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노동자는 왜 구조고도화 설명회장을 방문했나

김익수 구미시의장도 "멀쩡한 공장 구도고도화 선정 안 된다"

노동자들은 왜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공모 설명회장을 방문했나

구미 반도체공장 (주)KEC 노동자 30여 명은 16일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주최한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공모 설명회’에 참석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들은 구조고도화 대행사업 신청을 검토 중이거나 계획 중인 회사의 관리자들이었다. 3교대 근무를 하는 노동자 30여 명은 구미에서 버스도 거의 다니지 않는 대구 신서혁신도시 내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본부까지 왔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제작한 ‘산업단지의 역사’가 담긴 영상과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를 위한 설명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질문 시간이 돌아오자 가장 먼저 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한 노동자들은 모두 가슴팍과 등에 “KEC 폐업반대”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금속노조 KEC지회 김성훈 지회장이었다.

그는 “KEC는 2010년 이후로 매년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1,000명이 넘었던 근무자가 이제는 70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또, 2010년 여성기숙사에 난입해 여성노동자를 끌고 나갔습니다. 이후 이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을 강제했습니다. 또, 작년에는 국세청으로부터 탈세 혐의를 받아 세금을 추징당했습니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해 처벌당한 경력도 있습니다.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에 신청하기 위해서인지 멀쩡히 돌아가던 3공장을 가동 중단하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힘겨웠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기가 힘들었을까, 아니면 회사의 문제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그는 잠깐 쉼표를 찍고 말을 이었다. (관련기사: 뉴스민, 2013년 8월 12일자, 국세청, 역외탈세 혐의 (주)KEC 세무조사 후 추징세액만 부과)

  한국산언단지공단의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공모 설명회에 참석해 질문하는 김성훈 금속노조KEC지회장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저는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구조고도화 사업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1위라고 하는 반도체사업장이 왜 산업을 바꿔야만 하는 것인지, 노동자를 해고하는 데 앞장서는 회사에 어째서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 선정 특혜를 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회사는 이 설명회 자리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몇 개월 전부터 어용노조를 꼬드겨 구조고도화 사업 추진 동의서를 받고 있습니다. 2012년 제출한 사업 신청서를 보면 구조고도화 부지 옆에 가동하겠다는 공장을 두고 ‘유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폐업의 절차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잘 나가는 반도체 공장 51%를 가동 중단시켜서 백화점, 오피스텔, 대형마트를 세우는 것이 어떻게 일자리 창출입니까”

구미시의회 김익수 의장 “공장부지에 아파트 짓도록 특혜주면 안 된다”
“공장부지 헐값에 샀으면, 공장 운영하는 사람에게 팔아야”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공모 선정과정에서 해당지역 광역단체, 기초자치단체와 협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구미시의회 김익수(새누리당) 의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KEC나 방림에 용도변경을 해주면 기업특혜다. 공단을 백화점 등의 부지로 쓰려고 만들지는 않았다. 공단 부지를 평당 4~500원의 헐값에 샀으면,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팔아야지, 땅값 올려 백화점이나 아파트 짓는 데 쓰도록 특혜를 주면 안 된다”며 “혁신단지라고 하는데, 공장부지를 용도변경해서 아파트 짓고 하면 누가 공장을 운영하려고 하겠느냐. 기업이 잘 되어야 백화점, 아파트도 필요하지. 공장 다 떠나고 돈벌이도 안 되는데 다른 건물 지으면 뭘 할 수 있겠느냐”고 KEC의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 신청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시의회가 승인해야 하는데, 시의회는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구조고도화 사업은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11월 28일 민간대행사업자 공모를 마감하고 12월 심사를 마칠 계획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상북도, 구미시는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일자리 창출'이 기존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면 현명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전순옥 의원은 한국산업단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구미산업단지 구조고도화사업’ 관련 자료를 검토한 후 “기존 공장부지에 기숙사형 오피스텔, 레지던스호텔, 복합판매시설 건설 등을 포함하는 민간대행사업을 신청하려는 KEC가 사업자로 선정되면 대규모 건설공사로 반도체공장도 생산활동이 어려워져 폐업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14일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뉴스민, 2014년 10월 14일자, 전순옥 의원 “KEC 구조고도화사업 신청은 폐업 수순”)

“일자리 창출이 구조고도화 목적, 민원은 심사 점수 반영한다”
심사 100점 가운데 ‘민원발생방지 및 해결방안’ 고작 5점에 불과


설명회 시작 당시 풍경을 살펴보자. 구체적 설명 전 한국산업단지공단은 10여 분짜리 영상을 틀었다. 국가산업단지가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었다는 찬란한 영상이었다. 구로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등이 지나갔다. 당연히도 이러한 영상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저항한 노동자의 모습은 없었다. 그리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노후한 국가산단을 다시 개조해야 한다는 것.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구조고도화사업팀 정인화 실장이 대행사업자 공모와 관련한 설명을 시작했다. 구미1국가산단도 사업대상지로 선정된 9개 산업단지 가운데 하나다.

