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화와 신자유주의적 복지의 재구성

[주례토론회] 한국사회 복지전략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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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한국사회에서 복지를 둘러싼 쟁점은 IMF 위기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의 공격과 축소와 함께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와 함께 복지의 확장이 이뤄졌다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례성은 한국사회에서 전개된 복지개혁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으로 불붙었다. 하지만 논쟁의 토양이 그리 비옥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종종 ‘복지포퓰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진보가 보수에게, 보수가 진보에게 낙인찍는 부정적인 언어로 전락하곤 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은 그야말로 복지담론의 과잉이었다.1 그럼에도 무수한 말들은 복지를 둘러싼2 인식의 지형을 바꾸지 못했다. 왜 그럴까?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논쟁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popular)이지않다. 신자유주의에 처한 대중의 상황이 어떤지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그러한 맥락 위에서 사회정책이 거론되지 않았다. 대중의 이해와 욕구에 기반한 복지전략이 ‘증세없는 복지’라는 것은 대중에 대한 몰이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의 복지담론은 좀더 포퓰리즘을 실천해야 한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빈곤의 사각지대에 수많은 대중들이 있다. 아니 대중들 자체가 빈곤화되고 있다.

다른한편 자본의 위기와 삶의 위기 사이에, 그 간극을 봉합하거나 역으로 드러내는 일련의 정치 투쟁과 갈등의 과정속에 매듭점들로서의 사회정책이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한 복지정책의 확대가 과연 이례적인 것인지 여부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의 재편 과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한국사회의 복지정책의 의미가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케인즈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사이에 복지정책의 급속한 후퇴가 있었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공세가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복지정책의 후퇴가 신자유주의의 전개과정에서 맞물리는 것이라면 단순한 역사적 퇴각이 아니라 특정한 재편의 방향을 띄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재편한 복지정책의 방향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금융화는 복지를 어떻게 재편시키고 있는가가 이 글에서 살펴볼 지점이다.

1. 복지국가의 쇠퇴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1) 복지국가는 쇠퇴했는가?

통상적인 선(先)경제발전 후(後)복지국가 등장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서구에서 복지국가는 경제가 안정되고 평탄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이 사회복지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생산체제가 완전히 붕괴된 최악의 상황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국가의 역할이 급격히 확대된 것은 전후의 예외적인 국가적 파탄상태와 이를 재건하려는 국가차원의 개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전세계적인 경제성장이 이를 대대적으로 촉진하고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완전고용’을 표방하는 케인즈주의와 복지국가 모델은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 위기와 더불어, 그리고 그 위기의 틈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복지국가가 왜 쇠퇴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제출되었다. 그 중 첫째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환경이 전세계적으로 변화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선 ‘세계화’로 인해 쇠퇴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에 따르면 복지국가란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는데, 전통적인 국민국가는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이 약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국민국가 내의 기업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자국 내 노동비용 증가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복지제도를 축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미 올라간 노동비용은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감축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본은 보다 저렴한 노동시장을 찾아 자본을 탈출시킨다. 이 때 세계시장 속에 포획된 저발전국가는 자본의 기술이전과 일자리창출을 위해 낮은 비용의 노동시장을 경쟁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이에 따라 각 국가들 간에는 복지축소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러한 세계화의 관점에서 보면 복지국가의 쇠퇴는 복지국가 자체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3

둘째, ‘탈산업화’에 따른 복지국가의 쇠퇴는 생산방식의 변화에 복지국가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을 찾는다. 포디즘 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숙련도와 임금의 측면에서 거의 비슷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공통적인 이해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조직력과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4 이는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강력한 타협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복지국가는 노동과 자본 두 권력간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 된다. 하지만 탈산업사회의 정의대로라면 현대사회는 더 이상 대공장-정규직을 중심으로한 산업사회가 아니므로 불안정 노동과 다양해진 사회적 요구에 대해 복지국가의 모델은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경제자원의 재분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그 어느 요인도 복지국가 쇠퇴의 결정적인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복지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번영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며 심지어 빈곤한 나라에서도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복지국가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수립에 있어서 경제는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혹은 복지국가를 유지하면서 달라졌던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인식의 지평이다. 우리는 그것은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서 국가복지를 하나의 ‘권리’ 또는 모든 시민을 포괄하는 보편적 급부로 인식하는 발상이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사회정책을 구분 짓는 핵심 요소이다.5 이에 비추어 본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서구와 같은 복지국가 모델이 당장 불가능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복지를 하나의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는 정부의 정책이기 이전에 사회권에 대한 특정한 형태로서 발현된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국민 의식은 개발 독재국가 시절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성장주의에 뿌리깊게 감염되어 있기 때문에 복지는 선별적으로, 최소한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무능력자에게 제공되는 시혜적이고 일시적인 정책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2)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 사회를 재편해야 한다.

차라리 오늘날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포스트-복지국가 이후 신자유주의적 공세라는 지형에서 파악하는 것이 더 유의미할 것이다. 당시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공격하면서 자신들을 대안적인 세력으로 스스로 내세웠기에 그들의 반복지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단순히 경제정책의 전환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가령 영국에서 신자유주의를 개시한 마거릿 대처 수상은 1975년 그녀의 취임식날 “우리도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신자유주의가 지구를 뒤덮은 오늘날 대처의 선언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처음부터 단순한 경제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대처리즘, 레이거니즘, 제3의 길 등으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목표로 한 것은 국가와 관련된 모든 조치들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고, 아예 ‘새로운 자본주의’를 창출하는 것이었다.6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후 복지국가적 합의로부터의 전면적이고 과격한 이탈을 감행했다. 이것은 ‘복지국가는 낡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와 함께 이뤄졌다.

