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관사 자살, 공황장애 앓아도 ‘운전대’ 잡아야

2인승무제 도입 시급...“전기 아낀다고 환풍도 병가도 못내, 정신질환 극심”

공황장애를 앓던 도시철도 기관사가 또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기관사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12일 오전 8시 6분, 도시철도 답십리승무관리소 소속 고 이재민(43) 기관사는 평소 자신이 열차운전을 하던 왕십리역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평소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평소 가족과 직장의 지인들에게도 고통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 이재민 기관사는 공황장애로 회사 측의 전직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황장애 앓아도, 팔다리 골절에도 운전대를 잡는 노동자들

도시철도 기관사의 정신질환이나 자살 등의 문제는 수년 전부터 제기 돼 온 문제였다. 2003년 8월, 고 서민권 기관사가 자살한 바 있으며, 그로부터 보름 뒤에도 복귀를 앞둔 고 임채수 기관사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때문에 2003년부터 도시철도 기관사의 공황장애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적응장애 등의 신경정신질환의 심각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실제 2006년 8월까지 32명의 기관사가 정신질환에 시달렸으며, 11명이 산재승인을 받았다.

2007년 실시된 기관사 특별검사 검진결과에 따르면, 기관사의 우울증 유병율은 일반인의 2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4배, 공황장애는 무려 7배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 측은 높은 이 같은 높은 정신질환 비율이나 자살 사건이 기관사의 근로조건과 직결 돼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울도시철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1인 승무제와 열악한 근무환경, 개인별, 팀별, 소속별 경영평가 등이 기관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은섭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사무국장은 “도시철도공사는 창립부터 1인 승무제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기관사에게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 등을 가중시켜왔다”며 “5호선의 경우 3시간 넘게 혼자 운행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2000~3000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출퇴근 등의 혼잡 시간대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기관사들은 밀폐된 공간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 돼 있기 때문에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오은섭 국장은 “PSD가 설치된 후로는 그야말로 밀폐된 공간에서 몇 시간씩 일을 해야 하고, 특히 음성직 사장 재임시절에는 터널에 환풍기를 돌려야 하는데도 전기절약을 이유로 환풍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며 “또한 깜깜한 터널을 운전해야 하지만 형광등도 하나 건너 하나씩만 켜 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관사들은 깜깜한 시야와 안 좋은 공기에 노출되며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기관사들은 일반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아 불규칙한 신체 리듬으로 인해 수면장애와 불안장애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 정신적 치료를 위해 병가를 제출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개인별, 팀별, 소속별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리나 팔이 골절되는 등 신체적 고통을 겪어도 인력 부족으로 열차를 운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 국장은 “내부적으로 창피한 이야기지만, 맹인이 다리 없는 사람을 업고 가는 듯이 손이 다친 기관사가 있으며 다리가 불편한 기관사를 태워 열차를 운행하기도 한다”며 “이는 심각한 인력 부족과, 실적 때문에 휴가 한 번 내지 못하는 현재 환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인 승무제 제도화, 기관사 건강권 보장, 인력 확충 해야”

때문에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은 13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시철도공사 경영진의 공개사과와, 공사와 서울시의 근본적 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기관사들이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이 문제제기 해 온 사안”이라며 “특히 1인 승무제는 이들의 정신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기관사와 승객의 주요한 안전장치인 2인 승무제를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태 전 서울도시철도노조 위원장 역시 “노동자들이 건강하지 않으면, 안전한 지하철 운행이 불가능한 만큼,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급히 기관사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 제 2의 이재민 기관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용’을 이유로 인력 확충을 회피하고, 기관사의 정신질환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도시철도공사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았다.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공황장애는 꾸준한 치료와 주위의 지지를 통해 극복할 수 있지만, 노동자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없는 일터와 경영진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며 “2003년부터 지난 9년간, 공사는 비용을 이유로 기관사의 자살과 정신질환을 방치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노조 역시 “공사 경영진들은 사회적 관심이 잦아들자 산재요양 후 현장에 복귀한 기관사들에게 본인들의 의사를 무시한 업무복귀프로그램을 강요하고, 본사로 발령 내 사무실 잡일을 시키는 등 낙오자 취급을 했다”며 “또한 산재를 인정받아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다른 기관사들에게 주지시켜 기관사들의 병을 숨기도록 강요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영평가 등의 실적 압력이 업무스트레스 증가와 정신적, 신체적 치료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조는 “공사는 수동운전을 강요하고, 병가사용일수가 많다는 이유로 퇴출대상으로 낙인찍고 직권면직시키는 행태도 서슴치 않았다”며 “또한 노동자들은 업무와 상관없는 봉사활동, 칭찬민원, 행복방송 등으로 소속별 경쟁을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도시철도는 죽지 않고 일하기 힘든 직장이 돼 버렸으며, 이 모든 책임은 도시철도 경영진에게 있다”며 공사 측에 △고인에 대한 도시철도공사 경영진의 사과와 산재인정 △관련자 처벌 △기관사 건강권 보장과 1인승무제 폐지 등 작업환경 개선 △부족한 현장인력 충원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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