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5급, 그는 왜 햇볕을 빼앗겼을까?

한겨레 ‘미담’ 기사...‘반짝 외출’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햇볕은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만물이 소생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인 이 햇볕은 우리에게 어떤 사용료 지불도 요청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는 친절한 산책길 동무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햇볕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 한 언론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그런 사실을 깨닫게 해 줄 목적은 전혀 아니었겠지만 말입니다.

  지난 26일 한겨레 보도, <‘햇볕’ 그리웠던 장애인, 함께 산책 나서준 경찰 선행에 ‘글썽’> 화면 갈무리

기사는 전형적인 ‘미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한겨레의 보도(「‘햇볕’ 그리웠던 장애인, 함께 산책 나서준 경찰 선행에 ‘글썽’」)에 따르면, 서울 방화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아무개 씨(64)는 112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어 “여기로 와서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강서경찰서 공항지구대 소속 경찰이 신고가 들어온 집을 찾아갔지만 인기척이 없었고, 이웃들을 통해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이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 씨에게 전화로 현관 비밀번호로 물어 집 안에 들어간 경찰은 그가 속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로 홀로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김 씨는 지난해 1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때 김 씨는 “햇볕을 안 본 지 너무 오래돼 볕을 쬐고 싶어 신고했어요. 이런 일로 신고해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경찰은 김 씨에게 속옷 등을 챙겨 입히고 휠체어에 앉혀 햇볕이 쪼일 수 있게 해 드렸다는,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페이스북으로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기사의 훈훈한 분위기와는 좀 달랐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이상호 전 서울시의원은 기사를 공유하면서 “고맙다... 아니 서럽다...."라고 짧은 글을 남겼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진실은 기사 안에 다 있습니다.

김 씨는 현재 오른팔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데도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5급이면 몇 가지 감면·할인 혜택 말고는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거의 없습니다. 이 분에게 가장 시급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현재 1~2급만 해당. 올해부터 3급까지 확대)는 물론이거니와, 장애인 콜택시 이용 대상(1~2급만 해당)도 아닙니다. 기사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소득보장을 위한 장애인연금 대상(1~중복3급까지 해당)에서도 제외됩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김 씨의 일상생활 지원은 사촌동생이 드나들면서 도와주는 정도였습니다.

김 씨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 나라 장애인복지의 구조적 문제점을 여과 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른팔만 움직일 수 있는, 일상생활에 엄청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왜 어떤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는 장애5급 판정을 받았는가? 현 정부가 부르짖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맞춤형 서비스’라는 것과 너무 모순되지 않는가? 서비스 필요도와는 무관하게 장애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기계적으로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상식적으로 판단했다면, 당연히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어 기사를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기사는 오직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선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입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것은 경찰의 당연한 소임이고, 경찰은 맡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소임을 다한 공무원에게 박수치는 것이야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명백히 잘못된 현실을 거론하지도 않을 만큼 다급한 일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해당 기사에서는 김 씨가 복지의 사각지대 속에서 수개월 동안 햇볕을 빼앗긴 채 살았다는 사실은 가려진 채, 경찰의 ‘따스한 구원의 손길’(?)에 의해 내복 바람으로(!) 집 밖에 나와 잠시 햇볕을 쬐었다는 사실만이 강조됩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햇볕’을 쬐기 위해서 “이런 일로 신고해서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말까지 해가며 경찰을 불러야 하는, 김 씨에게 가해진 너무나도 부당한 권리 침해가 왜 기사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까요?

기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찰의 말을 빌어 독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기사는 경찰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내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원하면 언제든 햇볕을 쬘 수 있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데도 얼마나 많은 불평불만을 품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라고 한 말을 충실히 전했습니다. 경찰이 이번 일을 통해 받은 감동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 같은데요.

장애인을 향한 세상의 이런 시선에 대해 골형성부전증을 갖고 살았던 장애인이자 호주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스텔라 영(Stella Young, 2014년 12월 사망)이 ‘감동 포르노’(Inspirational Porn)라고 일갈했던 사실이 떠오릅니다. 장애인을 물건처럼 대상화하고 그저 자신의 처지가 그들에 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행태를 꼬집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스텔라는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감동을 주는 소재가 되고 싶지 않다.”

장애인의 비참한 현실이든, 어려운 조건을 극복한 어떤 성취이든 언론에 의해서 이렇게 비장애인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소재로 쓰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장애인의 삶을 향한 언론의 이런 낡은 시선들, 이제 좀 언론다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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