대표적인 것이 대처의 “사회는 없다.”는 유명한 발언이다. 대처는 1987년 9월23일 '우먼즈 오운(Woman's Own)'이란 잡지의 더글라스 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주어야 한다' '내게 문제가 있지만 정부를 찾아가면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이다’ ‘나는 집이 없다. 정부가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식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에 전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누구예요?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들이 있는 것뿐입니다. 정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합니다. 스스로를 돕고 이웃을 돕는 것은 여러분들의 의무입니다. 삶이란 것은 주고 받는 거예요. 주는 것 없이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7

이러한 과격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정책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19세기의 야경국가로 돌아가자는 것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구상했다. 심지어 실제 레이건과 대처정부에서도 복지예산이 극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8 이러한 결과에는 복지에 대한 광범위위한 유권자들의 지지와 함께 급격한 노동유연화로 인한 고실업의 증가 등의 원인이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정부가 교육, 의료, 실업 등 복지 비용을 더 많이 지출했다는 사실과 복지전략의 전반적인 보수화가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복지 정책의 양적인 확대 그 이면에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의 현상적, 양적인 평가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복지 전략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의 경제적 활동 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 사회적 의식을 포함하는) ‘사회’를 어떻게 재편하려고 하였나? 그들의 이념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초기 신자유주의의 두명의 사상가를 간략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자의 주요한 이론가인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사상9을 살펴보면 그들이 복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공격했던 것은 ‘복지’가 아니라 복지‘국가’였다.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구 소련식의 국가사회주의뿐 아니라 서구의 복지국가 둘 다를 공격했다. 하이에크는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복지제도를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반대했다. 만약 전 국민을 상대로하는 의료보험을 국가가 운영한다고 생각해보자. 민간 의료보험 제도의 발전이 위축될 것이고, 초기의 수혜적이고 최소한의 생계를 지원해 줄 목적이었던 사회복지제도는 점점 더 변질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키기기 위해 그들 보다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납세 등을 강제하는 제도로 변질될 것이다. 그가 못견뎌했던 것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시장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인간 사회의 발전과정에서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제질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소득재분배’를 목표로하는 적극적 복지는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우민정책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하이에크는 서구의 복지제도는 사회주의자들이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의 대용물로서 복지국가의 발전을 선택했다고 파악했으니,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복지국가에 대한 혐오는 동일한 것이었다.

하이에크가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를 대표한다면 프리드만(Milton Friedmam)은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경제학자이다. 프리드만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자유이고 자본주의는 자유를 보장하는 경제질서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평등 역시 중요한 가치로 간주하는 체체라고 보았다. 문제는 평등의 내용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과 이에 대한 정치적 표현인 ‘기회의 평등’을 주장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국가가 주장하는 ‘결과의 평등’이었다. 프리드만에게 자유 못지 않게 평등이 중요했지만 지나치게 무리한 평등론 때문에 복지국가가 다양한 부작용에 노출되었고 결국 고장난 기계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강력한 복지국가는 시장을 협소화하거나 왜곡한다고 보았다. 더불어 복지국가는 시민들의 자립의식이나 윤리수준을 저하시킨다. 전통적인 복지프로그램은 대대적인 수술을 거쳐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으로 ‘구조조정’ 될 필요가 있었다. 복지와 관련 프리드만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복지국가의 규모를 줄어야 한다. 2) 복지서비스 공급에 민간 보험회사 등 민간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복지서비스 공급주체들 간에 경쟁이 생겨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3)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4) 조세의 초과부담 문제를 심각하게 야기하는 누진세 제도를 폐지하고 비례세 중심으로 조세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5) 현물이 아니라 현금 지원 중심으로 복지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현물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정신장애인 등 합리적 소비 선택 능력이 없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소규모로 윤영하는 것으로 족하다.10
프리드만이 지향하는 복지는 시장의 자율과 효율을 우선하거나 최소한 축소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전개된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만의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에서 국가를 떼어내고, 복지와 시장을 결합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효율과 시장의 이름으로 복지를 재편하려고 하였다. ‘복지의 시장화’앞서 말했듯이 오늘날 복지국가의 쇠퇴를 둘러싼 논쟁은 신자유주의적 복지전략의 재편과 상당한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실제로 쇠퇴하고 있는지를 논의하기 보다는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에서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복지국가가 쇠퇴 혹은 소멸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는 복지비 지출이 그다지 심각하게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후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경제가 성장했던 30년간 팽창했던 복지지출이 주춤하거나 후퇴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복지국가의 소멸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신자유주의적 우파의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에 휘말릴 위험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한국사회 복지국가 논쟁’의 맥락을 살펴볼 차례다. IMF와 함께 당도한 이례적인 복지사회 논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2. 신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한 복지국가 한국

1)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과거 개발 독재시대는 성장 우선주의의 기치하에 전국민의 총력전체제 였기 때문에 복지국가는 자연스럽게(?) 유보되었다. 개발 독재정권을 마감하고 들어선 김영삼 문민정부는 ‘세계화’를 표방했고, 정부는 OECD 가입만 된다면 선진국이 된다는 환상을 국민에게 유포했다. 그러다 IMF가 터졌고,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청사진은 국가부도라는 황망한 소식과 함께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되돌아 왔다. 시민들은 금니와 돌반지를 녹여달라며 금을 모아왔다. 금을 국가에 내놓기 위해 줄을 선 대중들은 세계화의 민낯이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전쟁터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선 대중들은 불안에 잠심되어 있었고, 생존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성장은 커녕 당장의 생존이 급했고, 생존을 위해서 복지국가는 더욱더 멀리 밀쳐둔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복지확대 전략을 동시에 추진한다. 세계적으로 복지국가의 축소압력이 거세었던 시기에 국가복지가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11 실제로 IMF 위기 이후 10여년간 한국사회는 국민연금의 전 국민확대 적용, 의료보험통합,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전 사업장 확대 적용,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등 매우 가시적인 복지제도의 성장을 경험했다.12

신자유주의와 사회복지 확장의 동시적 이행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복지정책의 성격에 대한 첨예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한국복지국가 성격논쟁’에서 드러나듯이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화, 탈규제와 같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한 두 정권이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정책’을 수행한 것을 두고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강제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과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겠다.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의 공격과 함께 복지정책의 축소를 요구하면서 등장했다는 점은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구에서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를 공격했다는 것은 이미 서구사회가 복지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가 함께 개시되었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는 이례적인 것일 수 있지만 당시 한국사회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필연적인 경로였다.

