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 노동자: 현재 상황과 미래 1

[주례토론회] 중국 신 노동자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강연하는 려도 선생의 모습 [출처: 김용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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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현재 상황과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중국의 신 노동자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상 이 문제를 반드시 대면해야 한다. 왜 전 사회가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바로 3억에 가까운 중국의 신 노동자에게 미래가 없다면 중국도 미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미래는 세계의 미래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신 노동자는 일과 생활은 도시에서 하면서 호적지를 농촌에 두고 있는 노동자를 말한다.

1. 중국 신 노동자의 현재 상황

이는 방대한 규모의 집단이다. 2014년 전국의 품팔이 노동자의 수는 2억 7천 395만명이었다.2 이는 거대한 공헌을 한 집단이다. 3억에 가까운 품팔이 노동자 가운데 8천4백만명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가 입고 쓰는 것은 그/녀들이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6천만명이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걷고 있는 길과 철도는 모두 그들이 건설한 것이다. 2천만명이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녀들은 타인의 아이와 노인을 보살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거대한 대가를 치른 집단이다. 전국적으로 농촌에 남겨진 아이들이 6천 102만 5천5백명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유동하는 농촌 아이들은 3천6백만에 달한다. 농촌에서 그/녀들은 부모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도시에서 그/녀들은 공평한 교육권을 누리지 못한다.

내가 이 집단을 처음 구제적으로 접촉한 것은 북경시 조양구朝陽區 금잔향金盏鄉 피촌皮村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게 2008년이었다. 마을에 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주거 조건이 참으로 열악했지만,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두가 이렇게 힘든 조건에서 일을 하는 동력과 희망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래서 《품팔이 노동자 주거 상황과 미래발전 조사보고》를 하게 되었고, 피촌에 거주하는 150여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두 문항에 대한 그들의 답변에 주목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65%가 “고향으로 돌아가죠”라고 답했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9%만이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라고 답했다. 53%는 “계속 도시에서 버틸 거예요”라고 답했다. 이로부터 내가 진행한 후속 연구가 나오게 되었다. 즉, ‘도시에서 품팔이 노동자의 생존 상황은 결국 어떤 상황인가? 품팔이 노동자들은 도시에서 계속 살 수 없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처음에 왜 도시로 나왔을까? 이후 돌아가고자 하면 돌아갈 수 있는 곳이 고향인가? 그리하여 이어서 1년 동안 나는 도시(북경, 중경, 동관, 소주, 심천, 무한)에서 54명의 노동자와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그리고 일부 노동자들의 고향(중경의 봉절奉節,귀주의 준의遵義, 사천의 린수隣水, 하남의 무척武陟)으로 가서 5개의 마을, 36가구의 농민들을 방문하고, 도시에서 면접했던 노동자의 부모와 가족들을 만났다. 이 조사를 통해서 하나의 퍼즐을 맞추게 되었는데, 이는 중국 신 노동자들이 처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줬고, 이 내용은 2013년 출판된 『중국의 신 노동자-길잃음과 굴기』라는 책에 ‘버텨낼 수 없는 도시, 돌아갈 수 없는 농촌,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길잃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1) 버텨낼 수 없는 도시
품팔이 노동자들은 도시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지만, 그/녀들의 일은 안정적이지 않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보장을 누리지 못한다. 나의 조사연구 수치에 따르면, 품팔이 노동자는 평균적으로 1~2년에 한번씩 일자리를 옮긴다. 2014년 국가통계국의 수치에 따르면, 16.7%만이 양로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26.2%만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품팔이 노동자는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그/녀들은 도시에서 을 살 여유가 없다. 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저축을 털고, 또 대출을 통해서 고향의 진鎮(지방의 중소형 도시)에 있는 집을 사거나 고향 마을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이는 돌아갈 수 없는 ‘집’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드시 도시에서 품팔이 노동을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품팔이 노동자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지만, 그/녀들의 자녀는 대부분 도시의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없으며, 고향에 남아 조부모에 의해 보살펴진다. 어떤 경우는 아예 장기간 기숙학교에서 보내져 공부하면서 생활하기도 한다. 운 좋게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도시에서 ‘유동 아동’이라고 불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들은 부모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된다고 볼 수 있다.

