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조합원 컴퓨터 압수수색 키워드가 “노동, 민족, 통일”

압수물품, 노조규약과 교보문고서 산 조선공산당 연구...민주노총 전면대응

29일 경찰이 철도노조 전·현직 간부 6명에 대해 “국가기간산업인 철도공사 내 이적 목적의 비합법적 조직을 결성, 종북세 확산을 꾀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점이 분명하다”며 자택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압수물품이 초라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을 당한 철도노조 전 간부 A씨에 따르면 경찰이 압수한 물품은 철도노조 규약집과 2007년 철도노조 선거 준비를 위해 작성됐던 선거기획서, 교보문고에서 산 조선노동당 조직 연구라는 책 한권 정도였다. 경찰은 A씨의 컴퓨터에서도 소위 이적이라 규정할만한 증거 파일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특히 A씨가 전해준 경찰의 컴퓨터 압수수색 과정의 키워드 내용은 논란의 여지도 있었다. A씨에 따르면 경찰이 파일 검색을 위해 사용한 키워드는 A씨가 속했던 현장조직인 한길자주노동자회의 앞말인 ‘한길’과 ‘노동’, ‘민족’, ‘통일’ 등의 단어였다. 이 같은 단어는 헌법 전문에 나와 있거나 헌법적 가치로 보장한 의미들이다.

A씨는 “한길회가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가 자주 통일을 주장했다는 건데, 경찰이 와서 컴퓨터 문서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어로 처음 ‘한길’을 쳐보고 뭐가 안 나오니까 ‘민족’을 쳐봤다. 또 없으니까 ‘통일’ 쳐보고, 그래도 뭐가 안 나오니까 ‘노동’을 쳤지만, 나온 게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조선노동당 조직 연구라는 책도 작년에 노동진영 정치세력화가 어려워져서 개인적으로 중국당사나 베네수엘라 당에 대해 공부하면서 함께 교보문고에서 샀던 책인데 그걸 압수해 갔다”고 전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들은 한길회는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공개 합법 현장조직으로, 대표도 없고, 회의 자료 등도 공개된 카페에 모두 올려놓고 있어 이적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 노조에나 한두 개 존재하는 정파 조직이라는 설명이다.

심지어 한길회는 지난해 통합진보당이 내분으로 진보정의당으로 분당됐던 것처럼 회원끼리 정치적 입장차가 커 1년 동안 활동이 거의 없었다.

A씨는 “회원이 모여서 뭘 한 게 한 3년은 된 것 같다. 이번에 압수수색을 받았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과도 연락 안한지가 1년은 됐을 것”이라며 “그나마 한길회가 주도적으로 하던 통일 사업도 이명박 정권 때 모두 차단돼 거의 활동을 못했다. 기껏해야 8.15 행사 때 조합원 참여를 주도하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적성 글이 카페에 게시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회원 B씨는 “이적이라고 표현할만한 글이란 게 있겠느냐. 있으면 안 올렸겠지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KTX 민영화 반대 투쟁 무력화 의도”

민주노총은 이번 압수수색에 현 민주노총 대전본부장과 부산본부장, 핵심 노동조합 전현직 간부들이 포함돼 있어 민주노총에 대한 공안탄압으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또한 이번 압수수색을 철도노조의 KTX 민영화 반대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봤다.

민주노총과 KTX 민영화저지 범대위는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X 민영화 반대 투쟁을 하면 종북 이적단체냐”며 공안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범대위 공동대표는 “정부가 은밀하게 추진하던 KTX 민영화가 철도노조의 단결된 투쟁과 국민적 반대에 부딪히자,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한 꼼수로 민영화 저지에 앞장선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탄압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경찰이 압수수색을 해봤자 노동자들에게 나올 것이라고는 민영화 반대 머리띠만 가득 나왔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노조활동을 하고, 통일과 평화를 얘기했다는 이유로 종북 딱지를 붙이고 탄압하는 것은 대중적 노조활동과 민영화 반대 투쟁을 종북으로 모는 것”이라며 “철도노조가 5-6월 민영화 저지 투쟁을 위해 본격적인 힘을 모으려는 시기에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은 민영화 저지 투쟁을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철도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종북 색깔공세’로 몰아간다면 박근혜 정부는 철도노동자들을 상대로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80만 조합원들을 상대로 싸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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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아침 9명의 청년을 압수수색한 소풍 사건은 안 다루시는지. 같은 맥락인데요. 이상하고 편파적인 찌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