한국사회는 개발 독재시기 산업화를 견인하고, 국가복지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인 생활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저축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왔다. 이러한 저축장려운동을 통해 국가는 합리적 소비생활과 근검, 절약, 저축 등 자본주의적 생활규범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국가복지는 최대한 억제하고 복지를 낭비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낙인찍음으로서 국민들에게 저축에 기반한 자조적인 생활보장체계를 강제한다.13 이는 개발 독재시대 지배엘리트의 자본동원전략이자 통치의 기술이었다. 당시 고도성장의 결과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지배전략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정리해고와 실업률의 증가, 고용의 불안정성의 증가는 ‘국민의 정부’, ‘민주정부’로 추대되었던 김대중 정부의 지지기반과 정치적 정당상을 위협하는 문제로 부각된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 2년이 다 되어 1999년 끝무렵에 사회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은 IMF 요구의 이행과 재벌개혁이라는 시급한 현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사회가 급격하게 양극화되어가는 상황에 대해 일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치적 위기상황에 몰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필요로한다. 당시 IMF나 World Bank 같은 국제금융기구도 한국 정부에게 실업에 대한 사회적 보호기제가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실업자와 빈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개선할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14

앞서 살펴본 하이에크나 프리드만의 주장뿐만 아니라, “사회는 없다.”고 잘라말했던 대처 치하의 영국이 실제 복지국가의 전면적인 후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신자유주의가 반드시 공공복지의 축소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과 같이 복지제도가 매우 미흡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의 구축만으로도 복지정책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이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경색된 국면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사회안전망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에 대한 최소한의 지배안전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 정부’라고 불리우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특성이 이러한 복지국가 전략을 최악의 경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내세웠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까? 다시말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복지정책은 World bank가 요구하는 사회안전망의 확충이었는가, 아니면 복지국가로의 발전을 목표했는가?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복지정책이 개발 독재체제와는 다른 사회정책(social policy)의 이념하에서 전개되었는가가 평가되어야 한다. 사회정책은 가족정책, 교육정책, 노동시장정책, 보건정책, 복지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지만 일반적으로 합의된 핵심은 ‘생존권 보장’을 둘러싼 일련의 국가정책을 의미한다. 특히 사회정책에서 노동시장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은 매우 중요하다.15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의 생산체제가 신자유주의로 이행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적 생산체제와 복지체제(welfare regime) 와의 관련성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생산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으로 복지가 제기된 것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보충물로 위치지워진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각 정권이 제시하는 복지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와함께 신자유주의를 금융화의 맥락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함께 살펴볼 것이다. 특히 가계의 금유화를 중심으로 볼 필요가 있는데 개인이 금융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복지정책이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며, 나아가 이러한 결과 신자유주의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에 조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형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2) 금융화와 생산적 복지 : 빈곤선 이하의 신용불량자 혹은 노동 무능력자의 정치적 효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산업에 대해 금융을 우위에 두고 진행되었다. 노동집약적 제조업 중심에서 노동의 유연성과 금융화가 결합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의 척도가 금융적인 것으로 전환되어야 했다. 이러한 금융을 중심으로한 구조조정은 실물경제와 노동을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진다. 기업의 건전성은 투자에 따른 수익과 기업의 생산성 아니라 ‘BIS 자기자본과 부채비율 200%’라는 금융적 척도로 대체된다.16 금융적 건전성이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으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산업발전의 논리나 노동의 생존권은 ‘부채비율의 감소’를 위해 부차화되거나 삭제되어야할 것들이었다. 기업들은 신기술에 투자한다거나 산업을 확장하기 보다는 그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기업건전성 향상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도, 고용창출도 없이 기업은 현금을 쟁여두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은행은 더 이상 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가계는 줄어든 수입과 미래의 불안이 엄습해오면서 최대한 지출을 자제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실시한다. 1998년 9월 2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수요자 금융을 확대해 소비자에게 돈을 풀어 소비를 부추김으로써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의 ‘내수진작 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내수진작 종합대책과 관련하여 ‘수요자 금융확대’의 방안으로 신용카드의 수수료 인하와 인출한도 확대, 주택이나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이용되는 할부금융의 금리인하, 주택자금대출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17 이는 부의 재분배와 고용에 우선 순위를 두는 사회보장 정책이 아니었다. 개인에게 신용카드를 쥐어주고,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며 경기부양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고용불안은 날로 심각해지고 사회안전망은 취약한 상황에서 내수진작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소비자 중심의 신용카드 확대 정책’은 신용불량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에 충분했다. 김대중 정부가 진행한 신용카드 활성화대책의 핵심은 카드의 발급과 사용에 제한이나 규제를 대폭적으로 풀었으며, 그 중에서 핵심은 ‘현금서비스한도 폐지 조치’였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인해 신용카드시장으로 재벌들이 몰려들었고 신용카드 발급은 과열경쟁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났다.

한면 기업의 대출사업이 막혀 있던 은행은 ‘개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 말라버린 돈줄 때문에 생활의 곤란을 겪었던 사람들은 무료급식소에 줄을 서듯이 너도나도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아래 <표1>18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역전을 보여준다.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의 부채비율은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가계 부채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대로 <표 2>의 경우 가계저축과 기업저축의 반전을 보여준다. IMF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금융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가계대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2001년 이후에는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가계 저축률도 매우 빠른 속도로 하락한다. <표 3>의 가계 순저축률 국제비교를 보면 1999년 세계 최고 수준이던 저축률이 불과 3년만인 2002년에는 세계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19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환위기 이후 대량의 실직과 비정규직의 증가는 이른바 ‘노동하는 빈곤층’(working-poor)을 대대적으로 양산했다. 물론 워킹푸어의 등장이 곧바로 가계부채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개인의 신용과 투자에 맞춰지면서, 2003년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육박하는 카드대란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신용불량자들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현물구매에 씌여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현금서비스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은 생계를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사용이 주를 이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빈곤한 서민들은 불안정한 노동으로 인한 임금하락을 현금서비스로 보충하며 경제위기를 견디어내고 있었다.

