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들어라, 우린 폐기물이 아냐” 그들의 이유 있는 연대

힘없는 자들의 가장 힘센 연대, 삼성 피해자와 장애인이 손잡다

“광화문이 제일 좋아요. 거기가 진짜 비싼 땅이에요. 장애인들 다니기 좋게 엘리베이터도 있고, 장애인용 화장실도 제일 잘되어 있어요. 그보다 제일 중요한 우리의 자부심은 청와대와 가장 가깝다는 거에요. 진짜 터를 잘 잡았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저희도 자랑할 거 정말 많은데. 여기 강남역 8번 출구, ‘역세권’이에요. 여기야말로 5성급 호텔이죠. 우리도 그런 자존심이 있거든요. 국내에서 가장 비싼 땅값에 24시간 국내 최고의 보안팀 ‘에스원’이 지켜주고, 모공과 솜털까지 찍어주는 삼성테크윈 광각카메라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손진우 반올림 활동가)


자기가 머물고 있는 땅이 더 비싸고 좋다고 티격태격 자랑을 늘어놓지만, 이들이 자랑하는 것은 따뜻한 집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자동차 경적 소리가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의 거리. 도심 속 마천루에 둘러싸여 있어 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곳. 바로 농성장이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이어말하기 38일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함께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지난 5일 늦은 7시, 무려 1173일 동안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싸우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30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 농성장을 찾았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이어말하기 38일차. 광화문과 강남,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센 집단인 청와대와 삼성을 눈앞에 둔 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가장 힘없는 자들이 손을 맞잡은 자리였다.

# 그들은 왜 강남역 8번 출구에 ‘5성급 호텔’을 지었나?

2007년 백혈병 사망 노동자 故 황유미 씨의 산재 인정을 위한 싸움이 시작된 이후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싸움은 벌써 8년을 넘기고 있다. 그때부터 2015년 9월 현재까지 삼성 반도체 및 LCD 공정에서 일하다가 암, 백혈병, 난치성 질환을 입었다고 제보된 사람만 217명에 달한다. 이미 세상을 뜬 사람도 72명이다.

반올림은 줄기차게 공장의 유해환경과 안전장비 구비 소홀 등이 질환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산업재해 인정을 거부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또 하나의 약속」 개봉으로 이 문제가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르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으신 분들’께 소홀했던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라고 밝히고, 피해자들과의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

삼성 측의 사과로 순탄할 것만 같았던 협상 과정은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급변하게 된다. 일부 피해가족들로 구성된 가족대책위와 삼성 측이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아래 조정위원회) 구성을 강행한 것이다. 조정위원회는 반올림과 가족대책위, 삼성 측이 각각 제시한 의견을 바탕으로 지난한 논의 끝에 올해 7월 조정권고안을 내놨다. 삼성의 1000억 기부로 독립적인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보상과 예방 대책을 실현하자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보상대상 또한 백혈병, 유방암, 뇌종양 등 기존 산재승인 경력이 있는 질환뿐 아니라 각종 희귀난치성질환도 포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올림 등 시민사회에서는 보상대상과 보상수준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지만, 이를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여기고 조정권고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삼성은 끝내 조정권고안조차 거부하고, 지난 9월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려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신청자에 한해 피해 보상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삼성의 반격. 친기업적 성향을 가진 언론에서 삼성이 피해자 보상이라는 ‘통 큰 결단’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삼성의 보상안을 거부하는 반올림에게는 ‘몽니’를 부린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는 한편 삼성은 피해가족에게 보상을 집행하면서도 앞으로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과 합의서와 관련한 모든 사실을 일체 비밀로 유지할 것을 ‘확약’받았다. 이를 어길 경우 수령한 보상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못 박기도 했다.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할 삼성은 여전히 ‘갑질’을 하고, 힘 있는 언론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이제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이 설 땅은 거리뿐. 결국 이들은 지난달 7일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자신들만의 ‘5성급 호텔’을 쌓아올리고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삼성 삼성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 [출처: 비마이너]

# 너무나 닮은 그들, 삼성과 복지부

수년간 삼성에 몸 바쳐 일했지만, 누구는 이름 없이 죽어갔고, 누구는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질병과 장애를 안았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스티로폼 한 장 깔고 차가운 거리로 나왔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삼성의 책임자가 아니라 삼성왕국을 지켜주는 감시카메라뿐이었다. 삼성 앞에서 그들은 완전한 ‘폐기물’이 되었다.

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줄 이는 누가 뭐래도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일 터. 스스로를 이 사회의 ‘폐기물’이라고 말하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는 장애인과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저희가 2000년대 초반에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치해 달라고 서울시에 찾아가니까 뭐라는지 아세요? 검토해 보겠대요. 그래서 언제까지 검토해 볼 거냐 그러니까 ‘언제까지 검토해 볼지도 검토해보겠다’ 그래요. 매번 이런 식이죠. 장애인은 사회에서 같이 살 필요가 없고 투자할 가치가 없는 존재, 즉 ‘폐기물’로 여기고, 시설 같은 곳에 가둬놓으려는 거죠. 그러면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 만들어져요. 비장애인들이 시설에 가서 자원봉사도 해주고, 똥도 닦아주고. 이런 걸 우리는 ‘사랑’, ‘봉사’라고 해요. 그런 곳에 삼성이 후원도 딱 해주고.”

