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동독여성의 권리를 후퇴시켰다"



Tatjana Ansbach(인권변호사, 독일)씨 발표 요지

동독에서는 실업이라는 것이 없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취업이
보장되었고, 대부분의 여성은 직업을 가졌다. 80년대 말 여성의 취업율
은 91.2%였다.

3세이하 유아의 80%가 유아원에서 보육되었고, 3-6세 어린이의 95%
가 유치원에 다녔다. 이에 대한 보육·교육비와 어린이를 위한 휴일
캠프 또는 취미활동 비용은 최소한에 불과했다. 여성은 매달 하루의
유급월차를 받았고, 여성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특별강좌가 모든
분야에서 열렸다. 출산휴가는 1년이었고, 그 기간에 평상 임금의 70%
가 정부로부터 지급되었다. 원래 일자리로 복귀하는 것 또한 보장되었
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 가운데 한 쪽이 1년에 6주까지 유급휴가를
낼 수 있었다.

이상의 이야기만으로 천국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는 그렇
지 않았다. 가사일은 여성이 거의 전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
은 2개의 직업, 즉 직장에서의 일과 가정에서의 일을 소화해야 했다.
이는 동독의 지배적인 사회·경제적 위계질서의 상층이 남성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현실과 연관이 있다.

통일 이후 많은 여성들은 여성의 존엄성이 자신의 경제적 자립에 의해
결정되고, 취업이 자신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동독 시절 무엇이 가장 좋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번도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은 적이 없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통일 이후 서독의 경제(정치·법까지 포함하여)제도가 그대로 동독에
복제되었다. 서독의 제도는 효율성이 높은 제도이지만, 한편으론 일과
가정의 평행을 더욱 어렵게 했다. 우리는 과연 경제적 효율성이 다른
모든 가치를 충족시킬 정도로 중요한 가치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야 하는 시점에 방을 이룰 수 없다. 서독 법이 동독에 적용됨으로써 우리는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규범과 법까지도 계승받은 것이다. 동·서독 여성
들 사이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상호 공감이나 협력이 없었다.
동·서독 여성들이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7년 6월 20일(금) 인권하루소식 제 9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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