로 넘어가고, 진보신당이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은 물론 좁은 의미의 시민사회에서도 연합군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은 당분간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을 불가피하게 할 듯하다. 그러나 독자생존을 위한 독자생존이 목표가 되어선 안됨이 마땅하다. 진보의 재구성, 진보진영의 정계개편이 이제 본격화되어야 한다. 진보신당은 창당정신에 천명되었고, 당명 제정 과정에서도 요구되었던 그 과제를 모두 2010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두었고 이제 때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은 심상정 후보의 사퇴에 반대하고, 당을 지키자는 이들이 협소한 진보신당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듯하다. 기실은 민주노동당 분당을 감행한 이들과 촛불을 통해 만난 이들이 주로 진보신당의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는 진보의 재구성을 촉구했던 이들이었고, 상황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재창당에 미온적이었던 것이 노 대표와 심 전 대표였는데 지금은 입장이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지난 일에 대한 평가는 분명해야 하지만 이제는 누가 진의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재창당 논의를 본격화함으로써 진도를 나가야 한다.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과도기를 탈피하고 공세적인 좌파 정계개편을 주장하자는 것에 모두들 동의한다고 하면, 이제 그렇게 하면 된다. 평등, 평화, 생태, 연대의 가치에 공감하고 그것을 위한, 범민주 또는 민족주의나 퇴행적 노동자주의를 넘어서는 별도의 당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두 함께하면 된다. 진보신당의 창당정신이 그것이었다. 사회당부터 사회주의 정치조직 지향 조직까지, 시민사회와 지명도 있는 진보적 정치인까지 미리 배제할 집단이나 개인은 하나도 없다. 이들 집단 모두에게 정중하고 끈기있게 동참을 권해야 한다. 이들 집단도 충분히 어렵고 답답한 상황에 처해있고, 재구성을 요구받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 외에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을 보유한 유일한 진보정당 조직이자, 상대적으로 구조와 인적 자원을 갖춘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하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진보신당의 기득권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욕먹지 않는다.

물론 당명을 바꿀 수도 있고 지도체제를 개편할 수도 있다. 삼성공화국으로 대표되는 극한의 시장주의, 범민주세력의 뻔한 불철저함, 미조직 비정규 집단의 고통, 남북 대결의 군사주의, 과거 운동권의 근시안과 퇴행적 정서를 극복하고 해결해야만 하겠다는 이들을 호명하면 된다. 집토끼를 잡을 것이냐 산토끼를 쫓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새로운 진보의 토끼장을 튼튼히 만들면 토끼는 모여들 것이다. 따라서 당의 정체성을 견지하고 강화하는 것은 진보의 재구성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숱하게 들어온 뻔한 주장이라고? 실은 그렇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올 여름-가을까지 당내외 논의를 진행하고,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정당 조직의 재편을 통해 내년 초 지도부 선출과 재창당대회를 갖자고 진지하게 주장한다면? 그건 뻔한 주장이 아니다. 당장 모두들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운동이 한 과정을 넘어서면서 종국을 고했다. 이들 조직들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과제가 제기되고 이를 소화할 새로운 운동과 조직이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진보신당은 그런 과제를 맡고자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두 해를 허비했다. 진보신당 입장에서 보면 87년 체제의 종국은 그렇게 두 해가 지연되었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고립은 조건이지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다. 또 그렇게 대단한 고립도 아니다. 지금의 고립은 여러 가지 부담으로부터 진보신당을 자유롭게 하는, 스스로 문제를 출제하는 새로운 시험장인지 모른다. 지방선거 보다 훨씬 큰 주관식 시험지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신당만이 치르는 시험이 아니다. 주목하는 이들이 적을지라도,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새로운 생애를 위해 치르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험에는 종료 시한이 있다. 진보신당에게는 내년 봄 당대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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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뛰르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는 계급투표가 이루어진 강남3구(송파,강남,서초)에서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아니 오히려 높게 3%이상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요? 소득이 높건 낮건,학력이 높건 낮건 '자유-평등'이라는 이념에 동의하는 확고한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이념정당이라는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요!

  • 심상정, 노회찬은 비민주 야당 통합을 말하는 것 같던데
    먼저 심상정 징계나 시키시고 독자생존이고 진보의 재구성이고 말하시기를.
    진보신당이 살아 남을지도 모르는 판에 광고전단이나 뿌리지 말고.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 친구

    신당원 주장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쟁점(촛불을 통해 만난 이들이 주로 진보신당의 기득권)이고 그런데 그들이 신당내 성장발전에 있어 발목잡는 행위가 정당방위로 볼수없고 과감한 지도부 결단(대의를 위해 소수 목소리 설득 작업)이고 따라서 신당과제(진보의 재구성을 촉구)라 생각하고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