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 알아준다면 목숨 바쳐 하고 싶다”

[워커스 16호] 고급 Zine - 홍재희, 양정원을 듣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만 대개 사람들은 크레딧을 수놓는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영화 한 편에는 많은 예술가들의 노고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귀를 사로잡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도 있다. 양정원 영화 음악 감독을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홍재희(홍) 요즘 무슨 작업 하나?

양정원(양) 웹 드라마. 요즘 웹 드라마가 대세다. 한국 사람이면 다 한다는 카톡이나 네이버로 시청한다더라. 그런데 난 카톡을 안 해서. (웃음)

난 둘 다 안 하는데. (웃음) 무슨 줄거리인가?

양 그게 남녀상열지사 얘긴데.

오호! 야해서?

그런 것도 있나 보더라. 그런데 그런 게 나한테 온 건 아니고. (웃음)

드라마 음악은 어떻게 만드나?

잘 만들면 된다.

순간 난 그를 째려봤다. 이런 뻔한 멘트를 날리다니. 좋다. 질문을 바꿔 보겠다.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일하기 좋은 감독은?

솔직히 ‘어느 영화에 썼던 어떤 음악처럼 해 줘’라는 감독이 편하다.

헐! 명색이 작곡가가 이런 영혼 없는 말을 해도 되나?

광고 음악은 그렇다. (웃음) 그런데 영화에서도 그러더라. 이유는 딱 하나. 삽질하기 싫어서다. 정성껏 작곡했는데 “이거 아닌 거 같다”며 곡이 전부 버려진 적이 있다. 그때 들은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떻게 한 곡도 쓸 게 없냐.” 그 말에 크게 상처받았다. 뭐 내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보여 달라고 하게 된 거지. 난 영화 음악은 엔딩곡부터 만든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영상 도움 없이 작곡가가 혼자 떠들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거든. 영화는 끝났지만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을 때, 심지어 불 켜지고 나서도 계속 흘러나오는 음악. 엔딩곡을 만들 때 감독한테 묻는다.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길 바라는가. 그때 버려진 음악 중 엔딩곡이 정말 좋았는데.

그런데 결국 못 썼잖아.

다른 영화에 썼지. 재워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것도 아니고. 의미 있게 재활용했다.

영화 음악가는 작곡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영업도 해야 하고 감독 의도도 파악해야 하고 의사소통도 잘해야 해서 피곤하겠다.

맞다. 그래서 영화 음악을 하면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처세술이 느는 거 같다. (웃음) 그런데 난 그걸 잘 못해서 큰 영화, 돈 버는 영화를 못 하나 보다. 난 인격 수양이 덜 돼서 상대가 찌르고 들어오면 그만둔다. 영화 한 편에서 쏙 떼어 내도 상업화가 가능하고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건 오로지 음악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뭉쳐 있어야 빛이 나는데 음악은 같이 있어도 되고 따로 있어도 된다. 그래서 영화 음악이 참 매력적인데 힘든 건 자유롭진 않다는 거. 음악 외적인 것 때문에. 한번은 중간에 내가 때려치웠다. 감독이 처음에는 내가 만든 곡을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곡을 이리저리 자르고 빼고, 순서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곡을 하고 있더라. 그 순간 깨달았지. 난 감독 대신 악보만 그려 준 거였구나.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생겨도 참았다. 나이 먹으니까 몸이 힘든 건 참겠는데 정신적 고통은 더 이상 못 참겠더라. 생각해 봐라. 택시 기사한테 여기서 좌회전 해야지, 여기서 우회전 해야지 하면서 시시콜콜 길을 알려 준다면 기사 기분이 어떻겠나. 난 음악 만들 때 이건 100만 원짜리니까 100만 원만큼만, 이건 500만 원이니까 그만큼만, 그렇게 안 된다. 똑같이 공들여 만든다. 작곡가라면 다 그렇다. 그래도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책임져야 했겠지. 만일 내가 돈을 많이 받았으면 그만둘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자유롭지 않은 거다.

참, 하고 있다는 인디 밴드 어찌 되고 있나.

우림 프로젝트? 다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원래 혼자 시작한 거였으니까 처음으로 돌아온 거지. 내가 어렸을 때 꿈이 록스타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 하는 밴드까지 치면 밴드 정말 오래 했지. 이거 말고 드럼 치는 친구랑 둘이 새로 2인조 록 밴드도 만들었다. 이번엔 진짜 남자 록이다.