  <표1> 기업 및 가계 부채비율 추이

주: 부채비율=부채/총자산
출처:http://chshin.com/blog2/index.php/archives/707

  <표2> 가계 및 기업 저축율 추이


  <표3> 가계 순저축률 국제비교

김대중 정부가 개인에게 투자와 신용카드의 문을 열어준 것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중산.서민층의 재산형성 및 생활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광범위한 소득세 감면조치(1999년)를 시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에 저소득. 소외계층을 위한 비과세저축제도, ‘세금우대종합저축제도’, 근로자우대저축 및 농어가목돈마련 저축, 비과세시한 연장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재정경제부, 2000).20 이는 이후에 살펴볼 신자유주의 복지전략 중 자산형성지원사업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도 불구하고 당시 복지정책은 전면적인 조세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채, 국가의 재정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뒤따라올 수밖에 없지만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증세를 싫어한다. 조세개혁 없이 이뤄진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복지는 비용과 규모면에서 이전에 비해 증가되었지만, 전체적인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에게 신용카드를 쥐어주고, 주택담보대출을 권장하며, 저축을 통한 재산형성을 지원하는 것은 과거 개발 독재시대에 국가복지의 영역을 개인에게 전가시켜왔던 맥락과 신자유주의적 ‘개인화’가 겹쳐지는 지점이다. 개발국가에서 복지국가를 경유하지않은 채 신자유주의로 이행한 한국사회는 그 속도에 비해 별다른 저항없이 급속하게 재편되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채, 카드로 하루하루를 대출받아야 하는 ‘개인’에게 빚을 져서라도 주택을 구입하고, 저축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라는 지상최대의 임무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생산적 복지’란 ‘생산에 기여하는 복지’ 혹은 ‘생산에 참여하는 복지’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국가는 시장 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개인은 능력 닿는 대로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자신과 가족의 복지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21 이에 따라 국가 복지정책의 핵심은 교육과 훈련에 대한 투자를 통해 개인의 능력과 기술을 향상시켜 개인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데 있다. 개인에게 생산력이란 노동능력으로 나타나는데, 노동능력 여부에 따라 빈곤선을 그어서 차별적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즉 빈곤선 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기초해 국가의 원조를 받는다. 하지만 노동능력이 있는 빈곤층은 생계급여를 받는 동시에 직업훈련에 참가하거나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노동과 복지의 연결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복지프로그램으로 김대중 정부부터 현 박근혜 정부까지 핵심적인 복지 기조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근로연계복지(welfare-to-work)는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역시 복지 수급자 수를 줄이거나 빈곤층의 경제 자립을 일구는 데에 거의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과 복지를 연결시키는 전략은 신자유주의하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빈곤층이 아니라 빈곤하지 않은 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신자유주의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지 않은 채 국민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두고 정책을 수립한다. 우선 빈곤선 이하의 ‘원조를 받는 인구’라는 집단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에 의해 가시화되었다. 이들은 빈곤할 뿐만 아니라 노동 무능력자들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노동능력이란 개인이 평생을 두고 갈고 닦아야하는 개인의 책무로 인식되기 때문에, 오늘날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의 요구보다는 ‘경쟁’을 통한 선별적 배분에 더더욱 열광하게 된다. 문제는 개인이 노력하는 만큼, 일자리의 양과 질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복지는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노동능력이 있는 개인은 불안정한 노동으로 인한 삶의 불안을 민영보험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로 해결하려고 한다.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복지 수급을 신청한다는 것은 실패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돌아오지 않는 복지를 위해 세금을 늘린다는 것을 종종 포퓰리즘적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바우만은 선별적 복지가 결국은 복지국가의 소멸을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푸코 역시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주체가 국가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사회정책의 개인화’ 혹은 ‘사회정책의 시장화’로 재편되고 있음을 분석한바 있다. 이를 통해 대중들은 보편적 사회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복지를 사회의 영역에서, 타자에 대한 보편적 윤리를 개인의 삶에서 몰아내게 된다. 바우만은 <새로운 빈곤>에서 선별적 복지정책이 불러오는 복지부정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보통 특정한 집합적 복지 서비스에서 중류계급의 동등한 이용을 제한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면 이들 복지는 날이 갈수록 하층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고 그들만이 혜택을 받는다. 미국식 표현을 빌자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열악한 프로그램’이라는 원칙에 따라 복지에 투입되는 총액은 꾸준히 줄어든다. 그리고 곧 ‘부정행위, 속임수, 남용’의 사례가 등장한다. 대개 흑인인 한 싱글마더가 식권으로 보드카를 산다든가(레이건주의 담론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례), 복지 급여를 받으려고 아이들을 낳는 무책임한 빈민 따위가 그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복지 서비스의 보호책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중류계급이 더는 그 존속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폐지에 동의한다는 것이다.22

한국사회 역시 마치 연말정산처럼 연초만 되면 복지급여를 부정수급한 사례들을 적발해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시켜왔다. 특히 2013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비정상의 정상화’23를 언급하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10대 과제중 첫 번째 과제로 ‘복지급여 등 정부지원금 부정수급 근절’을 지목한 점은 신자유주의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부정의 메커니즘이 여실히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삶의 영역에서 국가가 물러나는 방식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하면서 이뤄지는데, 이때 개인을 둘러싼 사회는 생존의 수준을 넘어서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이해되는 “존엄성을 갖춘 생존”24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가 관철되는 사회, 즉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해주는 사회가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복지란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소비’가 아니라 ‘투자’되는 것으로 인식의 지형을 변화시킨다.

