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위기분석과 세계경제

[주례토론회] 미국, 유럽, 한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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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신자유주의 위기 및 자본주의 위기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관점들이 존재한다. 이 중 흔히 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적인 하락과 침체를 주장하는 입장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로버트 브레너, 클라이만과 같은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이러한 이윤율의 장기하락 경향의 결과로 해석한다. 또한 이윤율 하락 경향으로 인한 구조적 위기의 심화와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의 결합으로서, 자본주의 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설명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과 설명방식은 다르지만 로지스틱 자본성장 가설을 통해, ‘이론적 이윤율’이라 부르는 이윤율 모형의 장기적으로 하락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설명하는 시각이 있다. 한편 이들과 다른 경향의 연구그룹이지만, 70년대 이후 장기침체를 설비가동률의 하락과 소득분배의 악화로 파악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소위 포스트케인지언이라 불리는 연구집단들이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70년 이후 장기적 침체라는 이런 가설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며, 그 결과 70년대 침체와 다른 경향을 보이는 80년 이후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는데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낸다. 그런 한계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과 이후 신자유주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적지않은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이러한 부분들을 짚어보고, 이로부터 신자유주의 위기와 이후 변화에 대해서 미국, 유럽, 한국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 가설에 대한 비판

  [이윤율 변화]

위 그림은 7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이윤율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마르크스의 테제를 설명하는데 많이 활용된다. 그런데 만약 위 빨간색 추세선이 자본축적의 로지스틱 가설로부터 도출되는 이른바 ‘이론적 이윤율’을 뜻한다고 한다면, 이것이 정당하건 아니건 간에 그것을 2008년 위기를 설명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파란색 추세선에서 보듯, 70년대 급격한 하락과 80-90년대 급격한 상승, 그리고 2000년대 커다란 진폭의 변화, 그리고 2008년 갑작스런 금융시스템의 붕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론적 이윤율 분석에는 현실적 예외 사례가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현실적 예외 사례 하나 하나를 분석하다보면 이론적 이윤율 분석은 군더더기 설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들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론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위기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상태의 과잉과 과소를 판단하는 것은 그 기준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위기를 인식한 결과로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적 수준의 생산이 과잉생산 경향을 띠고 있는가를 판단할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다. 한편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이 강조하는 위기의 주기성이라는 측면은 실성 경기변동에 관한 논의로서 큰 자극을 주지않는데, 왜냐하면 상승과 하락국면이 이미 전제되어 있고 예측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위기, 즉 뭔가 정상상태에 벗어나 예기치 못한 위기라는 것은 이런 주기성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불규칙한 예외적 상태는 주기적인 규칙성과 다른 것으로서 매우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의 모든 경기변동이론은 주류/비주류 모두 이러한 불규칙성을 추적하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

또 다른 설명방법으로 자본이 금융부문으로 이동하면서 80-90년대 이윤율의 상승국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70년대 자본의 수익성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실물 축적의 한계로 인해 자본이 금융 축적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세계체계론의 한 입장인 아리기의 금융화 가설 및 포스터 등의 아메리칸 독점자본주의 이론에서 강조되며, 프랑스의 아탁 및 미셀 위송등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 가설에서는 헤게모니 축적체계에서 실물부문의 확장이 한계에 이르면 금융화단계로 이동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금융화 가설과 유사한 설명들은 굳이 세계체계론적 입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관한 여러 분석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증적으로 볼 때, 실물부문의 수익성 한계로 인해 투자처를 잃은 과잉자본 혹은 과잉저축이 금융부문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80년대 벌어지는 금융적인 효과의 결과들은 점진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등장하지 않는다. 가령 금융부문 수익성 변화를 관찰해 보면, 70년대엔 금융부문의 수익성이 매우 나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이것을 보고 투자처를 옮겼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실제 이렇게 70년대 낮은 수준에 머물던 금융부문의 수익성은 80년대 비금융부문과 거의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90년대에 급격히 증가한다. 마치 외부적 충격에 의해 추세가 급변하는 형태를 띠는데, 다음 그림에서 보듯 점진적인 추세로는 보기 힘들다.

