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나라는 없다

[기고] 질주하는 ‘기후변화’ 뒷걸음질 치는 ‘UN 기후변화협약’

제1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당사국 총회가 8일 막을 내렸다. 카타르는 경기도만 한 면적에 인구는 180만 명.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세계 석유 매장량 12위, 천연가스 수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일머니가 넘쳐나며,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50톤으로 세계 1위인 나라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번 회의의 핵심쟁점은 교토의정서 연장여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여부, 개도국 지원, 더반 플랫폼 논의를 위한 구조 만들기였다. 2주간의 열띤 논쟁 끝에 내놓은 결과는 달랑 “교토의정서를 2020년까지 연장한다”는 것이었다.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는 성명서를 통해 "도하 사막에 기후를 위한 오아시스는 없었다"로 실망감을 표현했다. 카타르의 회의 진행에 대해서도 "지구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협상을 마치 월드컵 경기 개최로 여기는 것 같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출처: www.taz.de 화면캡처]

전 세계 온실가스의 15%만 관장하는 2차 교토의정서

현재 지구 상에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교토의정서이다. 1차 공약기간은 2008~2012년으로 미국을 제외한 선진 37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8%까지 감축하기로 약속했다. 올해로 1차 공약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이번 회의에서 8년 더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일본, 러시아, 캐나다, 뉴질랜드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교토의정서의 효력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과 호주·스위스·우크라이나 등이 감축 의무를 지겠다고 했지만,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15%가량에 불과하다. 더구나 1차 공약기간과 같이 국회비준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정부 간 협약 형태로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규제할 수단이 없다.

그렇잖아도 지구온난화를 막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교토의정서의 생명을 뿌리째 뽑는 격이다. 이대로라면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1.5도에서 안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재해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데,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구속력은 오히려 약화하고 있다.

개도국 지원 "현금 지원 없는 약속"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의 절절한 호소도 선진국에 통하지 않았다. 2010년 칸쿤에서 2020년부터 매년 1,000억 달러씩 지원하기로 한 합의도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에 대해 정하지 못했다. 당장 내년부터 쓸 기금도 없다. 향후 3년간 재정지원은 하되 규모는 명시하지 않았다. 나우루 총리 케케(Kieren Keke)는 "새로운 재정지원금은 없다. 단지 약속만 있을 뿐이다"라고 꼬집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손실과 피해 규정(Loss and Damage, 損亡失)’에 합의해 개도국이 기후변화로 인해 입는 ‘손실’과 ‘피해’를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구체 논의는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기후변화대응 지원이 청정에너지 생산과 적응에 국한되었던 것에 비해 한발 진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반구센터의 마틴 코(Martin Khor)는 "이것은 돌파구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인류는 지난 18년 동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감축'과 '적응'을 행동에 옮길 시기를 놓치면서 이제는 '손실'과 '피해'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도하협상의 불량국가 -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은 감축을 약속하지도, 개도국을 위해 돈을 내놓지도 않았다. 세계온실가스 배출 1위국 중국은 개도국 지위를 고집했다. 교토의정서의 산파역할을 했던 일본은 의정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뉴질랜드와 캐나다도 교토의정서를 무력화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러시아는 '핫 에어' 이익을 끝까지 주장했다. 기후변화협상에서 나름 역할을 하려 했던 EU는 폴란드를 설득하지 못해 2020년까지 감축목표를 20%에서 30%로 상향조정하는데 실패했다. 협상의 파국은 선진국들이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대비 온실가스를 30%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배출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관심은 오직 녹색기후기금(GCF)에만 쏠려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 메커니즘과 지원금이 정해지지 않아 GCF의 경제적 효과(2020년 기금 규모 8천300억 달러 예상)를 자랑하던 정부의 말은 허언이 됐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둔 대표 사례다.

기후변화대응 시계는 2020년으로 또다시 늦춰지고

지난해 남아공 더반회의에서 2020년부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변화대응 체제를 출범하는데 합의했다. 이른바 ‘더반 플랫폼’은 2015년까지 협상을 완료하기로 했지만 이번 회의에서 진전은 없었다. 내년 3월1일까지 새로운 기후체제에 대한 원칙, 법적 형태, 온실가스 감축 방식 등에 대한 나라별 제안서를 제출하기로 했고, 남은 3년 동안 1년에 적어도 두 차례 회의를 열어 2015년 5월까지 초안을 만들기로 했다. 결국 기후변화 대응 시기는 2020년에 맞춰지고 있고, 그때까지 새로운 진전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UN이 아닌 우리 스스로 믿을 때

각국 지도자들이 자신의 임기 내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과 이를 강제하지 못하는 UN협상은 많은 사람에게 절망을 안겨다 주고 있다. 국제 기후변화협상은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15차 당사국 총회’(COP15)를 전후로 동력을 잃고 단순한 회의로 전락하고 있다. 매번 회의를 위해 모이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도하회의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을 둔 조직, 기업과 국가는 지구의 미래를 구할 ‘생태적 지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들고 있다. 2020년 새로운 기후체계를 구속력 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지금 우리가 믿을 것을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행동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기후정의 운동을 통해 기후변화로 피해를 당하는 국가를 지원해야 하고, 한 국가 내에서도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개인들의 직접적인 행동, 지역공동체 차원의 실천, 지자체와 국가정책을 견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 등을 기반으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보호 운동들과 연대해야 한다. 지구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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