3) 사회투자국가 : ‘인적자본’으로서의 개인과 복지의 시장화

2006년 노무현 정부의 집권 말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필두로 정부는 학계와 시민단체와 함께 <비전2030>이라는 미래전략을 발표한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이라는 기조하에 마련된 이 보고서는 “복지는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사람을 키우는 투자라는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복지를 성장의 일환으로 채택하고 사회정책과 경제 정책을 통합”하여 과거 개발 독재시대의 先성장 後복지의 폐혜와 외환위기 이후 심각해진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2020년까지 선진국 진입, 2030년에는 세계일류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일종의 미래전략에 대한 청사진을 제출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복지는 소비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투자라는 것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개인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방치되거나(야경국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호되어야 할(복지국가)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곧 자본이라는 생각이다.

사회투자론에 따르면 개인이 노동을 수행한다는 것은 자본에 의해 고용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업’으로서의 개인이 기업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산가치의 형성을 위해 ‘투자’되어야 하듯이, 개인의 소비는 이제 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로 인식된다.

당시 노무현 정부와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의 학계 및 정치권은 <사회투자국가론>25을 신자유주의적 복지 모델을 뛰어넘는 대안적 복지모델로 제시했다. 사회투자국가는 1998년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가 과거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제시된 사회정책 패러다임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기조로 이어진다.

사회투자국가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특징을 가진다.26

1. ‘과세와 지출’ 대신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투자는 수익을 상정하는 개념이므로 복지지출은 명확한 수익을 낳는 것이어야 한다.
2.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성을 강조한다. 사회지출은 수익을 창출할 투자이기 때문에 곧바로 경제경책의 한 요소가 된다.
3. 사회투자의 핵심은 인지자본 및 사회적 자본 투자이다. 인적자본 투자의 핵심 대상은 아동이다. 사회적 자본은 좋은 인적 자원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맥락, 경제활동의 포괄적 기반이다.
4. 사회지출을 소비적 지출과 투자적 지출로 나누어 소비적 지출을 가능한 한 억제한다. 대신 자산조사를 통해 찾아낸 특정한 목표집단을 대상으로 투자적 지출 프로그램을 만든다.
5. 시민의 권리는 의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경제적인 기회제공, 복지제공이 국가의 의무라면, 유급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부양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다. 복지를 대가로 근로의무를 부과하고, 여기에 불응하면 급여를 삭감 또는 박탈하는 근로연계복지정책이 대표적이다.
6.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며, 불평등의 해소보다는 사회적 포섭에 더 관심을 가진다. 시장 실패자에 대한 사후 소득보장보다는 새로운 지식 기반 경제에 적응해 시장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게 도와주눈 인적자원개발 투자에 주력한다.

실업수당,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의료, 공공주택 공급과 같이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사회정책 보다는 특정한 대상을 선별하고 대상에 맞춤한 투자를 통해 ‘인적자본’을 개발한다는 것이 사회투자론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교육과 훈련은 매우 중요한 사회정책으로 간주된다.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교육과 훈련은 사회민주주의의 정치가들의 새로운 주문(呪文)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역점 사업을 ‘교육, 교육, 교육’이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때 토니 블레어가 강조한 교육은 프랑스 근대 이후 보편적인 시민권으로 누려야할 교육이 아니라 ‘마땅하고 효율적인 투자’로서의 교육이었다.

기든스는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개혁되어야하지만, 신자유주의가 표방하던 최소한의 복지, ‘사회안전망’ 차원의 복지 역시 비판한다. 그는 한국사회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같이 노동을 연계한 복지정책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복지’가 소극적인 의미만을 갖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빈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곳에서는 결과가 분열적으로 나타난다.27” 결론적으로 사회투자국가론은 과거 경직된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의 소극적 복지를 넘어 ‘적극적 복지’임을 주장한다.

기든스의 <제3의 길>이나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발표 당시 좌우파는 막론하고 비판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핵심은 사회투자국가가 신자유주의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인가, 그 너머를 제시하는 전략인가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복지축소’라는 소극적이고 단순한 맥락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벌어진 논쟁이 대부분이다.

앞서 제시한 바대로 복지를 둘러싼 이념은 그 시대의 경제 정책을 포함하는 사회정책의 맥락에서 파악해야한다.

지금에 와서 뒤늦게 사회투자론을 검토하는 이유는 <비전2030> 발표 당시 ‘좌파 포퓰리즘 정권의 무책임한 세금폭탄 전략’이라 비난했던 보수진영이 집권하면서 제출한 복지이념 역시 사회투자론의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산층 키우기 휴먼뉴딜’(2009, 미래기획위원회)이나,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복지공약을 비롯해 ‘맞춤형 고용·복지’28 정책들의 내용들은 모두 사용하는 어휘만 조금씩 다른 뿐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사회투자전략’과 같은 기조하에 제출되고 있다.

사회투자론이 핵심으로 하고 있는 ‘인적자본’이라는 개념이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가 ‘개인’을 규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이것이 복지정책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4) 미국 신자유주의의 발명품 : 투자대상으로서 ‘인간’

‘인적자본론’은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의 발명품이었다.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의 두 모델-독일, 미국-을 검토하면서 ‘인적자본’이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탄생된 논의를 추적한다. 우선 고전경제학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은 무엇인가? 고전 정치경제학은 상품 생산의 세 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고전경제학에서 노동은 늘 탐색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는 점을 제기한다. 그들에게 노동은 맑스나 리카도의 이론처럼 ‘추상적 노동’이나 ‘시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29 ‘노동은 본격적으로 경제분석의 영역에 재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에게 경제학이란 자본을 투자해 생산을 하는 ‘절차’가 아니라, ‘인간행동의 과학’이 된다. 이제 경제의 임무는 인간행동의 형태, 인간행동의 내적 합리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희소 자원들이 주어졌을 때 개인들이 무엇보다도 어떤 하나의 특정한 목적에 그 자원들을 할당하도록 결정하게 만드는 계산이 무엇인지를 도출”30하는 것이다. 노동은 생산관계 속에서 하나의 생산요소로 간주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들의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용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즉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을 생산관계의 흐름 속에 위치짓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관점에서 ‘노동능력’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는가를 사유하는 것이다. 노동은 “노동자에 의해 실천되고 활용되고 합리화되고 계측된 경제적인 품행”31이며, 이를 통해 노동자를 ‘능동적인 경제 주체’로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임무이다.