  [미국 금융 및 비금융법인 이윤율 비교, % 연간], 주: 이런 이윤율 계산에서 이윤은 이자와 조세를 지불한 이후로 규정된다. 금융자산과 부채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또는 순부채 가치 하락분)을 감안해 조정했다. 자본이득 또한 고려했다. (이 부분은 상당한 변동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평활화시켰다.) [출처: 뒤메닐,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이것은 채권금리의 변화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7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금리까지 떨어졌었지만 80년대 들어 매우 급격한 상승을 보인다. 79년 ‘신자유주의 반혁명’라 불리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때문인데, 그 결과 기업들은 물론이고, 70년대 발전자금을 모집했던 다양한 주변부국가들은 값비싼 금융비용을 치러야 했다.

  [실질이자율: 미국 기업] [출처: 뒤메닐,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이런 금융비용의 증가는 채권시장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발견된다.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불하는 비용이 2배 가까이 증가한다.

  [세후 이윤에서 배당이 지불된 비중: 미국 비금융 법인, % 연간] [출처: 뒤메닐,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이와 같은 금융부문의 성장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이지, 과잉자본의 점진적인 이동(이를테면, 이윤율의 저하에 따른 과잉자본의 또다른 수익처로의 이동)이 그 부문을 성장시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80년대, 그리고 90년대에 급격히 발생했던 금융 규제완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화 과정이 자본축적과 맺고 있는 관계는 전세계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본축적의 둔화라고 할 수 있다. 세금,이자,배당을 지급하고 남은 유보이윤율의 변화와 축적률의 관계를 통해서 보면, 금융화는 자본축적에 부정적 효과를 끼쳤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화 단계를 거치면서 역설적으로 자본성장의 비약적 확대가 이뤄진다는 로지스틱 자본성장 가설은 실증되지 않는 주장이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 배당 및 이자 지불 이전 이윤율은 증가하지만, 금융화 영향으로 이것을 지불하고 난 유보 이윤율은 하락했다. 그리고 축적률(순고정자본스톡의 성장률)은 역시 유보 이윤율과 동일한 경향을 보이면서 하락한다. 그 결과 8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IT버블을 제외하고, 79년 이전까지의 평균축적률보다 낮은 축적률을 보이고 있다.

  [축적률과 두 가지 이윤율: 미국 비금융 법인, % 연간], 주: 축적률은 순자본스톡 대비 순투자 비율이며, 순고정자본 스톡의 성장률이다. [출처: 뒤메닐,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이것으로 볼 때, 금융화가 자본축적을 도모했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금융화의 효과로 금융부문을 매개한 상위소득 자산가들의 부가 늘었을 뿐이다. 한편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최근 피케티 등의 여러 연구자들로부터 제기된 소득불평등 데이터들의 내용과 일맥 상통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70년대 구조적 위기에 대한 “자본의 반격”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격에 의해 여러 가지 다른 대안들은 쇠퇴하고, 신자유주의적 대안이 새로운 지배질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결과 이윤율의 상승과 함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등의 금융부문을 매개로 한 상위소득자들의 부가 대폭 증가했다. 그러나 유보이윤율은 하락했고, 이에 연동되는 순투자율 및 축적률은 감소되었다. 신자유주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시기업구조조정은 이러한 새로운 자본주의 국면의 새로운 관리(경영)규율에 상응한다. 또한 금융규제완화와 신자유주의적 시장규율의 확대 속에서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지배구조가 자리잡게 되었고, 노동유연화와 같은 제도와 정책들을 낳았다.

한편, 설비가동률의 변화를 통해 장기침체를 설명하는 포스트케인지언 시각이 있다. 이들 주장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거론되는 것이 미국의 설비가동률이다.(이들의 입장에선 이윤율이 설비가동률에 따라 결정되는 종속변수로 이해된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 70년 이후 줄곧 설비가동률이 하락하는데, 이것이 장기침체의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설비가동률]

하지만 이 주장대로라면 1990년대의 미국경제 활동성 수준은 70년대에 비해 상당히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미국경제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보면, 1970년대는 연평균 3.24%이고 1990년대는 연평균 3.23%이다. 별 다른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과연 이 설비가동률 자료는 이러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을까? 그들의 주장대로 80-90년대 경제 활동성이 경향적으로 축소되었고, 그것이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판단을 하기 어렵다. 또한 70년대 경제 활동성의 위축이 80-90년대로 계속 이어졌다는 판단도 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약 1990년대 말에 살고 있었다면 미국경제에 2000년대 경제의 활동성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나리라곤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그림에서 보듯, 설비가동률의 변동분만 고려하여 경제성장률과 비교하였다.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출처: 김덕민, <자본주의 위기논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1)-이윤율의 변동과 경제순환>, 참세상 2014.10.27]

