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자 소굴된 인권위, “투명한 인선절차 도입해야”

“인권위법, 인선절차 없이 임명권자만 명시해 ‘보은인사’ 방치”

최근 청와대가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활동을 펼쳐왔던 최이우 목사를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임명하면서, 인권위의 반인권적인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특히 최이우 목사의 임명은 지난 3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아래 ICC) 승인소위가 인권위에 대해 등급보류 결정을 내리면서 투명하고 참여적인 선출과정 등을 도입하라고 권고한 내용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어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 등은 인권위원 임명과정에 투명하고 민주적인 인선절차를 도입하고, 인권위의 독립성 등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에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서영교 의원은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공청회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고, 인권위법 개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명숙 집행위원

공동행동 명숙 집행위원은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인권위의 독립성 확보 △인권위원 인선절차 마련 △각하사유 축소 등을 통한 인권위의 구제 기능 강화 △인권위의 민주성과 투명성 강화를 중심으로 제시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 것은 ‘인권위원 인선절차 마련’이다. 인권위법 5조에 따르면 여야 정당이 각각 4명씩, 그리고 대통령은 4명, 대법원장은 3명의 인권위원을 임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와 여당이 반인권적 인사들을 아무런 검증과정 없이 인권위원 자리에 앉혔고, 전원위원회를 장악한 이들은 민감한 인권현안을 표결로 밀어붙여 논의를 끝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는 것이다.

명숙 집행위원은 “인권위법 5조에 임명권자만 있고 인권위원 인선절차가 없다”며 “이 조항이 인권위원 임명 과정을 사실상 보은인사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과정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장애인시설장이었고 인권침해에 연루되기도 했던 김양원 씨를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명숙 집행위원은 “인권위원 중 상당수가 법조계 인사들로 꾸려지고, 장애인 등 인권영역의 소수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충분히 포함하지 않아 인권위원의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라고 지적하는 한편, “심지어 임명권을 가진 각 부에는 인선을 위한 내부 절차도 없어, 독립기구의 위원이라기보다 행정부처의 장을 임명하는 것에 가깝다”라고 비판했다. 즉, 인권위원 임명절차가 정부 권력으로부터 인권위의 독립성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시된 안이 ‘인권위원 후보 추천위원회’ 도입이다. 인권활동 경험과 인권감수성을 모두 갖춘 인사를 선정하기 위해 국회와 법조계, 아동·여성·장애인·보건의료 등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천위원회가 정원의 2배수 이상의 인물을 후보위원으로 선정해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에서 인권위원을 최종 선정해 임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명숙 집행위원은 이 외에도 인권위의 조직 운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권위 조직 운영의 세부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위 자체의 규칙으로 정하도록 하고, 인사 독립성을 위해 5급 이상 공무원 임용시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규정을 개정해 임용권을 전적으로 인권위에 두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또 인권위가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며 민감한 인권사안에 대해 눈감는 행위를 가능케 한 인권위법 32조의 ‘각하사유’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인권위 내의 논의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록, 회의자료 등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과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서영교 의원은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었다.

이러한 내용은 사실 올해 ICC 승인소위가 인권위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등급심사 보류 결정을 내면서 이미 권고했던 내용이지만, 인권위와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 ICC 승인소위 위원이었던 유남영 변호사는 “ICC가 두 차례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은 ICC가 중대한 문제로 지적한 사항에 대한 변화가 입법의 변경 등을 통해 시도되고 있어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거나, 승인소위가 등급을 바로 강등하는 대신 인권위에 경고를 하면서 문제되는 사항의 변경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인권위는 내년 3월 또 한 번의 ICC 등급심사를 앞두고 있는데, 이에 대해 유 변호사는 “3월 이전 ICC 권고가 반영된 인권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한, 승인소위는 다시 보류를 하기 보다는 최종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며 “이때 한국의 인권위가 여전히 A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스럽다”라고 지적했다.

ICC는 각국 인권기구에 대해 정기 심사를 통해 A, B, C로 등급을 매기며, 우리나라는 2004년 이후 줄곧 A등급을 유지해 왔다. 만약 B등급으로 강등이 되면 한국의 인권위는 ICC에 정회원으로 참여할 수 없으며, UN인권이사회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에 대해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공청회에 참석한 인권위 조형석 국제협력팀장은 “ICC 승인소위의 권고 내용은 구속력 있는 규정으로 이를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우리의 법제도를 고려한다면 입법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승인소위 권고를 이행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각 지명 기관이 내부규정으로 (인선절차를)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밝혀, 사실상 공동행동 등이 제안한 인권위법 개정안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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