노동자를 능동적인 경제주체로 만들자마자 노동자는 인적‘자본’으로 역전된다.

이제 인적자본이라는 주체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사람들은 왜 일을 할까? 노동자라면 임금을 받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적자본의 차원에서 임금은 ‘소득’으로 재개념화된다. 임금은 인적자본의 소득이 된다. 여기서 자본과 소득의 개념을 살펴보자. 소득이란 자본의 결과물이다. 반대로 자본이란 미래의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으로서 잠재적 소득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소득이 되는 자본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일정 정도의 임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신체적, 정신적 요소들의 총체”32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 노동이란 시간이나 착취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신체적이고 정신적 요소들의 총체로서 ‘능력’ 혹은 ‘경쟁력’이다. 따라서 인적자본이란 개인이 자신의 능력이라는 자원을 형성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고, 능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소비를 ‘투자’로 간주하며, 단순한 생존에 필요한 비용 역시 ‘투자’의 개념으로 재설정되며, ‘가진건 몸뚱아리 밖에 없는’ 노동자가 아니라, 잠재적 자본으로서 ‘개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품행을 스스로 조직하는 주체(푸코는 이를 자기 자신의 기업가 주체로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정의한다)를 의미한다.

‘투자’란 기업활동에서 소비이자 생산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적했듯이 투자란 수익을 목표로 하며,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도산하게 된다. 그런데 ‘개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개인은 파산한다고 해서 기업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생존의 위협에 직면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가 복지의 이름으로 개입하는 경계선은 이 지점이다. 투자의 명목으로 소비했으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모델, 무능력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국가가 ‘원조하는 인구’로 분류된다.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를 분리해서 판단한다. 그는 빈곤이나 불평등의 해소를 복지제도의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불평등이 사회적 배제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배제는 어떤 일시적인 실업이나 빈곤으로 빚어지는 것이 이나라 그러한 상황에 고착되는 심리적 기제에서 비롯된다.33 그는 불평등을 전제한 채, 사회적 배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회적 배제를 사회적 포섭으로 바꿀 수 있는 일대 복지개혁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34

빈곤이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포섭을 목적으로하는 복지정책이란 무엇일까?
노동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다시 노동을 수행할 때까지 실업수당을 지급해 주는 것이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이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노동능력’의 유무에 따라 선별되고, “복지를 대가로 노동의 의무를 부과”한다. 신자유주의에서도 여전히 노동이란 도덕이자 의무이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시장의 논리가 관철되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기도 하다. 케인즈주의 시대에는 노동이 경제의 ‘생산’을 견인했기 때문에 가치있는 활동으로 생각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노동이 더 이상 경제성장을 견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발표가 주식시장에서 주가의 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오늘날 노동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대선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일자리 00만 개 확보를 공약으로 내걸고, 국정운영의 주요 성과 중의 하나를 일자리 개수로 발표하게 된 사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절대적인 목표로 내세운 사회는 역설적으로 노동이 무의미한 사회다.35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이란 생산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노동을 통해 의도하는 것은 노동이 무가치해진 사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 삶의 가치를 노동을 통해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품행을 조직하는 태도다.

3. 부채사회에서 인적자본에 투자한다는 것

1) 예고된 실패 : 자산형성 지원사업

인적자본의 형성을 위해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사회에서 국가는 그들이 국가의 시혜적 원조 없이도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자산을 형성하게끔 돕는다. ‘자산형성지원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동발달지원계좌’(CDA)를 들 수 있는데,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시혜적인 복지급여의 지원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자산을 형성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개인의 노력에 따라 국가가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의 적극적 옹호자인 유시민 전 장관은 ‘적극적 복지’로서 사회투자정책을 2007년 처음 도입한 ‘아동발달지원계좌’를 중요한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우선 시설아동을 비롯해 국가가 특별히 배려해야 하는 ‘요보호아동’ 2만 8,000명에게 은행 계좌를 만들게 합니다. 사업파트너로 신한은행이 선정되었기 때문에 신한은행 계좌를 개설합니다. 매월 3만원 이하 범위에서, 아이들이 후원자나 부모, 친지에게서 받거나 스스로 마련한 돈을 저축하면 같은 액수를 국가가 입금해줍니다. ...신한은행은 계좌를 가진 아이들에게 자산 형성이나 운용과 관련된 교육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잘되면 좋은 일을 하면서 은행의 평생고객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계좌 주인이 18세가 되기 전에는 누구도 이 계좌어서 돈을 인출하지 못합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고등교육 또는 직업교육을 받거나 주택을 마련하는 등 자산을 형성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로만 돈을 인출할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계좌를 만들어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운용하면, 시설을 나갈 때는 제법 큰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36

아동수당은 빈곤한 아동들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복지정책이다. 이에 비해 아동발달지원계좌는 아동수당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적극적인 탈빈곤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금융자본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는 사업의 파트너로 기업과 협약을 맺어 저축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사업을 벌이기에 용이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적 상황에서는 별다른 사회적 논쟁과 합의없이, 그리고 세금의 증가없이 복지제도의 확대가 더 수월했고, 유시민-노무현은 이 수월한 방법을 착실하게 따랐다.