2) 돌아갈 수 없는 농촌
농업은 인류의 생명선이다. 즉, 사람은 살아서 밥을 먹으며, 해로운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농촌과 대지는 생명의 뿌리이다. 즉, 토양과 물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기대어 생존하는 기반이다. 만약 농업과 농촌의 건강한 발전이 없으면, 도시의 여하한 발전과 건설도 모두 뿌리가 없는 것이고, 허구적인 번영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농촌 대지는 바로 우리에 의해 버려진 곳이며, 엔클로저 운동으로 박탈당한 곳이다. 농업수입은 매우 미미하다. 나의 실지 조사에 따르면 수입이 가장 높았던 하남 지역 농민의 농업 수입은 품팔이 노동자 수입의 절반에 불과했고, 수입이 가장 낮은 사천 지역의 농민은 자연재해로 인해 품팔이 노동자 수입의 2%에 불과했다. 농업생태계도 붕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천 지역에서 과거에 생태적 순환을 유지해 왔던 ‘돼지-고구마-옥수수’와 같은 농축산 시스템은 붕괴상황에 근접해 있다. 기층조직의 역할도 매우 부족하다. 예를 들어 내가 조사연구한 하남 지역의 한 마을은 가가호호 지반을 높혀 새집을 지었고, 부근 지역 저지대가 침수 지역이 된 상황이었다. 이는 이미 ‘유촌무사有村無社’3 상황임을 말해준다. 다른 예를 들자면, 내가 알게 된 호북 지역의 한 마을은 촌 위원회 성원이 기본적으로는 지역 건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주민으로부터 자금을 각출하여 도박빚을 상환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전기를 끊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품팔이 노동자가 바로 지금 고향을 사랑하여 보호하고 건설하지 않고, 그저 나이 먹어서 되돌아가고자만 한다면, 늙어서는 아마도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릴 것이다. 물론이다. 어떤 개체도 합리적 제도가 구비되지 않은 조건에서는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 누군가를 책망할 일은 아니다.

3)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길잃음
- 품팔이는 단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2009년부터 나는 동심창업同心創業 훈련센터 수강생의 지역조사연구를 지도했다. 수강생들 스스로 역시 품팔이 노동자였다. 스스로 품팔이 노동 생활에 대해 느끼는 아득함으로 인해서 다른 노동자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하는 바램을 싹틔웠던 것이다. 두 그룹의 수강생들이 “왜 품팔이 노동을 하는가”라는 작은 규모의 지역 조사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이랬다. 대다수 노동자의 답변은 “식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였다. 졸업한 수강생이 오늘 새벽에 여가시간을 내서 주변의 노동자에 대한 작은 조사를 진행했는데, 미래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의 답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죠”라는 것이었다. 품팔이 노동은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 이는 정상적인 것이면서 옳은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들의 생각이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 우리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목숨 바쳐 일하면 운명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아마도 타인과 사회가 매 한 사람의 운명에 관계하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생계와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권익을 보호할 수 없게 된다. 다수의 사람이 이럴 때, 거꾸로 개인의 희망은 전혀 실현될 수 없게 되고, 모두들 식구를 먹여 살리기 매우 힘들어진다. 이유는 아무도 모두의 이익을 쟁취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일을 대하는 노동자들의 태도는 고립된 것이 아니다. 지금 일을 대하는 대다수의 태도도 이와 같다. 그저 임금 수준이 다르고, 작업 내용이 다를 뿐이다. 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것 일뿐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인생 철학의 거대한 좌절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일의 동력은 대체적으로 임금을 받는데 있지 작업 과정 자체의 즐거움과 의의에 있지 않다. 일은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이지 삶을 향유하는 과정이 아니다.