“그럼 비장애인의 노동 문제는 어떤가요? 삼성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장애를 입게 되었는데, 결국 이들을 폐기물 취급하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 일용직으로 떨어져 나가는 거고요. 이렇게 우리 모두가 그들에 의해 폐기물화 되는 거에요.”


박 대표의 설명은 자연스럽게 1000일이 넘도록 싸우고 있는 장애등급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폐기물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욕구가 무엇인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필요한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분류하는 일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장애등급제다. 그들이 가진 몸의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1~6급으로 분류하고 기계적으로 서비스를 배분한다.

복지부는 물론 이 절차가 손상이 심해 서비스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장애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몸의 불편한 정도만 따질 뿐이며, 게다가 매우 부족한 서비스 양을 가지고 장애인들끼리 서로 가져가려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라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

이런 설명에 손진우 활동가도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친다.

“말씀을 들으니까 저희가 겪고 있는 것과 너무나 똑같네요. 삼성이 고작 요만큼만 가지고 보상을 한다고 발표하고는, 일단 피해자들이 전화해서 신청하라고 해요. 얼마나 보상해 줄지 심사 기준은 지들 마음대로 정해놓고, 이 병은 얼마, 또 저 병은 얼마 이런 식으로 주겠다는 거잖아요.”

  삼성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농성에 장애인 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이렇게 삼성과 복지부는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가족’이고 ‘친구’라고 말한다. 삼성의 선전 문구는 ‘또 하나의 가족’이고, 복지부는 ‘당신의 평생 친구’다. 누군가의 삶을 폐기물로 처리하기 급급한 이들이 ‘가족’이고 ‘친구’라니? 박 대표는 이런 위선적인 삼성과 복지부를 향해 ‘똥침’을 날리는 실천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이 내세우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동, 노인, 빈곤 계층에 대해 복지사업을 좀 한다는 거예요. 그게 자신들이 가진 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것도 받는 사람에게는 크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주면서 삼성이 외치는 구호가 뭔지 알아요? ‘작은 나눔 큰 사랑’이래요. 아니 그런데 왜 ‘큰 나눔 작은 사랑’ 할 생각은 안 할까요? 그러면서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률도 지키지 않아 고용분담금만 엄청 냈습니다. 그런 위선적인 삼성의 태도에 ‘똥침’을 날린다는 자세로, 우리는 장애인 의무고용이나 잘 지키라고 투쟁을 할 겁니다.”

#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삼성이 기만적인 보상안으로 피해 노동자들을 갈라놓고 있음에도, 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삼성 사옥 앞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길 멈추지 않았다.

1995년 삼성 LCD 공장에 입사했던 한혜경(37) 씨는 솔드크림과 아세톤 등을 취급하며 납땜하는 업무를 6년간 해오다 생리불순, 무월경 등 건강 이상이 생겨 2001년 퇴사하고 2005년에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시력, 보행, 언어 등에 장애가 생겼다. 그녀는 지난달 17일 농성장을 찾은 배스킷 툰캇 유엔인권특별보관을 만나 피해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1997년 삼성 LCD 공장에 입사했던 김미선(36) 씨는 아세톤, 알코올 등을 이용해 LCD 판넬을 닦아내는 OLB 공정과 납땜 작업을 주로 하는 탭솔더 공정에서 일하다, 3년 만에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는 증상을 겪게 되었다. 진단 결과 인구 10만 명 당 3명 정도 걸린다는 다발성경화증이었다. 퇴사 이후로도 증상이 수차례 눈에서 발생해 지금은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동안 두 차례나 이어말하기에 나와 삼성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했다.

  지난 9월 21일, 삼성 백혈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이어말하기 1일차에서 피해자 김미선(가운데) 씨가 나와 증언하고 있는 모습. [출처: 비마이너]

그 외에도 수많은 피해자가 지난 한 달간 가장 차갑고 외로운 ‘5성급 호텔’을 찾아왔고, 앞으로도 삼성의 제대로 된 보상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기 위해 더 많은 발길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 이들에게 박경석 대표는 ‘농성 선배’로서, 가장 약한 자이기에 할 수 있는 가장 힘 센 격려의 말을 건넸다.

“기우제를 왜 지내는지 아세요? 비가 오라고 지내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떤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언제나 성공한답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죠. 그들의 기우제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요. 그런 마음으로 투쟁합시다. 투쟁을 시작했으면 꼭 승리한다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센 삼성과 맞짱 뜨고 있는 여러분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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