게다가 이윤율의 수준과 변동성을 추출하여 이른바 ‘경제의 불안정성 경향’을 도출할 수 있는데, 70년대엔 가동률의 변동폭이 크고, 오히려 90년대엔 변동폭이 작다. 가동률의 변동폭이 크고 작다는 것은 경제체제의 불안정성이 크고 작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90년대 작은 변동성은 오히려 그 당시의 높은 이윤율 수준을 반증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자유주의 시기 거시경제의 변화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설비가동률의 변화가 주는 유용성은 장기적인 수요침체를 이해하는 것에 있지 않다. 90년대 거시경제의 변동을 이해하고 이를 일으킨 신자유주의적 생산구조를 들여다 봐야하게끔 유도한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70년대 이후 장기침체 가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실증할 수 없다. 이러한 일면적인 분석만으로는 80년 이후 갑작스럽게 벌어진 신자유주의 국면으로의 분기와 90년대 소위 ‘신경제’가 발휘하는 효과를 이해하는데 부족하다. 90년대 ‘신경제’를 ‘허상’ 혹은 ‘벨에포크’(한때 좋은시절)로만 간주하는 분석에 대해 정정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2000년대 벌어진 전 세계적인 자산시장의 급격한 과열과 붕괴, 이후 벌어진 2008년 금융위기를 이해하는데에도, 관찰이 동반되지 않은 독단적인 형태의 장기침체 가설은 방해가 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일정정도 변화되고 있는 흐름에 대해서 이것을 퇴행으로만 해석하는 파국론적 경향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유래없을 만큼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자본가계급의 지배질서가 급격히 쇠퇴하는 징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의 권력의 일부를 제어하거나 억제하려는 경향이나 시도는 발견되고 있다. 이를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관리주의 또는 관리주의적 경향의 증대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위기이며, 자본주의는 또 다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것이 노동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일지라도, 일부 상위계급의 권력을 제한하는 조치가 포함될지라도 그 안에서 아직까지는 민중적 이니셔티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일종의 우파적 관리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2. 유럽의 경제 상황과 갈등 : 독일,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이러한 시각에서 최근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로부터 불거진 통합유럽 위기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렉시트라는 말이 국제적으로 회자될 정도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불탈퇴가 여러 쟁점들 중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그리스 총선결과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주장했던 정치세력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현 치프라스 중심의 집권 시리자가 완전히 승리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리스의 정치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우리가 그들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 보다는, 현재 통합유럽을 위태롭게 만드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신자유주의 위기와 맞물려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보인다.