자산형성은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이 더욱 강조되며, 금융교육과 같은 교육프로그램이 강화된다. 특히 노령기보다는 아동기부터 지원하는 것이 자산형성에 유리하기 때문에 대상자를 선별할 때 노동능력과 노동가능기간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저축’이란 안정된 일자리에 취직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벌어들일 때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자산형성지원제도의 성공여부는 다른 사회정책, 특히 노동시장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37

그렇다면 안정된 일자리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심지어 교육비용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동발달지원계좌’는 얼마만큼 빈곤탈출에 도움을 줄까?

2014년 현재 적립금액(3만원)으로는 계좌 수령시 1천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디딤씨앗통장의 최고 적립금을 수령한다고 해도 국민임대아파트 최소 임대보증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4년제 대학의 등록금 중 일반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666만원이고 국·공립대학은 414만원 정도이다. 자산형성을 위해서는 교육에의 투자를 늘려 인적자본을 형성하는게 가장 유리한데,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동발달지원계좌를 통해서는 4년간 등록금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학자금 대출을 통해 부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아동발달 계좌가 자산형성 지원사업의 전부는 아니다. 가령 ‘희망키움통장’이나 ‘내일키움통장’은 모두 노동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효과는 아동발달지원계좌처럼 그 효과가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계좌’를 중심으로한 저축지원 사업이 불안정한 노동정책과 가계부채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유효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를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2) 부채사회에서 ‘자산’을 형성한다는 것

2013년 말 가계부채가 1천조원을 돌파한 이후에도 급격하게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이고 세대별로는 50대, 중산층이 부채율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10%의 빈곤계층의 가계부채는 실제 그들의 생존이 빚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전체 1,788만 가구 중 412만 가구가 저소득층이고, 412만 가구중 156만 가구가 금융대출이 있는 상황이다.38 이중의 절반은 연체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저소득층의 대출잔액에 연 가처분소득의 8배 이상39인 상황에서 이들에게 저축을 통한 자산지원형성은 복지정책이라고 내밀지도 못할 상황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최근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을 2%대로 내리면서 가계부채를 더욱 가파르게 상승시키고 있다. 1월 18일자 금융권과 한국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2014년 12월 은행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총 406조9천억원으로 한국은행의 관련집계가 시작된 2008년 이래 역대 최고 증가폭을 기록했다.

가계대출은 지난 7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데 이어 9월 재건축 연한 완화 등 부동산 규제완화책을 내놓으면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경제 활성화와 주택을 중심으로한 자산형성을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주택담보대출을 생활자금이나 자영업 사업자금으로 충당하는데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정부가 대출금리를 낮추면서 국민들에게 보내는 신호는 ‘빚내서 집사라’라는 것이었지만, 실제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집을 살 여력이 있지 않다. 대출금 용도에서 최초 주택구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1%에서 47%로 더 떨어졌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축을 통한 자산지원 형성사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정부의 대책은 개인에게 신용카드와 주택담보대출을 열어왔다. 지금 현재도 언론이나 경제전문가들이 신문이나 TV지상에서 가계부채의 위험을 알리고 있음에도 정부는 더더욱 대출한도를 넓히고, 대출이자율을 낮추며, 돌아오는 원금 만기 상환일을 유예해 주고 있다.

한국사회가 처한 경제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이들의 행보는 집권 기간내 적절한 통치를 통해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감추거나 지연시키는 것 밖에는 없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저축’이 아니라 ‘투자’이다. 그것도 빚을 내서 자신의 자본을 형성하는 ‘레버리지’ 전략이다. 투자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현금이나 재산을 성실하게 불리는 것이 아다. 미래 소득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본’이라면, 그러한 잠재적 자본, 미래의 자본을 위해 현재에 투자하는 것이다. 개인의 소비를, 국가의 복지를 ‘투자’라고 개념화한다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실행방식이 금융자본의 메커니즘으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인과 국가는 ‘시장’의 모델로 재구성된다.

앞서 말했듯이 신자유주의는 완전고용이나 빈곤철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적절한 빈곤선을 나누고 그에 따른 선별적인 관리를 통해 사회를 통치하는 것을 지향한다. 따라서 저소득계층에게 통장을 나눠주고 자산형성을 돕겠다는 ‘적극적 복지’의 실상은 실제 이들에게 개인이 자산을 형성해서 스스로 살아남아야한다는 새로운 윤리를 명령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빈곤선 경계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부채사회의 저신용자들에게 일종의 경고등의 기능을 하게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부채의 길을 열어주고 부채를 통해 사회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개인의 무능력과 도덕적 해이로 전환해 사회적인 저항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기든스가 사회투자국가론에서 지향했던 ‘사회적 배제에서 사회적 포섭으로’의 현실화다.


  국제신문, 2014.10.14. “주택담보대출47% ‘집 안샀다’”


4. 나가며 : 빈곤비즈니스, 사회보장을 대신하는 저소득층 대출사업

부채사회에서 자산형성지원사업은 특정주체에게 한정되는 일정액의 복지규모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산형성’은 정책을 넘어 하나의 이념이 되어 부채사회에서 국가가 ‘국민행복기금’이나 ‘햇살론’ 등의 형태로 일종의 빈곤비즈니스를 형성하고 있다. 빈곤비즈니스란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빈곤층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정화하는 비즈니스”40를 말한다. 이러한 빈곤비즈니스는 부채 경제하에서 약탈적 금융으로 등장한다. 금융화가 개인을 금융적 주체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미 부채가 개인을 통치하기 위한 유효한 장치로 설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는 푸코가 이야기하는 기업가적 주체를 넘어 이미 ‘부채인간’(라자라토)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애초에 신자유주의가 주체화하려고 했었던 ‘투자자 주체’는 없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기업가 주체, 투자자 주체라는 능동적 이미지는 부채인간이라는 또 다른 주체와 짝패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신자유주의는 처음부터 일자리를 빼앗는 대신에 개인들의 손에 카드를 쥐어주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국민연금을 확대하기 보다는 지금세대의 자산형성과 노후보장을 여전히 개인에게 전가하기 위해 주택시장을 투기적으로 열었다. 복지는 국가의 영역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 한국사회의 복지정책은 국가가 아니라 시장에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에서 작동하는 대출사업은 국가를 미개로 사회복지로 둔갑하고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양립이라는 이례적이고도 낯선 풍경의 실상이다.

