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두 번 죽이는 검찰 그리고 조선일보

[기고] 더 이상 우리의 목소리를 짓밟지 마세요

1년 6개월 만에 받은 낯선 편지

저는 서울대병원에서 청소하는 노동자입니다. 또한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민들레분회’의 조합원입니다. 오늘(4월 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부터 반갑지 않은 편지를 받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50년 넘게 살면서 검찰청에서 처음 편지를 받기도 했지만 그 속에 적혀있는 감금, 폭력, 업무방해,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의 단어는 더욱 낯섭니다. 수 십명의 조합원이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누구는 한 달 치 월급이 넘는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1년 6개월 전 일입니다. 2009년 겨울에 했던 파업이 그것입니다. 그 해 겨울 참 추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서울대병원에서 열 시간이 넘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월급은 최저임금도 안됐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화나게 했던 건 관리자들의 횡포와 투명인간 취급하는 인격적 멸시였습니다. 부모님이 오늘 내일 하시는데 아직 죽지 않았으면 휴가를 줄 수 없다는 감독한테 잘릴까봐 대꾸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였습니다. 며칠 만에 꽤나 많은 사람이 모였고 ‘민들레’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왜 이것이 폭행이고 감금인가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당시 하청회사는 이미 노동조합이 있다며 우리와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에 신청해 “하청회사는 민들레분회와 교섭을 해야 한다”는 답변을 3개월 만에 받았습니다. 법원의 결정에도 회사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몇 달을 회사와 교섭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사장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업을 하면 쓰레기를 치우지 못해 서울대병원이 골머리를 앓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하청업체와 서울대병원은 한 통속이 되어 대체인력을 투입했습니다. 우리들 하루일당은 고작 3만원을 조금 넘을 뿐인데 대체인력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우리의 2~3배가 넘는 돈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회사가 꽤 많은 대체인력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교육을 한다고 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설득을 하러 그곳에 갔습니다. 우리가 그 곳에 가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양복을 입은 100여 명의 서울대병원 남자직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몸싸움이 생기고 많은 동료들이 다쳤습니다. 이것이 검찰이 말한 폭행이고 감금, 업무방해입니다.

서울대병원은 그렇게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양, 아니 보고 싶지 않은 양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그 때 우리 조합원들은 화가 정말 많이 났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고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서울대병원장에게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서울대병원장이 있는 시계탑 건물 앞에 쓰레기들을 봉투 째 쌓아놓는 상징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이것조차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쓰레기 봉투를 쌓아 놓으면 경비들을 동원해 흩어놓고, 또 흩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 곳곳에서 쓰레기 봉투들이 터졌습니다. 몸집이 아주 작은 한 동료는 경비들에게 들려나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곳곳에서 경비들에게 밟히고 맞고 넘어져 조합원들의 비명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 우리 중 누군가 죽어야만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결국 경비에게 발로 채이던 한 조합원이 그 한 겨울에 윗옷을 벗으며 건드리지 말라고 악을 쓰고 나서야 경비들은 물러났습니다. 15분이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걸 검찰은 폭력이고 폐기물관리법 위반이라고 합니다.

청소노동자 죽이기 그리고 조선일보

3월 31일 조선일보에는 기소된 우리도 모르는 검찰의 기소결과가 보도됐습니다. 우리가 “인체에서 적출된 의료폐기물을 병원의 주요 길목에 쌓아놓기도 했다”더군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끔찍한 장면입니다. 우리가 싸울 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거대신문 조선일보가 검찰이 기소결과 편지를 발송한 당일, 여론과 재판에 악영향을 주는 기사를 발 빠르게 낸 이유가 뭔지 묻고 싶습니다.

2009년 겨울, 한 달 가까운 파업은 결국 사장 얼굴 한 번 못보고 끝났습니다. 서울대병원이 청소업체를 바꿔버렸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저는 당시 파업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뀌었으니까요. 이제 부당한 현실을 보고 참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변화들이 모여 작년에는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만들고 작지만 임금도 올렸습니다.

진실은 통한다는 믿음

그때 못했더라도 아마 언젠가는 했을 것입니다. 우리 분회의 이름처럼 청소노동자들의 권리선언과 투쟁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홍대, 이대, 고대, 연대 청소노동자들이 그랬고 싸워서 승리하고 있습니다. 혹여 검찰이 들불처럼 퍼지는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 엄포라도 놓듯, 1년 반이 지나서야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벌금을 내린 것은 아닐까 걱정입니다. 법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고들 하지만 그래도 진실은 통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검사님, 판사님들이 우리를 짓밟지 않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말

이영분 님은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민들레분회 분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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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 청소노동자 , 민들레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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