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기자들의 샌드위치를 기억할까

[기고] 부정과 치부에 대처하는 BBC와 MBC의 자세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부러움에 관한 얘기다. 그것도 남의 불행에 대한 부러움 말이다.

최근 영국을 뒤흔든 파문이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와 관련한 것이다. 지난 2011년 84세로 사망한 유명 DJ 지미 새빌이 생전 수십 년 동안 강간을 포함한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고, 그 사실을 BBC가 은폐해 왔다는 의혹이 나왔다. 지미 새빌은 1960년대부터 BBC와 함께 일하며 국민 MC 반열에 올라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지난 10월 3일 영국의 민영방송 ITV는 지미 새빌의 성범죄 사실을 보도하는 고발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방송 직후 수사에 착수한 경찰에 따르면 한 주 만에 300명이 넘는 피해자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한다. 가히 최대 규모의 아동 성범죄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고인이 된 이후에도 사랑을 받던 국민 MC의 끔찍한 두 얼굴에 대한 분노가 BBC로 향하는 것은 바로 BBC가 지미 새빌의 추악함을 알고도 ITV 방송이 될 때까지도 사실을 덮었기 때문이다.

사실 BBC <뉴스나이트> 제작진은 지난해 10월 지미 새빌의 성범죄 사실을 폭로하기 위한 취재에 돌입했고, 같은 해 12월엔 제작을 거의 완료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편집장이던 피터 리펀은 ‘완성도’를 이유로 방송을 불허하고 더 이상의 취재도 막았다. 이런 가운데 BBC는 지미 새빌을 추모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BBC는 지난 10월 22일 피터 리펀을 해임하고 자사의 유명 탐사 프로그램 <파노라마>를 통해 일련의 정황을 상세히 전했다. 지미 새빌에 대한 <뉴스나이트>의 취재 내용과 함께 어떻게 불방에 이르렀는지, 취재와 방송을 막았던 BBC의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비판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고 현재 조지 엔트위슬 BBC 사장을 포함한 전·현직 간부 등 10여명은 경찰과 국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한, 가장 신뢰받던 공영방송인 BBC에 있어 이번 사건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어쩌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수습하는 BBC의 모습을 보며 다른 이유로, 그러나 신뢰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는 점에선 유사한 한국의 공영방송의 모습을 떠올리고, 이내 부러움의 한숨이 비집고 나오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 MBC에 대한 얘기다.

MB(이명박) 정부 이후 MBC에 대한 신뢰도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MB 정권 초기만 해도 정부 등 권력의 잘못된 행보를 주저 없이 비판하는 공영방송의 모습으로 ‘마봉춘’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던 MBC는 2012년 현재 신뢰도가 반토막 나는 것을 넘어 ‘3분의 1토막’ 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 발행된 <시사IN> 266호에 따르면 <시사IN>이 4년째 진행하고 있는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MBC는 지난 2010년 18%의 신뢰도를 보였던 것에 반해 올해 6.9%까지 추락했다.

더 높은 도덕성과 신뢰를 요구받는 공영방송 사장이 아니더라도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는 배임과 여자문제 등 갖가지 의혹과 논란에도 김재철 MBC 사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100여 명 이상의 기자·PD를 샌드위치 만들기 교육장으로 내몰거나 해고하는 등 기행을 벌이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언론의 문제를 떠나 심각한 노동 탄압이라는 지적과 함께 국회가 국정감사에 김 사장을 불렀음에도, 급조의 냄새가 풍기는 해외 출장을 핑계 삼았을 뿐이다. 공영방송 MBC의 지분을 매각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돕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의혹까지 터져 나왔지만, 김 사장은 이에 대한 책임 역시 휘하의 ‘오버’ 탓으로 돌렸다.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려내기 위해 자사의 아픈 부분을 대중 앞에 끄집어내고 있는 BBC와 신뢰의 위기 앞에서도 어떤 쓴소리조차 듣지 않으려 하며 항공 마일리지만 쌓고 있는 사장을 둔 MBC의 현실을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남의 불행에 얽힌 상황까지도 부러워해야 하는 현실에 착잡해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나중에라도 이런 착잡함을 덜기 위해, 더 이상 김재철 사장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 MBC 'PD수첩'에서 공정방송을 주장하다 현업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샌드위치를 만들며 살았는지,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들을 쫓아낸 한때는 선배였던 이들이 공영방송 MBC에 무슨 짓을 했는지 꼭 다뤄주면 좋겠다. (출처=금속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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