*주

1)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의ᅠ복지공약은 어르신 기초노령연금ᅠ2배 증가,ᅠ의료비ᅠ본인부담ᅠ연간 100만 원 상한제, 정년 65세 단계적 실현 등을 내세웠다. 새누리당은 반값ᅠ등록금ᅠ실현과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그리고 무상보육을 내걸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의 복지공약을 실천하려면 연간 15조 원, 민주당 복지공약은 연간 33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여야는 공히 '증세 없는 복지'를 호언장담했다.

2) 생략

3) 조영훈, 「‘생산적 복지’론과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 김영면 편, 『한국복지국가성격논쟁1』, 인간과 복지, 2002, pp. 96-98.

4) 위의 글.

5) 윤상우, 「민주화 이후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평가」, 조희연, 김동춘, 오유석 엮음, 『한국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동학』, 한울, p. 210.

6) 이와 관련해서는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참조할 것. 푸코는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들이 목적한 것은 경제, 사회, 정치를 망라해 자본주의의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었다. 그들의 전략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7)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7059&C_CC=BB

8) “물론 대처에게 복지는 불평등의 완화나 교정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최소 생활을 위한 선택적 안전망으로 개념이 축소되었고, 복지는 보편적 개념의 사회권과는 무관한 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하위개념으로서만 존재했다.... 하지만 대처 조차도 복지의 양적 규모를 전면적으로 축소할 수는 없었다. 대처시대 어떤 연도에도 지출의 양적 규모가 줄어든 적은 없었고, 오히려 그 이전의 윌슨-캘러한 노동당정부 시절보다 빠르게 증가했다.”(고세훈, <영국정치와 국가복지>, 249-250.)

9)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복지정책과 관련해서는 신정완, 2014, <복지국가의 철학>, 인간과복지, 1부. 2장 참조.

10) 신정완, 『복지국가의 철학』, 2014, 인간과복지, pp. 87-88.

11) 송호근, 홍경준, 『복지국가의 태동: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 나남, 2006.

12) 김도균, “한국의 자산기반 생활보장체계의 형성과 변형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170.

13) 앞의 글, 210.

14) 앞의글 172. (신광영, 2002:62-63)

15) 윤상우, 앞의 책, p. 207.

16)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p. 309.

17) 김순영, ‘신자유주의시대 경제정책과 민주주의’, 2005, 서강대학교 정치학과 박사논문,  p. 36.

18) http://chshin.com/blog2/index.php/archives/707

19) 기업저축률 증가원인에 대한 분석은 박종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 임금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역설’, 2013. 금융연구원. 참조할 것.

20) 김도균, 앞의 책, pp. 176-177.

21) 조영훈, 「‘생산적 복지’론과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 김연명 편, 『한국복지국가성격논쟁1』, 2002, 인간과 복지, p. 83.

22) 지그문트 바우만, 『새로운 빈곤』, 천지인, 2010, p. 106.

23) 2013년 12월 11일 52회 국무회의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비정상의 정상화' 근절을 위해 80개의 '정상화 과제'가 보고되었다. 이는 10대 핵심과제로 포괄되는데, 그 내용은 1)복지급여 등 정부지원금 부정수급 근절 2) 공공부문 방만운영, 예산낭비 근절 3)공공인프라 관리부실 및 비리근절 4) 공공부문 특혜채용 및 재취업 관행 개선 5) 세금. 임금 등의 상습 체납, 체불 근절 6) 법질서 미준수 관행 근절 7) 각종 사기, 불법 명의도용 근절 8) 관홍상테 등 일상생활 불합리 관행 근절이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 확산하기 위해 '비정상의 정상화 사이트'(http://pmo.go.kr/pmo/normalization/index.jsp)를 운영하고 있다.

24) 바우만, 앞의 책, p. 83.

25) 사회투자국가와 사회투자전략은 전통적 복지와의 관계에서 대체냐, 보완이냐에 따라 구별된 개념이지만, 여기서는 ‘사회투자국가론’으로 통일하여 정리하도록 한다.

26) 유시민, 『대한민국개조론』, 돌베개, 2007, 90-91

27) 앤서니 기든스, 『제3의길』, 생각의 나무, 2002, p. 174.

28) 2013년 박근혜 정부는 국정 5대 목표중의 하나로 ‘맞춤형 고용. 복지’를 제시했다. 세부 복지전략은 1)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제공 2) 자립을 지원하는 복지체계 구축 3) 서민생활 및 고용안정 지원 4) 저출산 극복과 여성 경제활동 등이다.

29)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노동을 시간이라는 가변항을 통해서만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서 추상화한 것은 현실 자본주의가 아니라고...”(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312)

30)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2012, 난장, p. 314.

31) 푸코, 위의책, p. 316.

32) 위의 책, p. 317.

33) 우명숙, 「사회투자국가의 ‘개인화된 사회투자의 한계」, 김연명 편, 『사회투자와 한국 사회정책의 미래』, 나눔의 집, p. 412.

34) 앞의 글, p. 413.

35) 앙드레 고르,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생각의 나무, 2011, p. 116.

36) 유시민, 앞의 책, pp. 87-88.

37) 한창근, 「자산형성지원정책의 한국적 함의」, 김연명 편, 『사회투자와 한국 사회정책의 미래』, 나눔의 집, p. 137.

38) 통계청,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39) 통계청,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40) <홈리스뉴스 12호> “요세바 통신-빈곤 비즈니스란 무엇인가?” 20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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