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9-20,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삶

9월, 공사중지가처분 신청 받아들여지면서 다시 쪽방으로

  (왼쪽) 7월, 철거가 진행되고 있던 9-20 건물. (오른쪽)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동자동 9-20 건물.

곧 쓸려버릴 것 같았던 삶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지난 2월 방문마다 강제퇴거 공고문이 붙었던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9-20(현 후암로57길 17-9)에 대한 이야기다.

동자동 쪽방촌에서도 가장 월세가 싼 동자동 9-20. 지난 2월 5일, 건물 출입구와 방문엔 3월 15일까지 퇴거하라는 ‘노란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에 고령인 이들은 당장 나가기 어려웠다. 거리, 쪽방, 고시원, 모아놓은 돈이 있다면 임대주택. 거리로 나앉는 건 두려웠고, 다른 쪽방과 고시원은 이곳보다 환경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건만 더 높은 월세를 내야 했으며, 임대주택 역시 이제껏 살아왔던 삶터를 떠나 낯선 동네로의 이주였기에 막막했다. 결국 주민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건물주와 면담하고 서울시장을 만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권익위원회, 법률구조공단 등을 찾아가 호소했다. 그러나 이들을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그동안 공사는 부지런히 진행됐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엔 빈 방문이 떼어지고 화장실 문짝이 떼어졌으며 세면대 수도꼭지가 떼어졌다. 6월 말, 단전·단수가 되면서는 배변을 보고도 화장실 물을 내리지 못했고 낮인데도 건물 안은 깜깜했다. 비어있는 방과 방 사이, 벽이 헐렸다.

그럼에도 남아있던 이들이 있었다. 주민 3명은 지난 6월 19일, 법원에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9월 9일, 이것이 법원에 받아들여졌다. 건물주의 강제철거 행위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위배된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은 쪽방이 주거에 해당하며, 주민들이 쪽방 입주 시 작성한 계약서가 한 달짜리여도 법적으로는 임대차 기간이 2년으로 인정되어 계약 기간이 남아있다고 판결했다. 공사중지가처분 소송을 진행한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그 기간동안 건물주는 임차인이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근거가 불충분한 강제철거공사를 강행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결이 났을 때 9-20엔 다섯 명만이 남아있었다.

  (위) 강제퇴거 공고가 처음 붙었던 지난 2월 9-20의 2층 복도. (가운데) 철거가 진행중이던 7월 초. (마지막) 공사가 마무리된 12월 8일의 9-20 2층.

이후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지면서 건물주는 게스트하우스로 용도변경할 계획을 철회하고 쪽방을 유지키로 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가 4년간 건물 운영을 위탁받기로 했고, 서울시는 기존 쪽방 건물을 임차(전대)해 저가로 세입자에게 임대하는 ‘저렴한 쪽방 임대 지원사업’의 하나로 9-20에 대한 보증금을 융자 지원하기로 했다. 오랜 진통 끝의 합의였다. 그렇게 다시 쪽방으로 되돌리기 위한 공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쪽방 내 교회와 관리인 방이었던 공간이 쪽방으로 전환되면서 방수는 47개에서 51개로 늘었다.

11월, 드디어 재입주가 시작됐다. 기존 재래식 화장실은 양변기로 교체됐고, 방과 방 사이 방음이 보완됐으며 방문도 나무문에서 방한문으로 바뀌었다. 월세는 그전보다 1만 원 올랐다. 그래도 여전히 주변 시세보다는 싼 편이었다. 지하 15만 원, 1층~3층 16만 원, 방이 크고 부엌이 있는 4층 옥탑방은 18만 원이다. 현재 거의 다 찼다.

기존에 9-20에 살았던 이들 중엔 10명만이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그러다 지난 11월 20일, 그중 한 명이 9-20 입구 계단에서 넘어져 사망했다. 그는 평소에도 몸이 안 좋아 ‘종합병원’이라 불리던 이였다. 그렇게 9명이 9-20에 다시 삶을 텄다.

107호에 사는 민유식 씨(67세)도 다시 돌아온 사람이다. 그는 퇴거 공고가 붙여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곳을 떠났다. 9-20을 나가서는 맞은편 쌀집 가게가 운영하는 쪽방에서 살았다. 오른쪽 무릎이 안 좋은 그는 1층에 살고 싶어 9-20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머지 이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한 번씩 이사하려면 힘이 드는데, 귀찮죠. 다들 연세도 있고 몸도 안 좋으니깐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도 안 온다고 하세요.” 조두선 동자동 사랑방 공동대표의 말이다.

안성실 씨(65세)씨는 9-20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좀 특별한 케이스다. 곧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사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9-20에 2년 정도 살았다. 철거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6월 초, 그는 바로 옆 건물인 동자동 9-19(현 후암로57길 17-7)로 이사했다. 그곳 월세는 그가 살던 곳보다 2만 원 비싼 17만 원이었다.

  안성실 씨(왼쪽)와 그와 함께 새꿈공원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는 동자동 쪽방 주민. 안 씨가 방범대원임을 나타내는 점퍼와 모자를 쓰고 있다.

그는 9-20에 들어오기 전엔 친누나와 같이 살다가 누나 집을 나와선 서울역에서 노숙했다. 노숙인을 지원해주는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쪽방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면서 임대아파트 신청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언제,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당첨은 됐지만 입주 순서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외로울 테니 이곳에 자주 놀러 올 예정이다. 무엇보다 ‘새꿈공원 자율방범대’의 방범대원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새꿈공원 자율방범대는 올해 용궁지구대가 동자동 쪽방 주민과 함께 만든 자율방범대로 동자동 9-20 앞 새꿈어린이공원에 그 초소를 두고 있다.

“봉사를 해야 하니깐. 내가 정부에서 받아먹기 때문에 정부에 봉사하겠다, 제 마음은 그렇게 갖고 있어요.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근무 아닌데도 나와 있는 거예요.”

8일, 새꿈희망 방범초소에서 만난 그는 방범대원임을 나타내는 노란색 방범대 점퍼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홍종석 씨(44세)는 9-20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다. 과거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그는 4년 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는 중림동 고시원에서 살다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됐다. 이곳은 그전에 살던 곳보다 방도 크고 창문도 있는데 방세는 훨씬 싸다. 전에 살던 곳 월세는 23만 원이었는데 이곳은 16만 원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소개로 9-20에 새로 들어온 홍종석 씨

“홍대, 신촌 쪽은 25~30만 원으로 비싼데 이쪽은 엄청 싸죠. 쪽방이다 보니 기업체에서 후원해주는 물품들도 있고 여긴 예전에 살던 데라 아는 사람도 있고, 그런 좋은 점이 있죠.”

그의 방엔 소파가 하나 있다. 사람 하나 누울 수 있는 정도의 두툼한 소파가 그의 방을 가득 채운다. 허리 통증이 있는 그가 침대 삼아 눕는 소파다.

8일, 동자동 사랑방은 9-20 입주자들의 방에 선반을 다는 공사를 했다. 이날 홍종석 씨 방에도 선반이 달렸다. 덕분에 방 안에 짐 놓을 공간이 한 뼘 정도 더 생겼다. 그럼에도 방에 마저 들어가지 못한 짐들이 복도에 놓여있다. 사람이 살기엔 여전히 좁고, 그러나 때로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스럽기도 한 그곳에서, 또다시 삶이 이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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