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성폭력 피해는 인정, 가해자는 '무죄?'

대전법원, 지적장애인 피해 때·곳 진술 불확실 ‘무죄’

  25일 이른 11시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지적장애인 성폭력 가해자를 연이어 무죄 판결한 대전 지방·고등법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대전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대전 지방·고등법원이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연이어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 판결을 내리자 전국 성폭력상담소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규탄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은 인정하나 피해자인 지적장애인이 범행 일시와 장소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 판결의 이유다.

2013년 8월 14일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원범)는 대전 ㄱ교회 장애인부서 담당 전도사가 지적장애여성을 모텔로 유인해 성폭력 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은 충분히 유죄로 인정할 수 있으나 범행 일시와 장소는 증명에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며 원심 4년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어 지난 4월 30일 대전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용덕)에선 원심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했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다니던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시설장의 남편인 운전기사가 봉고차 뒷좌석에서 피해자를 때리고 입과 항문에 유사강간 후 “엄마에게 말하면 혼난다”라고 피해 장애여성을 협박한 사건에 대해 원심 1년 6개월 선고를 파기하고 무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 공소사실 기제와 같은 추행 행위가 존재하였을 개연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범행일시, 장소 등 피해 감정과 상관없는 객관적 요소에 관하여 사실에 부합하는 정확한 진술을 하고 있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라고 판시했다.

이러한 재판부의 판결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은 “대전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송경호)는 현재 재판 중인 친부에 의한 지적장애아동 성추행 사건에 있어서도 범행 일시, 장소 특정을 요구하고 있어 이 또한 무죄판결 가능성이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은 25일 이른 11시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지적장애인 성폭력 가해자를 연이어 무죄 판결한 대전 지방·고등법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장애인상담소권역 정은자 대표는 “몇 해 전 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모시고 법원에 갔다가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거리 골목길에서 그분이 한 시간이나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라며 “법원은 지적장애인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시와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했다. 매우 분노한다.”라고 밝혔다.

구세군정다운집성매매피해자보호시설 이부순 원장은 “어느 수학자가 다섯 살 아이에게 수학 미적분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치자. 설명 후 물어보니 아이가 기억도 못 하고 문제도 푼다. 과연 누구 잘못인가. 다섯 살 아이의 잘못인가?”라며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인식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이날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성명에서 “성폭력특례법 개정으로 장애인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높아짐에 따라 재판부는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강화하여 지적장애인 피해자에게 구체적이고 정확한 피해내용과 일시, 장소 특정을 요구한다”라면서 “특히 지적장애 특성상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고 스스로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음에도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진술 일관성과 신빙성을 강요하여 결국 피해자는 2차 피해를 당하게 되고 가해자는 무죄로 풀려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 단체는 “이처럼 지적장애 피해자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법원 판결이 다수 있음에도 대전 지방·고등법원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장애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범죄구성요건에 맞는 진술을 끝까지 요구하고 판사의 상식과 경험칙에 맞지 않으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은 장애인 성폭력 가해자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피해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은 바깥 활동을 못 하고 집에만 있고, 3년이 지났음에도 봉고차만 보면 두려움에 벌벌 떨고 피해 당시 고통에 눈물 흘리며, 친부인 가해자를 피해 보호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등 평생 씻을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들 단체는 “지적장애인 특성도 알지 못하는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 판결할 자격도 없다. 재판부는 각성하라”라며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 특성에 맞춘 판결 기준 마련과 가해자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