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1명 계정 압수해 3천명 사찰...“사실상 감청”

카톡방에서 나눈 쌍용차, 희망버스, 취재 정보 모두 압수

수사당국이 1명의 카카오톡(카톡) 압수수색을 통해 3,000명의 개인정보와 대화를 한 번에 사찰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6월 만민공동회 주도혐의로 구속기소됐던 정진우 씨(노동당 부대표)가 종로경찰서로부터 지난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40일 사이의 카톡 내용을 압수수색했다는 통지서를 지난 18일 받으며 알려졌다. 경찰이 압수한 카톡 내용에는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 전체가 포함됐다.


압수될 당시 정진우씨가 나눴던 카톡 대화 중에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나눈 이야기뿐 아니라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 재판과 관련해 변호사와 나눈 대화 등이 모두 담겼다. 또 얼마 전 카톡 압수수색을 받은 용혜인 씨(‘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의 경우에는 압수수색 대상에 맥어드레스(통신을 위해 랜카드 등에 부여된 일종의 주소)까지 포함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수사당국은 결국 카톡 대화 내용을 법원에 증거 자료로 제출하지는 않았으나 집시법 위반을 빌미로 통신기록에 접근해 수천명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진우씨와 용혜인씨는 1일 오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등 인권단체들과 함께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는 단순히 한 개인에 해당하는 압수수색이 아닌 광범위한 감시·사찰 행위며, 심각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사이버 검열에 해당한다”며 피해 당사자로서 이 상황과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렸다.

카톡방에서 나눈 쌍용차, 희망버스, 취재 정보 모두 압수

정진우 씨가 제기한 첫 번째 문제는 수사당국이 카톡 압수수색으로 자신부터 카톡방에 가입된 주변인물을 비롯해 불특정 다수까지 광범위한 사찰을 했다는 점이다. 실제 수사당국이 카톡 계정을 압수수색할 경우 이들은 계정 소유자 1인 뿐 아니라 그의 카톡방에 가입된 다수의 개인 정보와 대화 내용까지 볼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지인부터 이름도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3천여 명이 가입된 친목도모 및 시사토론, 정당활동과 사회운동, 배우자와 지인과의 대화 카톡 등 다수의 대화기록을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한번에 모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진우 씨의 카톡방에 있던 정당활동과 사회운동 관련 대화 내용도 모두 수사당국에 공개됐다는 문제가 있다. 정진우씨는 “카톡방에는 세월호 재판과는 직간접적 관련은 없지만 평상시 노동운동과 관련해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업체들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 쌍용차 투쟁 등에 대해 노동부가 상당히 관심 있을 만한 내용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또 희망버스 변호인단과의 카톡방에서는 사실상 검찰과 희망버스 변호인단 간의 첨예한 논쟁의 지점에 대한 전략이 논의됐는데 수사당국은 이 토론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기자들과의 카톡방에서 시위 참가자에 대한 민감한 정보가 오고갔지만 이 또한 제한되지 않았다.

[출처: 정진우 씨(노동당 부대표)]


수사과정 또한 팩스 한 장으로 카톡사에 공문을 보내 계정 내용을 파일 자료로 전송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사실도 정진우씨는 보석으로 석방된 후 일방 통보받았을 뿐이다. 정진우씨가 구치소에 수감 중일 때 경찰은 그의 노모만 있던 자택을 방문해 그의 핸드폰을 압수하고자 했다.

정진우씨는 “자신의 카톡방에는 지인뿐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공권력의 수사대상이 된 것”이라며 “개인 정보뿐 아니라 카톡 대화 내용에서 드러나는 정치 성향 모두 경찰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제가 이 사실을 카톡방을 통해 지인들에게 알렸을 때 모두가 한 동안 침묵했다”면서 “처음으로 국가기관에 범법자로 취급당하는 경험을 한 것 같았고 너무 충격이 커서 심리적 아노미 상태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 시위 제안자 용혜인씨는 “제 경우는 집시법 위반, 해산명령 불응죄에 해당하는데 왜 카톡과 정보를 압수수색한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며 “그냥 대화를 나눈 사람들에 대한 정보와 맥어드레스까지 압수했다는 점에서 무섭고 소름끼쳤다”고 밝혔다.

“카톡 대화 내용 압수수사...사실상 감청”

  종로경찰서가 일방 통지한 압수수색 영장 [출처: 정진우 씨(노동당 부대표)]

전문가들은 정진우 씨에 대한 수사당국의 카톡 압수수색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수사당국에 대한 법적 대응 뿐 아니라 현재 통신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개선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정진우 씨의 경우와 같이 혐의 입증과 무관하게 정보 수집으로 활용되는 것은 국가에 의한 빅브라더적인 감시”라면서 “개인의 정보 기본권 침해”이자 “결국 정치적 표현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희망버스 변호인단 조영선 변호사는 “카톡 압수수색은 명목상으로는 집시법 위반이 문제였지만 사실상 일종의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카톡 압수수색은 대화 내용에 대한 압수로 사실상 감청”이라고 못박았다. 이 때문에 “온라인 대화 내용은 감청에 준하는 정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또, “압수수색의 경우 피의당사자에게 급속을 요할 경우 통지하지 않도록 하는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일 경우 급속한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디지털 압수수색일 경우 피의자와 변호인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 디지털 대화 당사자에게 다 통지해야 했다는 점, 영장을 제시해야 하지만 팩스 한 장으로 압수가 이뤄졌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정진우 씨는 “보석된 후 검찰로부터 보석을 취소시키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지만 다시 감옥에 가게 되는 증거자료가 되더라도 당당히 저의 말과 글을 쓰겠다”며 “당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자가 아니라 본연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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