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75% “낙태죄 개정해야”… 낙태죄 폐지 목소리에 힘 실려

여성단체 등 성명 내고 낙태죄 폐지, 약물적 유산유도제 도입 등 촉구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 100명 중 75명이 '낙태죄'를 개정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법으로 여성만 처벌받고, 인공임신중절의 불법성 때문에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된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여성들의 대답은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부 의뢰로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9~10월 전국 만 15~44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인공임신중절 경험, 고려 경험, 낙태죄 등 형법 개정에 관한 의견 등을 온라인 설문을 통해 물었다.

‘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와 270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답한 여성은 75.4%였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0.8%, '개정이 불필요하다'고 한 비율은 3.8%에 그쳤다.

형법 269조는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270조는 수술한 의료인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두 법률은 현재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69회의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는 두 법률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여성들은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로 '인공임신중절 시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에’(66.2%), '인공임신중절의 불법성이 여성을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시키기 때문에'(65.5%), '자녀 출산 여부는 기본적으로 개인(혹은 개별가족)의 선택이기 때문에'(62.5%)라고 답변했다.

낙태 허용 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제14조와 시행령 제15조에 대해서도 절반 가까운 여성들이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성은 48.9%, 개정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는 여성은 40.8%,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여성은 10.7%였다.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 14조에서 △본인 또는 배우자의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 또는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한 여성들은 대부분의 사유(모체의 생명 위협, 모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보호, 태아 이상 또는 기형, 강간 또는 근친상간, 파트너와의 관계 불안, 미성년자, 본인 요청)에 대해 ‘임신주수와 상관없이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 중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조절)’, 본인의 요청, 양육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한해 허용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14.1%, 7.4%, 5.6%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제외한 모든 허용 사유에 대해서는 ‘허용 불가’ 의견이 5.0% 미만으로 낮게 나타났다.

인공임신중절 이후 8.5%가 신체적 증상을 경험했으나 43.8%만 치료를 받았고, 정신적 증상이 있었던 54.6%중 14.8%만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의 95%가 의료적 상담, 심리정서적 상담, 출산 및 양육에 관한 정부 지원 상담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인공임신중절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 상담을 꼽기도 했다.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69%인 25개국에선 인공임신중절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선 우리나라가 허용한 5가지 이유 외에도 물론 경제·사회적 사유, 본인 요청 등에도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다.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

[출처: 사계]

여성단체, 인권단체 등 22개 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14일 실태 조사에 대한 입장을 내고 “이번 연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부분은 인공임신중절을 범죄화하고 있는 형법 개정에 대한 요구로 75.4%에 달한다”라며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공동행동은 “사실 한국은 형법상 낙태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가가 주도하여 낙태 버스를 운영하고, 장애인에 대한 강제 단종을 시행하는 등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에 개입해온 역사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3년에 만들어진 낙태죄는 여전히 형법에 남아 여성의 판단을 범죄화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이번 조사의 한계를 짚기도 했다. 이들은 “연구조사의 시사점으로 여전히 임신중지 합법화를 통한 예방과 안전 보장이 아니라 현재의 법적 조건 하에서 ‘남녀 공동의 책임의식 강화’ 등 실체가 불분명한 대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며 “이런 무책임한 결론은 정부에 정책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있어 실질적 근거로 활용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정부에 △임신중지 합법화와 의료적, 사회경제적 여건 보장 △제대로 된 피임법의 교육과 접근성 확대, 포괄적 성교육 시행 △약물적 유산유도제 도입과 안전한 사용 보장을 주요하게 요구하며 △인공임신중절 처벌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안을 철회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 △결혼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같은날 임신중단 합법화(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모임 ‘BWAVE’에서도 성명을 내고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임신중단을 막지 못하며, 임신중단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며 헌재의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성경험 여성 10명 중 1명, 인공임신중절 경험해

한편 인공임신중절 경험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가운데 756명(7.6%)이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성 경험이 있는 여성(7320명)의 인공임신중절 경험률은 10.3%, 임신경험이 있는 여성의 경우 인공임심중절 경험률은 19.9%에 달했다. 

2017년 인공임신중절 추정건수는 약 5만 건, 2016년의 경우엔 약 7만 건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직전 조사였던 2008년, 인공임신중절 추정건수가 24만 건에 달했다는 점에서 10년새 낙태건수는 5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줄어든 이유로는 피임실천율 증가, 응급(사후)피임약 처방건수 증가, 가임여성수의 지속적 감소 등이 꼽힌다.

이번 조사의 신뢰도는 표본오차 ±1.0%, 95% 신뢰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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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자유

    참세상은 자존심도 없나.... 노동자연대 피켓찍어서 올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