- 품팔이 노동자의 ‘과객 심리’
‘과객 심리’는 품팔이 노동자 집단이 길을 잃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이다. 품팔이 노동자는 남방의 공장 기숙사나 북방의 품팔이노동자 집단거주지에서 생활한다. 생활 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러나 모두들 품팔이 노동을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참고 견딘다. 생활 속의 과객 심리로 인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수많은 것들을 쟁취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거주권에 대한 요구, 거주 조건과 환경에 대한 요구, 도시에서 자녀의 의무교육권에 대한 요구가 그렇다. 작업 중의 과객 심리는 노동자가 마땅히 얻어야 할 권리를 쟁취하지 못하게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객 심리로 인해 품팔이 노동자 집단이 투쟁할 어떤 동력도, 담판을 지을 어떤 응집력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여러 세력과 이익 집단에 끌려 다니게 되고 만다. 사실상 거주지의 안정성의 측면에서 보면, 품팔이 노동자가 한 지역에서 정착을 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나는 북경 피촌에 대한 조사에서 피촌에 거주한지 5년 이상 된 노동자가 소수가 아님을 발견했다. 심천이나 광주 지역에서 품팔이를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도 이미 그곳에서 ‘임시거주’를 10여년이나 했고, 심지어는 20여년이 된 경우도 있었다. 중국 각 지의 수많은 공업 단지는 공업 단지라기보다는 공장지대 더하기 노동자 집단거주지라고 하는 게 옳다. 그곳에서 노동자는 값싼 노동력으로 간주되고, 노동자의 가정, 거주, 자녀 교육 등의 측면에서 겪는 문제들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 지역의 사회발전의 문제 또한 고려되지 않는다. 공업 단지는 자본의 생산과 이윤획득의 요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 목표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자본은 철수한다. 결국 이 지역의 미래에 대한 고려는 없다. 품팔이 노동자들의 ‘과객 심리’는 얼핏 보기에 부득이한 선택 같지만, 사실은 곧 자본 패권의 승리다. 자본은 원래부터 ‘과객’이었다. 그 목표는 영원히 가장 값싼 노동력을 지향하고, 품팔이 노동자의 과객심리는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부합되어 자본의 확장과 도주에 부합되고 이를 뒷받침하게 된다.

2. 미래의 신 노동자가 갖는 가능성

신 노동자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신 노동자의 자녀는 부모 보다는 좋은 미래를 가지지 않을까?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보았다. 하나는 미래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측할 수 없이 요동치는 것이다. 신 노동자의 미래는 한편으로는 신 노동자 자신의 사상과 노력에 달려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정치 및 경제 환경에 달려 있다. 나는 신 노동자 자신의 문화상태가 미래와 맺는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후속 조사연구 작업을 진행했고, 최근 출판된 새 책 『신 노동자-문화와 운명』이라는 책에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약간의 분석적 사고를 담았다. 책 속에서 노동자 소호민蘇浩民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호민은 ‘생계를 위해 품팔이’를 하는 전형적인 유형에 속했고, 게다가 지난해에 자신의 노력으로 호북 지방의 고향집에 3층 짜리 새 집을 지었다. 이를 위해 총 30여만 위안을 들였고, 자신의 저축액 30만 위안을 다 썼으며, 10만 위안을 빌렸다. 책 속에서 왕해군王海軍의 이야기도 다루었다. 왕해군은 생각이 깊은 청년인데, 만약 전체 품팔이 노동자 집단의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개별적인 품팔이 노동자들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노력해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왕해군은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게다가 대출을 받아 소주 품팔이 노동 지역의 작은 아파트(초기납입금 14만 위안, 대출 14만 위안, 월 상환액 1600위안)를 샀다. 올해 5월 경, 나는 호민과 해군을 함께 만났다. 둘은 모두 후회한다고 했다. 호민이 말했다. “집을 지어봐야 돌아갈 수 없어요. 지금은 후회돼요. 그렇지만 팔고자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해군이 말했다. “집의 면적이 아이들의 현지 입학에 부합될 만큼 충분히 크지 않고, 어머니도 최근 몸이 안 좋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요. 매월 대출 상황금 때문에 일에 묶여 꼼짝도 못하네요. 정말 후회돼요.” 호민과 해군은 모두 기술 노동자에 속한다. 품팔이 노동자 가운데 수입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