남자들이 밴드 하는 이유가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잖아. (웃음)

아니야. 난 진짜 아니야! 난 정말 음악이 좋아서 했어요. (웃음)

믿기진 않지만 뭐 믿어 주겠다. 공연은 어디서 하나.

(공연은) 더 이상 못 하겠다. 창피해서. 이제 막 스물한두 살인 사람이랑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데. 내가 무슨 원로인가? 나도 어렸을 때 밴드 형들 오면 그랬다. ‘저 형들 왜 왔어, 꼰대들’. 그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조용히 입 다물고 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연주를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방구석 밴드지. 방구석 뮤지션. 사실 이번 주 일요일에 지인 결혼식에서 연주한다.

웨딩 싱어네!
그런 셈이네.

잠깐. 듣자 하니 드라마에, 영화에, 밴드에, 이것저것 하는 일이 정말 많다. 나머지 시간엔 뭐하나.

없다. 그냥 종일 음악 생각만 하는 거 같다.

진담인가?

강의하고 음악 만들고 믹싱하고 또 작곡하고 밴드 연주하고.

세상에! 일 중독자 아닌가.

다 음악. 같은 맥락이니까.

쉴 새 없이 바쁜데 끊임없이 악상이 떠오른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고 말고. 광고는 입금되는 순간 악상이 떠오르니까. (웃음) 그전까지는 화면을 수십 번 돌려 봐도 ‘어쩌지’ 하다가 ‘송금했습니다’라는 문자가 ‘띵!’ 들어오는 순간 1안, 2안까지도 나온다는 거. (웃음)

돈 많이 주는 광고는 그렇다 치고. 하지만 예술 영화, 독립 영화, 저예산 영화는?

인간적 신뢰가 생긴 감독이랑 일하면 잘되는 거 같다. 보이지 않는 신뢰가 쌓여 부담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곡이 잘 만들어진다.

도대체 음악 말고 일 말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설마 그것도 음악으로 푼다는 건 아니겠지?

스쿠터 탄다. 작년에 1만 킬로 달렸다. 황학동에 중고 오디오 기기 보러 간다. LP판 가게 가면 정말 행복하다.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사람 구경, 시장 구경, 그게 낙인 거 같다. 예전엔 일하면서 위기의식이 컸다. 인생을 스모 경기장에 비유하면 경기장 밖으로 발이 떨어지면 지는 거다. 내가 뒤로 한 발짝이라도 물러나면 끝난다고 생각했다. 나도 음악인인데 음악으로 밥 못 먹고 산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못 벌고 다른 일로 먹고산다는 게 용납이 안 됐다.

그럼 지금은? 경기장에서 떨어진 건가. 아님 스스로 발을 뺀 건가.

둘 다 아니다. 달라진 건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날 좀 더 사랑하게 됐다고나 할까. 가끔 이제껏 만든 음악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이 만들었지’, ‘내가 무척 치열하게 살았구나’ 한다.

그 치열함이 부럽다. 매 순간 쉬지 않고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는 거잖나.

세상이 말하는 족적은 유명세지. 그런데 내 경우는 몇몇 소수만 아는 족적이니까. 많아야 만 명 정도나 알까. (웃음) 그런데 나 같은 하찮은 음악 감독에게도 팬이 있더라. 정말 놀랐다. 소소한 족적인데도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힘들어도 이 일을 하게 하는 힘인 거 같다. 예전에는 ‘왜 난 5억 이상 되는 영화를 못 하지?’ 하면서 큰 예산 영화, 잘나가는 영화를 바라보고 그랬는데 이제는 ‘안 하면 어때?’ 그런 마음이다. 요즘에는 그런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 길을 잘 왔다는 거, 이게 평생 내 일이라는 거, 내 일을 사랑하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지음’이란 말처럼 나를 인정해 주고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나를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목숨 바쳐 음악 하고 싶다.

소소한 족적이라도 결코 하찮지 않다. 그는 하찮기는커녕 썩 괜찮은 사람, 아니 정말 괜찮은 음악인이었다. 껑충한 키에 귀여운 헬멧을 쓰고 앙증스러운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이 사내. TV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미스터 손을 닮은, 영화 음악 감독이자 뮤지션 양정원의 새 앨범이 올여름 나온단다. 그의 음악은 소탈한 그를, 서늘한 여름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 음악이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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