그 시작은 유럽의 두 강대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취했던 경제전략의 차이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프랑스가 영미식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올인했다면, 독일은 그와 달리 제조업 중심의 산업적 생산기반을 존속시키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것이 이 두 나라가 취했던 대외투자의 결과를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유로존 통합 이후 프랑스는 남유럽국가들의 금융부문에 대부분의 투자분을 쏟아부었다. 이것은 프랑스의 남유럽지역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를 봐도 알 수있다. 직접투자 역시 금융부문에 경도된 형태였다. 하지만 독일이 취했던 방식은 남유럽보다는 동유럽에 대한 산업적 실물투자였다. 이를 통해 하청생산기지 등의 배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산업적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슈뢰더 정권시절 이뤄진 노동개혁으로 자본은 노동비용을 대폭 절감시킬 수 있었고, 이를 무기로 산업적 경쟁의 우위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이런 차이는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확연한 결과의 차이를 드러냈다. 제조업 기반과 산업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던 독일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프랑스는 금융부문이 심대한 타격을 받으면서 파국을 맞이했다. 이러한 경제성과의 차이는 현재 유럽에서 독일이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위상과 대외적 역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다른 독일 ‘(신자유주의적) 산업관리주의’ 모델이 경제적 헤게모니를 갖도록 만들고 있다. 유럽전역은 물론이고, 특히 그리스처럼 경제위기를 겪는 유럽 주변부 국가들에게 독일은 이러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 수년동안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에서 봤던 독일의 일관되고 경직된 태도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과 그리스의 갈등은 단순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갈등으로만 볼 수 없다. 여기엔 통합유럽의 길을 둘러싸고, 그 전략적 방향성을 두고 벌이는 갈등들이 압축되어 있다. 프랑스는 이미 경제적 발언력을 상실하였고, 독일은 자신들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무기로 통합유럽을 자신들의 전략적 방향으로 끌고가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는 일종의 ‘제물’이 된 셈이다. 정말 독일이 그리스의 회생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매월 600억 유로씩 부실채권매입에 사용되는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에 그리스 국채를 선순위로 포함시키면 해결될 일이다. 그리스 채무가 대략 3000억 유로이니, 몇 개월이면 부채비율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한편, 그리스가 이런 상황에서 왜 독일의 전략에 굴복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유로존 탈퇴와 경제주권 회복을 주장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듯,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리기 힘든 그리스의 내부적 상황이 존재한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이후 2008년 경제위기까지 그 이전 시대와는 달리 나름대로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그 경제적 과실을 경험했던 그리스 국민들에게 그 이전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일종의 퇴보라는 인식이 강하게 존재한다. 게다가 유로존 가입은 유럽 주변부 국가들에게 이전의 부패와 반민주적 정치와 단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독일이 강요하는 긴축정책에 반대하면서도, 유로존 탈퇴에도 부정적인 이런 인식은 당분간 쉽게 바뀌기 힘들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주변부 인민들에게 유로존으로부터의 탈출은 이전의 부패한 정치권력과 경제세력으로 회귀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로존 가입 이후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자체적인 산업생산기반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화폐통합에 의한 금융적 효과에 의존했던 것이기 때문에, 유로존 탈퇴 이후 자력적인 경제회생을 도모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못했던 점도 이런 딜레마에 한몫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리스와 달리 스페인의 경우 경제구조가 매우 다르다. 그리스처럼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튼실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우리처럼 몇몇 재벌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산업을 장악하고 있고, 그 밑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내수중심의 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이원적인 경제구조 속에서 2008년 경제위기는 하위부문에 강한 타격을 끼쳤고, 그 여파로 청년실업률 50%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마치 잘 나가는 삼성과 ‘헬조선’이 공존하는 한국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따라서 스페인이 어떻게 이러한 이질적 경제구조를 유로존 아래서 돌파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스페인의 풀뿌리 민주세력의 성장 및 유럽 좌파의 이에 대한 연대와 대응은 그리스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유럽의 좌파운동 전체가 통합유럽이 가야할 미래상을 두고 전략적 연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제주의적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내부에서 좌파운동들은 각자도생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르펜과 같은 극우파들의 급부상만이 목도되고 있다. 전적으로 외부의 연대에 의존하고 있는 그리스와 같은 나라의 경우, 이러한 무능력이 결국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르펜이 주장하는 핵심은 “프랑스 국가는 프랑스인을 위한 국가”여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주의적이면서 영미식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마린 르펜은 이전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과는 달리 영리하게 프랑스인과 이민자들을 분열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프랑스인만의 독일식 복지국가(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민족주의적 유기체 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정리해보면, 영미식 신자유주의체제로 전환했었던 프랑스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파국을 맞이했고, 산업적 생산기반을 유지시키고 노동수탈을 강화했던 독일은 경제위기를 비껴가면서 유럽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통합유럽의 미래를 자신들의 전략적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이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스는 유로존 통합으로 성취했던 경제성장의 기억과 산업적 기반의 취약성 때문에, 강요된 긴축정책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쉽게 유로존을 이탈이 못하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3.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발전경로

