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 노동자 간 감시 통해 현장재편

[복수노조 기획](4) 금속노조 미탈퇴 노동자들에겐 'PT체조' 기합도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발레오만도)와 상신브레이크는 유성기업과 KEC에 앞서 공격적으로 직장폐쇄를 했다. 사측은 직장폐쇄 후 기존 노조와 대화를 단절했고, 금속노조 집단 탈퇴를 종용했다. 노조의 핵심 간부도 해고했다. 이후 법원이 금속노조 집단 탈퇴는 무효라고 판결했으나, 항소로 시간을 벌며 노조 무력화를 진행 중이다.

발레오만도는 어떻게 노동 조건을 후퇴시켰나?
정년 단축, 임금피크제 도입, 노조 활동 대폭 축소


발레오만도는 현재 유행처럼 번지는 ‘노조 무력화 시나리오’가 처음으로 진행된 곳이다.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는 2010년 2월 사측이 노조와 협의 없이 경비 인력을 생산직으로 전환하고 외주화하려 하자 이를 막고자 쟁의행위를 가결하고 특근 거부 등을 진행했다. 당시 발레오만도는 단 한 명의 비정규직도 없는 사업장이었다.

사측은 같은 달 16일 오전 경비용역을 투입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직장폐쇄 이후 사측은 집행부를 고립시키고,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를 탈퇴하라고 압박했다. 정연재 발레오만도 지회장이 구속된 틈을 타 사측은 공장에 복귀하지 못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의 모임(조조모)’를 만들었다. 조조모는 집행부 불신임 절차를 진행했다. 당시 조조모는 이에 관한 조합원 서명도 받아오지 않았고, 지회 집행부에 “(불신임 안건을) 회사에서 이렇게 주던데”라고 말해 사측의 개입 의혹을 확인시켰다.

금속노조 지회는 독자교섭권이 없어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측은 지회 차원에서 금속노조 탈퇴를 강행했고,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기업노조가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측은 직장폐쇄를 풀었다. 이어 노조 무력화를 위한 현장 재편에 착수했다.

기업노조와 사측이 새로 체결한 단협에서 노동조건은 후퇴했다. 정년, 포상, 노조전임자 수 등은 감축됐지만, 징계 사유는 확대됐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만 55세부터는 임금을 정년까지 10%씩 감액한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고용안정 위원회 운영 △용역과 하도급 결정 협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조항 등은 대거 삭제됐다.

노동조건이 크게 후퇴했는데도 왜 노동자들은 이 안을 받아들였을까. 이유는 사측이 현장을 분리해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장 앞 공원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발레오만도지회 관계자는 “사측의 통제에 노동자들은 서로 믿지 못하게 됐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불만을 말하기만 해도 사측에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말했다.

현재 경주의 발레오만도 공장 앞에서는 지회와 사측이 각각 3일씩 선전전을 하고 있다. 사측의 선전전에는 그동안 발레만도지회에서 함께 노조 활동을 했던 이들도 보인다. 노동자들 내부에 ‘믿음’과 ‘신뢰’는 사라졌다.

  회사 측의 정신교육인 이른바 ‘화랑대’ 교육에서 노동자들이 ‘PT체조’와 ‘한강철교’ 등의 기합을 받고 있다. 금속노조 미탈퇴자들은 사무실 복도 통로에 혼자 앉게 하고 부서장이 일대일로 관리한다. 풀 뽑기 등의 작업도 시킨다. [출처: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이 관계자는 “복귀한 조합원들을 공장 안에 가둬 3주 동안 감금 노동을 시키기도 했다”며 현장 복귀 이후 일어난 재편 과정을 언급했다. 복귀자들에게는 잡초 뽑는 일, 페인트칠 등 잡무를 맡겨 작업장 전환 배치를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무급휴직 2년을 받은 조합원들에게도 노조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는 대가로 현장 라인에 복귀시켜주는 등 노조에 대한 탄압은 계속됐다.

사측은 기업노조 조합원을 데리고 제주도 관광도 했다. 그리고는 노조 활동 가담 정도에 따라 누구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감시했다. 사측 인사팀은 노동자 개별 면담을 통해 노동자들을 수시로 감시한다.

현재 발레오만도지회는 9월 21일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한 총회 무효 가처분 2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1심에서 무효 판결이 났으나 회사는 항소했다. 지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아무리 옳다고 나와도 판결까지 2~3년 걸린다. 일단 내쫓아 놓고 철저히 정신개조 시키겠다는 작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칼에 찔렸는데도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니까 계속 찔리는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발레오만도 찍고 상신브레이크로 건너온 ‘노조 무력화’
금속노조 전 간부 중심으로 원가혁신팀 만들고, 동료 감시토록 해


대구에 위치한 상신브레이크도 발레오만도와 상황이 비슷하다. 발레오만도가 그랬듯 상신브레이크도 직장폐쇄와 용역투입, 금속노조 탈퇴, 노조 무력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금속노조 상신브레이크지회가 파업에 돌입하고 두 달여 지난 시점인 2010년 8월 20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파업이 적법하지 않다는 공문을 회사에 발송했다. 23일 사측은 직장폐쇄를 진행했고, 노조가 31일 파업을 철회했음에도 직장폐쇄를 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경비용역업체인 컨택터스가 투입됐다.

  직장폐쇄를 단행한 상신브레이크는 용역을 동원해 정문을 가로막았다. [출처: 금속노동자]

직장폐쇄 상황에서도 관리직과 이탈조합원들을 통해 공장은 가동됐다. 조합원들에 대한 개별적 회유도 시작됐다. ‘불법파업 인정’, ‘배치전환 동의’, ‘파업 불참’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작성하면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10년 10월 7일 문영희 현 상신브레이크 노조위원장이 조합원 228명의 서명으로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18일 사측은 직장폐쇄를 풀었고, 21일 금속노조 탈퇴 공약을 내건 집행부가 당선됐다. 당선된 집행부는 총회에서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이후 사측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5명을 해고했다.

2012년 8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상신브레이크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한 총회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지회는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어 조직 형태 변경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 판결의 주요한 근거였다. 법원 판결대로라면 기업노조 설립 자체가 무효가 되어 노조가 맺은 단체협약도 모두 무효가 된다. 하지만 사측은 항소를 통해 시간을 지연시키고 현장 재편에 들어갔다.

새로 들어선 상신브레이크노조(상신노조)는 타임오프와 단체협약 갱신 주기를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것 외에 단체협약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다만, 부서 전환배치와 조합원 징계에 입을 다무는 식으로 사측의 현장 통제에 동조했다. 또 상신노조는 2011년과 2012년 단체협약에서 임금에 대한 권한을 사측에 위임했다. 2010년 해고 이후 현재까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정훈 상신브레이크 해복투 의장은 “이는 교섭권을 포기하고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상신브레이크 현장 노동자는 사측이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전 지회에서 간부로 활동했던 이들은 대부분 부서 이동을 당했다. 그는 “민주노조 쪽 사람에 대한 첩보를 제공하면 사측이 선물을 줬다는 소문도 있었다”며 사측의 현장 통제가 “조선시대 오가작통제와 같다”고 말했다. 회사는 금속노조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한 이들을 모아 ‘원가혁신팀’도 만들었다. 원가혁신팀은 초시계를 들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물량 생산시간을 측정하는 등 현장 노동자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한다. 이 노동자는 “악역을 맡겨서 조합원들과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민, 참세상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