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불황 안타까운 자살, 사고 잇따라

원청과 갈등 하청 사장, 실직 30대 연탄불 자살

원청과 갈등하던 하청 사장 자살
성탄절 '혼자 작업' 산재사망... 실직 30대 연탄불 자살


경기불황이 깊어지자 원청과 납품문제로 갈등하던 중소기업 사장과 실직 노동자들의 자살에, 영세기업주의 산재사망사고까지 연말연시 안타까운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28일 새벽 3시30분께 울산 북구 천곡동의 작은 공장에서 10년 넘게 자동차 내장재에 들어가는 패드를 만들어 현대자동차와 현대자동차 1차 하청회사에 납품해왔던 하청회사 (주)동성의 대표 김모 씨(55)가 자신의 공장 안 사무실 옆 높이 2.5m 가량의 배관 파이프에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아내(48)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최근 원청업체가 다른 경쟁업체와 납품계약을 추진하는 것을 알고 고민해왔다. 김씨는 20년 가까이 패드 관련 기술공으로 일한 기술력을 믿고 이 회사를 창업해 독립했는데 경쟁기업이 계속 등장해 늘 경영난에 시달려왔다. 이 회사는 직원 8명의 영세기업이다. 최근엔 연매출 10억원을 넘기지 못할 만큼 불황을 겪어왔다.

김씨는 원청의 요구로 신제품을 개발했는데도 납품이 계속 늦춰지는데다 최근 원청이 다른 경쟁사와 납품계약을 추진하자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여부를 놓고 원청과 갈등했다. 김씨는 원청과 갈등하면서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도 악화돼 힘들어했다.

김씨는 죽기 전날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로 "일 때문에 자정을 넘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는 다음날 새벽이 돼도 연락이 없자 공장으로 달려갔으나 김씨는 이미 숨져 있었다.

지난달 25일 저녁 5시25분께 울산 남구 야음동에 있는 전기자재와 부품 생산공장에선 이 업체 대표 강모 씨(45)가 절단기에 끼여 숨진 것을 강씨의 아내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업체는 얇은 철판으로 소화전이나 배전함 덮개를 생산했고, 강씨 혼자 일하는 '1인 사업장'이었다. 경찰은 강씨가 철판 절단작업 중 옷이 회전하는 절단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강씨는 성탄절인 이날 혼자 나와 일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끊기자 아내가 현장에 나와 발견했다. 당시 현장엔 다량의 피가 흩어져 있을 만큼 처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업체의 대표 김모 씨(46)는 “1년 전 강씨가 업체를 시작했고 평소에도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강씨는 20년 이상 숙련된 절삭공이었다. 1년 전 독립하면서 기계설비에 투자한 빚 때문에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이웃업체 대표 김씨는 "올 여름까진 일감이 부족했는데 최근 2~3달 전부터 주문이 늘자 매일 자정 넘겨서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매일 일했다. 바쁠 때는 가끔 중3인 아들이 학교를 마친 뒤 나와서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고 말했다.

숨진 강씨의 아내도 다른 업체에서 3교대 근무로 일하는 등 부지런했다. 지난 7월부터 1인 사업장에도 산업재해 가입이 가능해졌는데 일에 파묻혔던 강씨는 그 사실을 몰랐다. 한 유가족은 "고3인 딸과 아들에게 기억하기 싫은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숨진 이씨가 차안에 피운 연탄이 다 타고 재만 남았다. = 이정은 기자

지난달 20일 오전 10시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 안에서 이모 씨(31)가 창문을 닫은 채 피운 연탄가스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의 시신은 운전석에 누워 있었고 조수석 아래엔 휴대용 가스버너 위로 피운 연탄의 재만 남았다.

숨진 이씨는 몇 년 전까지 보험사에 다니는 번듯한 화이트칼라였다. 보험업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으로 들어갔지만 산재를 입고도 하소연 한 번 못한채 쫓겨났다.

이씨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S사에서 일하다 얼마전 안전모를 쓰고 근무하다가 철 구조물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경미한 부상으로 여겼던 이씨는 사고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가 2주 뒤에까지 현기증과 어지럼증, 통증이 계속되자 뒤늦게 회사에 알렸다.

그러나 하청회사는 근무 중에 다쳤다는 이씨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 통증으로 이씨는 일하기 힘들어했고 결국 회사는 "다 나으면 오라"며 이씨에게 퇴사를 권했다. 명백한 산재사고지만 어디 호소할 데도 없었다.

빈소에서 만난 이씨의 형은 "동생이 지난 가을 오래 사귀어온 여자 친구와 헤어져 마음이 힘들었던 차에 사고로 회사를 그만두자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이 살던 집은 점점 더 줄어, 결국엔 지난달 고시원에 방을 구했다. 그래도 이씨는 살려고 발버둥치며 새 직장을 구했지만 전보더 훨씬 더 열악했다. 이씨가 자살을 결행한 날은 새 직장에 출근하기로 한 날이었다. 고민 끝에 이씨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기사제휴=울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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