정인화 실장은 “국가산단 구조고도화사업의 목적은 일자리창출과 문화·복지 시설 확충에 있다. 현 산업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기반을 유지한 가운데 연구소와 R&D시설과 더불어 근로자기숙사, 공원 등 도시 근로자에게 부족한 문화·복지 시설 등이 필요하다”며 “또, 기업 인력난을 위해 컴퍼스까지 유치해서 노후거점단지를 혁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KEC지회장의 질문과 관련해 정인화 실장은 “기본적으로 이 사업은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진행한다. 민원이 발생하거나 이해당사자와의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탈락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성훈 지회장은 “만약 KEC가 민간대행사업자로 선정된 다음 나머지 가동 공장을 폐업한다면 국가가 노동자들의 고용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강하게 물었다. 정 실장이 언급한 ‘민원발생방지 및 해결방안’과 관련한 심사배점은 전체 100점 가운데 5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0점은 없다. 아무리 민원이 많더라도 1점, 민원이 전혀 없더라도 5점을 받는다. 편차는 4점에 불과하다.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 공모 심사평가표

이에 정인화 실장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지금 신청받고 있는 단계에서 공식적으로 특정 기업을 지목해서 신청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심사 과정에서 우리는 현장을 방문해 이해관계자의 의사도 다 들을 계획”이라며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기업에 특혜를 주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일자리 창출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노조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와 신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가 한 말만 놓고 보면 KEC가 구조고도화사업 민간대행사업자 신청을 하더라도 문제를 확인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도다. 하지만 MB도 4대강을 망쳐놓겠다면서 4대강사업을 펼치지는 않았다.

구미산단 1호 기업 KEC, 구조고도화 설명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산업구조고도화는 2차산업(공업, 제조업)으로만 구성된 산업단지 구조를 3차산업(서비스업, 통신업 등)까지 포함된 구조로 바꾸겠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하면 공장만 있던 공단에 서비스업, 문화 시설 등을 확충하겠다는 소리다.

구미공단은 69년 3월 정부가 공업단지편입지역을 매입하면서 출범했다. 309만2천평의 제1단지는 73년까지 조성됐다. 농업 중심이던 선산군 구미읍이 78년 칠곡군 인동읍까지 통합하면서 구미시로 출범하게 된 계기는 산업단지였다.

이때 처음 구미공단에 들어선 기업이 KEC(당시 한국도시바), 두 번째가 코오롱이다. 선산출신 재일교포 기업인 곽태석이 69년 한일합작으로 한국도시바 공장을 짓기로했다. 곽태석은 현 곽정소 KEC회장의 아버지다. 구미대로를 마주 보고 있는 향토기업 1, 2호인 KEC와 코오롱은 모두 ‘노조탄압’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

2012년, KEC는 방림방직, 오리온전기와 함께 구미1공단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로 신청했다. 당시 구미시소상공인연합회 등 상인들은 골목상권이 무너진다며 반대 의견을 냈고, 지역 공청회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신청사업자들은 점수가 부족해 탈락했다. 올해 9월 다시 민간대행사업자 공모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KEC는 한국노총 KEC노동조합과 함께 구조고도화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동의를 얻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탓인지 KEC 관계자는 16일 열린 설명회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뉴스민, 2013년 6월 18일, KEC 구조고도화 사업 본격화…노조, 시민단체 강력 반발)

‘경영위기’ 강조하며 정리해고 반복한 KEC "구조고도화가 경영 위기 탈출 해법“
금속노조 KEC지회 “유해위험물질 취급 반도체공장, 대형공사에도 가동가능한가?”


설명회가 열리기 한 시간 전인 16일 오후 1시, 금속노조KEC지회, KEC폐업반대 범시민운동서명운동본부, 민주노총 대구본부, 서울본부 남구지구협, 경북본부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월·시화는 물론, 창원, 대구 등 수많은 공단에서 부동산 임대수익을 노리는 오피스텔 건물이 공단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호텔도 들어섰다”며 “구조고도화사업은 노후화된 산단을 리모델링해 첨단산업단지로 변모시키겠다는 구상은 사라지고, 임대수익을 노린 부동산투기 자본과 대형 유통서비스업이 공단에 들어오는 계기만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멀쩡히 가동 중인 공장인 KEC에 대형유통센터를 짓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은 KEC 구조고도화에 다른 배경이 있다는 의혹을 품게 한다. KEC는 200여종이 넘는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는 반도체공장으로 진동과 먼지에 취약하다. 대형공사가 시작되면 제품의 안정적 생산은 불가능하다”며 “부산시 계획이 발표되자 풍산마이크로텍은 공장부지에 돔구장을 지을 욕심으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공장 문을 닫았다. KEC 구조고도화 신청은 폐업의 수순”이라며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로 KEC를 선정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회사 측은 “공장 폐업은 없다”며 “구조고도화 추진은 회사의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구미공장의 유휴지를 이용함으로써 생산시설과는 무관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주)KEC가 작성한 구조고도화 사업대행계획서 내용에는 현 공장가동부지를 개발유보지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 위기’를 강조할 때마다 정리해고를 반복한 KEC의 전례를 보면 KEC지회의 주장에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KEC는 2012년 경영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했지만,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아 복직시켰다. 2014년 3월에도 경영위기를 이유로 140여 명에게 해고를 통보했지만, 해고가 예정된 당일 스스로 철회하기도 했다. (뉴스민, 2014년 4월 17일자,KEC, 정리해고 당일 문자로 "취소한다. 업무복귀하라")

이번에는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 모집 재공고가 나기 전부터 준비를 착착 진행해왔다. 2013년 ‘구미공장구조고도화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구조고도화 사업 대상 부지인 3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또, 지난 7월 25일 한국노총 KEC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맺으며 ‘회사의 위기극복과 고용안정을 위해 구조고도화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는 노사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리고 한국노총 KEC노동조합은 14일 오전 회사와 구미공장구조고도화추진위원회를 마친 이후 구미공장 구조고도화를 적극 지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KEC노동조합은 구미공장의 구조고도화를 통해 △KEC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길 △조합원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일 △KEC 본연의 사업을 더욱 집중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 △구미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업 △신규 인력고용 4천명으로 일자리 창출 등의 혜택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16일 <영남일보>는 (관련기사 :‘구미 KEC 부지활용 놓고 勞-勞 대립’) 구조고도화 사업을 ‘노조 간 대립’ 구도로 보도했다.
덧붙이는 말

천용길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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