마지막으로 한국의 상황을 짚어보자. 법인기업들의 ‘순자본스톡성장률’과 ‘이윤대비 순투자비율(다른 의미에서 축적률)’의 추세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하다. 70년대는 벌어들이는 이윤보다 순투자가 두 세배 더 많은데, 그 이유는 정책금융을 통해 국가로부터 엄청난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80년대 들어 뚝 떨어진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적 변화라 부를 수 있는 요인이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러다 다시 80년대 중후반부터 순투자가 이윤을 초과하여 그 비율이 급격히 상승한다. 이것은 기존의 국가주의적 방식의 관리체제와 은행의 기업대출 관행, 세계금융시장으로의 부분적 개방을 통한 자금조달의 확대, 이 세가지가 결합된 특수한 국면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80년대 이후, 줄곧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으로 경도되었던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한국은 87년부터 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유예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소위 ‘90년대 투자호황’이라 불렸는 현상이 이때 일어나는데, 모두 알다시피 80년의 충격에 이은 97년 충격은 그동안의 자금조달관행을 비정상화시키면서 97년 외환위기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97년 이후 지금까지 다시 ‘이윤대비 순투자비율’은 뚝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금, 이자, 배당을 지불하고 난 유보이윤 수준으로 투자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보통 기업들이 대출을 통해 신규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질서 속에서 기업은 유보이윤 이상을 투자하지 않는 주체로 바뀌었다. 97년 이후 기업의 축적률(자본스톡 대비 순투자)는 유보이윤율(자본스톡 대비 지불 후 이윤)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며, ROE(자기 자본 이익률) 보다 높은 수준이다. 여기서 ROE는 자본스톡 및 재고,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보정한 마이너스 순부채를 고려한 것이다. 한국의 비금융법인의 순부채는 줄곧 증가하였지만, 인플레이션을 보정했을 때 2000년대 이전 ROE와 유보이윤율은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인플레이션 효과 및 구조조정을 원인으로 ROE와 유보이윤율은 분기한다. ROE을 기준으로 할 때, 비금융법인 축적률은 ROE보다 높다. 따라서 우리는 비금융법인 축적률과 유보이윤율을 비교하여야 한다.

추가적으로 한국의 이윤율 추세에 대한 조세의 반작용 효과는 장기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97년 이후 구조조정 비용을 회수하려는 정부의 조세정책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단기적인 형태의 조세정책(단기적 이윤율 하락에 대해 조세의 경감으로 대응하는)이 확인되며, 특히 2008년 전후로 조세정책이 이윤율의 하락분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투자비율이 상승했던 70년대와 90년대를 일종의 ‘금융가속화효과’라고 칭할 수 있을 듯 한데, 이것은 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이 진행되면서 소멸되었다. 앞서 미국의 예처럼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는 자본축적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쳤다.

한편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위한 차입을 줄이고 은행들도 대출비중을 기업대출에서 가계대출로 상당히 옮겼지만, 여전히 기업부채는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대부분 금융자산을 매입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순자산을 포함하는 자기자본 수익률의 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을 통해서 개별기업들이 모두 그렇게 행동했다고 볼 수 없다. 수출대기업 중심으로 경제권력이 편중된 한국경제의 상황에서 아마도 그들이 그런 금융활동의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근 사내유보금 논란에서 벌어지는 쟁점들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 또한 2000년대 스페인 경제 또는 1930년대 대공황 이전 미국경제의 사례처럼 경제의 상당한 이질성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수출부문 대기업 및 관련 산업부문 및 이외의 다른 부문 사이의 기술적 조건 및 금융적 조건에서 상당한 이질성이 나타나고 있는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에도 정확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국에 다른 충격이 발생했을 경우, 바로 그러한 후진적 경제부문이 정확히 타격을 받고 금융부문의 지원을 받지 못함으로써 스페인경제나 대공황 때 발생한 엄청난 경기후퇴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대응으로서 가계부채의 전격적 탕감 또는 적극적 조정이 필요하며, 이질성을 해결하기 위해 후진적 부문에 대한 강력한 금융적 또는 전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사내유보금 환수의 문제로 운동의 범위를 축소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강력한 조세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해야한다는 피케티의 제언을 보면, 프랑스의 경우 이러한 형태를 유지하여서 미국만큼의 극심한 불평등은 피해갈 수 있었으나 신자유주의 재앙은 그대로 맞이했다는 측면에서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복지국가 논쟁은 잘못하면 독일식 경쟁력강화논리(현 한국정부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본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현 국면의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응하는데 부족한 면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관리(경영)규율을 반전시킬 수 있는 국내외적인 금융시스템에 대한 조정 및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또한 노동규율의 변화, 즉 이질적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격차의 조정 및 자본가적 권리에 대한 제한 및 억제(즉 자유로운 해고에 대한 규제 및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중지)를 행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을 제안하고 즉각적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몰아닥칠지 모르는 한국경제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이며, 아마도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에서 그 비극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민중의 주도권에서만 올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이글은 당일 발표문을 주례토론회 운영자가 정리한 글이며, 발표자가 일부 수정하고 추가하였다. 발표에 사용된 데이터는 일부가 현재 연구 중인 데이터이며, 한국에 출간예정인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저서에 포함된 관계로 웹사이트에 공개할 수가 없었다. 미국경제 및 유럽의 상황에 대한 평가는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연구에 기초하고 있으며, 일부는 발표자와 뒤메닐과의 논의를 통해 재정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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