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형사들의 피의자 고문 의혹이 불거진 주요 배경으로 서울경찰청이 지나치게 실적을 강요해 왔다는 '성과 실적주의'가 지목된 가운데 서울 강북경찰서 채수창 서장이 28일 조현오 서울경찰청장 사퇴을 요구했다.

채수창 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양천서 사건은 가혹행위를 한 담당 경찰관의 잘못이 크겠지만, 이것 못지않게 가혹행위를 하면서까지 실적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책임 또한 크다”며 “경찰관이 법을 집행함에 있어 얼마나 절차와 인권을 우선시했는가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하는데도, 검거점수 실적으로 보직인사를 하고 승진을 시키겠다고 기준을 제시해 오로지 검거에만 치중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행 실적평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그동안 실적을 강조해온 지휘부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한 양천서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이러한 조직문화의 근원적 책임이 있는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채 서장의 성과주의 항명파동으로 논란이 일자 경찰청은 즉각 채 서장을 직위해제하고 후임에 백운용 서울청 교통관리과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 서장의 직위해제에도 실적주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선 경찰서장이 경찰 조직의 2인자나 다름없는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항명 사태인데다가 실제 서울청장 취임이후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실적주의에 대한 불만이 쌓여 왔기 때문이다.

일단 여론은 채 서장에 우호적이다. 강북경찰서 홈페이지엔 채 서장의 직위해제를 비난하고, 채 서장을 응원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채수창 서장은 서울청장 사퇴요구와 함께 자신도 동반사퇴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채 서장은 “검거실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서울청장에게 질책을 받고나서, 제가 갑자기 돌변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둑 잡는 데 매진하라’ 지시하고, 아침마다 몇 명이나 잡았는지 독촉했던 한 달이 부끄러웠다. 고생한 경찰관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실적주의에 따른 고통을 토로했다.

반면 서울경찰청은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사건의 성과주의 논란을 두고 “성과주의를 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라고 보는 시각은 다소 부적절하다”며 “인권의식이 결여된 극소수 직원의 잘못된 범죄행위”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서울청 성과주의 문제가 일선 서장의 항명파동으로 이어질 만큼 심각하다는데 있다. 이미 일선 경찰서에선 지난해 말부터 각 경찰서의 수사인력 감축을 통한 인력조정으로 형사들의 업무 부담은 더욱 늘었다. 올 2월부터 첩보 등을 통한 사건 물어오기 식의 인지수사까지 의무적으로 요구 받으면서 목표점수를 채워야 할 상황이다.

또 행정안전부가 3월부터 시간 외 수당 지급방식도 바꾸면서 24시간 당직근무 중 2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지정해 수당지급대상에서 뺀 것도 일선 형사들의 불만 대상이 됐다. 경찰 업무 특성상 당직근무 중 실제 휴식을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수당 지급 방식 변경 이전엔 초과근무를 87시간까지 인정했지만 변경 이후엔 50시간만 인정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현장에선 잠복근무를 서고서도 검거에 실패하면 수당신청도 못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불만이 누적돼자 서울지방경찰청은 14일 당직근무 시 시간외 수당 지급기준에서 제외했던 휴게시간도 지급범주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또 이런 성과주의를 통한 경쟁 부추기기는 각종 검거 및 사건 처리 실적이 일일이 평가되면서 경찰서별 경쟁과 같은 경찰서 내부의 팀별, 개인별 경쟁으로 폐혜가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성과점수가 더 높은 범죄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피의자들에 대한 무리한 조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무리한 성과주의가 강요 될수록 양천서 고문사태 처럼 인권문제는 뒷전이 되면서 시민들의 반발도 거세다는 지적도 나왔다. 채수창 서장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실적주의와 관련해 우범지역·PC방·골목길에서 수시로 일제 검문검색을 하게 했다. 채 서장은 “일제 검문검색에 국민들은 왜 검문하느냐고 항의하고, 직원들은 위에서 하라 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일제 검문검색이냐”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