따라서 교육의 공평성은 실현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집을 짓는 것은 자본의 이윤획득을 위한 것이지 인민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다. 품팔이 노동자 개인이 얼마나 노력을 하든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아주 많은 품팔이 노동자가 힘들게 노동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고자 희망한다. 나는 중경 봉절 지역의 고등학교 상황을 추적 조사했다. 고1때 69명이었고, 고2가 되어 60명이 남았으며, 고3 때는 48명만 남았다. 이 기간 동안 중퇴한 학생은 모두 외지로 나가 품팔이 노동을 했다. 2013년 대입시험이 있었을 때, 4명이 대학 본과에 합격했고, 14명이 자비 전문대학에 합격했으며, 2명은 재수를 했다. 나머지는 품팔이 노동 대열에 합류했다. 즉, 고등학교에 입학한 69명의 아이들 가운데 대학이나 전문대학을 다니게 된 경우는 18명(26%)이었다. 농촌에 남아 있는 아이들 가운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고등학교를 다녀도 다수가 중퇴를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 또한 소수이다. 자비로 가는 전문대학은 사실 값싼 노동력을 길러내는 중간역이다. 대학을 다녀도 졸업 후에 개미족(도시의 미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대학졸업생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농민공의 자녀들)의 삶을 피하기 어려움을 말할 필요도 없다. 유동 아동의 상황은 더욱 비관적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진학’은 도시에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농촌 잔류 아동으로 전락하게 된다. 농촌에 잔류하고 싶지 않을 경우 일찍부터 중퇴를 하고, 게다가 아주 많은 아이들이 보살핌과 학습 흥미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찍부터 학습 동기를 잃어버린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미래를 갖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품팔이 노동자들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출구를 찾고자 한다면, 먼저 무엇이 출구가 아닌지 알아야 한다. 첫째, 노동자로서 고용주가 되어야 출구가 생긴다고 여기는 것은 곧 출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모두들 창업을 해서 고용주가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출구가 아닌 이유는 첫째, 고용주는 결국 소수이고 심지어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며, 또한 이와 같은 논리에서 볼 때, 그들이 노동자가 마땅히 얻어야 할 권익을 쟁취하고자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착취에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스스로 직업을 모색하는 것이 겉으로는 확실히 훨씬 자유로워 보이지만, 노동 시간의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경우 공장에서 보다 더욱 심각한 자기 착취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쇄점을 열 경우 15시간을 넘게 일을 하고, 인터넷 경매점을 할 경우에도 수시로 인터넷에 매달려 있어야 해서 하루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한다. 셋째, 모든 품팔이 노동자의 목적이 그저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면, 모두들 좋은 날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넷째, 모두가 ‘과객 심리’를 품고 있을 경우 현재도 가질 수 없으며, 미래도 없다.

지금 보기에 품팔이 노동자의 현재 상황과 미래를 개선할 수 있는 두 가지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다. 첫째, 기업 내부에서 단체 협상을 통해서 노사 관계를 조정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 외부에서 협동조합형 노동 관계를 창조해서 빈민에게 집단적 발전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신 노동자의 협동조합형 경제/단결 경제/사회 경제를 창설하는 것은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가능하다. 관계되는 영역은 지역공동체 서비스, 주거, 육아, 교육, 생태농업 등등이다.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전제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려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이 되려는지’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운명을 결정한다. 품팔이 노동자가 자신이 ‘농민공’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면,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신 노동자’가 됨을 쟁취한다면, 능동적으로 자신과 집단의 권익을 쟁취하는 일원이 되는 것이다.

왕휘汪暉는 신간 『단기 20세기-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에서 다음과 같이 논했다. “‘일대일로一带一路’4는 반드시 자본주의 경제 모델을 개혁하는 장기적 과정이 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역사문명과 미래의 사회주의를 서로 연결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중국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은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미국과 유럽의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는 희망을 중국에 기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 자본 논리의 발전 모델을 계속한다면, 우리와 세계는 아마도 심연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는 점증하는 계급모순과 충돌, 더욱 심각해지는 사회적 횡포정서, 더욱 심해지는 농업위기와 생태위기를 포괄한다. 중국의 정치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역사적 유산이 있고, 역사가 남긴 여러 포부들도 있다. 역사는 이미 지나갔고,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직면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함께 노력하라고 한다.

* 주

1) 이 글은 2015년 7월 30일 《社会科学报》에 발표된 글의 한국어 번역본임.

2) 2014년 국가 통계국 ‘전국농민공감측조사보고’

3) [역자] ‘유촌무사有村無社’는 본래 중국에서 ‘마을’을 지칭하는 ‘촌사’가 형태만 유지되고 실질적 공동체 기능이 붕괴되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본래 중국에서 ‘촌사村社’는 원시 사회 말기 공유제에서 사유제로 이행하는 시기의 사회경제조직을 이른다.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씨족이 다른 씨족과 함께 집단적 가족구성을 이루고, 토지는 공유하며, 가축, 농기구, 주택, 생산물은 사유한다.

4) 2013년 9월과 10월 중국 국가주석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방문하는 기간 동안 연이어 ‘비단 길 경제지대’와 ‘21세기 해상 비단 길’(약칭 ‘일대일로’)라는 중요한 창의를 제기했고,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날 토론회 토론자로 유경순(노동자교육센터), 장윤미(한양대), 정규식(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선생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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