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꼼수 부리지 말고, 반올림과 성실히 교섭하라

[칼럼] 7년 간의 요구를 외면해선 안 된다

“내 딸이 백혈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2인 1조로 함께 일한 이숙영 씨도 똑같이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백혈병이 그 흔한 감기도 아닌데 두 명이 일하다 두 명 다 백혈병으로 죽었는데 이게 산재가 아니면 무엇이 산재입니까? 그런데도 삼성은 산재가 아니라고 하고 약속한 치료비도 주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이 거짓말할 기업이 아니라고 합니다”며 눈물로 호소하던 고 황유미님 아버지의 진실을 향한 투쟁이 승리했다.

지난달 12일 근로복지공단은 고 황유미 님과 고 이숙영 님의 백혈병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항소심판결에 상고를 포기해 고인들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확정됐다. 딸 잃은 아버지의 외로운 호소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반올림으로 모아졌고 반올림의 헌신적인 투쟁은 7년간 거대 삼성에 맞서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 격려를 끌어냈다. 삼성반도체산업 노동자 건강권과 노동권 현실이 폭로됐고, 거대기업에 납작 엎드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불승인과 부실한 역학조사 문제가 제기됐다. 산재를 신청하려는 피해자들에 대한 탄압과 회유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산재 당한 노동자가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산재보험 입증제도의 문제점을 넘어 대안 모색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삼성과 반올림의 교섭은 지지부진하다. 2013년 삼성의 대화 제의를 시작으로 몇 차례 실무협의 끝에 본교섭이 열렸다.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 등 3가지 의제를 논의하기로 하고 시작된 본교섭은 삼성이 반올림을 교섭주체로 인정 못하겠다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지난 5월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이 삼성 백혈병 문제에 사과하고 피해자 보상과 재발방지책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교섭이 재개됐으나 삼성은 줄곧 “교섭에 참여하는 8명 보상문제를 우선 논의하자”며 근본적 대책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삼성 계열사에서 일하다 직업성 암을 얻었다며 반올림에 제보한 피해자 숫자만 233명이고 이 가운데 98명이 숨졌다.

삼성과 반올림의 교섭은 이미 사회문제가 된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교섭의 장이지만 삼성은 그 의미를 축소하고 반올림을 교섭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 집요하다.

최근 들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반올림에서 함께했던 피해자 가족 일부가 떨어져 나가 가족대책위를 구성하고 “6명에 대한 보상 논의를 우선하겠다”며 독자교섭을 선언하더니 급기야 지난달 17일 8차 교섭에서 제3의 조정위원회를 삼성에 제안했다. 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3조정위원회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교섭주체로 참여해 온 반올림을 배제하려고 하고 있다.

삼성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삼성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교섭의 장에 걸어 나온 과정은 삼성 스스로의 결단이 아니라 삼성백혈병에 대한 피해자와 반올림의 헌신적 투쟁의 결과로 삼성에 대한 사회적 항의와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삼성이 교섭해야 할 주체는 반올림이다. 삼성은 애초 반올림과 합의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에 대해 성실히 교섭해야 한다. 반올림이 제시한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과 관련한 12가지 요구사항은 지난 7년간 진실 규명 과정에서 만들어진 피눈물 어린 요구이기에 그 요구를 비켜가거나 폄하하거나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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