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꿈꾸는 이들은 진정 누구인가

[진보논평] 김소연을 선택하는 이유

안철수 전 후보의 문재인 지지로 정권교체를 위한 이른바 ‘문-안 연대’가 성사되어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안 연대’의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일전에 한 지인이 건 ‘시비’가 떠올랐습니다. “이 선생은 노무현정부에 대해서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의 글을 썼으면서 왜 이명박정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거요?” 그 때 저는 “입과 손이 더러워지고 마음도 피곤해져서 잘 쓰지 않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노무현정권으로 상징된 개혁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적지 않은 ‘애정’을 표시한 것인데, 그 지인은 이런 저의 답이 불만족스러웠던지 사시를 주더군요.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한 표를 더하라는 뜻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도 저의 마음은 ‘노동자대통령후보 김소연’으로 향합니다. 그녀가 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에 노동자라는 이유로, 혹은 노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배제되어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말이나 글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착취, 수탈, 배제,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고락을 함께 해 온 그녀이기에 가난한 이들이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눈물겨운가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렇기에 ‘정권교체에 한 표를 더하라’는 말들에 대해 굳이 김소연의 지지표가 자유주의정치세력을 상징하는 문재인의 지지표와 겹치지 않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승리하여 집권하지 못하는 것을 이념, 정치관, 혹은 정책 등에서 질적 차이를 보이는 세력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기에 그렇습니다. ‘남의 탓의 정치’는 그 정치세력이 누구이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동요시켜 그 가운데 일부를 흡인하고 나머지를 중립화시킬 수 있는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빈곤 내지 부재’를 보여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게으름과 무능력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문재인을 후보로 내세우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정치언술들, 즉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리고 ‘사람이 먼저인 사회’라는 슬로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슬로건들은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사회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심정 또한 없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처럼 좋은 슬로건을 내놓고도 거기에 상응하는 구체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여 대중의 마음을 더 이상 사로잡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유약하고 모순에 찬 행태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정책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적지 않은 논의를 거쳐 대중적 공감대를 이룬 내용이기에 결코 새롭다고도 할 수 없는, 즉 ‘비정규직법’ 철폐,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전국단위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실시 등 입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사람이 먼저다.’라고 그리 손쉽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법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그 동료들과 가족들 또한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요.

국가보안법을 놓아 둔 채 어떻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노라 단언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에 더 이상 또 무슨 장황한 논리와 설명이 필요한지요. 지난 11월 29일 국제엠네스티가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 근본적 개정을 촉구한 것을 다시 환기시키는 것은 오히려 지면의 낭비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국단위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없이 지역주의, 보수독점의 정당체제에 의해 조장되는 ‘특권과 반칙의 정치’와 어떻게 단절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새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역설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결코 과도한 요구가 아닙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고 상식이 통하며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그야말로 최소한의 조치일 뿐입니다. 아니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면, 당연히 대중에게 제시해야 할 기본정책들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TV토론과 선거유세에서, 아니 그 당의 흔하디흔한 선거브리핑에서조차 이에 관해 의미 있는 제안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았거나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런데 지금 비정규직법 철폐,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전국단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실시하자고 꾸준히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대통령후보 김소연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른바 ‘군소후보 TV토론’ 등에 나온 그녀는 성소수자, 에이즈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 등의 아픔, 그들의 ‘인권과 시민권의 동일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자기화하면서 함께 걷고 요구하며 투쟁합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김소연 후보는 물론, 지상과 지하, 고공에서 삶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 이 시대 양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격이니 말입니다. 이들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정권 시기에 탄압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진보좌파는 너무 이상을 앞세워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것에 소홀하거나 혹은 그것을 무시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진정 그런가요. ‘상식이 통하고 반칙과 특권이 없으며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하면서도 지금 비정규직노동자들, 해고자들에게 죽음과도 같은 삶의 고통을 주고 있는, 많은 이들의 사상과 양심을 질식시키고 있는, 그리고 보수/수구정치인들이 특권과 반칙을 일삼도록 조장하는 법, 제도들의 폐지 및 도입을 외면하는 이들의 입에서조차 그런 말이 나옵니다. 그런 악법과 제도들을 그대로 둔 채, 수십 만 개의 일자리 창출과 ‘보편적 복지’의 실현을 공약하고 정권교체를 통해 ‘새 정치’를 실천하겠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엄동설한에 전국 여기저기의 철탑에 올라 비정규직법 폐지, 구조조정 철회 등을 외치며 죽음과도 같은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실낱같은 희망의 메시지 한 줄 보내지 않는 이들의 마음속에 진정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사람이 먼저다.’를 외치는 문재인후보과 그 지지자들의 웃음, 환호를 보는 순간, 이 사회에서 그 어떤 몫도 가지지 못한 채 공포와 절망 속에 있는 이들의 ‘핏빛 절규’를 그린 시구가 겹치며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저렇게 떨어지는 노을이 시뻘건 피라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네가 늘 걷던 길이
어느 날 검은 폭풍 속에
소용돌이쳐
네 집과 누이들과 어머니를
휘감아버린다면
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가 내지르는 비명을
어둠속에 혼자서
네가 듣는다면

아, 푸른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작은 새의 둥지도


그렇기에 ‘사람이 먼저인 사회’라는 언술은 이런 공포와 절망에 빠진 이들, 즉 이 사회에서 가장 수탈, 착취, 억압, 차별, 배제당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자 자신을 던져 연대하며 씨름하는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이들만이 민주주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 함께 하는 후보만이 진정한 의미의 ‘국민대통령후보’이자 ‘여성대통령후보’입니다.

그런데 선거운동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체, 삼성, 현대 증 글로벌자본과 국가권력, 용역깡패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투쟁하며 배우는 진정한 노동자지식인 김소연이야말로 바로 그런 후보 아닙니까. 아니 지금 그녀와 함께 자신들은 투표기계가 아니라 이 부당한 사회관계들과 권력관계들을 변화시키는 정치의 주체라고 선언하고 있는 이름 없는 이들, 즉 투쟁하는 비정규직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 이주노동자, 대학생, 청소년 등이야말로 진정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좁은 정체성을 허물고 있는 또 다른 지식인들이자 대통령후보들 아니던가요.

이른바 양식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적지 않은 이들이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선을 구하는 제도’라며 현실 속에 안주하는 이 잔인한 시기에, 이들이야말로 그것을 넘어 ‘자유로운 이들의 결사’를 만들고 그것을 키워나가고자 하는, 그렇기에 선거이후의 ‘진보좌파정치’를 준비하고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정말 고마운 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