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를 보면서 우리가 준비할 것은

[1단 기사로 본 세상] 2년 전 화폐개혁하고도 다시 신권 준비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한겨레 2020년 10월7일 14면.

  매일경제 2021년 3월9일 12면.

지난해 10월 7일 한겨레 14면과 지난 9일 매일경제 12면에 실린 두 기사는 다섯 달 간격을 두고 보도됐는데, 시각은 똑같다. 오늘날 베네수엘라는 한겨레와 매일경제 모두로부터 조롱당한다.

한때 남미의 꽃으로 불렸던 자원강국 베네수엘라는 지금 1년에 물가가 2400%가 뛰고, 커피 한 잔 사려면 279만 볼리바르의 돈이 필요할 만큼 망했다. 지난해 10월 10만 볼리바르의 가치가 270원이었는데, 가파른 인플레 때문에 10배에 달하는 100만 볼리바르짜리 신권을 발행하지만, 다섯 달 만에 100만 볼리바르도 600원에 불과할 만큼 또 몇 백%의 물가가 올랐다. 2018년 10만 대 1로 화폐 개혁을 단행했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소비했던가. 결정적 순간은 2006년 2월 18일 저녁이었다. 그날 KBS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란 제목으로 1시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KBS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또 다른 꿈을 꾸는 이들에게 차베스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화면엔 차베스의 격정적 연설에 열광하는 군중이 자주 등장했다.

이틀 뒤 조선일보가 곧바로 데스크 칼럼으로 KBS에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2006년 2월 20일 ‘KBS가 차베스를 띄운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오피니언면(30면)에 실었다. 조선일보는 “포퓰리즘 지도자 차베스의 길이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이라는 강한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남겼다”며 “왜 지금 남미 반미좌파의 선봉인 베네수엘라 지도자의 영웅담을 그 나라 국영TV도 아닌 KBS에서 봐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선일보 2006년 2월20일 30면.

방영 2년 뒤 MB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땅엔 신자유주의가 지고지순의 가치처럼 사회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MB는 차베스와 정반대로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아동 급식지원비 삭감 등을 밀어붙였다.

조선일보의 공격에도 KBS의 차베스 영상은 MB정부 들어 더욱 인기를 누렸다. 사람들은 MB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질식해 갔고,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섰지만 신자유주의에 둘러싸여 의료보험 개혁 법안 하나 통과하는데도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했다. 반면 KBS 영상 속 차베스는 국영화한 석유 자본으로 빈민층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MB시절 수많은 한국 대학에서 KBS 영상을 보고 토론하는 수업이 진행됐다. 지금도 인터넷을 뒤지면 ‘KBS 차베스 영상 감상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KBS와 조선일보, 양쪽 어디에도 실체적 진실은 없었다.

우리는 좌우 할 것 없이 국면 타개용 묘책을 밖에서 찾는 버릇이 있다. 진보진영은 2000년 초 민주노동당을 만들기 직전, 만델라의 남아공에 주목해 남아공노총(COSATU)을 집중 공부했다. 그 뒤엔 브라질 룰라에 열광해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집권 과정을 배웠다.

2003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20여만 명이 모인 건 바로 중남미 좌파집권, 특히 브라질 룰라 정부에 거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 뒤 같은 자리에서 열린 같은 행사에서 쏟아진 룰라에 대한 야유는 좌절과 실망의 표출이었다.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의 환호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차베스가 1992년 쿠데타에 가담한 군바리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경계했어야 했다.

우리는 집권 연장에만 연연하는 포퓰리스트라는 비판과 동시에 진정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라는 극단의 평가가 엇갈리는 차베스를 민중의 눈으로 보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남아공 노동운동의 쇠락 원인을 찾고, 베네수엘라의 참담한 현재를 목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대중적 기반 없이 집권한 차베스가 집권 내내 노동자들의 자율성을 길러내지 못한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반대로 조선일보처럼 신자유주의 우산 아래로 기어들어간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차베스가 죽은 직후인 2013년 4월 14일 대선에서 그의 계승자 마두로는 50.78%를 특표해 48.95%를 얻은 까브릴레스를 1.83% 차이로 힘겹게 이겼다. 표차는 27만 표에 불과했다.

차베스 없는 차베스 정권을 이끄는 마두로는 국유기업들의 공동경영 실험을 방어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마두로를 포함한 친차베스 지배세력은 부패와 권력욕에 찌든 ‘볼리 부르게사’(볼리바르 부르주아)로 전락했다. 마두로는 이들을 통제할 역량도, 통제할 의사도 없다.

노동진영에선 코포라티즘파 지도부와 현장 노동자의 괴리가 더욱더 악화될 것이다. 계급주의파 노동진영이 생산 현장에서 도덕적 지도력을 강화해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결집해 내면 차베스가 구축한 사이비 코포라티즘 체제를 전복시키고 노동계급 중심으로 변혁정책을 계속 추진할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노동진영의 힘은 차베스 집권 내내 내재적 강화에 실패했다.

노동계급 형성과 발전에 기초하지 않은 차베스 정권의 실험은 자기 성찰과 자기 정화력을 잃은 채 체제 이행 프로젝트의 역동성을 상실했고 스스로 전략적 오류를 수정하고 극복할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집권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실패와 계급투표 성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구세력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파산한 가운데 좌파 정당 외엔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다.

한국도 김대중, 노무현 중도 신자유주의 세력의 실패 이후 좌파 정당이 아니라 우파 신자유주의 세력이 선택된 것은 계급 투표의 기초가 되는 노동계급의 형성이 진전되지 못했고, 지리멸렬한 진보정치 세력이 정치적 대안으로 고려되지 않은 탓이다. 한국에서 좌파 정당이 집권하려면 노동계급 형성을 진전시키는 과제와 좌파 세력을 유의미한 정치적 대안으로 만드는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집권을 통한 변혁’이 아니라 ‘집권 전 변혁 정책추진’이 필요하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일거에 위로부터 변혁을 집행할 수 없는 조건에서 단계적으로 대안 체제를 지향하는 개혁조치를 추진하되 제도 변화로 자본주의 근간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킬 이행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있는 진보정당이 이를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집권 후 볼리바르 혁명을 수행한다던 차베스는 노동조합은 사라져야 할 불필요한 존재라고 단언하며 노조의 자율성을 반혁명적 ‘독극물’로 매도했다. 때문에 초기엔 친차베스 진영에서 다수를 점하던 계급주의파는 괴멸했고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는 코포라티즘파가 패권을 잡았다. 코포라티즘파는 지금도 노동자 대중적 지지 기반이 없다.

인구 3천만 명 남짓한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사망 이후 약 500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지난 12월 옆 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로 가던 베네수엘라 배가 침몰해 이민자 20여 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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